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인죄론

주제별 정리      

제3장 인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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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9.초교, 04.03.29. 최종 출간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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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죄론







1. 인간의 창조 - 특수 피조물
2. 인간의 인성 구성
3. 죄론



제 3 장

인죄론



1. 인간의 창조 - 특수 피조물

① 인간의 위치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실 때, 피조물 전체를 영물로 된 영계와 물질로 된 우주로 나누어 만드셨습니다. 일단 사람에게는 물질계 우주를 통해 연습을 시킨 다음 하늘나라를 주실 것이므로, 그 훈련의 첫 장소가 우주 안에 있던 에덴동산입니다(창1:27-28, 2:8, 15).

인간은 물질계 내 만물 중에서 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그 모든 만물의 주인공이므로 처음부터 만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바로 이 인간에게 필요하여 이용물로 만든 것이 우주 만물이고 인간은 이 만물의 주격이며 이 만물에게는 하나님 노릇까지 하는 존재입니다(창1:28, 2:15, 2:19, 시8:6).

이렇게 인간의 위치는 만물 중에 특수하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그 구성 재료도 기능도 역할도 다 특별합니다. 훗날에는 영계와 우주를 다 합해서, 그리고 지금은 이 우주 만물 전체를 통틀어, 위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시고, 그 다음이 우리들이며, 그 밑으로 물질계 만물이 있습니다(창1:26-30, 시8:4-9, 롬8:19-23, 고전3:21-23, 엡1:23).

② 인간의 특수성

▪ 삼위일체의 창조의논

인간은 모든 창조물 중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의논하고 만든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창1:26-27).

▪ 영육으로 된 구성

인간만은 물질과 영물로 이루어졌습니다. 영계는 영물만 있고, 물질계는 물질로 된 피조물만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계와 우주를 함께 다스릴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영물로 된 영과 물질로 된 심신으로 되어 있습니다(창2:7, 요3:6, 살전5:23, 히4:12).

▪ 하나님의 형상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모습이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영을, 몸은 마음을 본받아 지었습니다(창1:27, 2:7, 약3:9).

▪ 만물의 주인공

인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듯이, 우리 인간은 만물에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닮게 만들어졌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도록 훈련되어졌다가, 영원토록 하나님을 대리하여 만물에게 하나님 노릇을 할 존재가 인간입니다(창1:26, 시8:4-9, 롬8:19-23, 엡1:23).

③ 창조의 과정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 만드신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논이 있었고, 하나님을 닮은 영과 물질로 된 심신으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일단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된 인간을 제작한 다음, 하나님은 인간의 영을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 하나님으로 인하여만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창2:7에서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고 했습니다.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한 그 생기 자체가 영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영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동작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심신으로 된 육과 영을 제작 완성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연결시켜 전원을 넣은 다음, 그 제작물인 인간에게 시운전으로 시킨 일이 창2:19에서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이름은 명칭이기 이전에 그 존재의 위치와 역할과 특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위임을 받아 만물의 위치와 역할과 활동을 배정한 것이 곧 이름을 짓는 일로 표시되었는데, 말하자면 인간이 우주의 주인공으로 취임한 후 처음으로 행한 것은 만물에 대한 인사조처였습니다. 그리고 이 행동은 장차 인간이 맡을 모든 일의 방향과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창2:7, 19).


2. 인간의 인성 구성

(1) 삼분론과 이분설

① 삼분론과 이분설

사람은 몇 가지로 되어 있느냐는 것을 두고 둘로 나누면 ‘이분설’, 셋으로 나누면 ‘삼분론’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현재까지 내려온 정통교리 체계는 이분설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이분설은, 사람의 구조가 몸과 마음 둘로만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학설이며, 몸은 손으로 만질 있는 부분을 말하고, 몸을 제외한 부분은 오로지 마음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영이나 마음이나 영혼은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삼분론은, 정통 교리가 아니며 그 주장도 여러 사람이 제각각 달리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로 통일시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백영희 삼분론의 입장만 말씀드립니다. 백영희 삼분론은 사람의 구조는 물질로 된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는 영적 존재인 영으로 되어 있다는 입장입니다(요3:6, 살전5:23, 히4:12). 영은 중생될 때 단번에 구원받으면서 영원히 그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롬8:1), 몸과 마음은 평생 믿어가면서 고치고 또 훈련을 시켜야 하는 존재이니(롬6:12-22), 영은 기본구원의 대상이라 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은 건설구원의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 삼분론과 이분설의 비교

삼분론은 짐승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을 꼭 같이 물질 재료로 된 것으로 분류합니다(전3:19-21). 그리고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서 만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영적 존재라는 입장입니다 (창2:7). 이에 비하여 이분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부분은 마음이고 동물에게는 마음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삼분론은 사람이 중생된 것은 영이고(요3:6), 몸과 마음은 중생된 영이 평생 성화시켜 나간다는 입장이고(롬8:10-17), 이분설은 사람이 중생된 것은 마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이 되고 나면 그 마음과 몸이 평생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더 깨끗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③ 삼분론의 의미

삼분론 교리는 그 자체만으로는 신앙 현실에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 현실에 가장 밀접한 교리인 ‘구원론’에서 삼분론과 이분론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구성 요소를 논하는 이 교리는 항상 구원론과 연결 지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백영희 신앙노선의 구원론은 건설구원론이 그 중심에 있고, 건설구원론이 체계화된 것은 삼분론 교리체계가 배경이었습니다.

원래 이 삼분론이 건설구원론과 함께 체계화되고 발표되던 시점은 1960년경입니다. 당시는 구원론 때문에 이 교리가 교계의 구원론과 상반된다 하여 집중을 받았는데 현재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유전자공학이나 두뇌공학 등 인체공학 및 관련 학문의 발달로 이분설이 완전히 폐기되자, 삼분론은 구원론과 상관없이 삼분론 자체적으로 교리체계 전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2) 인간의 구성 요소

① 영

▪ 재료

사람의 제일 내부에는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은 비록 물질계 안에 있지만 그 재료는 물질이 아니고 영물입니다. 물질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만 영물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므로 신령한 존재입니다.

사람에게 영이 필요한 것은 물질계 세상에서 훈련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활동할 곳은 영계인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은 영계와 영계의 만물을 지배할 총 주인이므로 인간은 영적 존재로 지은 것입니다(창2:7, 롬8:16-17).

▪ 위치

영은 마음 안에 거주합니다. 마음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통해서 몸을 다스리며, 몸을 통해서 외부 만물을 다스립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육체나 마음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은 영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과 영을 합해야 인간이므로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 가치와 위치는 아주 다릅니다.

영은 그 사람 내부에서 주격입니다. 영이 주인이고 마음과 몸은 각각 차원을 달리하며 영을 보필하며 영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롬8:10, 16, 고전2:13-14).

▪ 특성

첫째, 하나님의 형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이를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영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속성의 차원은 다릅니다(창2:7).

둘째, 단일성의 존재

영은 복합체로 된 물질과 달리 단일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쪼개고 나누지를 못하고, 이 부분은 병들고 저 부분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로 죽을 때도 단번에 죽고, 또 중생될 때도 단번에 중생이 됩니다(롬8:1, 히7:27, 9:25-26, 10:1-2).

셋째, 하나님만 전용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만 사용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영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악령이 영으로부터 심신을 빼앗아 우리의 심신을 사용했지만, 심신의 주격이 되는 영은 죽이기만 했지 그 영을 자기 소유로 삼아 사용하지는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그 순간 작동을 완전히 멈추게 됩니다. 영 속에서 영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존재는 하나님뿐입니다(롬8:16, 고전3:15, 요일5:18).

넷째, 사람의 주격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물질입니다. 이 몸과 마음을 거느리고 주인 노릇을 하는 우리 속에 주체는 바로 영입니다.

따라서 영이 죽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고, 영이 살아 있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 때문에 한 번 중생된 사람은 육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그 영이 죽어 있으면 육이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롬8:10-14, 고전3:11-15).

② 마음

▪ 재료

전통 교리는 지금까지 마음을 천사와 같은 영물이라고 알았습니다. 이는 전통 교리의 역할이 천주교로부터 기본구원을 찾는 데 주력을 했으므로 사람의 인성 구조에 대하여는 집중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마음은 물질입니다. 다만 신비한 물질이므로 손으로 만지거나 냄새를 맡을 수 없을 뿐입니다. 물질인 피아노를 칠 때 나오는 소리는 만질 수 없고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영물이 아니고 물질입니다. 물질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타락한 인간은 영이 죽은 상태에서 마음은 살아 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전3:19-21).

▪ 위치

마음은 영과 몸 사이에 위치합니다. 물질 중에서는 가장 탁월하지만 몸 안에만 위치하지 몸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영이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로 영에게 지배를 받고 아래로 몸을 지배하는 위치가 마음입니다(눅6:45, 엡2:3).

▪ 특성

첫째, 영의 소유격

마음은 독립하지 못하고 영에게 붙들려서만 움직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자기 영에게든지 아니면 악령에게든지 그 한쪽에 속하여 명령을 받을 뿐입니다. 따라서 안 믿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적 악령에게 붙들려 있고, 믿는 사람의 마음은 영과 악령 사이에서 오가고 있습니다(마18:22, 롬7:21 롬8:5-7).

둘째, 소속 결정권

비록 독립하고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그 대신 자기 주인을 누구로 정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속의 자유를 가졌습니다. 만물과 달리 인간에게 심판이 있는 것도 바로 이 자유성 때문입니다. 만물은 강도의 손에 잡힌 칼과 같아서 행동에 대한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어느 영에게 속하든지 소속 결정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의와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롬6:12-19, 전11:9).

셋째, 복합적 존재

마음은 물질로 되었기 때문에 여러 요소가 합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비한 물질이므로 몸과 같이 칼로 해부하고 나누지는 못하지만, 마음 차원에서는 그 구성이 인체보다 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행동을 할 때는 인체와 같이 내부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협력하여 하나로 움직이게 됩니다(롬2:15).

넷째, 핵심적 역할

마음은 비록 영의 소유격에 지나지 않지만 단순히 기계로 사용되지 않고 그 소속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성이 있습니다. 이 자유성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신 기본 요소인데, 마음이 가진 이 자유성 때문에 마음은 타락한 우리에게 중생 후 평생의 신앙생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부각됩니다(잠4:23).

마음이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느냐는 그 횟수와 정도에 따라 심신의 성화의 양이 결정됩니다. 훗날 영이 영계와 우주의 주인공이 되고 나면 영이 전면에 나서지만, 오늘 세상에서 준비하는 기간은 마음을 통해 심신으로 된 육을 길러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마치 가출했다 겨우 집에 돌아온 아이를 예전처럼 다시 착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 식구들이 그 아이를 위해 배려하고 가족의 중심에 두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롬6:12-17, 8:5-14).

③ 몸

▪ 재료

몸은 마음과 함께 물질로 된 존재입니다. 몸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공 노릇을 할 때 가장 외부에서 만물을 직접 접촉해야 하는 실무자이므로 만물과 꼭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만물과 교통하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만물과 같은 재료지만 만물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만물 중에 가장 정교하고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창2:7, 1:28).

▪ 위치

몸은 위로 마음에게 지배를 받고, 아래로 만물을 접촉하며 만물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습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현장 공무원과 같습니다. 그 위치가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에 비록 재료는 만물과 같은 저급의 물질로 되었지만 그 값은 만물 중에 으뜸입니다. 일반 만물과는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붙들려 움직이는 인체는 의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롬6:12-17, 8:5-14, 딤전4:8).

▪ 특성

첫째, 타락의 선봉

몸은 영과 마음으로 더불어 인간의 일부분입니다. 그 위치는 마음의 지배를 받는 가장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 대신 몸이 사람의 일부이므로 이 몸이 행동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몸은 만물을 직접 다스리는 실무자이므로 만물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이 몸이 그 기회를 타고 가장 만물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즉, 악령이 만물을 통해 몸을 타락시키고, 이 육체를 붙들고 마음을 흔들어버리는 것입니다(마5:28). 현재 타락한 이 세상 기간 동안은 육체가 천하 모든 죄를 접하고 그 죄를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타락의 선봉에 있습니다(마18:9).

둘째, 영광의 외모

오늘 우리 인체는 타락한 세상에서 천하 죄악을 다 끌고 오는 창구가 되고 있지만, 이 세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는 영계와 우주의 주인공으로 모든 피조물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우리 인체는 만물을 직접 상대하는 가장 외부의 존재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의 외모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날의 우리 인체는 만물에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울 존재지만, 오늘은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 모습을 가진 이 육을 영광의 외모로 만들어가는 기간입니다(고후4:17, 빌3:21).


(3) 삼분론의 성경 근거

앞에서 삼분론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일일이 성경 근거를 제시한다면 그 분량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종합 교리서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할 것이며, 여기서는 총론적으로 성경 근거를 제시합니다.

참고로, 백영희 신앙노선은 성경을 해석할 때 원어 때문에 오히려 성경 해석이 오도되는 경우를 대단히 조심하는 편입니다. 성경을 원어 단어와 문법적으로만 접근하고 성경 전체에서 사용된 의미를 모른다면 원어 지식 때문에 오히려 성경해석이 막힌다는 입장입니다.

성경은 기록될 때부터 원어의 언어적 접근으로는 그 본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백영희 신앙노선의 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흔하지 않은 주장이겠지만, 새겨보고 생각하면 이 주장이 바로 성경이고, 그 반대론이 신학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① 히4:12과 살전5:23의 ‘영과 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영’은 마음의 다른 이름이거나 또는 마음의 작용에 관계된 이름이 아니라 실체적 요소임을 가르치는 성구입니다. 본문에서 ‘관절과 골수’는 신체의 구체적 부분을 예시한 것이고 ‘혼’과 다른 존재인 ‘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성구는, 이분설에서 관절과 골수가 몸인데 둘로 표현했듯이 혼과 영도 마음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구 하나만을 가지고는 삼분론의 근거도 될 수 있지만 이분설의 반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살전5:23에서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신 본문에서 히4:12의 관절과 골수라는 신체 두 부분을 ‘몸’으로 통칭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② 롬8:6의 ‘육신의 생각’

본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가리켰습니다. 삼분론과 관련하여 이 성구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분설은 사람을 영물로 된 영혼과 물질로 된 몸으로만 나누고 있습니다. 생각을 하는 것은 영물로 된 영혼이지 물질로 된 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원어적 사용이 어찌 되었든지 상관없이 육신에게 생각이 있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이분설로는 육신에게는 따로 생각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삼분론이 마음을 몸과 함께 물질로 분류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③ 전3:20-21의 ‘짐승의 혼’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는 것이 본문입니다. 짐승은 창2:19에서 흙으로만 만든 물질 존재입니다. 짐승에게 물질인 육체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원어의 단어를 놓고는 아무리 연구해 봐야 해석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마음이 물질이며,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④ 창6:3의 ‘육체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영은 죽고 육으로만 살게 됩니다. 육으로만 사는 인간이 가진 것을 두고 여기는 육체라고 했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현재 안 믿는 사람들이 무엇과 무엇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면 바로 성경 해석이 되어집니다.

영적 존재는 죽고 물질로 된 존재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타락한 후 인간의 구성 요소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몸과 함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물질로 된 것입니다. 물질 재료로 된 것만 가지고 사는 것이 타락 후 인간이라는 뜻으로 ‘육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⑤ 창3:1-4, 엡2:1의 ‘타락과 중생’

창2:17에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창3:1-4에서 뱀은 죽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반드시 죽은 부분이 있습니다. 엡2:1에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한 아담이 범죄 후에도 계속 살아 움직이다가 930년에 죽게 되는데, 그 아담 속에 죽은 것은 무엇인가? 몸은 아니고, 마음도 아닙니다. 마음 안에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 이름을 혹 잘못 부를 수는 있을지라도 몸과 마음은 범죄로 죽지 않고 마음 안에 다른 존재가 죽었으니 그것이 바로 영적 존재라는 것은 확정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이 삼분론에서는 ‘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⑥ 롬8:1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고 사는 부분이 있습니다.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본문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일3:6, 9, 5:18에서 주 안에 있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믿고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 몸과 마음은 죄를 짓습니다. 또 죽는 날까지 회개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몸과 마음을 제외하고, 중생이 된 부분, 그리고 중생이 된 후에는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는 부분, 이 부분은 물질로 만들어진 심신이 아니라 영적 존재이니, 곧 영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신 이 부분은 사람을 영혼과 신체 둘로만 나누는 이분설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해절입니다.



(4) 구원론과 삼분론

① 두 종류의 단어사전

이분설과 삼분론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단어가 말하는 실체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동명이인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는 양측이 사용하는 사전의 정의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분설의 입장으로 선입관이 굳어진 분들은 삼분론을 대할 때 그 사용하는 단어 때문에 후에 아주 크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유의하셨으면 합니다.

인론에서 사람의 구성 요소를 삼분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한 것은 우선 성경이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고 또 두번째로는 신앙현실에서도 영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믿는 사람이 중생 이후 노력해야 할 부분에 혼동이 많아 신앙에 손해가 많기 때문입니다.

영의 존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속죄론과 구원론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중생은 바로 영의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이분설로서는 영과 마음을 혼동하였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단어는 알아도 그 중생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 혼동하였고 심지어 마음이 중생한다고 생각하여 믿는 사람이 평생 노력해야 할 방향을 아주 엉뚱하게 안내를 했습니다.

즉, 중생 후에는 마음을 말씀대로 바로 살도록 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쉬임 없는 전면투쟁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영이고 중생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마음은 자연적으로 성화가 되어나가는 줄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삼분론의 핵심은 마음은 물질이고 영은 영물이며, 사람의 중생은 영의 중생이며 중생된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완전 중생이므로 믿는 사람이 평생에 힘쓸 일은 오로지 마음과 몸의 성화라는 중생교리입니다. 백영희 삼분설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핵심 교리로 제시하는 바, 한국의 대신학자로 정평난 분들까지도 이 교리를 ‘사람의 마음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교리가 발표되었다고 번역을 한 다음, 그 오역된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② 건설구원론과 삼분론

▪ 두 교리의 조화와 일치

중생된 사람은 중생되는 순간 ‘단번으로’ ‘영원히’ ‘완전하게’ 해결되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영이 중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은 두 번 반복이 없습니다. 이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이 알지도 못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기본구원론입니다(롬3:22, 8:1, 갈2:16, 엡2:8-9, 히7:27, 9:25-26, 10:10).

그리고 중생된 사람은 이제 천국 가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나, 평생 자기 심신을 얼마나 어떻게 성화시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이 평생의 건설에 관련된 면을 건설구원론이라고 했습니다(마5:19, 7:21-29, 마19:16-30, 고전3:12-15, 벧전2:2).

이 구원론의 전제는, 한 번 중생되면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고 완전히 죄로부터 해결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구원론에 대하여는 정통교리도 이렇게 깨닫고 있었으나 인성 구조를 이분론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는 사람 속에 어느 부분이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중생되었는지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삼분론은 위에 제시한 성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은 영적 존재일 수 없으니 마음 안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고, 또한 구원론에서도 기본구원으로 받은 중생은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마음 안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교리가 연결되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가 도출되므로, 사람이 처음 믿을 때 그 영이 중생하게 되고, 이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대속이 입혀졌으므로 이를 기본구원이라 하며, 이 기본구원을 입은 사람이 자기 마음과 몸을 평생 회개시켜 성화시키는 과정이 건설구원이라고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두 교리의 중요성

모든 교리는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론은 바로 우리 매일 생활에 늘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또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까지 교회 교리의 발전사는 신앙의 기준으로 성경에 대한 확립이 주후 1세기 기간에 먼저 있었고, 그 다음 4세기까지 성경으로 섬길 하나님을 신론으로 확립했습니다. 그 다음 5세기까지는 타락한 우리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교리를 신인양성일위로 확립했고, 이 예수님이 만든 구원을 받아 천국 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16세기에 이르러 루터와 칼빈이 해결을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단계는, 사람이 믿고 나면 중생과 함께 천국이 확정되는데, 왜 평생토록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그 숙제가 바로 건설구원교리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즉,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영이니, 영은 중생되는 순간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중생되고, 중생된 이후 평생은 마음과 몸을 회개시켜 깨끗하게 만드는 성화의 건설이 우리가 평생 노력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마음과 몸만 범죄하는 것이니, 믿는 사람은 자기 심신의 성화를 위해 회개하고 말씀대로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리체계는 정통교리가 그 동안 구원론의 미진으로 난해절로 남겨둔 부분을 전부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건설구원론을 이렇게 확립하지 않고 오늘까지 교회가 루터와 칼빈의 구원론으로만 성경을 대하여,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확정을 지워놓고도 믿은 이후에 노력할 건설구원을 혼동하여 무수한 의문만 가져왔으나, 백영희 교리체계로 그 모든 어두움이 걷히게 되었습니다. 총공회의 신앙노선과 교리체계를 소개하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말세지 말에 나타나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죄와 타락을 두고, 백영희 교리체계가 아니라면 신앙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입니다. 또한 교계가 교권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백영희 행정노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입니다. 백영희 신앙노선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는 이유는 교단 홍보가 아니라 신앙노선 때문입니다.



3. 죄론

(1) 죄

① 죄의 정의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죄와 다른 세상의 죄입니다. 국법을 어긴 죄나 도덕에 잘못된 죄 또는 세상 어떤 조직과 질서에서 말하는 죄는 성경이 말하는 죄와 다릅니다. ‘죄’라는 단어는 같이 사용해도 무엇을 기준으로 어디에 삐뚤어졌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적어주신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죄를 판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졌을 때, 그것만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사53:6).

② 죄라는 단어의 혼동

흔히 성경의 죄를 세상에서 사용하는 죄라는 단어와 혼동하여 오늘 말세 교회의 속화가 가속되고 있습니다.

국법을 지키는 것은, 성경이 성도에게 자기가 사는 국가의 법을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지 국법을 범하는 것 자체가 지옥 갈 죄가 되기 때문에 국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나라 백성으로 그 나라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법일 뿐입니다. 또 도덕은 사람의 양심이 기준이며 자기를 엄하게 규제하는 법입니다. 이 법은 다른 종교를 만들어 사람을 수양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기여를 했지만, 이 법을 어기는 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 교회와 세상은, 성경 죄와 세상 죄를 혼동하여 기독교를 세상의 국법이나 도덕법을 지키는 세상 양심집단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너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이미 교회 거의를 다 삼킨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 교회가 특별히 견지해야 할 교리가 여럿 있지만 죄에 대한 정의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③ 죄의 종류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신앙생활에 죄와 싸우고 죄로부터 돌이켜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죄가 어떤 차원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지를 자세하게 알수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크게 4가지 차원에서 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죄를 4가지 면으로 살펴본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는 4가지 차원으로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 쪽으로는 잘 하고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면을 함께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 ‘죄’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 - ‘불의’의 죄
▪하나님을 배반 한 죄 - ‘원수’된 죄
▪하나님 소망을 버린 죄 - ‘절망’의

▪죄 -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서도 제일 첫째로 기억할 죄는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명령을 어긴 ‘죄’입니다. 참고로 죄라고 표현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죄를 다 포함한 넓은 의미의 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행동만을 말하는 좁은 의미의 죄가 있습니다(창2:17).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을 어기면 죄입니다. 하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죄이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해도 죄가 됩니다. 하라는 것을 다 하지 않아도 죄가 되며, 하기는 다 했으나 분량이 모자라도 죄가 됩니다. 무릇 죄의 종류 중 첫째 죄는 다른 죄보다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지켜야 할 것이지만, 성경 66권 말씀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우리는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 의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전적 죄인입니다(롬3:9-11, 23).

▪ 불의의 죄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원하는 뜻을 감동시켜 주시는데 자기 신앙양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는 ‘불의’의 죄라고 합니다(행24:16).

죄의 종류 중에서 앞에 말씀드린 ‘말씀을 어긴 죄’는 그 기준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동시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성경 전체 말씀 중에서 자기 현실마다 따로 자기에게 특별히 지킬 것을 원하는 말씀은 따로 있습니다(신28:1). 또 그 말씀을 지키되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을 성령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신앙양심을 통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라 하며, 줄여서 ‘영감’이라고 합니다.

보통 영감이라 하면 성경기록 영감만을 영감이라고 생각하여 초대교회 이후 영감역사는 종료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경기록영감 외에도 성령이 오늘 우리 각자 마음속에 말씀대로 살도록 지도하고 또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각자에 따라 개별적으로 역사하는 영감을 말합니다(요일2:27).

이 모든 성령의 역사 전체를 영감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자기 양심에서 말씀대로 살도록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이 각 개인에게 영감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니 그것에 삐뚤어지면 ‘불의’라고 합니다.

▪ 원수 된 죄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원래 하나였습니다.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결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 연결은 전선연결이나 무선연결이나 손과 손으로 접촉된 연결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연결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이었고 하나님께 붙들려 그분과 한 편 된 것이었습니다. 마치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부부사이가 좋으면 연결이 되어 한 부부이고, 함께 살아도 그 사이가 멀어지면 손은 잡고 있어도 동상이몽의 남남일 수도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모든 면으로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동행 하는 사이였는데 아담이 하나님과 등을 대고 돌아섰습니다. 말하자면 아담의 얼굴 방향이 이제 하나님과 다른 쪽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아담은 아담입니다. 하나 되었던 관계를 하나님과 ‘화친’ 또는 ‘화목’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반대로 살게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화친과 화목으로 살지 않는 상태, 바로 그 상태를 하나님과 원수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삐뚤어져 있는 죄입니다(엡2:14-16).

학생이 학칙을 전부 지키며 학교를 다닌다 해도 교사가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히 지도한 것은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또 학생이 지킬 일반 본분과 교사의 개별 지도를 성실하게 따라하는데 속으로는 그 교사 자체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일반 말씀은 지켜도 자기 혼자 따로 해야 할 신앙양심의 성령의 지도를 거부할 수 있고, 말씀도 영감에도 순종하지만 마지못해서 순종하는 요나 같은 심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가 평소 일반적인 선지의 본분을 잘 했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죄는 짓지 않았으나 자기에게 특별히 내린 사명, 즉 자기 신앙양심에 자기에게만 지시한 영감에는 죽음이 두려워 니느웨를 가지 않고 그 명령을 회피하는 불의의 죄를 지었습니다(욘1:3). 그리고 물고기 뱃속을 통과한 뒤 그는 불의의 죄를 회개하고 니느웨 성에 외쳐야 할 일을 다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니느웨 처리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맞섰습니다. 니느웨를 두고 처리하는 하나님과 요나의 자세와 진행 방향은 달랐고 그 인격의 교통이 단절되었으니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과 화친 화목 되어 하나 될 사람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욘4:1-9).

▪ 낙망의 죄

죄 중에 가장 죄 같지 않은 죄인데 실은 제일 깊이 숨어 있는 가장 큰 죄가 바로 ‘낙망’의 죄입니다. 좀도둑은 담을 넘고 큰 도둑은 서류 한 장을 움직이는데, 천하를 훔치는 도둑은 도둑을 맞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까지 받을 정도로 깊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근본 이유가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지도록 목적을 정한 바로 그 목적 대상입니다. 이 목적 대상인 우리가 이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 지킬 것을 하나 실수하면 그것이 ‘죄’나 ‘불의’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어가는데 자기 혼자 덜렁덜렁 걸어간 것은 ‘원수’된 죄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 옷이 찢어지고 발이 부르트고 온 몸에 입는 상처정도라고 한다면, 낙망이라는 것은 이 목적을 향하는 근본 방향을 틀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방향을 포기하는 죄입니다(딛1:2, 시42:5).

학생으로 말하면 수학문제 하나를 틀리거나 잘못 풀거나 제 마음대로 풀어버리는 실수가 아니라 학교 다닐 마음이 없는 학생이라면 이는 학생으로서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낙망의 죄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택자의 근본 목표,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최종 목적 자체를 포기하고 그 목적에 삐뚤어진 죄입니다. 따라서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이며 가장 높은 차원에 숨어 있는 죄이므로 사람들이 대개 그 죄의 크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런 죄야 그렇게 큰 죄가 되겠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겠지만,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 이 죄도 분명히 죄라는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죄의 중요성을 두고 우리에게 자연계시로 알려주신 것이 많습니다. 모든 상황이 어려워도 희망을 가진 사람과 모든 상황이 좋은데 속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차이로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사40:31, 삼상25:37).

▪ 4가지 종류의 죄를 보여주는 에덴동산

인간의 모든 죄가 시작되던 에덴동산 선악과 범죄로 비교를 해본다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한 것을 먹은 것은 말씀을 어긴 ‘죄’입니다(창3:6). 자기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옷을 해 입은 것은 ‘불의’의 죄입니다(창3:7).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로 숨은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원수’된 죄입니다(창3:8).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소망을 가지고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포기한 것은 ‘낙망’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3:12).

에덴동산의 죄가 가장 겉으로 드러난 것은 선악과를 먹는 문제였지만, 그 선악과를 먹는 그 행동에도 위에서 말한 4가지 차원의 죄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이후 하나님께 정죄 받고 쫓겨나기까지의 행동 전체가 큰 범위에서 인간의 첫 죄의 4가지를 자세히 풀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④ 죄의 본질

이 모든 죄는 그 기준과 접근 차원에 따라 4가지로 나누어 본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는 이유는 죄의 형태와 차원을 분류하고 잘 파악하여 죄로 더불어 싸워 이기는데 편리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4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죄이지만,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는 단일의 죄요 죄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삐뚤어졌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 그 이전에 그렇게 삐뚤어진 결과로 나타나게 된 원인, 그 삐뚤어진 죄의 근본 성질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죄의 본질은 자기중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으로만 살고 하나님 명령대로만 움직이고 그 뜻에 붙들려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향한 소망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대로 본래 인간이 노력하고 걸어가야 할 4가지 차원의 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자존자 하나님처럼 살겠다고 나섰으니 이것이 죄의 근본 본질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인간이 자기를 자기의 중심에 세우게 되었습니다(창3:22).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의 존재가 되자 이제 하나님과 모든 면으로 맞서는 관계가 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전부 하나님과 삐뚤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죄의 종류는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아주 유명한 죄 10가지를 비롯하여 성경이 기록한 죄가 수도 없이 많고 또 각자 혼자만 아는 불의의 죄를 따져 들어가면 죄의 종류는 한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죄의 가장 깊은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전제로 살지 않고 인간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의 중심에 자기를 두고 자기를 위해 자기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고후5:15).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이상, 그 이후로 인간은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부터도 죄가 되고 그의 생각 그의 활동 하나하나가 전부 죄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기중심이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는 삐뚤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이란 바로 이 면을 두고 말합니다.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할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것, 이 행동이 악한 행동이요 이것이 모든 악한 행동의 근본 뿌리 되는 악입니다. 따라서 ‘죄’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삐뚤어졌다는 결과를 두고 말하고, ‘악’이라는 것은 그 중심이 자기중심이라는 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니 동기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은 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죄라는 것은 그 속에 깊은 내면을 살펴보면 악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습니다(창3:5, 마20:14-15).


(2) 죄의 기원

세상 만물은 어디로부터 생겨졌는지? 그 출처를 두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들어졌다면 일원론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든 것도 있고 또 다른 존재가 만든 것도 있다고 말한다면 이원론이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역’ 중에서 창조와 관련, 이원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죄와 관련하여 그 출처를 따질 때는 일원론을 부분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 아니고 악령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만드셨는가 아니면 악령이 만들었는가를 두고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① 이원론

죄는 하나님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까지 전통의 모든 정통 신학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악령이 만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도 자유성을 주셔서 하나님께 순점; 하든 거역을 하든 선택을 하게 했는데 천사가 하나님을 거역하였으니 죄는 그때부터 생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악령이 생겨난 것은 천사가 스스로 타락하여 악령이 된 것이고 죄는 악령이 만들었으니 죄의 원인은 악령이고 선의 원인은 하나님이라는 결론까지도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나가는 이들은 적지만, 적어도 천지만물 모든 존재 중에서 죄 하나를 빼놓고는 전부 하나님이 만든 것이고, 죄는 타락한 천사 악령이 그 원인자라 합니다.

② 일원론

일원론은 모든 것을 하나님 한 분이 제작했다는 입장입니다. 죄도 다른 만물처럼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이 일원론입니다. 일원론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하나님을 벗어나서 저절로 생긴 것이나 다른 존재가 만든 것은 없다는 주장입니다(요1:3, 롬11:36, 욥1:11-12).

③ 결론은 일원론

이원론이 타락한 천사를 죄의 원인자로 삼는 것은 이미 일원론과 이원론의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원론은 죄의 근접 원인을 말한 것이고 일원론은 죄의 최종 원인을 말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 부모를 통해 그 아이를 만든 것입니다. 시야가 좁으면 눈에 보이는 육의 부모만 부모로 보겠지만 사야가 넓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부모만 만들어놓고 그들에게 자녀 생산은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자녀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직접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도 우선 일선에서 그 죄를 만든 것은 타락한 천사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 천사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 천사가 타락하도록 예정했고 그 예정에 따라 그들이 죄를 짓도록 했으며 그들을 통해 인간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간 것입니다. 따라서 일원론은 하나님께서 구원역사를 위해 인간의 순종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죄와 타락까지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셨다는 것을 잡았고, 이원론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는 그 제작 운영 책임을 일체 지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일원론과 이원론의 이런 입장은 예정론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논란입니다. 일원론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예정하되 그 예정이 택자를 구원하는 예정뿐 아니고 불택자를 지옥 보내는 예정도 꼭 같이 하셨고 또한 최종 종착지인 천국과 지옥만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평생 살아가는 과정에 죄를 짓고 의를 행하는 것까지 전부 예정이 되어 있다는 것까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원론은 택자만 구원 얻도록 예정했고 불택자가 지옥 가는 것은 그들을 버려두어 ‘유기’했다는 면을 강조하게 됩니다. 불택자를 지옥에 가도록 만든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그럴 리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창조할 때 지옥까지 미리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 본다면 그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일단 하나님께서 죄도 필요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원론의 시야는 성경 전체를 보는 신앙이고 또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인간 차원에서 이견을 달지 않는 믿음 있는 시각입니다. 이원론은 그 시야를 너무 좁혀 보는 것으로 전부를 삼은 것이 단점이고 특히 성경에 대한 이해를 인간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바로 볼 수 없는 한계를 가졌습니다.

④ 일원론과 죄의 용도

우선, 하나님께서 하나님 가진 것을 우리에게 가장 많이 줄 수 있는 방법이 타락이 없는 상태보다는 오히려 죄를 짓고 타락하는 과정을 거쳐야 더욱 우리를 더 크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되 가장 큰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롬5:15-20).

둘째는 하나님 없는 상태를 알고 난 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없는 상태를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안에 거하는 복을 느끼고 알게 하는 데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롬5:8, 히5:13-14).

따라서 죄라는 것은 그 용도가 악령과 및 오늘 죄를 짓는 인간들은 자기들이 좋아서 죄를 짓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는 그 ‘목적’을 위해 선히 사용하고 계십니다. 죄는 인간이 인간 차원에서 죄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는 그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이 없고 전부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필수품이요 필요품들입니다(롬8:28, 딤전4:4).

참고로, 이원론의 가장 큰 결점 중 하나는 인간이 인간 차원에서 하나님을 해석하는 것인데 특히 죄책을 두고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나서는 일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이해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쁜 일을 했을 리가 있겠느냐고 변호를 하겠다는 것은 그 뜻이 비록 가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좁게 생각했고 또 하나님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단 인간에게 어떻게 죄라는 것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두고 일원론과 이원론이 맞서고 있으며 이원론이 현재까지는 정통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은 상식으로 아셔야 합니다.


(3) 죄의 경로와 원죄

① 천사의 타락

유1:2에서 하늘의 천사들이 자기 본 지위를 잊어버리고 타락하던 모습을 알렸습니다. 그 타락한 당시 상황은 사14:12-15에서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또 ‘가장 높은 산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타락한 천사가 바로 창3:1에서 뱀을 입고 나타났고 5절에서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천사 악령의 본질입니다.

타락한 천사 악령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자기 위치를 버리고 자기중심의 존재가 되었으니 이렇게 스스로 자기중심을 가지고 살게 되면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 자리입니다. ‘자기중심’이라는 자리는 하나님만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악령도 자기중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악령 자기에게는 하나님 대신 악령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존재가 하나님이 되면 하나님 자체로부터 삐뚤어진 존재가 되어 이후 그의 모든 행동은 전부 삐뚤어지게 되어 있고 그 존재 자체도 하나님과 삐뚤어진 존재입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의 존재가 된 것이 악령의 본질이요 이 ‘자기중심’이라는 것은 이후 인간에게 전해진 모든 죄의 본질입니다.

타락한 천사는 많은 천사를 통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를 따라 함께 하늘에서 내쫓긴 많은 천사들이 그의 부하로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죄는 이 타락한 대장 천사와 그 이하 모든 타락한 천사 전체가 협력하고 분담하면서 갖가지 조화와 작용으로 오늘까지 인류의 모든 죄를 만들고 있습니다.

② 아담의 범죄

악령이 세상으로 내어 쫓긴 다음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담이 선악과 하나를 먹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미 하늘에서 자기중심을 따로 가짐으로 범죄하고 타락하게 된 악령이 이제 이 땅위로 내어 쫓긴 다음 자기중심을 전염시키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으며 아담의 범죄는 그 첫 성공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를 아담으로 세웠기 때문에 하와의 범죄는 하와 한 사람의 범죄에서 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는 아담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계약에 따라 아담과 그 후손 전부에게 다 미치게 됩니다. 악령이 아담에게 자기중심을 전하여 전 인류를 자기중심으로 사는 존재들로 만들었습니다(롬5:12-19).

인간은 피조물로서 특히 하나님중심으로만 살도록 만들어졌는데 완전자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자기중심을 자기들도 각각 가지게 되었습니다. 완전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리를 불완전자가 앉게 되었으니 이것이 악령의 타락이 그대로 인간에게 전해진 결과요 그 타락의 본질은 자기중심입니다(창3:22).

③ 에덴동산 범죄와 원죄

▪ 악령의 타락과 아담의 연단

악령의 타락은 악령 스스로는 자기 의지로 타락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악령을 타락시켜 악령으로 아담을 연단하고자 했습니다. 좁게 보면 악령의 타락을 막지 못한 것과 에덴동산의 타락을 막지 못한 것을 두고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할 수 있지만 궁극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전부가 우리를 하나님께서 목표한 수준의 존재로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고 순서들입니다.

▪ 아담의 선택과 두 길

악령을 보내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로 망하는 길과 의로 사는 길을 각각 내놓고 선택을 하게 했습니다. 아담이 자기 자유의사로 자기 앞날을 결정하되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는 대신에 자기중심으로 살 수 있는 길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자기중심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죄는 지어도 복은 받아야겠다는 제 3의 길은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의하여 심은 대로 거두어야 하고 자기가 선택하면 그 결과를 자기가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갈6:7).

▪ 아담의 대표성

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선택은 아담에게는 자신의 일이었지만 아담은 장차 태어날 모든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롬5:12-19). 타락한 악령이 아담을 이기면 아담과 아담의 후손 그리고 이들에게 맡긴 우주 전체를 악령이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우주의 주인으로 세웠기 때문에 이기게 되면 진 자는 이긴 자의 점L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만일 악령이 지게 되면 아담은 악령을 그 부리는 점8로 삼아 다시는 인류에게 미혹을 줄 수 없도록 무저갱에 가둘 수 있습니다(요8:34, 벧후2:19).

아담이 범죄 하면 이는 아담의 직접 범죄이면서 동시에 아담에게서 태어날 모든 인류의 죄가 되고 이기면 아담의 승리가 되면서 동시에 그 후손 전부의 자기승리가 됩니다. 마치 예수님 한 분이 모든 택자의 대표로 오셔서 대신 십자가 승리로 우리를 구원했듯이 이곳 에덴동산의 첫 싸움도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아담이 대표로 하나님 앞에 창조된 직후 인간의 진로를 두고 악령과 마주선 것입니다.

아담은 악령에게 졌고 범죄 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아담의 범죄일 뿐 아니라 그 후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자기가 직접 지은 죄입니다. 이를 원죄라고 합니다. 인간의 첫 죄이며 인간 모두의 근본 죄입니다. 그리고 모든 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로 남의 나라 돈을 빌리면 일반 국민들이 돈을 빌린 그 자리에 간 적도 없고 도장을 찍은 적도 없지만, 차용증서에 대통령의 도장이 찍히는 순간 전 국민은 그 차용증서의 액수만큼 빚쟁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 시합에서 지게 된 팀은 그 팀의 패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패전이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악령은 승리했고,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아담과 아담에게 맡긴 모든 것을 악령이 넘겨받게 되었습니다(롬5:12-19).롬5:12-1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는즉 ...’

▪ 원죄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

아담의 범죄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유전설이라 하여 흑인이 흑인을 낳고 백인이 백인을 낳듯이 죄인이 죄인을 유전적으로 낳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너무 외견만 본 결과입니다. 또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들에게 아담을 대표로 세우고 아담의 죄에 동참한 죄를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하여 인정상 원죄는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신앙이 아니고 인간의 제안일 뿐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원죄가 우리에게 억울하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에도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죄 이상으로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될 수 있도록 대속의 대표 법리를 함께 내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예수님의 전적 은혜입니다. 그분이 우리가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수고와 희생을 했습니다. 구원받을 수고는 남이 했는데 그 구원의 혜택은 우리 각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택자를 위하여 택자를 대신하고 택자를 대표해서 악령과 십자가에서 싸웠고 승리했기 때문입니다(롬5:14-19).

원죄만을 놓고 보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 같으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본구원 은혜를 함께 놓고 본다면 이는 공평의 법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는 원죄의 손해를 무한히 넘어서는 측량 못할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그 구원은 범죄 이전으로 회복한 정도에 그치지 않고 2위 성자의 자리까지 높였습니다(엡2:4-6, 계3:21).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완전자로서 공평한 진리의 법으로 세운 길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길에 서서 걸어가도록 만든 우리를 복되게 하시려고 하나님 닮은 존재를 만드는 목적의 은혜를 미리 확정하셨으니 우리는 거저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복잡하게 두신 것은 이런 과정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정해놓은 길이니 그리 알면 복이 될 뿐입니다. 이런 법리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알려주시는 것이니 알려주시는 것은 알아야 또 복이 되기 때문에 살피는 것이고 배워서 알아가져야 합니다.


(4) 원죄

① 의의

원죄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지은 첫 범죄로 이후 아담에게서 태어날 모든 인간에게 출생으로부터 가지고 나오는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원죄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유전 때문이 아니라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지은 범죄이므로 이후 태어날 사람들에게는 동참죄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롬5:12).

출생 때부터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이 죄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며 또 각자가 자기 스스로 짓는 본죄를 더하여 각자 지은 죄의 양과 종류는 달라지고 지옥 형벌도 다 다르게 됩니다(계20:11-12).

② 본성

▪ 중심의 변화

원죄의 성질은 ‘중심’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에게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한 것은 선과 악을 정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것이니 인간이 손대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좋으면 하나님은 선이라 하고 하나님께 나쁘면 하나님은 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인간은 선으로 살아야지 악으로 살면 안 됩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는 것은 이 선과 악을 인간이 먹어 인간의 것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기 좋다고 선이라 하거나 또는 인간이 자기에게 싫으면 악이라고 하는 일을 금한 것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창2:17)

따라서 아담이 지은 첫 죄인 원죄의 성질은 중심을 누구의 것으로 하느냐, 무엇을 중심으로 삼느냐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아 살아야 할 사람이 자기를 중심으로 살겠다고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 첫 죄입니다. 그리고 이 죄는 앞으로 나타날 수없는 인류 각자의 본죄의 뿌리가 되고 발원이 됩니다. 비록 그 종류와 형태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인간의 모든 죄를 해부하여 분석하면 그속에는 자기중심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중심이 밖으로 나타나면서 여러 모습으로 보일 뿐입니다(창3:22, 삼상16:7).

▪ 인본주의의 하나님중심 반대

원죄와 관련하여, 왜 하나님은 하나님중심이라야 하고, 인간은 왜 인간중심이면 안 되는지를 반문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주로 계몽사상에서 내려오는 인문주의자들이 중세기 말부터 제기하여 오늘은 기독교 내에서도 완전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시각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완전을 중심하는 것이므로 완전을 향하는 복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게 되면 충돌 모순 착오를 통해서 자멸하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 중심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고대사회로부터 한 인간을 위해 다른 인간들이 고생하는 것이 인간사였는데 중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이 문제를 자각하게 되자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강제로 이용되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이 일어난 것입니다. 소위 인권이나 인간존엄성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이 운동이 지성인들로부터 급작스럽게 동조자를 얻게 되면서 오늘에는 무식한 사람에게까지 퍼지게 되어 오늘 인류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됩니다. 이를 인류사적으로 본다면 발전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발전사 속에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착취당할 수 없다는 표현을 귀신이 살짝 바꾸어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착취당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바꾼 다음 그 ‘다른 존재’ 속에 하나님까지 슬쩍 끼워 넣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왜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해야 하느냐는 몹쓸 표현까지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중심으로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사2:22, 욥25:6). 부족한 인간이 인간중심으로 살면 망하니까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중심으로 살면 영복을 받기 때문에 완전자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5세 유아를 독립시켜 자기중심으로 살라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유괴범일 것입니다. 귀신이 하나님 품안에 복되게 살고 있던 아담과 인류를 그 품 밖으로 데려나올 때 ‘자기중심’이라는 낚시미끼를 던졌고 아담은 그것을 물어버린 것입니다.

③ 범위

▪ 아담의 자손 전부

원죄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그 영향을 미칩니다. 택자든 불택자든 상관없이 원죄는 일단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만 택자는 그 원죄와 이후 짓는 본죄를 예수님이 해결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고, 불택자는 그 죄를 사하지 않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옥을 가게 됩니다(엡1:4, 2:3-4, 유1:4).

원죄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시에 입혀지기 때문에 출생이 아니라 모체에 생겨지는 순간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 과학의 발달로 어느 시점이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시점이냐는 것이 세밀하게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의 표현과 시력에 따라 변할 것 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순간이라는 정도로 확정을 해두고 더 이상의 구체적 시점은 자기 시대에 주시는 현실 속에서 신앙양심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요한이 어머니 뱃속에서 성령에 충만하였던 것을 기준으로 짐작하면 충분할 것입니다(눅1:41-44).

▪ 예수님과 원죄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사람으로 출생하였기 때문에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의 보통 생육법과 달리 마리아의 몸으로만 출생하는 특수 생육법으로 나셨습니다. 예수님이 특수 생육법으로 나셨다고 할 때 그 외부 모습은 아버지 없이 마리아로만 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특수 생육법의 내부 본질은 성령이 그 육체를 직접 만든 것입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려 사람을 만들되 부부가 만든 것이 아니고 성령이 예수님의 출생이 이루어지도록 직접 역사하셨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원죄가 없습니다. 히4:15에서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신 대로 원죄만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빌2:7에서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고 예수님으로 오신 그 인성은 원죄가 없습니다(마1:20).

예수님에게 원죄가 없어야 하는 이유는 그는 우리의 ‘구주’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죄가 있으면 예수님 자신도 지옥 갈 죄인이므로 다른 죄인을 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중에 원죄가 없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이 원죄 없이 출생하려면 예수님의 출생환경인 마리아도 죄가 없어야 한다는 가설을 세워 마리아도 원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만일 그렇게 되려면 마리아의 어머니도 원죄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죄가 없으신 것은 그 구성은 사람이지만 그 출생의 경로는 아담의 후손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만 왔기 때문입니다.

이 점 때문에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었습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인류 첫 조상입니다.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 한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라는 1차 창조에서 만든 인간 속에 새로운 2차 창조를 하실 것인데 그 2차 창조의 조상 자리를 예수님께서 맡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태초에 한번 창조된 인간을 겉사람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두 번째 창조로 만들어진 인간으로 이어져 온 속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롬5:14, 고전15:45).

④ 결과

원죄나 본죄나 죄는 꼭 같은 죄입니다. 본죄는 원죄의 결과를 더욱 중하게 만드는 것이지 본죄 때문에 원죄와 다른 결과가 더 추가될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죄를 살필 때 원죄를 중심으로 살피는 것은 모든 죄의 속성과 해독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 단절

죄는 삐뚤어진 것이니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과 삐뚤어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삐뚤어지게 되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집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사람에게는 생명인데 인간이 죄를 짓자 하나님과 끊어졌고 즉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롬6:23).

물론 뱀은 죄를 지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고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먹은 뒤 아담은 930세까지 잘 살았습니다. 결국 죽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죄의 값은 즉시 사망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한 것이 중요합니다(창2:17).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바로 죽은 것은 아담의 몸과 마음이 아니라 아담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자 영은 즉시 죽어버렸고 이제 사람의 영 대신 악령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붙들고 그 심신이 세상에서 소진될 때까지 붙들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영이 죽은 인간은 죽었다고 해야겠는가 살았다고 해야겠는가? 하나님을 기준으로 본다면 죽었고, 사람을 기준으로 본다면 몸과 마음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으므로 즉각 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아담이 하나님 말씀대로 즉각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보고 하나님 기준에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뭇가지가 꺾이면 그 순간 그 가지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은 그 후에도 며칠 동안 파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뿌리에서 끊어진 면으로 보면 꺾이는 순간 그 가지는 즉사했고, 가지가 이미 받아 가진 영양과 물이 소진되지 않았다는 좁은 범위로 보면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창3:4).

▪ 부패

죄로 하나님과 끊어지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내려오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과 새 은혜는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데 하나님과 끊어졌으므로 인간에게는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이 점점 부패해지게 됩니다. 끊어진 가지가 썩어서 색깔이 바뀌고 조직이 부패해지고 줄어들고 결국은 거름이 되고 땅 속에 흩어지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끊어진 즉시 그 생명은 죽었고 그 심신만 남아서 움직이는데 그 움직이는 행동이 전부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뿐입니다. 따라서 영이 죽은 상태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이 생각하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송장이 더욱 썩는 것과 같고 상한 음식이 더욱 상한 것과 같습니다(렘17:9).

하나님 없는 인간이 오늘까지 이루어놓은 문화 건설이나 과학 개발, 또는 종교 철학 할 것 없이 아담 이후 안 믿는 인간이 인간 단독으로 이루어놓은 것 치고 죽은 것과 썩은 것에 속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신앙이라면 세상 문화운동이나 시민운동 또는 인권과 정치와 타종교와의 연대 등을 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네 사람들이 공동묘지에 안장한 시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접촉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은 죽었고 우리는 살았기 때문에 죽은 그들에게 우리처럼 산 자가 살게 된 길을 따라 살자고 전도를 할 뿐입니다(마9:17, 요15:19, 요일2:15).

▪ 형벌

죄의 값은 영원한 지옥에서 받습니다. 현재 이 물질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된 육은 자기가 지은 죄값을 다 받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세상의 모든 고통은 지옥에서 본격적으로 죄값을 받기 전에 오늘 세상에서 지옥의 형벌의 맛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불택자들에게 지옥 형벌을 받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천국 갈 우리 택자들에게 세상에서 죄의 그림자를 구경하게 하여 죄를 멀리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영원히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이 세상에서 받고 있는 죄값은 안 믿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 삶 그 자체 전부입니다. 인간은 인간 제 나름대로 이런 것은 싫고 저런 것은 좋으니까 싫어하는 일을 당하는 것은 지옥 죄값의 그림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떠서 잘 살펴보면 인간이 참으로 울어야 하는데도 몰라서 울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쨌든 잘못 알고 잘못 느낀다고 해도 인간이 행복으로 느끼는 것을 통해 지금 세상에서 천국의 일부 그림자를 나타내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천국의 진정한 그림자는 믿는 사람이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아 가지고 누리게 되는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질병, 이별, 실패, 미움, 전쟁 이런 모든 것이 지옥의 고통입니다. 죄 값입니다. 죄의 값을 잘 보고 계산하여 영원히 후회할 일을 오늘 막고 있습니다. 오늘 땅 위에 인생들이 싫어하는 모든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옥의 모습입니다. 지옥의 축소판이며 그림자기 때문에 세상의 불행을 곱해보고 그 속성을 새겨보면 지옥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알고 보면 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막9:43, 47-48, 계14:11).

▪ 지옥

죄의 값은 영원히 지옥에서 당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존재나 역사가 없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일이 없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생겨져서 하나님으로 살아가야 할 존재에게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영원히 죽지는 않게 되는 곳이니 그 형벌은 오늘 우리로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형벌은 세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몸과 마음을 부활시켜 신령한 몸과 마음이 되면 이 물질계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죄 값의 실상을 영원히 당해야 합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눅16:23-24, 막9:48, 계14:11).


(5) 구원의 언약

① 목적 안에서 결정된 구원 언약

▪ 타락한 아담에게 주어진 약속

인간의 첫 범죄는 아담의 에덴동산 선악과 먹은 것입니다. 그 죄를 짓기 전에 이미 그 죄를 지은 다음 그 인간을 구원할 하나님의 구원 예정은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 나타난 첫 약속은 창3:15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악령의 역사를 깨뜨리겠다는 약속이고 그 다음 21절에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힌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날 예수님을 미리 가르쳤고 또 가죽옷은 짐승을 죽여 인간을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위해 그분이 대신 죽고 그 죽음으로 우리를 보호한다는 것이니 곧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 타락 전 창조 때부터 만들어진 지옥

인간의 범죄가 만일 하나님께서 알지 못한 일이 돌발된 것이면 위에 말씀드린 약속이 구원의 첫 약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기 전, 이미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만들 때부터 천국과 지옥을 나누어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다음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를 인지하지 못했고 아담의 범죄는 돌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지옥을 먼저 만들어두었다는 것은 아담의 범죄는 미리 예정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 하도록 했다면 잘못이고, 범죄 하는 것을 미리 아셨으나 그냥 내버려두셨다고 한다면 잘못이 아니라는 학설도 있으나 이는 타락한 인간 중에서도 가장 막가는 국법에서나 차이를 둘 정도이지 인간의 도덕 수준 정도로만 가지고 따져도 차이가 없는 죄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 먼저 천국을 만들면서 지옥도 함께 만들어 두었다는 것은 아담의 범죄를 예정했고 그 범죄에도 불구하고 구원하는 역사도 있을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마25:34, 41).

▪ 그리스도라는 이름

범죄 하기 전 미리 지옥을 만들어 둔 것으로 볼 때 인간의 범죄는 창조 이전부터 미리 예정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인간의 범죄가 ‘예정’이라는 순서보다도 그 이전임을 알게 합니다. 모든 존재의 순서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하나님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예정이 짜여졌고 그 예정대로 창조한 것입니다.

이 존재 순서 중에서 하나님의 자존 다음이 목적이므로, 하나님 한 분 외에 가장 먼저 존재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될 우리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닮은 하나님의 목적 대상인 우리를 목적할 때 엡1:4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 대상으로 택하고 또 예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원의 이름입니다. 즉 하나님의 목적은 그 목적을 정할 때부터 어떤 수준으로 만들며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를 만들 것인지를 미리 결정했습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3가지 뜻에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니,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우리가 온전하게 감당하도록 만들어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만들 목적 대상인 우리를 만들되, 하나님 없는 세계를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 자세한 일정이 예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로 한 약속은 창3:15로부터 예수님이 육체로 오실 때까지 계속되고 또 그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며 오늘에까지 적용되고 있는데, 이 모든 순서 중에 가장 중요하고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실 그때부터 이미 우리의 범죄, 그리고 그 죄로부터 구원한다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엡1:3-6).


(6) 본죄

죄의 발생을 기준으로, 원죄를 뿌리라고 한다면 그 뿌리로부터 돋아나온 원죄 이후의 모든 죄는 ‘본죄’라고 합니다. 본죄는 비록 원죄 하나에서 시작되고 발전한 것이지만 그 외부 모습은 마치 나무둥치 하나에 무수한 잔가지와 잎들이 나뉘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고 많습니다. 이렇게 수없는 종류의 죄들은 바로 우리가 믿은 이후 죽는 날까지 싸워야 하는 적들입니다. 적의 종류와 특성 등을 세밀히 알면 죄에서 돌이키고 또 그 죄와 싸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 기억할 것은, 본죄를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그 종류와 모습이 너무 많고 또 간단하게 설명하려면 앞서 설명한 ‘죄론’의 기본적 이해를 통해서 본죄까지도 원리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본죄의 종류와 모습이 아무리 무수하다 해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앞서 설명한 죄론의 기본 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교리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또 그 내용도 간단한 것은 없지만, 본서는 요약서라는 점에서 교리의 자세한 면을 다 살피는 것보다 교리 전체 체계의 균형적 이해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죄 관련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따라서 본죄에 대한 개론적 이해는 여기 ‘죄론’에서 설명한 내용을 참고하시고, 이후 자세한 설명은 ‘조직신학 전권(全卷)’에서 따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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