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흥책자와 워치만 니 인용, 부탁
주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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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7 00:00
아침부흥책자와 워치만 니 인용
먼저 이 글은 부득이함으로 쓰는 것임을 밝힙니다. ‘형제’ 분이 주의 회복은 성도들의 큐티와 신언준비를 돕기 위해 배포되는 <아침부흥 책자> 안에서 워치만 니를 일체 인용하지 않고 있고, 그것은 마치 삼성이 르노의 흔적을 점차적으로 지워나가는 것처럼 위트니스 리를 높이고 워치만 니 흔적을 지워가기 때문이다 라는 취지의 단정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전혀 사실이 아닌 말임으로 2011년 현재 저희가 보고 있는 아침부흥 책자에 인용된 워치만 니 자료들을 소개드렸더니, 본인이 관여하던 2011-2011년도 책자에는 워치만 니 서적 인용이 없으니 그런 것이 있다는 증거를 보이라고 공개 요청하셨습니다.
사실 2010-2011년에 없거나 극소수 인용만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워치만 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해가 갈수록 워치만 니 인용을 금지하거나 인용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야 ‘형제’님의 주장이 맞습니다. 그런데 2010-2011년도에 없던 워치만 니 인용이 2012년도 현재 등장했다면, 이미 추가확인을 할 필요도 없이 그것으로 상황파악은 끝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형제’님이 요청하셨기에 집에 보관 중인 자료 중 일부를 찾아보고 이곳에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주의 회복은 이곳 총공회처럼 함께 모여서 ‘재독’하는 횟수가 적지 않습니다. 여름 겨울 휴가철, 구정 연휴, 봄 현충일 연휴, 가을 추수감사절 연후, 그외에 1년 2차례의 인도그룹의 모임 총 1년 7차 전세계적인 공식집회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위트니스 리의 동역자 그룹(수십 명에서 수백명)이 함께 기도하며 교통하는 가운데 일부가 나서서 강단에 섭니다. 그 말씀선포 내용들을 관련 참고자료와 함께 매주 또 매일 소화하고 습득하도록 책자로 만든 것이 여기서 논의되는 <아침부흥 책자>입니다.
또 한 가지 참고하실 것은 워치만 니 시절에는 녹음이나 동영상 촬영이 없던 시절이니 그가 육성으로 남긴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워치만니 전집에 포함된 책자들의 상당수는 워치만 니가 편지로 또는 쪽 문서로 펴낸 것들을 모은 것이고, 단행본으로 쓴 것은 <영에 속한 사람들> 과 <워치만 니 간증> 두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료들 중에는 주제별 말씀선포가 많았고 성경 강해서는 마태복음과 계시록 그리고 아가서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대신 위트니스 리가 워치만 니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동역하는 약 25년 동안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에게 구두로 자기가 본 것과 체험한 것을 거의 다 전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옥중에 있다가 먼저 출옥하는 한 사람에게 당신은 나가면 이상수라는 사람을 꼭 찾아가라 ‘그가 말한 것이 곧 내가 말한 것이다’ 라고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강해를 참고자료로 제시해야 할 아침부흥 책자 내용에는 상대적으로 워치만 니자료는 위트니스 리 자료보다 적을 수 밖에 없으나, 위트니스 리가 전하는 진리의 실제 내용은 거의 다 워치만 니로부터 배운 것임으로 내부인들은 그 둘을 구분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삼성이 르노를 밀어내는 발상”을 해 본적도 없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제 이런 배경을 기초로 ‘형제’님의 요청에 대해 답변을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2010년 구정집회(몸의 생활…왕으로 다스림) 1주 워치만니 전집(이후 전집) 2집 44권, 4주 전집 3집 50권, 41장
2. 2010년 현충일(하나님의 목적..생활함) 5주 전집 3집 60권
3. 2010년 여름훈련(이사야서 연구1-2) 4주 전집 3집 50권, 2집 38권, 10주 전집 1집 17권, 11주 열두광주리 1권
4. 2010 가을 장로훈련(교회 돌보는… 합당한 사람이 됨) 3주 저닙 3집 62권, 이 메세지는 주로 <장로직분에 관한 기본원칙>이라는 책자를 다룬 것임
5. 2010년 겨울훈련(이사야 연구 4..3은 보관책자 못찾음) 23주 전집 2집 38권 51장, 44권 87장, 전집 1집 11권
6. 2011년 구정집회(하나님의 말씀을 말함) 주로 라이프 스터디를 인용 소개함
7. 2011년 여름훈련(시편 연구 1) 주로 시편 라이프 스터디를 인용함
8. 2011년 겨울훈련(시편연구 4) 21주- 전집 1집 11권 7-11장
이상 제가 보관 중인 자료들을 대충 넘겨 가면서 발췌한 것들입니다. 이상의 자료만으로도 ‘형제’님의 아침부흥 책자 안에 워치만 니 인용이 없고, 마치 삼성이 르노를 지우려하듯이 워치만 니를 지우려고 한다는 단정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았다고 봅니다. 주제에 따라 또 책에 따라 관련자료 인용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때는 워치만 니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겔 44장을 다룬 성소의 죄..부분이 그 예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형제’님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본인이 본 것이 다가 아니고, 본인이 아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런 사람은 확정과 단정을 섣불리 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 자료들에서 ‘형제’님은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단정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무겁고 안타까웠습니다.
한 예로 주의 회복은 십자가 복음은 안 전하고 (무시하고) 그영만 전함으로 복음을 모른다는 단정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을 포함하고 또 그 부활하신 바로 그 분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것을 포함합니다. 바울이 전파한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골1:28)라고 할 때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 부활하신 분을 포함하되 더 나아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방점이 있습니다. 이 분이 각 사람 안에서 생명으로 자라가셔서 각 사람이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것까지가 복음입니다. 이 안에 죄사함, 거듭남, 성화, 영화롭게됨, 몸의 건축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거듭난 믿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곳 총공회 분들에게 참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리 방면에서는 그동안에는 한 손만 허공을 가르다가 마주치는 손을 만나서 함께 손벽을 치게 되어 반갑고 기쁜 정도이지만, 그 태도에 있어서는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한 예로 잘 모르는 것은 쉽게 단정하지 않고 연구과제로 돌린다는 말은 얼마나 지혜로운지요.
‘형제’ 님, 성경은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우리가 서로 지체들이기 때문이다’(엡4:25). 또 어디서는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권합니다 (골3:9). 아침부흥 책자에는 워치만 니 인용이 없다. 그들은 삼성이 르노를 지우듯이 워치만 니를 지우려고 한다..는 ‘형제’님의 과거 단정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부분의 질문이나 요청은 시간이 나는 대로 답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일도 있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 형제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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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교회론과 관련없는 글을 올리게 되어 관리자님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그 영에 대한 부분은 따로 교회론을 정리하신 다음 따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그때 주님사랑님과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관리자님 하지만 그 영에 대하여 지금 이곳에서 잠시 꼳 발언을 해야 할 것 같아 짦게 그 영에 대한 글도 아래에 엤음을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하며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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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님사랑님께서 그 영에 대해 자료를 올려주셨지만 주님사랑님 답변으로 그 영에 대한 총괄적인 자료로 올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듣고자 하는 답변이 아니라서 실망이 크며 기회가 되면 다시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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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영에 대해서 꼭 필요한 부분만 이곳에서 짦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님(Holy Ghost)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복음 7장 39절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엄청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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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주님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Holy Ghost)을 말씀하신 것이라. 이는 예수님수께서 아직 영광(부활)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직 그 영( The Spirit)이 주어지지 아니하셨음이라.(요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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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위의 말씀을 주님께서 아직 영광(부활)을 받지 아니하셨기에" 그 영( The Spirit) 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 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교회는 저와 다르게 " 그 영이 계시지 않았다. " 이렇게 보고 있기때문에 이것만 정리가 되면 서로에게 유익을 될 수 있는 토론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한가지 말씀드리지만 그 영님은 분명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전에도 하늘에 이미 계심을 주 예수님께 스스로가 말씀하셨습니다.(요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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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사실적으로 지방교회를 염려하는 하는 것은 지방교회의 대부분 성도들의 복음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의 복음은 그 영을 전하는 복음입니다. 그 영을 알지 못하면 복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그들의 머리속에 가득합니다. 사실 이러한 영향은 위트니스리의 가르침에 기인된 것입니다. 제가 지방교회에 있을 때 한 형제님께 저에게 한 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듯 복음을 말해내도록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생명주는 영을 전하였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셔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기 때문에 공기와 같은 영이신 그 영을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영접해야 한다는 것이 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방식은 " 오 주 예수여" 이렇게 주님을 부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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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복음은 그 영을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차이점을 어쩜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그 입을 열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그 영을 전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이치이며 성경에서도 분명히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에서도 주님사랑님께는 대뜸 지방교회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말씀하시면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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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는 지금 그 영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많은 혼돈가운데 있습니다. 자신들은 부족함이 없고 모든 진리를 소유하였다고 생각하며 지방교회에 와서 살진 송아지 먹고(눅15:23) 그 영을 누려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들이 지방교회 성도들을 오히려 눈 멀게 하였다고 저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이정도로 하고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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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방교회와 워치만니와의 연관성에 대한 저의 발언에 주님사랑님께서 이번에 지방교회에서 신언할 내용의 말씀들은 워치만니의 글들을 많이 포함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주님사랑님께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제가 지방교회를 나온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지방교회에 있을때 보았던 2010년 ~2011년에 다루어 졌던 신언을 돕기 위한 거룩한 말씀 등에 워치만니의 글들이 전체에서 얼마만큼 포함되었는지 이곳에서도 밝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잘못 알아 오해한 부분이라면 깊이 뉘우치고 사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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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명2님께서 지방교회의 교회론을 정리함에 있어 참고하실 만한 자료를 자져왔습니다.. 예전에 안티오크에서 지방교회 관련하여 토론되었던 내용인데 그곳의 장로님이신 박만수님의 글입니다. 박만수님은 워치만니의 지방입장론을 강력하게 책망하고 계시지만 아직 저의 분량과 위치는 워치만니를 판단할 수 있는 자가 아니기에 그곳의 글을 읽는 것으로만 하였습니다.아마 아래 글을 천천히 읽어 보신다면 어느 부분에서 지방교회론을 정리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럼 주님안에서 늘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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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오크 박만수님 글]
: 모든 말씀사역자들에게는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계시된 진리들과 명령들, 주 예수님과 사도들이 친히 본을 보여주신 내용 등은 교리로서 마땅히 가르치고 순종과 실행을 요구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나타난 현상과 그에 대한 설명 정도라면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히 설명해 줄 수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교리화하여 가르치다 보면 반드시 부작용과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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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나타나 있는 교회의 단수복수 문제는 교회의 본질 문제라기보다는 교회가 세상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라는 사실은 교회의 본질적 진리에 해당되며, 여기에는 단수복수 문제가 적용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한 분이시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본질상 하나이지 둘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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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세상 속에서 때로는 단수형태로, 때로는 복수형태로 등장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이해됩니다. 성경은 이같은 자연스런 현상을 서술하고 설명하지만, 이것을 교리나 명령으로 가르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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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단수의 교회는 우주적 교회이고 복수로 표현된 교회는 지방(지역)교회라는 도식은 사람이 만든 신학사상일 뿐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경은 한 지역에 있는 교회(지역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우주적 교회)라고 불렀는데(고전 1:2), 이는 교회가 시공을 초월하여 본질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복수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지 교회의 본질 자체가 단수와 복수로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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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교회를 초대교회, 중세교회, 현대교회로 구분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설명일 뿐이며, 시대구분 자체가 교리가 될 수는 없듯이,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 나타난 교회들 역시 공간과 장소에 따라 교회의 나타남을 설명하는 것일 뿐 그러한 현상 자체가 교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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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본질상 새생명에 속한 새창조의 영역이지만, 교회가 나타나는 현 세상은 첫창조에 속한 영역입니다. 비록 교회의 일원인 각각의 크리스천들이 첫창조에 속한 육체 안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교회의 정체성은 육체와 세상이 아니라 부활의 새생명입니다. 따라서 육체의 일과 세상행정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말하려 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오류입니다. 거듭난 크리스천이 육체 가운데서 행할지라도 육체에 속하지 않듯이, 성경의 교회도 세상행정의 옷을 입고 나타날지라도 본질은 세상행정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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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누가 육체의 일과 세상행정에 따른 교회의 교리를 가르친다면, 그 교리는 결국에 가서 타락하거나 변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타락하게 되어 있고, 첫창조에 속한 세상행정은 변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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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태 18장 17절의 교회는 분명 단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우주적 교회(단수의 교회)에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경우는 지역교회(혹은 지방교회)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단수=우주교회, 복수=지방교회]이라는 등식은 깨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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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 니는 지방 입장을 회복하기만 하면 기독교의 교파분열 문제는 해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아무리 성경에 나타난 현상과 기가막히게 일치할지라도, 현상을 본질로 착각한 또 다른 오류였음이 결국 열매로써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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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 니를 추종하는 지방교회는 스스로를 지방입장을 회복한 회복교회라 칭했고, 지방입장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교회를 바빌론 포로상태에 있다고 정죄하였습니다. 이러한 입장 논리가 교파분열의 양상을 띠고 있는 개신교에는 잘 들어맞았지만, 교파분열 양상을 띠지 않은 교회들에게는 적용하기가 난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바빌론 포로상태라 정죄하지 못하고, 또 교파 없이 순수하게 모이는 모임들은 그저 '자유그룹들'(free groups)이라고 폄하해 버렸고,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지방입장으로 돌아왔으므로 회복된 참교회라고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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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얘기는 교회역사상 초대교회와 지방교회만이 지방입장에 서 있으므로 초대교회와 지방교회만이 참교회이고, 교회역사상의 다른 모든 교회들은 다 바빌론 포로상태이고 참교회가 아니라는 결론이 되고 맙니다. 물론 현시대에는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회복된 참교회가 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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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 니의 자가당착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왜냐하면 초대교회 이후 지방교회 때까지 근 이천여년 동안 하나님의 교회는 다 바빌론 포로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전 세계 십여만명 남짓한 지방교회 외엔 다 바빌론 포로상태에 있다는 얘기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지옥문들이 교회를 대항하여 이기지 못하리라는 주 예수님의 예언이(마 16:18) 워치만 니에게는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은, 초대 이후 워치만 니까지의 이천여년 동안은 교회가 패배하여 바빌론 포로상태였다고 그가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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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 니의 지방입장론은 비록 나타난 현상과 잘 맞아떨어지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성경의 교리가 아니었고 따라서 진리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계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착각이었습니다. 한 인간의 착각과 실수를 절대적 계시처럼 받아들이는 워치만 니의 추종자들이 더 심각한 문제라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워치만 니의 자가당착인 것은, 그가 사도에 대해 또 다른 착각을 교리화하여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워치만 니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충실한 나머지 그를 이 시대의 사도로 여기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지방입장론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가당착이란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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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각 성마다 교회가 나타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갈라티아나 마케도니아 같은 큰 지방에는 여러 도시들이 있으므로 당연히 '교회들'(복수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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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역시 시간과 공간이라는 첫창조의 기본요소입니다. 초대교회는 이제막 교회가 출범한 시점이기 때문에, 각 성마다 단수의 교회가 생겨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 성(城)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도시(都市) 개념으로 바뀌었는데, 문제는 교회가 도시에 국한되어 생겨난다는 보장이 없고, 또 과거의 성 개념과 오늘날의 도시 개념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입장론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억지로 교리화하기 때문에 많은 부작용과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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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초대교회 당시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자연히 교회출범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각 성마다 단수의 교회가 나타나게 되어 있고, 조금 더 넓은 지방(province)에는 복수의 교회들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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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각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우고 각 도시(성)마다 장로들을 세우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에 따른 결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질상으로는 하나의 교회에 복수의 장로들이 세워지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자 명령이라 할 수 있지만, 그 교리를 세상 지역행정에 따라 적용하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교회가 세상옷을 입고 나타나는 문제는 교리를 손상시키지 않고 교회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한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적응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 문제에 대해 별다른 언급도 없고 교리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만 소개해도 무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강조될 성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갈 성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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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교회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면, 더 이상 시공에 제약을 받지 않게 되고, 또 세상 지방행정이란 옷을 입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 때는 처음 난 자들의 교회 곧 총회(the general assembly)가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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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의하여 성경의 교리와 세상에 적응하는 자연스런 현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현상을 본질로 착각하여 새창조에 속한 하나님의 가족을 첫창조에 속한 종교조직으로 오인하는 과오를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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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할 수 없는 진리를 변할 수 있는 인간의 가르침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하듯이, 변할 수 있는 자연현상을 변할 수 없는 교리와 진리로 가르치는 일도 더 이상 허락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생명의 가족관계로서의 교회는 변치 않는 진리에 속합니다. 그러나 지방입장론은 변할 수밖에 없는 세상행정론의 일종일 뿐입니다. 교회가 당분간 세상행정의 옷을 입고 있을지라도, 교회는 교회이고 세상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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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지방입장론에 따라 편가르기를 시도하다 보면, 또 다시 교회가 세상 종교조직으로 변질될 것이며, 큰 도시 교회가 작은 도시 교회나 촌락 교회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점차 로마 카톨릭 조직의 전철을 밟아 서서히 변질되어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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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새창조에 속하고 부활의 생명에 속한 교회일지라도, 주님 재림 직전까지는 첫창조의 질서에 순응하고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 행정의 질서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국가행정과 정부 공무원들을 존중해야 하듯이, 그리고 세상 시민의 일원으로서 국세와 공세를 바쳐야 하듯이, 세상 지방행정의 질서에도 따라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방행정을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배제하거나 정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강조하거나 가르칠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세상의 지방행정 질서에 적응하였을 뿐이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활동하였을지라도 그것을 진리나 교리처럼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세상 행정 자체는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교회는 거기에 잘 적응해 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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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 도시가 되기도 하고, 성이 촌락으로 바뀌기도 하며, 도시 속에 또 다른 도시가 생기기도 하고, 도시가 국가와 같아지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것이 세상 지방행정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교리와 교회의 진리가 지방행정에 따라서 수시로 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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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당초 교리가 될 수 없는 것을 교리화하여 참교회의 절대기준처럼 내세운 것은 분명 워치만 니의 실수이자 자가당착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틀릴 수 있는 사역자를 틀릴 수 없는 사도라고 가르치는 실수를 더하여, 자신의 착각과 오류를 신성한 계시로 추종하게 만드는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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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줄곧 기독교 조직의 숱한 공격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힘차게 지속시켜온 하나님의 교회인데도, 감히 바빌론 포로 상태라고 정죄해 버리는가 하면, 자신의 오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지방교회만이 회복된 참교회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 없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또 다시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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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말씀사역자는 성경이 가르친 만큼만 가르치고, 성경이 강조한 만큼만 강조하며, 성경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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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 성도의 글]
: 성경에서 가르쳐지는 것, 또는 발견되는 원칙이나 현상은 그것이 교리든 아니든 본질이든 아니든 다 '하나님 말씀'이고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규율하는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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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 몸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엡1:23). 그러므로 이 몸의 본질은 <주님자신> 이십니다. 누가 이것을 부인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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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리고 성경에서 '교회'와 '교회들'이란 표현이 발견되는데 여기서 소위 (지역)교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가운데 나타나는 것임도 부인할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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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문제는 하나의 교회를 <00교회>, 또는<**교회>라고 함으로 각기 다른 이름의 복수의 교회들로 성경에서 지칭했다면 그렇게 교회명칭을 달리 부르는 성경적인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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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 니는 이에 대해 성경에 근거한 답을 제시했고, 박만수님은 아직 명쾌한 답을 제시 못하고 계십니다. 만일 성경적인 해답을 가지고 계시다면 아래와 같이 그동안의 의문점들을 다시 풀어서 질문을 드리니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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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일 님이 장로자격을 행사하시는 교회가 <서울교회>시라면 <그 서울교회의 범위>는 어디까지 입니까? (현재 몇분이 모이시는지 모르나 그분들만 님이 장로로 계시는 <서울교회>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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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님의 장로직분 임명 과정 설명 중에 "네 분의 사역자들이 계셨고 그 중 두 분이 장로로 임명되셨다"고 했는데, 바로 그 때 서울에는 님들 외에 거듭난 성도들이 한 명도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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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서울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장로 임명에 '네 분만 참여하셨고 왜 그중 두분만" 장로로 임명하시게 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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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만일 님이 장로로 계시고 돌보시는 모임 이외의 성도들도 서울 교회라면 서울에는 몇 개의 서울교회가 있습니까? 하나 뿐이라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며 왜 다른 거듭난 성도들을 장로임명시 배제시키셨습니까? 만일 서울에 서울교회가 여러 개라면 그 각각의 서울교회들의 범위를 구별하는 '성경적 기준'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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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특정지역교회의 장로는 다른 지방의 교회에 가서 '특정지방의 장로자격'으로 그 다른 지방의 행정에 관여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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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베드로나 야고보가 다른 지역에 가서 말씀을 공급하고 그 지역의 교회생활을 도운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 자격>에 근거한 것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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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써서 여러 지역의 교회들을 도운 것이 요한이 그 당시 속했던 지역 교회 장로자격으로 그리 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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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위 5, 6번 질문에 대해 님이 예스라고 하신다면 이런 것들은 다 님이 자기 소속 지역의 범위를 넘어서 돌보고 사역하는 직분인 사도성을 애써 부인하고, 장로의 봉사 범위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그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오류일 것입니다. 님은 부인하시겠지만 베드로와 야고보는 가지 지방에서 목양할 때는 그 지방의 장로자격으로 그리할지 모르나 그들이 다른 지방으로 가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울 때는 사도로서 나가는 것입니다. 요한 역시 사도자격으로 일곱 교회에 서신을 쓴 것이지 자기 지방 장로 자격으로 그리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혼동을 피하기 위해 '교회의 범위' '장로의 범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
:
: 4. 교회의 단 복수 문제를 제가 언급한 것은 '도식적인 또는 문법적인 차이' 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박만수 님이 꺼려하시는 '우주교회와 지역교회'를 성경의 용례대로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은 단수의 교회(또는 우주교회)는 <추상적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모습이 없으되>, 복수의 교회들(또는 지역교회) 속에서 <그 구체적 표현과 실행성>을 볼 수 있으니 둘 다 중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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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님은 <마18:17의 교회가 문법적으로 단수지만 지역교회를 가리킨다>는 식의 반론을 제기하셨습니다. 완전히 핀트가 빗나간 반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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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적으로 말해 마18:17에서 언급된 교회는 우주교회가 아니라 지역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님의 정의에 의하면 우주교회 또는 하나님의 교회는 거듭난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한 어떤 것인데 그 교회를 어디가서 만나서 죄 지은 형제의 치리를 부탁하겠습니까?
:
: 그러므로 이런 우주교회의 개념 뿐 아니라 님이 무시하시고 심지어 위험하다고까지 하신 <구체적으로 지역적으로 나타난 교회(지역교회)의 존재와 그 구체적인 경계에 대한 성경적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이 워치만 니와 저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교리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 자체가 필요 없다든지 위험하다 든지 라고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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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여전히 님은 고전 1:2 본문을 착각하고 계십니다.
:
: "(박만수님)성경은 한 지역에 있는 교회(지역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우주적 교회)라고 불렀는데(고전 1:2), 이는 교회가 시공을 초월하여 본질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 위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에서 에베소나 서머나나 예루살렘이나 서울이나 영월이 아니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라고 불렀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교회'(우주교회)라고 칭하지 않았습니다.
:
: 이것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교회'(마16:18)와 그 <본질>이 같되 그 <범위>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즉 고린도교회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교회의 한 부분이되 범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교회'(우주교회) 자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
: 즉 지금까지 우리의 논의의 쟁점은 <교회의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이견이 없음으로), <교회의 범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박만수 님은 그런 것은 본질이 아니니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고, 워치만 니는 본질은 아니나 <교회생활의 구체적인 실행성>에 있어서 그 문제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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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박만수님글]
: 지방교회의 신앙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앙입니다. 그들에게 이 두 사람은 이 시대의 사도일 뿐 아니라 최종권위입니다. 그들 스스로도 말하기를, 이제 모든 계시는 충분히 밝혀졌으므로 라이프 스터디만 있으면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 라고 합니다.
:
: 지방교회 사람들이 본 토론에 임하는 목적은, 성경에서 확인하여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자신들의 사도인 워치만 니를 비판하였기에, 안티오크를 공격하고 워치만 니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일 뿐입니다. 비교적 부드럽게 접근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지방교회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은 워치만 니가 스스로 뿌린 씨앗의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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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처음부터 이분들의 성향과 의향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 간격이 좁혀지지나 않을까, 혹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나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토론에 임해 왔습니다... 아직도 그 안에 순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기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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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방교회 사람들을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 같은 이단처럼 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방교회는 여느 개신교 못지 않은 복음의 기초를 가지고 있고, 후쓰파와 모라비안 교회의 유산인 밝은 교회의 빛들이 아직은 남아 있기에, 비록 여러 뜸씨들로 인해 변질된 부분이 많고 빗나간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의 인내로 권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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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 성도님이 간격을 좁힐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저라도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길을 성경에서 찾고자 하여, 성실하게 질문에 답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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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회의 본질인 그리스도와 교회는 같은 생명, 같은 영입니다. 단수로 나타나든 복수로 나타나든 온전히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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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공의 제한을 받는 것은 육체와 물질(땅을 포함한)입니다. 교회는 육체와 물질이 아니고 영과 생명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영과 생명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
: 3. 교회와 교회들은 이 땅에서의 자연스러운 나타남입니다. 교회가 당분간 육체를 입고 지역행정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 때문 아닙니까? 성경이 원칙과 기준을 말씀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데, 왜 당신들이 주제넘게 원칙과 기준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
: 워치만 니가 성경에 근거한 답을 제시했다는 것은, 단복수 구분의 자연현상을 루터의 이분법에 근거해 침소봉대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현재 님을 비롯한 지방교회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을 젼혀 하지 않기에, 아무리 얘기해 주어도 명쾌한 답변이 될 리가 없지요... 그래도 성실히 답변 드려 보겠습니다:
:
: 1) 서울교회의 범위를 물어보셨는데, 질문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서울은 서울이고 교회는 교회입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라 해야 정확한데, 교회의 범위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일 뿐입니다. 서울의 범위는 자꾸 커가고 있기에 그 누구도 어디까지라고 단정짓지 못합니다.
:
: 저희만이 교회라고 생각지 않기에, 서울에서 모이는 적은 무리만이 서울에 있는 교회의 전부는 아니지요.. 누구든 거듭난 지체들이 서울에서 모이고 있으면 그 모임도 서울에 있는 교회인 것이지요.. 저희 역시 서울에 있는 교회모임의 하나일 뿐이지요... 대체 범위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가령 고린도에 있는 교회의 범위를 묻는 경우가 있습니까?
:
: 2) 서울 성경교회라 함은, 서울에 있는 성경교회 모임이란 뜻으로서, 저희만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저희 외에도 서울지역엔 거듭난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기 성령의 인도로 성경에 기초하여 모이고 있다면, 각각의 모임을 성경교회로 인정합니다.
:
: 당시 저희로서는 성령께서 저희를 작은 무리로 인도하셨고, 그 가운데서 네 명의 사역자를 사용하셨으며, 그 중에 두 명을 장로로 세우신 사실만을 증거할 뿐, 그 이상은 저희가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
: 3) 서울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서울에 많은 모임들이 있을지라도 교회는 하나입니다. 예루살렘에 수많은 가정모임들이 있었지만 하나의 교회였듯이 말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단복수를 구분하는 지역행정기준은 초대교회 당시의 여건과 교회성장 정도에 따른 자연스런 구분이었지 무슨 교리와 원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고, 성경도 그런 얘기를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지역행정구분에 따라 단복수 구분을 하였다고 봅니다.
:
: 장로 임명시 왜 다른 성도들을 배제했느냐고 물으시는데, 그 질문은 경우에 합당한 질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경의 기초 위에 정상적으로 세워졌다면 당연히 모든 지체들이 참여했겠지만, 잘 아시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의 절대기준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 아닙니까? 지방교회는 성경의 절대기준조차 믿지 않으니, 이런 질문을 할 자격조차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방교회는 왜 지방교회 외의 다른 성도들을 배제하고 있습니까?
:
: 4) 지방행정의 독립자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기시고, 교회는 영적 권위의 질서만 말하면 됩니다. 물론 저로서는 개교회의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만, 지방교회처럼 한 도시 한 행정 원칙만을 부르짖는다고 해서 달라진게 뭐가 있습니까? 그게 진리라면, 왜 지방교회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일치하여 외면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가르침도 없고, 모순과 부작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며, 지방교회의 열매가 도무지 성령의 열매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
: 5) 베드로가 폰투스, 갈라티아, 캅파도키아, 아시아 및 비디니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베드로전서를 썼는데, 이것이 장로가 아닌 단지 사도의 자격으로 한 것이라 보십니까? 벧전 5:1에서 베드로 자신이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
: 무슨 장로자격 따로 사도 자격 따로 식이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 장로로서 얼마든지 다른 지역 장로들에게 권면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지역행정 원칙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영적 권위만이 살아있을 뿐입니다. 지역행정이 영적 권위 위에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영적 권위가 지역행정 질서 위에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6)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쓰면서, 형제의 자격으로 쓴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계 1:9). 사도는 외부 사역자이고 장로는 내부사역자라는 워치만 니의 공식과는 달리, 형제의 자격과 영적 권위로서 얼마든지 모든 지체들에게 말씀을 공급할 수 있었고, 권면과 가르침이 가능했습니다.
:
: 베드로는 벧후 3:15에서 "우리 형제 바울도 자기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 논리대로라면, 바울이 베드로의 사역범위를 침범했다고 정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
: 지방교회의님은 아예 저까지 사도성의 오류에 동참시키려 하는군요... 제가 지역 범위를 넘어서 사역을 하고 있으니 사도란 말입니까? "God forbid!"
:
: 4. 지방교회에서 단수의 교회는 우주교회, 복수의 교회는 지방교회란 도식을 가르치기에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단수 중에는 지역교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고 마 18:17의 예를 들어드린 것입니다. 제 글의 취지를 바르게 이해하시고 나서 핀트에 빗나갔다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
: 그리고 님들의 치우친 이해와는 달리, 저는 지역교회를 무시한 적도 없고 위험하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성경은 지역에 있는 교회가 곧 하나님의 교회라고 동일시하는데도, 루터와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 사람들은 자꾸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기에, 그런 신학적 구분은 성경에 없는 것이며 위험한 사상이라고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
: 5.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하고, 그냥 하나님의 교회 하고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고린도에 있으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서울에 있으면 서울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아닙니까?
:
: 그냥 하나님의 교회는 우주적 교회이고, 어느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하면 지방교회라는 주장이 성경과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
: 딤전 3:15은 에베소 교회 장로이자 감독이었던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권면한 내용인데, "내가 오래 지체하게 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스스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을 알게 하노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전이니라"고 했습니다.
:
: 디모데가 처신해야 할 하나님의 집은 분명 에베소 교회를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 있는 교회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단수)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 같은 맥락에서 고전 1:2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란 의미가 바르게 이해될 것입니다. 워치만 니가 씌워준 색안경을 벗고서 보면, 바로 보일 것입니다!
:
: 저는 교회의 범위를 지방행정에 따라 규정하려는 시도가 비성경적이고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행정을 무시하거나 교회가 지방행정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 자체를 위험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
: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며, 당연히 당시 상황에서는 성 단위로 교회가 세워질 수밖에 없었고, 얼마든지 지방행정 단위로 교회의 숫자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방행정 자체는 영적인 것도 아니고 교리가 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방행정은 사실상 세상행정이며 첫창조에 속한 현 세상일 뿐입니다. 왜 그것을 갑자기 다른 어떤 교리보다 우선시되는 참교회의 기준으로 내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단히 위험한 인간의 해석이요 사상이란 것입니다.
:
: 지방행정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행정에 따른 교회활동의 질서도 시대에 따라 환경변화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서 융통성 있게 지역교회 질서를 잡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
: 한 도시 한 교회 원칙이란 것을 절대시하여 참교회를 식별하는 기준으로 삼기에, 성경과 맞지도 않고, 많은 부작용과 모순이 발생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또 다시 갈라내고 찢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뿐입니다.
:
: 특정성경 문제를 제기하심으로 마치셨는데, 특정성경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성경 문제입니다. 그 핵심은 진리의 절대기준이 될 수 있는 완전한 성경이어야 하나님이 주신 성경이 맞다는 것입니다.
:
: 이 문제는 킹 제임스 성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의 문제와는 사실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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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 역시 회복역이란 이집트 성경을 붙잡고 있으니, 진리의 절대기준이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진리의 절대기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이 그 자리를 침범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지방교회 사람들에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이 두 사람의 주장과 다르면 무조건 이론이고 의견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 아닙니까? 결국 이 두 사람이 넘어지면, 지방교회 사람들 모두가 함께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진다고 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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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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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상에서 구한 자료입니다. 무명님의 글에 답변을 준비하는 동안에 참고로 읽어보시도록 예전 자료를 소개드려 봅니다. 마침 고신교단에 계신 분이 문제 제기한 내용에 대한 해명임으로 총공회측에서도 논문 작성자를 아시는 분이 혹시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논문저자에게도 이 메일로 보내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 읽지 마시고 필요한 부분만 읽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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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신학대학원 신학과 천준혁 님 졸업 논문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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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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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11월 고신대학원 신학과 천준혁 님은 <지방교회의 교리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 - 위트니스 리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본 반박문은 해당 논문 전반에 걸쳐 발견되고 있는 문제점들과 치명적인 실수들을 지적함과 동시에, 지방교회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에서 집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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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논문은 A4 용지 24매 정도이나 서론과 성경본문 인용 그리고 교회사적 서술 등의 배경 설명을 빼면, (지방)교회를 직접 비판한 분량은 6-7매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접적인 비판 부분도, 다른 비판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해명되고 답변되었던 바 사실상 중복하여 반박할 필요는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천준혁 님(이후 ‘논문 작성자’로 표기하기로 함)과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그 자료들의 출처를 소개드리고, 위의 논문이 비판하는 부분을 간략하게 요약한 후 그에 대한 (지방)교회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을 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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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당 논문 작성자는 논문 서문에서 (지방)교회 측이 믿는 바를 "구체성 있게, 명료하게 주장하지 않아서” "(자기의 비판이) 지나친 해석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움이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사실은 (지방)교회 측은 믿는 바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논문 작성자가 연구 능력 혹은 연구 태도의 불성실로 인해 이를 간과하여, 본인의 염려대로 ‘지나친’억지 해석으로 치달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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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예로 해당 논문 작성자는 <요한복음 7:39의 그영>과 관련하여 (지방)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의 영원 전부터 존재하심’를 부인한다고 오해 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님이 영원하심을 증명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 했습니다. 그러나 (지방)교회 측은 그에 대해 이미 1989년에 발간한 <성령론>(총 650 쪽, 한국복음서원 발행) 책자 79 쪽에서 히브리서 9장 14절에 근거하여 '성령이 영원하신 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충분한 자료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히 논문을 쓰다 보니 생긴 해프닝인 셈입니다. 논문의 전개를 보면 논문 작성자는 (지방)교회 측을 기본적인 성경지식이나 상식적인 교회역사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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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상황에서 이 글은 1차적으로 해당 논문이 잘못 제시하고 비판한 내용들을 반박하고 바로 잡는데 주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또한 (지방)교회 구성원들이 한 면에서 본인들의 믿음과 실행을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오해와 궁금증들을 해소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집필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글이 논문 작성자는 물론 (지방)교회에 대해 오해와 궁금증을 가졌던 모든 분들에게 건설적인 대화의 창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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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I. 쟁점들에 대한 요약과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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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선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논문이 제기한 항목들은 이미 최삼경 목사(예장 통합 측 전 이단상담소장)와 (지방)교회 측이 약 3년에 걸친 진리 토론 가운데 충분히 다뤄졌고 반박되었습니다. http://www.forthetruth.or.kr/booklets15.htm 에 가시면 (지방)교회측이 대응했던 글들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삼일 하나님’은 http://www.triunegod.or.kr (한글)를, 삼위일체( Trinity)와 기독론 (Christ)에 대한 진리 변증은 http://www.contendingforthefaith.org (영문)의 해당 메뉴를, (지방)교회측의 핵심 진리에 대해서는 신학 변증잡지인 《확증과 비평》http://www.affcrit.com/archives.html (영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외 (지방)교회 측의 조직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약의 결론》(총 8권,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1, 2), 교회 왕국, 새 예루살렘, 한국복음서원 발행)도 (지방)교회의 진리를 공식 대변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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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 작성자는 논문 제목에서는 '지방교회 교리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지만 실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문제', '그 영(the Spirit)에 대한 비판', '삼일 하나님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도 위 세 주제들에 대해서만 항목 별로 비판 의견을 요약 소개한 후 해명 또는 반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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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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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논문 작성자의 비판 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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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 작성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간략한 관점과 함께 비판 대상 원문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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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의 기본계시>라는 책자(p.25)에서 "그러나 그분의 인성은 신성하지 않았다..."라고 함으로 신성과 인성을 철저하게 나누어 놓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책자(pp.54-55)에서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신성과 인성을 혼합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리스도의 인성 부분은 사람의 자격만 있을 뿐 하나님의 자격이 없고 부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 자격이 있게 되었다“라고 한 것은 인간 예수로 살아 있을 때는 완전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같은 책 p.54에서 "본래 그분은 영원 과거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그 때 그분 안에는 신성이 있지만 인성이 없었다. 그분은 육신이 될 때 인성을 입었다. 신성을 가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다. 그러나 그분이 인생을 입은 후 이 인성 부분은 사람의 아들 될 자격만 있고 하나님의 아들 될 자격은 없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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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후 아래와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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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철학적인 이원론에 빠져서 신비에 가까운 그리스도의 양성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의 결합으로 본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하나님으로 보며, 인성을 사람으로 본다. 신성은 거룩하고 완전한 것으로, 인성은 보다 열등하고 하급으로 여긴다. 이것은 교회 역사상 양성론자들과 이원론에 물든 영지주의자들의 길을 답습한 것이다.
: :
: :
: : (2)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 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은 삼위 중 한 분인 그를 저등급의 하나님으로,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자격미달의 단순한 인간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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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비판에 대한 반박 또는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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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개괄적인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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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선 학생 신분이었던 해당 논문 작성자는 논문에서 위트니스 리를 “기초적인 기독론도 이해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절하해 버리는 대담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세에 그리스도인이 된 위트니스 리는 일평생 70여년간 성경을 연구하며 전세계 각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받아왔으며, 여러 신학 조류의 산맥들이 펼쳐져 있는 미국에서만도 30여 년 간 성경 해석에 헌신하고 주님의 몸과 몸의 지체들을 섬겨왔던 분입니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된 신구약 전권에 대한 주석서 《라이프 스타디》와 함께, 광범위하게 보급된 신약 회복역 성경의 주석을 썼으며, 기독론에 대해서만도 71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그리스도론, 한국복음서원, 1991년 발행) 집필한 바 있습니다. 만일 논문 작성자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언급한 모든 구절을 총망라하여 그에 대한 해설과 견해를 담아 놓은 이 책을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읽어만 보았던들, 자신의 논문의 가치와 신뢰성에 치명적인 흠집들을 내어 버린 그러한 성급한 판단과 심각한 오류들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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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칙적으로 위트니스 리는 칼케돈 신조가 정의하는 내용의 기독론을 믿습니다 (각주1). 이 말은 그리스도가 참된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같은 참된 사람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분의 한 인격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구별은 되지만 혼잡되거나 분리됨 없이 존재하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구별’하여 말한 것을 가지고 ‘철학적 이원론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도리어 양성의 구별 가능성 자체들 부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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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창조주이신 그분의 신성을 거룩하게 보고 사람의 인성을 그것과 차별화한 것에 대하여 '인간이 하나님보다 열등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원론에 물든 영지주의자다’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논문 작성자의 신학적 이해 및 텍스트 독해 수준을 의심하게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관점 또한 ‘피조물인 사람(인성)은 창조주인 하나님(신성)보다 열등하지 않고 대등하다’는 주장으로 비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더욱이 논문 작성자는 "예수님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도 신성하다“라고 주장함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른 인성을 가진 참 사람이 아닌 분이라는 인식이 엿보이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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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므로 어떤 것을 평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말한 전체 내용 중에서 문맥과 방향성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만 떼어내어 그것을 상대방의 입장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더구나 그것에 임의로 비판을 가하고 혐의를 씌우는 것은 모든 연구자들이 극복하고 버려야만 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혼합'(mingling)되었다는 말 역시 두 요소가 합해져서 제 3의 본성을 산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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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1) 위트니스 리 주석, 신약 회복역 성경(RcV) 요 1:14 각주 2 (flesh에 대한 각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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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지방)교회 측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거론하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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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교회 측(위트니스 리)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과 인성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성경과 칼케돈 신조의 허용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은 난해한 성경 본문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매도할 것이 아니라 과연 아래 해당 본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함께 연구하고 또 기도로 가져갈 수 있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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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사도행전 13:33 :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문맥을 볼 때 여기서 말한 '오늘’은 성육신이 아닌 주 예수님의 부활의 날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21이 말하는 '아들을 낳으리니’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심으로 '하나님-사람’이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부활의 날에 하나님의 아들로 재차 낳은 바 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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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 로마서 1:3-4 :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이 본문도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인성)와 '성결의 영’(신성)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구분 자체가 소위 철학적 이원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 본문에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이 부활 후 '인정되신 것’(호리조, 3724)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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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고린도전서 15:45 하 :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위 본문에서 <마지막 아담>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 분이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라는 구절은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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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 로마서 8: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아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 전부터 삼위의 제 2격으로서 '독생자’(요1:14, 18, 3:16, 요일4:9)이신 그분이 언제, 어떤 연유로 많은 영적인 형제들을 가진 것을 함축하는 '맏 아들’의 지위를 얻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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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질문들에 대한 (지방)교회의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시 '예수님의 신성'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되, 그분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이 부활 후 '영화롭게 된 인성‘(빌3:21)- '거룩하게 된 인성‘ 혹은 '높여진 인성‘ (uplifted humanity)-이 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각주 2). 이것이 위 본문 중에 나오는 '오늘 너를 낳았다'(행13:33),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1:4),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맏아들이 되셨다'(롬8:29)는 부분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 후 신성도 인성도 아닌 소위 '제 3의 본성’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며, 인성을 그대로 유지하되 고린도전서 15:44이 말하는 '신령한 몸'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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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 위트니스 리 주석, 신약 회복역 성경(RcV), 롬 8: 29 각주 4(Firstborn에 대한 각주) 참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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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진리 항목들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교사들 중에서 이 주제에 대해 주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개혁 신학 쪽에서는 화란 개혁교회 총회장을 6번이나 역임한 바 있는 앤드류 머레이 (각주 3)가 그의 저술 '그리스도의 영’에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즉 그는 부활 후 영화롭게 된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켜 '새로운 거룩한 인간성’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신성과 부활 후의 인성을 함께 묶어 이르기를 '신인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이라고 말했습니
세부목록
- 공회 교회론 정리 발표시 부탁
- 확인 감사, 같은 자세 부탁
- 교회론 관련 확인 부탁 -백목사님 자료로
- 요7:39의 그영(the Spirit) 관련 참고자료
- 부탁하신 백목사님의 언급
- 개인교회를 지지하는 성구 1-1
-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의사진행 발언)
- 총공회 교회론 소개글- 감사드립니다.
- 에클레시아(교회)의 하나인 면과 증거(표현)하는면
- 이와 관련하여 확인된 공회 내부의 언급
- 신언의 목적과 효용 등 몇가지 문의드립니다.
- 박만수님 글의 출처 부탁
- 몇가지 더 부탁드립니다.
-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2)
-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1)
- 주의 회복의 교회론 1차 보완- 일반
- 다음 글이 이어지기 까지 지방교회 분들의 지적과 보완의 글을 기대합니다
-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 부탁과 방향
- 몇가지 고려할 사항
- 관리자님과 주님사랑과 무명2님께 드리는 글
- 아침부흥책자와 워치만 니 인용, 부탁
- 대동소이라는 말씀-추가 해명
- 지방교회 내부에서 제안하는 자료 - (지방교회 내부 입장)
- 대동소이라는 말씀
- 해명에서 빠진 내용 -추가 해명
- 해명에서 빠진 내용 (제-관)
- 지방교회가 뼈 아프게 들어 봐야 할 권면 - 해명의 글
- 지방교회가 뼈 아프게 들어 봐야 할 권면
- '지방교회'에 대한 공식 입장 - (〃)
- 지방교회 역사와 한 교회주의 - (〃)
-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선즉...
- 주님사랑님께 한 번더 말씀드려 봅니다.
- 공회 교회론 정리 발표시 부탁-자료제공
- 정리 절차 (3435번)
- 몇 가지 더 보충하였습니다.
- '형제'분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 주님사랑님께 몇 가지 질문 및 요청
- 여자의 위치와 성만찬 횟수-주의 회복의 입장
- 여자의 교회 내 위치 문제만
- 이렇게 잠정적으로 답변을 드립니다.
- 공회 교회론 정리 부탁 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