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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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5:26
(2003.9.30.초교, 04.03.29. 최종 출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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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
1. 하나님에 대한 존재론
2. 하나님의 사역
제 2 장
신 론
1. 하나님에 대한 존재론
(1) 인식
① 심리적(자연적) 인식
▪ 사람의 인성구조
모든 사람의 심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합니다(롬1:19).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과 접촉하도록 만드신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영물을 접하고 영물은 하나님을 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는 물질로 된 몸과 마음이 있고 영물로 된 영이 있는데, 몸은 마음에게, 마음은 영에게, 영은 하나님과 접촉하고 연결되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롬8:14-23).
몸이 먹고 입는 것에 불편이 없어도 마음에 고장이 나거나 마음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이상이 생깁니다. 마음도 영과 관계가 그렇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되면 즉시 모든 기능이 완전 중단되면서 육으로 말하면 사망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립니다(엡2:1, 창2:17).
▪ 믿는 사람의 인식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몸과 마음과 영이 완벽하게 하나 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이런 상황은 에덴동산에서 한번 있었습니다. 현재는 중생된 사람과 아직도 영이 죽어 있는 불신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영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정상대로 신앙생활을 할 때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롬8:16). 그러나 믿는 사람이라 해도 그 마음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으면 자기 영과 연결이 끊어져 있게 되는데 이런 상황은 마치 안 믿는 사람이 죽은 영 때문에 영 없이 사는 마음과 같은 상황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성경이 표현하는데, 믿는 사람의 마음이 안 믿는 사람처럼 영과 끊어져 있을 때는 자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중생의 생명은 가지고 있으나 그 모습은 죽은 자와 같다는 뜻입니다(마26:41).
▪ 불신자의 인식
자기 영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사람이 영과 끊어진 상태, 즉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신앙이 없는 상태로 있을 때도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접촉하는 영과 우리 마음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면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직접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접촉해야 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전혀 접하지 못하게 되면 그 마음은 다른 무엇으로 채워도 만족을 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영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 나선다 해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의 상태는, 비록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면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윤곽을 짐작하게 됩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받거나 구원으로 진행되는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역할 하나님의 모습 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종교와 미신들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 없는 아이가 비록 그 부모를 본 적은 없고 말한 적은 없지만 부모라는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허전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부모를 그리워하게 되는 심리가 생깁니다. 바로 이런 심리 활동을 통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이들과 같은 차원에서 인식하지는 못해도, 부모가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면을 보면서 바로 그 자리가 부모의 자리이며 그 빈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어떤 존재라야 한다는 것을 그려보게 됩니다. 이 정도 인식은 인간은 영이 죽었다 해도 가지고 있게 됩니다.(행17:22-23)
② 합리적 인식
사람은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고 살펴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의 이성 판단력이 우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들 때 사람이 자기의 이성 판단력을 가지고 노력하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물을 그렇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롬1:19-20에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행17:22-27에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리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일반 양심으로 일반 상식으로 일반 통찰력으로 살펴본다면, 구원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나 세상은 그 만드신 분이 계시고 그 분이 운영하고 계신다는 흔적은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고 또 우리에게는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이성을 주셨으니 이를 하나님에 대한 ‘합리적 인식’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여러 종교들이 있고 많은 미신들이 있으며 또 무신론자라 해도 진정한 무신론자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합리적 인식 때문입니다. 이 인식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찾기 전까지는 인생에게 어떤 것으로도 만족이 없고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③ 성경적 인식
성경이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물론 안 믿는 사람은 성경을 세상에 있는 많은 서적 중의 하나로만 상대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그 성경을 기록한 성령이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심리로도 느끼고 또 만물의 이치를 따지는 이성으로도 느끼게 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눅24:27, 요5:39).
그분의 본질 성격 활동 역사 목적 등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성경을 통해 다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서 ‘계시론’에서 이미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2) 존재론
① 완전의 본체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하나님을 ‘완전‘이라고 할 때 이를 해석하고 연구하려면 한이 없겠지만, 현재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신앙 수준에서는 다음 몇 가지를 특별히 염두에 두고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완전’의 특별한 의미
‘완전’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완전’이라는 표현이 하나님께 해당될 때는 특별히 조심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완전’이라는 표현은 과장을 했거나 아니면 어느 한 면을 잠깐 보고 표현한 것입니다. ‘완전’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에는 비록 단어는 인간 것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시간적으로도 항상 완전해야 완전한 것이고, 공간적으로도 어디서든지 완전해야 하고, 종류적으로도 해당되지 않은 것이 없어야 진정한 ‘완전’입니다. ‘완전’의 의미를 이렇게 본다면 실은 완전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만 해당됩니다(마5:48, 삼하22:26).
▪ 무형의 존재
하나님은 완전이므로 형체가 없습니다. 물체뿐 아니고 영체까지도 없습니다. 형체라는 자체가 일점G 제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든지 존재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그 어떤 식으로든지 형체가 있겠다고 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폐단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를 완전으로 깨달아 그 형체가 없다는 것을 확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요1:18, 5:37, 골1:15, 딤전1:17, 6:16, 요일4:12).
▪ 부족이 없는 존재
어떤 면으로든지 아쉽거나 빠진 것이 있다면 완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계실 때,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불편했거나 아니면 아쉬운 것이 있었던가? 그래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이런 의문을 가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자이므로 홀로 계신다고 해서 인간이 홀로 있으면 외로운 것처럼 외로움을 가지거나 다른 존재가 없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되어 우리를 만들거나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행17:25, 롬11:34-36 욥41:11, 시50:11-12)..
② 사랑의 본성
사랑이라는 단어는 준다는 뜻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받지 않고 주기만 할 때를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분의 본성이 어떤지를 아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 본체가 완전이라면 그는 줄 수만 있지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그 본체가 완전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살펴볼 때는 특히 다음 몇 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 줄 수만 있는 존재
연보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받을 수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 눈에는 우리 돈이 하나님께로 넘어갔다고 보지만 그 분은 완전자이므로 그분을 상대하고 접하는 우리에게 주시기만 하는 분입니다. 연보를 드리는 것은 우리 보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실은 하나님께 대하여 주시라는 청구서입니다(고후9:8-10).
완전이라는 존재는 그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존재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존재로부터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행17:25, 롬11:35-36, 욥41:11).
▪ 창조도 사랑의 표현
하나님께서 세상을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습니다. 만물 창조는 하나님의 행위인데, 그 창조의 주체가 바로 완전자입니다. 완전이라는 존재가 움직여 만든 것이 창조라면, 이 창조는 완전이라는 본체의 행동이니 완전의 행동에는 사랑의 본성이 스며있습니다. 만물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은 만물은 그 하나하나가 완전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무엇입니다(시119:91, 145:9-10, 골1:16-20, 엡1:22-23).
▪ 최고의 사랑, 유일의 사랑
완전이라는 본체를 가진 하나님께서 다른 존재를 만들어 그 존재에게 완전자가 가진 모든 것을 주기로 작정을 했으니 이를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곧 ‘성도’라고 하는 우리를 만들되 이 존재가 완전자 자신과 꼭 닮아 완전자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완전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이 존재에게 주기로 작정하고 움직이고 있으니 이것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요 그 목적 성취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구원입니다. 이것이 완전자의 유일한 사랑이요 그 이상이 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엡1:3-6).
③ 거룩의 본질
완전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이 된다는 점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되고 이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완전인데 그 움직임이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이라는 본질을 가진 하나님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거룩이라는 뜻은 깨끗으로 흔히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깨끗이라는 결과에 이르려면 구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구별하여 깨끗하게 만드는 하나님입니다.(레11:44-45)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향하여 섞임 없이 진행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 전부는 바로 구별을 통해 원래의 것이 원래의 것으로 드러나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살펴본다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 ‘거룩’이 구별로 사용되는 이유는 최고의 존재를 만들기 위함
하나님께서 우리를 50점짜리로 만들 수도 있고 10점짜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완전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로 만들려고 목적을 정했습니다. 이는 완전자이며 또 사랑의 본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완전자가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주어 가장 훌륭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인간에게 자유성을 주었고,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되게 하고 그 존재에게 타락이라는 과정을 주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타락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존재가 되려면 ‘거룩’이라는 성질은 특별히 필요합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죄와 의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깨끗해지는데 그 깨끗해지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닮는 과정입니다(눅15:11-32, 벧전1:15, 레11:44-45, 20:26).
▪ 생전의 투쟁은 필연
하나님께 받아 하나님을 닮는 과정을 크게 둘로 나누면 이 세상과 다음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과정에서는 타락과 그 타락으로부터 원상에 돌아오는 단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과정 때문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잘못된 것 더러운 것 해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 놓았습니다(잠16:4).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틀린 것 악한 것으로부터 옳고 바른 것을 구별하는 본질적 역사가 쉬지 않아야 합니다. 즉, 완전자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이 세상에서는 특히 우리에게는 구별이라는 본질을 가진 하나님으로 역사합니다(벧전1:16).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는 오늘 세상에서 준비하고 마련한 구별을 통해 얻어진 깨끗을 점Z로 삼아 영원히 하나님을 향해 닮아가는 성장의 단계만을 가지게 됩니다(고전13:13, 딤전6:19). 하나님의 본질이 거룩이라는 면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서 이 세상에서는 구별로,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깨끗으로 계속됩니다.(레11:1-8, 겔44:23)
.(3) 속성
① 속성의 의미
▪ 속성으로 파악되는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존재 모습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그 본체가 완전이므로 어떤 종류의 형체나 모습도 없습니다(딤전6:16). 그렇지만 그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분의 행동은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경이 알려 주셨기 때문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그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속성의 종류는 기준에 따라 여러 분류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12가지 분류법을 따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상대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앞으로 자라가야 할 방향이며 목표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49, 골3:10).
▪ 공유와 비공유 속성
12가지 속성 중에 하나님만 가지신 ‘비공유’ 속성 4가지는 ‘자존’ ‘완전’ ‘영원’ ‘단일’이며, 인간도 모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유’ 속성 8가지는 ‘지식’ ‘지혜’ ‘선’ ‘사랑’ ‘의’ ‘거룩’ ‘진실’ ‘주권’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에서 이렇게 분류하고 설명해 오지만, 사실 비공유 속성도 좀더 정밀하게 분류하자면 공유 속성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마치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같을 수 없는데 지식이라는 단어가 같기 때문에 큰 범위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생된 우리에게는 비공유 4가지 속성이 중생 이후부터는 우리에게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면으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자존성이라는 것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도 미래적으로는 자존성에서 발원된 존재로 살 것이고(엡1:23), 또 완전도 하나님의 완전은 아니지만 그림자와 같은 모형적 부분적 일시적 완전은 가지고 있습니다(마5:48). 또한 중생된 사람 속에는 영원불변을 향한 걸음이 시작되고 있으며(살전4:17, 히13:27-28), 단일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딤전1:17). 따라서 공유와 비공유는 큰 의미는 없지만 일반 신학의 기초 상식이므로 잠깐 소개했습니다.
② 속성 12가지
▪ 자존
자존이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자존’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의미는 첫째로 하나님은 스스로 원인자로만 계신다는 뜻이고, 둘째로 시간적 의미로 살필 때는 영원 전부터 계신다는 뜻이며, 셋째로는 신앙문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항상 하나님의 ‘자존’으로 전부 이해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 우선 하나님은 누가 만들어서 존재한 분이 아니며, 어느 순간부터 발생한 분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이 전부이며 하나님 한분만 계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한분 외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되었고 하나님만이 원인입니다.
둘째, ‘자존’을 우리 인간들이 사용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그 연대를 측정한다면 달리 표현할 수 없어 ‘영원 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존재시기를 살피는 것은 원래부터 곤란한 문제입니다. 이유는,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 함께 만든 것이고 하나님은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시기를 표현하는 것은, 비록 적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린 신앙의 어린 수준에 맞추어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을 가지고 굳이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영원 전’에 계셨고 ‘영원 후’까지 계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존’의 의미가 우리에게 실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알아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모든 문제는 항상 하나님의 ‘자존’에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계셨고 그분이 만들어서 모든 것이 다 나왔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와 인간과 사건과 움직임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며 그 배후가 하나님이며 그 내면은 전부 하나님의 자존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출3:14, 계1:8, 22:13).
▪ 완전
완전은, 부족이나 흠이나 잘못이 없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본체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완전이라는 표현은 넓은 의미이고, 여기 속성에서 표현할 때 완전은 그 범위가 좁은 차이가 있습니다. 완전에 대하여는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흔히 12가지로 표현하지만 만일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자존하신 완전자’라고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줄일 수 있는데도 ‘완전’이라는 속성을 포함하여 12가지 면으로 펼쳐서 하나님을 살펴보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최대한 자세하게 연구해야 우리 신앙현실에서 모든 것을 명확하게 상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5:48, 삼하22:26).
▪ 영원
하나님의 속성을 ‘영원’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영원불변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과거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 전 자존하신 분이지만 그 진행될 앞날의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히 변치 않을 불변자입니다. 그분 자체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므로 영원성을 가진 분이고 그분의 말씀도 결정도 행동도 모두가 영원성입니다. 그분 자체가 영원성의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에 속한 모든 것은 전부가 영원성입니다(히13:8, 약1:17).
▪ 단일
단일이란 하나라는 뜻입니다. 단순하다는 의미도 있고 모순이 없다는 뜻도 있으며 혼선이 없고 변경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뉨이 없고 단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일의 하나님입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별개가 아닌, 한 하나님이시며, 삼위로 계시지만 일체이신 한 분 하나님이시고, 진노할 때와 웃으실 때도 하나님은 동일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며 또한 그 하나님의 마음도 역시 동일하지 딴 마음을 먹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인데도 우리를 대할 때 모든 면이 항상 달리 보이는 것은, 하나님은 늘 동일하신데 우리가 왼쪽으로 삐뚤어져 나가면 우리를 오른쪽으로 끌어들이시고 또 오른쪽으로 삐뚤어져 나가면 왼쪽으로 끌어들입니다. 누구에게는 왼쪽으로 오라하고 누구에게는 오른쪽으로 오라 하지만 실은 하나님은 단일이고 그 말씀도 단일이고 그에게 속한 모든 것도 다 단일입니다(신6:4, 고전8:6).
▪ 지식
하나님은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다 알고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지식은 지혜와 가장 가깝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대하여 아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자존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영원불변의 단일성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특별히 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전지라고 표현할 때 이 전지는 우리 인간 수준에서 전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두어야 합니다. 사람치고는 모르는 것이 없다 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이 지식 면으로 나타난 전지이니 이 전지는 참 전지입니다(롬11:33, 삼상2:3, 겔11:5).
▪ 지혜
지식 중에서도, 특별히 미래에 관련하여 아는 지식을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다 아시니 이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를 지을 때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혜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지혜는 주로 지식과 함께 늘 사용되면서 지식은 과거를, 지혜는 미래를 아는 면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지혜는 늘 지식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롬11:33, 시111:10).
지식과 지혜는 서로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무지하여도 하나님께서 과거 지나간 것은 거의 알려주시는데, 다가올 미래는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려 주지 않으시는 미래는, 지나간 과거에 알려주신 지식을 사용해서 알게 합니다. 따라서 지나간 지식을 무시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에게서는 지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함께 알고 있는 과거사에서 앞날을 알고 상대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법입니다. 이렇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움직일 때 지나간 과거를 보아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지난 과거를 움직여 왔고 또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알던 것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는 것에 대하여 조금도 착오나 차이가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갔다고 하나님 기억이나 느낌이 흐려지는 일이 없고 앞으로 닥쳐 봐야 알고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지식’과 ‘지혜’로 따로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되 ‘지식’과 ‘지혜’면으로 각각 따로 알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롬11:33, 시111:10).
▪ 선
선은 ‘중심’이라는 면을 두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선’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고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좋으면 하나님의 ‘선’입니다.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말씀은 ‘선’과 악은 하나님의 것이니 인간은 선과 악을 자기 것으로 취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 반론을 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자기에게 좋으면 선이고 자기에게 나쁘면 악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좋은 것은 선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 중심에 하나님께 좋은 것만 선이 되어야 하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볼 때 하나님께 선한 것을 혹 반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선을 악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이 세상 살아생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런 표현을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무궁토록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선입니다.
불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혹 교회까지도 그들처럼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에게 좋은 것을 선이라고 정의한다면 기독교는 인본주의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 전체가 공통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까지도 선이라 하고 공통적으로 나쁘게 보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데, 이런 선악의 개념은 세상이 말하는 것이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과 악에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좋으면 성경이 말하는 선이고, 그 반대는 악입니다(창2:17, 마20:14-15, 막10:18).
▪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본체와 본성을 살펴보면서 ‘사랑’은 준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므로 그 본성이 어떤 상대를 접해도 주기만 하지 받는 수는 없습니다. 대가 없이 준다는 면을 강조할 때는 ‘은혜’라 하고, 준다는 점과 함께 감정까지 포함하면 ‘사랑’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주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 이상의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이 사랑과는 비교할 사랑도 없으니 우리를 구원한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요일3:16, 요일4:8-10).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의 종류로는 남녀가 사랑하는 이성의 사랑이 있고, 같은 종류라 좋아하는 우정의 사랑이 있고, 출산으로 생기는 혈육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3가지 사랑은 얼른 볼 때 조건 없이 주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이고 있어 ‘사랑’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사랑들은 외모만 사랑처럼 보일 뿐입니다(고전13:1-8).
인간에게 있는 것 중에 그래도 다른 존재를 위해 가장 자기를 많이 내놓고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제 설명 드린 3가지를 흔히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사랑들’을 성경의 하나님 ‘사랑’과 혼동하여 그 이름이 같고 그 외모가 비슷하다 해서 아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현대 교회로 진행되면서 아주 일반화되었습니다. 기독교를 흔히 사랑의 도라고 하는 정도인데, 사랑이라는 단어를 혼동해버리면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기독교의 타락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남녀 이성의 문란 때문에 내부적으로 썩어들어 가는 이유도 대속의 사랑을 남녀 이성의 사랑과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불신 사회와 교회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것도 대속의 하나님 사랑은 잊어버리고 인간들이 아는 사랑이 성경의 사랑인 줄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와 교회가 교리와 신앙노선에 대한 비교 구별도 없이 무조건 통일운동으로 달려가는 것도 사랑을 혼동한 결과입니다(고전13:1-8, 요일4:10).
▪ 거룩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 ‘거룩’에 대하여 앞에서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며,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록 타락한 사람에게는 쓸 만한 것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흉내만 내더라도 ‘구별’이라는 것은 좋은 장점입니다. 잘 믿을 수 있는 요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구별의 하나님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한 만물이 하나님의 신성을 따라 움직여지고 존재되도록 하시는 분임을 알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만물과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위치가 있고 사는 법이 있습니다. 바로 그 원 상태로 돌아오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거룩’성입니다. 그렇게 돌아오게 만드는 과정에서 항상 ‘구별’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속성 중 ‘거룩’성 때문에 우리는 만물을 상대하고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길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아닌 것을 그냥 둘 수 없고 혼잡한 것을 방치하지 않습니다(고전14:33). 이것인지 저것인지 반드시 따지는 분입니다. 그리고 종류대로 분류하여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고 또 그 보응과 보상을 하는 분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류하여 옳은 것은 천국으로 그른 것은 지옥으로 보냅니다. 비록 아들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따져서 그 죄인의 죄 값을 따져서 전부 갚게 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깨끗해진 다음에 다시 아들로 거두는 분입니다(겔44:23, 사5:16).
▪ 진실
진실은 다른 말로 ‘참’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밖에 없는 참이고 하나님의 결정도 그 행동도 전부가 참입니다. 하나님은 참이지만 우리가 그 참을 찾아가는 길은 참이 아닌 여러 가지 거짓된 것을 다 구별해서 걸러내야만 하기 때문에 진실은 거룩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시간을 기준으로 과거를 아는 것과 미래를 향한 것으로 구분한다면, 거룩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진실은 거룩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거룩’성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구별하여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그 어떤 것이든지 가장 옳고 바른 단 하나의 ‘참’을 알고 계시고 ‘참’을 찾으시니 이는 하나님의 속성이 ‘참’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완전자시므로 타락한 우리와 달리 거룩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거룩성과 진실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먼저 본받아 노력해야 하나님의 ‘진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먼저 거룩이 있고 그 다음 진실이 있습니다(계3:7, 19:11, 고후1:12).
▪ 의
옳은 것을, 의라고 합니다. 옳은 그 자체도 ‘의’라고 하지만 ‘의’라고 할 때는 그 옳은 것이 움직인 행동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롭습니다. 하나님은 옳으며 옳게 움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상대할 때는 우선 하나님 자체를 직접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옳습니다.
그분 자체가 완전이므로 완전이라는 본체에서 나오는 것은 전부가 옳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완전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뜻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의라고 하고, 그 의는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가, 타락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한 뒤에는, 하나님의 의는 변질된 인간을 다시 이전처럼 되돌려 하나님 앞에 옳게 살 수 있도록 역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리를 대신 한 ‘의’입니다. 예수님으로 오셔서 행한 모든 사활의 대속이 옳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옳은 의를 가진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 자체와 행위와 생활까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옳은 존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행동할 것까지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는 여러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의도 있지만, 죄인을 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가 ‘의’이기도 합니다. 또 구원받은 우리가 늘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의라고 합니다(요일2:29, 시7:9).
▪ 주권
주인이 가지는 권리를 주권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리를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권’의 하나님입니다. 모든 권리는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은 그 모든 권리를 절대적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주권을 좀더 자세하게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절대주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정도 또 그 예정대로의 성취도 하나님 혼자 권리를 가졌고 그 권리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국가에 대한 주권을 임금이 가지는 왕정정치, 국민이 가지는 민주정치 등에서 그 주권의 모습을 약간 볼 수 있으나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그림자요 참고일 뿐입니다. 하나님 주권은 완전자의 전지와 전능에서 비롯되므로 하나님의 주권에는 개미 한 마리의 수염이 움직이는 것까지 완전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마10:29-30, 대상29:11).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만든 태양 아래 하나님 만든 땅을 밟고 하나님 만든 만물을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물질계라는 우주 내의 존재만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밥을 짓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 먹게 했으니 이는 물질계 만물을 물질의 이치인 물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의 이치를 가지고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개발하든, 그것은 우리가 놀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로 봐야 합니다. 또 전혀 생각 못한 기술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은 물질계 이치를 인간이 또 하나 찾아냈다고 알면 되고 그 기술이 놀라운 기술이라면 그 기술을 찾아낸 인간에게 놀랄 것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물질계 안에 그런 물질의 이치를 미리 만들어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솜씨에 놀랄 일입니다. 지금 신학이 과학의 솜씨 앞에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이유는 물질의 근본개념을 잘못 알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마음이 물질이 아니고 영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 이유입니다. 그리고 ‘주권’이라는 이 하나님의 속성만 바로 알아도 이런 혼동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물질계 안에 있는 모든 물질과 영계의 영원 후까지 존재할 모든 존재에게 다 미칩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마치 하나님께서 주권을 잃어버리신 듯, 포기하신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권이 오히려 인간에게 있는 듯 보입니다. 인간이 만물을 하나님처럼 다 접촉하며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도록 주권으로 허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물질계라는 범위에서 우리는 특별히 과학 기술의 발달을 보며 인간의 힘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치 인간이 과학으로 만물에 대한 주권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시지만 그 범위는 물질계이지 영계는 아닙니다.
현재 물질계 안에서도 우리 중생된 영은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영계의 존재와도 같습니다. 이 영을 제외하고 몸과 마음이라는 것은 비록 신비하기도 하고 또 그 가치는 일반 만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물질로 된 물질계의 물질들입니다. 그리고 물질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인간에게 전권을 주다시피 했기 때문에 인간이 주권자가 된 듯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밀하게 보면 주권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과학을 이용하여 하나님 없이도 만물을 자유자재로 주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학의 놀랄 만한 기술도 알고 보면 타락한 인생들에게 이미 타락할 때부터 주신 물질계 범위의 것이니 아무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나무에게 물과 거름을 잘 조절하면 소출이 많아지고, 나무를 해치는 벌레를 잡아주면 그 생명이 연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심신도 그 영양과 필수품과 병충해를 잘 조절해 주면 그 심신이 물질이므로 물리에 잘 맞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여서 제삼의 점Z를 만드는 것은 현대 과학이 그 기술을 자랑하기 전부터 과거 고대인들이 다 알고 했던 일입니다. 점Z를 섞어 과거에 보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이 넘어갈 수 없는 하나님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을 했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실력껏 손을 댈 수 있는 물질계의 영역임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모든 주권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과학의 힘과 활동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느냐 하는 이 문제는 조직신학의 인론편에서 사람의 구성요소라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은 영물과 물질로 만들어진 유일한 피조물이므로, 물질의 이치가 닿을 수 있는 곳과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선을 연구하는 데에는 특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4) 삼위일체론
① 의의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두고 요약한 교리입니다. 설명을 조금 붙인다면, ‘하나님’은 제1위 성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또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신성 곧 제2위 하나님인 성자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또 ‘성령님’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영인 제3위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삼위일체론이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는데 이 세 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깨달음입니다(고전8:4-6).
② 역사
성경기록시대를 제외한 교회 역사에서 교리 확정을 위해 모였던 최초의 모임은 주후 325년의 니케아공회였습니다. 앞서 성경시대에 있었던 신약 최초 공회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공회였고 여기서는 구약과 신약의 변화 문제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공회는 사도들이 모인 자리였고 또 그 기록이 사도행전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 후 다른 공회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교회역사 시대 중 첫 공회였던 니케아공회는 교회가 오랜 박해를 마치고 신앙자유를 얻은 직후였으니, 교회의 박해가 끝난 것은 주후 313년이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음운동에만 매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단순히 받은 말씀으로 순교만 하면 되던 그 전 박해기와 달리 평화시 교회가 어찌 믿고 나갈 것인지를 두고 신앙노선의 방향을 잡는 공회였습니다.
교회시대에서 교리적으로 처음 크게 문제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신론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무엇으로’ 혹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판단의 근거가 선결되어야 하는데, 신구약 66권만이 성경이라는 확정이 이미 오래 전에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 공식 결의는 훗날 다른 공회에서 이루어지지만 교회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인 ‘성경’이란 무슨 책이냐를 두고 바로 깨닫는 데에는 따로 시간이 걸릴 것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전해진 책들 중에 성경으로 인정해야 하는 책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성경책’ 판별 문제인데 그에 비하여 신론은 그 성경책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성경 해석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문제나 저 문제나 다 같이 어렵게 보이겠으나 초대교회는 성경을 기록한 사도와 그 제자들이 교회의 중심인물로 실존하던 때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 문제는 사도들과 그 직계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격론에 붙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지금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지만 당시는 사도들이 없는 그 이후 시대였고 또 교회가 이미 신앙자유를 얻으면서 급속도로 속화되던 시기였으므로 뚜렷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 교리 논쟁은 지금까지도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교리 논쟁으로 늘 첫 제목에 올려지고 있으며 가장 난해하면서도 그 역사적 사실 확인도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주제입니다.
백영희 신앙노선도 주후 325년의 니케아공회가 요약한 삼위일체 교리를 전폭적으로 이어받고 있으므로 이렇게 중요한 교리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고 정통교리에서 가장 간략하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벌콥의 조직신학서 ‘A Summary of Christian Doctrine' 책의 내용으로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③ 벌콥의 삼위일체론 요약 소개
1. 삼위일체의 교리 개관
⑴ 이 교리의 진술
성경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는 삼위가 존재한다고 말씀한다. 이 삼위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세 분이 아니다. 즉 그들은 세 개체가 아니라 오히려 신적 본질이 그 안에 존재하는 세 가지 양상이요 형태이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 인격적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성질을 각각 가지고 있다. 성부는 성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반대로 성자는 성부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파송할 수 있다. 삼위일체 교리의 오묘한 신비는 삼위 중 각 위가 신적 본질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삼위의 테두리를 벗어나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순서에 있어서나 그들의 사역에 반영된 순서에 볼 때 삼위 중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 2위요, 성령이 제 3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3위는 본질상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종속되는 일이 없다.
⑵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명
a. 구약의 증거
구약에는 하나님께 한 위 이상이 존재함을 지적해 주는 성구들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복수로 나타내시기도 했으며(창1:26, 11:7), 여호와의 천사는 한 신적 위로 나타났으며(창16:7-13, 18:1-21, 19:1-22), 여호와의 영도 또 다른 하나의 위로 표현되었다(사48:16, 63:10). 이외에도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다른 두 인격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다(사48:16, 63:10).
b. 신약의 증거
계시가 진전되면서 신약은 더욱 명백한 증거들을 갖는다. 가장 유력한 증거는 구속의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부는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성자는 성령을 보내신다.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몇 개 더 있다. 즉 예수님의 명령(마28:19)과 사도의 축복(고후13:13)과 그 외 눅3:21,22, 1:35, 고전12:4-6, 벧전1:2에 잘 나타나 있다.
c.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이 교리는 종교개혁시대에는 쏘시니안 학파들에 의해 부인되었고, 오늘날에는 유니테리안 파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논박을 받는데, 그들은 삼위일체를 성부 하나님과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영이라고 칭하는 신적 영향력이라고 그릇된 주장을 한다.
2. 삼위의 개별적 고찰
⑴ 성부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만물의 창조자(고전8:6, 히12:9, 약1:17)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신32:6, 사63:16), 성도들의 아버지(마5:45, 6:6, 9, 14, 롬8:15) 되시는 삼위 하나님께 적용되는 말이다. 더 깊은 의미로 보면 성부란 말은 제2위와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제1위에 적용되는 용어이다(요1:14, 18, 8:54, 14:12, 13). 이것은 본래부터 아버지 격이므로 지상의 모든 아버지는 이것의 희미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성부의 독특한 특성은 그가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의 사역은 구속사업을 계획하시며,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며, 삼위일체를 구속의 계획 속에서 나타내는 일이다.
⑵ 성자
삼위 중 제2위는 성자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성자가 이러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성부의 독생자(요1:14, 18, 3:16, 18, 갈4:4)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메시야가 되기 때문이며(마8:29, 26:63, 요1:49, 11:27),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그의 특별한 탄생에 의한 것이다(눅1:32,35). 삼위 중 제2위인 성자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영원 전부터 성부에게서 출생했다는 것이다(시2:7, 행13:33, 히1:5). 영원한 출생에 의해서 성부는 신적 존재에 있어 성자의 인격적 존재의 원인이 되신다. 특별히 성자의 사역은 중재의 사명이므로, 그는 창조의 사역을 중재하셨고(요1:3, 10, 히1:2, 3), 또 구속의 사역도 중재하신다(엡1:3-14).
⑶ 성령
쏘시니안파와 유니테리안파와 현대주의자들은 성령을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이라고 말하지만, 성령은 분명히 하나의 인격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요14:16, 17, 26, 15:26, 16:7-15, 롬8:26). 성령은 지식(요14:26)과 감정(사63:10, 엡4:30)과 의지(행16:7, 고전12:11)를 가지신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이 말하시며, 탐구하시며, 증거하시며, 명령하시며, 계시하시며, 노력하시며, 중재하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또 그는 분명히 자신의 능력과는 구별되신다(눅1:35, 4:14, 행10:38, 고전2:4). 성령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생된다는 것이다(요15:26, 16,7, 롬8:9, 갈4:6). 성령의 사명은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창1:3, 욥26:13, 눅1:35, 요3:34, 고전12:4-11, 엡2:22).
[기억할 말씀]
⑴ 삼위일체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⑵ 영원한 출생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⑶ 성령의 발생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 벌콥의 삼위일체론 인용 -
④ 삼위일체론에 대한 보충 설명
▪ 목적 이전 자존세계의 하나님
하나님은 목적을 정하기 이전 홀로 계실 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셨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목적 이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목적을 정한 뒤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각 맡고 나설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존하신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목적 대상으로 삼아야 했고 또 그 일을 위해 삼위의 하나님으로 활동을 하셔야만 했느냐는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목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그렇게 할 일을 하나 정하신 것이지 목적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요가 있었거나 하나님 자체의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엡1:5). 그렇다면 하나님은 목적을 정하시게 되면서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당신을 나타내실 수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형식으로 하나님을 파악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존재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앞으로 필요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기 이전 자존 상태로만 계실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식으로 계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첫 사역에 해당되는 그 목적 세계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창1:26).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존하신 완전자였는데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시려고 목적을 하나 세우시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한 분 하나님께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그 역사를 각각 나누어 맡으셨으니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 구원을 두고 최종 계획 성취의 책임을 지신 성부 하나님과 그 실행의 중심에 있는 성자 하나님과 그리고 성자 하나님의 모든 작업을 실제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성취를 맡은 성령 하나님으로 그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마28:19, 요15:26).
▪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교리 형성 과정에서부터 일반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가 될 것 같지도 않을 정도로 어려운 교리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교리 학자들이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바가 많았기 때문에 쉽게 설명해도 될 것을 학문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어 결과적으로 그 설명이 어렵게 된 면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단을 막고 이단으로 나갈 수 있는 면을 조심하는 데만 지나치게 신경을 써다보니까 실제 교회 안에 자라나오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는 불편하게 된 면도 많습니다.
어떻게 이해를 하고 또 어떻게 가르쳐야 삼위일체 하나님을 무식한 사람에게도 쉽게 깨닫도록 할 수 있겠는가? 2천여 년 가까이 내려오는 정통 교리의 설명을 기초와 뼈대로 삼아놓은 다음, 그 바탕 위에서 일인 삼직의 삼역을 가지고 설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면서 동시에 이 세 분은 한 분 하나님입니다(마28:19, 고전8:4).우선 참고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각 한 분을 표현할 때 ‘완전한 한 분’이라는 뜻으로 흔히 ‘인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사용하는데 많은 불편이 있지만 너무 중요한 교리에 너무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우선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세 분 하나님 즉 삼 인격이 한 인격이 되고, 한 인격이 셋 인격으로 온전하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니 이런 설명은 물질계 인간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 외부 모습을 세상 속에서 찾는다면, 한 사람이 아들에게는 아버지로 또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또 부모에게는 자식으로 존재할 수 있으니 이 모습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는 가장 정확하고 또 쉬운 모습입니다. 단, 이 설명은 이 설명 자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까지를 설명한다고 말하면 일신론 이단의 한 종류인 양태론이 될 것입니다. 일신론인 양태론 이단은 하나님 한 분이 3가지 역할을 할뿐이라고 설명하는데 하나님 본체가 그렇다고 보기 때문에 이단인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본체를 두고 이 비유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나타난 외부 모습만을 보고 그렇게 비교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성도의 결합은 인간과 인간의 육적 결합인 부부와 같을 수가 없는데, 볼 수 없는 하나님과 신령하게 변화된 성도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 되어 살 그 모습을 이 세상에서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육적 부부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육체적 결합을 보면서 신령하게 결합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유추하게 한 것입니다(엡5:22-33). 하나님과 우리를 부부사이로 표현하되 만일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을 육체의 부부 차원으로 보았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이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체도 영체도 없는 완전 무형의 완전자이고 우리는 피조물인데 그 두 사이에 연결성 결합성 일체성이 마치 인간의 부부제도에서 부부와 같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라면 이 설명은 인간의 말로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이며 최선의 표현이 됩니다. 동시에 그 설명은 가장 쉬운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쉽게 이해하라고 일부러 세상에 부부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그 본체는 완전자 하나님이므로 세 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 한 분 하나님이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는데, 인간에게 인간 차원으로 설명하되 그 설명이 삼위일체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의 외부적 이해를 돕되 그 이해를 하나님께서 미리 내놓으신 ‘일인다역’의 현상으로 설명하면 가장 쉽고 정확하고 또 간단한 이해가 될 것입니다.
▪ 세 분 하나님의 주 역할과 그 상호관계
보통 삼위일체론은 성부 하나님이 구속사업에 대한 계획 창조 섭리를 맡고, 성자 하나님은 중재의 사명을 중심으로 구속의 전면을 맡고, 성령 하나님은 성화를 맡아 성부의 창조와 성자의 구속이 목표하는 그 완성을 맡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일반적인 이론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이론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범위를 너무 넓게 잡고 있어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여 이해를 돕는다면, 표현하는 시각 하나를 더하면 될 것입니다. 즉, 성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피조물에게 나타내 보이는 역사를 맡았으니 이를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피조물이 상대할 수 없고 접촉할 수 없으며 인지할 수 없는 하나님 자존의 내부 세계를 나타내 보이는 면이 성자 하나님의 역할의 중심입니다. 이 면에서 본다면 목적을 정하고 예정 섭리 창조 구속 및 성화 이후 영원무궁의 모든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일에 실무를 맡았고(요14:9-13), 성부 하나님은 그 성자 하나님께 이 모든 일을 맡기고 지휘하는 아버지이고(요6:57), 성령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감화와 감동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역할이라 할 것입니다(요14:26).
즉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위해 삼위 하나님으로 각각 일을 분담하시되 그 분담은 분담을 해야 일을 이루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분담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러 존재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분담을 해야 하는 이치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최종 책임과 전체 진행은 성부 하나님이고 그 실무 실행은 예수님이며 그 일이 실제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맡아 나선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⑤ 삼위일체 부인 이론들
이 교리서에서는 주로 옳은 것을 위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반 교계를 어지럽히는 이단 등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도 일반 상식으로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주 간단하게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 신앙현실에까지 지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우는 그 이단들의 이름과 그 주장의 핵심 한 마디는 기억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삼신론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되, 세분 하나님의 삼위가 성경에 너무 뚜렷하다는 점에만 집착한 이단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은 세분이라는 것만 주장을 하고 세분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단설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각각 독립적인 별개의 하나님이라는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고 ‘삼위’하나님만 가르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삼위 하나님이 아니고 다신교로 가는 삼신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누구라도 방심하여 섣불리 말을 뱉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이단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국내 최대라고 주장하는 교단의 대표적인 이단전문가가 삼위일체 교리의 이단을 지적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삼신론을 주장했다 하여 격론에 휘말려 있으며 아직 뚜렷하게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고전8:4). ‘삼위’를 강조하든 ‘일체’를 강조하든, 또는 삼위를 무시하든 ‘일체’를 무시하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바로 이단으로 나갈 수 있는 면을 조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일신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며 삼위로 나뉠 수 있는 하나님은 아니라는 이단설이 일신론입니다. 이 일신론을 주장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태론이고 하나는 양자론입니다. 양태론은 한 분 하나님이 3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인 것이라고 하나님을 설명하고, 또 양자론은 성자 예수님을 원래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인데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변화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이단설입니다.(고전8:4, 마28:19)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이 ‘일신론’ 이단 중에서 ‘양자론’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이단입니다.
2. 하나님의 사역
▪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사역
신론을 크게 둘로 나누어본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그 본체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는 그 사역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앞장에서 하나님의 본체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역사의 전개 순서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구원중심의 하나님 사역
자존으로만 계시던 하나님께서 자존의 존재만으로 계시지 않으시고 그 외부로 일을 하나 하기로 작정을 했으니 이를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여러 목적을 가지고 여러 사업을 따로 추진한 것이 아니고 단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일을 시행했습니다. 단일의 하나님께서 단일의 목적을 세우시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엡1:3-6).
따라서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와 활동은 전부가 하나님의 사역이며 그 사역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만을 위한 것입니다.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 전 목적을 정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무궁세계의 영원 후까지가 다 포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 자녀로 호적에만 올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치 자녀가 그 출생 때는 아버지께 생명만 받아 나오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모든 면으로 아버지를 닮게 되고 훗날에는 그 모습과 실력까지도 아버지와 같은 아들이 되는 것을 모형으로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갈4:1-7, 엡1:4-5).
물론 육의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대로 다 반영하지는 않지만 오늘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는 모든 면으로 가장 쉽고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일부러 부모와 자녀라는 제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히12:7-9).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이 모든 과정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이라는 표현은 죄에 빠져 죽은 자리에서 되살려 내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세상에 나게 하시고 또 천국에서 영원히 당신을 닮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 성취 전체를 다 포함하여 이를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체 과정 중에서 범죄 했던 우리를 되살려 내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바로 그 순간만을 따로 떼어서 또 ‘구원’이라고도 합니다(롬8:29-30).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 본체 외의 모든 것이라고 범위를 정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세운 목적과 그 목적을 성취하는 모든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목적의 내용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또 그 목적은 다른 말로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 ‘구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과정 중에서 우리를 타락하도록 한번 시켜놓고 그 다음 다시 원 위치로 올려놓는 것이 필요한데, 그 원 위치로 돌아오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일로 보이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을 살피는 이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을 중심으로 살펴 그 목적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의 사역과 자존
① 자존과 ‘사역의 순서’
알려 주셔서 아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하나님 홀로 계시다가 목적을 하나 정한 일이 있으니 이 ‘목적’이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시작입니다(엡1:4-5).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모든 존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면 ‘자존 →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로 놓을 수 있습니다.
‘자존’과 ‘목적’과 ‘예정’까지는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외부에 따로 만들어질 존재들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자존의 하나님께서 외부 존재들을 준비하시되 하나님의 그 생각에서 목적을 정하고 예정을 짜놓았으니 이렇게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사역은 오늘 우리 인간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낱 계획단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완전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므로, 그분의 생각은 우리 인간들이 그냥 한번 생각해 본 것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은 이루어진다는 담보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공상일 뿐이고 좋게 말하면 하나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각하신 것이 어떤 착오나 차이도 없이 바로 실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의 의지세계와 현실의 실존은 따로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순서대로 살펴보는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자존에서 목적, 예정, 그다음 창조로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해 나가신 순서인데 이 순서 중에서 우리 택자들은 ‘자존’하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나타나는 첫 순서인 ‘목적’ 단계에서 존재의 출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택자들과 만물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짜놓으신 ‘예정’ 순서부터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는 순서적으로 말한다면 자존하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존재했고 또 영계와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 전체 중에서 첫째로 존재했으며, 우리라는 존재는 만물에 비하여 단순히 그 연대만 오래 된 것이 아니고 우리는 ‘목적’ 자체이며 다른 존재들은 불택자까지 포함하여 이 목적에 쓰이도록 만들어진 이용물들입니다.
물론 이 ‘목적’ ‘예정’ 단계까지는 우리 인간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우리와 모든 피조물들이 실제로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자존 바깥 외부로 하나님 외의 존재가 실존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창조’가 처음이고 ‘섭리’가 그 다음입니다(창1:1, 엡1:3-5, 롬11:36).
‘창조’는 자존하신 하나님 외부에 다른 존재들이 존재하게 된 첫 순서입니다. 모든 만물과 인간들이 이 창조 단계에서부터 이제는 외부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존재들을 접하고 또 그 속에 하나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섭리’는 그 창조된 것들의 변화이며 진행 과정입니다. 이 섭리는 곧 이 땅 위에서 재림 때까지 전개될 역사 전부이기도 합니다.
섭리를 논할 때 대개 세상 끝날까지만 섭리의 범위로 잡아 설명하고 있지만 재림 이후 영원한 세계도 섭리에 포함을 시켜야 합니다. 섭리가 영생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 예정도 영원 후까지가 미리 작정 되었다는 뜻입니다(마6:10-13, 단4:17, 6:26, 7:18, 27, 눅1:33).
② ‘자존과 사역의 관계’
하나님께서 목적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자존자로만 계실 수 있는데도 ‘일부러’ 목적을 정하여 일을 시작하셨는지, 아니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자존과 사역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업을 벌인 것은,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니고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 시작한 사업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 자기를 생각하면 하나님도 인격자이므로 다른 존재와 교제가 필요했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홀로 계신다면 얼마나 적적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독방에 감금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존재와 교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피조물의 근본 속성이지 하나님의 본질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혹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느껴지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도 그런 면이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만들어 놓으신 만물이나 인간 스스로를 살펴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짐작을 할 수 있지만 피조물에서 관찰되는 것이 창조주에게 전부 다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피조물은 ‘만들어졌고’ 또 ‘불완전’의 존재이므로 그를 만든 창조자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자존하신 완전자가 아니면 독존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고 불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독존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든 것은 자존이 독존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하거나 또는 독존을 유지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뜻을 세워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니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더욱 큰 것입니다(엡1:5).
③ 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그 사역을 위해 자신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목적을 정하기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낼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자존자 외에 피조물을 만들어 만물이 존재하게 되고 그 만물을 만든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우리들에게 보이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그 일을 맡고 나선 삼위 하나님의 역할은, 우선 성부 하나님이 최종 책임과 지휘를 맡고(요6:57), 성자 하나님은 작업 현장에 실무 책임자로 나섰습니다(요1:14).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모든 지원과 마무리를 맡았습니다(요14:26).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영원 전’ 하나님께서 구원 목적을 위해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시간도 존재하기 이전, 곧 영원 전에 이제 세 분으로 그 일을 분담하게 된 하나님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명칭 때문입니다(마28:19).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 분 하나님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 하나님 본체의 변화는 우리에게는 변화로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본체적 변화가 아니고 다만 하지 않고 있던 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 하게 되는 일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쉽게 알 수 있도록 알리는 표현이라는 점을 더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목적을 정하기 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할 수 있는 분이 목적을 정하기 전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뿐이었고, 이제 목적을 정하게 되면서부터는 그 목적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또 성령 하나님이 이를 지원하는 삼위 하나님으로 나타난 그 배경과 각각의 맡은 직책 직임을 볼 때, 이 삼위 하나님의 상호 관계는 우리를 자녀로 만들어 하나님을 닮게 하기 위해 하나님 자체적으로 하나님 내부에서 맡은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시작한 일, 즉 목적 사업 때문에 필요에 의하여 삼위일체로 존재하게 된 것이지, 그 목적 사업에 상관없이 자존자로만 계실 그때만을 생각한다면 그 이름과 그 직책은 그렇게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그 모습이 목적 사업 이전 자존 세계에서부터 원래 그렇게 계셨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하나님의 이 목적 사업 외에 별도로 추진하는 목적 사업이 있든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별개의 세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기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알려 주는 것만 알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하여 우리를 자녀로 택하신 목적 사업이 우리가 아는 전부입니다.
(2) 하나님의 사역과 목적
① 자존하신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된 표현
홀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사업을 하나 해보려고 뜻을 정하고 추진하게 된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 순서로 배열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라는 말은 우선 어떤 사업을 하려고 작정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고, 예정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이고, 창조는 예정대로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셨다는 것이며, 섭리는 만든 것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운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역의 첫 순서인 ‘목적’은 그 표현이 여러 가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예택’,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롬8:29, 엡1:4-5, 9, 11, 딤후1:9).
‘목적’이라는 말은 자존자의 사업 ‘방향’을 위주로 표현했고,
‘작정’은 이 사업을 자존자가 계획하고 ‘뜻을 정한 것’이라는 말이고,
‘선택’은 ‘택함'이라는 말이니 그 목적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말이며,
‘예택’은 존재가 있기 전 ‘미리 선택’이 결정되었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사용된 방편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설명 드린 이 표현들은 전부 하나님 사역의 첫 번째 순서에 해당된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순서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마치 고속도로에 올려놓은 자동차와 같이 한 길로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만일 첫 길을 잘못 잡고 시작하게 되면 그 고생도 말할 것 없지만 대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 길에서 끝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표현들은 설명하는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사용되는데 존재의 순서를 설명할 때는 대체로 ‘예택’이라는 표현이 가장 좋습니다(엡1:4).
② 목적의 방향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으로부터 발원하여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 사역은, 그 사역을 출발시키고 운영하는 자존자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역 방향의 출발이며 그 사역의 종착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완전자 무한자이므로 그 만들어진 존재들은 그 하나님을 향한 무궁 무한의 걸음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마5:48, 롬8:29, 11:36, 갈2:19, 벧전3:21, 엡1:4).
③ 목적의 내용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은 어느 일면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속성은 우리가 자유성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본받아 그 속성을 가진 존재라야 합니다(갈5:1, 계3:20, 벧후1:4-8).
④ 목적의 대상
하나님의 목적 방향에 따라 그 내용을 다 갖춘 존재는 바로 택자들입니다(엡1:4, 벧후1:5-8). 오늘 우리들입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하나님 목적 달성에 필요한 그 출발에서 갖출 것을 종류대로 챙기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전진은 무궁세계 영계에 가서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택자라고 할 때는 항상 불택자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불택자는 택자를 귀하게 만드시려고 택자와 존재적으로는 동일하나 다만 택자를 위해 존재하고 택자를 위해 영원히 이용되는 사람입니다(사43:3, 유1:4).
오늘 인간의 가치가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 가장 귀하게 평가되고 있어 이제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까지도 대부분 점령하게 되어 현재 불택자의 개념이 유지되는 교회는 몇 남지 않은 정도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성경 기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시대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곳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교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만드는 반인간적 발상을 가지느냐고 주장을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전체 피조물을 한 자리에 놓고 보면 동물을 먹는 인간이나, 식물을 먹는 동물이나, 택자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불택자나 상호 가치관계는 같습니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결정이 중심 가치이고 나머지는 이용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사45:9, 렘18:2-6, 롬9:19-21).
⑤ 목적의 성격
하나님은 그 사역을 하나님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결과가 되도록 추진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존자 완전자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목적 대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여 죽게 하고 죽은 것을 다시 되살리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최상으로 받게 됩니다. 천국만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서 처음부터 살게 하는 것보다 우리를 타락시켜 하나님 없는 세계를 체험하게 한 뒤에 다시 구원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는 사람이 됩니다.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와야 하고 대신 죽고 부활하는 순서를 거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다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타락을 시켜 구원했으니, 목적의 성격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최선과 최상의 작업입니다(계1:5-6).
⑥ 목적의 수단
하나님의 목적은 그 사랑이 최선이 되고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택한 사람을 타락시켰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상태를 경험하도록 만든 존재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령과 죄와 불택자들입니다. 이것을 우리 위해 필요하여 만들었습니다. 일반 만물들은 단순한 무대 배경이요 필요 물품입니다. 그러나 악령과 불택자는 목적 대상인 우리를 여러 차원에서 맞서거나 우리 이상의 힘을 가지고 택자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일을 하는 자유성의 존재들입니다.
대개 전통 신학이 불택자와 죄와 악령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맞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활동을 허용만 했고 그 죄의 계획과 집행은 그들의 자기 책임과 자유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자기 차원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잘못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죄와 악령과 불택자를 목적 달성을 위해 만들고 사용하고 있습니다(욥1:6-12, 롬8:28). 즉 쇠를 용광로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서 망치로 두드려 원하는 도구를 만들고 있는데, 그 쇠와 그 쇠를 두드리는 망치와 그 쇠를 달군 불까지 전부 대장장이가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며 사용하는 필수품들입니다.
(3) 예정
① 예정의 정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그 세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한 것입니다. 예정은 앞으로 존재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 하나 하나의 발생과 그 만물의 움직임 전부를 미리 다 정한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마10:29-30, 눅12:6-7, 엡3:11).
② 예정의 범위
시간적으로는,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 하나님 혼자 계시던 자존의 세계에서 예정을 정했으니 영원 전에 시작된 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이 세상 만물뿐 아니라 재림 후 영계의 영원 후까지를 전부 예정했습니다.
종류적으로는 택자만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불택자까지 전부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과 식물 같은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인 먼지 하나의 움직임도 전부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 활동뿐 아니라 그 생각까지도 전부 예정되어 있으며 그 인간의 의로운 행동뿐 아니라 그 인간이 하나님을 거슬려 죄를 짓는 행동까지 전부 예정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정의 범위에 ‘절대’라는 표현을 붙여야 합니다. 즉, 예정은 절대예정이 옳습니다.
혹,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하나님의 예정은 제한적 예정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택자는 예정을 했으나 불택자는 예정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전체적으로 큰 범위는 예정을 했으나 그 큰 범위 내의 작은 일들은 예정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태어나서 대학교까지 공부를 하게 되고 그 후 장사를 하다가 중년에 믿게 될 것이라는 정도는 예정이 되어 있고 그 중간 중간의 작은 사소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 자유에 맡겨놓았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정의 성질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큰 것이 예정되려면 그 큰 것의 구성 요소가 되는 모든 사소한 것 전부가 예정되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세상만사가 크고 작은 일들로 나뉘어져 발생하고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차분하게 따져보면 한국의 어느 한 아이의 출생이 미국의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 몰아치는 태풍 하나가 오늘 과학으로는 한국 인근의 기상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같아도 앞으로 세계 모든 기후 여건을 완벽하게 측정해 낼 수 있게 된다면, 이 지구상의 어떤 공기 입자 하나도 간접 또는 간간접으로라도 한국에 상륙하는 태풍과 어떤 형태로라도 연관이 있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자만 예정을 하고 불택자는 예정에서 제외되었다는 이론도 마찬가지로 배척이 되어야 합니다. 택자와 불택자가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이상, 택자와 관련된 것이 예정되었다면 택자들과 어떤 형태로라도 불택자들은 연결이 되고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불택자들의 모든 것도 예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남한의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면 북한의 모든 것은 예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남한의 6.25상황이 예정되었다면 북한의 남침에 관련된 것은 완벽하게 예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북한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북한이 6.25전쟁을 1년 뒤로 미루거나 1년 앞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한의 6.25는 예정대로 발발될 수 없고 그리 된다면 남한 내 모든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또 과거가 예정되었으면 미래도 예정되었다는 뜻이니 시간적으로 어느 한 순간이 예정되었다면 모든 시간에 관련된 것은 다 예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정은 시간적으로 범위적으로 사건적으로 관련 대상으로까지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③ 예정과 구원
모든 것이 예정이라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잘잘못이라 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동물의 이름을 짓게 했으니 아담이 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잘한 일입니다. 아담의 범죄도 하나님께서 범죄하도록 예정해서 주권능력으로 범죄하게 만들었으니 아담의 범죄라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처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과 멸망, 죄와 의, 선과 악이라는 정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반론이 있습니다.
예정의 범위가 절대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인간의 구원에 관련된 선행과 의로운 일들은 예정의 순연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멸망은 예정의 불연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기준에 순연의 예정이 구원이고 불연의 예정이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행하게 예정하고 죄짓는 예정을 했다면 그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이를 예정의 불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 사람이 잘한 것이 아니고 순연의 예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와 멸망은 그 책임자가 전적 하나님이라는 모순을 지적하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즉 상관이 부하를 명령하여 살인을 했다면 그 상관도 그 부하와 함께 살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칼을 들고 살인을 했다면 칼에게는 아무런 죄책임이 없게 됩니다. 칼은 자기 의사가 없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정이 절대예정이라고 한다면 사람에게 어떻게 죄책을 지워 지옥 형벌로 갚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반론의 요지입니다.
이 반론은 하나님의 차원과 인간의 차원을 같은 차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오해가 된 것입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한가로운 한 폭의 그림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자가 소를 뜯어먹고 있다면 징그럽게 볼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고 있다면 눈뜨고 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치와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절대예정으로 죄를 짓게 하고 그 결과 죄를 지었다 해서 그 죄값으로 지옥 형벌을 가하고 또 하나님께서 절대예정으로 의롭게 살게 하여 복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며, 우리 인간은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이런 처분을 인간들이 모여 잔인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라는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만일 인간들끼리 모여서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일방적인 하나님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우물 밖의 세상을 자기들 희망사항으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한다고 해서 우물 밖의 세상이 그렇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의 우매무지함을 나타낼 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알려 주시는 대로 그대로만 알면 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추론과 사변은 이상한 종
교를 하나 만들뿐입니다(사45:9, 렘18:2-6, 롬9:19-21, 행17:16-34).
(4) 창조
① 창조의 의의
창조란 없던 것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존 재료를 사용해서 없던 종류를 처음 만들면 이를 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처음 만들었던 창세기 1장의 창조만을 두고 창조라고 합니다. 자존자요 전능자인 하나님만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우리 인간은 창조된 것을 변형하거나 활용하는 것만 허락받았습니다.
지금 인간 세계에 창조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지만, 이는 인간 수준에서 인간이 알지 못하던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지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개념은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었다는 창조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창조물을 가지고 그 창조 범위 안에서 ‘활용’한 것입니다. 인간이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장차 인간들에게 그런 활용이 가능하도록 재료를 만들어 놓았고 또 그 재료를 가지고 그런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물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범위 안에서 재료와 물리를 결합시켜 활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을 뿐입니다(전1:9-10).
② 물질계와 창조
하나님의 창조물은 그 성질에 따라 물질계와 영계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물질계는 택한 사람들이 첫 생명으로 살아갈 준비의 세계이며 그 구성요소는 물질입니다. 영계는 택한 사람들이 영원히 변동 없이 살아갈 영원한 세계이며 그 구성은 영물로 되어 있습니다(고전15:50, 히11:16).
물질계는 우주라고도 하고 영계는 택자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될 천국과 불택자들이 들어갈 지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고후5:1, 마18:8-9, 25:34, 41).
▪ 물질계와 우주
물질계는 다른 말로 우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주’라고 할 때 이 우주라는 단어는 그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계가 아닌 것을 전부 우주라고 합니다. 우주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도 적기 때문에 현재 과학자들이 ‘우주’라고 말하는 ‘우주’를 가지고 물질계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살아생전 접하고 알게 되는 모든 것은 물질계의 것뿐입니다. 따라서 물질계를 우주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주를 물질계라고 정의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고전15:50, 벧후3:7-12).
▪ 창조와 재창조
창조를 살펴볼 때는 재창조라는 개념을 늘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야 창조 자체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면 창조라고 하고, 이미 존재하던 것을 활용하여 없던 종류를 만드는 것은 재창조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라는 범위를 달리 잡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재료를 우선 만드시고 그 다음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의 모든 근본 형태와 구조를 만드셨는데, 이 모든 것을 다 합하여 창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어 표현만으로 본다면 창세기 1장은 창조와 재창조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창세기 1장 전체를 창조로 말씀하신 이상, 우리는 조직신학에서 창조를 두고 표현할 때는 항상 이 면을 확고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즉, 창세기 1장에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의 존재와 구조를 확정해 둔 그 범위는 ‘창조’이고, 그 엿새 이후에 오늘까지 나타나고 있는 모든 새로운 존재들은 전부 ‘재창조’입니다(전1:9-10).
▪창조와 진화
하나님의 창조를 창조와 재창조로 구분할 수 있다면, 지금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만물이 자연 발생에 의하여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떤 면을 오해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진화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근본적으로 알지 못한 사람이 만물의 근원과 중간 과정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만물의 마지막 모습만을 보고 섣불리 단정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앞서 창조한 것을 가지고 재창조로 섭리하며 세상을 운영하시고 진행시켰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그 만물의 변화 속에 숨어 역사하신 하나님은 모르고 변화된 세상의 결과만을 가지고 연관성을 추출한 것이 진화론입니다.
우리가 진화론을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을 반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만물은 자연 발생되었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재창조 섭리역사를 부인하고 만물이 자연 진화했다는 주장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로 재창조되어 그 모습이 변화되어 왔는지는 오히려 과학을 통해 참고하면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진화론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인하는 요소만을 세밀하게 잘 제거하면, 과학의 설명과 노력을 가지고 우리가 자연계시로 활용할 것이 적지 않습니다(히11:3).
▪ 현대 과학 기술의 한계
최근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되었습니다. 이미 일반 신학계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확정한 것을 과학은 수십 년 전부터 자유롭게 드나들며 신학교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그 한계는 무한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신학은 과학이 나무나 철로 도구를 만들고 이용하는 것만 가능하고 인체를 포함한 생명체에 대한 변화나 조절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점Z를 개량해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식물과 동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제는 과학이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 하던 인간까지도 자유자재로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신학은 과학의 한계라고 그어둔 선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것이 전부 다 과학에 의하여 무너졌기 때문에 신학은 미신이 되고 과학은 진리로 증명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한계는 없는가? 신학자들이 자기들 살던 당시의 과학 상식을 기준으로 인간에게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나누고, 자기들 생각에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느낀 것은 전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단정을 했던 것이 실수의 원인입니다. 이제는 신학에서 한계라 말한 것을 과학이 너무도 쉽게 또 마음껏 자유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천국은 과학으로 미칠 수 없는 마지막 한계라는 말까지도 신학자들은 입에 담기를 두려워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았다면 과학의 한계는 일찍부터 그 선을 그어둘 수 있었습니다. 과학은 물질의 이치를 연구하고 상대하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뒤에도 물질계 세상은 인간의 활동 범위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물질계 안에서는 타락한 인간이라도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물질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고 또 개발할 수 있습니다. 즉, 과학의 한계는 물질과 물질의 이치 즉 물질계로 그 범위를 잡아야 옳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만든 태양 아래 하나님 만든 땅을 밟고 하나님 만든 만물을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물질계라는 우주 내의 존재만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밥을 짓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 먹게 했으니 이는 물질계 만물을 물질의 이치인 물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의 이치를 가지고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개발하든, 그것은 우리가 놀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로 봐야 합니다. 또 전혀 생각 못한 기술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은 물질계 이치를 인간이 또 하나 찾아냈다고 알면 되고 그 기술이 놀라운 기술이라면 그 기술을 찾아낸 인간에게 놀랄 것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물질계 안에 그런 물질의 이치를 미리 만들어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솜씨에 놀랄 일입니다. 지금 신학이 과학의 솜씨 앞에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이유는 물질의 근본개념을 잘못 알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마음이 물질이 아니고 영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 이유입니다.
물질계 안에 있는 물질은 인간이 다 접촉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물질계라는 범위에서 우리는 특별히 오늘 과학 기술의 발달을 보며 생각할 것은 인간에 관련된 것입니다. 인간의 영은 영물입니다. 이 영은 마치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영계의 존재와도 같습니다(고전2:11). 그러나 몸과 마음이라는 것은 비록 신비하기도 하고 또 그 가치는 일반 만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물질로 된 물질계의 물질들입니다(요3:6).
나무에게 물과 거름을 잘 조절하면 소출이 많아지고, 나무를 해치는 벌레를 잡아주면 그 생명이 연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심신도 그 영양과 필수품과 병충해를 잘 조절해 주면 그 심신이 물질이므로 물리에 잘 맞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여서 제삼의 점Z를 만드는 것이나 당나귀 수컷과 암말을 가지고 노새라는 제3의 짐승을 만든 것은 현대 과학이 그 기술을 자랑하기 전부터 과거 고대인들이 다 알고 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만들어 놓지 않은 전혀 새로운 점Z를 이렇게 인간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인간 자체 기술과 지혜와 노력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이런 일이 원래 인간이 넘어갈 수 없는 하나님만의 영역을 넘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을 했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노력해서 넘어간 것입니다. 즉, 구약 성경에도 이미 인간들이 동물 조작에 해당되는 노새를 만든 기록이 있고 또 접붙이는 방법으로 식물의 원래 생태를 변형시킨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한계를 지을 때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 바로 ‘물질’과 ‘물질계’라는 범위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물질로 되어 있음을 동시에 기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문제는 조직신학의 인론편에서 사람의 ‘구성요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은 영물과 물질로 만들어진 유일한 피조물이므로, 물질의 이치가 닿을 수 있는 곳과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선을 연구하는 데에는 특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③ 영계와 창조
▪ 영계
영계는 우리가 죽으면 영원히 살게 될 본 무대입니다. 물질로 된 우주와 달리 영물로만 이루어진 곳입니다. 영물의 세계이므로 이곳 물질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물질계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 작동 이치는 물리만 적용됩니다. 그러나 영계는 그 구성 요소가 영물로만 되어 있으므로 그 운영 이치도 물리 대신 진리입니다. 영계에는 물질계를 가로지르는 시간과 공간도 없는 곳이므로 장소라는 개념, 이동이라는 개념, .변화라는 개념이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고전15:50, 계21:5, 22-25)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여 물질계가 완전히 해체되었다가 재조성 되면 이 우주도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체제로 변하게 됩니다. 그때 물질계의 형편은 영계보다는 그 수준이 낮지만 모든 기본 성질이 영계화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물질계는 물리의 세계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물질계 형편을 기준으로 영계를 이해한다면 그런 영계는 실존의 영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이 자기 수준에서 구성해 본 하나의 공상 세계일 뿐입니다(사65:17, 계21:1-2).
영계는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차원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다 알려 줄 수도 없고 다 알려줘도 이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필요한 면만 일부 잠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이므로 순종생활을 통해서 영안이 밝아지는 만큼 볼 수 있는 세계임을 생각해서 지나친 추상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계21:10-27, 벧후3:13).
▪ 영계의 종류
영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위쪽에는 천국이 있고 아래쪽에는 지옥이 있다는 물질계 공간 개념은 하나의 비유일 뿐입니다. 또한 영계의 영물들의 종류와 활동과 관계는 이 물질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한하다 할 만큼 많습니다. 우주도 인간의 시력이 밝아질 때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가 측량 못할 만큼 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질계의 세밀함과 광대함을 새로 터득할 때마다 우리는 영계와 그 안의 존재들이 얼마나 광대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 실상만큼 느끼지는 못해도 이 좁은 우주의 크기와 세밀함이 이런 정도라면 비교 못할 영계의 크기와 세밀한 것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오늘 세상에서 우리가 알지 못한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영계를 크게 둘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 것만 모아놓고 영원히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을 닮아가는 것으로만 충만하도록 그 일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그분으로만 살고 그를 향하는 곳이므로 그곳은 하나님의 은혜만 있고 그 은혜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만 있는 곳입니다(계21:27).
지옥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맞섰던 모든 것을 모아놓고 영원히 불태우는 곳입니다. 지옥불의 특별한 점은 오늘 세상처럼 불에 타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불에 타는 고통은 항상 있고 또 불에 타면 점점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 모든 세력과 힘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은 있는데, 그렇다고 그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타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 고통과 그 소멸이 진행되는 곳입니다.(막9:47-49)
영계를 두고 하나 더 생각해 둘 것은 낙원과 음부입니다. 낙원은 예수님 재림 전까지 미리 죽은 성도의 영과 마음이 미리 가 있는 곳이고, 음부는 불택자들의 영과 마음이 미리 가 있는 임시 장소입니다. 영계 안을 천국과 지옥 그리고 낙원과 음부로 4등분해서 구역을 정하는 것은 물질계의 공간개념입니다. 낙원은 천국 안에 일부 임시 머무는 곳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천국 문 앞에 임시 가설된 시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어린 신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입니다. 세상 마지막에 역사 세계가 완전히 정리가 되고 나면 모든 이 땅 위의 존재와 그 행동들을 순종과 불순점8로 나누어 영원히 변동 없는 상태로 분리를 시킬 것인데 그때가 이르지 않은 상태의 천국이 낙원이고, 그때가 이르지 않은 상태의 지옥이 음부입니다(눅16:23-24, 23:43).
④ 천사와 악령
▪ 하나님 집의 종
악령은 타락한 천사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살펴볼 때는 함께 놓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서 영계에 속한 영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세상 사람들의 추론처럼 아름답고 예쁘기 때문에 천사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죄가 없으므로 천사는 그 모습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심할 것은 천사는 물질로 된 몸이 없어 그 얼굴의 형체는 우리 인간을 기준으로 그려서는 안됩니다(마22:30, 눅24:39).
천사가 사람과 다른 점은, 사람은 물질과 영물로 되었고 천사는 영물로만 되었으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천사는 그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점T니다. 오늘은 우리가 배우고 훈련받는 시기여서 아버지 집에 종들에게 모든 면으로 부족하지만, 그들은 영원토록 점8로서 그 신분과 실력이 항상 그대로지만 우리는 나날이 자라갈 것이고, 이제 천국으로 옮겨지고 나면 아버지 대
대신 우리가 천사들을 부리는 아버지 위치에 서게 됩니다.(고전6:3,
갈4:1-2, 히1:14)
천사는 그 맡은 일이 중대한 만큼 그 실력도 탁월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온 집에 농기구 짐승 등 여러 많은 물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꾼들은 비록 점G 신분이지만 다른 물품이나 도구나 짐승들과는 그 존재 가치가 아주 다른 것과 같습니다. 특히 모든 머슴들을 총괄할 수 있는 상머슴이며 총무머슴은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점O 것입니다. 악령은 바로 이런 실력 있는 천사가 자기중심으로 돌아서서 하나님과 맞서 탈선한 존재입니다(사14:12-13, 유1:6). 이래서 악령은 그 세력이 하나님을 제외하면 어떤 존재도 이길 수가 없고 심지어 천사와의 싸움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 천사와 자유성
천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성입니다.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 목적 대상이므로 만물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천사는 인간을 제외하고 영계와 우주의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유성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인격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천사는 비록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와 모든 면에서 모자랄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천사를 특별히 하나님의 점L라 또는 부리는 일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계22:8-9).
자유성은, 천사가 하나님을 순종할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는 결정권을 말합니다. 천사에게 인간을 제외하고는 만물 중에 가장 높고 중요한 직책을 맡기고 그 일을 위해서 큰 실력을 주셨는데 바로 그 실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맞서 자기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왕국을 만들게 되었으니 이것이 천사의 타락 곧 악령의 출현입니다(벧후2:4, 유1:6). 천사는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각 천사에게 따로 맡겨 책임을 지운 것도 있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심부름을 시키기 때문에 타락하여 눈이 어두워진 우리가 볼 때는 천사를 마치 하나님으로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구원 역사를 두고 항상 하나님의 역사에는 따로 기록이 없어도 천사의 심부름이 있고, 또 천사가 나타나는 부분은 천사만 기록되어 있다 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천사의 타락과 악령
천사의 타락은 대장 천사의 타락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집단으로 타락하여 악령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름을 사탄이라 용이라 마귀라 귀신이라고도 합니다(계20:2). 악령의 수는 다수지만 이들의 활동은 내부적으로 연결되어 일사분란하게 하나로 활동하기 때문에 교리적으로는 복수의 악령이 있다고 알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악령을 하나로 보고 상대하지 않으면 속기 쉽습니다. 악령 하나가 모든 종류의 죄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계12:7-9).
악령의 모든 활동은 자기가 천사 위치에서 자기중심으로 돌아서고 하나님과 맞섰듯이 인간에게도 꼭 그렇게 죄를 짓게 합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돌아서게 하고 자기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아 하나님과 맞서게 하는데, 그렇게 되어진 인간의 숫자와 활동만큼이 바로 악령의 성공이요 악령의 사명입니다(창3:1-5, 벧전5:8). 일단 인간이 하나님중심을 버리고 자기중심으로 돌아서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모든 죄라는 죄는 다 짓게 됩니다. 어떤 죄를 어떻게 짓게 되는지를 두고는 ‘인론’에 이어 ‘죄론’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예정편에서 이미 살펴본 대로, 악령의 탈선과 이런 활동은 천사를 만들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존재가 필요하여 타락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타락한 천사 악령이 죄의 근원이라거나 죄의 창출자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원론으로 나가는 이단이 됩니다(왕상22:19-23).
(5) 섭리
① 섭리
창조한 것을 운영하시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섭리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엿새 창조 이후 6천년 역사와 우주 마지막과 천년왕국 그리고 영계의 영원까지 진행될 그 모든 운영 전부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는 섭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고, 섭리는 창조 그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단4:25, 32-37, 5:18-21, 6:26-27)
② 섭리의 성격
▪ 절대 주권
하나님의 섭리는 절대 주권으로 진행됩니다. 주권이라는 말은 주인의 전적 권리라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가 아니라 고대사회 왕정국가에서 행사하던 주권은 생사를 포함해서 백성의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고대사회의 주권에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완전자입니다. 개미 한 마리나 풀 한 포기처럼 지극히 작은 것부터 태풍과 태양과 천체와 같이 지극히 큰 것도 완전 주권으로 운영합니다(마10:29-30). 또 이런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 움직임까지 그리고 택자뿐 아니라 불택자와 악령까지도 전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하여 움직입니다(욥1:6-12, 왕상22:19-23).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 역사의 범위입니다. 계획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고, 그 계획대로 실제 이루어지는 것도 절대 주권입니다.
이 절대 주권은 차질이나 착오나 번복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인간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고, 또 이 섭리의 주권 역사를 깨닫는다면 그 깨닫는 것만큼 평안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절대 주권은 영원 전 목적을 정할 때부터 예정과 창조와 섭리로 이어지며 영원 후까지 절대 주권입니다(출7:3-5, 9:12, 10:1-2, 시103:19, 104:9-15, 행16:25-26).
▪ 예정 성취
섭리는 항상 예정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계획은 실제 결과와 너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계획이라는 것은 사실 참고만 하면 되는 정도입니다. 또 결과라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희망사항일 뿐입니다(잠16:1, 9).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자시며 완전자시며 영원불변의 단일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계획과 그 성취는 둘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일치됩니다. 어떤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면 이는 완전이 아니기 때문이며 영원불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지와 전능과 단일성의 속성을 가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주 만물 그 어떤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영원 전 예정하신 바로 그 예정 그대로 진행되도록 하나님께서 늘 보존 관리 운영하고 계신다는 이 섭리의 예정 성취성을 알 때라야 신앙이란 진정한 신앙이 됩니다(잠21:1, 사14:24, 26-27).
▪ 목적 달성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그 예정대로 성취되지만 그 성취는 크게 살펴볼 때 바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이라는 점에서 살펴야 섭리의 진행 방향을 빨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섭리는 사실 우리 안팎에 일어나는 일,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섭리고 그것은 앞서 예정되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현실에서 섭리를 연구하는 일은 마치 모래 위에 쌀 한 포대를 흩어놓고 하나씩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세밀한 것 자세한 것을 자꾸 살피다 보면 전체를 보는 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섭리는 하나님의 예정 성취인데, 그 예정은 바로 단 하나인 하나님의 목표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 일입니다.
완전자 하나님을 닮은 우리를 만드시기로 목적을 정했으니 이 목적에 필요한 순서를 미리 예정한 것이고, 섭리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실제 모든 일이 진행되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힘든 일이나 쉬운 일, 슬픈 일이나 기쁜 일,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나 안 되는 일을 가릴 것 없이,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가 하나님의 목적, 즉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이 일 달성에 오로지 필요하고 유익한 일만 있습니다.(롬8:28)
단언하고, 이 일에 필요 없는 일, 이 일에 상관없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으니, 우리는 이 세상 수도 없는 일을 겪고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정을 겪게 되지만 항상 찬송하며 감사하며 기쁨으로 우리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섭리가 목적 달성의 작업 과정이기 때문입니다(약1:2-4).
③ 섭리의 진행 과정
▪ 창조
창조는 섭리에 앞서 따로 살폈지만, 섭리를 보다 넓은 눈으로 살핀다면 창조는 섭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를 논할 때도 창조를 넓은 눈으로 살피면 섭리를 재창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섭리를 창조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와 섭리를 분리시켜 살피지 말고 연관 지어 봐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잠깐 설명을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창조’를 다시 살펴본 것은 다른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라 섭리의 진행과정에 있어 그 첫 순서로 창조를 기억하자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다만, 섭리의 진행에 있어 첫 창조 때 나타난 에덴동산은 특별히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사안입니다. 에덴동산은 타락 이전 첫 창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던 상태입니다. 또한 에덴동산은 구원역사가 마무리되고 세상이 끝나게 되면 영원히 살게 될 하늘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타락의 순서를 섭리역사 과정에 포함시킨 이유는 하나님을 닮는 일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 역사 이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 없이 살기 이전의 상태는 어떠했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이 점 때문에 타락 이전 에덴동산 시기를 먼저 주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활하며 그 나라의 조직과 운영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 나라의 가치는 무엇이며 그 나라의 기쁨은 무엇인가? 믿는 사람들은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세상을 기준으로 삼아 생각하면 공상에 그치게 됩니다. 바로 에덴동산 창조의 첫 순간을 살피면 우리가 오늘 미리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창2:8-25).
▪ 타락
타락의 순서는 천사의 타락이 제일 앞서 있었고, 타락한 천사 악령이 아담을 타락시켰습니다. 이렇게 악령이 타락의 시작이지만 타락의 중심은 어디까지는 아담입니다. 만물은 아담에게 주신 아담의 것이요 아담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악령은 옆에서 아담을 타락시켜 아담을 점령하게 되면 아담을 통해 만물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아담을 정복하고 아담을 통해 만물을 정복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악령이 인간과 세상을 자유하게 됩니다.
악령은 아담을 자기가 범죄한 그 죄를 가지고 꼭 악령 자기처럼 타락을 시켰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 자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중심이 되었고 이제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에게는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자연히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되지 못하므로 아담과 연결을 끊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모습이 어떻게 될지 몰랐던 아담은 이후 재림 때까지 후손의 저주를 포함하여 이 땅 위에서 전개되는 모든 타락상을 잘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아담에게 주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아담이 결정할 수 있으나, 한번 떠나게 된 아담을 다시 불러들이느냐는 문제는 하나님의 자유이지 아담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과 완전 단절이었습니다. 인간 속에 하나님과 연결을 맡은 영은 단번에 죽었고 이 영이 죽으므로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과 모든 연결이 끊어져 뿌리와 끊어진 나무의 상태가 되었습니다(창2:17, 엡2:1).
하나님의 섭리에서 타락이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으로 만들어지고 하나님으로 살던 사람에게, 하나님 없는 상태를 알리고 체험하게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것은 지식으로만 알려서 될 일이 아니고 반드시 체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타락이라는 과정을 섭리 중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타락이라는 과정은 오늘까지 우리에게 현재 진행되는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타락을 하나님의 섭리에 포함시키는 것은, 타락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성취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을 수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타락을 시켰고, 인간이 타락하도록 미리 예정해 두었으며 절대 주권으로 타락을 진행시켰습니다. 이 타락이 외견상으로는 마치 인간의 결정이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인간의 인지 수준에서 관찰한 것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크게 사랑하기 위해 섭리순서에 포함시킨 것입니다(롬9:11-18).
▪ 대속
하나님의 섭리역사에서 가장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순서는 대속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시는 도성인신이 먼저 있었고(요1:14), 하나님과 사람이 한 분으로 역사하신 신인양성일위의 지상 삶이 있었고(눅2:51-52), 그 삶의 마지막인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었으며(고후5:15), 다시 3일 후에는 신인양성일위의 성자 예수님으로 부활을 했습니다(마28:6, 고전15:4).
죄를 지은 것은 우리들이므로 그 죄값으로 우리가 영원 지옥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타락의 체험은 주시되 타락의 상태로 계속되도록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원래 위치로 다시 회복을 시켜야 하는데 이 2가지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죄값을 치르고 우리 대신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 대신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고후5:15, 벧전1:3)
대속은 2천년 전 예수님의 도성인신과 사활 대속으로 완성했지만 이 완성은 법적으로 기본구원을 완성한 것이고, 이 구원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 실제 나누어주시는 것은 믿는 사람 하나하나를 불러 중생시키는 바로 그 시점부터입니다(요3:5).
▪ 구원
대속으로 완성한 구원은, 이제 믿는 사람이 세상에 출생한 다음 그 사람에게 예정되어 있는 중생의 순간에 성령과 진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가지고 그를 믿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구원은 그 사람이 중생하는 순간 단 한번 만에 완전하게 입혀지는 것이 있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 합니다(딛3:5). 기본구원을 받아 중생된 사람은 그 이후 죽는 순간까지 각자 전혀 다른 모습과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몸을 말씀과 성령에 붙들려 살도록 건설해가는 역사가 계속되는데 이를 건설구원이라고 합니다(고전3:12-15).
이 구원 역사는 오직 택자에게만 해당되고 불택자에게는 타락만 있고 이후 심판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평생은 택자들을 위해서 이용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만물과 다른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만물이 택자들에게 이용당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의 행위 뒤에 심판이 따라가게 됩니다. 만물의 경우는, 택자를 위해 사용되면서 택자의 신앙을 반대하는 일에 사용된 것이 있다 해도 그들은 그 행동에 대한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불택자들처럼 자유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반대하여 당하는 고통은 없습니다. 행동을 자기가 결정하고 움직이는 불택자들과 악령은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고통스럽게 영원토록 받게 됩니다(계14:10-11, 20:10).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구원하시고 세상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가는 이 섭리 역사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타락도 있고 또 구원의 방해 역사도 있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그 값이 단순하게 계산해서 산출될 정도가 아닙니다. 택자와 꼭 같이 만들어지고 꼭 같은 형편으로 살아가는 불택자 전부가 우리 택자의 구원에 소모품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의 대속이 투자되었고, 또한 이 구원을 실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역사에는 성령과 진리가 전적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진리는 그 하나가 천지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낸 창조의 시공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통해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주 만물 전부이며 그 전부의 움직임입니다(사45:9, 롬11:33).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구원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움직이고 합하고 쪼개고 변동시키고 충돌시키고 수습하고 있습니다.
▪ 심판
세상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심판이라는 단어는 죄인을 지옥 보내는 것으로만 전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살펴야 합니다. 하나는 불택자를 정죄해서 지옥에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택자를 심사해서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부분은 분리수거하여 지옥에 버림과 동시에 그가 말씀대로 바로 살았던 것은 영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판은 지옥으로 보내는 최종 결정의 정죄 처리하는 것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성도들의 영생을 확정하는 심사로 나누어야 합니다. 앞에 것을 공심판이라 하고, 뒤에 것을 사심판이라고 합니다. 공심판은 택자와 불택자로만 나누어 불택자를 지옥에 보내는 심판이고, 사심판은 택자 각자에게 천국의 영원한 모습을 결정짓는 심판이니 이 사심판은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고 그 결과가 전부 다 다르게 나올 것입니다. 공심판은 정죄 징벌을 결정하고 사심판은 성화의 정도와 의의 기능과 그 실력 그리고 영원한 소유와 상급을 결정하는 심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비단 이 세상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세상 마지막의 심판도 당연히 섭리의 진행 과정 중 하나로 파악해서 세상 살아생전 생활이 최후 심판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또 영원한 자기 모습으로 어떻게 고정이 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계20:11-12, 고후5:10).
▪ 영원
대개 천국은 영원히 쉬고 노래하고 사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찌든 사람에게는 쉴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므로 인간이 알아듣도록 천국생활은 영원히 쉬는 것이라고 가르쳤지만, 이때 쉰다는 의미는 세상에 하기 싫은 일 고통스러웠던 짐을 벗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세상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일, 해서는 안 될 노고, 죄와 그 값으로 무겁게 짐 지던 그런 일들이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활동과 일 자체가 없는 곳이 아니며, 또한 세상식 휴일과 나태함을 영원히 가지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가 라는 문제를 두고는 에덴동산을 잠깐 참고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아무 일이 없었는가? 편히 쉬고 노래만 하고 살았던가? 역시 그렇게만 알고 있는 것이 믿는 분들의 상식입니다만 실은 에덴동산의 일은 오늘 인생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로 충만했습니다. 만물을 지키고 다스리는 일이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입니다(창2:15, 19-20).
우주와 만물을 움직이는 곳이 그곳이었고 아담은 그 중심에 서서 그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격무로 너무 바빴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죄와 마귀와 사망이 없는 곳이므로 반란도 없고 항의 데모도 없으며 통치자 몰래 놀고먹는 존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운영하는 방법은 하나님중심이 되어 하나님 명령대로만 했습니다. 아담이 자라감에 따라 만물은 아담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우리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마지막 불심판이 끝나고 새하늘과 새땅이 되고 나면 과거 에덴동산처럼 그런 세상이 되겠지만 영계는 이 우주 물질계에 있었던 에덴동산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세계로 전개될 신령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존재는 그 종류도 그 존재 형식도 그 모든 생활 방식도 이곳과는 너무 차원이 높아서 이곳 세상에서는 측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도가 자기 실력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순종한 연습을 통해 가지게 된 기능과 실력이 그 나라에 알지 못할 존재들을 다스리고 지도하며 하나님 노릇을 넉넉히 감당하게 할 것입니다(계22:5).
천국에서 하나님 대신 하나님으로 등장할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 나라에는 다시 미혹이 없고 타락 탈선이 없는 상태로 영원히 계속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땅 위의 섭리 역사는 영계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계속될 그 섭리 역사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우리가 지난날과 현재 형편을 보며 대충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점입니다(사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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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8:14-23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행17:22-27 ‘...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눅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요5:39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삼하22: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고후9:8-10 ‘...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시119: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점L 된 연고니이다’
골1:16-20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엡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레11:44-45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눅15:11-32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딤전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겔44:23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딤전6:16은 p.118 참조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딤전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삼하22: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
삼상2:3 ‘...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겔11-5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마20:14-15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막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 ’
요일4:8-10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전13:1-8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겔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사5:16 ‘...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계3:7 ‘...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요일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대상29:11 ‘...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고전8:4-6 ‘...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고전8:4 ‘...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엡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요14:9-13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전8:4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마28:19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엡1:3-6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갈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 네가 이 후로는 점L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히12:7-9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
롬8:29-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롬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마6:10-1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엡1:4-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
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계3:20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벧후1:4-8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사43:3 ‘...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에{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사45:9 ‘... 진흙이 토지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르켜 ...’
렘18:2-6 ‘...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19-21 ‘...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계1:5-6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욥1:6-12 ‘...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
롬8: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눅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
엡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사45:9, 렘18:2-6, 롬9:19-21’은 p.155, ‘행17:16-34’은 p.64 참조
전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고전15:50 ‘...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히11:16 ‘...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마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마25:34 ‘...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벧후3:7-12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전1:9-10’은 p.161 참조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전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고전15:50’은 p.161 참조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벧후3:13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계21:1-2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막9:47-49 ‘...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눅16:23-24 ‘...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눅24:39 ‘...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고전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갈4:1-2 ‘...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사14:12-1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계22:8-9 ‘...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점L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계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창3:1-5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왕상22:19-23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단4:25-37 ‘...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단5:18-21 ‘...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단6:26-27 ‘...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욥1:6-12’은 P.157, ‘왕상22:19-23’은 P.172 참조
출1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시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시104:9-15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행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잠16:1-9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사14:24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사14:26-27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롬8: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창2:8-25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롬9:11-18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눅2:51-52 ‘예수께서 ...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
고전15: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요3:5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고전3:12-15 ‘...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계14:10-11 ‘...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사45:9’는 p.155 참조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계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고후5:10 ‘...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
계22:5 ‘...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사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