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교리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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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6:02
(02.01.01.초안, 03.05.22. 1차교정)
5. 교리의 필요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롬14: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1) 성경해석
① 성경 해석은 성경
성경은 비록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으나 그 언어 속에는 그 언어가 다 담을 수 없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것은 그 언어가 정확하고 그 언어가 그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을 언어 연구와 어학사전에 의존한다면 이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의 기록 자체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으며 어떤 문장으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까지는 그 사용된 언어를 연구하고 해당 언어의 사전을 참고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확인한 다음부터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문장의 언어적 확인을 한 다음, 그 후 그 성경이 의미하는 바는 반드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혹시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단계 이전 성경 기록 자체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언어적 연구와 사전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으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성경에 사용된 표현은, 일반 사람의 언어능력으로 조심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정도로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기록한 성경 기록을 만일 언어 전문가가 평범한 언어사용 이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게 되면 오히려 원래 기록한 그 기록 상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을 언어로 확인하는 1차 단계는 일반 사람의 평범한 언어능력으로 접근하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기록 자체를 확인한 다음부터는 이 성경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부터 성경은 이제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로 나타나게 됩니다. 좁은 의미의 성경 해석은 이 단계부터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만이 성경 해석법이 된다면 성경해석은 교리의 범위 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교리가 필요한 이유의 첫째를 성경해석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고전2:13, 10:4).
② 성경해석과 교리
성경해석에서 한 성구를 다른 성구와 직접 연결 지어가며 해석하면 이를 주경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성구는 전체 성경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 이 전체 면을 두고 해석을 하게 되면 교리해석이라고 합니다. 주경신학에 비하여 조직신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경신학은 성경 해석을 개별 성구 중심으로 시작한 것이고, 교리라고 하는 조직신학은 성구 해석을 성경 전체 성구를 상대로 체계화로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경신학이 조직신학의 근본이며, 조직신학이 주경신학의 완성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교리연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연구입니다.
교리가 성경해석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개별 성구를 해석하다 보면 그 성구 해석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지도 좌표에서 X 선상의 좌표만 가지고 목표물을 찾는 것과 X Y 선의 좌표를 함께 가지고 찾는 것은 편리성과 정확성에 있어 아주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서울에서 김씨 성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것과 성씨에다 성별 주소 나이까지 다 알고 찾는 것으로 비교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리는, 한 성구를 해석할 때 그 성구가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을 전체 성경으로 제시하게 되고 또 그 성구를 해석할 때 교리는 그 성구 해석이 전체 성경에 연결을 시켜 그 성구의 해석 범위를 전 성경으로 확대시키는 체계입니다(고전10:4, 사34:16-17).
우리의 신앙은 성경 하나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어떤 신학이든지 마지막에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대하는 것인데, 특히 교리를 조직신학이라고 하여 따로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성경 해석의 전체적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한 성구 해석을 전체 성경 체계에서 접근하게 되면 난해절은 저절로 없어지게 됩니다.
(2) 교회통일
① 교회의 정체성
교회는 한 분 하나님과 말씀을 모셨다는 의미에서는 하나지만 그 성경을 어떻게 믿고 신앙생활을 어느 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서는 서로 다를 수 있으니 이를 교파라고 합니다. 오늘 많은 교파가 존재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 사람들이 교권 투쟁 과정에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해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각 교회에 주시는 은혜의 분량과 차원에 따라 성경 깨달음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파라는 것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교파를 교회라고 표현할 때, 교회는 교리로 존재하게 됩니다.
오늘 교회의 존재 형식을 교리가 아니라 교권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분열도, 또 분열된 교회의 통일도 그 폐해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교회는 그 존재 형식과 상황을 교리에서 찾아야 옳습니다. ‘성경관’ ‘삼위일체관’ ‘구주관’ ‘기본구원관’이 같다면 우리는 일단 하나님의 교회로 정의하게 됩니다(엡4:13). 이 교리를 가지면 교회고 이 교리를 가지지 않았다면 타종교로 보게 됩니다. 근본되는 이런 교리들은 같지만 어떤 교리들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달라도 되는 것이 있는데, 이런 교리들이 다르다면 이때는 교회 내의 교파로 구별할 뿐입니다. 타종교로 분류하는 경우든, 같은 교회인데 교파가 다른 정도로 분류하든, 어쨌든 교회는 교리로 존재하고 교리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리라는 것은 교회의 존재를 확인하는 열쇠가 됩니다. 교리로 교회가 존재하고, 교리가 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확인시킵니다. 따라서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② 교훈 통일
교리로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교회는 교리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니, 교리가 하나라면 교회의 교훈은 통일될 수밖에 없고 또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교리는 교회로 하여금 교훈 통일을 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지방에 위치해 있다 해도, 또 그 교회 교인의 구성이 어떠하며 그 목회자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그 목회자의 설교 내용과 강조하는 면은 각각 다를지라도 교회의 교훈은 교리로 통일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교리적으로 다르다면 교리를 기준으로 그 교훈이 같아지도록 해야 비로소 한 교회로 존재하게 됩니다. 한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롬16:17)..
교리가 다르면 교훈은 같아질 수가 없고 교훈이 다르면 그 교훈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사람도 달라지게 됩니다. 잘못 만들어진 부분은 잘못된 그만큼은 천국으로 옮겨질 수 없습니다. 교리가 교훈을 통일시키고, 교훈은 주님의 몸이 될 우리를 한 분에게 속한 인격으로 통일시킵니다. 즉 교리는 교훈 통일을 통해 어느 시대 어느 교회 어느 교인이라도 한 분 주님의 몸이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교리의 교훈 통일과 관련하여 꼭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말세 교회를 뿌리째 뒤흔드는 교회 통일 운동이 교훈의 통일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통일이 좋은 것이나 우선 교훈이 왜 틀린지를 살피고, 그 교훈의 뿌리가 되는 교리적 입장에 어떤 문제가 다른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리가 다르니 교훈이 다른데, 교회의 외형만 통일을 시키려고 하는 이 운동이 있어서 말세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시험이 되고 있습니다.
(3) 이단대항 및 그 위험성
옳은 것만 세우면 모든 종류의 잘못은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잘못을 다 정죄한 다음 옳은 것을 세우려고 한다면 인간이 가진 시간과 기회가 유한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너무도 손해가 많습니다. 검은색을 설명하기 위해서 검은색이 아닌 색을 다 동원하여 이것은 검은색이 아니라고 일일이 말하므로 마지막 남은 색을 검은색이라고 가르치는 방법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냥 검은색을 바로 내놓고 이것이 검은색이라고 설명하면 얼마나 명확하고 간단할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종교의 틀린 점을 연구하고 비판하여 기독교가 옳다고 증명해 나가는 것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극히 예외적이라야 합니다. 만일 다른 종교를 연구해서 기독교와 비교를 하고 그 장단점을 설명하여 기독교가 옳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는 우매한 일입니다. 이단은 다른 종교에 비하여 우리가 비교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너무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교 설명도 가능한 한 줄여서 최소화시킬 수 있는 데까지는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른 종교와 이단들은 기독교에 의하여 비교가 되어지면, 비록 비판을 받을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수입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그들과 비교하면 하는 것만큼 큰 위험성을 안게 됩니다. 오물통과 흰옷이 접촉을 하게 되면 흰옷은 잘해야 본전이고 오물통은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학자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은 자신들이 교회 안에서 앉아야 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가 맡을 적절한 분야가 없으면 심지어 이단만을 연구하는 직책을 평생직으로 택하게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직책은 우리 교회 전체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어도 본인에게는 손해가 많습니다. 또 그런 분들의 수고가 짧게 보면 교회 전체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으나, 길게 보고 넓게 본다면 유익보다는 손해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 면을 삼가 조심해서 살피는 이단 전문가가 있다면 그는 교회를 훔치러 넘어오는 도적을 막은 큰 공로가 있을 것입니다.(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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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34:16-17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계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