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보충- 소위 지방교회 교회론

마지막 보충- 소위 지방교회 교회론

주님사랑 0 47













반론이 아니라 간격을 좁혀가는 교제이어서 좋습니다. 소위 ‘지방교회 교회론’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아서 말하는 내용들은 서로 알아들었다고 생각됩니다. 몇 마디만 더 보충하고 저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서로 주님 앞에서 본만큼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질문과 의견>

“취지는 다 이해합니다. …저는 이 순간 지방교회의 내부를 저희 경우를 비추어 투시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출발 때부터 주님 앞에 나 한 사람 외에 그 어느 누구와도 함께 간다는 평화의 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희의 노력은 함께 가고 싶으나 외형적 한교회는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고 역사 세계의 오늘 교회는 항상 주님과 단둘만 손을 잡고 가는 십자가의 좁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렇게 걸어가는 사람은 한 세대에 몇명 찾기가 어려울 만큼 대개 심각한 환란이 닥치면 고난의 최종을 넘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보충)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보이지 않는 교회인 주님의 몸은 지방(city) 단위로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에소 볼수 있는 대다수 사례(일부 집 단위 교회 외에)라는 점에서 단호했습니다. 아직까지 그 이상 더 성경적인 대안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교회의 길을 감에 있어서 성경적이라고 생각되는 그 길을 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워치만니 교회니, 회복교회니, 지방교회니 이런 말들은 있을 수도 없고 용납될 수 없는 호칭들입니다. 그냥 교회입니다. 저희들은 <특정 명칭의 교회>에 속했노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기에는 신앙양심 상 허락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어 그리 했음에도 이런 태도가 다른 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훗날 주님 앞에서 저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보충을 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외부에는 ‘한 지방 교회론’이 주의 회복의 교회론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주의 회복의 교회론의 <핵심>은 ‘한 지방 한 교회’라는 소위 지방입장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면일 뿐입니다. 오히려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가 더 주력한 부분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본질적인 방면들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영’,둘째로 ‘단체’의 방면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본질은 금기름이 담긴 금등잔대입니다. 금 기름을 통해 빛나오르는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각각의 밀알들이 으깨져 기름이 섞인 소제입니다. 개인이되 더 이상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한 몸의 일부인 개인입니다. 말씀하신 십자가의 적용과 부활 능력의 적용은 한 개인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워치만니는 이것을 실험용 유리판 위에 떨어뜨린 물방울과 유리그릇에 담긴 물에 비유했습니다.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이기되 머리의 공급과 다른 지체들의 간구가 없다면 그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 6장의 영적 전쟁에 필요한 전신갑주는 몸이 입는 것이지 개인이 다 입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에 필요한 겸허와 온유와 오래참음 그리고 특별히 사랑 안에 서로를 짊어짐은 각각 개인이 각자가 자기 길을 갈 때는 반드시 필요한 미덕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바울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개인의 이김을 위해서가 아니라 몸의 지체들을 돕는데 할애했습니다. 영의 방면, 단체의 방면..이런 것들이 지방입장의 교회론보다 더 깊은 주의 회복의 교회론입니다. 그러나 외부에는 이런 내적이고 본질적인 방면보다는 지방입장(한 지방 한 교회)만 자극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거론되곤 했습니다.

어느날 위트니스 리는 ‘지금부터 (논쟁적으로) 지방입장을 강조하는 사람은 내 동역자가 아니다’ 라고 선포한 적이 있습니다. 계란껍질이 필요하나 더 중요한 것은 힌자와 노른자가 병아리로 부화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 지방입장은 과정이고, 새예루살렘에서는 없어질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병아리가 부화된 후에는 계란껍질은 임무를 다 했으니 버려지는 것입니다. 이 보충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논의된 분량보다 열배 백배의 교제가 더 필요합니다.



: 2. 만인 제사장
:
<의견>
“취지는 다 이해합니다. 만인제사장 교리가 상식임을 인정하시니 대화가 빠르게 진행될 듯합니다. 지금 만인 제사장의 교리를 실행하려고(공회만 빼놓고) 어느 교회든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교인들이 교인들에게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너무 오랜 세월 너무 흔하지 않을까요? “

보충) 만인제사장의 가르침에 대한 주의 회복의 실행은 단지 ‘성직자 제도는 틀렸으니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자’가 아닙니다. 주일날 귀만 가지고 오는 성도들을 말할 입도 가지고 오도록 하는 이 일에서 그리고 관련된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 총공회쪽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실재를 가지고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 그 이상의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제 2의 종교개혁이 진행 중입니다. 이 부분도 한 두 마디로 다 설명하기엔 너무나 큰 주제입니다.


: 3. ‘신언'


<의견>
“신언에 대해서 지방교회가 그런 뜻으로 그렇게 강조하고 시행했다면 지방교회의 개교회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저희 공회는 듣고 존중할 뿐입니다. 신언의 취지와 시행을 지방교회 것이 절대 표준이 되는 것만 저희는 걱정할 뿐입니다. “

보충) 주의 회복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격(person)과 역사(work)> 외에 ‘절대표준’은 없습니다. 실행은 한 면으로 중요하나 그것이 절대가 되면 또 다른 분열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익히 배웠습니다. 한 몸을 추구하면서 실행으로 몸을 나누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 5. 계명을 지킴


<의견>

주일과 십계명에 대해 저희나 지방교회 입장이나 기본적으로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저희가 주일을 강조하게 되면 성경 해석적으로는 평행선을 달리는 반론이 나올 것입니다.

보충) 동의합니다. 저 역시 이런 열린 교제를 오랫만에 나눌 수 있어서 제 영이 시원함을 느낍니다. 마음을 열고 또 낮추어 좋은 것이 있으면 기꺼이 배우기 원합니다. 감사드리며…..






















>> 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1.교회의 하나
: :
: : 해명) 말씀하신 대로 ‘교회가 하나라야 한다.’ 라는 것은 천주교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주님의 몸은 약 4만 개의 교단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것을 원래의 성경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실행’적인 노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즉 그것이 하나되는 전적인 길은 아니지만, 그 교단 명칭 이외의 단체로 분류되는 믿는 이들은 배제시키는 특정 명칭만은 일단 내려 놓고 성경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거듭난 자들-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롬8:9)+ <지역 범위를 딴 명칭>(행14:23, 딛1:5, 행8:1)라는 단순한 진리로 교회와 교회들을 보자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가지 사정으로 당장은 그리할 수 없다면, 그 길을 본 저희들 만이라도 먼저 그 길을 가보겠다는 것입니다.
: :
: :
:
: <질문과 의견>
: 취지는 다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기존 4만개 교회에 지방교회가 중국의 어느 교단에서 나감으로 4만 1개 교파가 생겼습니다. 이 교파가 미국으로 가면서 지방교회 내에도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에 대한 지도성의 비중에 따라 양분되므로 4만 2개가 되었습니다. 몇 곳이 추가되었는지 모르겠으나 탈퇴한 분들의 주장에 의하면 적지는 않을 것같습니다. 내부적으로 균열이 전혀 없다해도 지방교회를 다니다가 나온 분들은 대개 기존 교파에 비판적 교육을 받아 한 가정이 한 교파가 되는 형태로 곳곳에서 4만 2개, 4만 3개의 교회로 핵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
: 한편 지방교회 운동의 성과로 지방교회가 커져감에 따라 타 교파는 교인 이탈로 한 교회내의 분열을 호소합니다. 물론 지방교회는 사망선에서 생명선으로 건너오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저는 일단 외형을 두고 말합니다. 지방교회가 외형적 단일교회를 먼저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 때문에 교파 분열에 앞서 교인분열까지 고려한다면 지방교회의 외형적 한교회론 때문에 지방교회의 역사와 활동에 비례하여 전체 교회의 분열은 교회숫자로나 교회내 분열로 볼 때 분열만 심화시켰습니다.
:
: 교인들을 뺏긴 교회들은 새끼 뺏긴 암콤이 되어 이제는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예단해놓고 이단을 만들려고 마음 먹고 총력을 기울인 모습니다. 처음부터 목표를 이단만들기에 뒀으니 쉽게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제게 보이는 것은 지방교회의 외형 지방교회론 한지방한교회론이 외형적으로 조금도 교파 분열을 개선하지는 못하고 교파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방교회 측에서는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는 늘 가라지와 가만히 들어온 자들과 거짓선지자로 인해 진리 노선을 걷고자 하면 박해가 없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에 외부 비판에 별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역시 외부 숫자와 박해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에 포함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 저는 이 순간 지방교회의 내부를 저희 경우를 비추어 투시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출발 때부터 주님 앞에 나 한 사람 외에 그 어느 누구와도 함께 간다는 평화의 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희의 노력은 함께 가고 싶으나 외형적 한교회는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고 역사 세계의 오늘 교회는 항상 주님과 단둘만 손을 잡고 가는 십자가의 좁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렇게 걸어가는 사람은 한 세대에 몇명 찾기가 어려울 만큼 대개 심각한 환란이 닥치면 고난의 최종을 넘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으로도 교회사로도 저희 경험으로도 주님 동행은 십자가 고갯길의 최후 순간이 문제인데 그 고갯길은 혼자 가는 길이지 동지들이 단체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환란 중에 제일 큰 환란은 가장 가까운 동지들의 배신이며 이탈입니다. 지방교회가 극단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해 보셨다면 외형적 한교회주의라는 것은 애초부터 교훈에서 가능하고, 그리고 주님 오실 때 가능하고, 그리고 역사 교회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단일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목표를 삼아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가시적 한교회주의를 주창하게 되면 이 좋은 의도 때문에 실제로는 지방교회 내부에서나 외부와의 관계가 원래 생각한 것보다 더 악화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 지방교회나 저희는 신앙의 주요 투쟁 대상이 내 몸 밖이 아니라 내 몸 안의 옛사람이지 않습니까? 내가 죽는 날까지 노력해도 내 속에 나 하나의 단일을 성공하지 못해서 피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잘 믿는 사람인데 그런 인간들의 숫자가 수십 수백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면 정말 엄청나게 경쟁력이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그런데 각자 자기 속에 자기를 원수로 삼아 한주간을 죽도록 싸워본 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어떤 예배 모습일까요? 세상 사람이 볼 때도 다정다감하게 육적인 그런 형제애를 가지고 아무 허물없이 하나가 되어 한 몸을 누리고 세계 곳곳의 지방마다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한 주간 자기와 십자가 사활의 전쟁을 벌이다 교회에 함께 모이면 가장 시급한 말씀의 은혜를 구하고 능력을 받아 또다시 한주간의 전쟁을 홀로 치를 때 어떻게 이겨야할지를 두고 긴장하는 것이 바른 자세가 아닐까요? 저는 지방교회를 접하며 워치만니의 글에서는 저희가 믿은 이런 경험을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의 소개나 인터넷에 소개되는 지방교회 교인들의 하나됨을 누리는 사진이나 글이나 모임의 모습을 보고는 전방에서 백마고지 전투를 벌이는데 후방에서는 평화를 누리는 딴세대를 봤습니다. 제가 틀렸기를 바랍니다.
:
: 저희는 역사 어느 한 순간에라도 단 두 사람이라도 한 길을 제대로 간 역사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겉보기에 우선 미봉의 평화는 있었을지라도. 리브가 뱃속에 두 생명이 잉태되었습니다. 한 교회 내에 두 종류의 교인이 없는 교회가 있을까요? 바울 사도 한 사람 속에 두 자아의 투쟁이 끝날 날이 있을까요? 그런데 지방교회는 세계적으로 이미 개인적으로 새사람의 삶으로 행복하고 전체 교인들이 지방단위로 만날 때 웃고 축복하고 서로가 모두 행복하다는 면을 너무 강조하고 있습니다. 워치만니의 치열한 자기 내적 투쟁이 제자들 세대에 세계적으로 다 성공을 한 것일까요? 워치만니의 치열한 자기 내적 투쟁이 제자들 대에 와서는 솜방망이로 대충 버무리고 그냥 좋은게 좋다는 교파가 되었을까요? 저는 두번째 경우라고 의문을 갖습니다. 지금 토론의 글들이 많아지면서 지방교회 내부 자료를 접해갈수록 실망입니다. 공회 교인들은 너무 유치하고 지방교인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넘고 부활의 영광속에 사는 것일까? 공회 교인들은 십자가 부활이 주는 영광을 마련할 오늘 현실에서 자기 십자가에 죽기를 안달하는 복있는 사람들이며 향방을 바로 잡고 싸우는 이들인데 혹시 지방교인들은 매현실에 싸울 전쟁을 잊고 미리 축하연을 하는 것이 아닐까? 워치만니의 글에서는 저희같은 자세가 보여 호감을 가졌으나 정작 최근 소개받은 지방교회 자료에서는 내적 투쟁의 연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WCC보다 더 심한 외형적하나주의를 절대화하고 있습니다.
:
: 나뉘어졌다 해도 조용하면 연구하고 소리없이 배울 수도 있습니다. 지방교회는 교파 전부를 비판하고 교파 전부는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지방교회 때문에 이미 쪼개진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쪼개진 교회들의 거리는 확장일로에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도 지방교회론은 성공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내용적으로는 지방교회론 때문에 여기 총공회 게시판에서도 토론조차 막자며 광분의 소리를 듣습니다. 공회가 소식을 알았다는 말은 교계 전부는 벌써 알았다는 말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 지방교회론을 걸고 지방교회는 분열로 출발을 했습니다. 훗날 분열을 줄이고 하나된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방교회의 이상은 지방교회 운동이 있기 전부터 흔한 것이었습니다. 지방교회는 실제 실행을 해보겠다 하심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행을 했으나 결실은 더 멀어지고 분열만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
: 특정 명칭을 내려 놓고 지방 이름을 땄다고 하셨으나 교회가 있는 지방에는 이미 그 지방 이름을 딴 교회들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들도 한 지방 한교회원칙으로 그 지방에 그들만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그렇지 않다 하다 보니 교파 싸움은 더 심해졌습니다. 통합을 내걸고 분열한 정당들 때문에 통합은 더 멀어졌고 그 통합을 내건 곳의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심하면 심했지 덜한 곳은 별로 못봤습니다.
:
: 행정학에서 공무원 숫자가 증가할 때 한 가지 아이디어로 한 사람을 채용하면 그 사람을 관리하고 감독하기 위해 별도의 공무원을 채용하게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근무하던 직원들이 분담하면 되는 것처럼 기존교회의 내부에서 단일운동을 일으켰다면 나을 뻔했습니다. 지방교회 스스로 그 출발의 취지를 말씀하셨으니 지방교회 내에서 도저히 그냥 보지못하겠다는 분들이 있으면 지방교회의 출발원칙을 적용해서 참지 말고 기다리지 말고 나가서 새로 시작해라 해야 하겠습니다.
:
: 특정 명칭을 내려 놓고 지방 이름을 따려하신 노력에 대해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회복측이라는 표현을 알게모르게 사용하시는데 외부에서 지방교회라고 교파 이름을 붙이는 것은 거부감을 느끼시는 듯하고 회복측을 선호하시면 이미 특정 명칭을 갖게 된 것입니다. 타 교파들도 그 이름의 그냥 '교회'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다가 자기 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사명 때문에 이름이 한가지씩 붙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한번이라도 읽어봤다면 누가 교파이름을 함부로 창설하겠습니다. 성경이 말한 교회, 그 교회로만 있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런 운동이 여기저기 있으니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고 봅니다. 어느나라나 옛날에는 성은 없고 이름만 있었다고 합니다. 남의 이름은 그 교파의 시작의 상황을 무시하고 그 이름만 가지고 매도하고 지방교회측의 회복측 이름은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듯합니다.
:
:
:
: : 2. 만인 제사장
: :
: : 해명) 이 역시 위와 같은 원칙입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이고, 만인제사장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면 그것을 본 저희라도 그 길을 실제로 가보자는 것입니다. 아는 것에서만 그치지 말고, 그 아는 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지요. 물론 세세한 운영 면에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처음에 본 그것이 나중에 바뀐 적은 아직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바꾸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 :
: :
:
: <의견>
: 취지는 다 이해합니다. 만인제사장 교리가 상식임을 인정하시니 대화가 빠르게 진행될 듯합니다. 지금 만인 제사장의 교리를 실행하려고(공회만 빼놓고) 어느 교회든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교인들이 교인들에게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너무 오랜 세월 너무 흔하지 않을까요? 저희는 그런 표현을 해놓고 진리 구별을 무시하고 연애나 하는 꼴이 싫어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요즘 교계가 탈권위주의 때문에 필요한 권위조차 부정하는 정도입니다. 지방교회측에도 따로 한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형제' 호칭을 교리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함께 성경은 우리에게 한 몸도 주셨고 형제 사이도 주셨고 목자와 양떼의 관계도 주셨고 선생과 제자 관계도 주셨습니다.
:
: 지금 우리 사회는 미국사회보다 더 민주화가 되어 사장이 되고 교장이 되었다는 죄 하나만 가지고 큰 죄인 취급을 받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무지몽매하게 탈권위주의 증세가 심각해서 교회 안에서 예전처럼 목사님들이 권위있게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꼭 말하자면 소리없이 수단껏 해먹는 경우입니다. 그런 것이야 예수님 제자들도 그랬으니 지방교회도 없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탈권위적 인식을 강하게 가진 분들이 일반교파 안에서 솔선수범을 했더라면 일반교파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컸으리라고 봅니다.
:
: 가끔 교계 소식을 듣습니다. 형편상 타교회 예배를 드릴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목사가 목사 권위나 기득권 내려놓기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관공서도 금융기관의 대출창구도 그렇습니다. 결혼식의 엄격했던 풍속도도 장난스럽게 바뀌고 있습니다. 시무식에 사장님이 직원들과 목욕탕 회의를 가지면서 격식없이 한 가족이라는 인식을 심으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뒤질세라 아주 우습습니다. 이런 운동이 지방교회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한국의 지방교회는 애초부터 이단 이름으로 거부감 있게 소개되었고 이유를 막론하고 한두가지 소식을 전하면서 왜곡한 것이 많아서 지방교회의 좋은 정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이 게시판에서 지방교회 글을 처음 제대로 읽었습니다. 교회가 세상 따라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를 아니까 만인제사장설이라는 말을 얼마나 해놓았든지 불신 친구들도 써먹고 있습니다.
:
:
:
:
:
: : 3. ‘신언'
: :
: : 해명) 신언을 하고 안 하고가 교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절대기준은 아닙니다. 만일 누가 그런 것을 가지고 ‘교회도 아니다’ 라고 했다면 제가 대신 용서를 구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몸을 건축하는 길을 감에 있어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와 과정 상에서의 부족은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가는 ‘방향’과 그 마지막 ‘목적지’는 그런 이상을 성경에서 발견한 이후 한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즉 혼자 또는 소수가 독점하는 설교단을 모든 교회 구성원들에게 돌림으로 각 지체들이 분량껏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방향’ (엡4:16) 그런 실행을 하는 유일한 목적은 새예루살렘으로 완결될 주님의 몸을 건축하기 위함이다 (고전14:4) 라는 것은 갈수록 더 확신으로 다가올 뿐, 후회되거나 수정이 필요한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된 적은 없습니다.
:
: <의견>
: 신언에 대해서 지방교회가 그런 뜻으로 그렇게 강조하고 시행했다면 지방교회의 개교회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저희 공회는 듣고 존중할 뿐입니다. 신언의 취지와 시행을 지방교회 것이 절대 표준이 되는 것만 저희는 걱정할 뿐입니다. 침례교회의 침례를 저희는 존중합니다. 장로교회의 장로제도를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침례교회가 침례 외에는 안된다고 하시면 드릴 말씀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로 그럴 시간이 없고 침례라야 한다는 분들이 침례를 계속 시행하면서 장로교의 세례를 꾸준히 살피고 비교를 해봤다면 금지하거나 비판할 정도는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유아세례를 하지 않습니다. 또 저희는 장로교회의 장로라는 이름을 맡겨도 장로교회 장로와 그 권위나 신분이나 행사는 아주 다르다 할 정도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저희가 확신을 가질 때는 저희가 그 길을 갑니다. 가면서 성경적인 것은 성경으로, 실행할 때 받은 은혜의 경험이 있으면 좋은 면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려점이 많은 것은 우려로, 금지할 정도면 금지를 위해 생명을 겁니다.
:
: 지방교회도 저희처럼 좋은 것을 많이 시행해봤다고 여겨집니다. 시행해서 좋은 것이 많더라고 소개하는 것과 지방교회의 시행을 절대기준으로 제시하는 것만 구별하면 어느 교회도 정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방교회의 여러 장점을 지방교인들이 좋다고 소개하면서 한교회주의 교리처럼 교리적인 것으로 강조한 것은 지방교회가 먼저 노력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님께서 사과표현까지 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칠 부분이 없는 교회가 있겠습니까? 자기 속한 교회의 단점을 먼저 지적받고 먼저 공개하고 먼저 고치려고 달려가는 교회가 단일교회에 합치되는 부분이 제일 많다는 것이 백목사님 가르침입니다. 서로가 자기 틀린 것을 고치는 만큼 전체 단일교회에 가까와지는 것이고, 그런 목적으로 서로를 지적한다면 빠르게 하나가 된다고 봅니다. 1989년 8월 7일 월요일 밤부터 한 주간동안 백 목사님의 순교 2주간을 남겨둔 마지막 집회가 있었는데 제목은 교회론이었습니다. 내용은 단일교회였습니다. 저희가 평생 배운 것이 그렇고 마지막에 배운 것도 그러했기 때문에 지방교회 한지방한교회주의에 대해 이질감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
:
:
:
: : 5. 계명을 지킴
: :
: : 해명) 구약에서는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고 해서 돌로 쳐죽인 장면이 나옵니다(민15:35). 그러므로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일성수 안 하면 돌로 쳐죽이자 라는 율법적인 의미만 아니라면,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김’은 성경이 허용하는 바 입니다.
:
: <의견>
: 구약은 육체적 이스라엘이어서 쳐죽이는 것도 포함하나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내 속에 내 옛사람을 내 손으로 쳐 죽이는 시대고 남이 계명을 어긴다면 그 사람에게 계명을 전해 주어서 그 사람의 옛사람은 그 사람 손으로 쳐 죽이는 시기일 것입니다.
:
: 주일과 십계명에 대해 저희나 지방교회 입장이나 기본적으로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저희가 주일을 강조하게 되면 성경 해석적으로는 평행선을 달리는 반론이 나올 것입니다. 지방교회 외에 타 교회와는 평행선을 달려본 적이 없습니다. 논쟁할 것도 없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일을 지키지 않게 된 것은 돈벌고 세상에 빠져 놀러다니려고 바뀐 것입니다. 지방교회는 출발 처음부터 계명에 대해 유연했고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면 지방교회와 더불어 할 말은 우리의 시행 하나뿐입니다. 저희는 교계에서 유일하게 주일을 단체로 지키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 나올 때부터 전력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체험한 것은 순생이며 순교로 이어질 능력들을 받은 증거들입니다. 국내 교단에서 가장 고난에 강한 교회입니다. 저희 증거는 주일을 강조해 보면 안다고 말합니다. 저희 간증이고 설교가 되니 여기서 그칩니다.
:
:
: 좋은 분과 좋은 대화를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대화만 해도 정죄하겠다고 벼르는 분들이 여기도 많습니다. 운영자도 이미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듣겠다는 자유도 없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고 하셨는데.
:
:
:
:
:
: :
: :
: :
: :
: :
: : >> 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
: : : 교회가 하나라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교회가 도대체 있을까요? 천주교도 교회는 하나라 하지 않을까요? 교파마다 자기만 옳다고 하고 지방교회도 자기만 옳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모두가 교회는 하나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가 하나라는 말을 지방교회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착각일 것 같습니다. 한지방의 지방을 가로세로 몇키로라고 지방교회가 재놓은 것이 혹시 있을까요?
: : :
: : : 목사제도의 잘못을 말씀하신 것은 만인제사장제를 부정하는 교회가 거의 없으니 예를 잘못 든 것같습니다. 만인제사장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 잘못이 아니고 그 교회 운영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지방교회도 교회 운영에 문제는 없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 : :
: : : 지방교회는 매주 안식 후 첫 날에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였고, 또한 각 성도들이 주 중에 주님을 누린 것들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모두가 상호적으로 지체의 분량껏 서로 그리스도를 공급했던 것이 개 교회 예배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분량껏 신언(신언) 하여 교회를 건축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성경입니다(고전14:4)라고 하셨는데 우선 '신언'이 성경에 나오는 단어일까요? 성경에 이런저런 뜻을 모으면 신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시겠지요? 다른 교회에게는 성구를 딱 들이대 봐라 하고 지방교회가 사용하는 단어나 제도는 장황하게 설명을 하려한다면 양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적용한 배려와 배경은 남에게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일에는 성찬을 그리고 주 중에는 이 집 저 집에서라고 하셨는데 행2:46은 날마다 성전에서 모입니다. 어느 성구는 꼭 그대로 하고, 어느 성구는 그 말씀의 뜻을 따르고 다르게 적용을 하실까요?
: : :
: : : 30년전부터 신언을 해 오셨다... 그전에는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현재 다른 교회가 신언을 하지 않아도 틀렸다 그래 말씀하는 것보다 우리보다 속도가 좀 늦은가보다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방교인들은 신언을 하지 않으면 교회도 아니다 목사 혼자 말을 하라는 성경이 있는가? 라고 합니다. 또 반문합니다. 위트니스 글만 인쇄해서 나눠보고 그 글만 가지고 신언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옵니까? 설명을 할수는 있겠지요. 설명을 많이 하셔야 하겠지요. 타 교회들도 할말은 많지 않겠습니까? 남 말은 들을 것도 없고 내 말만 들으라... 그런 식은 지방교회를 정죄한 최모 목사님과 같은 분들의 논리입니다. 최 목사님도 가혹한 분이라 보이는데 여기서 지방교회 글을 읽으면서 너무 가혹하다 너무 극심하다 남말은 들을 것도 없고 지방교회 말만 장황하게 들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방교회에는 '목' '사'라는 두 글자를 합해 놓은 직책은 인정하지 않으나 '형제'라는 이름을 가진 분의 입으로 나온 것만 세계 모든 교인들이 항상 반복해야 한다면 천주교 교황이라고 비판을 받을 듯합니다. 그런 은혜의 세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타 교회의 목사제도를 비판하기 때문에 같은 논리로 지방교회에 적용해 봤습니다. 글이 길어지다 보니까 마치 일반교회 입장에서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것처럼 되었는데 이 점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희 교단은 '목'과 '사'라는 글자를 붙여서 사용은 해도 일반 목사와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일반교회도 원래 목사제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더군요.
: : :
: : : 지방교회도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앞으로도 또 세월이 지나가다보면 오늘을 돌아보면서 그 때는 시행착오라고 할 가능성은 있겠지요. 제눈에는 많이 보입니다. 운영자가 막지만 않으시면 지방교회의 성구 인용을 무척 많이 반증하고 싶은데 한번 시작하면 분량이 너무 많아질 것같아서 그냥 몇 말씀만 드립니다.
: : :
: : : 4계명은 6계명과 묶어 놓으면 더듬을 것도 없이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십계명은 신약인 마19:17에서 지키라 했으니 별론이 필요없을 듯하고 4계명은 골2:16과 히4:8에 의해 주일로 날자만 바꾸어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구로 갈 것도 없이 신언을 실제 해봤을 때 지방교인들이 은혜를 받는 면이 특별하다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십계명과 주일은 지켜본 사람들이 지킴으로 받는 복이 있고 특별한 은혜의 세계가 있어 이제 설명한 성구 근거와 함께 그 근거제시가 옳다는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끝으로 워치만 니의 경우 주일에 바쁘면 평일처럼 그렇게 사셨을까요? 오랜 된 분이어서 기록이 잘 남아 있지 않다면 위트니스 리의 주일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저희 신앙체험상 상대방의 신앙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를 주일로 보통 생각합니다. 주일 문제가 없으면 제 경험상 세상을 살면서 복음 때문에 좁은길이나 고난을 겪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
: : : :
: : : : 1.비판하고 비판받는 문제
: : : :
: : : : 사람이 비판을 받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일을 하여 비판을 받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시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둘 다 일리가 있지만, 단지 생각이 조금 다르고, 선호가 다르고, 관행이 달라서 오는 이견과 비판도 있습니다. 이 때는 서로 상대방의 다름을 견디든지 아니면 화합을 위해 상대에게 맞춰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믿는 진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서 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양보 할 수 없는 진리를 진리로 선포함으로 오는 비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주 예수님도 성전을 사흘만에 짓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비판을 받으셨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셔서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다 고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참으로 성전을 사흘만에 재건하셨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안식일에도 의식적인 율법의 규례를 깰지언정 손 마른자를 회복시킴이 그분의 본성에 부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길을 갔고, 주님도 그분의 길을 가셨습니다.
: : : :
: : : : ‘몸인 교회는 하나이어야 한다’(한교회주의)는 말은 지방교회의 주장이 아니라 주님의 마지막 기도내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성경이 말하는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 뿐입니다. ‘목사님은 성직자이고, 신학을 하지 않으면 평신도이다’(목사제도)라는 사상을 신약 교회 실행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 안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바 대로 ‘복수의 장로들’이 개 교회의 행정을 책임지되, 한 몸 안에서 각 지체들이 머리의 공급과 통제아래서 자신들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존중하는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외부인이 가끔씩 들러서 특별한 공급을 하는 사역적 차원의 예배 외에, 매주 주일 예배에서 특정한 한 사람이 설교하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신에 매주 안식 후 첫 날에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였고, 또한 각 성도들이 주 중에 주님을 누린 것들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모두가 상호적으로 지체의 분량껏 서로 그리스도를 공급했던 것이 개 교회 예배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분량껏 신언(신언) 하여 교회를 건축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성경입니다(고전14:4).
: : : :
: : : : 이것을 보았음으로 지방교회들 내부에서 조차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한 두 사람이 설교하던 과거의 기존의 틀을 깨고 모두가 분량껏 설교하도록(신언하도록) 틀을 바꾸어 가지 않는 길을 간지가 30여년 째 입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교계 실행과 많이 다르지만, 이런 실행을 통해 성도들 이전보다는 더 온전케 되었고, 또 앞으로 더 온전케 될 것이라는 소망이 보입니다.
: : : :
: : : : 이와 달리 오히려 기존의 교계실행이 더 성경적이고 소망이 있는 길이다 라는 것을 특정교단 교리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들을 설득시켜 주실 분이계시면 언제든지 그 길을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교계의 대다수는 이대로 는 안 되고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불문 하고 너희들은 다수인 우리의 실행과 다르니 이단이다 라고 하시면 그런 비판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 : :
: : : : 다행히 거듭남 이후 “공자나 석가처럼 착하다고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온전한 형상이 된 것”을 말씀하시는 총공회 귀한 신앙고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오던 중 일부에서나마 같은 목소리를 들음으로 위안이 됩니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목소리로 고백할 내용입니다.
: : : :
: : : : 다만, 진리를 좀 더 깊이 알거나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더 성경적이다 라고 해서 우월감을 보이지 않고,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정도 헤아리며 겸손하고 또 지혜롭게 말하는 자세는 총공회측의 좋은 본으로부터 배울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 : : :
: : : :
: : : : 2.이 날보더 저 날을 낫겨 여김도 몸을 위하여
: : : :
: : : : 의식적 계명과 도덕적 계명
: : : :
: : : : 구약이나 신약이나 죄인들은여전히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어디를 가 보아도 구약의 규례를 따라 양 잡고 소 잡는 신약 교회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림자가 폐해지고 실재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법인 의식적인 율법이 폐해졌다고 해서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고 우상을 섬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밖의 어떤 제한이 있어서가아니라 신약 백성의 새로워진 본성이 금하는 죄악입니다. 오히려 형제를 향하여 ‘라가’라 하는 것도 구약의 살인에 해당되는 금지된 행동일 뿐입니다. 양 잡고, 소 잡고, 안식을 지키는 구약의 <의식적 계명>의 요구는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의 요구를 거스리는 것을 금지하는
: : : : <도덕적 계명>은 신약시대에서 더 강화되었습니다. 둘을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 : : :
: : : :
: : : :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몸을 위하여
: : : :
: : : :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페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과 그들이 개라고 부르던 이방인들이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도 성경이고, 한 새사람도 성경이지만 후자가 참으로 하나님 마음 속 깊은 곳 안에 있던 갈망입니다. 한 새사람 또는 주님의 몸이 우선 순위입니다. 모든 것들은 이 우선 순위에 저촉을 받습니다.
: : : :
: : : :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으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입니다. 부득이 한 사정으로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못해도 여전히 주님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나와 남이 아니라 모두 나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자랑이 될수 없고, 또 정죄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다 몸을 위한 것입니다. 좋은 실행과 좋은 본이 있으면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좋은 본들을 사모하며 최선을 다하여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준수 여부가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이유가 된다면 그렇게 극단으로 간 것이 안식교입니다. 침례를 너무 강조하면 침례교가 되고, 성결을 너무 강조하면 성결교가 됩니다. 새예루살렘 안에는 안식과 침례와 성결의 실재는 차고 넘칠 것이나 ‘안식교’, ‘침례교’ ‘성결교’는 볼수 없을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이 최종입니다. 이 안에 있을 것을 최대한 강조하고 사랑으로 서로 좋은 것을 나누며, 이 안에 없을 것은 점점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 주님의 회복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하신 이 위대한 예언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물질(흠과 점과 주름)도 없이 그분 자신만의 충만인 그분의 몸(교회), 그리고 그 몸의 머리이신 주님자신이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충만히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와 신랑이 서로 안에 거주하는 새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 : : :
State
  • 현재 접속자 190 명
  • 오늘 방문자 4,208 명
  • 어제 방문자 7,170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94,936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