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몸을 위하여
주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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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9 00:00
1.비판하고 비판받는 문제
사람이 비판을 받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일을 하여 비판을 받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시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둘 다 일리가 있지만, 단지 생각이 조금 다르고, 선호가 다르고, 관행이 달라서 오는 이견과 비판도 있습니다. 이 때는 서로 상대방의 다름을 견디든지 아니면 화합을 위해 상대에게 맞춰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믿는 진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서 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양보 할 수 없는 진리를 진리로 선포함으로 오는 비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주 예수님도 성전을 사흘만에 짓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비판을 받으셨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셔서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다 고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참으로 성전을 사흘만에 재건하셨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안식일에도 의식적인 율법의 규례를 깰지언정 손 마른자를 회복시킴이 그분의 본성에 부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길을 갔고, 주님도 그분의 길을 가셨습니다.
‘몸인 교회는 하나이어야 한다’(한교회주의)는 말은 지방교회의 주장이 아니라 주님의 마지막 기도내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성경이 말하는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 뿐입니다. ‘목사님은 성직자이고, 신학을 하지 않으면 평신도이다’(목사제도)라는 사상을 신약 교회 실행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 안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바 대로 ‘복수의 장로들’이 개 교회의 행정을 책임지되, 한 몸 안에서 각 지체들이 머리의 공급과 통제아래서 자신들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존중하는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외부인이 가끔씩 들러서 특별한 공급을 하는 사역적 차원의 예배 외에, 매주 주일 예배에서 특정한 한 사람이 설교하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신에 매주 안식 후 첫 날에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였고, 또한 각 성도들이 주 중에 주님을 누린 것들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모두가 상호적으로 지체의 분량껏 서로 그리스도를 공급했던 것이 개 교회 예배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분량껏 신언(신언) 하여 교회를 건축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성경입니다(고전14:4).
이것을 보았음으로 지방교회들 내부에서 조차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한 두 사람이 설교하던 과거의 기존의 틀을 깨고 모두가 분량껏 설교하도록(신언하도록) 틀을 바꾸어 가지 않는 길을 간지가 30여년 째 입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교계 실행과 많이 다르지만, 이런 실행을 통해 성도들 이전보다는 더 온전케 되었고, 또 앞으로 더 온전케 될 것이라는 소망이 보입니다.
이와 달리 오히려 기존의 교계실행이 더 성경적이고 소망이 있는 길이다 라는 것을 특정교단 교리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들을 설득시켜 주실 분이계시면 언제든지 그 길을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교계의 대다수는 이대로 는 안 되고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불문 하고 너희들은 다수인 우리의 실행과 다르니 이단이다 라고 하시면 그런 비판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거듭남 이후 “공자나 석가처럼 착하다고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온전한 형상이 된 것”을 말씀하시는 총공회 귀한 신앙고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오던 중 일부에서나마 같은 목소리를 들음으로 위안이 됩니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목소리로 고백할 내용입니다.
다만, 진리를 좀 더 깊이 알거나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더 성경적이다 라고 해서 우월감을 보이지 않고,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정도 헤아리며 겸손하고 또 지혜롭게 말하는 자세는 총공회측의 좋은 본으로부터 배울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2.이 날보더 저 날을 낫겨 여김도 몸을 위하여
의식적 계명과 도덕적 계명
구약이나 신약이나 죄인들은여전히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어디를 가 보아도 구약의 규례를 따라 양 잡고 소 잡는 신약 교회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림자가 폐해지고 실재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법인 의식적인 율법이 폐해졌다고 해서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고 우상을 섬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밖의 어떤 제한이 있어서가아니라 신약 백성의 새로워진 본성이 금하는 죄악입니다. 오히려 형제를 향하여 ‘라가’라 하는 것도 구약의 살인에 해당되는 금지된 행동일 뿐입니다. 양 잡고, 소 잡고, 안식을 지키는 구약의 <의식적 계명>의 요구는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의 요구를 거스리는 것을 금지하는
<도덕적 계명>은 신약시대에서 더 강화되었습니다. 둘을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몸을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페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과 그들이 개라고 부르던 이방인들이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도 성경이고, 한 새사람도 성경이지만 후자가 참으로 하나님 마음 속 깊은 곳 안에 있던 갈망입니다. 한 새사람 또는 주님의 몸이 우선 순위입니다. 모든 것들은 이 우선 순위에 저촉을 받습니다.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으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입니다. 부득이 한 사정으로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못해도 여전히 주님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나와 남이 아니라 모두 나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자랑이 될수 없고, 또 정죄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다 몸을 위한 것입니다. 좋은 실행과 좋은 본이 있으면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좋은 본들을 사모하며 최선을 다하여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준수 여부가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이유가 된다면 그렇게 극단으로 간 것이 안식교입니다. 침례를 너무 강조하면 침례교가 되고, 성결을 너무 강조하면 성결교가 됩니다. 새예루살렘 안에는 안식과 침례와 성결의 실재는 차고 넘칠 것이나 ‘안식교’, ‘침례교’ ‘성결교’는 볼수 없을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이 최종입니다. 이 안에 있을 것을 최대한 강조하고 사랑으로 서로 좋은 것을 나누며, 이 안에 없을 것은 점점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 주님의 회복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하신 이 위대한 예언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물질(흠과 점과 주름)도 없이 그분 자신만의 충만인 그분의 몸(교회), 그리고 그 몸의 머리이신 주님자신이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충만히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와 신랑이 서로 안에 거주하는 새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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