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과 복음의 정의에 대한 지방교회 입장을 여쭙습니다.

주일과 복음의 정의에 대한 지방교회 입장을 여쭙습니다.

공회교인 0 49




공회인들은 지방교회라는 곳을 잘 모릅니다. 공회 외에는 사실 어느 교회도 잘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우리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다보면 옆돌아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글을 읽다 보니 지방교회는 구약 기록은 구약 교회를 위한 기록이지 신약 우리가 지킬 기록이 아니라고 설명하신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흔하게 듣는 말이어서 별로 놀랄 주장은 아닙니다만 열심히 믿는다고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여쭙습니다. 지방교회는 주일 성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주일 성수를 하게 되면 다른 복음이라고 설명을 하신 것 같습니다. 지방교회 입장에서는 구약은 율법이므로 신약에는 필요가 없는 말씀이며 구약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다른 복음이 된다고 제가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참 복음에 대해서도 한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다. 복음은 '죄사함'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 자신'이라고 설명하셨는데, 죄사함을 말하면 안 되고 예수님까지만 말하면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까? 죄사함만 말한 성구도 있고, 예수님을 말한 성구도 있으나, 예수님까지만 말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저희는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많이 살피기도 합니다. 죄 문제만 말씀한 곳도 있고, 죄와 의 문제를 말씀한 곳도 있고, 죄와 의와 화목을 말씀한 곳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말씀한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신앙 세계는 넓고 깊을 터인데 지방교회가 너무 속단적으로 곳곳을 잘라 놓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방교회가 선 곳에 서고 지방교회가 가는 곳까지는 가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 쉽상입니다. 죄사함으로 전부인 줄 아는 것이 일반 교회입니다. 그러나 죄사함 이상을 알고 말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저희 말고도. 일단 2가지 질문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서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 주님 사랑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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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약 10여년 전에 어떤 싸이트에 썼던 글입니다. 신학생님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아니지만, 참고는 되실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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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복음, 다른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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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복음'이란 말은 소위 이단감별사들이 다른 단체나 개인을 이단으로 만들 때 즐겨 인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갈 1: 6 이 말하는 문맥에서의 그것은 '유대교 율법을 준수함' 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을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의미’로 확대하여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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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본문을 인용 소개한 후 ‘참된 복음’을 간략히 설명하고 다른 복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본 후 왜 그들이 다른 복음에 빠졌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그런 다음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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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갈1:6에서 갈라디아 교회들 안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 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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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복음 (또는 기준이 되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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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다르다’ 라고 할 때는 어떤 것과 다르다는 것인지 그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주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지옥 안 가는 것입니다. 즉 복음 =죄사함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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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복음은 그분이 이루신 <죄사함>일 뿐 아니라 사실은 <주 예수님 자신>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 수만 있으면 로마에 있는 '너희'-이미 죄사함 받고 거듭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롬1:15). 또한 바울은 로마서 말미에서는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하나님'이라고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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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심(골3:4), 장차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심 (골1:27),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맏아들의 형상을 이루심(갈4:19) 까지도 복음으로 증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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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주 예수님 자신입니다. 다른 복음은 다음 항목에서 보겠지만 그럴듯하고 심지어 성경에 기록된 것일찌라도 '주 예수님 자신은 아닌 어떤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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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복음은 예수의 피로 씻겨진 질그릇인 우리 안에 생명이신 주 예수님이 담기고 또 담겨져 우리의 영과 혼과 몸까지 생명으로 충만되고 성숙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 예수님 자신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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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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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맥에 의하면 '다른 복음'은 성도들을 참 복음인 '그리스도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자'로부터 '떠나게'하는 그 무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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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떠난다는 말은 '메타티데이'(3346 a)로서 한 주석가는 이것을 'deserting'이란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병역, 군무 따위를 버리고 탈영하다 또는 탈주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즉 갈라디아 교회들 안의 유대교인 출신 도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장소인 주 예수님 자신인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무단 탈영하여 다른 복음을 따라 가는 것이 바울이 볼 때는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대인이었다가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복음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 구성원들을 주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지게(탈영)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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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요즘같이 물질이나 세상적인 쾌락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하는 것도 그들을 주님의 은혜로부터 떠나게 할 힘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유대교 율법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를 사용해서라도 그런 율법이 금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미 효력이 상실된 율법을 준수하려고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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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른 복음인 율법의 준수라는 문제가 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이었는지를 '할례 행'을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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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유대로부터 내려 온 어떤 사람들이 교회 성도들을 모아 놓고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는 소위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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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 당시 이 말을 들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가르침을 결사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을 알고 있던 성도들은 마음에서 이 문제가 정리가 안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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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하면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의 말도 엄연히 성경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레위기 12:1-3을 보면 주님이 직접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8일 째되는 날에 아이의 표피를 잘라 할례를 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출 4장에 보면 하나님이 갑자기 태도가 변하여 모세를 죽이려 하자 십보라가 자기 아들의 표피를 잘랐고 피 남편이란 말을 한 이야기가 나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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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여 할례를 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고, 안식일을 준수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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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율법의 요구를 지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키다 안 지키다 했습니다. 그러자 교회 안에는 이로 인한 혼란이 왔습니다(갈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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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이런 혼란은 초대교회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 어느 단체 내에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의 말에 의하면 저주를 받을 '다른 복음'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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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교사가 안식일 날(혹은 주일)에 학교 당직을 설 수 있는가 없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돼지 고기를 먹을 수 없는가?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은 종교적 의식으로 할례를 해야 하는가? 안 해도 된다면 왜 그러한가? 왜 요즘은 유월절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의식을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왜 목사들은 구약의 제사장 냄새가 나는 거룩한 가운을 입고 있는가? 일부의 사례처럼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교적부에서 제명 당해야 한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그렇다면 십일조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십자가를 종탑 위에 걸어야 정통 교회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단인가? 왜 사도신경을 외우면 정통이고 안 하면 이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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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들은 크게 볼 때(광의의 범주에서) '다른 복음'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이슈들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덕적인 율법이 아닌 의식적인 율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거나 제명의 대상이라거나 구원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복음에 오염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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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혼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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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주님의 사도였지만 베드로나 아고보와는 달리,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너무나 분명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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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율법의 참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때가지만 유효한 소위 말해 '한시법'이라는 것을 바울는 선명히 본 것입니다. 즉 시대가 바뀐 것입니다. 달리 말해 부모가 주신 머리(신체발부수지부모)를 치렁 치렁 땋아 내리고 다녀야 효자였던 시대에서 이젠 머리를 땋아 내렸냐 아니면 상고머리로 짧게 깎았느냐가 효자 여부를 규정짓는 것은 아니다 라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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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점에서 바울에겐 구약과 신약은 넘나들 수 없는 명확한 선이 있었습니다. 즉 그가 보기에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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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모는 엄마가 없는 낮 시간동안만 아이를 돌보는 권한이 있을 뿐이고 엄마가 직장에서 퇴근 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참 부모인 엄마에게 아이를 인계하고 자기는 퇴근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친 엄마가 온 다음에도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어떤 때는 엄마를 밀치고 자기가 아이를 주관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인 것입니다. 율법과 주님 자신은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들을 이루는 성도들은 이 점에 대한 계시가 크게 부족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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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참 복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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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4:4-5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 부터 우리를 속량하시고 영적 생명이 장성한 분량에 이른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에 이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옛 율법에 속한 어떤 것을 지킴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참 양식으로 오신 주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먹음으로(받아들임으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되실 때만 가능합니다 (골2:19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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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밖의 이런 저런 형식과 사람이 만든 전통과 실행(사도신경 암송 등) 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단이니 하는 분들, 아직도 안식일(주일)을 준수해야 하고, 돼지 고기를 먹으면 큰일 난다는 사람들, 자신의 옛사람의 행위를 율법에 근접시킨 후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절대로 주 예수님 자신은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없다(골1:27) 만일 그렇게 말하면 이단이라는 분들, 아버지 하나님은 가까이 하지 못할 빛에 거하심으로 아버지는 절대로 사람 안에 안 계신다는 분들(고후5:19)은 지금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또는 다른 복음에 오염된 사람들 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구약과 신약을 혼동하고, 율법과 그리스도를 섞어 놓았으며,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불가능한 노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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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반대로 참된 복음을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심지어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까지도 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빌3:8). 오늘날에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함으로 갈1:8이 경고한 내용이 그들에게 응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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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간교한 다른 복음에서 구원되고, 매 순간 참 복음인 주님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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