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반석의 신령한 음료도 땅 바닥에 버려 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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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00:00
1. 성경 연구법
- 일반 원칙
* 성경의 명문으로 일단 확실한 것을 먼저 살펴 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메꾸어 지게 되고
* 성경에서 전혀 찾을 수 없으면 자연에 있기 때문에 생략할 수도 있으니 자연을 참고하고
* 성경에도 자연에도 없는 것은 실행을 하다 보면 열매가 나올 것이니 결과로 보면 압니다.
* 다만,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은 알려 주지 않으시니 이 것은 그냥 두면 됩니다.
우리가 이런 원칙은 다 함께 알고 인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초 방향을 먼저 붙들고 조금씩 살피다 보면 광야의 가축이 먹고 살았던 문제를 살피는 것도 그리 어렵거나 애매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안이 어둡고 또 처음 접하는 문제여서 마음으로는 확신이 선다 해도 발표하는 첫 걸음은 서로 조심하며 가능성과 짐작에서 출발하면 실수가 적을 듯합니다.
2. 광야의 이스라엘 생존법
① 새로 주신 것
만나는 자연 속에 전혀 없는 방법을 새로 만들고 직접 주셨습니다. 1차 창조에 없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다시 창조해서 바로 주실 수 있습니다.
② 이용하신 것
물은 직접 만들어 주지 않고 광야에 있는 반석을 통해 주셨습니다. 반석은 습기가 가장 없는 존재지만 그래도 이미 있는 반석을 붙들고 이용하셨습니다. 위에서 주신 만나나 반석을 통과해서 나오는 물이나 모두 하나님의 직접 역사지만 그래도 뭔가를 붙들고 주시는 것과 아무 것도 붙들지 않고 바로 주시는 면으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③ 연장 시킨 것
느9:21에서 옷은 해어지지 않도록 하였으니 있는 것의 수명을 길게 연장 시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옷이라는 것은 착용물이기 때문에 의복만일 수도 있으나 신발까지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④ 대체하신 것
그런데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다고 했으니 사막 땅을 맨발로 다녀도 신이 필요 없게 하여 발바닥이 신바닥으로 그 역할이 연장이 되었든 신이 있었다면 떨어 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일단 발이 부릍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우리는 신이 있어야 하는 발이 신이 필요 없도록 발이 신바닥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가지 중에 앞에 3 가지는 하나님의 직접 역사가 아니고는 아니 되나 4번째 발이 부릍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자도 가능하다고 볼 듯합니다. 신발 없이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인간의 생활 기준으로 볼 때 특별한 내용이므로 이 부분을 포함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발 없이 살면 미개인들처럼 그렇게 살 수 있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을 보면 발바닥이 군화 바닥처럼 튼튼하기는 하나 그 모습은 흉칙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바닥은 그런 자연 상태의 변형 된 발 모습과 달리 마치 신을 잘 신고 다닌 사람처럼 되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40 년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직접 은혜 중에 하나로 기록해 주셨다고 생각 됩니다.
3. 광야 생활이 알려 주시는 것
①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환경
- 다른 세계, 다른 방법
제가 생각할 때 광야 40 년의 생활이란 믿는 사람은 불신자 때와는 살아 가는 환경과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외형적으로 먼저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안 믿을 때 살던 애굽은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던 환경이라고 봅니다. 광야라는 환경은 신앙으로 출발하며 말씀으로 살게 될 때 맞게 되는 여건이라고 봅니다. 애굽에 살던 불신자 기준으로는, 광야란 사람이나 가축이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렘2:6,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흙을 먹여 기르거나 소량의 풀을 먹여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은 우리가 함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 40 년의 의미는 믿고 난 후에는 불신 시절 기준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직접 먹여 살린다는 것을 가르쳤다고 볼 때, 광야 40 년을 두고 살피기 어려운 부분은 이런 대원칙이나 전체 방향을 가지고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자연의 방법을 떠난 곳
이스라엘의 광야 40 년은 인간이 절대 살 수 없는 곳이라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물이 있으면 풀이 있고, 풀이 있으면 짐승이 살고, 풀과 짐승이 있으면 사람이 삽니다. 무수한 가축이 살 수가 있다면 사람도 비록 불편하거나 열악할지라도 생존은 가능합니다. 물론 수많은 가축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곳곳에 그런 곳을 두시고 그런 곳으로만 인도할 수 있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러하며 일반적인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나와 반석의 물로 먹이신 것을 볼 때 광야 40 년의 전반적 환경은 사람이나 가축에게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려면 이 땅 위에서는 그 어떤 면을 봐도 가능성은 0 %라는 면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가능성, 마실 가능성, 입고 걸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생활을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렘2:6과 민8:15이 그렇다고 보며 또한 앞에서 살핀 4 가지 은혜도 그 은혜의 방법은 다르지만 그 한 가지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광야 40 년의 이스라엘 백성이 100 % 하나님의 직접 은혜가 아니고는 안 되는 생활을 했다면 그들이 데리고 있는 가축 역시 일반 자연 환경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살 수가 있는 상황일까?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교인'이나 '백합화'께서 말씀해 주신 것은 일반 자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가능한 방법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한 경우로 보입니다. 무수한 가축이 풀을 먹거나 흙을 먹고라도 생존할 수 있다면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육식은 해결 되는 상황입니다. 무수한 가축이 하나님의 특별 도우심을 받아 풀이나 흙으로 연명을 한다면 사람은 그 가축을 먹고 살면 되니 가축의 생육까지는 하나님의 특별 은혜가 더해 졌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가축을 먹고 사는 이스라엘은 출16:13에서 메추라기로 40 년을 저녁마다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② 제사법에 의하면
제물의 범위
제사에 사용 되는 짐승과 곡식은 사람이 쉽게 평소 음식으로 삼을 수 있는 보편, 자연, 일반의 것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산과 들과 외국으로 가서 잡아 와야 할 특수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며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먹는 것, 그 중에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존재적으로는 아담과 에덴동산이 주종의 관계지만 어울려 사는 환경적으로 보면 크게 하나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고 가축은 제사에 이용 될 물품이었으나 이들의 일상 생존 상황은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광야 40 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과 자연의 도움으로는 전혀 살 수 없는 기간이며 환경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모압에 들어 갔던 기간도 있었으나 성경은 광야 40 년을 전체 단위로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그 기간을 총론으로 설명할 때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자연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전적 먹이시고 기르시고 입히셨다 하십니다.
③ 반석에서 주신 물을 가축도 마시지 않았을까?
이스라엘 백성들만 먹던 '만나'라는 특수한 양식을 소 사료로 사용했다는 표현이 너무 자극적이었나 싶습니다. 누구든지 일단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심지어 범성죄로 갈 수 있는 느낌도 들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은 것은 만나와 함께 늘 반석에서 나온 물이 있었습니다. 이 물도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으니 그 의미를 신앙적으로 높이 보며 높게 표현하려면 거룩한 물입니다만 가축들도 광야에서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터뜨리고 그 물이 쏟아 져 흘러 내릴 때 그 물을 함께 마시지 않았을까요?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올 때 짐승들이 감히 사람들 앞에 나서서 첫 물을 마실 수 없었을 것이나 사람들이 마신 뒤의 끝물은 마실 수 있을 것 같고, 물이 흘러 내릴 때 물이 나오는 입구의 깨끗한 윗물을 마실 수는 없다 해도 사람들의 행렬이 끝나는 저 아랫물은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물이 나와서 웅덩이에 고여 있었다면 사람들이 다 마시고 난 후의 흐린 물은 마셨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 물로 세수를 하고 버린다면 버려 진 물이라도 땅 바닥을 핥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나가 구약에서는 광야의 특식이었으나 신약에서는 신령한 양식으로 우리의 사모해 마지 않는 신앙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광야 40 년의 가축의 먹이만 이 주제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광야 40 년의 물처럼 광야 40 년의 만나도 이스라엘이 아침마다 진 사면 들판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에서 퍼다가 가고 나면 그 만나는 그대로 들판에 방치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퍼 가고 남은 것이 많았고 그 남은 것은 해가 뜨겁게 쪼이며 스러 졌습니다. 사람이 가져 가고 남은 것, 땅 바닥에 버려 진 것, 해가 돋으면 스러 질 것, 온 땅에 온 지면에 널브러 져 있는 것을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고 나면 가축들이 마시는 것처럼 그렇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육체가 먹고 마시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병이 걸리고 죽고 땅에서 시체가 썩는 물질적 환경은 가축과 거의 다른 점이 없습니다. 물이 반석에서 터쳐 나오는 것은 이적이고 기사지만 흘러 나온 물은 땅바닥에 고이고 흐르는 것이며 그 물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이나 가축이나 달라야 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먹도록 하늘에서 내려 준 방법은 역사에 없는 기사요 이적이었으나 땅바닥에 내려 앉아 사면에 깔려 있는 만나는 그냥 ‘깟씨 같고 희’다고 했습니다. 가축이 먹지 못할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더 잘 먹었을 듯합니다. 그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입맛에 맞춰 주셨으니 가축들은 처음에 고통스러웠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배 고프면 어떤 짐승도 다 적응합니다.
- 반석의 생수
광야 40 년 동안 이스라엘이 마셨던 물은 모세가 반석을 때려 그 곳에서 흘러 나온 생수였으나 그 생수는 신약 우리에게는 신령한 음료지만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일단 육체의 몸이 먹어야 했던 식수였습니다. 그 식수 속에 담긴 뜻을 배제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반석에서 나온 물은 일단 인체에 필요한 식수인데 이스라엘이 데려 나온 무수한 가축은 이 물 외에 다른 물을 마셨겠는가? 물론 또 연구하고 가능성을 내 놓는다면 사막의 한서 차이에서 오는 결로 현상이 대기 속의 미세한 습도를 물로 만들고 아침에 맺히는 이슬이 되며 이슬 상태를 통해 무수한 가축은 물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여러 면으로 볼 때 이스라엘 수백 만 명의 사람이 마실 때 가축도 함께 마셨고 이스라엘 수백 만 명이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일 때는 가축들도 함께 고통을 겪지 않았을까요?
대기 속에 미량의 습기가 섞여 있다가 한서 차이로 이슬이 되려면 평소 비가 잦게 오는 지방과 달리 사막에서는 그 분량이 더욱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슬로 무수한 가축이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도 그 이슬을 헝겊으로 훔친 다음 그 헝겊을 짜면 수분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반석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물이 흘러 나오게 했을 것인데 그 땅에 흘러 시내를 이루는 물을 가축도 함께 마셨다면, 진 사방에 아침마다 쌓인 만나를 사람들이 식구 숫자대로 가져 가고 남는 것은 해가 돋으며 스러 져 없어 지는데 사람들이 하루 분량만큼 다 가져 가고 나면 사방 지면에 흩어 지고 남겨 져 있으며 곧 스러 져 없어 질 만나를 가축들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 특별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만 성경은 말씀하셨고 가축은 무수하게 데려 나왔다 하셨고 1 년이 지난 뒤부터 성막을 완성하고 제사가 시작 되며 그 제사에 사용 될 가축의 수가 적지 않고 계속 39 년 동안 공급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가축들이 그 가축을 데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고 남은 물을 끝자락에서 마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에서 가져가고 난 나머지 만나가루를 먹었다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기 때문에 성경에 가축이 물을 마시고 들판에 널브러 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사람들이 남겨 둔, 곧 으스러 질 만나를 먹었다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따라 나온 사람들은 자연환경에서는 절대 살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4 가지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데리고 나온 가축들의 생존법을 생각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 물론
사람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살게 하고, 데려 나온 가축들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야 40 년 동안, 사람이 먹을 곡식은 없다 해도 가축이 먹을 풀이 있는 곳으로만 인도하셨다 해도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을 분이며 또 풀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할 때 풀이 없다면 그런 기간은 흙을 먹고라도 살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만일 이 2 가지 방법에서 자연적인 가능성을 고려했다면 소가 평소 흙을 먹는 것은 흙 속에 미네랄이지 소의 주식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며, 만일 풀이 있는 곳으로만 인도하고 다니셨다면 풀이 성장할 수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도우시면 비록 벼와 같은 곡식까지는 몰라도 아주 단기간에 자라는 여러 가지 식물들을 조금이라도 기르거나 맛을 볼 수는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4. 광야의 가축을 살펴 보는 이유는
1985년, 신학교의 교회사 과목에서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지식에 치우쳐 이론에 이론을 가미하며 상상을 엮어 나가다가 나중에는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 앉을 수가 있겠는가 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비판한 강의를 기억합니다. 바로 이런 천주교 때문에 칼빈은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는 가야 하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는 함께 멈추며 더 이상 발을 내 딛지 말라는 취지로 성령론을 가르쳤습니다.
광야 40 년에 가축은 보이는데 사료 문제는 연구한 기록을 찾아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이런 문제가 나오면 배우지 않았던 것이나 토론 대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많이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이 문제는 오늘 우리가 신앙 생활에 전념하고 살 때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수가 많고 그럴 때 광야 40 년을 먹이고 입히신 것을 늘 인용은 하지만 그럴 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까지 미리 살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살피고 있습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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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가 생축의 먹이로 쓰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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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상식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도 보이나,
: 그러나 신앙 사상적으로 생각할때에, 문제가 있는 표현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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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예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말씀의 요지가,
: 식사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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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 40년에서 수 많은 생축들을 먹일 사료가 어디에 나왔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 성경의 속 하나님의 참 의사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 일반 개념적으로 성경을 보는 관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
: 또 한 예를 들어서,
: 만나가 내리기 전에, 아침 이슬이 있었다고 했는데, 사막에 어떻게 아침 이슬이 내립니까?
: 일반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성경에는 많습니다.
:
: 내심 우문 현답을 기대했으나, 답변자님께서도 같은 수준으로 답변을 하셔서
: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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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만나
: 만나는 애굽을 등지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이스라엘 민족에게
: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입니다.
: 애굽을 대표하는 이방 민족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한, 특수한 기적이며, 특별한 양식입니다
:
: 광야는 불모지입니다. 고통의 장소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온 아브라함과 같은 사상을 말하고자 광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 그러한 사상을 가진, 광야로 나온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 만나를 베풀어 주십니다. 계시록에서는 감추인 만나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
: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수입니다. 만나를 먹으면, 감추인 하나님의 속 뜻을 알게 되어
: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되니, 하나님의 성령에 피동되어질 수 있는
: 사람으로 놓여집니다. 교회 오래 다니고, 신앙 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이 만나를
: 못 먹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
: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듯이,
: 이러한 사상을 가지지 못한 짐승과 같은 자들에게는 만나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 이런 면으로 볼 때에, "생축의 먹이로 만나가 쓰여졌다"라는 의미는 부적절한듯 싶습니다.
:
:
: 2. 그렇다면 생축의 먹이는?
: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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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에서 농사를 못 짓는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 그러나 성경을 상식으로 접근을 할 수는 없습니다.
:
: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대로 움직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 몇 시간 몇일 몇달 몇년이 되어도,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 그들이 40년간 돈 광야는, 새로운 광야가 아닙니다. 늘 같은 장소를 40년간 맴돌았습니다
: 장정만 60만,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었습니다.
: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막에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
: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대로, 진을 치고 머물게 되었을때에,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놀고 있었을까요?
: 그냥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만나만 먹고 앉아 있었을까요?
: 역사적, 상식적으로야 광야에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되겠지만,
: 신앙 사상적,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만나를 먹은 백성들의 행동과 활동이 분명히
: 있었을 것입니다.
:
: 타락되고 범죄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만나를 받아 먹은 제자들이,
: 예수 그리스도를 외쳤습니다.
:
: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도 있겠다. 같은 지역을 맴돌다보니,
: 분명히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일을 했을 것입니다.
: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 그 사상이라야, 성경을 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연결이 됩니다. 교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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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농사를 지었는데, 왜 배고파서 죽겠다는 말이 나오는가?
: 먹을 것이 있는데 왜 만나를 주셨을까?
: 꼬리에 꼬리를 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성경은 계시가 아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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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야, 농사를 지어도, 사람은 못 먹지만, 짐승만 먹을만한 풀같은 것만
: 나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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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광야에서는 농사를 지어서 인간의 힘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곳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오직 인간은 떡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라는 사상을
: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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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두서 없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 제가 배운바 대로 생각해서 적어봤습니다
: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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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lp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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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출애굽 때 짐승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 : 출10:24-26
: :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찌니라.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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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11:1-3
: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찌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 내리니,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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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12:35-38
: :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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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세가 바로에게 출애굽을 하겠다고 한 이유가 제사였고 생축을 다 데리고 나간다고 했으며 유월절 재앙의 밤에 출애굽을 하면서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 줬고 심히 많은 생축을 데리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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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출애굽 후 50 일 안에 만나를 주셨습니다.
: : 출16:15
: :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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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출애굽이 출12장이고 50일이 되던 시점에는 벌써 시내산에 도착하여 출20장에서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 출애굽한 지 한 달 안팎에 양식이 다 떨어 져 만나를 출16장에서 주시고 만나만 먹어 맛이 없고 애굽에 있던 시절의 고기 타령을 하게 되자 메추라기를 주시게 됩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때 발교 되지 않은 반죽까지 가져 온 것을 볼 때 출16장에서 만나를 주실 때는 이미 먹을 수 있는 곡식을 다 먹었고 메추라기를 줄 때는 먹을 수 있는 짐승을 다 먹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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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이 시점에서 살펴 볼 것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출애굽을 하겠다고 말한 이유가 제사였으니 먹을 수 있는 짐승은 다 먹었다고 보이나 제사를 위해 아껴 둔 짐승은 일상 생활용 식용이 아니므로 당연히 먹지 못하게 하고 따로 성별해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짐승들의 사료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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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광야 생활 중의 제사용 짐승과 그 사료
: : 광야 40 년 동안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만나밖에 없습니다. 만나는 채식이고 메추라기는 육식이었습니다. 제사에 사용 되는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는 모두가 채식 동물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나 일반 생활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든 자연의 법을 따라 살게 합니다. 광야 40 년에 음식 문제는 만나만 특별 인도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제사용 짐승도 만나로 먹였을 가능성이 제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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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16장에서 만나를 주실 때 가족 단위로 사람에 대해서만 기록했고 짐승에 대한 기록은 없었으나 생략일 수 있습니다. 성막을 완성하고 제사가 시작 된 것은 출애굽 후 1 년이 지났을 때였고 레위기의 제사법에 의하여 매일과 매 안식일과 각 절기와 기타 제사가 필요한 경우는 허다했습니다. 40 년간 제사용 생축을 먹일 사료는 만나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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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양성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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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번 학기는 레위기의 제사공부를 했습니다. 뜯어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광야 40년동안에는 물도 없고 곡식도 없어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먹을 양식이 없어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레위기의 제사는 짐승이 중심입니다. 소와 양과 염소를 그렇게 많이 드리려면 광야에서 무엇을 먹었을까요? 민수기 7장에 12지파가 예물을 드린 짐승의 수는 몇백마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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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애굽 한 뒤에 성막을 완성하고 그 기념으로 드린 예물만 해도 수소 24, 수송아지 12, 수양 60, 어린 수양 12, 수염소72마리입니다. 소만 36마리에 양과 염소가 144마리 해서 도합 180마리입니다.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늘 수송아지 1마리를 따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출애굽할 때 소와 양과 염소를 굉장히 많이 몰고 나와야 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광야에서 어떻게 그 짐승을 다 먹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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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처: 문답게시판/1237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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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목록
- 광야 40 년 동안 제사에 사용 된 가축의 사료
- 성경의 해석의 방향과 울타리를 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인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많사오나
- 저의 최종 답변입니다.
- 물이 없어 거역하여 만나까지 주셨다면 (제-관)
- 민20:8 '회중과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 출17:3, 고전10:3 '신령한 음료'에 생축이 마신 것은?
- 만나는 벌레도 먹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만나가 가축의 사료로 쓰여졌다는 것이 적합한가 입니다.
- 소돔과 대비한 물 없고 풀 없던 자산
- 신령한 반석의 신령한 음료도 땅 바닥에 버려 졌을 것
- 농사를 짓고 풀이 나도록 물을 주셨을 것 (제-행)
- 흙을 먹고도 살았을 것 (제-행)
- 출애굽 때 심히 많은 생축을 데려 나왔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