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요일5:18) 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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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요일5:18) 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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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문 :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요일5:18) 3670

오늘 신학교에서 특강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요한일서에 나오는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다는 구절을 질문해봤습니다.

성경해석을 잘하시는 유명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구절을 질문을 했는데, 그렇게 한 구절 한 구절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가망성이 많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의 앞뒤전후 문맥과, 나아가 성경전체로 그 구절을 해석해야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이 구절이 지금까지 여기 홈페이지 중에 최대 난해구절이었습니다. 앞뒤를 맞춰보니 잘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웠습니다.그 목사님도 여기홈페이지처럼 해석 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 구절들을 문맥에 맞게 성경전체에 맞게 해석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 전 세계의 신학교와 목사님들은 요한일서에 나오는 그 구절을 여기 홈페이지처럼 해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답변 : 이미 박윤선목사님과 40여년 전에 직접 토론을 거쳐던 성구입니다.

1. 박윤선목사님 백목사님 사이에서 이미 40여년 전에 토론을 거친 성구입니다.

박윤선목사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현재 국내에서 성경을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정통 신학교는 성경신학에 관한 한 박윤선목사님의 제자들이거나 아니면 그의 제자의 제자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정도이며 박윤선목사님의 지도 선상에서 이 문제를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박목사님의 주장은 성도가 고의로 죄를 짓거나 오랫동안 죄를 짓는 일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요일5:18의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신 성구의 원어가 동사가 현재형이며 문법에서 현재는 '현재 습관' 또는 '반복적 행위'를 표시한다고 이 본문을 풀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를 두고 그다음 성도는 습관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 경우는 없고 또 고의로 죄를 짓는 그런 일도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성구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잘못 깨달았고 잘못 짚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백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대구의 합동측 경북노회의 정죄 결의와 한종희목사님의 이단의 정체라는 책 발간에 배경이 되었는데, 박목사님은 사망하기 직전 백목사님을 만나 깊은 반성이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이단으로 정죄할 수 없고 그렇게 될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발표는 하지 않았으나, 그는 양심가이고 교리투쟁가이므로 자신이 이단성 있는 목회자로 지적한 사람과 그 교리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런 자리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질문한 내용은 유명한 난해절입니다. 박목사님의 초기 가르친 내용을 두고 이 난해절을 박목사님 주석집에서 참고하여 모두들 반복하고 있지만 박목사님처럼 주장하게 되면 성경 전부가 다 틀어집니다. 이 면에 대하여는 '건설구원'과 '삼분론' 등의 교리에서 이미 많이 설명을 했기 때문에 이 교리 문제는 더 이상 옳고 그른 것을 따질 문제가 아니고 한국교회가 솔직하게 이제 백영희교리체계를 받아들였다고 선언을 하는 형식과 절차만 남아 있습니다.

박목사님의 이 성구 해석은 사실 박목사님의 독창적 깨달음이 아닙니다. 그분은 세계 보수정통 신학계의 흐름을 읽고 그 자료들을 국내에 소개한 분입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믿는 사람 중에 고의로 죄를 반복해서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중생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교계의 교단 최고위직에 있는 분들은 거의가 다 중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고신대와 병원을 보유한 고려학원의 문제를 아시겠지만, 고신의 사태는 고신 내에 수십년 썩어 문드러진 고질병이라는 것을 고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신보다 합동측은 더 심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수십년 계속된 총회장 선거비리와 교단 보유 학교나 병원 등의 구조적 병폐는 요일5:18에 의하면 중생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교단적으로 아예 중생되지 않고 가만히 들어온 교회라는 논리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3. 위 성구를 앞뒤 성구로 연결 지워 우선 방어를 한다면 우선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구 해석 중에서 특히 교리체계 근간에 관련된 해석들은 그 성구 자체만 가지고는 단정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로 예를 든다면 성경 어느 성구를 가지고 따져도 그 성구 하나만 기준을 잡고 그 성구 앞뒤 문맥만으로 살펴본다면 여호와의 증인들의 말이 옳은지 우리 정통 교회의 설명이 옳은지 판결이 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단이라 할 것이 아니고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정도에서 변론을 마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신론을 연구한다는 시각에서 그 해당 성구와 전체 성경의 관계를 따져 나가면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삼위일체 교리는 교리이기 전에 성경 명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요일5:18 문제는 '중생된 사람의 중생된 요소는 육이 아니고 영이라'는 것은 서로가 일치합니다. 그다음 '중생된 요소는 영인데 그 영이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느냐'는 문제를 두고 이곳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단정하며 일반 교리는 죄를 짓는다고 단정을 합니다. 그렇다면 중생된 성도의 영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아담의 영이 즉시 죽었다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것처럼, 중생된 오늘 우리의 영도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 영이 죽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마다 중생되느냐는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일반 교리는 중복중생 또는 평생 반복 중생을 주장하는 교리가 됩니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들이 뒷감당을 달리 할 수 없는 수많은 교리 문제가 뒤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4. 정규 신학대학교의 조직신학 또는 성경신학 박사학위를 가진 분이라면

자기가 모른다고 고백할 리가 없고 또 자기가 배운 것이 틀렸다고 인정하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권위 있는 신학교의 권위 있는 교수들의 장점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른다거나 아직 의문이어서 단정하지 못한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학생들 앞에서 내놓고 합니다. 자기들이 교과서에서 정통적으로 배우고 아는 것을 가지고 가르치다가 이곳처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의문점과 지적이 들어오면 무조건 이미 배웠던 논리를 반복해서 내놓고 학생들에게 그렇게만 알아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문제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개념이 과연 성경적이냐 아니면 비성경적이냐는 방향에서 뗄 수 없는 관계로 맞물려 있습니다. 건설구원이 인정되려면 백영희 삼분론은 자동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건설구원을 인정하면서 백영희 삼분론만을 제외하면 또 많은 모순이 나옵니다. 그리고 백영희 삼분론과 건설구원을 조금이라도 인정을 하려면 중생된 영의 범죄 문제는 자연스럽게 요일5:18 해석과 함께 해결이 되게 됩니다.

이 모든 문제에서 하나라도 부인하면 결국 전부를 다 부인해야 하는데, 이미 우리 교계의 조직신학계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정확성에 대하여는 최소한 일부라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전면 부인하고 나설 학자는 없는 정도입니다. 더 이상 이 문제로 토론을 해봐야 신학자의 한국식 권위만 손상될 것이기 때문에 아직 차분하게 이 문제로 대화하고 연구할 대상은 아예 한 사람도 만나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뒤로는 표현을 바꾸어 가며 백영희 삼분론과 구원론을 대폭 인용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5. 그분들의 뒤를 추적하며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보다 세월에 맡기는 것이 낫습니다.

뒤 따라 가면서 백영희 구원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 대개는 엉겁결에 아니라고 부인을 하게 되고 또 불편한 감정을 묻어두었다가 다른 식으로 감정대응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되면 그들이 이 길을 따라 오는데 지장이 많습니다.

이미 알 만한 분들은 이 신앙노선의 내면에 인정을 하고 다만 현실적으로 수용했다고 당장 발표를 할 정도가 아니어서 어정쩡하게 있으니 그 정도로 알고 그냥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은 어떤 토론이나 논쟁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교회사를 배워 잘 알겠지만, 교리와 진리의 정확성 때문에 한국교회가 오늘 이 모습으로 진행했는지, 아니면 옳고 바른 것은 그것은 그것대로 따로 있고, 현재 처한 입장과 형편과 이권과 감정 등으로 인하여 원치 않는 길을 걸어왔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이 양쪽의 주장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혼동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전체가 꽉 짜여진 체계적 주제이기 때문에 우선 한곳만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몸의 인체구조 관계와 같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날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이 손주 하나를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에, 교수가 학교 등록률 때문에 속으로는 학생 하나를 마음대로 못 주무르는 세상에, 학생이 교수를 상대로 교육을 시키거나 교회사에서 하나님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폐습을 아직 버려두고 계시지 한 순간에 뜯어고치지 않고 있는데, 만일 한 자리에서 끝장을 내려고 한다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 수많은 문제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상대방이 조용하게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밀어붙일 일이냐는 것입니다.

조용히 혼자 양쪽의 주장을 아쉬움 없도록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 미 이곳은 세계 신학계의 전체 흐름을 오래 전에 파악하고 내심으로 할 말이 많습니다만 반론이 나올 때를 생각해서 많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이 홈은 교계 신학계에서도 표내지 않고 들여다보며 많은 과제를 안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학위 때문에 신학교를 갔지 신앙이 좋아지기 위해 신학교를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잘못 알고 갔다면 신학교를 다니면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학교에 학위를 따러 간 사람이 불을 질러 놓으면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기본구원적으로 잘못된 신학교라면 순교를 해도 해야겠지만 건설구원면으로 문제가 있어 서로 깨달음이 다르다면, 상대방에게 연구의 기회를 충분히 줄 수 있는 여유는 있어야 합니다.

6. 일단 학생으로부터 이 성구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을 들었을 것입니다.

강의실에서는 자기가 아는 기존 이론으로 설명을 했겠지만 그분도 유력한 성경학자라 하시니 한번 더 들은 이곳 내용을 머리 속에서 쉽게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질문자나 답변자보다 훨씬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니까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주장이 틀렸고 자기가 배운 기존 주장이 옳다고 속으로 말할수록 아마 그 교수님 마음속에서는 '아닌데...' 라는 반론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른 교리 체제로 자신의 전반적 지식을 구축한 분들은 학생들처럼 이곳 설명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그 박히는 깊이와 그 효력의 기간이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재질문 : 백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

‘박목사님은 사망하기 직전 백목사님을 만나 깊은 반성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을 만나 깊은 반성이 있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박목사님이 백목사님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좀더 생각해볼 문제로 남겨두었다는 이야기 입니까?


답변 : 박윤선목사님과 백영희목사님의 관계를 간단하게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1. 박윤선목사님과 백영희목사님의 관계를 간단하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① 해방 후 고신의 진리 운동에 각각 한 축을 맡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 고신의 초기 진리 운동에 있어 고신의 교계적 지도자는 한상동목사님이었고, 신령한 권위는 주남선목사님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안에는 박윤선목사님이 있었고 최일선에는 백영희조사님이 있었습니다. 주목사님은 말씀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분이었고, 한목사님은 정치가였습니다.

② 거창 시골에 있던 분을 부산서부교회로 청빙할 때 박윤선 목사님도 서명한 분입니다.

부산서부교회가 현 서울 충현교회를 개척한 김창인목사님을 배척하고 후임을 구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울 때 고신 내에서 서부교회의 혼란을 수습할 목회자로서는 단 1 밖에 없다며 그 이름을 당시 백영희조사님으로 지명하고 송상석목사님을 2번이나 거창으로 파송하여 백목사님을 설득하게 됩니다. 송목사님은 만주까지 가서 박형룡목사님을 청빙했던 분이어서 백조사님을 설득할 분은 그분밖에 없다고 평가되던 분입니다.

당시 고신의 지도부 7명이 연명으로 청빙서를 작성하여 백조사님에게 부산서부교회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부탁을 할 때 '한상동 송상석 한명동 이인재 박손혁 오종덕 박윤선' 7명이 서명하게 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이미 신학교에서 주남선목사님 등 여러 사람들을 통해 백목사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백목사님은 박윤선목사님을 극진히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박윤선목사님과 백영희조사님은 발언을 하는 분들이었고 그 발언은 어떤 외부 압력이나 흥정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옳은 것을 찾아 생사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박윤선목사님은 백목사님을 특별히 아꼈고, 백목사님도 조사님 시절 박목사님의 말이라면 극진하게 받들어 모셨던 사이였습니다.

백목사님 자녀들이 박윤선목사님 사택을 자유롭게 방문했고 박목사님의 서재에도 들러 어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으며, 백목사님은 박목사님을 통해 세계기독교 역사와 교리와 성경관을 듣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교계지도급에 있는 분들이 당시 백목사님과 박목사님의 관계를 증언하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④ 박목사님은 백목사님을 학생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박목사님의 특별한 점입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설교와 목회에 특별했던 백목사님을 그렇게 부러워했고 비록 신학교에서는 제자급이었지만 목회자로서는 내심 백목사님을 부러워했고 경쟁심을 가지고 열심히 백목사님을 따라 산기도도 흉내를 내는 등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이입니다. 두 분 사이의 일화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록하고 소개하기에 부족할 정도입니다.

⑤ 당시 서부교회는 힘이 있는 교회였고 박목사님을 든든히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고신이 진리운동을 생명으로 알고 주장한다고 구호를 내걸고 한국교계를 향해 고신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출간한 것이 '파수꾼'이라는 월간지였는데 이 책을 통해 박목사님은 전국교회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발표문을 쏟아냈고 이 파수꾼의 발간의 배후 지원은 백목사님이었습니다.

이런 '파수꾼' 발간이 해를 거듭하여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되자 고신의 지도급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한 사람씩 발을 빼고 결국 '파수꾼'의 출간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됩니다. 이미 교단은 정치화가 되어 양심의 소리보다 현장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이때 백목사님이 서부교회 재정으로 '파수꾼'을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 파수꾼은 백목사님을 제명하기 위해 고신이 교단적으로 절차를 밟기 시작할 때 정치적 목적으로 다시 회수하여 그 뒤에 맥을 잇게 됩니다. 이런 내부 상황은 박목사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치였고 백목사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이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⑥ 고신의 예배당소송을 반대하다가 백목사님이 먼저 제거되고 박목사님도 뒤따르게 됩니다.

신학교 안에서는 박윤선목사님이 그리고 목회현장에서는 백목사님이 고신의 소송개입을 비판하고 반대하게 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신중한 분이고 행동이 늦은 분이며 또 고신지도부와 안면 때문에 비판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입장이 흐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분은 고신의 최고 지도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소송을 반대하는 일에 전면에 나서기 곤란한 인간적 입장이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에 비하여 백목사님은 그 신앙초기부터 사망 때까지 옳으면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었습니다. 고신 내의 소송문제는 오늘 기록상 박윤선목사님이 반소의 대표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백목사님이 박목사님에 훨씬 앞서 대표적 반소노선의 중심을 잡고 있었고 그 투쟁 역시 격렬했습니다. 백목사님으로 인하여 이미 고신 내에서는 소송에 대한 문제가 윤곽이 잡혀 있던 상태에서 박목사님은 학자적 책임으로 마지막 단계에서 입장을 발표하게 됩니다.

오늘 후학들의 관심은 신학교 교장이었던 박목사님의 위상을 고려하여 박목사님과 관련된 반소논쟁에만 관심이 있겠지만, 실제 고신 내부의 목회현장에서는 백목사님이 그 중심에 있었고 또 앞서 투쟁한 분입니다. 그리고 이 문답에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당시 박목사님은 백목사님의 초기 반소활동에 적극적으로 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또 소송문제에 대한 두 분의 입장이 같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도 두 분의 관계는 더욱 깊은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문제 때문에 백목사님은 앞서 제명되고, 박목사님도 뒤이어 제거됩니다. 두 분의 관계는 당시 상황이 특수하였던 만큼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⑦ 박윤선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된 후, 백목사님에게 신학교 설립을 제의하게 됩니다.

박윤선목사님이 고려신학교에서 제거가 되자 신학을 통해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뜻을 펴기 위해서 함께 손을 잡을 동지가 필요했습니다. 박목사님은 본디 강의 외에는 아무 재주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앞서 서울로 올라간 박형룡목사님처럼 경제나 교계 정치적 지원만 좋다면 신앙노선을 양보하고 사업을 펼칠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박목사님이 두말 할 것 없이 제일 먼저 제의를 하고 손을 잡고 싶었던 분은 백영희목사님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이라면 어떤 교권이나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보수정통의 신앙을 지켜낼 인물로 보았습니다. 또한 이인재목사님과 같은 출옥성도이며 고신의 지도부에 속한 선배들이 백목사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 그 외에도 고신 내에 경건한 많은 분들이 백목사님과 박목사님이 함께 한다면 뒤따를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제2의 고신 재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됩니다. 더구나 백목사님의 서부교회는 교회의 재정과 교인의 단결 등 여러 면에서 신학교 운영에 강력한 뒷받침이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을 이어 박윤선목사님도 고신에서 제거되자 박목사님은 백목사님에게 교권에 흔들리지 않는 보수정통의 신학교를 다시 재건하자고 제의하게 됩니다. 이때 백목사님은 박목사님의 신학 중심 활동이 결국 성경적으로 교회를 바로 지키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아 거절하게 됩니다.

참고로, 현재 기독교대학인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남산의 대한신학교에서 백목사님은 잠깐 성경을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백목사님의 성경 강의는 너무 유명하여 서울 장안의 보수교계에 큰 충격이었고 신학적 소양에서는 박목사님이었지만 그 깊이와 영감의 충만함에 있어서는 백목사님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박목사님으로서는 신학적 소양을 중시하나 그분 역시 신령한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목사님에 대한 가치를 예사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⑧ 원래부터 두 분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신학과 신앙에 대한 입장차이였습니다.

신앙의 건전성이나 견고성으로 볼 때는 두 분이 나무랄 데 없는 교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박목사님은 정통 신학교육을 기본으로 삼는다는 인식이 바탕에 너무 깊게 깔려 있는 신학자이고, 백목사님은 신학이라는 것은 신앙을 너무 황폐하게 만드는 위험물이라는 입장입니다. 박목사님의 신학입장에 대하여 백목사님이 지도하거나 건의하여 그를 바꿀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용하게 그냥 거절을 하고 말았고 또 교계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수가 없어 이런 면을 예리하게 볼 수 있던 백목사님은 박목사님과 신학을 함께 할 수 없다고 거절을 하게 됩니다.

이번 문답에서 이 과거사가 가지는 중요성은, 백목사님과 박목사님의 관계는 일반 교계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점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⑨ 신학교 문제가 거론 된 직후, 두 분 사이에는 교리문제로 확연하게 딴 길을 걷게 됩니다.

원래 신앙의 순수성이나 견고성 등에서는 아주 가까웠던 동지였으나, 내부적으로 신앙 체질이 서로 달랐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신학위주의 신앙과 신앙위주의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은 1959년 고신에서 제명을 당한 뒤 1960년부터 개교회주의로 나가면서 전혀 교계와 주변교회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고 이때부터 교회정치는 개교회주의로, 교리적으로는 건설구원론을 큰 방향으로 잡고 그 핵심에는 중생교리를 놓고 가르치게 됩니다. 또한 교훈적으로는 신학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성경중심의 걸음으로 가뿐하게 그의 평생 남은 길을 재출발합니다.

이미 외부 교계와 관련을 대부분 끊었고 또 급격하게 끊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내적 행보에 대하여 박목사님을 비롯하여 외부에서 빨리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백목사님은 건설구원론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또한 건설구원론의 중심에 있는 중생교리를 발표하게 됩니다. 중생된 사람은 그 몸과 마음이 죄를 짓는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영이라고 생각한 것은 건설구원과 중생의 완전성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며, 마음속의 영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죄로 단번에 죽었던 인간의 주격이며 이 영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중생되는 것이며 이 중생은 다시 죽지 않는 생명으로 살아난다는 것이 그 핵심 요지였습니다.

백목사님의 활동방향은 조용하게 개교회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지만 박윤선목사님과는 친근하게 접촉하는 분들과 교회들과 지지하는 교인 등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교리체계가 박목사님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박목사님은 성경에 틀린 이단적 주장이라고 단언하게 됩니다.

⑩ 이후 대구동성로교회 문제를 두고 두 분은 정면 충돌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총공회 소속 교회 중 대구지방의 중심교회로 남아있는 동성로교회는 역사적으로 대구지방에서 고신과 합동의 분열, 그리고 총공회로 이어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 홈의 /초기화면/총공회/자료/인물별자료/'신도관'/편을 참고하셨으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신에서 한상동목사님과 그 이름을 함께 놓을 수 있었던 이인재목사님이 백목사님을 따라 총공회 신앙노선의 초기 출발에 합류를 했고 백목사님의 중생교리를 좇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성로교회의 목회자로서 입장에 변화가 생기게 되고 동시에 고신에서부터 둘도 없이 가까이 지내던 박윤선목사님과 연락이 오가면서 중생교리에 대하여 박윤선목사님이 확실하게 비판을 하게 되자 이인재목사님이 흔들리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동성로교회는 겉으로는 교회 소속을 두고 백목사님의 총공회 노선에 속하느냐 아니면 박윤선목사님이 배경이 되어 있는 이인재목사님에게 기울어지느냐는 갈등이 빚어졌고 이인재목사님 뒤에는 박윤선목사님이 신학적으로 확고하게 뒷받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인재목사님으로는 동성로교회 교인들이 백목사님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 입장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박윤선목사님이 이인재목사님을 대신하여 동성로교회로 목회부임을 하게 됩니다. 비록 임시 수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왔지만 동성로교회는 당시 벌써 대구시내 제일 중심에서 2백여명의 교세를 가지고 있었고 경제력이 막강하여 박목사님으로서는 목회자로 겸임하고 싶을 교회였습니다.

수개월간 박윤선목사님과 동성로교인들 사이에 중생교리 문제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때 이번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그 모든 논리들이 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박윤선목사님의 주석집은 이 논쟁하던 시기 이전에 나온 것과 그 이후에 출간된 책에서 백목사님과의 논쟁 때문에 변화되는 표현들이 나오고 있는데, 두 분 사이의 논쟁을 알지 못하는 분들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이지만 당시 논쟁을 알고 그다음 그 주석의 변화된 표현을 다시 본다면, 중대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답변자가 송용조목사님이라는 분이 양성원에서 강의할 때 잠깐 들었던 기억이 있고 이후 자료가 확보되지 않아서 직접 비교해보지 않았으나 당시 구주석과 새로 나온 주석을 직접 읽으며 소개한 것을 들었기 때문에 기초사실에 대하여는 이곳에 소개할 정도가 됩니다.)

⑪ 동성로교회에서 물러난 박윤선목사님은 이후 백목사님 교리 정죄에 큰 힘을 발휘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동성로교회에서 교인들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나게 됩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최고의 성경학자라는 권위를 가지고도 지방의 한 교회 교인들과 교리논쟁에서 그들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서게 됩니다. 비록 교인들을 설득시키지는 못했지만 이 일을 통해서 박목사님은 교리 하나가 잘못 되면 교회가 파탄이 되고 잘못 깨달은 교인들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목회 현장 문제를 심각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백목사님의 중생교리와 건설구원에 대하여 박윤선목사님은 이단성이 있다는 신학적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1968년도 합동측의 경북노회가 전국최대 보수노회이며 또한 총신(합동)측 교단의 주력인데 그곳에서 백목사님의 건설구원과 삼분론 그리고 중생된 영이 범죄 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이단으로 규정하게 되는데 그 신학적 배경이 바로 박윤선목사님이었습니다. 또한 1970년대 '이단의 정체'라는 책을 발간한 김의환 전 총장의 출간물에서 한종희목사님이 백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할 때도 교리적으로는 박윤선목사님에게 성경적 뒷받침을 확인받고 발표하게 됩니다.

보수신학계가 주도하던 당시 국내교계에서 보수신학의 중심인 고려신학교와 총회신학교 그리고 합동신학교까지 박윤선목사님의 영향력은 성경해석과 신앙사상에 관하여는 확고한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 박목사님이 교리적으로 백목사님을 비판하고 교리의 이단성을 지적하게 되자 이후 고신과 합동측에서는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과 중생교리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항상 이단으로 정죄하는 힘을 삼을 때 그 바탕이 되어 왔습니다. 이런 경향은 심지어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습니다.

2. 박윤선목사님의 입장 변화

① 백목사님은 박목사님에게 초기에는 유력한 목회자로 뒤에는 이단으로 빠진 정도입니다.

박윤선목사님이 1960년 초반까지만 해도 백목사님을 얼마나 소중한 인물로 상대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 초반이후로는 박윤선목사님이 견지하는 정통보수 칼빈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백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와 중생교리 그리고 삼분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설이었습니다.

건설구원이 칼빈주의 신학에 의하여 이단으로 비판받게 되는 핵심 표현은, 중생된 성도는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간다는 부분입니다. 칼빈주의에 의하면 중생된 성도라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중생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는 교리는 칼빈주의에 의하면 중생된 성도도 늘 죄를 짓고 회개를 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또 삼분론은 교회 역사에서 아폴로나리스가 삼위일체 교리논쟁에서 삼분설을 주장하며 후에 이단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을 가진 교리로 상대합니다.

② 1983년경, 합동신학교 신학생 한 사람이 박목사님에게 백목사님에 대한 평을 부탁했을 때

박목사님은 '백영희목사는 이상한 분이라'는 표현으로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이단이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이단이라 할 수는 없겠고 그렇다고 정통 칼빈주의신학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해를 할 수 없는 주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목사님으로서 백목사님을 이단으로 빠진 인물인데도 '이상한 분'이라는 표현으로 되돌아서게 된 것은 바로 세월 속에 증명되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단은 그 초기에 일반 교회와 거의 다 같은데 교리 하나나 무슨 주장 하나가 삐뚤어지며 움을 틔우게 됩니다. 이때 눈이 밝은 사람들은 그가 나갈 앞날을 두고 경고를 발하는데 일반인들은 좀더 본색이 드러나기 전에는 이 주장이나 저 주장이나 의견만 다른 것 같아 보이지 이단이라는 확증에 이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교인과 교회가 이단으로 알게 되는 때는 통일교나 박태선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일반 불신자들 눈에까지 물의를 빚게 되는 큰 문제가 발생될 경우입니다. 백목사님의 교리가 이단성이 있다면 초기는 미세하게 구원론과 관련하여 하나의 학설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이 참으로 이단이라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그 속에 생명은 없고 인간의 삐뚤어진 행동만 자꾸 커지기 때문에 결국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박목사님의 눈에는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은 그런 길을 걷는 초기였기 때문에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게 되면 10년 그리고 20년을 지나면서 불신자도 알 정도의 본색이 드러나야 하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박윤선목사님의 눈에는 자기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정통 칼빈주의교단과 신학교라고 할 수 있는 고신과 총신은 급격하게 세속화가 되고, 그대신 완전히 잊고 있었던 서부교회의 백목사님은 기독교보수교계가 그토록 추구했던 신앙의 보수성과 교회의 부흥결과를 동시에 이루어 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교계 언론의 특집을 통해서 듣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단이어서 지금쯤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완전히 사상범이 되어 그 외형도 일반 교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든지 아니면 통일교처럼 세상 사이비집단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국교회가 다 저버린 한국교회의 순수 신앙모습을 보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간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교계언론의 특집 1호는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부흥 현장이었습니다. 그 부흥은 말씀만 가르쳤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 예정만 가르치고 성경 외에는 어떤 동화나 선물 같은 인본적 기술을 배제하고 있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자기 직계 제자들을 그렇게 기르고 있었으나 그들은 그런 식으로 목회를 해서는 교회가 부흥이 되지 않는다 해서 불평들을 하고 있었고, 박목사님은 목회현장과 자기가 아는 신학지식 사이의 갈등 중에 있으면서 시대를 탓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박목사님이 백목사님의 1980년대 소식을 들으면서 그가 가지는 혼동은 이단이라야 하는데, 이단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교계의 보수중심에 제일 대표적 인물이 되어 있어 한국교회가 그를 본받아야 할 인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이 과거 20여년전 자기가 비판한 바를 새겨듣고 회개하여 일반 교리체계로 돌아왔느냐?

오히려 그때보다 더 강하게 당시 교리를 외치고 그뿐 아니라 그 교리가 점점 더 체계를 갖추며 한국교계의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에 큰 숙제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백목사님의 발표 때문에 한국교회는 꾸준하게 교리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는 것을, 교계의 일반 사람들은 총공회 신앙노선과 거리가 멀고 총공회의 교세가 적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지만 박목사님은 백목사님의 움직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있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칼빈주의의 정통 교리도 건설구원과 중생교리 문제를 두고 다시 한번 보충할 부분이 있거나 아니면 발전적으로 깨닫고 나갈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칼빈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성경을 벗어나는 이단이라고 한다면, 백영희목사님의 신앙노선은 교리의 이탈이 앞서가면 뒤따라서 그 교회의 여러 탈선 현상들이 뒤를 이어야 하는 교회사의 공식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상한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박목사님의 내면 세계를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에 대하여 다시 한번 재평가를 해야 하는 전환시기'였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③ 1988년, 박윤선목사님의 사망 직전 백목사님을 찾게 됩니다.

고려신학교에 특강이 있어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만나보기를 원한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김해공항으로 나가 박목사님을 극진하게 모시고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근 30여년 만에 만난 한국교회의 대신학자와 대목회자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세계적으로는 무명학자에 지나지 않지만 박목사님은 오늘 한국교회의 위치가 세계교회사에서 이 시대 최고의 보수신앙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교세가 대단하기 때문에 적지 않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국교회 범위에서 아는 바로는 박윤선의 이름은 정통칼빈주의신학자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백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는 이 시대 신앙노선의 나갈 길을 열었다는 의미를 가진 분입니다.

요한과 예수님의 만남을 가지고 비교를 한다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성경기록은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알려주는 진리이므로 이런 면에서 본다면 구약교회의 수고를 요한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고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신약교회의 출발의 이름입니다. 신약을 위해 구약교회가 준비했던 것이고 이제 그 역사적 전개를 요한이 예수님에게 넘기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를 하는데, 정통 칼빈주의의 장점과 수고한 면을 평가하라면 천주교로부터 교회를 살린 역사를 중심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시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정통 칼빈주의 신앙이 교회 안팎의 모든 투쟁에서 교회를 그래도 잘 보존하여 오늘까지 지켜왔고, 그리고 그 역사적 전통과 정통성을 이어 지금 우리 시대로 본다면 백영희신앙노선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 방향으로 정통교회는 계속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박윤선목사님이 그날 백목사님을 찾아 만난 것은 그 모임에 동참했던 분들의 표현처럼, 한국교회를 이렇게 보수신앙으로 지키고 한국교회의 복음운동을 이렇게 크게 일으킨 것에 대하여 지인으로 감사를 표하고 과거 신앙의 동지로 함께 걸었던 세월을 회고하며 곧 하나님 앞에 서야할 한국교계 원로로서 끝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는 '격려'였습니다.

이런 박목사님의 극진한 인사를 받고 백목사님은 모든 것은 40여년 전 고려신학교에서 박목사님께 배워 그 배운대로 걸어왔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며 머리를 숙여 박목사님을 '스승의 위치로 놓고 감사'를 했습니다. 그날 만난 자리의 감회와 서로 주고받은 대화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을 높은 차원에 있는 도인들의 교류였기 때문에 사실 그 자리 오간 대화가 녹음이나 녹화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해석하거나 추론할 수 없는 많은 함축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3. 백목사님의 신앙내면을 파악하는 분이라면, 그날 만남을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은 과거 교리나 성경해석 문제를 놓고 백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도록 신학적 배경과 배후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상대방의 교회가 크다고 그 규모 때문에 놀라거나 신학 입장이 요동되는 분이 아닙니다. 또 인간적 인사를 하느라고 그 상대방의 신앙노선이 이단으로 빠져 가는 사람과 앉아서 동창회나 계모임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이 과거 성경 교리적으로 그냥 교회 안에서 누구든지 주장할 수 있는 그런 학설 중에 하나로 백목사님의 입장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고 선을 넘어간 주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백영희신앙노선의 초기 걸음에 인간적으로는 그토록 넘기 어려운 큰 장애물을 놓았던 분입니다.

그중에 요5:18의 해석은 양측의 해석이 정면으로 달랐습니다. 백목사님은 이 성구에서 건설구원 교리의 근거를 발견했고 박목사님은 건설구원 교리의 근거조차 비성경적이며 전혀 성경을 아전인수로 곡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반 성경 해석을 두고 의견차이가 있는 것은 그냥 의견차이지만, 이 문제는 박목사님이 상대방의 해석이 틀렸다고 주장을 꺾지 않고는 그 상대방과는 마주 앉아 친목을 다지거나 인사를 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이단성이 있는 문제를 가진 사람이 그 주장을 꺾지 않고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 강하게 주장하는 상태에서 그와 한 자리에 앉아 한국교회를 걱정하며 상대방을 격려할 성질이 아닙니다.

심지어 교리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또 이 성구 관련 해석이 그 교리노선의 뒷받침이 되어 있다면, 그 반대측에 있는 인물이 아무리 교회에 큰 업적을 남긴다 해도 박목사님은 오히려 그의 실적이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선지자의 역사로 보고 더 크게 비판할 분입니다.

두 분의 개인적 만남에 대하여 이 정도만 발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앞날에 박윤선목사님을 절대시하는 그 후학들을 향해 이곳이 배려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 때문에 백목사님의 전기 작업 중에서 일부를 선 작업하게 된 듯 하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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