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결혼과 이성교제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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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결혼과 이성교제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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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결혼과 이성교제 261

기독교인의 결혼과 이성교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1.) 이성을 느끼게 하신 것은 결혼을 통해 사람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선 결혼을 살펴보고 그 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이성교제'를 살피겠습니다.



1.성경의 결혼

1)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만드신 하나님

한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로 사람을 만들어 놓으셨고, 이 둘이 함께 살며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도록 만드신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을 닮는 일입니다. 남녀가 부부로 한 가정을 이루는 일은 외부의 부부 모습일 뿐입니다. 내부로는 두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한 분을 모시고 움직일 수 있느냐, 또 움직여 왔느냐는 것이 실제 부부된 양이며, 그 양만큼이 가정구원의 실체입니다. 결혼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2)실제 하나되는 일에 필요하여 주신 외부적 결합

국을 만들기 위해 가마솥이 필요하듯 하나님을 닮은 참사람 부부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일단 두 사람을 붙잡아 매어 두어야 합니다. 부부로 호적에 올려놓는 것이나 주변의 시선이 그들을 묶어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 제도적인 것으로는 외부만 묶고 내부를 묶지는 못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다른 것보다 더 다른 두 개성 두 종류의 인간이 한 솥 안에 들어가서 완전히 곰국이 되어 제3의 단일 존재가 되어야겠는데 이들을 붙잡아 두는데 사용하신 것이 이성교제입니다.

3)결혼은 용광로 속에 제련과정, 이성교제는 그 고통의 기간을 견디게 하는 최면제

입맛부터 시작해서 사고방식 취미 사상 모든 것이 다 다른 두 사람이 '이성을 느끼는 감정'에 최면이 걸려서 손해 볼 장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결혼을 경제적 측면으로 평가한다면 밑지는 장사가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이 움직이는 것인데 유독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자기 번 모든 돈을 쏟아 붓기만 합니다. 이성을 느끼는 감정에 최면이 걸린 것입니다. 그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맨 정신이라면 그런 바보같은 일을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와 전혀 다른 한 인간을 자기 몸에 용접을 하여 붙여놓고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성을 느끼는 감정이 들어서 그 고통을 그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성의 감정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하나님 한 분 앞에 한 사람이 되기까지 가마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마솥은 우리가 먹을 음식이 아닙니다. 가마솥은 식사하는 목표도 아닙니다. 가마솥 속에 들어있는 음식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음식이 다 되도록 철광석이 좋은 쇠가 되기까지 그 용광로와 가마솥은 대단히 중요한 중간역할을 합니다.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 이성교제라고 표현될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인류역사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이니 재미있고 좋으면 그대로 즐기게 되어 있지 그것을 우리 믿는 사람과 같이 다른 차원에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이성을 느끼도록 주신 감정을 왜 주셨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성경으로 또 신앙양심으로 더듬어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교인에게는 '결혼'과 '이성교제'란 세상사람과 전혀 다른 면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답변2.) '이성문제'는 특이한 속성이 있습니다. 한번 풀면 그냥 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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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에서 이성 문제나 결혼 문제로 이런 의견을 주장하게 되면 수도 없는 반론들을 받게 됩니다. 현재 총공회 교회들도 이성 문제를 완전히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신앙노선에 상관없이 이성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결혼에 대하여 이런 원리들은 적용된다는 것이 이곳의 확신입니다.

*이곳의 이성문제에 대한 글은 어느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전체 말세와 말세 교회들, 특히 이성교제를 쉽게 또는 풀어놓아야 한다는 자유주의 신앙들을 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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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오실 말세도 7계명이 대표적인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과연 오늘 결혼과 이성문제가 어느 정도로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는 세상을 아는 사람일수록 그 실상을 잘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안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라는 세상 역사는 이미 수천년 전에 오늘 뉴스로 듣는 모든 종류의 이성문란에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전에 벌써 '근친상간'이나 '짐승관계'까지를 금하고 있었으니 하물며 오늘이겠습니까?


2.정말 큰 문제는, 한 손으로는 불지르고 다른 손으로는 불을 끄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 바람이 드센 야산에서 한 손으로는 횟불을 들고 휘젓고 다른 손으로는 불을 끄고 있는 세상, 이것이 오늘 교회와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오직 결혼한 부부 안에서만 허락한 것입니다. 그들을 묶어 놓을 수 있는 한 가지 용도만으로 주신 것입니다. 부부가 되기 전, 또는 부부가 아닌 곳으로 움직이는 '이성을 향한 감정'은 전부가 7계명의 죄가 됩니다.

결혼 이전의 남녀가 예배당 안에서까지 자유롭게 이성을 향한 감정을 가질 수 있고 또 표현할 수 있는 이상, 7계명과 관련된 극단적인 결과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불길이며 칼날입니다. 결혼 이후 부부간에만 허용이 되었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즉시 무엇이든 다 태우고 무엇이든 다 베어버리는 무서운 속성을 가졌습니다.


3.이성교제가 죄가 된다는 인식을 뚜렷이 가지지 않으면 오직 한 길, 멸망뿐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죄를 지어도 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하루 490번 넘어져도 주님 은혜로 죄를 이겨야겠다고 더욱 죄에 대하여 대항력을 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성교제란 막을 길이 없다고들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니 풀어놓든지 아니면 차라리 밀어주자고 합니다. 물론 '건전한' 이성교제라고 단서는 붙입니다. 이성교제란 막을 길이 없다고들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죄를 덜 짓게 하려고 못 짓게 하려고 노력은 해야 하고,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이 노력 때문에 주님이 보시고 이 노력 때문에 주님이 은혜로 막아 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4.교회가 이 나라에 들어오던 100여년 전, 그때부터 예배당은 연애당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만 보던 연애, 마음 속에만 넣어 두었던 연애, 이 이성교제를 한국사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실제 보여 주었고 또 세상 사람들이 다 따라 오도록 만들었던 선구자들, 죄의 앞잡이들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불신자들이 연애당으로 불렀습니다. 오늘은 전부가 육체 사랑 지상주의이기 때문에 욕이 될 것도 없었습니다.

남녀 학생이 손을 잡아 볼 수 있는 기회, 남녀 학생이 겁도 없이 타오르던 정욕을 손끝에라도 쥐어 볼 수 있는 그 모든 시작을 거의 교회 내에서 시켰습니다. 막으면 더 타오른다? 그렇지 않습니다. 막으면 결국은 좀 덜합니다. 풀어놓으면 차라리 덜한다. 풀어놓으면 그 끝이 동성으로 가고 근친으로 가며 마침내 짐승에게로 가는 것이 이성교제의 속성입니다.


5.미국과 한국의 이성문제, 한국의 도시와 시골의 이성문제를 자주 비교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풀어놓고 이성을 자연스럽게 접촉하니까 차라리 생각보다 덜하다, 시골애들이 멋모르고 설치면 도시애들보다 더하다, 이런 궤변들을 들어보셨습니까? 순진해 보이던 애가 어느날 일을 저지는 것을 보고 상대적 평가로 계산을 오판한 것입니다. 미국의 10대 임신률과 한국의 10대 임신률, 도저히 비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이성문란을 한국이 따라간다! 아닙니다. 흉내도 못냅니다. 이 문제를 두고는 누구든 어느 출신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단 풀어놓는 문화, 더 개방적인 문화와 사회는 그 극도에 달함이 끝이 없을 만큼 심하게 나갑니다. 그래도 잡는 문화 그래도 폐쇄하는 문화와 사회는 몇 명이라도 건질 수 있습니다.


6.건전한 이성교제를 통해 결혼까지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건전한 이성교제는 반드시 더 많은 육체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더 많은 육체 관계로 나간 사람은 한 사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그 다음 단계가 바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동성으로 진화를 합니다. 동성이 평범하게 되는 사회가 될 즈음에는 전혀 모르던 곳에서 짐승을 향한 인간들이 독버섯처럼 이미 뻗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인 모르는 천재지변으로 그 일대는 완전히 지하로 묻혀버립니다. 그리고 수천년 후, 어느 시대 사람들이 그 옛날의 기록들을 끄내 보고는 한 마디 하게 됩니다. 천벌이라..... 신의 저주라..... 이 말을 하는 이들이 교인이 아니라 무신론 불신자들의 입에서조차 그렇게 밖에 표현치 못했습니다.


7.우선 소결론을 내린다면, 이성교제란 가는 길이 오직 한 길입니다.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주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손을 대면 그기에 끌려가도록 대단히 폭발적인 힘을 주셨습니다. 피함으로 이기지 만져서 이길 수 없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극약입니다. 오직 결혼에만 사용케 했습니다. 결혼 이전, 또는 결혼 울타리 너머 있는 이성교제란 오직 피하고 막는 이상의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전제, 이런 인식을 가졌다면, 백영희목사님이 교회와 교인에게 심지어 교역자에게가지 그렇게까지 '결혼관'과 '이성교제'문제를 다루고 조심하신 내용을 계속해서 설명드릴 수가 있다고 봅니다.


(답변3.) 오늘에 필요한 결혼관과 이성교제관

성경이 말하는 결혼, 그리고 부부를 묶어주는 이성감정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 이 문제를 어떻게 운영해 갈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1.'결혼관' 특히 '이성교제에 대한 엄격함'은 말로만 끝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아닌가?

성경원리대로 옳다고 해도 실제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니냐는 반문을 많이 받습니다. 주일문제도 그러하고 결혼에 관련된 이성교제 문제도 그러합니다. 재론하지만, 힘대로 끝까지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충성의 진심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2.불같은 청소년의 이성감정, 극도로 자극시키는 모든 환경,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오늘 이성문제를 염려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는 전부 좋다고 했습니다.

한번 풀리고 나면 다시는 집어넣을 수 없고 통제도 되지 않는 무서운 '이성감정', 처음 풀리면 멋진 경험이라고 전부들 좋아하게 되지만 바로 그 너머에는 에이즈, 음란물의 홍수, 가정과 사회의 완전파괴로 이어지는 것이 공식인데, 그 너머를 일부러 보지 않고 그 시작의 미소만 보고 이 이성문제를 완전히 풀어야 된다고 외쳤던 사람들, 지지했던 사람들, 그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교회까지도.

1970년대를 지나며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이성문제를 완전히 풀어버렸습니다. 오늘 이런 사회를 만들자고 전부가 나섰으니 오늘의 이런 인륜파괴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모두들 좋다고 시작했으니, 오늘 이런 사회를 살아야 하고 그 값을 받아야 지당합니다.

2)거리를 배회하는 수백만명의 맹수들, 이성을 향해 굶주린 늑대가 된 무리들이 있습니다.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에는 15세 16세가 되어야 이성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시각표에 따라 바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16세 정도였으며 늦어도 18세 정도였습니다. 이성을 알았는가? 바로 결혼할 때라는 자연계시였고, 바로 결혼을 향해 절차가 진행되어졌습니다. 이성을 알아야 하는 마음의 변화가 발생되자 바로 실무절차가 시작되었으니 마주하게 된 첫 이성이 첫 결혼의 상대방이었고, 그 사람밖에 모르기 때문에 평생을 살면서 그 이상으로 넘어가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좋아서 이성을 느끼는 나이가 4-5세까지로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30살 이후까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12세 안팎에 느끼게 된 이성을 30세 전후하여 결혼 안에서 그 이성을 가지게 되었으니 약 2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결혼이라는 우리속에 가두어 두어야 하는 이성감정을 거리에 풀어놓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도 10대와 20대 대부분이 결혼이라는 우리 속에서만 가져야 할 이성을 우리 밖에서 가져보기 위해 눈을 번쩍이고 있습니다. 상대를 부르는 기괴한 치장과 몸짓, 꼴값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신문화라 하지만 짝짓기 시절 짐승들이 하는 치장과 몸짓을 보면 어찌 그리 꼭 같습니까? 신문화가 아니라 구문화이며 짐승수준입니다. 전부 동물원에 갖다 놓아야 할 지경입니다.
사회는 이성에 굶주린 20여년 세월의 청소년기를 상대로 극단적인 환경을 만들어 두었고, 해당되는 이들은 상대를 손에 넣기 위해 못할 짓이 없으며, 한번 풀리면 다시 제어되지 않는 이성은 그 재갈을 벗어던지고 들나귀처럼 발광하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가히 수백만명이 넘고 약 1천만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무런 제재없이 이리 저리 헤프게 마주치다 보니까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고 여러 사람을 알게 되는 지식은 결혼 후까지도 자기 상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어 결혼 후에도 결혼 울타리를 쉽게 넘어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3)조혼이 시급합니다. 사실은 적령기 결혼입니다.

16세 늦어도 18세면 제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던 시절, 그 시절보다 지금은 모든 여건이 좋아져 있습니다. 인식을 바꾸고 달리 생각한다면 건강조건, 경제창출의 가능성, 모든 면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라면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본 하드웨어가 되어 있을 나이이며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과보호, 넘치는 애정이 자식으로 병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기능은 이전만 못하고 30세에 결혼을 하면서도 부모 신세를 져야 하는 식민지 근성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문제만큼은 하늘을 날고 있으며 또 탐욕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조혼이라고 할 것이나 세계의 헌법과 이 나라의 헌법이 20세라면 자기 나라 대통령을 뽑는 나이이며 나라를 지키도록 군인 아저씨가 되는 나이입니다. 과거보다 휠씬 조숙하고 모든 사회여건이 좋기 때문에 얼마든지 성인이 된 20세에 성인 노릇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정작 성인 노릇을 해야 하는 책임면은 전부 부모가 대신해 주어서 미성인을 만들고, 유독 이성 문제만은 성인 이상의 상태로 발진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20세 안팎의 결혼을 주장한다면, 돈은 어떻게 벌고 대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라는 반문이 나옵니다. 부모가 주는 돈으로 꼭 4년 대학을 다 다녀야겠는가, 결혼해서 함께 벌어가며 자신들의 두뇌와 노력, 그리고 실력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사회인으로 출발을 해야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충분한 때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본인들이 가질 책임감 부담감을 적절히 가압시켜 주면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단단한 제품 경쟁력과 자생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4)연습과 숙달로 자랄 수 있고, 실무를 맡게 되면 책임감을 느끼는 본능이 있습니다.

품 안에 아이로 보여도, 결혼을 시켜 살게하면 다 살아 갑니다. 오히려 이왕 지나가야 하는 자기 인생의 자기 자리를 일찍 잡게 되면 유리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계산을 한다면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가진 애정 때문에 차마 그리 못하는 것입니다. 그 싸구려 애정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자녀문제로 많은 모순을 유발시킨 원인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결혼을 하고 둘이라야 가능합니다. 이상한 계산이지요? 그러나 결혼해 본 어른들의 경험으로는 틀림없는 소리입니다. 철이 드는 것도. 책임을 가져 사람이 되는 것도 다 그러합니다.


3.하나님이 이성을 필수품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상 이 문제는 전향적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부모의 지나친 자식 사랑이 자식을 완전히 망가 버린다는 것, 늦어지는 결혼이 사람을 완전히 부패케 만드다는 것, 대학을 꼭 가야하는 것으로 아는 인식이 부모나 본인에게 많은 인생 비용을 유발한다는 병폐, 하나님이 주신 자연계시의 운영을 거스리는 인간의 기술과 재주가 결국 큰 화를 부른다는 점, 이성은 목회자부터도 제일로 조심할 위험물이라는 인식, 친부모가 아니면 친 남매가 아니면 15세 안쪽의 나이에서는 어떤 남녀라도 함께 걸어다니지도 말라는 주의, 일찍 결혼하는 것이 오늘같이 험악한 시대에 깨끗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등은 백영희 목사님이 평생 그 교인들에게 조심을 시켰던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깨끗하였던 시절이 총공회 교회에는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런 정도의 인식이 있고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예배당 좌석도 남녀반으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60cm 안팎의 통로가 남녀의 마음을 막을 수 있다고 볼 만큼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60cm 복도를 사이로 하여 남녀반을 떼어놓은 예배당과 그 60cm를 우습게 생각하여 혼석토록 한 예배당, 결국 세월이 말해 줄 것입니다. 속화된 훗날의 교회와 속화가 대단히 둔화된 교회의 차이일 것입니다.

남녀 중 고교 학생들의 예배를 남녀반으로 될 수 있으면 분리를 시키고 그 담임하는 선생님도 될 수 있으면 남선생님이 남자를 맡도록 여선생님이 여자를 맡도록 하는 것이 휠씬 나을 것입니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이렇게 했었고 당시에는 동물원 구경하듯 조롱들을 하였으나 9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이성문란의 실상이 그 모습을 들어내면서 오늘에는 우리의 이성관을 다 부러워하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번 풀어놓은 곳은 다시 우리 속으로 가두어 둘 수 없는 것이 이성을 느끼는 감정이라는 데 있습니다.


4.아직까지 이성문제를 엄격히 하는 총공회 교회들, 특히 이 문제는 반드시 보수라야 합니다.

신앙노선과 이성문제는 보수적일수록 좋습니다. 우선 잠깐 풀어놓고 즐기다가 다시 고삐를 잡아쥐면 된다는 이 유혹이 들어서 풀게 됩니다. 특히 가정적으로는 얼마든지 부모하기에 따라서 될 수 있으니 시대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더 어려운 시대에 더 어려운 신앙의 길로 자녀를 기른다면 더 큰 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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