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대화 진행 글 3 개 모음/ 성호의 호칭 문제 글 4 개 모음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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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9 00:00
주제 토론의 진행에 관련 된 글 3 개와 성령의 호칭에 관련 된 글 4 개를 이 곳에 옮깁니다.
두 종류의 글 7 개는 모두 원래 주제와 큰 상관이 없어 이 곳에 한꺼번에 모아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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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화의 동기 등
진행 상 다음 글 3 가지는 이 곳에 함께 모읍니다.
대화의 주제와 상관이 적고 진행 과정에서 당사자의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이 몇 차례 오 갔습니다. 이 곳에 함께 모음으로 전체 진행을 자연스럽게 하려 합니다. 새 목록을 만들면 목록 번호에 혼란이 생길 듯하여 첫 글에 3 개 글을 모았습니다. 필요하면 원래대로 복구하겠습니다.
3459번, 더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두 가지 확인사항 주님사랑 2013-01-19
3461번, 해명과 요청 행정실 2013-01-19
3466번, 해명과 요청-감사 주님사랑 2013-01-22
2. 성령 성호에 대한 호칭
3471번, 호칭 문제에 대해 - '그 영' 관련 help1 2013-01-23
3472번, [호칭에 대한 답변 드립니다.] 형제 2013-01-23
3473번, 변경해 놓겠습니다. 행정실 2013-01-23
3474번, 이곳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형제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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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화의 동기 등에 관한 글 3 개 모음
일시: 2013.1.19.
제목: 더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두 가지 확인사항
이름: 주님사랑
. "(행정실)3446번 글의 '12번'에서 지방교회를 설명하시는 분이 지방교회의 교회론은 지방교회의 덜 중요한 일부 논점이고, 지방교회로서 더 중요하게 강조하는 '그 영'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위 행정실 공고내용 중에서 두 가지를 사항에 대해서 일단 정리를 해 놓는 것이 오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지방교회 교회론의 지방입장은 교회론의 덜 중요한 요점이고, 교회론에서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점은 교회의 몸, 새사람, 거처..등을 의미했고, 교회론과 관련하여 '그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둘째, 지방교회측이 "그영에 대한 토론을 <먼저> 제안 한 것이" 아니고, 교회론 토론 중에 '형제'분이 그영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들고오셔서 답변을 요청하심으로 부득이하게 답변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말미에 "만일 필요하다면 또한 그럴 준비가 된 분들이 있으시다면 추후 이 세 가지 젱점들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온전케 되는 목적아래 더 심도있게 교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적었습니다.
1. "필요하다면", 2. "(그영에 대해 토론할) 그럴 준비가 된 분들이 있으시다면", 3. "추후에", 4. "서로 배우고 온전케 될 목적으로" 등 4번의 조건들이 붙은 어법의 의도를 잘 헤아려 보셨으면 합니다. "그영을 지방교회측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라고 표현한 것도 '형제'분이시지요.
결론적으로, 이곳에서 '그영'에 대해 토론 내지는 검증이 이뤄진다면 어떻게든 글들이 오고 가겠지만, 총공회측이든, '형제'분이든 그럴 절실한 필요가 있으신지, 또 그영에 대하여 비판 또는 긍정할만한 사전의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신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서로 배우려는 자세가 있으신지를 잘 헤아려서 차분히 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일 토론이 진행되려면 제가 아래에서 제시한 세 가지 쟁점들에 대해서 어느 분이든 자신의 정리된 관점을 몬조 제시하시면, 저도 시간이 나는대로 제 의견을 또 덧붙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는 고로 시간이 나는대로 성의껏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취지가 잘 전단되었기를 바랍니다.
2) 그 영- 성경에서는 ‘the Spirit’이 제 3격 성령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계2:7,11…), ‘그영과 신부가 말씀하시길’(계22:17) 처럼 꼭 제 3격만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위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곱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살아 있는 이이다. 내가 죽은 적이 있다”라고 고백한 분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이 말씀을 다 하신 후에는 “그영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심으로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그영으로 말씀합니다.
주의 회복에서는 편의상 ‘마지막 아담이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그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요7:39)에 따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영을 같은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많은 분들의 오해처럼 2격=3격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삼위는 구별은 되시나 분리되지 않으심으로, 어느 한 위격을 지칭하더라도 다른 두 위격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아버지, 아들, 성령을 각각 1/3하나님이라고 착각하는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관점이 기준이 되면 성경적인 관점이 마치 이단적인 사상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는 다음 세가지 쟁점을 소개하고 훗날을 기약하고 교회론 주제를 다루는 이곳에서는 자제토록 하겠습니다.
1)삼위를 분리시키는 관점의 복음전파의 오류
복음은 주 예수님의 죽음(십자가의 피)과 부활(부활하신 주 예수님 자신)을 그 핵심요소로 합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복음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죄인된 여러분을 위해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들을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후 이 분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이 분을 여러분의 마음에 모셔드리셔서 구원받으십시오. 그런데 바로 이 싯점에서 사람이 영접하는 주체가 과연 삼위 중 어떤 위격인가가 모호합니다.
해보통은 예수님(2격)은 부활 후 하늘로 승천하시고 보헤사 성령(3격) 께서 우리 안에 오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 2격 주 예수님을 영접한 것인가 아니면 제 3격 보혜사 성령을 영접한 것인가..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보통은 제 3격인 성령님이 오셨지만 그분이 제 2격을 ‘대리’하여 오셨으니 2격과 3격이 오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대리’ 이론은 칼빈의 해석이지 성경이 말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하는 요일3:24도 본문을 오해한 결과일 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그영을 통해 안다'는 문맥인데,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신다' 고 잘못 이해한 후 ‘아들을 대리하는 성령의 내주’ 이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라고 말함으로 성령으로 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들 자신이 생명으로서의 내주하심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요일5:12).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말씀(골1:27)도 동일합니다. 만일 여기서 이 구절들을 적당히 설명하려고 성령이 곧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시라고 말하면 즉시 양태론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 난제들을 풀수 있는 대화가 이뤄진다면 참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2)요7:39의 “그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해석문제
이 구절은 고신대학교 신대원 변종길 교수님이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았을만큼 난해한 구절입니다(이분의 박사학위 논문이<성령과 구속사>(개혁주의신행협회)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됨). 이 구절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하려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합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그 당시까지 성령이 안 계셨다는 의미이다.
2) 성령이 사람 안에 안 계셨다는 의미이다.
3) 그영(3격과 구별되는) 자체가 안 계셨다는 의미이다.
4) 성령의 역사의 강도가 부활 전보다 부활 후에 강해졌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개혁주의 신학자인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의 <그리스도의 영>이란 책에서 여기서의 ‘그영’(the Spirit)을 다만 3격 성령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 예수님 자신, 즉 그분의 신성뿐 아니라, 입으신 육신(인성)까지도 영화롭게 된 분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부활시) 영광받으신 사건은 그분의 인성이 (죽을 몸에서) 죽지 않을 몸으로 영화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 즉 그영은 <신성, 인성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변종길 교수님은 위 책 결론부분에서 이 영을 “영광받으신 예수(또는 영광받으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222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은 어떤 영인가..하는 심도있는 논의를 이 공간에서 지금 다루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3)삼위의 어느 한 위격은 다른 두 위격을 배제시키는가 아니면 포함시키는가?
성경적인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한분이시다'(God is one) 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롬3:30). 그렇다면 한 위격이 다른 두 위격을 완전히 분리시킨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 사람이 세 분리된 사람들인 것처럼 세 하나님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위격(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을 성경이 지칭하더라도 그 성부만을 배타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위격인 아들과 성령이 포함된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삼위 사이에는 ‘구별’이 있으십니다. 이런 균형잡힌 삼위일체론을 가진 미국의 개혁 신학자인 로레인 뵈트너의 경우 주기도문에 나오는 아버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삼일성의 세 위격들이 동일하게 똑같은 숫적인 실체(substance)와 본질(essence)을 소유 하시고, 그 속성들은 본체 또는 본질 안에 내재되어 있고 본체 또는 본질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신성한 속성들 모두는 세 위격들 각자에 의해 마찬가지로 소유되셔야 하고 또한 세 위격들은 본질적으로 동체이시고, 동등하시며, 동일하게 영원하셔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각각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동일한 능력을 행사하시고, 신성한 영광에 동일하게 참여하시며, 동일한 경배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주님의 기도의 예에서처럼, 우리의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그것은 배타적으로 삼일성의 첫번 째 위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영 어 원문)Since the three Persons of the Trinity possess the same identical, numerical substance and essence, and since the attributes are inherent and inseparable from the substance or essence, it follows that all of the Divine attributes must be possessed alike by each of the three Persons and that the three Persons must be consubstantial, co-equal and co-eternal. Each is truly God, exercising the same power, partaking equally of the Divine glory, and entitled to the same worship. When the word "Father" is used in our prayers, as for example in the Lord’s prayer, it does not refer exclusively to the first person of the Trinity, but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 The Triune God is our Father.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만일 위 해석이 맞다고 한다면,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님이 계신다고 할 때 대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주 예수님도 함께 내주하시다고 하는 것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주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2격)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지만, 다른 두 위격들이 그 안에 포함되고, 요7:39본문처럼 죽음과 부활 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쟁점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입으신 인성이 부활시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활시 바로 이 부분(인성)이 영광을 받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아담(신성, 인성을 입으신 주 예수님자신)이 생명주는 영(신성과 영화롭게 된 인성을 입으신 주 예수님 자신)이 된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방면은 행13:33(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롬1:4(부활하시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등의 구절들과 함께 섬세하게 살펴보고 그 어느 곳도 모순됨이 없는 해석을 찾아내야 하는 난 코스입니다.
만일 필요하다면 또한 그럴 준비가 된 분들이 있으시다면 추후 이 세 가지 젱점들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온전케 되는 목적아래 더 심도있게 교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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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1.19
제목: 해명과 요청
이름: 행정실
윗글1 - '교회론과 관련하여 '그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 행정실 해명1
현재 이 곳의 지방교회 교회론 대화는 '한지방 한교회주의'가 첫 주제가 되다 보니 지방교회 교회론의 '몸' '새사람' '거처' 등에 대한 부분은 대화에서 제외 되었고 마치 '이 곳의 교회론은 한지방 한교회주의'라는 생각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표현이 잘못 되었다 하시면 원 글을 적은 분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며 저희는 죄송합니다.
3415번에서 '....교회론의 <핵심>은 ‘한 지방 한 교회’라는 소위 지방입장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면일 뿐입니다. 영의 방면, 단체의 방면..이런 것들이 지방입장의 교회론보다 더 깊은 주의 회복의 교회론입니다. 그러나 외부에는 이런 내적이고 본질적인 방면보다는 지방입장(한 지방 한 교회)만 자극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거론되곤 했습니다....' 라고 하신 글 등을 통해 지방교회는 더 깊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많은데 외부에서는 마치 한지방 한교회주의만 지방교회의 핵심 주장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방향만 자꾸 거론 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면을 반영하기 위해 안내하려 했습니다.
현재 행정실 입장에서는 '주제연구'라는 곳에 지방교회를 손님으로 청했으니 조금이라도 배려해야 예절이라는 입장입니다. 혹시 직접 글을 주신다면 그대로 반영하여 이런 면을 두고는 오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윗글2 - '지방교회측이 "그영에 대한 토론을 <먼저> 제안 한 것이" 아니고'
...교회론 토론 중에 '형제'분이 그영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들고오셔서 답변을 요청하심으로 부득이하게 답변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말미에 "만일 필요하다면 또한 그럴 준비가 된 분들이 있으시다면 추후 이 세 가지 젱점들에 대해서...
-> 행정실 해명2
첫 언급은 다른 분이 했을지라도 '3454번,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2) 주님사랑 2013-01-18'의 글의 6번 내용 중에서
'6.”(무명2) 형제님께서 문의하신 '그 영'과 '성령님'과 '사람의 영'의 구분'
이 세가지의 구분은 교회론과는 별도의 주제로 생각됩니다. 사회자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교회론과 별도의 주제로 뽑아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하신 이 부분을 근거로 별도 주제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주님사랑'님께서 적으신 내용이 '6번'에 있다고 기억하고 옮겼는데 나중에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글인 3446번 (2-1)에서는 '12번'에 동일 내용이 있어 '6번'과 '12번'의 혼선을 했습니다. 어쨌든 상기 내용 때문에 별도 주제로 출발 시켰고 그래서 안내 내용도 그러 했습니다. 오간 글의 갯수나 분량도 있고 내용도 복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자가 핵심만 간추려 논점에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지적해 주시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뿐입니다.
* '그 영'에 대한 대화 문제를 두고는
공회로서는 '한지방 한교회'에 저희까지 배제가 되는가 싶어 사실 대단히 궁금했고 또 어떤 신령 면을 많이 가졌는지 직접 확인도 원했습니다. 한지방교회 문제는 전국 여러 곳에 계신 지방교인들의 강조가 지나 쳐서 잘못 전달 된 부분이 많았음을 알았으므로 오해가 잘 풀려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영'을 비롯하여 나머지 거의 모든 문제는 이 곳에서 '주님사랑'의 설명 정도만 들어도 공회로서는 이미 다 알고 있던 내용입니다. 서로 사용하는 사투리가 좀 달라서 어리둥절할 때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 표현을 하면서 그렇게 깊게 들어 가시려고 노력하는 면을 다른 교회는 몰라도 저희는 이미 내면에 가진 것이어서 전혀 새로울 것도 더할 것도 없습니다. 무의미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일반 교계는 모르고 있는 진리들이고 이미 깨달은 이들은 너무 잘 아는 세계인데, 주님사랑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공회 교인 한 분이 오셔서 많은 글을 적는 듯 그렇게 읽고 있다는 우호적 표현입니다.
'그 영'은 이런 점에서 행정실이 공회에 필요해서 뽑은 것이 아니라 3446번에서 직접 별도의 주제로 뽑아 달라 하신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별도 주제를 하나 더 잡아 본 것뿐입니다.
어쨌든 이 홈에서 모신 귀한 손님입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있었다면 전적 이 홈의 잘못입니다. 여러 말씀으로 저희가 알지 못한 세계를 소개해 주셨고 저희는 지금 저희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서로 깨달아 둔 것만 해도 그 방향으로 죽는 날까지 달려도 부족할 터인데 긴요하지 않은 문제로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이 것도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이시든지 하시면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 행정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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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1.22.
제목: 해명과 요청-감사
이름: 주님사랑
(행정실)"그리고 '그 영'을 비롯하여 나머지 거의 모든 문제는 이 곳에서 '주님사랑'의 설명 정도만 들어도 공회로서는 이미 다 알고 있던 내용입니다. 서로 사용하는 사투리가 좀 달라서 어리둥절할 때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 표현을 하면서 그렇게 깊게 들어 가시려고 노력하는 면을 다른 교회는 몰라도 저희는 이미 내면에 가진 것이어서 전혀 새로울 것도 더할 것도 없습니다. 무의미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일반 교계는 모르고 있는 진리들이고 이미 깨달은 이들은 너무 잘 아는 세계인데, 주님사랑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공회 교인 한 분이 오셔서 많은 글을 적는 듯 그렇게 읽고 있다는 우호적 표현입니다."
사실 저도 총공회분(들)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믿음생활하는 최종 목적에 대해서 말이 통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만 같다면,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정확히 같지 않아도 결국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달리 목표가 죄사함만 만이거나, 아니면 거듭남만이거나, 또는 성화(참된 의미의)가 목표일 뿐이고,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계3:12, 21:2)이 목표가 되지 못하면 토론을 하거나 일반적인 대화를 하더라도 자꾸 어긋날 때가 많고, 설명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공회의 한분이 요15장의 한 구절로 우리가 믿는 최종 목표에 대해서 시원하게 설명을 해 주셔서 같은 것을 보고 계시구나 하는 기쁨과 소통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계3:12 -이기는 이는 내가 나의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도록하겠다. 그는 결코 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나의 하나님의 이름과....나의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할 것이다."
그영에 대해서는 행정실의 입장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정도라면 저는 그 입장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인용해 주신 '그영'에 대한 논의를 별도 주제로 뽑아달라고 한 부분도 <무명2>님이 먼저 제안하신 것이고, 그 글을 인용 소개한 정도입니다. 행정실 입장에서는 그영에 대한 별도주제 정리 요청을 받으셨기에 그리한 것이고, 제가 먼저 또는 그후에라도 별도 주제로 '이곳에서' 논의를 해 보고 싶다고 밝힌 것은 아님을 해명드리니 이 또한 상황파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끝으로 교회론의 실재가 '영'과 '몸'이라고 할때, 여기서 영은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주님자신(우리의 생명되신 그리스도,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함이라..등등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요지는 저희는 '그리스도'에 초점을 둔 표현이고 외부인들은 '보혜사 성령'에 초점을 둔 표현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아니면 보혜사 성령님이 계신 것인지, 그 두분이 다 계신 것인지...이런 부분들을 깊이 다루려면 삼위일체론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현재 제한아래 있고, 저는 행정실의 이런 토론범위의 제한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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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령의 성호 호칭에 대한 글 3 개 모음
일시: 2013.1.23.
제목: 3471, 호칭 문제에 대해 - '그 영' 관련
이름: help1
현재 대화 중인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으나, 대화 내용에 반복 되는 호칭 문제가 훗날 다른 문제가 될까 싶어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령'은 '성령님'이라고 불러도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 영'은 '님'을 붙이면 너무 어색하고 뭔가 또 외부에서 한 마디 들을 느낌입니다.
'예수'는 '예수님'이라고 불러도 자연스러운데 '그리스도님'이라 한다면 역시 이상합니다.
자연스럽고 이상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주관적이어서 거론하기 극히 어려운 사안입니다만 현재 대화하시는 모든 분들이 원만하게 이해해 가면서 자기 입장을 적극 설명하시기 때문에 양해하실 줄 믿고 제안 드립니다. 저 역시 모든 사람이 '영님'이라는 표현이 별 무리 없이 들리고 그렇게 사용 된다면 따라 하고 싶습니다. 많은 것을 읽는 편은 아니나 어쨌든 좀 어색합니다. 혹 지방교회에서 그렇게 반복해서 자연스러워 져 있다면 상관치 마십시오. 몇 사람이 아니라 어느 단체의 전체적 흐름 정도라면 그냥 존중할 뿐으로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여기서 의견이 반복 되면 더 중요한 내용이 가릴 수가 있어 간단히 문답방에 질문을 올려서 yilee 답변을 받아 놓도록 하겠습니다. 추가 설명이나 이견이 계시면 문답방에 옮겨서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 형제 님이 쓰신 내용 <<
:
: 요한복음 7장에서 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였던 유대인들은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육신의 귀를 가지고 예수로부터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육신에 속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평가하고자 하였으나, 주님의 말씀은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육신의 눈은 안목의 정욕에 가리워서 보아도 보지 못하였고, 육신의 귀는 육신의 정욕에 가리워서 들어도 듣지 못하였으며, 육신의 마음은 이생의 자랑에 가리워서 생각해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선과 악의 지식으로 자신들이 대단한 사람인 줄로 생각하면서 주님을 비방하고 심문하였지만 그런 유대인들의 영적인 상태는 흑암이요, 공허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이방인들도 죄로 인해 위의 유대인과 똑 같이 흑암이요, 공허요, 혼돈은 같은 상태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
: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선민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육신과 종교에 속한 기득권을 움켜지기 위한 하나님이요, 그들의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하나님이었습니다.유대인들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였다면 지금 그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그 그리스도시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을 알아보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육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질 대로 멀어져 눈이 멀고, 귀도 닫혀 하나님과 하나되어 즐거워해야 할 그들의 명절 날에 오히려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음의 그늘에서 그들의 마음과 영은 사막과 같이 황폐한 상태였고, 어떤 열매도 자랄 수 없는 물이 없는 갈라진 마른 땅 이였음을 주님께서 요한복음 7장을 통해 우리이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님은 생수를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 영"님이십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십자가에 함께 참여함으로 죄와, 육신과,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주 예수님과 함께 그 욕심과 정욕과 선악지식을 가지고 있는 옛 사람을 끝낸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과 생명으로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모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성령님은 주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모든 자들을 모든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
: 그 영님을 쫓아 사는 자들은 언제나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 많은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고 증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은 거룩하신 성령님을 통해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어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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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01-23
제목: 3472, [호칭에 대한 답변 드립니다.]
이름: 형제
저는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을 주로 보고 있어 저에게 그 영(The Spirit) 이라는 단어는 너무 친숙합니다. 개역성경에는 그 영과 성령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 성령으로 번역하였습니다.(한글킹제임스 성경도 그 영과 성령을 전부 성령으로 일괄 번역함) 제가 그 영을 그 영님으로 말하게 된 것은 그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 들여질지는 몰랐습니다. 이제 다른 성도들 앞에서는 호칭에 있어서도 조심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합니다. 제가 이곳에 글을 쓰게 되면 성령 , 그 영 으로만 말해내도록 하겠습니다. 혼란을 드렸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한 번 글을 쓰면 수정이 안되어 좀 불편합니다.. 괜찮으시다면 관리자님께서 제가 영님이라고 쓴 것을 전부 그 영으로 변경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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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01-23
제목: 3473번, 변경해 놓겠습니다.
이름: 행정실
윗글의 말씀에 따라 '영님'으로 표현 된 곳은 '영'으로 수정한 다음, 3471번, 3472번과 이 글 3 가지를 모두 '3459'번 안으로 이동하여 원래 대화를 원할하게 해야 하겠으나 재인용 된 글도 있고 한 번 올려 진 글을 수정하는 것보다 앞으로 달리 표현함으로 과거 내용에 대한 수정이 표시 되는 것을 대신하면 좋겠습니다.
이 홈은 백영희 신앙 노선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대화하는 곳이며, 이 노선의 내용은 대단히 많은 부분에서 교계 전체를 상대로 찬반을 토론해야 할 사안이 많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 노선에 대한 비판은 거의 전부가 발언의 사실 여부만 가려도 거의 문제가 해결 된 정도였는데 이 노선이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무조건 비판을 흘려 놓는 이들이 있어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하도록 이 홈의 글은 운영자나 누구의 글이라도 한 번 올라 오면 단순 오자 등의 특수한 경우만 운영자가 직접 연락을 받고 수정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또 이 홈은 그림이나 디자인 등에 서툰 면도 있고 또 이 노선이 원래 예술성을 멀리 하는 편이어서 홈의 분위기를 단순화하다 보니 이 홈에 맞는 프로그램은 인터넷 프로그램 중에서도 초기 것이고 기능도 제한적이어서 대화나 운영 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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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01-24
제목: 3474번, 이곳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이름: 형제
만약 제가 그 영(성령)을 그 영님으로 기록해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몫입니다. 저는 이곳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