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
설교록에 보면, 후란시스는 평소 기도할 때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한참 울고,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한참 울고, ‘나는 누구입니까?’ 하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주님은 누구시며, 나는 누구일까? 무한하신 하나님, 구주이신 주님은 영원히 알아가야 하니 잠시 두고, ‘나’를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원래 없었다. 없었는데 생겼다. 부모님이 낳아서 태어났다. 보이는 출생이다.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이 부모님을 통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 나라는 존재는 없었는데 하나님이 만드셔서 있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만드셔서 있게 되었으니 나의 근본은 하나님이시고, 나의 아버지도 하나님이시다. 이론도 그렇고 실제도 그러하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했다. 낳으신 분이 아버지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낳으셨으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본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생겼으나 일단 ‘나’라는 존재가 생겼으니 생긴 이후의 나를 중심으로, 나라는 존재를 주체로 두고 생각해 본다.
내가 없다면 나와 관계된 하나님은? 나 없는 하나님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내게 대해서는? 나 없는 천국?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 없는 구원은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 내가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고 우선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없는 하나님, 나 없는 천국, 나 없는 구원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하나님과 관계된 내가 없고, 천국 갈 내가 없고, 구원 받을 내가 없는데… 주체가 없으면 객체는 무의미하다.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존재와 역사는 발원되었다. 그런데 그 존재 중에 내가 있으므로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 관계도 있고 관계의 근원도 있고 과정도 있고 결과도 있다. 천국도, 지옥도, 구원도 내가 있어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나 없는 하나님, 나 없는 천국, 나 없는 세상, 나 없는 구원은 아무것도 아니다.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하다. 천하 그 누구보다 내가 귀하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실제 그렇게 설정되며 그렇게 역사하신다. 구원도 내 구원이 우선이다. 내 구원 없는 남 구원은 실패다. 하나님의 주권 역사의 초점은 나에게 있다. 모든 역사는 나에게 다 기울어진다. 내가 나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기울이면, 하나님은 섭섭해하신다. 시기하신다. 심하면 진노하신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다. 부부 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삼각관계가 되고 파탄이 난다. 하나님과 나 사이가 그렇다. 하나님과 나 사이는, 스승도 없고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다. 하나님과 나뿐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개교회이다. 공회의 출발도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