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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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5:51
(2003.9.30.초교, 04.03.29. 최종 출간내용)
1. 하나님에 대한 존재론
(1) 인식
① 심리적(자연적) 인식
▪ 사람의 인성구조
모든 사람의 심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합니다(롬1:19).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과 접촉하도록 만드신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영물을 접하고 영물은 하나님을 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는 물질로 된 몸과 마음이 있고 영물로 된 영이 있는데, 몸은 마음에게, 마음은 영에게, 영은 하나님과 접촉하고 연결되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롬8:14-23).
몸이 먹고 입는 것에 불편이 없어도 마음에 고장이 나거나 마음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이상이 생깁니다. 마음도 영과 관계가 그렇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되면 즉시 모든 기능이 완전 중단되면서 육으로 말하면 사망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립니다(엡2:1, 창2:17).
▪ 믿는 사람의 인식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몸과 마음과 영이 완벽하게 하나 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이런 상황은 에덴동산에서 한번 있었습니다. 현재는 중생된 사람과 아직도 영이 죽어 있는 불신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영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정상대로 신앙생활을 할 때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롬8:16). 그러나 믿는 사람이라 해도 그 마음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으면 자기 영과 연결이 끊어져 있게 되는데 이런 상황은 마치 안 믿는 사람이 죽은 영 때문에 영 없이 사는 마음과 같은 상황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성경이 표현하는데, 믿는 사람의 마음이 안 믿는 사람처럼 영과 끊어져 있을 때는 자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중생의 생명은 가지고 있으나 그 모습은 죽은 자와 같다는 뜻입니다(마26:41).
▪ 불신자의 인식
자기 영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사람이 영과 끊어진 상태, 즉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신앙이 없는 상태로 있을 때도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접촉하는 영과 우리 마음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면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직접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접촉해야 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전혀 접하지 못하게 되면 그 마음은 다른 무엇으로 채워도 만족을 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영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 나선다 해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의 상태는, 비록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면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윤곽을 짐작하게 됩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받거나 구원으로 진행되는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역할 하나님의 모습 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종교와 미신들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 없는 아이가 비록 그 부모를 본 적은 없고 말한 적은 없지만 부모라는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허전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부모를 그리워하게 되는 심리가 생깁니다. 바로 이런 심리 활동을 통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이들과 같은 차원에서 인식하지는 못해도, 부모가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면을 보면서 바로 그 자리가 부모의 자리이며 그 빈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어떤 존재라야 한다는 것을 그려보게 됩니다. 이 정도 인식은 인간은 영이 죽었다 해도 가지고 있게 됩니다.(행17:22-23)
② 합리적 인식
사람은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고 살펴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의 이성 판단력이 우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들 때 사람이 자기의 이성 판단력을 가지고 노력하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물을 그렇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롬1:19-20에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행17:22-27에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리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일반 양심으로 일반 상식으로 일반 통찰력으로 살펴본다면, 구원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나 세상은 그 만드신 분이 계시고 그 분이 운영하고 계신다는 흔적은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고 또 우리에게는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이성을 주셨으니 이를 하나님에 대한 ‘합리적 인식’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여러 종교들이 있고 많은 미신들이 있으며 또 무신론자라 해도 진정한 무신론자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합리적 인식 때문입니다. 이 인식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찾기 전까지는 인생에게 어떤 것으로도 만족이 없고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③ 성경적 인식
성경이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물론 안 믿는 사람은 성경을 세상에 있는 많은 서적 중의 하나로만 상대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그 성경을 기록한 성령이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심리로도 느끼고 또 만물의 이치를 따지는 이성으로도 느끼게 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눅24:27, 요5:39).
그분의 본질 성격 활동 역사 목적 등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성경을 통해 다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서 ‘계시론’에서 이미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2) 존재론
① 완전의 본체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하나님을 ‘완전‘이라고 할 때 이를 해석하고 연구하려면 한이 없겠지만, 현재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신앙 수준에서는 다음 몇 가지를 특별히 염두에 두고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완전’의 특별한 의미
‘완전’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완전’이라는 표현이 하나님께 해당될 때는 특별히 조심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완전’이라는 표현은 과장을 했거나 아니면 어느 한 면을 잠깐 보고 표현한 것입니다. ‘완전’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에는 비록 단어는 인간 것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시간적으로도 항상 완전해야 완전한 것이고, 공간적으로도 어디서든지 완전해야 하고, 종류적으로도 해당되지 않은 것이 없어야 진정한 ‘완전’입니다. ‘완전’의 의미를 이렇게 본다면 실은 완전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만 해당됩니다(마5:48, 삼하22:26).
▪ 무형의 존재
하나님은 완전이므로 형체가 없습니다. 물체뿐 아니고 영체까지도 없습니다. 형체라는 자체가 일점G 제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든지 존재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그 어떤 식으로든지 형체가 있겠다고 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폐단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를 완전으로 깨달아 그 형체가 없다는 것을 확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요1:18, 5:37, 골1:15, 딤전1:17, 6:16, 요일4:12).
▪ 부족이 없는 존재
어떤 면으로든지 아쉽거나 빠진 것이 있다면 완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계실 때,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불편했거나 아니면 아쉬운 것이 있었던가? 그래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이런 의문을 가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자이므로 홀로 계신다고 해서 인간이 홀로 있으면 외로운 것처럼 외로움을 가지거나 다른 존재가 없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되어 우리를 만들거나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행17:25, 롬11:34-36 욥41:11, 시50:11-12)..
② 사랑의 본성
사랑이라는 단어는 준다는 뜻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받지 않고 주기만 할 때를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분의 본성이 어떤지를 아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 본체가 완전이라면 그는 줄 수만 있지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그 본체가 완전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살펴볼 때는 특히 다음 몇 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 줄 수만 있는 존재
연보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받을 수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 눈에는 우리 돈이 하나님께로 넘어갔다고 보지만 그 분은 완전자이므로 그분을 상대하고 접하는 우리에게 주시기만 하는 분입니다. 연보를 드리는 것은 우리 보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실은 하나님께 대하여 주시라는 청구서입니다(고후9:8-10).
완전이라는 존재는 그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존재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존재로부터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행17:25, 롬11:35-36, 욥41:11).
▪ 창조도 사랑의 표현
하나님께서 세상을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습니다. 만물 창조는 하나님의 행위인데, 그 창조의 주체가 바로 완전자입니다. 완전이라는 존재가 움직여 만든 것이 창조라면, 이 창조는 완전이라는 본체의 행동이니 완전의 행동에는 사랑의 본성이 스며있습니다. 만물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은 만물은 그 하나하나가 완전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무엇입니다(시119:91, 145:9-10, 골1:16-20, 엡1:22-23).
▪ 최고의 사랑, 유일의 사랑
완전이라는 본체를 가진 하나님께서 다른 존재를 만들어 그 존재에게 완전자가 가진 모든 것을 주기로 작정을 했으니 이를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곧 ‘성도’라고 하는 우리를 만들되 이 존재가 완전자 자신과 꼭 닮아 완전자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완전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이 존재에게 주기로 작정하고 움직이고 있으니 이것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요 그 목적 성취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구원입니다. 이것이 완전자의 유일한 사랑이요 그 이상이 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엡1:3-6).
③ 거룩의 본질
완전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이 된다는 점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되고 이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완전인데 그 움직임이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이라는 본질을 가진 하나님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거룩이라는 뜻은 깨끗으로 흔히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깨끗이라는 결과에 이르려면 구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구별하여 깨끗하게 만드는 하나님입니다.(레11:44-45)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향하여 섞임 없이 진행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 전부는 바로 구별을 통해 원래의 것이 원래의 것으로 드러나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살펴본다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 ‘거룩’이 구별로 사용되는 이유는 최고의 존재를 만들기 위함
하나님께서 우리를 50점짜리로 만들 수도 있고 10점짜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완전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로 만들려고 목적을 정했습니다. 이는 완전자이며 또 사랑의 본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완전자가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주어 가장 훌륭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인간에게 자유성을 주었고,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되게 하고 그 존재에게 타락이라는 과정을 주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타락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존재가 되려면 ‘거룩’이라는 성질은 특별히 필요합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죄와 의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깨끗해지는데 그 깨끗해지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닮는 과정입니다(눅15:11-32, 벧전1:15, 레11:44-45, 20:26).
▪ 생전의 투쟁은 필연
하나님께 받아 하나님을 닮는 과정을 크게 둘로 나누면 이 세상과 다음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과정에서는 타락과 그 타락으로부터 원상에 돌아오는 단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과정 때문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잘못된 것 더러운 것 해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 놓았습니다(잠16:4).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틀린 것 악한 것으로부터 옳고 바른 것을 구별하는 본질적 역사가 쉬지 않아야 합니다. 즉, 완전자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이 세상에서는 특히 우리에게는 구별이라는 본질을 가진 하나님으로 역사합니다(벧전1:16).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는 오늘 세상에서 준비하고 마련한 구별을 통해 얻어진 깨끗을 점Z로 삼아 영원히 하나님을 향해 닮아가는 성장의 단계만을 가지게 됩니다(고전13:13, 딤전6:19). 하나님의 본질이 거룩이라는 면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서 이 세상에서는 구별로,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깨끗으로 계속됩니다.(레11:1-8, 겔44:23)
(3) 속성
① 속성의 의미
▪ 속성으로 파악되는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존재 모습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그 본체가 완전이므로 어떤 종류의 형체나 모습도 없습니다(딤전6:16). 그렇지만 그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분의 행동은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경이 알려 주셨기 때문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그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속성의 종류는 기준에 따라 여러 분류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12가지 분류법을 따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상대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앞으로 자라가야 할 방향이며 목표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49, 골3:10).
▪ 공유와 비공유 속성
12가지 속성 중에 하나님만 가지신 ‘비공유’ 속성 4가지는 ‘자존’ ‘완전’ ‘영원’ ‘단일’이며, 인간도 모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유’ 속성 8가지는 ‘지식’ ‘지혜’ ‘선’ ‘사랑’ ‘의’ ‘거룩’ ‘진실’ ‘주권’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에서 이렇게 분류하고 설명해 오지만, 사실 비공유 속성도 좀더 정밀하게 분류하자면 공유 속성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마치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같을 수 없는데 지식이라는 단어가 같기 때문에 큰 범위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생된 우리에게는 비공유 4가지 속성이 중생 이후부터는 우리에게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면으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자존성이라는 것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도 미래적으로는 자존성에서 발원된 존재로 살 것이고(엡1:23), 또 완전도 하나님의 완전은 아니지만 그림자와 같은 모형적 부분적 일시적 완전은 가지고 있습니다(마5:48). 또한 중생된 사람 속에는 영원불변을 향한 걸음이 시작되고 있으며(살전4:17, 히13:27-28), 단일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딤전1:17). 따라서 공유와 비공유는 큰 의미는 없지만 일반 신학의 기초 상식이므로 잠깐 소개했습니다.
② 속성 12가지
▪ 자존
자존이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자존’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의미는 첫째로 하나님은 스스로 원인자로만 계신다는 뜻이고, 둘째로 시간적 의미로 살필 때는 영원 전부터 계신다는 뜻이며, 셋째로는 신앙문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항상 하나님의 ‘자존’으로 전부 이해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 우선 하나님은 누가 만들어서 존재한 분이 아니며, 어느 순간부터 발생한 분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이 전부이며 하나님 한분만 계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한분 외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되었고 하나님만이 원인입니다.
둘째, ‘자존’을 우리 인간들이 사용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그 연대를 측정한다면 달리 표현할 수 없어 ‘영원 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존재시기를 살피는 것은 원래부터 곤란한 문제입니다. 이유는,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 함께 만든 것이고 하나님은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시기를 표현하는 것은, 비록 적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린 신앙의 어린 수준에 맞추어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을 가지고 굳이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영원 전’에 계셨고 ‘영원 후’까지 계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존’의 의미가 우리에게 실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알아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모든 문제는 항상 하나님의 ‘자존’에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계셨고 그분이 만들어서 모든 것이 다 나왔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와 인간과 사건과 움직임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며 그 배후가 하나님이며 그 내면은 전부 하나님의 자존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출3:14, 계1:8, 22:13).
▪ 완전
완전은, 부족이나 흠이나 잘못이 없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본체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완전이라는 표현은 넓은 의미이고, 여기 속성에서 표현할 때 완전은 그 범위가 좁은 차이가 있습니다. 완전에 대하여는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흔히 12가지로 표현하지만 만일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자존하신 완전자’라고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줄일 수 있는데도 ‘완전’이라는 속성을 포함하여 12가지 면으로 펼쳐서 하나님을 살펴보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최대한 자세하게 연구해야 우리 신앙현실에서 모든 것을 명확하게 상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5:48, 삼하22:26).
▪ 영원
하나님의 속성을 ‘영원’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영원불변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과거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 전 자존하신 분이지만 그 진행될 앞날의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히 변치 않을 불변자입니다. 그분 자체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므로 영원성을 가진 분이고 그분의 말씀도 결정도 행동도 모두가 영원성입니다. 그분 자체가 영원성의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에 속한 모든 것은 전부가 영원성입니다(히13:8, 약1:17).
▪ 단일
단일이란 하나라는 뜻입니다. 단순하다는 의미도 있고 모순이 없다는 뜻도 있으며 혼선이 없고 변경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뉨이 없고 단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일의 하나님입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별개가 아닌, 한 하나님이시며, 삼위로 계시지만 일체이신 한 분 하나님이시고, 진노할 때와 웃으실 때도 하나님은 동일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며 또한 그 하나님의 마음도 역시 동일하지 딴 마음을 먹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인데도 우리를 대할 때 모든 면이 항상 달리 보이는 것은, 하나님은 늘 동일하신데 우리가 왼쪽으로 삐뚤어져 나가면 우리를 오른쪽으로 끌어들이시고 또 오른쪽으로 삐뚤어져 나가면 왼쪽으로 끌어들입니다. 누구에게는 왼쪽으로 오라하고 누구에게는 오른쪽으로 오라 하지만 실은 하나님은 단일이고 그 말씀도 단일이고 그에게 속한 모든 것도 다 단일입니다(신6:4, 고전8:6).
▪ 지식
하나님은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다 알고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지식은 지혜와 가장 가깝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대하여 아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자존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영원불변의 단일성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특별히 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전지라고 표현할 때 이 전지는 우리 인간 수준에서 전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두어야 합니다. 사람치고는 모르는 것이 없다 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이 지식 면으로 나타난 전지이니 이 전지는 참 전지입니다(롬11:33, 삼상2:3, 겔11:5).
▪ 지혜
지식 중에서도, 특별히 미래에 관련하여 아는 지식을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다 아시니 이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를 지을 때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혜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지혜는 주로 지식과 함께 늘 사용되면서 지식은 과거를, 지혜는 미래를 아는 면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지혜는 늘 지식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롬11:33, 시111:10).
지식과 지혜는 서로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무지하여도 하나님께서 과거 지나간 것은 거의 알려주시는데, 다가올 미래는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려 주지 않으시는 미래는, 지나간 과거에 알려주신 지식을 사용해서 알게 합니다. 따라서 지나간 지식을 무시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에게서는 지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함께 알고 있는 과거사에서 앞날을 알고 상대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법입니다. 이렇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움직일 때 지나간 과거를 보아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지난 과거를 움직여 왔고 또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알던 것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는 것에 대하여 조금도 착오나 차이가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갔다고 하나님 기억이나 느낌이 흐려지는 일이 없고 앞으로 닥쳐 봐야 알고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지식’과 ‘지혜’로 따로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되 ‘지식’과 ‘지혜’면으로 각각 따로 알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롬11:33, 시111:10).
▪ 선
선은 ‘중심’이라는 면을 두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선’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고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좋으면 하나님의 ‘선’입니다.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말씀은 ‘선’과 악은 하나님의 것이니 인간은 선과 악을 자기 것으로 취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 반론을 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자기에게 좋으면 선이고 자기에게 나쁘면 악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좋은 것은 선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 중심에 하나님께 좋은 것만 선이 되어야 하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볼 때 하나님께 선한 것을 혹 반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선을 악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이 세상 살아생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런 표현을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무궁토록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선입니다.
불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혹 교회까지도 그들처럼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에게 좋은 것을 선이라고 정의한다면 기독교는 인본주의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 전체가 공통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까지도 선이라 하고 공통적으로 나쁘게 보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데, 이런 선악의 개념은 세상이 말하는 것이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과 악에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좋으면 성경이 말하는 선이고, 그 반대는 악입니다(창2:17, 마20:14-15, 막10:18).
▪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본체와 본성을 살펴보면서 ‘사랑’은 준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므로 그 본성이 어떤 상대를 접해도 주기만 하지 받는 수는 없습니다. 대가 없이 준다는 면을 강조할 때는 ‘은혜’라 하고, 준다는 점과 함께 감정까지 포함하면 ‘사랑’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주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 이상의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이 사랑과는 비교할 사랑도 없으니 우리를 구원한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요일3:16, 요일4:8-10).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의 종류로는 남녀가 사랑하는 이성의 사랑이 있고, 같은 종류라 좋아하는 우정의 사랑이 있고, 출산으로 생기는 혈육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3가지 사랑은 얼른 볼 때 조건 없이 주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이고 있어 ‘사랑’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사랑들은 외모만 사랑처럼 보일 뿐입니다(고전13:1-8).
인간에게 있는 것 중에 그래도 다른 존재를 위해 가장 자기를 많이 내놓고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제 설명 드린 3가지를 흔히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사랑들’을 성경의 하나님 ‘사랑’과 혼동하여 그 이름이 같고 그 외모가 비슷하다 해서 아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현대 교회로 진행되면서 아주 일반화되었습니다. 기독교를 흔히 사랑의 도라고 하는 정도인데, 사랑이라는 단어를 혼동해버리면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기독교의 타락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남녀 이성의 문란 때문에 내부적으로 썩어들어 가는 이유도 대속의 사랑을 남녀 이성의 사랑과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불신 사회와 교회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것도 대속의 하나님 사랑은 잊어버리고 인간들이 아는 사랑이 성경의 사랑인 줄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와 교회가 교리와 신앙노선에 대한 비교 구별도 없이 무조건 통일운동으로 달려가는 것도 사랑을 혼동한 결과입니다(고전13:1-8, 요일4:10).
▪ 거룩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 ‘거룩’에 대하여 앞에서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며,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록 타락한 사람에게는 쓸 만한 것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흉내만 내더라도 ‘구별’이라는 것은 좋은 장점입니다. 잘 믿을 수 있는 요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구별의 하나님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한 만물이 하나님의 신성을 따라 움직여지고 존재되도록 하시는 분임을 알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만물과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위치가 있고 사는 법이 있습니다. 바로 그 원 상태로 돌아오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거룩’성입니다. 그렇게 돌아오게 만드는 과정에서 항상 ‘구별’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속성 중 ‘거룩’성 때문에 우리는 만물을 상대하고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길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아닌 것을 그냥 둘 수 없고 혼잡한 것을 방치하지 않습니다(고전14:33). 이것인지 저것인지 반드시 따지는 분입니다. 그리고 종류대로 분류하여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고 또 그 보응과 보상을 하는 분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류하여 옳은 것은 천국으로 그른 것은 지옥으로 보냅니다. 비록 아들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따져서 그 죄인의 죄 값을 따져서 전부 갚게 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깨끗해진 다음에 다시 아들로 거두는 분입니다(겔44:23, 사5:16).
▪ 진실
진실은 다른 말로 ‘참’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밖에 없는 참이고 하나님의 결정도 그 행동도 전부가 참입니다. 하나님은 참이지만 우리가 그 참을 찾아가는 길은 참이 아닌 여러 가지 거짓된 것을 다 구별해서 걸러내야만 하기 때문에 진실은 거룩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시간을 기준으로 과거를 아는 것과 미래를 향한 것으로 구분한다면, 거룩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진실은 거룩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거룩’성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구별하여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그 어떤 것이든지 가장 옳고 바른 단 하나의 ‘참’을 알고 계시고 ‘참’을 찾으시니 이는 하나님의 속성이 ‘참’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완전자시므로 타락한 우리와 달리 거룩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거룩성과 진실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먼저 본받아 노력해야 하나님의 ‘진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먼저 거룩이 있고 그 다음 진실이 있습니다(계3:7, 19:11, 고후1:12).
▪ 의
옳은 것을, 의라고 합니다. 옳은 그 자체도 ‘의’라고 하지만 ‘의’라고 할 때는 그 옳은 것이 움직인 행동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롭습니다. 하나님은 옳으며 옳게 움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상대할 때는 우선 하나님 자체를 직접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옳습니다.
그분 자체가 완전이므로 완전이라는 본체에서 나오는 것은 전부가 옳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완전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뜻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의라고 하고, 그 의는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가, 타락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한 뒤에는, 하나님의 의는 변질된 인간을 다시 이전처럼 되돌려 하나님 앞에 옳게 살 수 있도록 역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리를 대신 한 ‘의’입니다. 예수님으로 오셔서 행한 모든 사활의 대속이 옳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옳은 의를 가진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 자체와 행위와 생활까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옳은 존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행동할 것까지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는 여러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의도 있지만, 죄인을 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가 ‘의’이기도 합니다. 또 구원받은 우리가 늘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의라고 합니다(요일2:29, 시7:9).
▪ 주권
주인이 가지는 권리를 주권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리를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권’의 하나님입니다. 모든 권리는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은 그 모든 권리를 절대적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주권을 좀더 자세하게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절대주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정도 또 그 예정대로의 성취도 하나님 혼자 권리를 가졌고 그 권리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국가에 대한 주권을 임금이 가지는 왕정정치, 국민이 가지는 민주정치 등에서 그 주권의 모습을 약간 볼 수 있으나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그림자요 참고일 뿐입니다. 하나님 주권은 완전자의 전지와 전능에서 비롯되므로 하나님의 주권에는 개미 한 마리의 수염이 움직이는 것까지 완전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마10:29-30, 대상29:11).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만든 태양 아래 하나님 만든 땅을 밟고 하나님 만든 만물을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물질계라는 우주 내의 존재만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밥을 짓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 먹게 했으니 이는 물질계 만물을 물질의 이치인 물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의 이치를 가지고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개발하든, 그것은 우리가 놀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로 봐야 합니다. 또 전혀 생각 못한 기술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은 물질계 이치를 인간이 또 하나 찾아냈다고 알면 되고 그 기술이 놀라운 기술이라면 그 기술을 찾아낸 인간에게 놀랄 것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물질계 안에 그런 물질의 이치를 미리 만들어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솜씨에 놀랄 일입니다. 지금 신학이 과학의 솜씨 앞에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이유는 물질의 근본개념을 잘못 알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마음이 물질이 아니고 영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 이유입니다. 그리고 ‘주권’이라는 이 하나님의 속성만 바로 알아도 이런 혼동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물질계 안에 있는 모든 물질과 영계의 영원 후까지 존재할 모든 존재에게 다 미칩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마치 하나님께서 주권을 잃어버리신 듯, 포기하신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권이 오히려 인간에게 있는 듯 보입니다. 인간이 만물을 하나님처럼 다 접촉하며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도록 주권으로 허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물질계라는 범위에서 우리는 특별히 과학 기술의 발달을 보며 인간의 힘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치 인간이 과학으로 만물에 대한 주권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시지만 그 범위는 물질계이지 영계는 아닙니다.
현재 물질계 안에서도 우리 중생된 영은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영계의 존재와도 같습니다. 이 영을 제외하고 몸과 마음이라는 것은 비록 신비하기도 하고 또 그 가치는 일반 만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물질로 된 물질계의 물질들입니다. 그리고 물질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인간에게 전권을 주다시피 했기 때문에 인간이 주권자가 된 듯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밀하게 보면 주권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과학을 이용하여 하나님 없이도 만물을 자유자재로 주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학의 놀랄 만한 기술도 알고 보면 타락한 인생들에게 이미 타락할 때부터 주신 물질계 범위의 것이니 아무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나무에게 물과 거름을 잘 조절하면 소출이 많아지고, 나무를 해치는 벌레를 잡아주면 그 생명이 연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심신도 그 영양과 필수품과 병충해를 잘 조절해 주면 그 심신이 물질이므로 물리에 잘 맞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여서 제삼의 점Z를 만드는 것은 현대 과학이 그 기술을 자랑하기 전부터 과거 고대인들이 다 알고 했던 일입니다. 점Z를 섞어 과거에 보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이 넘어갈 수 없는 하나님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을 했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실력껏 손을 댈 수 있는 물질계의 영역임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모든 주권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과학의 힘과 활동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느냐 하는 이 문제는 조직신학의 인론편에서 사람의 구성요소라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은 영물과 물질로 만들어진 유일한 피조물이므로, 물질의 이치가 닿을 수 있는 곳과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선을 연구하는 데에는 특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4) 삼위일체론
① 의의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두고 요약한 교리입니다. 설명을 조금 붙인다면, ‘하나님’은 제1위 성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또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신성 곧 제2위 하나님인 성자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또 ‘성령님’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영인 제3위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삼위일체론이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는데 이 세 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깨달음입니다(고전8:4-6).
② 역사
성경기록시대를 제외한 교회 역사에서 교리 확정을 위해 모였던 최초의 모임은 주후 325년의 니케아공회였습니다. 앞서 성경시대에 있었던 신약 최초 공회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공회였고 여기서는 구약과 신약의 변화 문제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공회는 사도들이 모인 자리였고 또 그 기록이 사도행전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 후 다른 공회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교회역사 시대 중 첫 공회였던 니케아공회는 교회가 오랜 박해를 마치고 신앙자유를 얻은 직후였으니, 교회의 박해가 끝난 것은 주후 313년이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음운동에만 매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단순히 받은 말씀으로 순교만 하면 되던 그 전 박해기와 달리 평화시 교회가 어찌 믿고 나갈 것인지를 두고 신앙노선의 방향을 잡는 공회였습니다.
교회시대에서 교리적으로 처음 크게 문제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신론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무엇으로’ 혹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판단의 근거가 선결되어야 하는데, 신구약 66권만이 성경이라는 확정이 이미 오래 전에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 공식 결의는 훗날 다른 공회에서 이루어지지만 교회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인 ‘성경’이란 무슨 책이냐를 두고 바로 깨닫는 데에는 따로 시간이 걸릴 것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전해진 책들 중에 성경으로 인정해야 하는 책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성경책’ 판별 문제인데 그에 비하여 신론은 그 성경책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성경 해석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문제나 저 문제나 다 같이 어렵게 보이겠으나 초대교회는 성경을 기록한 사도와 그 제자들이 교회의 중심인물로 실존하던 때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 문제는 사도들과 그 직계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격론에 붙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지금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지만 당시는 사도들이 없는 그 이후 시대였고 또 교회가 이미 신앙자유를 얻으면서 급속도로 속화되던 시기였으므로 뚜렷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 교리 논쟁은 지금까지도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교리 논쟁으로 늘 첫 제목에 올려지고 있으며 가장 난해하면서도 그 역사적 사실 확인도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주제입니다.
백영희 신앙노선도 주후 325년의 니케아공회가 요약한 삼위일체 교리를 전폭적으로 이어받고 있으므로 이렇게 중요한 교리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고 정통교리에서 가장 간략하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벌콥의 조직신학서 ‘A Summary of Christian Doctrine' 책의 내용으로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③ 벌콥의 삼위일체론 요약 소개
1. 삼위일체의 교리 개관
⑴ 이 교리의 진술
성경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는 삼위가 존재한다고 말씀한다. 이 삼위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세 분이 아니다. 즉 그들은 세 개체가 아니라 오히려 신적 본질이 그 안에 존재하는 세 가지 양상이요 형태이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 인격적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성질을 각각 가지고 있다. 성부는 성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반대로 성자는 성부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파송할 수 있다. 삼위일체 교리의 오묘한 신비는 삼위 중 각 위가 신적 본질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삼위의 테두리를 벗어나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순서에 있어서나 그들의 사역에 반영된 순서에 볼 때 삼위 중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 2위요, 성령이 제 3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3위는 본질상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종속되는 일이 없다.
⑵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명
a. 구약의 증거
구약에는 하나님께 한 위 이상이 존재함을 지적해 주는 성구들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복수로 나타내시기도 했으며(창1:26, 11:7), 여호와의 천사는 한 신적 위로 나타났으며(창16:7-13, 18:1-21, 19:1-22), 여호와의 영도 또 다른 하나의 위로 표현되었다(사48:16, 63:10). 이외에도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다른 두 인격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다(사48:16, 63:10).
b. 신약의 증거
계시가 진전되면서 신약은 더욱 명백한 증거들을 갖는다. 가장 유력한 증거는 구속의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부는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성자는 성령을 보내신다.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몇 개 더 있다. 즉 예수님의 명령(마28:19)과 사도의 축복(고후13:13)과 그 외 눅3:21,22, 1:35, 고전12:4-6, 벧전1:2에 잘 나타나 있다.
c.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이 교리는 종교개혁시대에는 쏘시니안 학파들에 의해 부인되었고, 오늘날에는 유니테리안 파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논박을 받는데, 그들은 삼위일체를 성부 하나님과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영이라고 칭하는 신적 영향력이라고 그릇된 주장을 한다.
2. 삼위의 개별적 고찰
⑴ 성부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만물의 창조자(고전8:6, 히12:9, 약1:17)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신32:6, 사63:16), 성도들의 아버지(마5:45, 6:6, 9, 14, 롬8:15) 되시는 삼위 하나님께 적용되는 말이다. 더 깊은 의미로 보면 성부란 말은 제2위와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제1위에 적용되는 용어이다(요1:14, 18, 8:54, 14:12, 13). 이것은 본래부터 아버지 격이므로 지상의 모든 아버지는 이것의 희미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성부의 독특한 특성은 그가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의 사역은 구속사업을 계획하시며,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며, 삼위일체를 구속의 계획 속에서 나타내는 일이다.
⑵ 성자
삼위 중 제2위는 성자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성자가 이러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성부의 독생자(요1:14, 18, 3:16, 18, 갈4:4)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메시야가 되기 때문이며(마8:29, 26:63, 요1:49, 11:27),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그의 특별한 탄생에 의한 것이다(눅1:32,35). 삼위 중 제2위인 성자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영원 전부터 성부에게서 출생했다는 것이다(시2:7, 행13:33, 히1:5). 영원한 출생에 의해서 성부는 신적 존재에 있어 성자의 인격적 존재의 원인이 되신다. 특별히 성자의 사역은 중재의 사명이므로, 그는 창조의 사역을 중재하셨고(요1:3, 10, 히1:2, 3), 또 구속의 사역도 중재하신다(엡1:3-14).
⑶ 성령
쏘시니안파와 유니테리안파와 현대주의자들은 성령을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이라고 말하지만, 성령은 분명히 하나의 인격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요14:16, 17, 26, 15:26, 16:7-15, 롬8:26). 성령은 지식(요14:26)과 감정(사63:10, 엡4:30)과 의지(행16:7, 고전12:11)를 가지신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이 말하시며, 탐구하시며, 증거하시며, 명령하시며, 계시하시며, 노력하시며, 중재하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또 그는 분명히 자신의 능력과는 구별되신다(눅1:35, 4:14, 행10:38, 고전2:4). 성령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생된다는 것이다(요15:26, 16,7, 롬8:9, 갈4:6). 성령의 사명은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창1:3, 욥26:13, 눅1:35, 요3:34, 고전12:4-11, 엡2:22).
[기억할 말씀]
⑴ 삼위일체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⑵ 영원한 출생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⑶ 성령의 발생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 벌콥의 삼위일체론 인용 -
④ 삼위일체론에 대한 보충 설명
▪ 목적 이전 자존세계의 하나님
하나님은 목적을 정하기 이전 홀로 계실 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셨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목적 이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목적을 정한 뒤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각 맡고 나설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존하신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목적 대상으로 삼아야 했고 또 그 일을 위해 삼위의 하나님으로 활동을 하셔야만 했느냐는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목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그렇게 할 일을 하나 정하신 것이지 목적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요가 있었거나 하나님 자체의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엡1:5). 그렇다면 하나님은 목적을 정하시게 되면서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당신을 나타내실 수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형식으로 하나님을 파악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존재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앞으로 필요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기 이전 자존 상태로만 계실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식으로 계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첫 사역에 해당되는 그 목적 세계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창1:26).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존하신 완전자였는데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시려고 목적을 하나 세우시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한 분 하나님께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그 역사를 각각 나누어 맡으셨으니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 구원을 두고 최종 계획 성취의 책임을 지신 성부 하나님과 그 실행의 중심에 있는 성자 하나님과 그리고 성자 하나님의 모든 작업을 실제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성취를 맡은 성령 하나님으로 그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마28:19, 요15:26).
▪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교리 형성 과정에서부터 일반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가 될 것 같지도 않을 정도로 어려운 교리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교리 학자들이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바가 많았기 때문에 쉽게 설명해도 될 것을 학문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어 결과적으로 그 설명이 어렵게 된 면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단을 막고 이단으로 나갈 수 있는 면을 조심하는 데만 지나치게 신경을 써다보니까 실제 교회 안에 자라나오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는 불편하게 된 면도 많습니다.
어떻게 이해를 하고 또 어떻게 가르쳐야 삼위일체 하나님을 무식한 사람에게도 쉽게 깨닫도록 할 수 있겠는가? 2천여 년 가까이 내려오는 정통 교리의 설명을 기초와 뼈대로 삼아놓은 다음, 그 바탕 위에서 일인 삼직의 삼역을 가지고 설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면서 동시에 이 세 분은 한 분 하나님입니다(마28:19, 고전8:4).우선 참고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각 한 분을 표현할 때 ‘완전한 한 분’이라는 뜻으로 흔히 ‘인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사용하는데 많은 불편이 있지만 너무 중요한 교리에 너무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우선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세 분 하나님 즉 삼 인격이 한 인격이 되고, 한 인격이 셋 인격으로 온전하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니 이런 설명은 물질계 인간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 외부 모습을 세상 속에서 찾는다면, 한 사람이 아들에게는 아버지로 또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또 부모에게는 자식으로 존재할 수 있으니 이 모습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는 가장 정확하고 또 쉬운 모습입니다. 단, 이 설명은 이 설명 자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까지를 설명한다고 말하면 일신론 이단의 한 종류인 양태론이 될 것입니다. 일신론인 양태론 이단은 하나님 한 분이 3가지 역할을 할뿐이라고 설명하는데 하나님 본체가 그렇다고 보기 때문에 이단인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본체를 두고 이 비유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나타난 외부 모습만을 보고 그렇게 비교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성도의 결합은 인간과 인간의 육적 결합인 부부와 같을 수가 없는데, 볼 수 없는 하나님과 신령하게 변화된 성도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 되어 살 그 모습을 이 세상에서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육적 부부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육체적 결합을 보면서 신령하게 결합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유추하게 한 것입니다(엡5:22-33). 하나님과 우리를 부부사이로 표현하되 만일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을 육체의 부부 차원으로 보았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이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체도 영체도 없는 완전 무형의 완전자이고 우리는 피조물인데 그 두 사이에 연결성 결합성 일체성이 마치 인간의 부부제도에서 부부와 같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라면 이 설명은 인간의 말로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이며 최선의 표현이 됩니다. 동시에 그 설명은 가장 쉬운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쉽게 이해하라고 일부러 세상에 부부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그 본체는 완전자 하나님이므로 세 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 한 분 하나님이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는데, 인간에게 인간 차원으로 설명하되 그 설명이 삼위일체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의 외부적 이해를 돕되 그 이해를 하나님께서 미리 내놓으신 ‘일인다역’의 현상으로 설명하면 가장 쉽고 정확하고 또 간단한 이해가 될 것입니다.
▪ 세 분 하나님의 주 역할과 그 상호관계
보통 삼위일체론은 성부 하나님이 구속사업에 대한 계획 창조 섭리를 맡고, 성자 하나님은 중재의 사명을 중심으로 구속의 전면을 맡고, 성령 하나님은 성화를 맡아 성부의 창조와 성자의 구속이 목표하는 그 완성을 맡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일반적인 이론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이론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범위를 너무 넓게 잡고 있어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여 이해를 돕는다면, 표현하는 시각 하나를 더하면 될 것입니다. 즉, 성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피조물에게 나타내 보이는 역사를 맡았으니 이를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피조물이 상대할 수 없고 접촉할 수 없으며 인지할 수 없는 하나님 자존의 내부 세계를 나타내 보이는 면이 성자 하나님의 역할의 중심입니다. 이 면에서 본다면 목적을 정하고 예정 섭리 창조 구속 및 성화 이후 영원무궁의 모든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일에 실무를 맡았고(요14:9-13), 성부 하나님은 그 성자 하나님께 이 모든 일을 맡기고 지휘하는 아버지이고(요6:57), 성령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감화와 감동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역할이라 할 것입니다(요14:26).
즉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위해 삼위 하나님으로 각각 일을 분담하시되 그 분담은 분담을 해야 일을 이루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분담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러 존재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분담을 해야 하는 이치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최종 책임과 전체 진행은 성부 하나님이고 그 실무 실행은 예수님이며 그 일이 실제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맡아 나선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⑤ 삼위일체 부인 이론들
이 교리서에서는 주로 옳은 것을 위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반 교계를 어지럽히는 이단 등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도 일반 상식으로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주 간단하게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 신앙현실에까지 지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우는 그 이단들의 이름과 그 주장의 핵심 한 마디는 기억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삼신론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되, 세분 하나님의 삼위가 성경에 너무 뚜렷하다는 점에만 집착한 이단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은 세분이라는 것만 주장을 하고 세분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단설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각각 독립적인 별개의 하나님이라는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고 ‘삼위’하나님만 가르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삼위 하나님이 아니고 다신교로 가는 삼신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누구라도 방심하여 섣불리 말을 뱉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이단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국내 최대라고 주장하는 교단의 대표적인 이단전문가가 삼위일체 교리의 이단을 지적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삼신론을 주장했다 하여 격론에 휘말려 있으며 아직 뚜렷하게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고전8:4). ‘삼위’를 강조하든 ‘일체’를 강조하든, 또는 삼위를 무시하든 ‘일체’를 무시하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바로 이단으로 나갈 수 있는 면을 조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일신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며 삼위로 나뉠 수 있는 하나님은 아니라는 이단설이 일신론입니다. 이 일신론을 주장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태론이고 하나는 양자론입니다. 양태론은 한 분 하나님이 3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인 것이라고 하나님을 설명하고, 또 양자론은 성자 예수님을 원래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인데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변화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이단설입니다.(고전8:4, 마28:19)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이 ‘일신론’ 이단 중에서 ‘양자론’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이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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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8:14-23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행17:22-27 ‘...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눅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요5:39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삼하22: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고후9:8-10 ‘...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시119: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점L 된 연고니이다’
골1:16-20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엡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레11:44-45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눅15:11-32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딤전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겔44:23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딤전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삼하22: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
삼상2:3 ‘...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겔11-5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마20:14-15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막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 ’
요일4:8-10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전13:1-8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겔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사5:16 ‘...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계3:7 ‘...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요일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대상29:11 ‘...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고전8:4-6 ‘...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고전8:4 ‘...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엡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요14:9-13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전8:4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마28:19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