5. (질문) 카리스마 목회에서 분권형 목회로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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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 카리스마 목회에서 분권형 목회로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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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 카리스마 목회에서 분권형 목회로 5657

한국교회의 문제는 카리스마목회라고 합니다.

일인 단독체제라고도 합니다.

조용기목사님, 김삼환 목사님 같은 뛰어난 목회자 한 사람 중심의 목회입니다.

카리스마목회의 단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미래에는

분권형 같은 사역별로 나누어서 해야 한답니다.

목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역에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그 사역을 모두 일임하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교회사역을 서로 담담별로 나누어서 사역하는 방향이 앞으로

미래의 목회방향이라 합니다.
담임목사가 있지만, 각 파트별로 담당목사나 사역자가 있어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는 목회방법입니다.

백목사님의 목회도 카리스마 목회가 아니었는지?
성경적으로는 카리스마 목회는 옳은 방향인지 궁금합니다.
성경적으로 분권형 같은 목회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가장 옳은 방향의 목회는 어떤 방향인지 궁금합니다.


(방문자) 답할 처지는 아니지만 재독하다 느낀 것이 있어서

세상식으로 보면, 카리스마있는 목회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제 주변에도 있습니다.
거의 맞을 것입니다. 살아계실 때나 지금이나 거의 제가 아는 외부인이 줄곧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으로 보아 짐작은 합니다.

그런데 백목사님의 행정을 조금만 보신다면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행정이 진리전원일치로 요약이 됩니다.
이는 그자리에서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행정이 아닙니다.
종다수가결을 보장해주기위한 전원일치가결도 아닙니다.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정도의 수준 행정이라면 지구상에서 결코 시행할 수 없는 행정이라고 하신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맞을 것인데
세월을 투자해서라도 모두가 깨달을때까지 기다리고 깨달은대로는 각자가 그 걸음을 걷는 것이 진리전원일치의 핵심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자유성을 끝까지 보장해주는 행정이 카리스마라고 한다면 좀 앞뒤가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이 카리스마를 가미했다면 진리전원일치를 주장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일반교회식으로 종다수가결로 해도 얼마든지 의견일치를 보고 따라오게 하셨을 테니까요.

89년 8월집회중에 목요일오후 설교중에 하신 말씀이 있는데,
누구든지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서 옳은 말이 나올때 그 의견을 근거로 어린아이라 할찌라도 그 말에 순종하신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혹시 자료가 있으시면 그 부분을 참고해 보세요.


(답변1) 1.뛰어난 목회를 지향하면 인본이나, 결과적으로 뛰어나는 것은 성경

1.뛰어난 목회를 지향하면 인본입니다. 절대 금할 일입니다.

세계를 석권하겠다!

이런 표현이나 자세는 세상 불신자들이 멋모르고 살 때 해당되는 것이고
예수님 믿는 우리는 주님이 날 어떻게 쓰시든지 그냥 쓰여지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이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를 만들겠다!

이런 표현이나 자세는
목회자가 철없고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교회를 세상판으로 아는 시절이라면
그에게 열심을 재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포부를 가져 보라 할 수도 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또 정상적인 목회자에게 말한다면
이런 표현이나 자세는 신앙이 아니고 그 표현 자체가 인본의 죄가 됩니다.
인본이란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서 몰아내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다는 뜻입니다.


2.주어진 일에 죽도록 충성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뛰어나게 되었으면 신앙입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죽도록 충성을 했는데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실력이 생기고 힘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필요해서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 충성했는데 거지 나사로처럼 살다가게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꼭같이 충성했는데 아브라함처럼 살다가는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꼭같이 충성했는데도
한 사람은 나사로를 만들고
한 사람은 아브라함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카리스마 목회라는 표현이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그런 분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면
카리스마 목회는 성경적입니다.

결과가 크다고 해서 그 속에 신앙이 크다고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실 때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큰 일을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요셉을 13년간 만들어 실력과 힘을 갖게 만든 다음 일을 했습니다.
그 요셉이 하는 일을 11명 형제가 나누어 분권으로 하면
'11분의 1 + 11 형제 = 요셉' 이라는 수학 공식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고
'11분의 1 + 11 형제 = 마귀' 라는 성경 공식이 나옵니다.


3.성경에

하나님이 크게 일을 하려고 쓰신 종들 중 어느 한 사람인들
그 사람이 할 일을 일반인이 나누어 맡았을 때 그 한 사람을 대신 할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세의 할 일을 여러 족장들이 나누어 맡았던 것은
모세의 최종 결정, 최종 지도, 최종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모세를 제거하고 그대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을 세워 대신한다면 모세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고라가 나오든지 아니면 사사기 때처럼 중구난방이 나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 12명이 함께 뭉치면 예수님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아이큐 50짜리 원숭이 3마리가 모이면 아이큐 150의 천재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수학시험 30점 맞는 학생 3명이 모이면 수학 문제를 90점 맞는 것이 아닌 것과 원리가 같습니다.


4.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셨는지 살펴보셨으면

조용기목사님과 같은 분이 10만명 목회를 한다면
1천명 목회하는 목사님 100명이 함께 모여 목회한다고 10만명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조목사님과 같은 분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쓰시려고 그런 분을 만들었으니 그분은 10만명 목회를 하면 되고, 또 그를 대신 할 사람도 없으니 일부로 끄집어 내리려 할 것도 없고, 만일 그렇게 한다면 대안도 없이 공연히 집을 부서는 일만 하는 것입니다.

대신 1천명 목회하는 목사님 100명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1000명 교회에 충성하면 되고, 또 그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하다보니까 1만명이 되고 10만명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 사람을 조목사님과 같은 인재로 사용하시려고 만들어가시는 것이니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물론 10만명 목회하는 조목사님이 우상을 섬겨도 된다고 만일 발언했다면
그 발언 때문에 10만명 목회가 틀린 것이 아니고
그 발언 때문에 틀린 것은 그분의 2계명에 대한 해석 하나가 문제입니다.

분권형이니 독단형이니 표현하고 시비논단 하는 사람들은
역사에 살다간 실패자 낙오자들이며 입만 살아서 건설을 훼방하는 고라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예 그런 말들은 듣지 마시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5.목회는 가정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다 하고
자식이 철이 들면 마당을 쓸게 하고
더 크면 설거지도 시키고
이제 결혼할 정도가 되면 아들은 마당을 전담하고 딸은 부엌을 전담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이 제 실력을 갖추어 가는 것이고 그것이 교육이고 양육이며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담의 내막을 살펴볼 때
부모가 설거지나 마당쓸기를 할 줄 몰라서 못하거나
아니면 부모가 무능해서 한목에 다 감당할 수 없어 자식에게 맡긴다면
이는 자식의 교육이니 양육이니 말하기 이전에 부모의 실력이 적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모든 일을 다 맡아 다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자식을 위해서 맡긴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담하는 것이 부모의 무능이 아닙니다.


현대 교회의 분담형 목회는
거의 전부가 목회자가 무능하거나 장애자이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혹은 목회자가 목회를 목회로 하지 않고 세상의 조직 단체로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이 자기 맡은 교회의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타고난 음치라서 찬송인도가 서툴다면
그 교회는 좋은 찬송인도자를 줄 때까지는 그 서툰 찬송인도를 유지하면 됩니다.

음이 서툴어서 교인들이 떠난다면 그것은 교회의 교인이 떠나는 것이 아닐 것이고
음이 좋아서 교인들이 모인다면 그것도 교회의 교인이 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음이 서툴든 심방이 서툴든 어떤 면에 어떤 부족이 있든
한 교회의 목회는 한 사람이 가정처럼 책임지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자녀 교육처럼 양육처럼 커나오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분담처럼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혼자 힘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더 큰 것을 주시고 그것을 감당할 사람을 추가해 주시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A 가정의 아버지는 돈을 잘 벌고
B 가정의 아버지는 집안 정리를 잘 돕고
C 가정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장점이 많은데

이 A B C 세 가정을 합해서 한 가정으로 만들자고 한다면
효율성은 분명히 뛰어나겠지만 그대신 가정이 아니라 개 돼지 짐승 우리가 되겠지요?
가정이란 못나도 병신이라도 흠이 있어도 손이 짧아도
부부 2명만으로 시작해서 자기들이 낳고 책임질 자녀를 거두고 나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옆집에 가출한 가정이 있어 일시 옆집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경우도 있고, 또 삼촌 부부가 죽어 고아원에 보내니 내가 맡아 주는 경우도 있으며, 시골 친척집 아이를 몇 년간 데리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상적인 교회라면 목회자 한 사람이 충성해서 전도하고, 전도받은 사람이 전도하면서 가정처럼 꾸리고 자라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고 삼성이 기업사냥하듯이, 거대 자금을 활용해서 분야별 전문가를 고용하고 하나의 선단을 만들어 한 동네 가운데 어느 한 가정이 주변 다른 가정들의 처자식을 대거 끌어모은다면 이는 인간도 아니고 이는 .... 사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목회를 출발부터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윗글 질문은 사실 일반 교계에서 일반 교계를 비판하는 경우는 처음부터 해당도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일반 교계의 목회법은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방법을 꼭 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다만 대형교회는 그 방법으로 성공을 했고 작은 교회는 같은 방법을 사용했는데도 실패했을 뿐입니다. 실패한 교회가 대형교회를 향해서 그리 하지 말라니 하라니 말하는 것부터 모순입니다.


6.백목사님 목회는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실력과 힘을
인간들이 욕을 한다 해서 사용하는데 주저해 본 적이 없고
하나님께서 기쁘하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가 크지고 교인들이 많이 모일 방법이 있어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백목사님 목회의 진면목은
그 초대형교회를 맡아 80세 생명 다할 때까지도 교회에 부목이 단 1명도 없었습니다. 구역장과 반사들과 업무 맡은 직원들은 있다 해도, 목회자의 본질을 대신 맡는 분은 단 1명도 없었습니다.

혹시 부목이라고 표현한 적은 가끔 있지만 일반 교회의 부목이라는 분야와는 아주 성질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주일학교에 전도사님이 1명 계셨지만 그분의 직책이 전도사 시절이나 집사 시절이나 일반 반사 시절이나 호칭만 달랐지 목회자와 주일학교 책임자의 관계나 성질은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일부 개척교회나 아주 작은 교회를 제외하고 일반 교회의 정상적인 조직체계는 마치 불신사회의 정부조직이나 사회단체와 같아서 목회자는 최고 책임자이고 그 밑에 각 부서장들은 전결로 처리하는 자기 분야의 독자적 판단과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대통령이 서울시장 위에 직책이지만 서울시는 서울시 내부의 행정은 거의 전부 서울시장이 알아서 하는 것처럼 일반 교회는 주일학교나 학생부나 청년회의 경우 그들이 계획을 잡아 어디로 수련회를 가든지 또는 회의 장소를 어디로 정하든지 그 부서 내에서 알아서 합니다.

그러나 이 노선의 목회원칙은
전도회든 학생회든 주일학교든 청년회든 목회자가 조직상으로만 윗사람으로 있지 않고 실질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서부교회는 주일학교 성탄절 빵을 어느 제품 몇 개로 할 것인지, 중간반의 학생 신규 배정을 어느 반에 어떻게 할지... 차량부에서 봉고차 색깔을 무엇으로 할지, 이번 수리를 중고부품으로 할지 아니면 신규 부품으로 할지... 등도 백목사님이 결정합니다.


7.이런 현상을 두고

좋게 보는 분들은
백목사님이 모세와 같은 실력이 있어 가능했다 하며 일반 목회자에게는 해당될 수 없는 특이한 영적 능력이라며 그림의 떡을 보듯이 구경만 하고

나쁘게 보는 분들은
평양처럼 완벽한 독재라고 조롱을 하면서 이번 질문자가 말씀하신 대로 분권형이 효율적이며 민주적이며 성경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단 성경으로 따진다면
백목사님 식이 무조건 옳습니다. 이를 반론하면 성경에 무식한 사람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두고, 세상 사리로 보자고 할 수 있는데
세상 사리로 본다면 그것이 좋지 않다면 그렇게 유지 되지 않았을 것이니
염려할 것이 없고, 그렇게 유지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물론 수 세기에 한 명 나올까 하는 정도의 유능한 목회자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을 살피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백목사님의 목회 원칙이 자라가는 생명력의 성장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대형교회들은 거의 다
다른 교회에 다니는 분들을 호객하듯 손님뺏기하듯 회원확보하듯 또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처럼 끌어다가 모은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이런 식으로 초대형교회를 만들려면 분권형은 필수적입니다. 자리를 줘야 오게 되고 그 자리에 걸맞는 대우와 권한을 줘야 얻어먹는 것이 있어서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경우는
처음 목회할 때부터느 여러차례 엄청나게 큰 교회를 가질 수 있는 조건들이 있었으나 전부 물리치고 교인 1명을 대할 때 내가 나은 내 자식을 세월을 통해 애비로 길러 키워 나가는 식이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고 그들이 일찍 결혼해서 또 아이를 많이 낳아서 식구가 많아진 식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교인이 많아도 백목사님은 교인을 혼동하지 않고 교회 내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었으며 백목사님보다 어떤 실무나 어떤 분야라도 더 잘 알고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치 맨손으로 대가족을 이룬 가정의 호주에게 그 가정의 가정사에 대하여서는 어느 똑똑한 며느리 어떤 잘난 아들이라도 그 호주보다 잘 알 수가 없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부부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든지 아니면 아예 낳지 아니하고
키우기 적당한 유치원 정도 때 고아원에서 입양해서 2-3명 데리고 있고
그다음 주말 되면 온 동네 놀러갈 때 인심을 쓰고 프로그램이 좋아서 다른 가정의 아이들이 떼거리로 몰려 드는 그런 써클 같은 그런 동아리 같은 모임을 유지하여 그들 부부 주변에 아이들이 수십 명씩 북적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부부 둘이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2-3년에 하나씩 꾸준하게 낳아서
40세가 될 때는 7-8명 제 자식을 가지게 되고 그 자식들을 또 20대 초반에 결혼시켜 또 자기처럼 아이를 낳게 해서 60세가 되니까 벌써 그 슬하에 결혼한 자식 부부가 14-18명, 손주들이 2-30명, 결혼한 손주들이 몇 쌍.... 이래서 60세에 4-50명, 6-70명 자녀들을 제가 낳아 제가 길러 온 집에 가득채우는 가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목회는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일반 다른 초대형교회들을 답변자 알기로 프로그램이며 기획이며 기술개발과 자금과 회원제로 그렇게 이룬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이 노선은 백목사님 목회가 성경적이며 자연에도 맞는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부의 노력이 들고 남의 손을 빌릴 수가 없으며 세월이 걸리는데
일반 방법은 순식간에 끌어모을 수 있고 단숨에 올려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 견고성이나 생명성 특히 신앙적인 면을 본다면
백목사님식 교회는 이 홈에서 교회라고 생각하고
다른 식, 즉 분권식 등등의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196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아현교회가 당시 서울에서 제일 큰 교회였는데
그 담임이셨던 김현봉목사님의 경우는 백목사님과 목회 방법이 같았습니다.
당시 백목사님은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서 한국교회 최고의 목회자가 1960년대 중반까지
이 나라 교계에 정말 목회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답변2) 2.강자를 비판하는 소리를 들을 때 주의하셨으면

(양해문)

이번 글은 이곳에서 읽기만 하시고
이번 글을 배껴서 옮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은 금합니다.
이번 글을 인용하거나 옮기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싶은 분이
이 글을 자기 글로 직접 이해하시고 자기 글로 만든 다음 자기 이름으로 그렇게 하실 수는 있습니다. 이 홈은 어떤 자료나 글도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 홈의 자료 인용이나 사용은 표절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이 글 외에 다른 자료에 대하여 출처를 밝힌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는 분의 자기 양식이며 자기 판단일 것입니다.


(이 노선의 사회적 위치)

이 홈이 소개하는 노선은
한국교회 근현대사에서 늘 약자로 살아왔고 이단으로 비판받아 왔으며
대형교단의 일방적 횡패에 압사당할 위기로만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강자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도 양심에 거리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번 글은
현 우리 사회가 강자를 비판할 때 흔히 심각한 논리적 모순에 빠져
약자의 약한 상태가 호전되기는 커녕 더욱 희망없이 나락에 떨어진다는
안타까움이 있어
이 홈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호소 또는 권유입니다.


(본문)


1.어떤 것을 듣거나 볼 때에도

①한 걸음 떼놓고 생각을 해 보는 사고체계를 갖기 바랍니다.

이미 이 홈을 통해 여러번 문답이 오간 분이어서
답변자 속마음을 편하게 하고 이번 답변을 적어보겠습니다.

어떤 주장이든 조금 냉정하고 신중하게 살펴보시면
학습 진도가 우선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뒷속도는 무섭게 나타납니다.
백목사님 생전 이 노선의 수많은 목회자와 청년들이 그렇게 열심히 배웠으나
단순하게 들이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가시자 자신들 속은 텅비게 되었습니다.


②우리가 특별한 점은 자유성 때문임을 기억하셨으면

그 말이 옳아도 그 말이 나에게까지 옳을지 생각해 봐야 하고
그 말이 옳아도 그 말이 내게 이해가 되어 진정 옳다고 판단되어 옳은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컴퓨터와 사람의 사고체계를 비교한다면
단순 기억 저장능력이나 처리속도로만 말하면 컴퓨터는 광속이고 사람은 소걸음입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입력한 것을 무조건 옳다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다음 계산하고
사람은 입력할 때부터 마치 출입국 수속처럼 까다롭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컴퓨터는 창조나 개성이나 자유성이 없고
사람은 자유성이 본질이며 그 자유성 때문에 입력이 늦고 처리가 늦으나 이 자유성 때문에 사람이 사람되는 것입니다.


③세상 지식은 받아들이기 전에 입국심사를 엄청나게 까다롭게 해야 합니다.

옳은 것은 하나이고 틀린 것은 수도 없이 많으니
마치 간첩이 1000명이고 순수한 시민이 1명이 섞여서 입국을 한다면
그 1명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출입국 수속은 철저해야 합니다. 테러범 색출처럼


④성경 지식은 일단 외워놓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성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성경지식은 100% 옳기 때문에 무조건 머리 속에 넣어두고 봐야 합니다.
단, 나를 자유성의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넣어둔 지식을 비록 하나님 지식이지만 나라는 사람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왜 이리 말씀하시는지, 왜 그렇게 되는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지 ....
이렇게 연구하고 살펴보고 따질 때 자기 마음 속에 계신 성령께 구하여 깨닫게 되면
객관의 하나님 지식이 내 주관의 내 지식이 됩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성화된 자신이 되고 그 되어진 것 만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⑤성경을 중심에 놓고 연구하시되, 자연을 늘 참고하셨으면

성경은 100% 옳지만
그 성경을 깨닫는 과정이 나로서는 어려워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자연환경은 그 전체가 성경을 깨닫는 일에 필요하여
우리에게 주신 참고 자료들입니다.


2.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악령을 잘 보셨으면

①내 속에 들어와서 죄를 짓게 하는 것도 삼키는 악령입니다.

도둑질을 하게 하고
주일을 어기게 하는 이런 경우입니다.


②옳은 줄 알고 했는데 알고보니 통째로 속는 것도 바로 그 같은 그 악령입니다.

자선사업은 무조건 교회가 해야 할 대표적인 선인 줄 압니다.
사랑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도 그런 것으로 분류합니다.
혼자 너무 잘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이 뒤쫓아 갈 수 없게 되면
아주 착취자요 몹쓸 인간이라고 욕설을 하는 것도 오늘 모든 사회와 교회의 공통 인식입니다.

지금 현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너무 크고 강해서 죄송하다고 벌을 쓰고 있고
지금 현 우리 교계에서 순복음교회가 교인을 너무 많이 모아서 나쁜 교회로 지목을 받고 있습니다.


③답변자의 처지가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못난 처지여서 이 면에는 다행입니다.

이웃이든 가족이든 사방 십리 안에 삼성직원이 없고
현 공회의 교세가 교계의 군소 교단 중 하나가 되어 있으며
답변자의 목회지도 시골의 이름없는 작은 곳입니다.
그래서 이번 답변은 목소리를 마음껏 높여도 뒤돌아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 전대통령이 수천억 단위를 훔쳐먹었다고 전국이 떠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렇게 떠들던 그 기자, 그 노조, 그 서민, 그 야당, 그 교수들은
전대통령처럼 그렇게 먹지 않았는가요?
전대통령처럼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못먹었을 뿐입니다.

순복음교회처럼 교회가 크지면 폐단이 많을까봐 교회들을 적게 유지하고 있는가요?
삼성처럼 재벌이 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이웃 때문에 모두들 서민으로 살고 있는가요?
답변자 생각에는 모두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고
모두들 남을 비판할 때는 거의 미친ㄴㄴ들이 되어 개처럼 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④사랑은 좋고 미움은 나쁘고 .... 이런 식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죄짓는 행동은 미워해야 하고
그 사람의 인간 자체는 동정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사랑해야 합니다.

삼대독자 자식 사랑은 그 자식을 맹수로 만들거나 병신 등신을 만드는 독약이고
내 자식을 남의 자식 키우듯 엄하게 하면 그 자식은 미움이라 하나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⑤우리에게 주신 자연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자연과 환경과 인간을 사랑한다는 시민운동이나 소위 양심세력들이
정말 자연을 사랑하려면
사자는 먹어야 하고 토끼는 먹혀야 그것이 자연인데
토끼를 먹으려는 사자를 억압하고 먹혀야 하는 토끼를 보호하여
오늘 사회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기형적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일반적 자연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는 삼성같은 재벌을 견제하고 교회적으로는 대형교회를 지탄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만든 세상을 가장 자연스런 상태로 돌아가게 하려면
큰 것이 작은 것을 먹고
작은 것은 큰 것에게 먹혀야 하며
작은 것이 먹히기 싫으면 미리 굴복을 하든지 아니면 힘을 길러야 합니다.

총공회는 짥게는 40년 역사, 길게는 70년 역사를 통해
늘 소수였고 피해자였으며 억울하게 살아온 서민 교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형교단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했지 대형교단의 대형을 비판한 적은 없습니다.
이 노선은 교단 중에서 가장 거지 교단으로 살아왔으나
부자 교단의 경제제일주의를 비판했지
부자 교단이 축척한 돈 자체를 비판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 노선은 무식꾼들의 집합소지만
지식인들의 잘못된 지식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무시했지
그 지식 자체를 두고 그렇게 해 본 적은 없습니다.


3.휩쓸어 가는 세상 분위기를 경계하셨으면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좀 애매하지만
일단 초대형교회를 만든 실력이나 그런 힘을 말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덮어놓고 통일은 좋은 것이고
통일을 반대하는 놈들이 누구냐 이렇게 말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왜 통일이 좋은 것인지 이유를 들어보자고 해야 옳습니다.
우리는, 왜 통일이 무조건 좋은지 배운 다음에 따라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남들이, 우--- 하고 쫓아갈 때 함께 우--- 하고 따라가면 개수준입니다.
우리는, 왜 가야 하는지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카리스마가 왜 나쁜지?
대형교회를 만드는 힘과 실력이 왜 무조건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재벌이 왜 나쁜지요?

가능성이 없으니까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대 1의 공무원 시험 응시자의 숫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9급 공무원은 가능하겠다 싶으니까 100대 1로 몰립니다.
그들이 서민입니다.
그들이 자기 수준에서 가능하겠다 싶으니까 그렇게 한다면
재벌가 자식은 재벌이 될 수 있고 재벌을 상속받을 가능성이 있다 싶으니까
마치 내가 9급 공무원 시험을 10년이라도 재수하고 치듯이
그들은 10년이 걸려서라도, 아니 30년이 걸려서라도 그렇게 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인간 본능에 가깝고
그렇게 해서 안 된다면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반자연적이고 외식이고 모순일 것입니다.


4.그것이 자연현상이라면,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세상의 모습이라면!

밀림 속에 사자가 마구 어린 사슴들을 포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타락하였으므로 힘 있는 것은 힘 없는 것을 저렇게 살륙한다는 이치를 배워야 하고
타락하였으므로 힘 없는 것은 힘 있는 것에게 알아서 기야 하고 까불면 안 되고
타락한 세상은 힘 있다고 힘 없는 것을 다 잡아먹으면 나중에 자기도 굶어죽어야 하는데
타락한 세상은 힘 있는 사자를 다 죽이고 나면 사자 대신 다른 무서운 불균형이 나타나게 되므로

사자를 도와줄 수도 없고
사슴을 도와줄 수도 없고
그냥 우리는 이런 자연환경을 보며 죄의 결과를 관찰해서 내 속에 죄짓지 않기를 노력하고
그리고 자연환경은 그 자연환경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는지 구경이나 할 노릇이지
그 자연환경을 구경하고 말아야 할 나의 취향대로 변모시키고 조절하기 위해
사자를 토벌하거나 아니면 사자를 육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복음교회나 삼성이 맹수라고 치더라도
맹수를 없애면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보면 압니다.
맹수를 육성하면 그것도 큰일납니다.
모든 자연 사회 만물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만유주 하나님께 맡겨놓고
우리는 우리 각자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데

자연보호니 인권사수니 하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겉으로는 자연을 보호하는 것 같은데
실은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반자유주의자들이고
조금 더 깊은 모습을 살펴보면 하나님 자리를 대신 꿰차고 들어가려는
망령된 자들입니다.


5.이 홈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자녀나 교인이나 주변 사람들을 향해
TV 9시 뉴스의 아나운서 말 몇 마디 줏어듣고
'재벌놈들...' '대형교회 목사놈들 ....' '강남에 잘 사는 놈들 .... '
이런 식으로 한 마디 내뱉는 것이 제 자식과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만물의 대적으로 돌려세우는 미련한 일인 줄 알고
우리는 청교도 정신의 상식 차원으로 돌아가서

돈을 번 사람이
제가 스스로 알아서 가난한 사람을 챙기면 지혜로운 사람이고
돈을 번 사람이
힘껏 약자들을 잡아먹으면 그 후에는 저도 굶어죽게 되는 미련한 짓이라 알고

이렇게 가든 저렇게 하든
남들이 하는 일을 하나님도 아니면서 그들의 부모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개입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겠다고 간청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도 적개심을 많이 갖게 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나쁜 머리를 타고 났으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 되는 것이고
부모에게 좋은 머리를 타고 났으면 놀아가면서도 공부를 1등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줄 알고
1등은 공부 1등으로 써먹을 데가 따로 있고
꼴찌는 공부 대신 다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써먹거나 아니면 공부 꼴찌를 가지고 어디라도 써먹게 할지 모르니 10번째 계명에서 금한 대로 이웃의 집을 탐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글을 적는 것은
가난하고 무식하고 못나고 짓밝히는 것도 서러운데
잘못된 현실 환경관에 내몰려서 멋모르고 잘나고 똑똑하고 강한 사람들을 욕하고
적개심을 기르고 자기 할 일에 주력하지 않다 보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못난 사람이 더 못난 사람이 되어져서
결과적으로 못난 우리가 더 못난 사람이 될까 염려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는
잘난 사람이 스스로 못난 사람을 살피면 칭찬하지만
잘난 사람이 잘난 것을 뻐기고 산다 해서 억울하다고 데모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요소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라고 안내는 하고 있습니다.
지옥갈 사람을 천국에 가자고 간청은 해도
지옥갈 사람의 그 자유성이 지옥을 기어코 가려고 할 때 강제로 막지 않습니다.

문제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고 흠과 점을 찾기 전에
못난 우리는 내가 왜 못난 사람이 되었는지 그 현미경으로 나를 살펴
고장이 있으면 얼른 고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얼른 채우고
하나님께서 포기하라 하시면 다윗처럼 더이상 기도하고 달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죄와 부자를 질시하는 죄가 성경은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다음 주변을 살펴주되, 강제나 억압이 아니라 권유와 간청과 설득으로 옳은 길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기독교계 내의 양심세력이니 개혁세력이니 하는 운동들이
대형교회를 강제로 해체하려고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반성경적이고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이 재벌들을 못잡아 먹어 환장하고 있는 것도 지극히 비자연 반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런 운동들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들이 증오하는 재벌이나 대형교회 목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밀려서 낙오하니까 무지한 서민들을 충동시켜 자기들의 재기나 출세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자들입니다. 소위 실패한 엘리트거나 기회를 갖지 못한 엘리트들이 보상심리, 보복심리, 사촌 논 사면 배아픈 심리, 못먹을 호박 찔러나 보는 심리 아니면 현실 부적응의 울분 해소거리로 시작하는 것이 역사에서 대개 '양심적 비판세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양심'이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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