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교회론

주제별 정리      

제6장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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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0.초교, 04.03.29. 최종 출간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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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1. 교회
2. 교회의 특성
3. 교회의 형태
4. 공회체제
5. 교회의 직책
6. 교회와 세상의 관계
7. 교회의 기본 활동
8. 성례
9. 은혜로운 신앙행위







제 6 장

교회론



1. 교회

① 교회라는 표현

지금 보통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예배드리는 건물인 예배당을 뜻하거나 아니면 그 예배당에 다니는 교인들 단체를 교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정확한 뜻은 하나님과 진리를 모신 사람을 교회라고 합니다(고전3:16).
하나님과 진리를 모신 한 개인은 개인교회(고전3:16), 하나님과 진리를 모신 가정은 가정교회(엡5:25-27),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고 지역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사회교회라 합니다(고전1:2). 대개 이 세 번째에 해당되는 사회교회를 교회라 하고 또 그 교회가 가진 예배당을 교회라고 부르는데, 교회라는 단어 자체를 정확하게 알았으면 합니다.

물론 단어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사용에 따라 그 뜻이 늘어나기도 하고 또 변형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생활 속에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일반 사람들의 표현을 고려해야 하지만, 교리에 관련된 용어들은 그 원래 뜻과 사용법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 교회의 정의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 된 상태를 말합니다. 택한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대로 움직일 때가 교회입니다. 부활 후에는 영원토록 이런 상태가 변동 없이 계속되지만, 오늘 세상에서는 교회가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고 사람만 남아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교회를 만들고 훈련시키는 때이므로 혼동이나 변동이 많으나, 부활 후에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진리에 하나된 것만큼 하늘나라로 옮겨져 영원히 변함없는 교회로 계속될 것입니다.(고전3:16)

③ 교회의 요소

▪ 하나님

교회는 하나님이 계셔야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빼놓고 인간이 교회라는 이름과 믿는 사람이라는 그 이름만 가지고 교회라고 생각하고 교회로 상대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비록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있고 또 믿는 사람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교회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마16:17-23)

하나님이 무형이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을 떠날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해도 순간적으로 하나님을 빼놓고 살기가 쉬운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형이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 없이 살지 않도록 노력하고 무형의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늘 동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 교회로 자라가고 교회를 만들어가고 교회가 지어져 가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즉 유형의 하나님이었다면 하나님 동행은 쉬웠겠으나 우리 노력과 실력이 어린 상태로 머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므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떠날 때가 무수하지만 그 대신 무형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 과제 때문에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야 하고, 따라서 우리의 실력은 더 크게 자라게 됩니다.(엡2:22)

▪ 진리

진리도 하나님과 같이 무형이지만, 하나님께서 진리는 성경말씀이라는 껍데기를 입혀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진리를 모시고 진리대로 사는 교회가 되는 일은 보다 쉬운 일입니다. 어떤 면으로도 외형을 상대하려 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는 하나님 동행과 달리 진리대로 사는 일은 성경말씀을 우리가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또 외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말씀은 우리에게 진리를 접촉하는 표면인데 그 표면인 말씀을 상대하다가 말씀이 가르치는 껍데기에만 안주하고 그 말씀이 가르치는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을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주일을 지켰다는 것이 말씀에 기록된 대로 주일날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과 예배 보는 것으로 전부를 삼고 안심하면 말씀의 껍데기만 지키고 끝난 사람입니다. 그 속에서 주일을 통해 성화가 되고 복을 받아 신앙이 자라가는 내면이 있어야 주일 계명 속에 담겨있는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교회가 붙들어야 하는 진리는 늘 무엇이 진리냐는 문제를 두고 혼돈이 극심하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우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기준이고 동시에 그 말씀을 상대할 때는 그 말씀을 기록한 하나님의 설명과 해석과 지도를 받아야 비로소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 요소인 진리대로 살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진리를 바로 모시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자기 속에 있는 양심을 가지고 아는 대로 말씀을 실행해 보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말씀대로 실행하는 데에서 잘못 깨달은 것은 수정을 시켜 주시고 바로 깨달은 것은 쑥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모신다는 사실은 너무도 어려워 인간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인간 속에 양심과 실행이라는 두 방편을 주셔서 가능하게 해 놓은 분이 하나님입니다.(행13:44, 딤전3:15, 고후13:8)

▪ 사람

사람을 하나님과 진리에 비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이름을 두고 말할 때는 사람이 들어가야 교회가 됩니다. 사람이 필요 없고 사람이 포함될 일이 없을 때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홀로 계시던 때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한 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존재하게 된 첫 순서인데 이 순간부터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은 영원히 분리해서는 생각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 된 상태, 곧 교회였기 때문입니다.(고전12:27, 엡1:23)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 된 상태, 곧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존재를 위해서 천지도 만물도 만들었고 또 영계와 물질계도 또 과거 현재 영원 미래 전부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란 무수한 피조물들, 무수한 만물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만물의 주인공입니다. 사람의 영은 천사와 같은 영물이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물질계에 흔하고 흔한 물질들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이 존재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목적 세계가 존재하게 된 이상 빠지거나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엡1:23)

④ 교회의 종류

▪ 구성범위로 구분한다면

▫ 개인교회

하나님과 진리와 한 명의 택한 사람이 합한 것을 개인교회라고 합니다. 믿는 모든 사람은 전부가 하나님 앞에 가장 중요한 ‘교회’입니다. 가정교회나 사회교회는 이 개인교회가 바로 만들어지게 하는 보조 역할을 하고 또 바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면으로 중요합니다.

가정교회와 사회교회는 항상 개인교회를 보조하고 보충하는 기능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가정교회나 사회교회가 개인의 상부기관이 되어 하나님과 개인 사이를 가로막고 나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단위는 개인과 하나님의 개별 연결에 있습니다.(고전3:16, 6:19)

▫ 가정교회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게 되면, 회사나 친목회나 국가 등 다른 단체나 모임과는 전혀 달리 교회가 됩니다. 가정교회는 개인교회를 바로 길러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특별하게 예비해 두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개별적으로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는 개인교회를 기본으로 삼고, 그 위에서 가정교회를 바로 알고 운영해야 합니다. 가정교회가 필요한 이유와 가정교회의 운영에 관련된 모든 면을 바로 알아야 개인교회가 바로 되기 때문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가정교회의 탈선이 극도에 달하여 제대로 된 가정교회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가 됩니다. 바로 된 가정교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또 바로 된 가정교회를 가졌다는 것은 개인교회가 건전하고 바로 되었다는 표시판입니다.(엡5:22-33)

▫ 지방교회

각 지방과 지역마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를 보통 교회라고 하는데, 교회를 분류할 때 범위를 기준으로 말하면 이는 사회교회입니다. 사회교회는 역사적으로 초대교회가 각 지방에서 예배로 모이게 하여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등과 같이 그 지역 믿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지도하기 위해 사회교회로 출발시켰기 때문에 교회의 종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행9:31, 계1:11)

사람이 복음운동을 위해 설치한 기관 단체는 있어도 되고 없애도 되지만 성경이 필요하여 주신 기관은 우리가 우리 생각대로 없애고 변형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교회가 사회적으로 여러 병폐가 있다 해서 무교회주의로 나가는 것은 이단이고 또한 앞에서 말한 가정교회의 경우도 가정의 병폐가 많다 해서 가정교회 자체를 부인하여 결혼이나 출산을 금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은 역시 이단입니다.(히10:24-25)

특히, 교회론에서는 사회교회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개인교회는 성경 전체를 통해 한 개인이 해야 할 모든 명령이 바로 개인교회에 관련된 것이고 가정교회 역시 성경에서 결혼과 자녀 그리고 가정에 관련된 것이 전부 가정교회에 대한 말씀인데 이 범위는 너무 넓기 때문에 조직신학에서 따로 요약하지 않고 대개 성경신학에서 ‘결혼관’이나 ‘이성관’ 또는 ‘가정교회’라는 제목으로 따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회교회는 개인교회와 가정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제적인 영향력이 있는데, 이 사회교회에 대한 조직과 운영론에 대하여는 성경이 명확하게 말한 것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무교회주의로부터 천주교와 같은 교회지상주의까지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조직신학에서의 교회론은 주로 사회교회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역사교회

지상에 살다간 택자 전체를 한 교회로 잡을 때 우리는 보편교회 또는 역사교회라고 합니다. 이는 부활 후 하나님 한 분의 몸이 될 모든 성도 전체를 한 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또 어느 지역으로 한계를 정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데, 실은 신령한 세계에서는 바로 이 교회만이 교회입니다.(계3:12)

개인교회는 바로 이 역사교회에 편입되는 가장 작은 기초단위이며 이 역사교회에서 그 개인 한 사람이 반드시 직접 맡아야 할 위치와 직무가 있으니 개인교회는 역사교회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실제 하나님을 머리로 하고 그 몸이 될 교회의 존재는 역사교회가 전체 단위가 됩니다. 이 역사교회 최종 조립상태에 맞지 않고 배치되거나 이질된 것은 부활 때 전부 지옥으로 버려지게 됩니다.

오늘 땅 위에서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여론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개인교회 완성을 통해 우주교회에 들어갈 양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날에 완성된 최종 교회의 모습과 그 안에 꼭 필요한 존재로 들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오늘 이 땅 위에서 만들어 가야 하고 그날을 소망하고 그날의 성공에 모든 지상의 성공을 걸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벧전2:5-8, 롬12:4-5, 엡2:20-22)

▪ 역사적으로 구분한다면

▫ 에덴동산 교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대로 살아가던 에덴동산은 역사적으로 첫 교회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과거로 지나갔지만, 이 교회는 앞으로 부활 후 우리 앞에 펼쳐질 교회의 영원한 모습을 함축하여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의 모습은 오늘 참 교회를 만들어 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되어야 참 교회이며, 참 교회가 되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실물 표본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 있는 우리 교회가 바로 운영되면 에덴동산의 상황은 비록 부분적이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재현됩니다. 그렇게 되어진 양의 총합이 부활 후 자기와 관계된 교회의 영원한 모습입니다. 에덴동산은 원죄까지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 환경의 변질이나 타락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성경이라는 형식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인도하고 동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창2:19)

▪ 구약교회

아담의 타락 후 예수님이 오시던 때까지 약 4000년 정도를 구약교회라 합니다. 원죄와 본죄로 사람이 타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환경도 사람도 함께 변질이 되었고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자로 임하시던 시기입니다. 택한 백성까지도 율법대로 행동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율법 속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언약을 발견하고 믿고 순종한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을 받으라고 주신 예표였는데, 율법 속에 예수님의 대속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율법의 외부 명령만을 따라 가다가 구원에 실패했고, 그 율법 속에서 은혜를 발견한 사람들은 구약에서도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롬4:3)

신약교회와 구별을 하자면 오실 예수님을 예표로 받아 모셔야 하던 시대가 구약이었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 모시면 되던 시기였습니다.(골2:16-17)

구약교회는 모세를 통해 성경을 주시던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을 양심시대 그 이후를 율법시대로 나눌 수 있고, 또 아브라함을 기준으로 이스라엘 민족 내에만 구원을 두게 되는 아브라함 이후 시기와 그 이전 시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중요한 몇 가지만 예를 들었습니다.

▪ 신약교회

예수님 이후 오늘까지 2000년 교회 기간을 신약교회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고 이제는 주시는 그 은혜를 받기만 하면 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선결된 시대이므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어떤 것도 가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속에 성령님으로 오셔서 역사하실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 신약 시기의 말씀은 구원을 얻는 전제 조건이 아니고 모든 말씀이 구원을 얻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닮아가고 또 실력을 길러나가는 은혜의 방편이므로 율법이라는 이름 대신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구약시대에 율법으로만 존재했지만, 오늘 신약 우리들에게는 구약의 율법이든 신약의 복음이든 전부가 복음이 됩니다.(갈3:23-29)

신약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구원의 범위 문제입니다. 구원의 대상을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누구든지 믿는 사람은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시기입니다. 인간이 외견으로 볼 때는 믿는 자가 구원 얻는 시기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신약에 믿게 될 택자들의 분포를 미리 이스라엘 백성 외에 배치시켜 놓았습니다.(행15:7-9)

신약교회 시기 안에 작은 범위로 분류하자면, 성경을 기록하고 신약교회의 기초를 쌓던 초대교회가 있었고 이후 천주 중세기를 거쳐 종교개혁기교회와 현대 교회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 교회의 특성

① 계속성

▪ 계통 전승

참 교회는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더라도 각 시대를 이어가며 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마1:1-17). 한 시대에 수많은 교파와 교단과 각개 지역교회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며 후시대로 이어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정통교회입니다. 물론 정통교회가 사람이 알도록 그 시대 교회들의 활동 중심에 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 대개 왜소한 상태로 명맥을 겨우 잇거나 심지어 그 맥이 완전히 단절된 정도로 보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정통교회의 계승에 있어 하나 기억할 것은 정통교회는 항상 정통교회에서 정통교회로 이어집니다. 정통교회가 타락하지 않고 그대로 그다음 시대에 이어지는 때도 가끔 있고, 또 정통교회가 타락하게 되면 그 타락한 교회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원래 교회의 참모습을 찾아 다시 정통교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타락한 정통교회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정통교회가 다시 나타나는 수는 있어도 정통교회에서 벗어나 탈선한 교회에서 정통교회가 이어지는 수는 없습니다. 이단에서 정통이 나오는 수는 없습니다. 정통에서 정통이 이어집니다. 인간이 인간 수준에서 ‘정통’의 이름을 너무 많이 써먹고 또 정통이 이어진 ‘전통’의 이름을 너무 많이 써먹고 있지만, 그래도 정통이 전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통의 전통을 찾아 원래 참 교회의 모습을 찾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통의 이름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반발심이 많아지면 정통을 잘못 이해하고 써먹는 그들 때문에 정통 자체까지 배척하는 것이 유약한 인간들입니다.(왕상12:16, 약3:12)

▪ 전투 교회

참 교회는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대내외의 투쟁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세상은 악령의 것이며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에서 하나님께만 붙들린 것을 만들려 하시고 악령은 그것을 막는 일이 자기 일입니다.

악령이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떼 내어 세상에 편입시킨 만큼 악령의 나라 지옥의 권세를 확보하게 됩니다. 악령의 침투로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를 외부에서 정면으로 비판하고 해체하기 위해 교회를 여러 종교 중에 한 종교로 만들고 그 이름을 기독교라고 붙인 다음 무신론이나 타종교를 통해 종교 간의 문제를 제기하여 대적하는 일입니다(행17:18). 또 하나는 교회 내에 악령의 사람들을 심고 길러서 교회 내부에서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입니다.(유1:4, 행20:30)

어떤 때는 외부전투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내부전투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2개의 전선을 동시에 가동하게 됩니다. 교회 내에 들어온 적을 상대하려면 악령은 형제사랑이라는 방패를 들고 나서고, 교회 밖에서 들어오는 적을 상대하려면 세상의 힘으로 진압을 하며 나섭니다. 그 전법과 전선의 형태가 어떠한 것은 따로 살펴볼 일이고 여기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참 교회라 한다면 그 교회는 지상역사 끝날까지 안팎의 전투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때는 없다는 것입니다.(벧전5:8-9, 계7:14)

▪ 외형 유지

참 교회는 때로는 사람들의 눈에 어디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할 만큼 사라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찾아보는 사람의 시력이 약해서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지상 역사 기간을 통하여 참 교회는 반드시 그 교회를 외형 교회의 형태 속에서 존재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참 교회는 피난 시절과 같이 긴급한 때는 그 교회의 형태조차 없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보이는 교회의 모습 속에서 그 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혹 시대적인 박해로 인하여 교회의 기본 형태조차 갖추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지하교회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이 나고 신앙자유가 주어지면 교회는 반드시 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그 시대를 감당합니다. 무교회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외형 유지라는 것은 어느 교파가 헌법으로 규정한 교회의 설립 요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과 시대에 따라 그 존재하는 형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교회는 외형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교회의 단체 타락에서 개혁운동을 일으킬 때 자칫 교회의 잘못된 것만 고치지 않고 교회 자체를 잡아버리거나 또는 교회가 단체로 존재하는 이상 항상 다시 타락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하여 교회의 존재형태 자체를 거부하는 자세를 가지기 쉽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는 것입니다.(히10:25

▪ 인인 계승

교회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고 앞의 사람의 수고에 뒤 사람의 수고를 더하며 자라고 건설되어 갑니다. 한 사람이나 한 시대에 전부를 맡기지 않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한 몸의 분자로 한 분 하나님으로 움직여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로 깨닫고 바로 쌓아놓은 다른 사람의 앞선 수고를 잊거나 무시하게 되면 뒤따르는 사람의 모든 수고는 크게 지체되거나 혹은 그의 평생 수고가 헛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매일 자기 현실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죽도록 충성하며 조심하되 동시에 자기가 어느 줄에서 어느 사람의 어떤 수고의 연결선에 이어져 자기 할 일을 해야 하는지도 삼가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지방 교회의 복음운동으로부터 한 시대를 이어가는 범위 넓은 복음운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앞서 나간 이들을 통해 미리 닦아 둔 터가 어디며 또 어느 부분까지 어떤 작업을 끝마쳤는지를 살펴 그 뒤를 잇는 것이 늘 중요합니다. 사람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며, 사람을 통해 복음 운동의 여러 면을 갈라 맡기고 이어가며 전체가 하나의 참 교회가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수11:15)

▪ 유기적 존재

참 교회는 그 내부 구성과 상호관계가 마치 한 사람의 몸이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로 연결되고 운영되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잘 보고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인체입니다.

발끝이 머리에 이어져 있고 손끝의 불편이 발끝에 불편이 되고, 눈의 수고가 발의 수고와 합해 머리를 살리고, 머리를 중심으로 전신의 각 부분이 순서와 질서와 협력과 분담과 지원과 도움을 주고받되 그 생긴 모양과 역할과 동작은 천차만별인데 그 생명은 하나이고 그 목적도 하나이며 그 활동도 결국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한 분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목적이 교회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되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역할과 장단점과 활동은 전혀 다른데도 그 모두는 정확하게 한 몸의 관계와 같습니다. 교회론을 바로 안다면 교회생활을 통해 시험 들고 갈 길에 방해를 받고 갈등하여 고민하는 일은 전혀 없게 됩니다. 온 몸의 전부가 다 병들고 약해져 있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더욱 중하고 긴급하여 혼자서 그 몸을 책임져야 하는 시기이지, 다른 지체들의 고장과 무력에 영향을 받아 함께 그리 될 수 없는 일입니다.(고전3:6-9, 엡4:15-16)

② 단순성

교회는 하나님이 주동이시고, 인간은 순점8로 운영됩니다. 따라서 한 분 하나님만 상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단순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들의 조직체는 조직 자체가 조직을 유지하는 힘이요 근간이기 때문에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인간의 수없는 꾀와 방편들이 복잡하게 쌓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단순하던 교회가 복잡하게 됩니다. 단순해도 생명이 있고 따뜻함이 있었는데, 타락하게 되면 복잡한 제도와 수많은 방법들이 제시되는데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뜨거움은 없어지고 일반 세상 조직과 같은 외형을 가지는 데까지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오로지 하나님 한분으로 그 전부를 삼는데 하나님은 단일성이므로 그 모든 운영과 존재 형식은 단순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비록 그 말씀이 복잡한 것 같아도 실은 그 말씀 속의 진리는 항상 하나입니다. 그 속의 내용이 단순하기 때문에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비록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복잡하게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단순한 형태를 가집니다.

오늘 세상의 구조가 무한정으로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교회의 타락도 그 교회 내의 복잡함이 마치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교회의 법도 조직도 교회의 예배도 교회의 모든 의식과 운영도 인간들이 만들고 제안한 것으로 가득 차 있어 하나님께서 원래 내신 것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주범이 바로 신학의 복잡화입니다. 신학이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일로 단순화 되면 교회도 단순해질 것인데, 세상이 학문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학문도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와중에 신학까지도 세상 학문과 꼭 같은 모습으로 교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배당도 단순한 것이 좋고, 교회의 조직도 단순한 것이 좋으며, 교회의 법도 성경법 하나로 모여져 단순해져야 하고, 성도의 생활도 단순해져야 합니다. 심지어 입는 옷까지도 단순하고 먹는 음식까지 단순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근본 방향입니다.(눅10:40-42, 행15:5-11 고전14:33)

③ 개교회성

교회는 하나님께 직접 속하여 하나님께만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를 개교회성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각각 하나의 단위로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타인이나 상부 기관을 통해 연결이 되어야 하는 구조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천주교회의 교회관입니다. 하나님과 택자 사이에 천주교회가 가로막아 천주교회를 통해서 구원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오르내리도록 길목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 연결성과 관련하여 개교회성을 그 본질로 삼습니다. 개인이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는 일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도움을 받는 일은 필요하지만 개인이 하나님과 연결을 가지는 일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가 통제를 하거나 가로막는다면 이는 교회의 적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목적 대상인 우리에게 자유성을 기본으로 주신 면에서 확정지을 원칙입니다.(요일2:27, 계1:20)

개교회성에 대하여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말세 마지막 현실에서 성경의 교회론에 가장 정확한 교회체제를 백영희신앙노선의 개교회주의에서 찾아 볼 수 있으므로 교회론의 이어질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④ 진리성

교회는 말씀대로 된 모습만이기 때문에 말씀 외의 것이 법으로 존재하면 안 됩니다. 말씀으로 만들어지고, 말씀에 따라 움직이며, 말씀의 인도만을 따르는 것이 교회입니다. 성경과 다른 법이 만들어지면 이는 교회법이 아니라 세상법이 되는 것이고, 교회와 다른 모습의 조직과 운영이 시행되면 이 역시 교회로부터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탈선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기준은 항상 진리인 성경말씀이라야 합니다.(막7:7-13)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 원칙은 모르거나 부인할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실제 신앙현장에서 정말 이 원칙이 적용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모두들 나름대로 성경에 맞는 교회조직과 운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므로, 원칙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원칙대로 된 제도와 운영은 과연 어떤 모습이겠으며, 또 현재 참고할 만한 중요한 제도나 운영을 예로 들며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3. 교회의 형태

① 5가지 형태의 교회체제

현재 존재하는 교회의 실제 형태는 무수합니다. 그러나 크게 분류하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천주교,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천주교는 다른 종교지만 교회가 탈선하면 천주교의 길을 밟아간다는 점에서 교회의 잘못된 형태의 하나로 비교를 하겠고 또한 천주교는 교회가 완성된 천국에서의 모습을 비교할 때 필요한 점이 있어 예로 들겠습니다.

다른 3가지 교회 형태들은 교회가 역사적으로 각각 발전시킨 형태로서 서로 장단점이 있고 또 그 서열도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시야로 살핀다면 일반 교회들의 형태를 가장 대표적으로 살필 수 있는 표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가장 모범적인 형태이지만 일반 교회가 거의 알지 못하는 공회 형태를 하나 더하여 5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 천주교정치의 교회

천주교는 교회에서 제일 잘 믿는 사람을 하나 선출하고, 그에게 교회의 모든 결정권 일체를 맡기는 정치입니다. 어떤 권한이든지 제한 없이 다 맡기되 절대권으로 부여합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제국의 황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실제 천주교 교황은 교회의 힘이 약화되어 세상을 점령하지 못해서 그렇지 만일 가능하다면 교회 안에서 가지는 절대권을 세상까지도 그렇게 지배하는 곳입니다.

이 형태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 모습이 되든지 아니면 교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세상 왕정국가의 형태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보통 천주교의 통치 형태를 100% 잘못된 교회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교회가 전적 말씀과 성령으로만 점령하고 또 그 소속 교인들이 전적 자원함으로 따른다면 천주교 형태의 교회가 천국의 모형에 제일 가깝습니다.(마16:16-23)

▪ 감독정치의 교회

감리교는 교회의 지도 체제를 감독이 총괄하는 체제입니다. 그 감독직에 대한 명칭과 표현에 대하여는 교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감리교 교단에서 사용하는 단어로서의 감독이 아니라 교회를 총책임지고 총괄하는 직책을 감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리교는 교회를 책임진 감독에게 천주교처럼 절대권을 부여하거나 아니면 세상권력 형태로 나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감독정치 교회를 넓은 의미에서는 교회 정치 제도 중에 필요한 한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각 교회는 목회자들이 그 교회를 책임지되 감독으로서 전권을 가지고 교회를 총괄합니다. 그리고 지방에서는 그 지방 교회들을 감독하는 총괄 직책이 있고 전국적으로는 전국교회를 총괄하는 감독이 있습니다. 요는 직책의 이름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감리교는 교회를 책임지는 지도자 한 사람에게 교회든 지방이든 전국교회든 다 맡긴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교인들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순종하고 따르는 것뿐입니다.

감리교는 세상 정치로 비교한다면 총통제 정도입니다. 천주교처럼 왕정국가의 절대권은 갖지 못하지만 교회의 감독은 일반 민주사회에서 분권된 권력을 거의 독점하고 나가는 교회입니다.(행20:28)

▪ 장로정치

장로교는 설교 전문가인 목회자와 정치 전문가로서 교인이 대표로 뽑은 장로들이 교회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체제입니다(딤전5:17). 장로교는 세상 정치로 말하면 의회민주주의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의 의회민주주의가 장로교 정치를 그대로 베껴서 세상 식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정도입니다.

교회의 모든 결정과 방향은 일반 교인들이 전문가 몇 명을 선출하여 그들에게 맡겨놓고 따라가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장로교 정치는 만일 선출하여 맡긴 이들이 일을 잘하면 큰 탈이 없지만 만일 선출된 이들이 일을 낸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합니다.(마27:12)

이 제도는 천주교나 감리교처럼 한 사람에게 교회 전체를 맡기면 너무 불안하다는 단점을 보완했고, 또 회중정치라 하는 침례교가 자칫 중구난방으로 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일인의 독재와 전체의 무질서나 무기력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생각에서 시행되었습니다.

독재국가의 일인 지배가 그 일인의 통치자에게 국가 운명 전부를 맡기는 것은 너무 불안하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고, 또 직접민주주의가 되면 통제 불능의 무정부상태가 될 수 있는 단점을 고려하여 소수의 귀족들에게 국가를 맡기는 귀족정치로 볼 수 있습니다.

▪ 회중정치

침례교 정치로 잘 알려진 회중정치는 교인인 회중 전체가 직접민주주의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앙과 자기의 권리는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맡기거나 누가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라는 과정에서 특별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일반적으로만 말한다면 가장 성경에 맞는 형태입니다.

목회자는 교인 중 한 사람일 뿐이고, 교인 전체가 맡겨서 목회를 하는 것이 회중교회체제입니다. 어느 교인이 다른 교인보다 나은 직분이나 앞서 있는 신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교회끼리의 관계에서도 모든 교회는 그 위치한 지방과 교회의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교회이기 때문에 어느 교회가 다른 교회를 지시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또 어느 교회 단체가 그 소속 교회를 제재하거나 통제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개교회자유주의의 원칙을 가진 교회체제입니다.(요일2:27)

▪ 공회정치

공회체제는 그 출발은 장로교이고 그 결과적 모습은 침례교의 회중정치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지향하는 바는 감리교의 감독정치의 권위가 각 교회에 존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가능하다면 천주교처럼 한 개인에게 절대권과 고정적 권위가 부착되는 것만 아니라면 천주교와 같은 신정국가가 각 교회에 임시 있기를 노력합니다.

따라서 다른 4개의 교회체제는 서로 반대적 입장이거나 양립할 수 없는 본질을 가졌지만, 공회의 교회체제는 앞서 설명한 4개 교회체제 전체를 품고 있습니다. 신정일치와 목회자의 전권과 교회의 대표제 운영과 교인 전체의 개인적 권위를 상호 대립적이거나 양립할 수 없는 체제로 보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자라가는 형편에 따라 어떤 과정에서 어떤 면이 더 강조되고 어떤 면이 생략되며 또 어떤 요소들이 결합되어 적용되어야 하느냐는 시각에서 품을 수 있는 것이 공회 체제입니다.

4개의 교회 체제들이 서로 크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다 나름대로 그 교회 체제를 처음 만들고 시행할 때는 성경의 어떤 면이든 한 면을 읽고 그 면이 필요해서 채택한 것입니다. 성경과 전혀 상관없이 제안되고 시행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일면만 본 것이 아쉽지 그 4가지 교회체제 자체가 성경에 의하여 전면 부인될 사안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각 교회체제가 성경의 어떤 면을 어떤 상황에서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다 일면의 장점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또한 그 반대 면은 성경을 오해했거나 아니면 적용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공회체제는 성경을 가장 포괄적이면서 전면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요약한 교회체제입니다.

교회란 감독정치의 권위로 유지되는 것이 분명히 옳으며 이를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공회체제는 교회의 목회자에게 이 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법이나 제도를 통해 무조건 제공하지는 않지만 정상대로 교회가 운영된다면 목회자는 하나님의 점8로 그 교회를 맡는 직책입니다(행20:28). 또 교회가 어린 신앙을 기르고 또 앞서 기른 사람을 통해 그다음 교인을 길러나가는 방편과 평상시 교회의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장로교제도가 필요한 면이 있습니다.(벧전5:1-5)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개교회자유주의의 본질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고 목회자의 감리교적 권위나 평상의 교회 운영을 장로교적으로 한다 해도 늘 모든 교인이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개인의 신앙자유와 개교회의 신앙자유는 교회 정치의 기본바탕입니다.(요일2:27

공회체제는 성경 전체를 통해 이런 면을 확인하고 현실 교회에서 어느 시대에서나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몇 가지 간단한 원칙을 통해 지상교회의 체제와 운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뒤에 다른 장에서 집중적으로 다시 설명하고 여기서는 교회론의 상식에 해당될 정도의 가장 평범한 교회체제인 4개의 교회체제와 관련하여 서론적인 면만 소개했습니다. 참고로 교회사에서 ‘공회’의 첫 개념은 주로 사도행전 15장의 모임입니다.(행15:1-2)

② 교회 형태의 비교와 활용

▪ 교회의 발전 과정에 따른 4가지 형태의 적용

위에서 설명한 5가지 형태의 교회체제는 한 시대에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각 교회 형태는 수평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지상교회는 완전을 향해 자라가고 고쳐가는 시대이므로 보다 나은 것이 있고 보다 못한 것은 있을지라도 완전한 상태를 가진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5가지 형태의 교회체제는 서로 장단점을 비교해 볼 수도 있고 또 전체면을 두고 각 체제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겨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5가지 체제 중에서 일반교회들이 잘 알고 있는 앞의 4가지 교회체제를 가지고 어느 한 교회가 발전하는 과정에 따라 필요할 때마다 다른 형태를 적용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척초기에는 목회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감리교 체제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습니다.(행20:28)

그러나 교회가 든든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에서는 교인들 중에서 신앙이 앞서 나가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하여 뒤따르는 이들을 신앙으로 더욱 잘 지도하기 위해 장로교체제를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장로들이 교회를 앞서 섬기고 충성하게 되면 목회자 단독이 앞서 나갈 때보다 교인 중 신앙에 앞선 이들이 교회의 전면에서 책임과 충성을 지게 될 때 교회는 교회 성장에 중심이 될 많은 일꾼들을 양성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벧전5:1-5)

이제 교인 중 신앙에 앞서 있는 이들을 집중해서 양성한 후 그들을 통해서 신앙 어린 많은 교인들이 앞서 나가는 이들을 따라 우후죽순 신앙의 발전을 하게 되면 그들이 각자 자기에게 특별히 주어진 장점이나 재능을 가지고 여러 의견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 때가 되면 교회의 전반적 신앙은 절정기를 향해 자라게 되는데 이 신앙성장과 함께 교회 안에는 다양한 제안과 주장이 쏟아지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때에 초기 목회자 혼자 교회 모든 일을 결정하고 운영하듯이 하거나 아니면 교인의 대표 격인 장로님과 목사님들이 교인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임받은 권한으로 소수결의를 하게 되면, 교회는 그 보유하게 된 수많은 장점과 재능과 주장을 상호 충돌시키고 결국 자체 투쟁으로 돌아서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절정기를 향해 자라나가는 단계에서는 침례교의 개교회주의 체제를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미 지시나 통제나 일방적 결정이 교회 안에서 실제로 득이 되기 어려운 상황을 반전시켜 오히려 교회는 소속 교인들 전체로부터 제시되는 의견을 충돌이나 투쟁으로 나가게 하지 않고 자연스런 조화를 통해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통합된 힘은 교회가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의 힘만으로 나갈 수 없는 그 이상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특수한 은혜를 받아 혹 목회자의 권위나 시대적인 상황이 허락된다면, 비록 일시겠지만 마치 천주교 교황제도가 원래 순수한 목적과 동기로 목표했던 이상세계를 실현해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 제도가 역사에서 보여준 그 모든 단점과 위험성을 제거하고 장점만으로 교회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교회는 일시적으로 마치 하늘나라에 먼저 입성한 체험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교회의 체제 4가지와 공회체제의 비교

교회가 초기 목회자의 전적 수고가 필요한 시기에 침례교의 완전 개교회주의를 적용시키면 초기의 발전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고, 소속 교인 전부가 원숙한 신앙지식과 견해를 가진 상태에서 초기처럼 감리교의 감독정치로 목회자 단독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면 교인들의 여러 장점이 묻히고 또 교인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만이 결국 교회를 공중분해시키는 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시도 때도 없이 장로교의 간부 정치로만 일관하게 되면 교회 초기나 절정기에 각각 절반씩의 불편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5가지 교회체제 중 앞에 말씀드린 4가지 교회체제는 무조건 한 시대 꼭 같은 교회에게 4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체제로만 비교하고 선호를 따질 것이 아니라 한 교회의 변하는 환경과 신앙형편을 보며 4가지 형태 중 적절한 교회체제를 그때마다 적용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시하는 5번째 교회 체제인 공회체제는 침례교와 그 모습이 가장 유사하지만 공회체제는 직접 비교할 때는 다른 4가지 교회 체제에 대하여 원만한 장점을 고루 다 갖추고 있으므로 서열 1위에 올려놓을 수 있고, 또한 한 교회의 발전 과정에 따라 적용할 때는 다른 4개의 교회체제와 달리 그때마다 따로 적용하지 않고 이 공회 체제 하나로 교회의 전과정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체제로서는 여기서 공회 체제를 교회론의 가장 정확한 현실모습으로 제시합니다.

이제 공회체제의 교회에 대하여는 따로 그 중요한 방향 몇 가지를 예로 들며 살펴보겠습니다.



4. 공회체제

백영희 신앙노선에 의하여 1960년대부터 나타난 교회체제를 공회체제라고 합니다. 보다 공식명칭으로 사용할 때는 ‘총공회’체제라고 하는데 그 운영원칙은 성경법을 실제 현실 교회의 정치기준으로 삼고, 정치형태는 개교회주의를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1) 공회체제의 3대 원칙

① 성경법유일주의

성경만으로 교회운영의 법을 삼고 그 외 각 교단이나 교파가 헌법이나 여러 가지 형태로 가지고 있는 각종 명문법규정들을 하나의 참고로만 삼지 ‘법’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막7:9-13).

▪ 개혁적 보수주의

교회의 전통과 제도들이 그 출발 단계에서는 그 당시 형편에서 성경에 가장 정확하게 맞추어졌을 것이므로 특별한 문제점이 없으면 최대한 존중하고 보수해야 합니다.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을 시대 유형 때문에 공연히 바꾸는 일은 그 변경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변경을 좋아하는 그 성향이 앞으로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바꾸어 교회를 침노할 위험성이 있고 또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을 바꾸다 보면 반드시 바꾸어서 안 될 것이 바뀌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고전11:2, 엡4:14)

한편, 성경을 기준으로 비추어 꼭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서슴없이 수정하고, 성경에 맞는 것을 추진할 때 인간의 제도와 관습에 막혀 못할 것이 없으므로 항상 개혁적 모습을 띄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적 교회체제는 항상 보수주의와 개혁주의가 적절하게 혼용되며 지킬 것은 죽어도 지키고 또 고칠 것은 항상 고쳐나가는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개혁이 없고 항상 이전 것만 고집하게 되면 신앙이 박제화로 나가게 되고 심지어 천주교에서 보는 것처럼 외식교회가 됩니다(마23:1-39). 반대로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고 고치고 바꾸게 되면 교회는 당장에 속화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생명은 그 생명의 기본 요소는 항상 보유한 채 세월과 환경에 따라 자라가고 또 대처하는 자생력을 가지게 됩니다.(대하34:1-33)

▪ 초대교회기준

교회의 가장 정확한 모습은 성경이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로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 어느 교회라 해도 그 교회는 초대교회를 통해 보수할 것과 또 개혁할 것을 찾아 그 교회가 나갈 기본방향으로 삼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멀어진 만큼 성경에서 멀어진 교회이고 초대교회의 모습에 가까운 만큼 성경에 가까운 교회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실천신학에서 살펴야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초대교회는 제도와 모습과 행동과 그 신앙이 단순했습니다. 인간들이 성경으로부터 떨어져 바벨큄; 쌓는 수고로 공연히 교회를 복잡하게 만들어 오늘의 교회 모습은 초대교회 모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 면은 교회의 특성에서도 살펴본 대로입니다. 초대교회의 전심전력은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성령이 함께 하여 각 교회에 추가로 맡길 일을 배정하고 인간의 지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성령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교회라고 했습니다.(행2:42)

▪ 복음운동 유익

교회를 성경 원칙과 초대교회 모습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해도 여전히 현실 상황은 성경과 초대교회 모습으로 참고를 할 수 없는 불분명한 문제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 경우 교회는 자타의 구원운동에 유익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은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그 해석에 있어 읽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한도 없이 나올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교회론에 관한 한 눈에 보이는 표준이라 할 만하지만 2천년 전의 시대상황을 역시 최소한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 해석의 여지가 넓고 또 세부적인 문제는 참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애매한 문제는 전부 구원운동 또는 복음운동의 유익성으로 기준을 잡는다면 자세하게 기준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복음운동이나 구원운동이라는 표현은 흔히 새교인을 출석시키는 것이라고 오늘 교회가 생각하여 교인출석을 위해서는 성경이 금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운동이나 구원운동은 기본구원으로만 그 기준을 삼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동입니다. 이 복음운동이나 구원운동이라는 의미는 기본구원뿐 아니고 건설구원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말씀대로 사람을 전도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길러가는 일에 어떤 것이 유익하겠느냐는 기준이 바로 각 시대 각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갈5:14)

각 교회가 자기 현실에서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기만의 현안을 두고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적이고 구원적이냐는 것을 판단하는 데에는 결국 성경도 초대교회의 모습도 크게 참고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그 교회가 평소 붙들고 있는 진리와 영감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결정은 흔히 훗날 돌이켜 보면 시행착오가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당시는 최선을 다해 결정을 내리고 또 훗날에는 뒤돌아보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단기간에 온전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 현실 교회와 적용

공회체제의 첫 원칙인 성경법주의를 현실 교회체제에 적용한다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성경법유일주의’일 것입니다. 현재 일반 교회들의 교회 설립과 체제 및 운영은 대개 성경 외에 교회 헌법을 제정하여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어떻게 붙여지든 참고로서가 아니고 법으로 존재하는 것은 성경 외에 부인되어야 합니다. 즉 ‘교회헌법배제주의’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성경 외에 규격화되고 형식화 된 것도 전부 배제되어야 합니다. 신약교회는 구약과 달리 그 외형을 외형 그대로 존속시키며 지켜야 할 것은 없습니다. 법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세월 속에 고착된 하나의 형식은 법이 아니면서 법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형식 배제주의’가 적용되어야 합니다.(막7:1-13).

② 개교회신앙자유주의 : 전원일치의 결의제도

교회의 운영은 각 개인의 신앙자유와 각 교회의 교회단위자유성이 기본입니다. 이 면을 실제로 확보해주는 것은 교회의 모든 결의를 전원일치로 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전원일치가 된 것만 교회가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가진다면 교회와 개인의 신앙자유성은 저절로 확보됩니다(요17:21, 행4:32, 엡4:13).

▪ 신앙의 자유성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의 원래 본질은 자유성입니다. 이 자유성 때문에 6천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의 평생이라는 세월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자유성을 가진 존재가 스스로 깨닫고 배우고 고쳐가면서 결국 자원하므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히5:8).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락과 여러 시행착오를 가집니다(마18:22).

만일 택자에게 자유성이라는 본질을 하나 제거한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천국만 만들어놓고 천국에서 출발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계속 살아가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성을 주어 자유성을 가지고 자원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을 만들되 하나님의 신격을 상대하는 인격을 만들려고 하니까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는 과정까지 두신 것입니다(히5:8).

따라서 교회는 그 어떤 형태로 운영되더라도 교인 각자의 신앙 자유와 개 교회의 교회자유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교회로서의 의미가 상실됩니다. 개인 위에 개인의 신앙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교회가 되어서 안 되는 것처럼 교회도 한 교회의 신앙을 상부 기관이나 주변 연합 세력이 통제하거나 강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개교회 자유가 옳고, 개교회 자유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신앙은 근본적으로 자유성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빌2:1-3).

▪ 전원일치의 결정

교회가 소속 교인 각자를 하나님 앞에 개인교회로 인정하고 또 여러 교인들이 함께 신앙생활 하는 어떤 개별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개교회로 인정되려면, 가장 먼저 확보되어야 제도는 전원일치의 결의법입니다(행15:26). 전원일치가 아닌 다수결의 방법을 민주제도라 하여 세상을 본받아 무조건 신사적이고 좋은 제도로 보는 것은 성경을 오해했습니다(출23:2, 민14:1-30).

교회의 결정은 소속 교인 전체가 자기 신앙자유를 가지고 찬성할 때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교단이나 교파 등 교회들의 연합체가 결정을 할 때도 소속 교회 각자가 전원일치로 찬성할 때만 결의를 해야 합니다. 현재 전원일치법의 결의 제도는 교회사에서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교회의 모든 결의는 일반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전원일치라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결국 교회는 신앙자유라는 근본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회체제는 신앙의 자유성에 근거를 두는 개교회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결의는 성경에 근거를 둔 ‘진리의결의 원칙’과 또 소속 전원이 찬성하는 ‘전원의결의 원칙’을 개교회주의의 본질로 삼고 있습니다. 회중교회로 분류되는 침례교 등도 교회의 자유성은 인정하고 그래서 개교회주의라고 하지만 그 개교회주의를 뒷받침하는 전원일치제에 대한 인식이 바로 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회체제는 실질적인 개교회주의라 할 수 있고, 회중교회는 개교회주의의 총론만 이해한 정도라고 평가하겠습니다.(행21:25, 대하30:23)

▪ 복음의 순수성

개교회주의는 어떤 교회체제와 비교해도 장점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역사에 나타난 어떤 교회 체제와 비교해도 성경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교회주의의 결정적 단점은 교회 운영의 현장을 현실적으로 고려한다면 과연 그 제도로 교회가 운영되겠느냐는 점이 지적됩니다.

즉, 개교회주의란 성경대로 살아가려는 원칙론에 철저한 건전한 교회에게는 가장 좋은 제도이지만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상적교회상이지 현실교회에 실제 적용한다면 과연 그 제도로 교회가 운영되겠느냐는 반론을 받게 됩니다. 혹 교회로서 존재한다 해도 복음운동의 효율성에서 본다면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교회란 성과나 결과를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 집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교회의 교인 숫자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설립 목적이라면 교회보다 더 회원을 더 많이 가진 곳이 교회보다 나은 단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 교회의 모든 사건처리가 신속성과 편리성을 추구할 것 같으면 이는 경제단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뒤쳐진 단체입니다. 교회가 교회인 것은 회원의 수나 그 사건 처리의 신속 편리성에 있지 않고 교회가 교회인 것은 성경대로 바로 고쳐 나가느냐는 정확성에 있습니다.

복음대로 순수하게 시작했느냐, 복음대로 순수하게 진행되고 있느냐, 복음대로 순수하게 고쳐 만들어 가느냐는 것만이 교회를 확인하는 방법이고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잊지 않는다면 교회는 한 사람의 이견에 대하여도 그 속에서 교회 전체가 혹 놓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는지 살펴봐야 하고, 또 비록 그 한 사람의 의견이 틀렸다 해도 그가 자원하여 자기를 고치고 따라 오게 하는 것이 교회의 신앙자유이며 하나님께서 오늘 세상이라는 과정을 교회에게 주신 이유이므로 교회는 복음 순수주의에 철저해야 합니다.

따라서 개교회주의가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신앙의 자유성은 전원일치의 결의제도로 뒷받침 되어야 하고, 전원일치의 결의는 효율성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복음의 순수성이 작업의 능률성이나 성과성보다 먼저 지킬 원칙임을 바로 안다면 개교회주의는 성경적인 교회체제 원칙입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좁은 범위에서 본다면 인간 생각에 이 원칙이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넓은 시야로 다시 살펴본다면 이 원칙이 지켜지는 교회라야 진정 효율적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삼상16:7)

③ 교권배제주의

▪ 인간권위의 배제원칙

교회의 권위는 성경입니다. 성경에 옳은 발언이면 그 사람의 발언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발언이 성경에 더 가깝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성경에 옳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권위도 성경을 잘 아는 그 사람의 권위가 아니고 그 사람의 발언 속에 성경의 권위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권위있는 것입니다(행4:19). 주일학생의 발언이라도 또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의 발언이라도 그가 성경에 바로 되었으면 그의 발언은 주일학생이나 초신자라는 신분에 의하여 무시되지 않아야 합니다(눅18:16, 딤전4:12). 나귀가 입을 벌려 발언을 했더라도 그 발언 속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으면 나귀가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귀의 발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절대성의 권위를 가집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나귀에게 복종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으나 실은 나귀의 발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복점; 해야 합니다(벧후2:16).

평생을 말씀대로 바로 가르친 사람이라 해도 마지막 임종 때는 그가 평소 증거한 말씀과 격리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사람의 권위는 반드시 말씀의 권위에서 찾아야 하고 그 사람의 교회 내 연륜이나 실적이나 다른 인간적 평가는 말씀의 권위와 상관없는 인인관계에서, 말 그대로 인간적 인사에 그쳐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교회는 말씀의 권위 외에 인간권위가 만들어지게 됩니다(삼상3:1-21).

가라지는 뽑으려 해도 덧나는 것인데 만일 인본이라는 가라지를 본격적으로 뿌리기 시작하면 그 밭은 쑥밭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사10:15, 렘1:10, 벧전5:3, 민16:32)

▪ 교권직 비상존주의

성경권위만 교회의 유일한 권위로 확정짓는다면, 자동적으로 교회는 교회체제에서 고정적인 직책이나 권한을 부여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나 총회장이라는 자리에 항상 주어지는 권리나 권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또 직책에 관계없이 어느 한 개인에 대하여 항상 그에게 주어지는 권리나 권위를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어디까지 이르렀다 해도 넘어질 수 있고, 또 평생을 충성하다 마지막 순간 한번의 타락으로 그가 쌓은 평생의 건설보다 더 큰 파괴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내에서 말씀 자체에서 주어지는 권위 외에 인간이 만든 제도나 어떤 인물에게 권위를 주게 되면 악령이 그 제도나 직책이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게 되고, 그것만 점령하면 교회의 나머지 부분은 자동적으로 악령이 접수하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 외에 인간과 제도나 직책에 권위를 준다면 그것을 악령의 시험거리로 만드는 결과가 된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합니다.(삼상16:14-15, 마27:20)

▪ 현실교회와 적용

현재 일반 교회 체제에서는 목회자, 장로, 집사, 입교인, 항구직, 임시직 등 여러 직책과 신분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가 자기 교회의 복음 운동을 위해 성경에 금지된 것이 아니면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항을 교회가 항상 지켜야 하고 또 반드시 지켜야 할 강제규정으로 운용하고 있다면 이는 잘못입니다.

설교권이라는 것이 어느 직책에게는 항상 주어진다거나 어떤 신분에게는 항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 내의 권위를 직책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설교권이 있는 직책을 가진 사람에게 설교할 자격이 없어질 때도 있고 그 직책에 있지 않는 사람이 설교할 자격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교회의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미 성경법원칙에서 설명을 했지만 여기서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특히 교권이 발생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교회의 인사권, 행정권, 회계처리권, 권징권 등 모든 권한과 권위는 오직 성경에 옳으냐 틀렸느냐는 것에 기준을 두어야 하지 어떤 제도나 직책이나 어느 한 개인에게 어떤 권위를 고정적으로 허락하는 것은 성경에 틀렸습니다. 또한 이 교권 관련 부분은 성경에 어긋나는 다른 행동과 달리 교회 내의 권한 행사 또는 권위 사용으로 인하여 교회 전체를 파탄시키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회체제는 교권직배제원칙에 의하여, 교회 위에 어떤 상존의 교권직을 두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그 이름이 총회장이라고 표현되는데 굳이 총회장이 아니라 해도 어느 기간 동안 어느 직책이나 사람이 계속해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다면 그 사람이 도중에 변질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먼저 있어야 하는데 사람치고는 그렇게 보장할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총회장 밑에 있는 총무나 어느 위원회가 그런 권위를 대신 부여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복잡하게 변하는 지상 교회의 여러 형편을 여기서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원칙적으로 ‘교권’이 지속될 수 있는 제도나 직책이나 인물은 이미 성경을 떠나 그 자체에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공회체제와 4가지 교회체제의 비교

① 공회체제와 천주교

천주교는 천주교라는 단체와 그 조직체계를 통해서 세상과 교회 전체의 통합 운영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진리를 인간과 인간의 제도가 대신하겠다고 나선 것이므로 이루어질 리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루어져서 안 되는 일이 중세 1천여년 기간 동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들의 체제가 그들 기준으로 성공했던 바로 그 시기가 그들에게 영원토록 가장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이 땅 위에서는 반대로 알고 갔을 뿐입니다.

공회체제는 성경에 옳게 지도하는 지도자가 있고 또 그를 따르는 이들이 각자 자기 신앙양심으로 깨닫고 좋아서 순종하게 된다면, 그런 상황 하에서는 교회나 지도자의 권위가 마치 예수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보며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그림자로 보고 있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시에서 일시 그런 상황이 있었고 또 역사에 아주 간간히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공회 체제는 되든 안 되든 교회체제는 그런 소망 속에 현재를 고치고 바른 방법으로 그리 되어지도록 안내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주교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으로 천주교가 확보했던 그런 권위를 오늘 교회가 이 세상에서 늘 소망하고 마련하기를 노력하자는 체제입니다.

② 공회체제와 감리교

감리교는 교회를 책임진 목회자가 교회의 모든 신령한 면을 총촬하여 감독의 지위에서 권위있게 목회를 하도록 하는 교회체제입니다. 감리교의 단점은 만일 사무엘 같이 신령한 교인이 있다면 감리교의 감독정치에 눌려 그 뜻을 펼 수 없게 됩니다. 교인은 따라만 가고 목회자는 앞에서 감독의 직책으로 그 교인들의 신앙과 영생을 책임지라는 것인데, 성경 역사나 교회 역사에서 교회의 외형적 감독직, 최고 책임자의 직책에 있는 이들이 그 직책에 맞는 신앙으로 유지된 경우는 적습니다.

공회체제는 목회자가 바로 나갈 때는 제한 없이 감리교의 감독직 이상의 권위로 얼마든지 앞서 교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다윗처럼 일시 타락을 하든지 아니면 아합이나 사울같이 탈선하게 될 때는 교회체제에 막혀서 교인이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옳고 바르게 나갈 때는 하나님의 사자로 대하고 그 목회자가 잘못 나갈 때는 교인이 즉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목회자를 폐하든 아니면 고치도록 만들든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그 직책에 매이지 않고 바른 뜻을 찾도록 하고 있습니다.

③ 공회체제와 장로교

장로교체제는 건전한 지도자 다수가 상호 역할을 분담하고 견제하면 좋은 교회로 자라갈 수 있다고 보고 귀족정치 또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교회 대표들이 특별한 경우 그 원 뜻에 따라 교회를 잘 인도할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대표들끼리 표대결과 세대결로 교회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 세상 국가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민주사회의 감추어진 정치권을 보면 바로 그 내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회체제는 대표자가 한 사람이든 다수든 자신의 구원의 최종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일임해서 맡겨두는 일은 잘못된 신앙노선임을 강조합니다. 혹 나보다 신앙 있는 사람이 나보다 나은 실력을 항상 갖추고 있다 해도, 여전히 자기 입으로 먹어본 것과 남이 항상 대신 먹어주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장로교가 과거 신앙고백만 오늘까지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 그 신앙고백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은 성장이 멈춘 앉은뱅이 불구상태이고 또한 장로교의 헌법에 의한 법치주의 정치로 나가는 것은 교회를 단체로 속화시키되 합법적으로 속화시키고 만일 이를 반대하면 불법으로 규정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은 장로교의 근본 정치원리의 첫째 둘째 원칙은 ‘신앙자유’와 ‘교회자유’인데, 장로교의 다른 헌법과 규칙들이 자신들의 근본 정치원리에조차 어긋나 있습니다. 공회체제는 장로교의 근본정치 원리를 그 본래 원칙대로 바로 구현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장로교는 공회체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④ 공회체제와 침례교

침례교는 회중정치를 채택하는 곳입니다. 개교회주의라는 형태까지 취한 것은 감리교나 장로교에 비하여 가장 성경적인 모습에 근접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례교의 개교회주의는 그 개교회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바로 갖지 못했다는 면이 있습니다. 각종 침례교단들은 한결같이 침례교를 가장 민주적 운영이라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잘 확보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은 세상 민주제도나 민주정치는 교회와 가장 반대되는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세상의 민주제도와 교회의 개교회주의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보았다면 이는 공회의 개교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교회체제입니다. 공회는 전원일치의 의결제도와 성경법 원칙을 개교회주의를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제도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결의법을 전원일치로까지 확보한 침례교가 있다면 대체로 공회체제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교회의 직책

① 교회직책의 특징

▪ 목회직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행6:1-6 ‘...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교회의 직책을 두고 일반적으로 목사는 설교를 주로 맡고, 장로는 교회 정치를 주로 맡으며(딤전5:17), 집사는 살림살이를 맡는다고 분류하고 있습니다(행6:1-6). 물론 남보다 그 면에 특별한 실력을 가질 수가 있으면 그런 점은 장점이지 단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책은 어떤 형태든지 결국 ‘목회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 교인을 길러가는 목자의 역할이 교회의 모든 직책이 가져야 하는 본질입니다. 신앙어린 사람을 가르치는 목사라야 하고 신앙어린 사람을 보살피는 장로라야 하고 신앙어린 사람을 위해 교회 살림을 사용하는 집사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직책은 업무 분담이 기계적으로 나누어져서는 안 됩니다. 집사가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목사가 교회 살림의 세부사항을 실제 알아야 하고 장로가 설교와 어린 학생의 신앙을 심방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장로는 세상조직의 감사실 같고 목사는 기관단체장 같고 집사는 행정관리들 같은 모습을 띤다면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요21:15-17)

▪ 희생직

교회의 모든 직책은 주님이 우리 위해 죽으심같이 자기들도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 죽을 각오로 맡아야 할 것입니다(마16:24, 요10:11). 일반 신앙으로는 그런 순교적 차원에 이르지 못할 것인데, 그렇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극히 작은 것부터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눅16:10).

현재 교회의 직책은 이미 세상 욕심을 기준으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교회가 복음의 초기 선교단계를 지나고 그 사회에서 안정되기 시작하면 예외 없이 교회의 모든 직책은 명예와 이권과 자기만족 등을 위해 욕심을 낼만한 자리로 변질됩니다. 그래서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내어놓기 위한 교회직분이 되지 않고 나를 위해 확보해야 할 직분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각종 직책을 두고 내분이나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벌써 교회가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증거입니다.

진정 교회의 직책은 자기희생과 십자가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직책을 매는 이들에게 주변에서는 감사히 생각해야 하고 본인은 자기 본능이 그 자리를 회피하려 하나 주님의 시선이 두려워 순종하는 내면이 있어야 합니다. 혹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직책을 가졌다면 얼른 회개하여 자신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 신앙직

교회의 직분을 맡는 실력은 첫째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없으나 세상에서 지도력을 갖추었다 해서 교회 내에서 흔히 고위직을 쉽게 맡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를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그 사람이 가진 세상에 압도되고 그 세상을 가치있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교회의 인물 평가 기준은 말할 것 없이 신앙입니다. 신앙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신앙 있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며 신앙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는 인재입니다. 물론 신앙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외부 사람이 평가하기에 어려움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비록 신앙이 사람의 내면에 들어 있는 것이지만 외부 다른 사람이 확인하기에 불가능할 만큼 숨겨 두지는 않았습니다.(삼상16:7)

교회는 신앙을 생명으로 알고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신앙으로 앞선 사람이 신앙으로 따라 오는 사람을 지도하도록 모이게 한 곳입니다. 혹 교회가 예배당 건축과 같이 세상에 속한 업무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도 신앙이 있는 사람이 기본 방향과 성격을 결정해야 하고, 세상일에 속한 실무적인 것은 그 면에 실력 있는 사람이 신앙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 일을 해야 합니다.(신16:19, 갈2:6)

▪ 건덕직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운다는 말을 교회에서는 건덕이라고 흔히 사용합니다. 교회의 모든 직책은 그 사람의 신앙 실상도 봐야 하겠으나 일반 사람들의 시선에 덕이 되는 면을 유지해야 합니다. 덕은 하나님과 관계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누가 어떤 죄를 어떻게 지었으며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는 사람이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감추어져 있는 죄는 직분과 연관 지을 수가 없고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은밀하게 해결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만일 일반 사람들이 알도록 드러난 죄가 있을 때는 교회 내에서 직책문제를 조심해서 맡겨야 합니다. 교회의 직책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신앙관계 때문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표시가 나게 된 죄는 그 직책과 연관을 지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각 교회는 의논해야 합니다.

더 큰 죄가 있다 해도 드러나지 않았다면 직책과 연관을 시킬 수 없고, 더 작은 죄라도 사람들에게 확연하게 드러났다면 직책과 연관을 지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죄를 가지고 그렇게 따져야 하느냐는 것은 교회와 그 사회의 인식을 중요하게 참고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해 둘 것은, 교회 직책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필요해서 목회와 희생의 성격으로 임명하는 것이므로 그 직책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사람의 눈에 덕 되지 않는 면이 있는 사람은 이런 목회와 희생의 직책이라는 성격 때문에 제재가 필요한 것입니다.(벧전5:3, 고전14:12, 딤전3:1-13)

▪ 임시직

보통 교회의 직책 중에서 안수를 하고 임명을 하게 되는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 직책 등은 교회 내에서 항존직이라고 분류합니다. 한번 임명을 받았으면 평생 그대로 계속되는 직책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비하여 조사나 권찰이나 반사 등은 임시직책으로 교회가 세울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으며 세운다 해도 1년 기간 등으로 기한을 정하게 됩니다. 소위 임시직이라고 분류합니다.

그러나 교회론에서 원칙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직책 자체는 교회 내에서 꼭 필요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번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은 다시 변경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성경을 곡해한 것입니다. 어느 직책은 항존직이고 어느 직책은 임시직이라고 분류하는 것부터가 성경적이지를 않습니다.

신약교회에서는 하나님 앞에 모든 직책이 전부 임시직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과 달리 신약은 하나님께서 누구 한 사람을 붙들고 계속해서 한 직책을 맡길지 다른 직책을 맡길지 어떻게 변경시킬지 알 수 없습니다. 구약은 형식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길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한 번 제사장에 임명되면 끝까지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 것이 원칙이지만 신약은 반대입니다.

참고로, 앞에서 교회 직분의 건덕면과 임시직이라는 성격을 고려할 때 교회는 직책에 대하여 시무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항상 각 직책의 유지 여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직이므로 목회 차원의 결과가 있었는지 평가할 수 있으며, 희생직이므로 그 직책 평가에서 낙제를 당해도 개인적으로 회개하여 유익을 볼지언정 본인은 짐을 벗게 되는 것이니 섭섭할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직책은 임시직의 성격이 있으므로 신약교회에서는 그 사람의 신앙이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직책을 평가하는 일은 오히려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남을 보는 지혜와 능력은 자기가 자기를 보는 능력보다 탁월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직책은 건덕직이므로 사람의 평가를 참고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고전10:12, 딤전3:1-13)

▪ 평생직

신약교회의 모든 직책은 주시는 은혜와 자기 신앙 형편의 변화 때문에 항상 변동이 가능한 직책이지만, 동시에 하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한 번 맡은 직책은 가능하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평생직의 사명으로 맡아야 합니다. 그 직책에 집중하는 정도도 ‘죽기까지’라야 하지만, 기간적으로도 실제 ‘죽는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 신앙의 원칙입니다.

주일학교를 맡은 반사라 해서 나이가 많아지면 못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심방을 필수로 해야 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면 몰라도 단순히 나이 때문에 은퇴하는 일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젊어서는 힘으로 했고 나이가 들면 그동안 쌓은 신앙실력으로 육체의 노쇠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신앙은 성장성이 있고 신약의 복음운동은 구약과 달리 주로 육체보다는 내면의 신령한 면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반 교회에서 아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은퇴제도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또 오래 동안 수고한 사람에게 휴식의 기회를 주며 또한 노쇠한 육체에게 더 이상 교회의 직책을 맡기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발상입니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선배가 물러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사역자가 모자라서 찾고 있는 심정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은 주로 인간의 세상 욕심 기준으로 탐나는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준다는 세상발상입니다. 복음운동에는 한 일꾼이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꾼 하나가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복음운동이 힘을 얻게 되는 유기체입니다. 또한 수고한 이에게 휴식을 준다는 것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십자가에 대한 기초개념도 없는 생각입니다.(계2:10, 잠16:31)

물론 육체로 섬겨야 하는 레위인들이나 군인에 나가야 하는 연령은 제한이 있었지만 구약에도 육체로 섬기는 일에 해당되지 않은 것은 은퇴가 없습니다(민8:24-26, 신34:7).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후4:16 말씀대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에 해당되어야 합니다.

② 교회직책과 관련된 몇 가지 논란

▪ 교회직책의 자격 제한

교회직책은 현재 여러 자격 제한이 많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 졸업과정과 시험규정 그리고 연령규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한이 있고, 장로나 집사 등 모든 직책에 세례 받은 후 몇 년 등 제반 규정들이 교회별로 부과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들은 거의 성경적 근거는 없이 추측과 희망사항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이권 충돌을 조정한 결과로 작성됩니다. 물론 그 동기는 교회와 복음을 위한 것이지만 그런 규정들은 교회의 형편과 상대방에 따라 늘 변하기 마련인데 이런 규정을 고정시켜 버리면 복음에 유익보다는 복음에 손해 보는 면이 많아지게 됩니다.

현재 교회들마다 직책을 임명하는데 관련 있는 규정들은 거의 다 강제규정입니다. 이런 규정들은 전부 하나의 참고 규정들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교회가 이런 직책에 사람을 임명할 때는 이런 기준과 이런 측면을 참고하겠다는 정도로 시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혹시 강행법규로 정하지 않으면 교회가 혼란스럽고 자의적 해석으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반론할 수 있겠습니다. 강제규정으로 정한다고 교회의 직책에 관련된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규정에 형식적으로 맞는 사람은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므로 오히려 부적격 인물이 합법적으로 임명되는 길만 열어놓게 됩니다. 더구나 이런 임명 규정이 참고사항이므로 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교회가 있다면 이미 그 교회는 분규가 시작된 교회입니다.(마15:1-9, 골2:8)

결론적으로 교회의 직책 관련 규정은 다른 모든 규정과 함께 참고사항으로 제시되는 정도에서 그쳐야 옳고, 꼭 성경에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으로 발표하되 원칙선포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옳습니다.

▪ 교회직책의 여성 제한

앞서 설명한 교회직책의 규정에 관련된 사안 중에 하나이지만 여자들의 교회 내 직책 문제는 교계적으로 급속히 변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또 논란이 되고 있어 예를 들겠습니다.

여성의 교회 직책 제한 문제는 보수교계일수록 금하거나 제한하는 방향이고 진보교계에서는 남녀평등의 원칙으로 제한 없이 허락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남녀평등이라는 세상의 사회시각을 교회 내로 가져오는 것은 분명히 죄가 됩니다.

일단 성경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가르치면서 부부 사이에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명시했고 또 여성에게 교회 내에서 발언하는 것을 제한했기 때문에 교회 내의 직책이나 활동을 두고 교회가 일정한 제한을 한다면 이는 각 교회의 자기 판단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성의 활동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고 여성은 창조원리에서부터 지도의 책임보다는 순점8로 따르는 면을 가지게 했으므로 교회 내에서도 여성의 직책과 활동이 남성 지도자의 신앙지도 범위 안에 있다면 일괄적으로 제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교회의 일반적 질서를 위해 각 교회가 자기 교회 형편에 따라 여러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를 성경 근거라고 생각하여 절대규정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고전11:3, 딤전2:11-14)

분명한 것은 구약에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여성이라 해도 그의 신앙지도가 여성의 순종성을 넘어 남성에게 주신 지도력의 장점을 가지는 경우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삿4:4-5). 신약은 형식과 외적인 제한을 거의 하지 않는 시대이므로 여성의 직책 금지에 있어서도 무조건적 금지는 곤란할 것입니다(요일2:27).

다만 목사직책은 어느 교회든 그 교회를 하나님 앞에 책임질 자리라는 전제가 있으므로 일괄적으로 여성을 목사 안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어느 한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그 시대와 그 교회를 맡을 실력을 뚜렷하게 받았다고 한다면 그의 안수를 금할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죄 되지 않는 이상 교회는 과거를 보수하는 것이 옳고 또 여성으로서 목사 실력을 갖춘 이라 해도 굳이 목사 안수가 필요한 경우는 없을 것이므로 여성의 목사 안수는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딤전2:11-14)

▪ 교회직책의 시무 신임투표

교회의 일반 직책은 신앙으로 책임진 다른 사람에 의하여 임명될 때뿐 아니라 여러 기회를 통하여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책임을 최점{으로 지고 있는 목회자나 장로 직책은 다른 사람을 평가만 하지 자신들은 평가를 받을 기회가 적거나 혹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최종 책임자에 속하는 직책들은 주기적으로 전체 교인에 의하여 평가받을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데 백영희신앙노선의 공회체제 교회들은 매 2년 정도로 기간을 정하고 그 대상은 목회자와 장로들로 정하여 정기적으로 시무 신임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시무 신임투표의 기간과 대상 등 방법론은 각 교회의 신앙 형편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겠으나 이 제도의 취지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할 것입니다.(마26:41, 갈2:11-14, 약4:14)



6. 교회와 세상의 관계

▪ 원칙

지상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떠날 수도 없고 세상에 물이 들어도 안 됩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교회사 기간 동안 항상 첨예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고 세상은 죄로 더러운 곳이므로 교회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살아야 한다며 산속이나 사막으로 들어가는 염세주의로 빠졌고 또 자기 몸을 괴롭히는 고행주의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고전5:10). 반대로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을 닮아야 한다고 세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왕상19:15-16).

요약하면, 교회는 갈릴리 바다 위를 가는 배와 같아서 세상을 떠날 수 없고 세상과 접하여 살지만 세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사회주의 기독교정치주의 기독교민족주의는 전부 이단입니다(눅20:25, 요14:30-31, 요일2:15).

▪ 세상은 교회의 전도 대상

교회와 세상을 정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배와 바다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지만, 교회와 세상을 동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교회는 세상을 교회가 가진 말씀으로 가르쳐 세상이 교회를 닮도록 해야 합니다. 즉, 세상은 교회의 전도 대상입니다.(막16:15, 행1:8)

교회가 세상의 종교나 정치나 민족이나 구호운동에 동참하여 세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교회가 스스로 세상 속에 죽으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는 세상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서 세상화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입니다. (딤후4:1-5)

▪ 교회와 애국

예를 들면 교인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애국에 몸을 바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만일 교회가 교회의 이름과 조직으로 애국을 위해 앞장을 섰다면 이미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애국을 위한 민족 단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약소국의 교회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교회가 이용되는 일을 경계해야 하고, 강대국들은 교회를 이용하여 약소국을 회유하거나 문화 점령을 한다는 시각에 극히 경계를 해야 합니다.

교회가 애국을 하는 방편은 교회가 애국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 아니고, 교회가 순수하게 교회로 존재하고 교회로 활동을 하게 되면 그런 복된 교회를 위해서 그런 교회가 위치한 주변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순수하게 교회로 존재할 때 결과적으로 그 교회가 위치한 사회가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요6:15, 갈6:14, 엡6:12)

▪ 교회와 교육 및 문화

교회가 교육이나 사회의 문화운동을 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맡아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고 서슴없이 발언하는 것이 오늘 교계의 인식입니다. 그러나 교육이나 문화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고 좋은 것으로 인식되겠지만 실은 교육과 문화는 세상의 사상으로 세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세상의 심장부와 같습니다. 교회를 사회의 교육과 문화에 연관을 시키는 것은 교회가 이미 세상으로 변질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물론 교회가 전도의 방편으로 초기 선교 시기나 기타 아주 특수한 경우에 세상 교육기관이나 구호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선교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되 일시적이고 긴급한 때로 국한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도나 선교를 위해서 우리는 다친 사람을 치료해 줄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에게 쌀을 갖다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도의 고정적이고 체계적인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그런 일은 세상에게 맡겨두어야 합니다.(요4:12-14, 6:25-27)

교육이나 문화 그리고 구제활동을 교회가 일시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이웃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 긍휼을 가지고 베푸는 것인데 이것을 제도로 정착시켜 교회가 해야 할 일로 편입시키고 나면 그 교회의 타락은 가속도로 진행됩니다. 역사의 통계가 전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마9:16-17, 22:21)



7. 교회의 기본 활동

① 예배의 정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는 제일 기본되고 중심되는 시간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으로 모이지만 내용으로는 하나님은 베푸시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며 구약은 제사였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실 예수님의 대속을 짐승으로 예표한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쳐 대속의 사람을 만드는 일입니다.(롬12:1)

② 예배의 요소

예배는 설교와 기도와 찬송으로 구성됩니다(고전14:26). 꼭 3가지 요소를 형식적으로 갖추지는 않더라도 그런 요소가 포함된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찬송은 하나님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중심이고, 기도는 그 은혜를 구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중심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내리시는 뜻입니다.(행17:2-3, 18:4)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받는 것이 설교이며, 그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의논하고 그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찬송이므로 시간이 있을 때는 이 3가지 형태로 예배를 드리고 시간이 없을 때는 이 3가지 요소 중 하나나 둘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또 간단하게 예배를 드릴 때는 찬송 속에 기도와 말씀을 담아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으며, 기도 속에 찬송과 말씀을 담아서 예배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말씀 하나만을 가지고도 간구의 기도와 감사의 찬송을 포함시켜 전할 수 있습니다.(골3:16)

그러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예배는 최소한 3가지 모습을 갖추며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배는 단순해야 하지만 이 3가지 정도의 모습은 은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라고 모든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③ 예배의 특성

▪ 성령의 신령한 은혜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참 예배로 진행되는 예배는 말씀의 이치를 배우고 가르치고 깨달으며 그 말씀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물론 예배 시간 외에도 따로 성경공부나 다른 기회를 통해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예배’라는 의미로 이 문제를 살피는 것은 구약은 제사고 신약은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한 언약을 통해 일반 다른 은혜와 분명하게 차이 나는 은혜를 받도록 하기 때문입니다.(요4:20-24, 행4:31)

특별히 예배는 주일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예배의 가장 기본되는 것은 주일 예배입니다.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예배시간입니다. 주일의 예배는 단순히 다른 날과 다른 시간보다 더 은혜롭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일 예배가 점Z가 되고 다른 날과 다른 시간의 예배와 은혜는 이 주일 예배에서 뻗어나간 지류입니다.(행18:4)

예배는, 예배를 드려서 예배에서 은혜를 받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 은혜는 말씀을 통하여 말씀 속에서 말씀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인간이 노력하여 인간의 것으로 만든 인적요소가 아니라 신적요소의 은혜입니다.(요20:19-23)

▪ 모일수록 더하는 은혜

예배는 예배 모임으로 모이면 모일수록 더욱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예배의 기본과 점Z는 주일예배지만, 이 예배에서 시작된 은혜는 평일의 다른 시간의 예배와 다른 은혜를 구하는 모임으로 연결됩니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예배시간으로 하나님을 뵙고 접촉하게 되지만, 이 예배시간의 접촉은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평일이 주일과 같아지고 예배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이 예배시간의 은혜와 같게 되어 시간적으로 평생의 모든 시간이 전부 하나님께 받는 은혜와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으로 발전하는 것이 신앙의 발전입니다.

주일예배를 신앙의 시간적 출발점으로 삼고, 주일에 받은 은혜를 평일로 확대하고 예배시간에 받은 은혜로 또 다른 예배시간을 찾아 자꾸 확대시켜서 결국 우리의 1주일 남은 시간 전부가 항상 주일예배와 같은 내용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일수록 은혜를 더합니다. 모여 본 사람만 알 수 있고 또 예배를 거듭해서 자꾸 드려본 사람만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경험을 가진 사람은 일정 때문에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고 은혜에 끌려서 자꾸 예배를 더 보게 됩니다. 이 경험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앞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강권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교회는 시간적으로 첫째 할 일이 바로 예배시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확대하는 것입니다.(히10:24-25, 행2:46, 마18:20)

▪ 단순성

구약교회에게는 형식을 먼저 보이시고 그 형식 속에서 구원의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방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율법이 요구한 모든 형식과 절차를 온전히 다 알고 실행하는 것이 선행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 완성으로 모든 종류의 형식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성령이 직접 우리 속에 거하며 우리를 바로 상대하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형식과 절차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 오직 말씀 하나를 통해 성령으로 직접 역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은 은혜를 구하기 위해 형식이나 다른 절차를 설치하게 되면 오히려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으로 친히 동행하는 일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예배가 요란하여 참석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므로 말씀의 깨달음과 상관없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고 인간의 기술입니다. 또 수십 가지 예배 절차를 제시하여 그 예배 절차를 익히고 밟고 그 예배에 필요한 직책을 분담하는 일도 마치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을 입히는 것처럼 성령으로 동행하는 일을 방해할 뿐입니다.(삼상17:38-40, 고전14:33)

신약의 은혜는 성령으로 직접 연결되고 말씀을 통해 바로 받는 것이므로 인간의 외견으로 볼 때 단순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이런 실질적인 은혜를 잃어버리고 이 은혜와 멀어지게 되면 인간적인 여러 절차와 형식을 갖추게 하여, 자기 내면에서부터 솟아나는 성령의 은혜 대신 외부에서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 은혜로 착각하게 하는 기술을 사용하게 됩니다. 천주교는 그들에게 사라진 성령의 은혜를 성당 조각과 내부 장식과 엄숙한 예배 분위기와 수도 없이 복잡한 형식과 제도를 가지고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들의 예배가 분명히 초대교회나 개혁교의 초기 은혜와는 멀어져 있으며 현저하게 천주교화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석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정말 복잡하고 세밀하게 살피며 연구해야 할 부분은 매번 바꾸어 주시는 현실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며 나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 속에 계신 성령께 살펴야 하는 일입니다.(롬12:1-2, 엡5:17)



8. 성례

① 원칙

▪ 최소원칙

개혁교는 천주교로부터 모든 형식과 격식을 다 제거하면서 세례와 성찬만은 비록 최소한이지만 그래도 형식을 갖추어 지키고 있습니다. 신약교회가 형식으로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세례와 성찬이라는 성례는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이렇게 조심해서 상대하는 이유는 주님의 십자가를 피로 대하는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사활의 대속을 이루시고 그 대속의 은혜가 실제 우리에게 역사하도록 주신 은혜를 첫 번째 기념하는 것이 세례이고, 성찬은 받은 그 대속의 은혜가 평생 계속되도록 간구하는 특별한 기념입니다. 기념이라는 말은 과거 그 은혜를 오늘 현실 속에 그대로 되살려 실제로 가진다는 뜻입니다.(고전11:23-26)

▪ 세례

세례는 일반 정통 교리와 같은 입장을 가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겠으나 유아세례는 칼빈 이후 오늘까지 정통 교회가 구원론을 오해하여 지키고 있는 것이므로 폐지되는 것이 당연하고, 침례라는 의식은 세례의 은혜를 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것이지만 꼭 필요한 것으로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신약교회의 은혜 역사를 지나치게 형식화 했다는 반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자격은, 중생의 확신을 표시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세례를 가볍게 대하지 않도록 각 교회가 세례 받기 전 일정기간 교육을 한다면 신앙 교육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중생의 표시를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그 내면의 실상을 조사하는 것은 교회에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만일 주님 죽으심에 연합하는 세례와 성찬을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상대하여 제거하실 것이므로 교회는 그런 점을 주의시켜 다른 목적으로 세례를 받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롬6:3-5)

참고로 세례는 세례를 통해 그 사람에게 천국을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정하는 의식이 아니고 이미 중생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는 출발의 의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면 주님 죽으심과 부활의 십자가로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마28:19-20). 세례의 약속과 절차를 따라 은혜를 구하는 이에게 세례를 통한 특별한 은혜가 주어집니다(벧전3:21).

▪ 성찬

성찬도 이미 종교개혁 이후 정통 교회가 충분하게 살펴 바르게 요약했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히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찬의 깊은 의미에 대하여는 성경신학과 설교를 통해 따로 살펴봐야 할 깊이가 있습니다.

참고로, 성찬의 횟수와 순서 등의 의식은 최소화의 원칙에 따라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으나 성찬의 본질은 꼭 지켜야 합니다. 성찬은 주님이 흘리신 피와 우리 대속을 위해 바쳐진 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사람은 회개를 하고 참석을 해야 하지만, 회개를 거부하고 참여를 하지 않거나 회개 없이 참여를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성찬의 은혜를 귀하게 주신 만큼 그 화도 크게 미치게 됩니다.(고전11:23-34)



9. 은혜로운 신앙행위

교회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믿는 사람이 힘쓸 신앙생활의 5가지 방향을 소개합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는 이제 교회론에서 살펴본 모든 원칙과 방향을 확고히 해야 하지만, 보이는 면으로 힘쓸 때는 다음 5가지로 노력하면 참 교회로 자라가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주일성수

십계명에서 주일에 관련된 계명은 4번째입니다. 그렇지만 주일을 바로 지켜야 1계명에서 10계명까지를 다 바로 지킬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4계명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주일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 그 사람의 신앙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일에 받는 은혜는 크게 성령으로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은혜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복입니다. 이 주일의 은혜가 모든 신앙에 근본이 되며 또 이 은혜를 받기 위해 노력을 하려면 신앙생활에 입문에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수준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할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투쟁을 거쳐서 주일을 바로 지킬 수 있고 또 주일을 자유롭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신앙의 전반부를 넘어서게 됩니다.

주일을 자유롭게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서 주일을 바로 지키게 되면 이제 주일을 통해 나머지 6일을 주일처럼 주님과 동행하고 말씀대로 실행하는 생활로 발전하게 됩니다. 주일을 바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 이후 여생은 일주일 전체가 주일에 은혜를 받고 주님과 동행하는 상태가 되도록 그대로 노력해 나가면 됩니다. (출20:8-11, 요20:19-23, 계1:10-20, 사58:13)

▪ 말씀생활

믿는 사람의 모든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원하는 뜻을 하나님께서 알리십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깨닫고 성경말씀대로 실행하는 생활에 전념을 해야 합니다. 우선 주일 예배와 기타 모든 예배 시간을 통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다음 자신의 생활환경을 조절해 가며 성경말씀을 읽고 자기 현실에서 말씀대로 실행해야 합니다.(딤후3:16, 행17:11)

성경은 신학지식이나 특수한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말씀대로 실행하려는 사람은 바로 깨달을 수 있고 또 바로 깨달은 대로 실행하면 그다음에 더 필요한 깨달음을 주시면서 자라가게 됩니다(요8:31-32).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말씀은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울 수도 있지만 자기 현실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은 자기 신앙양심을 통해 역사하는 자기 속의 성령에게 직접 들어야 합니다. 이를 개별영감이라고 합니다(요일2:27). 자기 내면에서 자기에게 직접 알리시고 지도하고 또 깨닫게 하는 그대로 실행할 때 자기 신앙이 그만큼 자라게 됩니다. 이를 자기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자기가 순종해야 할 자기 실행을 힘들거나 희생하기 싫어서 피하면 말씀은 자기를 정죄하는 심판의 말씀이 되고 자기를 복되게 하는 구원의 말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앙은 말씀대로 실행하는 일에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습니다(요8:31-32, 15:7, 10-12).

▪ 기도생활

기도는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마6:6).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르는 것은 질문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듣고 배우며,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미리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우리 할 일을 확정짓고 결심도 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대외적으로 다른 사람과 접하고 또 환경을 상대하며 살지만 내면으로는 중단 없이 계속 하나님과 기도로 동행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성도가 세 번째로 노력해야 할 신앙행위라고 하겠습니다. 주일을 바로 지키는 일을 가장 먼저 노력하되 말씀과 기도로 늘 주님의 뜻을 듣고 실행해야 합니다.(엡6:18, 골4:2, 살전5:17).

▪ 전도생활

먼저 믿은 사람이 자기가 믿게 된 신앙생활이 옳고 바르다면 복을 받아 보았을 것이고 또 여러 은혜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을 가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진리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면 이제 믿기 전과 아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을 했다면 교회에서 전도를 권하기 때문에 의무감에서 전도를 할 것이 아니고 믿어 보고 좋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권하게 됩니다. 즉, 전도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나 접촉하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전해져야 하고 또 권하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라야 진정한 전도입니다.(요4:28-42)

예수님께서 앞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 뒤 따르는 우리에게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처럼 우리도 우리를 희생시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일을 명령하셨기 때문에 의무이면서 동시에 본능적으로 전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습니다. 전도하는 진심에서 우리는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중생의 은혜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마11:1, 행1:8, 5:40-42)

▪ 연보

경제는 가장 낮은 단계요 세상에 두고 갈 가장 속된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생에게 이 지상 생활에서는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마6:25). 마치 믿음의 사람이 말씀으로 사는 것처럼 세상 사람은 물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중생된 성도들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마4:4),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조금이라도 신앙이 흐려지거나 후퇴되면 즉시 그들에게 세상 물질이라는 것은 마치 하나님만큼 권위가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빌3:19)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은 복음을 위해 사용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는데 일부러 복음운동에 물질을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은 복음을 위해 바쳐져야 하는데, 실은 바쳐지는 물질을 보면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은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물질충성만으로 신앙 내면을 다 알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물질로 충성하는 것은 그 사람 속에 볼 수 없는 신앙의 표시판이 되기도 합니다.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면 물질적인 복을 주셔서 우리를 길러 갑니다.

따라서 신앙이 바로 되면 물질생활이 바로 되고, 물질생활이 잘못 되면 그 사람의 내면 신앙생활에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을 단순히 물질로 볼 것이 아니고 볼 수 없는 신앙의 나타난 증거로 참고하며 자타를 챙겨야 할 것입니다.(눅16:9-13, 고후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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