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낚는 어부?

발언/주제연구      

사람 낚는 어부?

선교사 장정석 목사 0 0

〈사람 낚는 어부?〉


 


 ※ 한국성경공회의 바른 성경이 대한성서공회의 한글개역개정역에 대하여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재판 결과를 기독교연합신문의 인터넷판인 아이굿뉴스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굿뉴스는 재판부가 개역개정역을 ‘개역개정판 번역자의 판단에 따라 원문에 없는 내용이 추가되거나 제외된 부분은 창작적 표현’이라 하였다고 하기에 판결문을 구하였습니다. 판결문에는 ‘창작적 표현’을 ‘성경 원문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은 표현이지만 개역개정역에서 번역자의 판단에 따라 추가된 부분, 성경 원문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개역개정역에서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제외한 부분은 독자적인 창작적 표현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점일획도(마5:18) 없어지지 않는다 하셨는데, 저들은 너무 쉽게 성경의 말씀을 제외(삭제) 시켰습니다. 그리고 판결문에는 ‘한글개역개정역은 한글개역을 기초로 새로운 저작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수정 · 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을 부여한 저작물’이라 평가하였습니다. 한글개역개정역이 ‘새로운 저작물’이라? 이것이 가능합니까? 저들이 무엇을 한 것입니까? 세상 법정에서 성경 원문을 왜곡했다는 망신을 공개적으로 당한 것입니다.


 저들의 창작적 표현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오늘 말씀의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1, 마태복음 4장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한글개역개정)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Δεῦτε ὀπίσω μου, καὶ ποιήσω ὑμᾶς 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베자헬라어신약성경, TR, 비잔틴 본문, Nestle-Aland 28판, UBS 4판)


 이 말씀은


 “그들에게 말하시기를 나의 뒤에 오라 너희들을 사람들의 어부들로 만들 것이라 하시니”(종교개혁성경)입니다.


 본문의 ‘Δεῦτε ὀπίσω μου’를 한글개역개정역은 ‘나를 따라오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δεῦτε’(명령형) ‘오라, 이리로 오라’ ; ‘come here! come on!’[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 third edition(BDAG), Frederick William Danker, The University Chicago press, 2000] ; ‘come hither’(A Greek-English Lexicon, Liddle and Scott, A New edition, Stuart Jones and McKenzie, 1961, Oxford) ; ‘come now’(The Analytical Lexicon to the Greek New Testament, William D. Mounce, 1993, Zondervan) 그리고 ‘ὀπίσω’(부사) ‘뒤로, 뒤에, 후에’ ; ‘behind, back, (of place or of time) after’(BDAG) ; ‘(of place) backwards, on the back, back again, again, after, hereafter, behind, future’(A Greek-English Lexicon, Liddle and Scott, A New edition, Stuart Jones and McKenzie, 1961, Oxford) ; ‘behind, after, at one's back, backwards’(The Analytical Lexicon to the Greek New Testament, William D. Mounce, 1993, Zondervan) 곧 ‘나의 뒤에 오라’입니다. ‘follow me’가 아닌 ‘come my back(wards)’입니다. 그리고 한글개역개정역은 ‘ποιήσω ὑμᾶς 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을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ποιήσω’(ποιέω의 미래형 : 만들다, 하다, 행하다, 이루다, 준비하다, 산출하다, 임명하다, 성취하다, 등) ‘ἁλιεῖς’(ἁλιεύς : 어부들) 곧 ‘너희들을 사람들의 어부들로 만들 것이라’입니다. 본문에서 ‘낚다’는 뜻의 헬라어가 없습니다. 명백한 오역입니다. 어부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고기를 잡지만 사람들의 어부는 사람들을 위하여 고기를 잡습니다. 곧 주님께서 하셨듯이 그분이 걸어가신 섬김과 봉사의 사역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목사입니다.


 2, 누가복음 5장 10절 하반 절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한글개역개정)


 “ἀπὸ τοῦ νῦν ἀνθρώπους ἔσῃ ζωγρῶν”(베자헬라어신약성경)


 본문에 대한 TR, 비잔틴본문, 베자헬라어신약성경, Nestle-Aland 28판은 동일합니다. ‘ἔσῃ’(ἔσομαι 〉 εἰμι의 미래형 : ~~~할 것이다 〉 이다, 존재하다, 있다, 가능하다, 일어나다) ‘ζωγρῶν’[ζωγρέω의 현재형, 사로잡다, 포로로 하다 ; ‘capture alive’(BDAG) ; ‘to take alive, to take captive, take prisoner in war, enthral, to catch animals’(The Analytical Lexicon to the Greek New Testament, William D. Mounce, 1993, Zondervan)] 곧 ‘이제 그것으로부터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이라’입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을 낚다’로 해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주의 군사라 하였습니다(딤후2:3). 병사 곧 군사들은 전쟁을 위하여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는 주의 군사입니다. 일반 성도들이 아닌 목사가 주의 군사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목사들은 군사로서의 직무를 일반 성도들에게 떠넘기고 있지는 않는지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낚는 데만 정신이 빠져서, 아니 남이 낚아 놓은 것도 훔쳐 오려고 골몰하다 보니 한국에 이렇게 이단들이 득실거리는 것은 아닙니까?


 3, 마태복음 4장 19절의 ‘사람을 낚는 어부’라 번역한 것은 목사의 직분에 대한 바른 의미를 왜곡하고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