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역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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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5:52
(2003.9.30.초교, 04.03.29. 최종 출간내용)
(3) 예정
① 예정의 정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그 세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한 것입니다. 예정은 앞으로 존재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 하나 하나의 발생과 그 만물의 움직임 전부를 미리 다 정한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마10:29-30, 눅12:6-7, 엡3:11).
② 예정의 범위
시간적으로는,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 하나님 혼자 계시던 자존의 세계에서 예정을 정했으니 영원 전에 시작된 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이 세상 만물뿐 아니라 재림 후 영계의 영원 후까지를 전부 예정했습니다.
종류적으로는 택자만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불택자까지 전부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과 식물 같은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인 먼지 하나의 움직임도 전부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 활동뿐 아니라 그 생각까지도 전부 예정되어 있으며 그 인간의 의로운 행동뿐 아니라 그 인간이 하나님을 거슬려 죄를 짓는 행동까지 전부 예정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정의 범위에 ‘절대’라는 표현을 붙여야 합니다. 즉, 예정은 절대예정이 옳습니다.
혹,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하나님의 예정은 제한적 예정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택자는 예정을 했으나 불택자는 예정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전체적으로 큰 범위는 예정을 했으나 그 큰 범위 내의 작은 일들은 예정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태어나서 대학교까지 공부를 하게 되고 그 후 장사를 하다가 중년에 믿게 될 것이라는 정도는 예정이 되어 있고 그 중간 중간의 작은 사소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 자유에 맡겨놓았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정의 성질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큰 것이 예정되려면 그 큰 것의 구성 요소가 되는 모든 사소한 것 전부가 예정되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세상만사가 크고 작은 일들로 나뉘어져 발생하고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차분하게 따져보면 한국의 어느 한 아이의 출생이 미국의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 몰아치는 태풍 하나가 오늘 과학으로는 한국 인근의 기상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같아도 앞으로 세계 모든 기후 여건을 완벽하게 측정해 낼 수 있게 된다면, 이 지구상의 어떤 공기 입자 하나도 간접 또는 간간접으로라도 한국에 상륙하는 태풍과 어떤 형태로라도 연관이 있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자만 예정을 하고 불택자는 예정에서 제외되었다는 이론도 마찬가지로 배척이 되어야 합니다. 택자와 불택자가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이상, 택자와 관련된 것이 예정되었다면 택자들과 어떤 형태로라도 불택자들은 연결이 되고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불택자들의 모든 것도 예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남한의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면 북한의 모든 것은 예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남한의 6.25상황이 예정되었다면 북한의 남침에 관련된 것은 완벽하게 예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북한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북한이 6.25전쟁을 1년 뒤로 미루거나 1년 앞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한의 6.25는 예정대로 발발될 수 없고 그리 된다면 남한 내 모든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또 과거가 예정되었으면 미래도 예정되었다는 뜻이니 시간적으로 어느 한 순간이 예정되었다면 모든 시간에 관련된 것은 다 예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정은 시간적으로 범위적으로 사건적으로 관련 대상으로까지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③ 예정과 구원
모든 것이 예정이라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잘잘못이라 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동물의 이름을 짓게 했으니 아담이 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잘한 일입니다. 아담의 범죄도 하나님께서 범죄하도록 예정해서 주권능력으로 범죄하게 만들었으니 아담의 범죄라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처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과 멸망, 죄와 의, 선과 악이라는 정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반론이 있습니다.
예정의 범위가 절대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인간의 구원에 관련된 선행과 의로운 일들은 예정의 순연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멸망은 예정의 불연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기준에 순연의 예정이 구원이고 불연의 예정이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행하게 예정하고 죄짓는 예정을 했다면 그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이를 예정의 불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 사람이 잘한 것이 아니고 순연의 예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와 멸망은 그 책임자가 전적 하나님이라는 모순을 지적하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즉 상관이 부하를 명령하여 살인을 했다면 그 상관도 그 부하와 함께 살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칼을 들고 살인을 했다면 칼에게는 아무런 죄책임이 없게 됩니다. 칼은 자기 의사가 없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정이 절대예정이라고 한다면 사람에게 어떻게 죄책을 지워 지옥 형벌로 갚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반론의 요지입니다.
이 반론은 하나님의 차원과 인간의 차원을 같은 차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오해가 된 것입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한가로운 한 폭의 그림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자가 소를 뜯어먹고 있다면 징그럽게 볼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고 있다면 눈뜨고 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치와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절대예정으로 죄를 짓게 하고 그 결과 죄를 지었다 해서 그 죄값으로 지옥 형벌을 가하고 또 하나님께서 절대예정으로 의롭게 살게 하여 복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며, 우리 인간은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이런 처분을 인간들이 모여 잔인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라는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만일 인간들끼리 모여서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일방적인 하나님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우물 밖의 세상을 자기들 희망사항으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한다고 해서 우물 밖의 세상이 그렇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의 우매무지함을 나타낼 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알려 주시는 대로 그대로만 알면 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추론과 사변은 이상한 종교를 하나 만들뿐입니다(사45:9, 렘18:2-6, 롬9:19-21, 행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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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
엡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렘18:2-6 ‘...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행17:21-22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