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2번 이하 글에 대한 평가를-해명과 평가

3332번 이하 글에 대한 평가를-해명과 평가

주님사랑 0 43



공회교인님, 3332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평가 글입니다. 저의 평가내지는 해명을 요청하신 것으로 알아 부득이 하게 적습니다. '형제'라는 분과 '사회자' 간에 좋은 대화가 이뤄짐으로 그 대화를 잘 지켜 보시고, 제 아래 글은 배경설명 정도로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쟁점1. 아침부흥 책자 내용

“현재 지방교회는 교파의 교회처럼 한 목사님이 설교를 하지 않고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일어나 신언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지방교회는 위트니스리의 책을 월 1회씩 제작을 하여 모든 지방교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으며 지방교회는 그 책을 읽고 공부하여서 그것을 가지고 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여러 주제들을 한 단위로 묶어 하루 하루 묵상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매 페이지 마다 맨 위에 성경2~3구절을 기록하였고 나머지는 위트니스리의 주석으로 전체가 채워집니다.”


 해명 및 평가: 저희는 은사있는 지체들이 예배시간 내내 설교하는 <사역집회>(행20:9)와 예루살렘 각 가정들에서 가졌던 것과 같이 모든 지체들이 상호적으로 말하는 <교회집회>를 구분합니다. 그리고 둘 다 실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집회는 모든 성도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신언(prophecy)을 통해 교회를 건축한다는 성경말씀(고전14:4, 31)에 따라 약 30여년 전부터 매 주일 낮에 갖는 후반부 예배 구조 (전반부는 성만찬)을 대폭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1930년대 워치만 니가 성경에서 본 빛인데 당장은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약 50 년후에 늦게나마 실행한 것입니다.

‘형제’님이 위트니스리 책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쉽게 말해서 이런 용도로 쓰라고 만든 ‘설교준비’ 자료 모음입니다. 즉 예전에 한 사람이 한 시간, 또는 두 사람이 약 30분씩 하던 설교(신언)를 약 3분정도씩 15-20여 명이 나누어 말씀을 증거하고자 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자료입니다. ‘형제’라는 분은 이것을 ‘위트니스리의 책’이라고 표현하셨으나, 사실은 특정 주제와 관련된 <성경구절들 + 요점(개요)+ 해설>로 되어 있습니다. 해설에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기존의 관련 주석이나 책자들을 참고용으로 발췌하여 소개해 놓았습니다. 어떤 지체는 관련 성경본문 자체를 깊이 묵상하고 추구하여 누린 것을 2-3분으로 요약하여 신언합니다. 또 어떤 분은 개요 요약 내용을 또 어떤 이는 ‘해설’ 부분에 발췌된 내용을 자기식으로 소화해서(또는 인용해서) 신언합니다.

현재 상태는 저희가 본 신언집회의 이상과 표준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을 지나오면서 전반적으로 그 ‘틀’은 많이 익숙해졌고, ‘내용들’은 점점 좋아져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만인제사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몸의 지체들이 분량껏 사랑 안에서 스스로 몸을 건축하도록 제도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고전14:4, 엡4:16).

이 분 표현대로라면 이곳에 소개된 설교 자료들을 책으로 펴낸다면 ‘백영희 책’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백영희나 위트니스 리나 모두 허튼 소리 한 것 없고 성경을 풀고 적용하는 길을 제시한 것이지요.


쟁점2. 성경을 보지 않는다.


“이제 제가 지방교회를 생활을 하면서 느낀점을 적어보겠습니다.
지방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성경을 거의 보지 않고 있습니다.(사실 이 문제는 교파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도 모두 신언을 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들은 그냥 일어나서 위트니스리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영안에 살아야 하는데 영안에 살지 못해 매일 실패한다는 간증을 하면서 신언을 마칩니다.”

 해명 및 평가: 본인이 관찰한 것을 근거로 ‘일부’ 성도들은 성경을 보지 않는다고 하니, 그렇게 받습니다. 제 주변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1년 1독 실행도 하고 회복역성경 읽기 실행(RSG) 도 있고, 새벽 집회로 모일 때 두 세 구절들의 말씀들을 깊이 묵상하는 식으로 말씀을 대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통상적인 성경책 말고 저처럼 스마트폰에 있는 성경을 보기도 하고, 설교준비 자료집인 아침부흥 책자에 인용 소개해 놓은 말씀들을 읽기도 합니다. 게중에는 신언을 힘들어 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스스로 폭로되고 부족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진보가 있기도 하고, 여전히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언집회는 분량있는 지체들이 서두와 말미에 어떤 역할을 함으로 균형을 잡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신언을 하도록 권장을 하지만 강제는 없습니다. 얼마든지 숨을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언의 실행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너무나 맞고 분명함으로 대부분은 이런 실행에 공감하고, 본인의 추구경험 또는 부족을 통해 주님을 더 얻고 누리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목사님들의 설교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 드릴 수 있는 제 2의 종교개혁입니다. 과정이 있고 그 결국이 있을 것입니다.


쟁점 3 지방교회의 하락


“지방교회의 하락은 모든 지체들의 기능과 은사들이 모든 교회에 나누어 주는 위트니스리의 책으로 인해 지체들의 기능(성령님의 은사)이 막힌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 저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아도 자신들에게 나누어 주는 책(위트니스리의책)들의 내용은 하나님께 그분의 경륜을 완성하기 위해서 역대로 사용하셨던 신실한 형제들의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이 가진 책이면 모든 것이 족하다고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해명 및 평가: 우선 지방교회들 전반적으로는 신언집회 실행 이전과 이후로 ‘하락’이라고 부를 만한 현저한 특징은 없습니다. 오히려 일부 소수 설교자의 입만 쳐다보고 신앙생활하던 과거습관으로부터 가나안 입성 후 각자 경작하고 수고해야 먹을 것이 있얶던 것처럼, 설교준비(신언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의 체질이 상당부분 전보다 강화되었습니다. ‘형제’라는 분은 ‘위트니스리 책’에 큰 비중을 두어 말씀하셨으나, 사실 아침부흥 책자는 특정주제에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일목 요연하게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 안에 인용된 성구는 적게는 수십개로부터 많게는 100여 개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좀 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성경본문을 참고하고, 또 어떤 이는 씹어 먹이는 부드러운 것을 참고할 뿐입니다.


쟁점4- 마지막 사도

“대부분의 지방교회 성도들은 위트니스리 형제님을 마지막 사도로 알고 있으며 그의 글은 결코 틀릴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가장 높은 계시가 위트니스 리를 통해 주어졌고 그들은 지방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인해 생수의 흐름이 언제나 자신들(지방교회)안에 넘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이 위트니스리 형제에 의해 열려졌다(해석되어졌다) 믿고 있습니다.)”

 해명 및 평가: 우선 위트니스 리 본인은 자신이 ‘브라더 리’로 불리기를 선호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이들은 위트니스 리를 부라더 리로 불렀고 누구도 그를 ‘사도님’ 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나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리 모두 주 안에 형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분들이 가졌던 특별한 분깃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원래 이 <사도성의 문제>는 박만수님도 마찬가지이지만, 성경 66권에 덧붙일 만한 특별계시를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오해함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이 있는데, 성경 66권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이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성경관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 이해에 있어서는 점진적으로 빛이 전진해 왔다는 입장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높은 계시는 ‘믿는 이들이 경배받는 신격에서는 아니나 사람이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총공회를 포함한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말로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는 자체를 이단사유로 꼽습니다. 각자가 본 만큼 반응합니다. 위트니스 리는 성경 66권 전권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관련된 모든 말씀들이 그 안에서 열렸습니다. 사실이 이러하나 이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전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충만한 빛으로 다가오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시비거리가 될 뿐입니다.


쟁점 5- 지방 교회라는 용어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원하심과 갈망이 반드시 지방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원인은 지금까지 위트니스 리의 책들만을 보니 그것에 고정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 해명 및 평가: 외부인들의 오해와 달리 ‘지방교회’는 주님의 몸의 구체적인 나타남입니다. 주님의 몸의 일원이 되는 것은 특정 단체에 속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 어디서든 참된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요3:5).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확신은 ‘성경’의 계시와 믿음 때문이지, ‘특정 성경교사’의 가르침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분량있는 은사자인 특정 성경교사는 성경을 더 확고하게 믿고 이해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성경을 제켜놓고, 특정인만 따름으로 맹종에서 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는 식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매도하는 듯한 표현은 경솔한 것입니다. 6년이 아니라 60년을 함께 있어도 어느 한 지체가 모든 지체들의 상태를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적으로 듣지만 다 아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강한 빛가운데 그 말씀이 깨달아지면 전혀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같은 성막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이는 해달의 가죽의 칙칙함만 볼수 있고, 또 어떤 이는 그 너머 조각목에 씌워진 금빛의 찬란한 영광을 봅니다.


쟁점 6- 라오디게아 교회


“지방교회는 결국 위트니스리의 책으로 인해 주 예수님을 문 박에 세워 두는 라오디케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위트니스리의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방교회는 부자이고 아무것도 부족이 없다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안에 생명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지방교회로 들어와서 회복되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

 해명 및 평가: ‘지방교회’라는 말 자체도 아직 오해가 있으십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확정적인 단정은 누구라도 쉽지 않은 말입니다. ‘위트니스리 책’이라는 본인의 관념만 조금 내려 놓으면 어느 단면만이 아니라 또 다른 면들도 보는 시야가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쟁점7- 생수의 흐름, 모임 단위, 치리문제


“지방교회에서 지방교회를 나가면 생명의 흐름과 생수의 흐름이 중단된다고 계속 가르치고 있어 무엇인가 지방교회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도 감히 지방교회를 나올 생각을 못합니다.

더불어 지방교회는 소수의 무리가 모일 때 결코 교회의 완전함을 체험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지방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소수로 모이면 주님의 임재는 있을 수있지만 교회의 완전한 단위가 될 수 없는것일까요? 지방교회는 몇 성경구절을 가지고 주장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방교회는 마태복음 18장을 들어 교회가 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주장하지만 사실 지방교회에서도 마태복음 18장과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교회의 치리문제)”

 해명 및 평가: 생명수는 정금길 가운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정금길로 비유된 하나님의 본성 안에 생명의 흐름이 있다는 말입니다. 머리와 하나되고 몸의 지체들과 하나될 때 그 안에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되신 주님과 문제가 있거나 다른 지체들과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생수의 흐름이 메마를 수 있음은 생명을 아는 사람들은 숱하게 체험하는 바 입니다. ‘지방교회’를 나가고 들어온다는 말을 하는 자체가 ‘지방교회’라는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방교회는 거듭나면 ‘들어오고’, 죽어야 (물질세계에서는) ‘나가는’ 주님의 몸의 구체적인 표현이지, 워치만니 위트니스리를 따르는 무리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은 온 몸을 가리키지 손가락이나 발뒷꿈만으로 대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소수의 모임’으로 ‘교회의 완전함’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은 ‘손가락 하나’를 만진 후 ‘모든 몸’을 체험했다 는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몸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금방 그 모순이 이해될 일입니다.

‘지방 교회’의 실행은 여전히 각지 사정에 따라 다소 실행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수의 장로들이 한 지역 교회를 다스린다는 원칙이 바뀐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쟁점 8- 소신

“그럼 이제 제가 성경에서 본 주 예수님의 요한복음17장의 기도의 내용과 사도바울의 엡4장의 하나됨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소신것 저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엡 4장은 몸의 하나를 말합니다. 거듭남의 사실과 거주지역의 차이 외에 그 어떤 것을 절대화 한다면 몸을 나눌 수 있음으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참되게 거듭난 지체들을 정죄하거나 배척하면서 성경적인 몸을 세우려 하는 것은, 자기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면서 나는 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 외에 ‘소신’은 소신이니 마음을 열고 들어보면 될 것입니다.

편의상 중복된 것들을 하나로 묶고, 단락을 나누어 해명의 말을 했습니다. 혹시 지나치게 생략하여 항목이 빠졌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면 또 설명드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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