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옥 성도의 가족에 대한 배려

투옥 성도의 가족에 대한 배려

주님 사랑 0 17



예전에 말씀드렸듯이 워치만니 형제님의 말씀 공급에 대해서는 녹취록도 있고 해서 제법 상당부분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트니스리 형제님이 늘 아쉬워하는 것은 그 당시가 오늘날처럼 녹음이나 녹화가 가능해서 니 형제님의 모든 말씀들을 담아 보관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로 두분이 20여년의 세월동안 서로 친밀히 자주 대화하는 가운데 보고 들은 것이 위트니스 리의 존재속에 새겨졌고, 또 그것이 그가 남긴 라이프 스터디에 녹아서 전해질 뿐입니다.

질문하신 니 형제님 투옥시의 자매님(아내)에 대한 교회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희귀합니다. 원래 이런 부분은 감취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헌금을 누가 했는지 얼마를 했는지 이런 부분은 일체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의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지방교회측 연구 조사팀이 중국 본토에 갔을 때 유사한 사례에 대해서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즉 가장이 17여년 동안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한 가정에 가서 인터뷰하면서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느냐고 묻자, 그 아내되는 자매님은 '교회가 돌보아 주었다.'고 짧게 말했습니다.

니 형제님 시절은 중국 경제가 그리 넉넉한 시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니 형제님이 사역을 하던 동안에도 그의 동역자들 중 상당수가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주님께 갔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경우 자녀가 8명인데 어떤 때는 니 형제님의 부탁으로 다른 지방으로 사역하러 가다보면 몇 개월씩 집을 비우곤 했는데, 그 때 그의 가족들은 참으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공식적인 지원이 없던 시절입니다.

시원스러운 답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떤 부분은 그냥 여백으로 남겨 놓고 훗날 주님꼐 갔을 때 분명해질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 무명2 님이 쓰신 내용 <<
:
: 1. 순교자 워치만 니 목사님
:
: 아주 오래전에 워치만 니의 간증이란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워치만 니 목사님의 자서전 같은 글이었는데, 한 분 성령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동일한 고백을 하게 되나 봅니다. 제가 만났던 그 하나님을 그 분도 만나서 동행하셨던 면을 보고 위안을 삼고 특별히 워치만 니란 이름을 간직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
: 그 책에서 부인되시는 분은 신앙이 거의 없는 분으로 평가하셨는데, 그 후에 그분을 성녀로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장성한 신앙으로 양육하신 주님과 워치만 니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
: 주님사랑님께서 소개해주신 글 중 몇번을 읽어도 그때마다 눈물이 울컥 나오는 대목은 한 두해의 옥고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닌 20여년의 그 긴 세월 동안 주님과의 동행을 굳건히 지키시고 적으신 그 한마디,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노라(니토생)" 이었습니다.
:
: 그분의 순생과 순교의 정신 그리고 승리가 이 한마디에 다 담긴 것 같아 오늘을 사는 저희에게 큰 위안과 질책과 힘이 됩니다.
:
: 일찌기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도, 主我爲死 했으니 我主爲死 하리라(주 나 위해 돌아가셨으니, 나 주 위해 죽겠노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두 분의 공통된 고백이 한 분 하나님을 섬겼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
: 2. 사모님의 경제는 교회에서 어떻게 보조해 드렸는지 궁금합니다.
:
: 참으로 많은 핍박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워치만 니 목사님이 투옥되신 후 사모님의 경제는 교회가 어떤 보조나 도움을 드렸는지 궁금합니다.
:
:
:
: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
: :
: :
: : 워치만 니 형제님은 말씀선포 부분에서는 많은 자료가 있으나 가족상황에 대해서는 자료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 :
: : 우선 니 형제님은 자녀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아내에 대한 기록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분은 모두 진작에 작고하셨습니다.
: :
: : http://m.chch.kr/kin/20974
: :
: :
: : "워치만 니는 1952년 삼월에 지방 교회들 가운데 있는 그의 인도 직분과 함께 그리스도안의 믿음을 시인했기 때문에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심문 받고 무고당하여 1956년에 십오 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오직 그의 아내만이 그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나긴 감금 기간에 그가 무엇을 체험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지만 그의 마지막 여덟 통의 편지는 그가 감금 말기에 친필로 쓴 것으로서, 단지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약간이나마 그가 감금 기간에 받은 고통과 느낌과 소망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감옥의 검열로 인하여 그는 편지에 주님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썼던 마지막 편지에는 주님 안에서의 그의 기쁨을 언급했습니다.
: :
: : “저는 병중에서도 여전히 기쁨을 간직하고 있으니 …” 워치만 니는 빌립보서 4장 4절의 바울의 말을 실행했습니다.
: :
: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1972년 5월 30일, 그는 감금 중에 죽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그는 비참하고 구차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임종시에 그 신변에는 친척이나 주 안에서의 형제나 자매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정식 통보도 없었고
: :
: : 1972년 6월 1일에 그는 화장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 보다 6개월 더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녀의 큰언니가 그의 죽음과 화장 소식을 통보 받았습니다. 그녀가 그의 유골을 받아서 그의 고향인 저장성(浙江省) 하이닝셴(海寧縣) 관후(觀湖)라는 곳에 그의 아내의 유골과 함께 안치했습니다. 1989년 니 형제님과 자매님의 유골은 장시성(江西省) 쑤저우스(蘇州市) 샹산(香山) 공동묘지로 옮겨져 ‘그리스도인 묘지’에 안치되었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무명2 님이 쓰신 내용 <<
: : :
: : : 워치만 니 목사님의 사모님은 지금 어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 :
: : : 두 분은 결혼을 늦게 하셨다 들었습니다.
: : :
: : : 결혼 후 워치만 니 목사님이 사역하실 때, 그리고 투옥되신 후, 그 후 순교하시기까지, 사모님과 가족들(자녀와 부모 등)은 어떤 형편이셨으며, 신앙생활은 어찌 하셨고 그 후 경제는 어찌 사셨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 : :
: : :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78 명
  • 오늘 방문자 4,953 명
  • 어제 방문자 7,454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88,511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