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대비한 물 없고 풀 없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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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00:00
1970년대에 백 목사님은 소돔으로 갔던 롯에 비해 가나안으로 가던 아브라함의 목축 환경에 대해 붉은 자산이라는 말씀으로 자세히 묘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가 없으니 물이 없고 물이 없으니 짐승이 살 수 없고 짐승이 살지 못하니 사람도 살지 못하는 환경이니 그리로 간다는 것은 모두가 죽는 길이라고 해석한 적이 있습니다. 덧붙여 목사님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나안을 향할 때 벌써 비가 왔고 그 쪽으로 가축을 몰고 가자 이미 푸른싹이 돋아나서 먹고 살 수가 있었고 뒤에는 자꾸 비를 주시니 비옥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가설이지만 영안이 밝은 분의 설명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 갈 수 없는 가설입니다. 공회 입장에서는 정확한 주해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위에서 처음 이의를 주신 '교인'님의 의견은 처음부터 존중합니다. 그러나 광야 40 년이라는 기간은 가나안으로 들어 가던 아브라함의 환경과 비교하기 어려운 '환경의 혹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야 40 년이란 절대로 살 수 없는 곳이라면, 자산이었던 가나안은 그래도 사람들이 살기는 하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은 극단적으로 살기가 어려운 상황과 인간적으로 최적의 장소인 소돔을 비교했다면, 출애굽 시절의 애굽은 생존의 가능성만 두고는 풍족한 곳이고 생존을 기준으로 볼 때 광야 40 년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 help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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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경 연구법
: - 일반 원칙
: * 성경의 명문으로 일단 확실한 것을 먼저 살펴 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메꾸어 지게 되고
: * 성경에서 전혀 찾을 수 없으면 자연에 있기 때문에 생략할 수도 있으니 자연을 참고하고
: * 성경에도 자연에도 없는 것은 실행을 하다 보면 열매가 나올 것이니 결과로 보면 압니다.
: * 다만,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은 알려 주지 않으시니 이 것은 그냥 두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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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이런 원칙은 다 함께 알고 인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초 방향을 먼저 붙들고 조금씩 살피다 보면 광야의 가축이 먹고 살았던 문제를 살피는 것도 그리 어렵거나 애매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안이 어둡고 또 처음 접하는 문제여서 마음으로는 확신이 선다 해도 발표하는 첫 걸음은 서로 조심하며 가능성과 짐작에서 출발하면 실수가 적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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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광야의 이스라엘 생존법
: ① 새로 주신 것
: 만나는 자연 속에 전혀 없는 방법을 새로 만들고 직접 주셨습니다. 1차 창조에 없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다시 창조해서 바로 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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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이용하신 것
: 물은 직접 만들어 주지 않고 광야에 있는 반석을 통해 주셨습니다. 반석은 습기가 가장 없는 존재지만 그래도 이미 있는 반석을 붙들고 이용하셨습니다. 위에서 주신 만나나 반석을 통과해서 나오는 물이나 모두 하나님의 직접 역사지만 그래도 뭔가를 붙들고 주시는 것과 아무 것도 붙들지 않고 바로 주시는 면으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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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연장 시킨 것
: 느9:21에서 옷은 해어지지 않도록 하였으니 있는 것의 수명을 길게 연장 시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옷이라는 것은 착용물이기 때문에 의복만일 수도 있으나 신발까지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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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대체하신 것
: 그런데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다고 했으니 사막 땅을 맨발로 다녀도 신이 필요 없게 하여 발바닥이 신바닥으로 그 역할이 연장이 되었든 신이 있었다면 떨어 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일단 발이 부릍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우리는 신이 있어야 하는 발이 신이 필요 없도록 발이 신바닥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가지 중에 앞에 3 가지는 하나님의 직접 역사가 아니고는 아니 되나 4번째 발이 부릍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자도 가능하다고 볼 듯합니다. 신발 없이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인간의 생활 기준으로 볼 때 특별한 내용이므로 이 부분을 포함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발 없이 살면 미개인들처럼 그렇게 살 수 있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을 보면 발바닥이 군화 바닥처럼 튼튼하기는 하나 그 모습은 흉칙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바닥은 그런 자연 상태의 변형 된 발 모습과 달리 마치 신을 잘 신고 다닌 사람처럼 되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40 년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직접 은혜 중에 하나로 기록해 주셨다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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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광야 생활이 알려 주시는 것
: ①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환경
: - 다른 세계, 다른 방법
: 제가 생각할 때 광야 40 년의 생활이란 믿는 사람은 불신자 때와는 살아 가는 환경과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외형적으로 먼저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안 믿을 때 살던 애굽은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던 환경이라고 봅니다. 광야라는 환경은 신앙으로 출발하며 말씀으로 살게 될 때 맞게 되는 여건이라고 봅니다. 애굽에 살던 불신자 기준으로는, 광야란 사람이나 가축이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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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2:6,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흙을 먹여 기르거나 소량의 풀을 먹여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은 우리가 함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 40 년의 의미는 믿고 난 후에는 불신 시절 기준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직접 먹여 살린다는 것을 가르쳤다고 볼 때, 광야 40 년을 두고 살피기 어려운 부분은 이런 대원칙이나 전체 방향을 가지고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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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의 방법을 떠난 곳
: 이스라엘의 광야 40 년은 인간이 절대 살 수 없는 곳이라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물이 있으면 풀이 있고, 풀이 있으면 짐승이 살고, 풀과 짐승이 있으면 사람이 삽니다. 무수한 가축이 살 수가 있다면 사람도 비록 불편하거나 열악할지라도 생존은 가능합니다. 물론 수많은 가축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곳곳에 그런 곳을 두시고 그런 곳으로만 인도할 수 있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러하며 일반적인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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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나와 반석의 물로 먹이신 것을 볼 때 광야 40 년의 전반적 환경은 사람이나 가축에게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려면 이 땅 위에서는 그 어떤 면을 봐도 가능성은 0 %라는 면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가능성, 마실 가능성, 입고 걸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생활을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렘2:6과 민8:15이 그렇다고 보며 또한 앞에서 살핀 4 가지 은혜도 그 은혜의 방법은 다르지만 그 한 가지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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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 40 년의 이스라엘 백성이 100 % 하나님의 직접 은혜가 아니고는 안 되는 생활을 했다면 그들이 데리고 있는 가축 역시 일반 자연 환경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살 수가 있는 상황일까?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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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인'이나 '백합화'께서 말씀해 주신 것은 일반 자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가능한 방법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한 경우로 보입니다. 무수한 가축이 풀을 먹거나 흙을 먹고라도 생존할 수 있다면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육식은 해결 되는 상황입니다. 무수한 가축이 하나님의 특별 도우심을 받아 풀이나 흙으로 연명을 한다면 사람은 그 가축을 먹고 살면 되니 가축의 생육까지는 하나님의 특별 은혜가 더해 졌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가축을 먹고 사는 이스라엘은 출16:13에서 메추라기로 40 년을 저녁마다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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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제사법에 의하면
: 제물의 범위
: 제사에 사용 되는 짐승과 곡식은 사람이 쉽게 평소 음식으로 삼을 수 있는 보편, 자연, 일반의 것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산과 들과 외국으로 가서 잡아 와야 할 특수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며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먹는 것, 그 중에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존재적으로는 아담과 에덴동산이 주종의 관계지만 어울려 사는 환경적으로 보면 크게 하나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고 가축은 제사에 이용 될 물품이었으나 이들의 일상 생존 상황은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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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생각에 광야 40 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과 자연의 도움으로는 전혀 살 수 없는 기간이며 환경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모압에 들어 갔던 기간도 있었으나 성경은 광야 40 년을 전체 단위로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그 기간을 총론으로 설명할 때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자연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전적 먹이시고 기르시고 입히셨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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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반석에서 주신 물을 가축도 마시지 않았을까?
: 이스라엘 백성들만 먹던 '만나'라는 특수한 양식을 소 사료로 사용했다는 표현이 너무 자극적이었나 싶습니다. 누구든지 일단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심지어 범성죄로 갈 수 있는 느낌도 들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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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은 것은 만나와 함께 늘 반석에서 나온 물이 있었습니다. 이 물도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으니 그 의미를 신앙적으로 높이 보며 높게 표현하려면 거룩한 물입니다만 가축들도 광야에서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터뜨리고 그 물이 쏟아 져 흘러 내릴 때 그 물을 함께 마시지 않았을까요?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올 때 짐승들이 감히 사람들 앞에 나서서 첫 물을 마실 수 없었을 것이나 사람들이 마신 뒤의 끝물은 마실 수 있을 것 같고, 물이 흘러 내릴 때 물이 나오는 입구의 깨끗한 윗물을 마실 수는 없다 해도 사람들의 행렬이 끝나는 저 아랫물은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물이 나와서 웅덩이에 고여 있었다면 사람들이 다 마시고 난 후의 흐린 물은 마셨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 물로 세수를 하고 버린다면 버려 진 물이라도 땅 바닥을 핥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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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가 구약에서는 광야의 특식이었으나 신약에서는 신령한 양식으로 우리의 사모해 마지 않는 신앙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광야 40 년의 가축의 먹이만 이 주제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광야 40 년의 물처럼 광야 40 년의 만나도 이스라엘이 아침마다 진 사면 들판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에서 퍼다가 가고 나면 그 만나는 그대로 들판에 방치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퍼 가고 남은 것이 많았고 그 남은 것은 해가 뜨겁게 쪼이며 스러 졌습니다. 사람이 가져 가고 남은 것, 땅 바닥에 버려 진 것, 해가 돋으면 스러 질 것, 온 땅에 온 지면에 널브러 져 있는 것을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고 나면 가축들이 마시는 것처럼 그렇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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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육체가 먹고 마시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병이 걸리고 죽고 땅에서 시체가 썩는 물질적 환경은 가축과 거의 다른 점이 없습니다. 물이 반석에서 터쳐 나오는 것은 이적이고 기사지만 흘러 나온 물은 땅바닥에 고이고 흐르는 것이며 그 물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이나 가축이나 달라야 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먹도록 하늘에서 내려 준 방법은 역사에 없는 기사요 이적이었으나 땅바닥에 내려 앉아 사면에 깔려 있는 만나는 그냥 ‘깟씨 같고 희’다고 했습니다. 가축이 먹지 못할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더 잘 먹었을 듯합니다. 그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입맛에 맞춰 주셨으니 가축들은 처음에 고통스러웠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배 고프면 어떤 짐승도 다 적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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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석의 생수
: 광야 40 년 동안 이스라엘이 마셨던 물은 모세가 반석을 때려 그 곳에서 흘러 나온 생수였으나 그 생수는 신약 우리에게는 신령한 음료지만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일단 육체의 몸이 먹어야 했던 식수였습니다. 그 식수 속에 담긴 뜻을 배제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반석에서 나온 물은 일단 인체에 필요한 식수인데 이스라엘이 데려 나온 무수한 가축은 이 물 외에 다른 물을 마셨겠는가? 물론 또 연구하고 가능성을 내 놓는다면 사막의 한서 차이에서 오는 결로 현상이 대기 속의 미세한 습도를 물로 만들고 아침에 맺히는 이슬이 되며 이슬 상태를 통해 무수한 가축은 물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여러 면으로 볼 때 이스라엘 수백 만 명의 사람이 마실 때 가축도 함께 마셨고 이스라엘 수백 만 명이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일 때는 가축들도 함께 고통을 겪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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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 속에 미량의 습기가 섞여 있다가 한서 차이로 이슬이 되려면 평소 비가 잦게 오는 지방과 달리 사막에서는 그 분량이 더욱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슬로 무수한 가축이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도 그 이슬을 헝겊으로 훔친 다음 그 헝겊을 짜면 수분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반석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물이 흘러 나오게 했을 것인데 그 땅에 흘러 시내를 이루는 물을 가축도 함께 마셨다면, 진 사방에 아침마다 쌓인 만나를 사람들이 식구 숫자대로 가져 가고 남는 것은 해가 돋으며 스러 져 없어 지는데 사람들이 하루 분량만큼 다 가져 가고 나면 사방 지면에 흩어 지고 남겨 져 있으며 곧 스러 져 없어 질 만나를 가축들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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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만 성경은 말씀하셨고 가축은 무수하게 데려 나왔다 하셨고 1 년이 지난 뒤부터 성막을 완성하고 제사가 시작 되며 그 제사에 사용 될 가축의 수가 적지 않고 계속 39 년 동안 공급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가축들이 그 가축을 데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고 남은 물을 끝자락에서 마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에서 가져가고 난 나머지 만나가루를 먹었다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기 때문에 성경에 가축이 물을 마시고 들판에 널브러 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사람들이 남겨 둔, 곧 으스러 질 만나를 먹었다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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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따라 나온 사람들은 자연환경에서는 절대 살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4 가지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데리고 나온 가축들의 생존법을 생각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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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론
: 사람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살게 하고, 데려 나온 가축들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야 40 년 동안, 사람이 먹을 곡식은 없다 해도 가축이 먹을 풀이 있는 곳으로만 인도하셨다 해도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을 분이며 또 풀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할 때 풀이 없다면 그런 기간은 흙을 먹고라도 살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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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만일 이 2 가지 방법에서 자연적인 가능성을 고려했다면 소가 평소 흙을 먹는 것은 흙 속에 미네랄이지 소의 주식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며, 만일 풀이 있는 곳으로만 인도하고 다니셨다면 풀이 성장할 수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도우시면 비록 벼와 같은 곡식까지는 몰라도 아주 단기간에 자라는 여러 가지 식물들을 조금이라도 기르거나 맛을 볼 수는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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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광야의 가축을 살펴 보는 이유는
: 1985년, 신학교의 교회사 과목에서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지식에 치우쳐 이론에 이론을 가미하며 상상을 엮어 나가다가 나중에는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 앉을 수가 있겠는가 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비판한 강의를 기억합니다. 바로 이런 천주교 때문에 칼빈은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는 가야 하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는 함께 멈추며 더 이상 발을 내 딛지 말라는 취지로 성령론을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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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 40 년에 가축은 보이는데 사료 문제는 연구한 기록을 찾아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이런 문제가 나오면 배우지 않았던 것이나 토론 대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많이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이 문제는 오늘 우리가 신앙 생활에 전념하고 살 때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수가 많고 그럴 때 광야 40 년을 먹이고 입히신 것을 늘 인용은 하지만 그럴 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까지 미리 살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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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출처: 문답게시판/1237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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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목록
- 광야 40 년 동안 제사에 사용 된 가축의 사료
- 성경의 해석의 방향과 울타리를 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인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많사오나
- 저의 최종 답변입니다.
- 물이 없어 거역하여 만나까지 주셨다면 (제-관)
- 민20:8 '회중과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 출17:3, 고전10:3 '신령한 음료'에 생축이 마신 것은?
- 만나는 벌레도 먹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만나가 가축의 사료로 쓰여졌다는 것이 적합한가 입니다.
- 소돔과 대비한 물 없고 풀 없던 자산
- 신령한 반석의 신령한 음료도 땅 바닥에 버려 졌을 것
- 농사를 짓고 풀이 나도록 물을 주셨을 것 (제-행)
- 흙을 먹고도 살았을 것 (제-행)
- 출애굽 때 심히 많은 생축을 데려 나왔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