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수님 글의 출처 부탁
주님사랑
0
34
2013.01.17 00:00
죄송하지만 '형제'님이 인용하신 박만수님의 글의 출처를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다름이 아니라 그 글이 끝인지 아니면 그 뒤에 다시 반박 내지는 해명성의 글이 이어진 것인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박만수) "5.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하고, 그냥 하나님의 교회 하고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고린도에 있으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서울에 있으면 서울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아닙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려고 위 글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그냥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이 다를까요? 범위가 다릅니다. 즉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고린도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행정이 미치는 범위가 다릅니다. 즉 고린도 교회에서 이러 저러한 것을 하기로 장로들이 결정한 내용들을 지구 상의 모든 교회들이 다 실행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결정은 오직 그 지역교회에만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를 박만수님이 분별하지 못해서 저런 표현을 썼다고 보지 않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있더군요. 연관이 있는 것같아 참고로 소개드려 봅니다.
참고로 '형제'님이 소개해 주신 글을 쓰신 박만수 님은 본인의 언행의 불일치와 금전문제 등으로 현재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말을 아낍니다.
(신언과 그영 등에 대한 추가 글은 준비 중입니다.)
----------------------------------------------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일까요?
저는 이런 논의가 일어나게 된 근본원인이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잠정 결론을 얻었습니다.
1.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 이런 저런 다양한 이슈들이 거론되고 또 토론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색깔과 논조와 내용은 그 말한 사람의 구체적인 나타남에 불과합니다. 즉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고 주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나 말하는 태도와 매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도 적지 않은 세월동안 비록 인터넷 세계를 통해서지만 박만수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장점도 많으시고 성경도 많이 아시고 제가 배울 것이 많으신 분임을 인정합니다. 어떤 환경의 시련을 거치시는 동안 전보다 더 깍이고 원만해지신 면도 너무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오랫동안 세월을 지나면서 조성된 존재 자체는 금방 딴 사람으로 확 바뀌는 것이 아님을 역시 보게 됩니다.
외람되게 말씀을 드린다면 박만수님의 현재의 최대의 약점은 실제적으로 대등한 수준에서 동역하거나 이끌어 주고 조언해 주고 때론 책망하고 교정해 줄 수 있는 보다 더 성숙한 스승 내지는 영적 선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성경이나 역사상 과거 인물로부터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비록 진리의 영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서 전진하신다고 하지만 어떤 부분은 진리의 영님도 어쩌지 못하시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의 압력과 좌절과 주변 지체들의 걸리적거림과 성가시게 함 등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종의 가시들은 박만수 님을 공격하거나 괴롭히려거나 사역을 방해하려고 달려든 세력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셔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실제적인 교회생활 안에는 아비도 있고, 청년도 있고, 영적 어린아니도 있으되 박만수 님이 스스로 그렇게 만드신 교회생활 환경 속에서는 박만수 님을 능가하는 영적 선배가 없으십니다(서울교회나, 영월이나 이곳 안티오크 홈을 찾는 분들은 박만수 님의 도움과 공급을 받는 분들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요?
(지금부터가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주님의 몸 안에 박만수 님 만한 다른 지체가 없어서 일까요? 박만수 님을 온전케 할 영적 스승이 없어서 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박만수 님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주님의 긍휼로 저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또 실제 생활 중에 저와 동등한 입장에서 동역하거나 저를 영적으로 이끌어주고 온전케 해 주실 적지 않은 몸의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왜 박만수 님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없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박만수 님이 자기를 도울만 하려면 예수님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높은 기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아무리 몸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했다 할지라도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흠이나 헛점이 있다면 가차 없이 그것을 지적하고 공격하여 무시하고 거리를 두시다보니(박 형제님은 이것이 자신의 은사라고 까지 표현하셨지요), 결국 자기 혼자만 달랑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을 그래도 좋아하고 귀히 여기는 따르는 분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이것은 박만수 님의 일종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판단력' 그리고 '끊고 맺는 것을 분명히 하는 좋은 기질'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박 만수님은 문장력까지 있으시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것들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새 사람의 성분은 아직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관찰에 의하면(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여전히 <박만수님의 똑똑한 옛사람>(롬6:6)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으되(행7:22),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며, 다만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과 갈라서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습니다(출2:12, 15). 지금까지 호의를 가지고 박만수 님 주변을 맴 돌다가 사라졌던 수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박만수님이 그렇게 된 것은 그분들에게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여전히 어둠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만일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어쩌면 주님은 박만수 님의 이런 (천연적으로) 똑똑한 방면들을 '광야 40년의 허비'로 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하신 다음에야 다시 그것을 들어 귀하게 쓰실 수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몸 안의 생활에서 참된 영성은 다른 지체들과 하나로 건축되고 동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소위 영적 거인들은 다 이러한 참된 동역에 실패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관계>를 귀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지금 상태로는 박만수 님은 매사에 너무 자신감이 넘치십니다. 그리고 너무 자기확신(독단)이 강하십니다. 예리하시고, 논리적이고, 상대방의 약점을 단번에 잡아내고 자신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순발력 있게 반박하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아마도 토론이나 말싸움에서 남에게 밀려보신 적이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람 눈에는 참으로 좋은 장점입니다. 그러나 환도뼈가 부러진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박만수 님에겐 지금의 이런 모습보다 야곱(이스라엘)의 절름발이의 모습(창32:31)이 더 성숙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권면을 제가 할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도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 권면하고 받는 특권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매우 죄송합니다. 저도 여전히 이런 말을 할 때 주님의 보혈을 힘 입어야 하는 약한 자에 불과합니다.
2. 현안이 된 진리항목들에 대해
현재 '사도문제'나 '지방입장' 이런 것들이 이슈가 되어
그외에 불 필요한 영역까지 얽혀든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만일 저라도 '워치만 니에 대해서 무엇이 문제냐'라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았다면 어떤 자신의 관점을 말했을 것입니다. 또 각자가 자기 관점이 있게 마련이고 워치만 니도 그냥 주 안에 한 형제임으로 얼마든지 어떤 평가 아래 놓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진리나 사실만을 말하고 자신의 주장을 절대화 해서 남을 지나치게 폄하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요?).
즉 1) 사도문제는, <나는> 워치만 니와 입장을 달리해서 계시록의 사도요한을 끝으로 더 이상 사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지방입장에 대해 워치만 니는 매우 강조했으나 나는 그런 지역교회는 불 필요하고, 거듭난 모든 성도들을 다 포함한 우주적인 교회(마16:18)면 족하다고 본다. 정도면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박만수 님은 이에서 더 지나쳐서 우주교회 지방교회를 나눈 것은 (1)(성경엔 근거가 없고) 다만 '워치만 니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2) 그런 구분은 필요도 없고, (3)오히려 그렇게 구분하면 위험하다 는 식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 몇 개의 교회가 있느냐는 저의 질문에 대해 하나의 교회가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둘이나 셋이 아니라 단 하나의 교회가 있다는 박만수님의 답변은 어디에 근거한 것이란 말입니까?
또한 박만수 님은 자신이 '서울성경교회의 장로'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자신이 서울에 하나 뿐이라는 그 교회의 장로란 뜻인지, 그렇다면 그런 서울교회 내에 또 다른 장로는 누구 누구인지 답변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박만수 님은 '서울성경교회'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그 무리의 장로이실지는 몰라도, 서울에 하나뿐인 그 서울교회의 장로는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곰곰히 생각해 보다면 박만수님의 주장과 논리가 사실과 다른 기초에 근거하고 있음이 금방 드러나고 맙니다. 즉 박만수 님의 공급아래 있는 '서울성경교회'가 사실상의 하나뿐인 '그 서울교회'와 동일개념이거나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박만수 님은 서울에 하나뿐인 그 서울교회의 장로가 아닌 것입니다. 둘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사례와 어긋난 실행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이렇게 자기 확신에 근거하여 상대방을 불필요하리만큼 코너로 몰아부치는 식의 글쓰기가 반복되는 것은 박만수님의 오랫동안의 천연적인 조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늘 님의 그런 처신이 상대를 자극하고, 상하게 하고, 마음을 닫게 하고, 마침내 등을 돌리게 하고 있음을 박만수 님만 그렇게 심각하게 깨닫지 못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부분만 잘 다듬으실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켜 보고 있다가 1) 사도문제는 여전히 다툼이 있는 주제 라는 정도로 놔 두면 어떤가? 2) 교회와 지역교회들 구분은 성경의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성경의 사실들이지 어느 개인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또한 그렇게 우주교회와 지역교회를 구분해야 할 이런 저런 필요가 있다 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이런 과정에서 박만수님을 실레로 들은 것이 지나쳤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것이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면 저는 지금이라도 이 문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사도>니 <지방입장>이니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중심진리"가 아닙니다. 즉 여러 분들이 오해하시듯이 소위 (지방)교회가 그 진리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것들은 중요하되 지엽적인 진리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경륜' '분배' '그리스도' '그분의 인생, 죽음, 부활, 승천' '생명주는 영' '그리스도의 몸' '왕국' '일곱영(이기는자들) '새예루살렘' '생명' '생명의 성장' '참되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실제적인 길' '신언'....이런 것들을 아주 많이 관심합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남들이 악의적으로 묘사한 '지방교회'나 본인들이 잠시 단편적으로 체험한 '지방교회'가 '그 지방교회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니까 대화에 간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 주님, 어떻게 하면 이런 간격이 제해질 수 있을런지요? 당신을 앙망합니다.
:펼쳐져 있는 미국에서만도 30여 년 간 성경 해석에 헌신하고 주님의 몸과 몸의 지체들을 섬겨왔던 분입니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된 신구약 전권에 대한 주석서 《라이프 스타디》와 함께, 광범위하게 보급된 신약 회복역 성경의 주석을 썼으며, 기독론에 대해서만도 71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그리스도론, 한국복음서원, 1991년 발행) 집필한 바 있습니다. 만일 논문 작성자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언급한 모든 구절을 총망라하여 그에 대한 해설과 견해를 담아 놓은 이 책을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읽어만 보았던들, 자신의 논문의 가치와 신뢰성에 치명적인 흠집들을 내어 버린 그러한 성급한 판단과 심각한 오류들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
: :
: : 원칙적으로 위트니스 리는 칼케돈 신조가 정의하는 내용의 기독론을 믿습니다 (각주1). 이 말은 그리스도가 참된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같은 참된 사람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분의 한 인격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구별은 되지만 혼잡되거나 분리됨 없이 존재하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구별’하여 말한 것을 가지고 ‘철학적 이원론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도리어 양성의 구별 가능성 자체들 부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 :
: :
: : 또한 창조주이신 그분의 신성을 거룩하게 보고 사람의 인성을 그것과 차별화한 것에 대하여 '인간이 하나님보다 열등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원론에 물든 영지주의자다’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논문 작성자의 신학적 이해 및 텍스트 독해 수준을 의심하게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관점 또한 ‘피조물인 사람(인성)은 창조주인 하나님(신성)보다 열등하지 않고 대등하다’는 주장으로 비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더욱이 논문 작성자는 "예수님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도 신성하다“라고 주장함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른 인성을 가진 참 사람이 아닌 분이라는 인식이 엿보이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 :
: :
: : 그러므로 어떤 것을 평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말한 전체 내용 중에서 문맥과 방향성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만 떼어내어 그것을 상대방의 입장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더구나 그것에 임의로 비판을 가하고 혐의를 씌우는 것은 모든 연구자들이 극복하고 버려야만 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혼합'(mingling)되었다는 말 역시 두 요소가 합해져서 제 3의 본성을 산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 :
: :
: : 각주1) 위트니스 리 주석, 신약 회복역 성경(RcV) 요 1:14 각주 2 (flesh에 대한 각주) 참조하십시오.
: :
: :
: :
: : (2) (지방)교회 측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거론하게 된 배경
: :
: :
: : (지방)교회 측(위트니스 리)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과 인성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성경과 칼케돈 신조의 허용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은 난해한 성경 본문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매도할 것이 아니라 과연 아래 해당 본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함께 연구하고 또 기도로 가져갈 수 있기 원합니다.
: :
: :
: : a) 사도행전 13:33 :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문맥을 볼 때 여기서 말한 '오늘’은 성육신이 아닌 주 예수님의 부활의 날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21이 말하는 '아들을 낳으리니’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심으로 '하나님-사람’이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부활의 날에 하나님의 아들로 재차 낳은 바 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 :
: :
: : b) 로마서 1:3-4 :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이 본문도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인성)와 '성결의 영’(신성)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구분 자체가 소위 철학적 이원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 본문에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이 부활 후 '인정되신 것’(호리조, 3724)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 :
: :
: : c) 고린도전서 15:45 하 :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위 본문에서 <마지막 아담>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 분이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라는 구절은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 :
: :
: : d) 로마서 8: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아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 전부터 삼위의 제 2격으로서 '독생자’(요1:14, 18, 3:16, 요일4:9)이신 그분이 언제, 어떤 연유로 많은 영적인 형제들을 가진 것을 함축하는 '맏 아들’의 지위를 얻으셨습니까?
: :
: :
: : 위 질문들에 대한 (지방)교회의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시 '예수님의 신성'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되, 그분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이 부활 후 '영화롭게 된 인성‘(빌3:21)- '거룩하게 된 인성‘ 혹은 '높여진 인성‘ (uplifted humanity)-이 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각주 2). 이것이 위 본문 중에 나오는 '오늘 너를 낳았다'(행13:33),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1:4),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맏아들이 되셨다'(롬8:29)는 부분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 후 신성도 인성도 아닌 소위 '제 3의 본성’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며, 인성을 그대로 유지하되 고린도전서 15:44이 말하는 '신령한 몸'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 :
: :
: : 각주 2) 위트니스 리 주석, 신약 회복역 성경(RcV), 롬 8: 29 각주 4(Firstborn에 대한 각주) 참조 하십시오.
: :
: :
: : 이러한 진리 항목들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교사들 중에서 이 주제에 대해 주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개혁 신학 쪽에서는 화란 개혁교회 총회장을 6번이나 역임한 바 있는 앤드류 머레이 (각주 3)가 그의 저술 '그리스도의 영’에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즉 그는 부활 후 영화롭게 된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켜 '새로운 거룩한 인간성’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신성과 부활 후의 인성을 함께 묶어 이르기를 '신인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이라고 말했습니다(각주 4). 이 점은 그 영에 대한 부분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
: :
: : 각주3) http://www.semvit.org/left_sub03-1_content.asp?id=5642&page=1
: :
: :
: : 각주4) 앤드류 머레이 (임석남 번역), 그리스도의 영(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43p) 참조하십시오.
: :
: :
: : 결론적으로, 위트니스 리를 포함한 (지방)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별되시되 분리되거나 제 3의 본성을 가지지 않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사람이신 이 분이 부활 후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은 그분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이 썩지 않는 신령한 몸(고전15:44)이 되신 것을 함축하며 우리는 이러한 분을 구주와 생명으로 믿고 영접함으로 거듭납니다. 부활시 예수의 인성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라는 문제는 우리가 영접한 분이 누구인가와 관련하여 매우 깊이 있는 주제입니다.
: :
: :
: :
: :
: : 2. 그 영에 대하여
: :
: :
: : 1) 논문 작성자의 비판 요지
: :
: :
: : (지방)교회측은 사도들의 가르침 pp. 17-18에서 "'그영'(the Spirit)이란 칭호는 간단하지만 이 칭호의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그 영은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이시다(요7:39). 예수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그분이 영광 받으신 후에 그영이 거기 계셨다." 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존재하고 계셨음을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이들은 본문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성령의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사역으로 미뤄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는 삼위일체의 구조 속에서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 영'이라고 할 때는...포괄적 의미의 성령을...부활이라는 것을 통해서 완성된 하나님으로 본다...구약(출3:13, 삿3:10, 욥33:4)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을 불완전한 영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니케아 고백 " The Lord and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Son, who together with the Father..."에서 "who together"라는 말에 저촉된다.
: :
: :
: : 2) 비판에 대한 반박 또는 해명
: :
: :
: : (1) 개괄적인 반박 :
: :
: :
: : (지방)교회측이 히브리서 9:5의 '영원하신 성령'이란 말씀에 따라 영원 전부터 성령님이 계셨음을 확고하게 믿는다는 점은 이미 밝혔습니다. (지방)교회 성도들이 성령 사역을 예수의 사역 이후로 미뤄버리는 잘못을 했다는 지적도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아울러 마태복음 3:16-17을 근거로 성부, 성자, 성령님이 '동시에 함께' 계심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각주 5), 위 니케아 고백 중 'who together'라는 말에 저촉된다고 하는 것은 그 근거가 없습니다. 아울러 <존재론적인 삼위일체>에 있어서는 성부, 성자, 성령은 이미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으로 (지방)교회가 썼다고 비판하는 '완성된'이란 말뿐 아니라 논문 작성자가 선호하는 '완성이신'이란 표현조차도 성령 하나님과 관련하여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
: :
: : 그렇다면 왜 성경은 요한복음 7:39에서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라는 말을 했을까요? 이 구절에 대한 논문 작성자의 혼돈은 성경이 말하는 '영' 또는 '그영'은 무조건 <제 3격만의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항목을 달리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 :
: :
: :
: :
: : 각주 5)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동시에 함께 존재하심에 대해서는, 위트니스 리, 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년 발행) 304-305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 :
: :
: :
: : (2) 문제가 된 요한복음 7:39의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셨더라'의 바른 의미
: :
: :
: : 먼저 관련 성경본문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 :
: :
: :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But this spake he of the Spirit, which they that believe on him should receive: for the Holy Ghost was not yet given, because that Jesus was not yet glorified(KJV)).
: :
: :
: : 위 구절은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점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 :
: :
: : a) 위 구절을 단순히 <삼위일체의 제 3격인 성령님을 말하는 구절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위 성경 본문 자체가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위 본문은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않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제 3격 성령>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으로 어느 때 어떤 이유로건 '아직 계시지 않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언뜻보면 이상해 보이는 이러한 성경본문 자체를 정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
: :
: : b) 성경 번역자들은 이런 모순을 인식했는지 원문에 없는 '저희에게'(영어 성경은 'given')라는 말을 삽입하여 성도들 안에 아직 성령(그영)이 안 계신다는 의미라고 풀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소개할 앤드류 머레이의 지적처럼 이러한 임의적인 문구 삽입은 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크게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문대로 '그영이 아직 안 계신다' 라고 읽고 그 바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 :
: :
: : c) 위 본문은 '그영이 아직 안 계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지 못한 것'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관계를 각각 구별도 되고 분리되기까지 하는 세 하나님들(삼신론)로 보아서는 안 되며, 삼위는 각각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으신 분들로서 구원의 경륜을 함께 통과하셨다고 성경대로 삼위일체를 믿을 때 비로소 이 구절을 이해하는 기초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전제 하에 우리는 과연 삼위 중 누가 성육신 하셨는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
: :
: : 보통은 삼위 중 제 2격이신 아들 하나님이 성육신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요1:14).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 안에는 '구별되나 분리될 수 없는 성부와 성령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9절은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라고 말함으로써 신격의 일부인 제 2격(성자)만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을 포함한 모든 신격이 아들 안에서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으나 그렇다고 분리되시지도 않는 상태'로 육체를 입었음을 말합니다(각주 6).
: :
: :
: : d) 이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때'는 언제이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검토 할 차례입니다. 누가복음 24:26에서 주님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영광에 들어간다'는 말은 눅24:46, 고전15:43상, 행3:13상, 15상, 빌3:21에 근거해 볼 때, 예수님의 부활 시에 그분이 성육신 때 입으셨던 육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형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으로서의 주 예수님(제 2격)은 본질상 원래부터 영이시지만(요4:24), 그분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사람의 부분)은 죽음과 부활을 거치시면서 '영광의 몸'이 되셨고 결과적으로 그분의 신성과 인성 모두가 영, 즉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5:45 하반절이 말하는 이러한 생명주는 영이 바로 요한복음 7:39이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아니하신고로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한 말씀이 가리키는 '그영'인 것입니다.
: :
: :
: : e) 따라서 요7:39이 말하는 '믿는 자의 받을 그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의 구조 속에서 생각하는 제 3격의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위 d) 항목에서 설명한 대로의 '생명주는 영' 또는 '그영'(the Spirit)을 가리킵니다.
: :
: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논문 작성자의 생각처럼 우리가 믿을 때 제1, 2격 하나님을 제외시킨 제 3격의 성령만을 영접한다고 이해한다면, 매우 심각한 진리적 오류와 체험적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 :
: :
: : 첫째로 요한 일서 5:12에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라는 말씀과 충돌합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성령>이 있는 자가 아니라 <아들>이 있는 자가 생명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설사 성령이 내주해도 아들이 없다면 결국 생명이 없는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 :
: :
: : 둘째로 만일 이런 모순을 대충 넘기기 위해 성령이 곧 아들이라고 한다면 양태론 이단이 될 것입니다.
: :
: :
: : 셋째로 그렇다고 성령은 아들을 대리함으로 성령이 있는 것이 곧 아들이 있는 것이라고 하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골3:4), '이 비밀은 곧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7),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등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내주를 말하는 수많은 성경 본문들과 충돌을 일으킬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 3격 성령은 그리스도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 :
: :
: :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고 그렇다고 분리되지도 않는 상태로 육신을 입으시고 또 부활하사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는다면, 요7:39를 포함한 성경의 모든 말씀과 일치하고 우리의 체험과도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여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 되심의 방면을 말한 것이지만(롬8:10), 하나님에게는 이와 달리 하늘 보좌와 그 우편에서 통치하시고 중보하시는 방면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은 물론입니다(롬8:34).
: :
: :
: : 각주 6) 골2:9의 '신격'(데오테스, 2320)은 사랑, 거룩, 공의 같은 하나님의 '신성'(롬1:20)(데이오테스, 2305)과는 다른 단어로서 성부, 성자, 성령 같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런 '신격의 모든 충만'(all the fullness of the Godhead)이 '예수 안에서 육체로 거하신 것'(For in Him dwells)이 성육신에 대한 보다 더 정확한 이해입니다.
: :
: :
: :
: :
: : (3) 요한복음 7:39의 그영에 대한 앤드류 머레이의 관점
: :
: :
: : 화란 개혁교회 총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추구하는 경건한 믿는이들에게 존경받는 앤드류 머레이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영' 제 5장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영'에서 요7:39의 '그영'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위 각주 4 참조). 그 중 인상적인 대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 :
: : "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표현은 매우 기이해 보인다. 그래서 '삽입된' 말씀-개역성경은 '저희에게'를 삽입함-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나서야 비로소 성령이 임하시라는 사실의 참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이끌 것이다."(41p).
: :
: :
: : " 또한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아들이 육신이 되심으로 새로운 현존의 무대에 등장하신 것도 알고 있다. 그 아들이 하늘로 되돌아가셨을 땐 하나님의 독생자로서는 변함이 없으셨지만 이미 예전과 같은 존재는 아니셨다. 그는 인자로서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나신 자였으며 스스로 완전하게 하시고 깨끗케 하신 영광스런 겸손으로 옷입으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도 실상 새로운 존재이셨다."(41-42pp).
: :
: :
: :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그는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의 영, 즉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후 높이 들림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임하신 것이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 안에서 인간성으로 짜여진 생명을 지니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것이다...그리스도가 오심은 인간의 죄와 그 저주에서 구원하시기 위함 뿐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하나님의 생명과의 교제로 다시 돌이키셔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었다"(42 p).
: :
: :
: : "그 죽으심 안에서 죄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자신을 마치 곡물의 씨앗처럼 드리심으로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셔야만 했다. 부활과 승천으로 영광을 얻은 그리스도의 성품에서 그의 영은 그의 인간적인 생명의 영으로서 임하셨다. 그 생명이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개인적으로 수행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 즉 그 자신과 그의 영광스런 생명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안에 새로운 거룩한 인간성을 완성하심으로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생명을 이제 전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성령은 하나님의 인격적 생명이셨던 것처럼 인간들의 인격적 생명이 되실 수 있게 된 것이다."(43 p).
: :
: :
: : 결론적으로, 앤드류 머레이나 위트니스 리는 논문 작성자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그것들은 양면성을 가진 성경 진리의 또 다른 면을 말했거나 일반적인 인식보다 더 깊은 부분의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일 뿐 결코 비성경적인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기존의 관념이 절대적이고 선한 것이며, 새로운 관점은 낯설기 때문에 옳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의 태도 대신, 과연 어떤 것이 성경에 더 부합되는 가를 고려하며 진지한 자세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
: :
: :
: :
: : 3. 삼일 하나님에 대해서
: :
: :
: : 1) 논문 작성자의 비판요지
: :
: :
: : '이들은 삼위일체를 삼일 하나님이라고 특별하게 부른다. ...세 분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각각 그 시대를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으로 보며...<그영과 몸> 105-106 pp에서는 '하나님-사람에는 성육신됨과 인생과 만유를 포함한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 있다', 라고 하고, <하나님의 경륜> 48 p에서는 '삼일 하나님이 한 사람이 되셨는데 그분의 이름이 예수시다' 라고 하며, <그영과 몸> 17 p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한 그분으로 생명주는 영이 되게 했다. 끝으로 이 부활은 삼일 하나님을 최종완성 시켰으며...'라고 한다. 이것은 좀더 발전한 양태론적인 단일신론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장은 삼위 하나님의 위격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말에 따르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완전히 다르게 된다. 즉 신약의 하나님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과정을 거친 그영은 완전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보다 더 우수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그러나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자신의 존재가 불완전하다면 누가 믿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전한 존재양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며 불완전한 분이 아니시다.'
: :
: :
: :
: :
: : 2) 비판에 대한 반박 또는 해명
: :
: :
: : (1) 개괄적인 반박:
: :
: : 우선 '삼일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영어의 ‘Triune God’을 직역한 것입니다. 서방세계에서 영어 ‘Triune God’은 '삼위일체(Trinity)’와 병행되는 지극히 일반적인 용어일 뿐이며,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손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사안입니다.(각주 7) 결국 이것은 ‘삼위일체’에만 익숙해져 있는 한국의 신학도들이 익숙지 않기 때문에 갖게 되는 오해와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보다 깊이 이 부분을 연구하다보면 오히려 삼일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진리적으로 한층 더 타당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
: : (지방)교회측은 논문 작성자의 오해와는 달리 아버지가 아들이 되시고 다시 아들이 성령님이 되는 식의 양태론을 믿지 않습니다. 인용 소개한 글 어디에도 그런 근거는 없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가 쓴 510쪽 분량의 '하나님'(한국복음서원, 1991)이란 책 302-308pp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모두 영원하시고, 동시에 존재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태론을 정말 아는 사람들은 삼위가 영원히 존재하고 셋이 동시 존재하심을 믿는 양태론은 어떤 형태이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어디에도 하나님의 위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없고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그분보다 열등한 분이라는 언급이 없음에도 임의로 이런 표현들로 남을 공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 삼일 하나님(또는 삼위일체)에 관한 진리 역시 서두에 (지방)교회측 인터넷 자료나 책자 등을 통해서 보다 정확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
: :
: : 각주 7) 루터교단 관련 싸이트 http://www.triunegod.net 를 보면 삼위일체를 'Triune God'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
: :
: :
: :
: : (2) 삼일 하나님이 과정을 거쳤다거나 완성되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신성이 아닌 그분이 입으신 인성에 초점을 맞춘 말임
: :
: :
: : 논문 작성자의 오해는 먼저 성육신 하신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한 차이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제 1격과 3격은 '분리되어' 저 하늘에 남아 계시고 오직 삼위 중 1/3인 제2격(성자)만 성육신하셨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제 2격이 성육신의 주체이시되 구별되나 분리되지는 않는 성부와 성령 또한 성자 안에서 성육신하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분이라는 골로새서 2:9과 요한복음 8: 16, 29 14:10-11, 20 등의 말씀은 후자가 더 성경적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과정을 거쳤다', '완성되었다'라는 말은 주 예수님의 변함없으신 신성이 아니라 그분의 인성 안에서 통과하시고 인성 안에서 이뤄진 사실들을 말한 것입니다.(요1:14, 고전15:45)(각주 8).
: :
: :
: : 각주 8) 사실은 동일한 오해가 앞서 언급한 최삼경 목사와의 토론에서도 제기 되었고 또 충분히 반박된 바 있습니다. 자세한 반박 내용은 최삼경 목사와의 토론 글 모음 싸이트인 http://www.forthetruth.or.kr/booklets15.htm 의 네번 째 글 후반부에 있는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을 이해하지 못한 최삼경 목사의 비판을 반박함'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 :
: : 결론적으로, 논문 작성자는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구별되나 분리되심 없이 동시 존재하시고 또한 상호내재하시는 <존재론적인 삼위일체>와 그러한 삼위 하나님이 구원의 경륜을 위해 거치신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을 혼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지방)교회 측의 이러한 양면을 모두 성경대로 믿는 균형잡힌 삼위일체관을 오해한 것입니다.
: :
: :
: : 그런데 삼위일체에 대한 이런 식의 이해는 우리가 삼위-특히 성령과 예수님 - 중 누구를 영접했는지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고, 힘써 형상을 본 받아야 할 본으로서의 '맏아들'(롬8:29)에 대한 투명한 인식이 부재하여 우리 안에서 이뤄져 가야 할 구원의 과정과 최종목표(빌2:12, 롬5:10, 8:29, 계3:12, 21:2, 9-10)를 상실하고 구원을 죽은 다음 천국가는 장소적 이동으로만 생각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아 왔습니다.
: :
: :
: :
: :
: : 4. 성경의 가르침, 교회사적 고찰에 따른 비판에 대한 반박
: :
: :
: : 논문 작성자는 논문에서 위와 같은 직접적인 (지방)교회 측 주장을 원문 인용 후 비판한데 이어서 성경과 교회사를 기준으로 다소 중복된 비판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논문 형식을 위해 이런 식의 추가 서술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추가로 언급할 필요가 있는 부분만 간략하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
: :
: : 1) 성경의 가르침
: :
: :
: : 논문 작성자의 비판 : '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성령만을 강조하여 마치 성령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인 것처럼 이해하는 위트니스 리...양태론적인 일원론자로 볼수 있으며...삼위 하나님이 마지막 '그영'이라는 성령으로 완성된다고 하여 ...이런 것은 하나님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고 점차로 발전해 왔다고 볼수 있다.'
: :
: :
: : (지방)교회측 반박: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삼위의 인격을 구별함에서 지나쳐서 세 분이 각각 '분리되기도 한다'라고 믿는다면, 요한일서 5:12, 골로새서 3:4에 비춰볼 때 교리는 많이 알지만 정작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없는 종교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가 구별은 되나 분리는 안되시는 존재 양식으로 성육신, 죽음, 부활을 통과하신 후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을 믿고 이 영을 영접한다면 참된 거듭남과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는 구원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
: : 논문 작성자의 비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약화시켜 인성으로는 아들 될 자격이 없다고 까지 말했던 것을 기억하라...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하나님임을 증거하고....그리고...참 인간이심을 증거한다. ..그의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으며 이 신성과 인성은 혼합된 것도 아니며, 연합도 아니며, 신비로운 상태로 한 인격 안에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예수'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스도'만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 :
: :
: : (지방)교회측의 반박: (지방)교회측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 15:44-45 본문처럼 주 예수님이 부활 전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구절들의 의미를 좀 더 섬세하게 알려면 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구별하여 논하는 것이 불가피 합니다. 요7:39의 '예수가 영광을 입지 않았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과정 안에서 예수의 인성이 약화된 적도 약화시킨 사실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방)교회 측은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 후 높여지셨다는 말합니다. 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소홀이 할 때 소위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다'라는 이상한 주장조차도 성경진리처럼 전파될 우려가 있습니다. 필요할 때 적절하게 인성과 신성을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주 예수님의 양성의 신비로운 조화를 더 성경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 :
: :
: : 논문 작성자의 비판: '위트니스 리는 성령을...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왔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선재성을 의심하는 것이며...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구약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이들은 성령을 복합적인 영으로 보고 있다...그렇게 되면 성령 하나님을 어떤 신적인 화합 물질처럼 보아야 할 것이다...이것은 ...성령의 위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고...성령 하나님을 유사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 :
: :
: : (지방)교회측의 반박 : 서론에서 이미 밝혔지만 (지방)교회측도 성령님이 영원하시다는 사실은 믿습니다. 또한 성령이 제 1격, 2격과 '분리된 존재'라고 믿는다면 삼신론에 해당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 안에 어떤 위격이 내주하시는가 하는 문제에 이를 때 성경의 언급들과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자세히 다뤘습니다. 성령은 신적 화합 물질도 아니고 구별된 위격이 없으신 것도 아니고 유사 본질도 물론 아니십니다. 이런 것들은 (지방)교회와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 :
: :
: : 그러나 고전 15:45가 말하는 <생명주는 영>을 만일 논문 작성자처럼 삼위 중 1, 2격을 제외시킨 <제 3격만>이라고 본다면 마지막 아담인 제 2격이 부활 후 제 3격이 되었다는 말이 되어 큰 혼란과 암초에 봉착하고 말 것입니다.
: :
: :
: : 2) 교회사적인 비판적 고찰
: :
: :
: : 논문 작성자는 이 항목에서 교회역사상 있었던 니케아 회의, 콘스탄니노플 회의, 켈세돈 회의 등에서 논의된 것들을 장황하게 소개한 다음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
: :
: : 논문 작성자의 비판: ' 지방교회 역시 삼일 하나님이...그영이 되었다고 한다...아리우스주의와 흡사하다...삼위 하나님을 양태론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경륜이란 개념을 강조하면서 어떤 때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또 어떤 때는 아들...또 다른 때는 그영으로 나타나셨다고 한다..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그의 신성과 인성을 혼합하기를 기뻐하셨다고 말한다...유티케스의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 :
: :
: : (지방)교회측의 반박: 양태론이니 유티케스와 같다느니 하는 말은 피상적인 관찰일 뿐 (지방)교회와 무관합니다. 이 점은 예장 통합측 전 이단 상담소장이었던 최삼경 목사와의 토론에서 충분히 반박되고 해명되었습니다.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었다'라고 했을 때 쓰인 단어는 '밍글링'(mingling) 으로서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요소들이 서로 섞이고 연합되더라도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레위기 2:4에서 고운가루와 기름이 섞여져 소제를 만든다는 언급에서 쓰여진 성경 용어이기도 합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위 최 목사와의 논쟁 (지방)교회측 네 번째 글 '위트니스 리가 사용한 밍글링이라는 단어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 :
: :
: : III. 결론
: :
: :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 측 신앙은 성경 66권과 근본주의 가르침 그리고 교회 역사상 생명의 노선 안에 있는 믿음의 선진들의 도움을 통해 진리와 생명의 체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계 내에는 이러한 방면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준혁님 처럼 신학 수업을 막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지방) 교회측 혹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대해 참된 이해를 갖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비판에 많은 무리가 따른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실 위에서 다룬 주제들은 매우 깊은 진리임으로 이런 간략한 글로는 세세한 것을 다 다루고 논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진한 부분이 혹 있다면 추가적인 대화를 통해 더 다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
: :
: : 참고로 미국에서 지난 80년 대 초반부터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의 신론을 천준혁 님처럼 오해하여 비판을 가해 왔던 이단 변증 단체인 CRI 측과 Answers In Action 대표인 패산티노 여사가 최근에 종전의 태도들을 모두 바꾸었습니다. 즉 텍사스 대법원에 제출된 공식 문서(각주 9)에서 “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니다” 라고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양측이 인내와 그리스도인의 사랑 안에서 오랫동안 열린 대화를 나눠 온 결실입니다. 이에 앞서 교파를 초월하여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신학 교육을 자랑하는 플러 신학교측도 동일한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각주 10).
: :
: :
: : 한국 교계 내에서도 천준혁 님을 포함하여 (지방)교회 측을 잘 알지 못함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열린 대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위와 같은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
: :
: : 각주 9) 미국의 저명한 이단변증 단체인 CRI 현 책임자인 'Hank Hanegraaff'는 2006년 8월에 텍사스 대법원에 제출 된 'Brief of Amicus Curiae' 문서에서 '이단'이라는 단어가 사회학적이든 교리적이든 (지방)교회에 적용되어서는 않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썼습니다. 'Gretchen Passantino' 여사 역시 이런 행크 해나그래프의 결론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문서로 밝혔습니다. 해당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From my own direct study of and extensive interaction with the Local Church and Living Stram Ministry, I have concluded that the word "cult" does not apply to the Local Church either sociologically or theologically."
: :
: :
: : 각주 10)
: : http://www.forthetruth.or.kr/mboard.php?bcode=notice&mode=read&page=1&cat=∂=&keyword=&bidx=28
: :
: :
: :
: :
세부목록
- 공회 교회론 정리 발표시 부탁
- 확인 감사, 같은 자세 부탁
- 교회론 관련 확인 부탁 -백목사님 자료로
- 요7:39의 그영(the Spirit) 관련 참고자료
- 부탁하신 백목사님의 언급
- 개인교회를 지지하는 성구 1-1
-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의사진행 발언)
- 총공회 교회론 소개글- 감사드립니다.
- 에클레시아(교회)의 하나인 면과 증거(표현)하는면
- 이와 관련하여 확인된 공회 내부의 언급
- 신언의 목적과 효용 등 몇가지 문의드립니다.
- 박만수님 글의 출처 부탁
- 몇가지 더 부탁드립니다.
-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2)
-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1)
- 주의 회복의 교회론 1차 보완- 일반
- 다음 글이 이어지기 까지 지방교회 분들의 지적과 보완의 글을 기대합니다
-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 부탁과 방향
- 몇가지 고려할 사항
- 관리자님과 주님사랑과 무명2님께 드리는 글
- 아침부흥책자와 워치만 니 인용, 부탁
- 대동소이라는 말씀-추가 해명
- 지방교회 내부에서 제안하는 자료 - (지방교회 내부 입장)
- 대동소이라는 말씀
- 해명에서 빠진 내용 -추가 해명
- 해명에서 빠진 내용 (제-관)
- 지방교회가 뼈 아프게 들어 봐야 할 권면 - 해명의 글
- 지방교회가 뼈 아프게 들어 봐야 할 권면
- '지방교회'에 대한 공식 입장 - (〃)
- 지방교회 역사와 한 교회주의 - (〃)
-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선즉...
- 주님사랑님께 한 번더 말씀드려 봅니다.
- 공회 교회론 정리 발표시 부탁-자료제공
- 정리 절차 (3435번)
- 몇 가지 더 보충하였습니다.
- '형제'분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 주님사랑님께 몇 가지 질문 및 요청
- 여자의 위치와 성만찬 횟수-주의 회복의 입장
- 여자의 교회 내 위치 문제만
- 이렇게 잠정적으로 답변을 드립니다.
- 공회 교회론 정리 부탁 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