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교회 내 위치 문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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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00:00
1. 고전14:34을 근거하여 교회 내 여자의 위치에 대해 다음 7 가지 형태가 나올 수 있습니다.
1) 여자는 교인들의 그 어떤 모임에서도 발성할 수 없다.
2) 여자는 교인들의 모임에서 발성은 해도 뜻을 가진 발언은 못한다.
3) 여자는 교회 공식 모임에서 정식 발언만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4) 여자는 교회 예배 시간에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교수할 수 없고 공적 질문도 안 된다.
5) 여자는 교회에서 지도적 지위를 공식적으로 가질 수 없다.
6) 여자는 교회 최고 책임자 외의 지위는 가질 수 있다.
7) 여자도 목사처럼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으나 교단 전체적으로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공회는 상기 7 가지의 입장을 두고 각 교회가 자기 교회의 교인과 신앙 형편에 따라 각자 결정할 문제라고 봅니다. 다만 어느 입장을 가지는 것이 더 좋겠는가? 이 문제를 두고는 7)번으로 갈수록 복이 없는 파행적 교회라고 생각하고, 1)번으로 갈수록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상 교회는 아주 특수하고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3)번에서 6)번 정도에서 각 교회에 맞는 형태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7)번으로 가는 상황이 있다면 법적으로 막거나 제도적으로 금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단히 위험스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어느 교회가 '여자도 어떤 제한 없이 교회뿐 아니라 그 교단 전체의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런 논쟁은 끝 없는 토론으로 이어 질 수가 있어 논란은 피하겠지만 그 것은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단정하겠습니다.
재건교회라는 곳은 해방 후 한국의 최강경 교파로 알려 졌는데 6번으로 시작했다 7번을 가졌고
공회는 6번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14장의 핵심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니 교회나 가정이 정상적이면 남자가 지도적 위치를 가지는 것을 말씀한다고 생각하며, 남자의 지도를 받아 여자가 순종함으로 이런저런 직책을 가지거나 교회 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여자를 머리에 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방교회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성경 문자를 그대로 고수하려면 여성은 교회 내에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지방교회의 모임에서 발언이 없어야 하는데 만일 신언은 하게 한다면 상기 7 가지 사례 중에서 5번에 해당 될 것입니다. 발언은 그 발성의 외적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문제인데 강패의 요청은 협박이 되고 강대국의 협의 요청은 강제 침탈이 됩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표현은 그냥 전달이지만 전달의 책임을 맡는 순간 그 전달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아무리 자기의 신분을 종이라 심부름꾼이라 해도 그 말을 전해 듣는 우리는 그를 목사처럼 사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할 것입니다. 구약은 그 직책이 정해 져 있었고 신약은 어린 아이의 말이라 해도 그 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 되면 목사와 전체 교인은 무릎을 꿇고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교회 내 여자의 신언이 허용 된다면 사실상 여자들은 그 신언의 시간에 신약 교회에서 허용할 수 있는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그 순간 맡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상기 7 가지 중에서 1번이나 2번을 고수하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막16:18 말씀을 따라 방울뱀을 집고 맹독을 벌컥벌컥 마시고 해를 받지 않음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편입니다. 다 같이 성경을 절대성 있게 믿되 표현 그대로 따르느냐 그 표현에 담은 내용을 따르느냐 두 가지를 함께 따르느냐에 따라 표현만 따르면 율법주의일 것이고, 표현에 담은 내용만 따른다면 이 세상을 사는데 어떤 말씀 때문에라도 어려움은 전혀 없을 것이고, 두 가지를 함께 살펴 나간다면 그 것은 각 교회의 신앙 수준과 형편에 따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단에서1의 내용 중에 여성의 지도자 역할의 문제는 그 교회의 특수 형편입니다. 그 두 교회에는 그 두 여성의 지도자만큼 신앙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두 분에게는 결정적인 단점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교회 남자들은 그 여성분들보다 더 심각한 단점들이 있습니다. 남단이 바란 것은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없는 분을 보내 달라 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 그 교회 교인들 중에서는 그 여성 분들이 제일 낫고, 그 분들의 현재 상태는 아쉽게도 이탈 문제가 있고, 그래서 그 분들이 과거 1989년경까지 그들의 교회를 바르게 지도하던 시기까지 회복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 분들이 그 교회들을 잘 지도하는 입장을 가지면 목표 달성인가? 공회 교회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여성 분들이 자기를 지도할 남자 지도자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고 만들어서 어느 날 아득히 높은 실력을 가진 자기들을 지도해 줄 남자 지도자들을 가져야만 그들의 신앙이 정상입니다. 가정의 부부 중에 신앙 없는 남편을 가진 아내들의 자세와 목표 달성의 과정도 동일합니다. 신앙 없는 남편도 남자라고 무조건 머리로 삼고 남편이 교회를 가지 말라 하면 가지 말아야 하는가? 신앙 문제는 신앙 호주가 결정해야 하나 그 신앙 호주가 여성인 경우 그 여성은 자기 남편이 얼른 자기를 지도해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남단은 이 홈의 운영자의 독백 장소입니다. 운영자가 자기 내면을 다 공개하지 못하는 많은 배경을 갖고 발표한 '시'와 같습니다. 시는 함축입니다. 일기나 행정 기록과는 다른 면이 있음을 감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행20:7을 근거하여 성찬 문제를 두고
주일날 한 번만 모여야 하고 그 모임에는 무조건 성찬을 해야만 한다.
주일날 몇 번을 모이는 것은 자유나 주일 모임은 몇 번을 해도 성찬을 해야 한다.
주일은 물론 그 언제라도 교인의 만남에는 무조건 성찬을 해야 한다.
침례와 세례의 관계처럼 성찬의 날과 횟수도 각 교회가 그 뜻을 살펴 시행할 수 있다.
공회는 이런 4 가지 정도의 성경 시행을 두고 4번 째를 택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는 1번에서 2번 중에 하나를 택할 것으로 보는데 성경적인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따진다면 3번을 택해야 논란에서 벗어날 듯합니다. 신약의 교회는 교인의 모임이고, 교인의 모임은 주님 없이 모일 수 없으니 그 내용은 늘 예배적입니다. 주님 부탁하신 성찬의 시행을 뺀 모임은 의미가 없다고 반론한다면 믿는 사람들의 만남은 늘 먹고 마시는 모임이 될 터인데 실제 세계적으로 교회들의 가는 방향이 그렇게 가고 있으며 그 모습은 극단적 탈선의 상황입니다.
지방교회는 철저하게 성경대로 살려 하는 그 정신은 이해를 하는데 무조건 세례는 안 되고 침례라야 하느냐, 가끔 성찬은 무조건 안 되고 무조건 매주 성찬만 성찬인가? 지방교회가 정한 정도의 기준만이 성경 성구 표현 그대로인가? 무슨 문제든지 이런 식의 표현이 되면 스스로 말씀을 가지고 남을 묶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은혜적 걸음을 다 묶게 될 듯합니다.
여성 지도 문제와 성찬과 침례와 같은 이런 문제를 두고 성경으로 살펴 가능한 최저치와 최고치를 정한 다음 그 중에 어느 정도를 택하느냐는 것은 교회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정도가 아니고, 성경이냐 반성경이냐 그런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고 성경을 얼마나 깊게 정확하게 그리고 실제 자기에게 주어 진 현실에서 바른 사용을 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회는 교파나 개인을 막론하고 허용할 수 없는 경우와 허용하며 지켜 볼 수 있는 경우와 일시 지켜 보나 갈수록 개선이 되어야 할 경우로 나누어 생각하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3. 백 목사님의 가족 이야기
백 목사님 가족과 공회의 내분 등의 이야기를 이 홈에서는 가리지 않고 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자기 처자를 말씀 순종 과정에서 내 던질 수밖에 없었던 분입니다. 그 과정은 곧 출간 될 전기에서 설명할 수 있고 또 이 곳의 곳곳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손양원 주기철 주남선 목사님처럼 말씀을 따라 가려면 자기뿐 아니라 어린 자녀들을 이리 가운데 던져야 하고 그 어린 자녀들은 자기 신앙이 아직 아버지 수준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 당하는 고통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게 혹독하게 되며 그들이 그 과정에서 넘어 지고 쓰러 져 흙을 묻히게 될 때 이 홈은 그 선배들의 십자가 고난의 고난을 좁게 보면 그 종들의 육체에 직접 가해진 고문과 고형이나 그 고난을 조금 넓게 보면 그 가족들에게 가해 진 전체의 고통으로 생각합니다.
일반 교회의 최고 수준에 이른 신앙가들도 공회 신앙의 초보 신앙을 따르기 어렵다 합니다. 공회 교회를 죽었다 하시는 그런 분들을 공회 내부인들을 이 홈에서 비판하는 기준으로 뒷조사를 하고 그들의 생애를 살펴 평가하려면 이 홈은 그들은 불신자지 신자일 수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의 가족들의 형편은 그들은 백 목사님의 신앙을 가지지 못했다는 그 정도의 고난이 그들을 쳤고 그 과정에서 표현 못할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 자리는 그런 면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어서 더 이상 안내는 줄이겠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을 비롯해서 저희가 아는 거의 모든 분들의 교계 지도자들의 가족들은 상상하지 못할 길입니다. 백 목사님과 비슷한 정도의 고난이 가해 졌던 분들의 가족들은 대개 불신자급 상황에 이를 정도입니다.
공회는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잘 믿고 잘 살면 그 부모 되는 목회자가 과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목회자인가 좀 의심하는 편입니다. 저희 경험으로 실제 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면 옆에 아내조차 붙어 살기 어렵고 그 밑에 자녀들은 제단 위에 제물로 올려 지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말해서 목회자 자녀들이 부모를 이어 목회를 하거나 교회에서 지도자 급으로 활동한다면 그 부친을 의심하는 정도입니다.
이 홈은 백 목사님과의 관계가 그 7남매 자녀들보다 가까왔던 것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12 년만에 귀국한 아들 두 분이 예배당 안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는데 며칠 걸렸고 뵙고 대화했던 시간이 불과 1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록한 내용이 어디 있습니다. 이 홈의 운영자는 밤중과 새벽을 막론하고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홈의 운영자와 같은 분이 7남매인 그 가족의 8남매 8째라 하고 가까운 관계로는 이 홈 운영자가 가족들보다도 가족들을 더 잘 아는 분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 목사님의 따님들의 공회 내 분규 관련 내용은 이 홈을 찾는 분들이 단순히 평하거나 짐작한다면 크게 실수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홈에서 한 번씩 비판하는 것은 예수님도 그 친 형제들과의 가족 내 분쟁을 그대로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백 목사님을 존경한다 해도 지상 교회는 외부 전투보다 교회 내의 대내전이 더 극심한 것이고, 교회 내부 전투에 앞 서 가족과의 갈등이나 어려움이 더 심한 것이고 그보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전투가 더 중요한 법이니 이 홈은 스승을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이 노선 연구나 전체 공회에 불가피할 때는 백 목사님의 가족이든 공회 내 그 어떤 이야기든 모든 것을 다 드러 내 놓고 회개하거나 비판하는 곳입니다.
포도가지님의 경우, 바로 이 대목에서 공회가 죽었다고 쉽게 이야기를 꺼낸 경우인데 공회를 알 수도 없는 분이고, 그 분이 아는 공회는 정말 극히 일부분인데 그 일부분조차 그 분은 이 홈의 운영자 교회를 직접 출석하면서 교인으로 배운 분으로 알려 져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이 홈의 운영자는 공회의 제일 극단적 모순과 잘못을 먼저 다 공개를 하고, 그래도 이 노선을 따라야 할 이유가 있는 분들만 따르도록 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오판하고 떨어 지는 분들이 많고 또는 이해를 하고 따르다가 다른 상황으로 이 노선을 떠날 때 자신의 부족함을 발표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보통이고 그런 경우에 운영자께 들었던 평소의 공회 내부 문제를 마치 주요 원인인 것처럼 발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홈 운영자는 그냥 듣고 지나 가는 편입니다.
이 번 글의 주제와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몇 가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공회의 자신감은 공회 스스로 공회 외부가 알 수 없는 모든 공회의 잘못을 다 공개할 수 있는 데서 나옵니다. 세상은 감출 때 경쟁력이 생기는데 복음은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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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영을 알고 거듭난 이후 장차 저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믿는 이들이 힘써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가르치는 면에서 주의 회복과 총공회측은 큰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는 언제나 유쾌하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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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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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지방교회 내부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이곳에서 논의된 범주는 1. 성경에 한 지방 한 교회를 실행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2. 이들은 일부 항간의 일부의 주장처럼 이단인가, 아니면 같은 생명을 받은 한 몸 안의 참된 지체들인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정도의 대화가 오고간 상태라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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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만일 <한지방 한 교회>를 좀더 심도있게 다루고자 했다면, 1.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주님의 마지막 간구 내용을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합당한가 (요17:21)? 2. 성경이 ‘그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라’ 라고 할 때, 그 하나의 실상은 무엇이며 그 하나를 '지킨다'는 말의 의미와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인가 (엡 4:2-3)? 3. 지역교회의 성경적인 범위는 무엇인가 (계1:11)? 4. 지역교회 내에서의 분열과 분쟁은 왜 생기며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롬16:17.고전3:3)? 하는 문제들을 주님의 얼굴 빛 아래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는 위 4 항목 중 3번 하나를 다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교회론에 포함되어야 할 본질적인 부분들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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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회복이 추구하는 교회론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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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이미 총공회 측에서 익히 알고 계시는 내용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런 다 아는 진리들을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다룹니다. 그 이유는 머리로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교훈때문이고, 참으로 빛가운데 알기 위해서는 믿음의 들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서 없이 그러나 ‘교회론’이라는 범주에 해당될 말들을 몇 가지 소개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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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주와 건축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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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신혼 부부가 앞으로 자녀들을 낳으면 함께 살 집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고려와 자문 끝에 지을 집에 대한 구상을 마친 후 건축업자를 불러서 자신이 짓고자 하는 집의 자세한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후 그 건축업자는 주인이 주는 땅과 건축자재, 그리고 일에 대한 수고비를 넉넉히 받아가면서 각 분야의 일꾼들을 부려서 마침내 그 집을 완공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 건축업자는 자기가 직접 진두지휘하여 지은 집이지만, 사실은 그 집에 대한 어떤 권리도 갖지 않습니다. 바울과 아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그리고 백영희는 일종의 건축업자입니다. 그들이 어떤 부분을 맡아 수고하였지만, 그 집 주인은 주님 자신 이십니다. 그 분이 집을 짓는데 필요한 일체를 다 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집을 '내 교회'라고 하실만 합니다(마16:18, 딤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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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집의 특정 부분을 짓는데 참여했던 일꾼들이 자신들이 작업한 그 벽에, 그 굴뚝에, 그 툇마루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고, 더구나 그 부분의 소유권까지 주장하려 한다면 그 집 주인을 너무 무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예가 왜 우리가 교회 앞에 특정 명칭을 붙일 수 없는지를, 그리고 교회는 그냥 교회이고 정 구별이 필요하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정도로 바울이 말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것을 너무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집 소유주의 마음을 너무 헤아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전부를 팔아 그 교회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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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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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인 주님의 몸은 또한 '소제'로 예표됩니다(레2:4). 즉 그분의 몸인 교회는 소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의 확장과 증가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제는 고운 가루와 기름과 소금과 유향은 있으되, 꿀과 누룩은 없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변화된 고운 인성과 성령(the Spirit) 그리고 그분의 죽음의 효능과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그 구성 성분으로 합니다. 또한 어떤 죄된 것이나 옛사람에 속한 천연적인 애정과 선함은 소제 안에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구약에는 이 소제가 예표로 제시되고, 신약 서신서에서는 이 소제가 그 순도를 점점 더해 가는 과정에 있고, 요한 계시록의 새예루살렘은 이 소제의 떡이 온전히 완성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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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사는 우리의 눈은 완성된 소제인 새예루살렘의 모습을 바라보며, 현재의 불순물들을 버릴 것으로 대할지, 아니면 끌어 안고 갈 대상으로 대할지를 매 순간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죄와 세상을 분별하는 것은 그래도 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인되어야 할 자아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주의적 성향, 종교성, 특별한 민족성, 특별한 문화를 분별하여 걸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등에서 이런 그리스도 자신이 아닌 이물질들을 분별하고 걸러내는 것들을 놓고 단호하게 싸웠습니다. 한번은 주의 회복 안에 있는 한 동역자 형제님이 한국 교회들에게 말씀을 공급하러 왔을 때 어떤 본문을 다루면서, '한국에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들이 문제다' 라고 했습니다. 소제 안에 그리스인, 수구디아인, 유대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참으로 이해하고 그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교회를 소제로 아는 사람입니다. 다양한 민족들과 언어들이 한데 어울려 한 몸으로 지어져 가는 역사가 50여년 이상된 주의 회복 안에서는 이에 대한 체험이 적지 않습니다. 총공회 안에서 이런 인종과 문화와 언어문제는 현재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런 부분들이 교회 안에서 왜 문제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실감하실 날이 올 수 있습니다(행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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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알들과 한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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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그분이 오신 것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많은 밀알들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다 이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참되게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떨어져 죽은 밀알과 그로 인하여 나온 많은 밀알들은 그 생명 그 본성에서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밀알들이 생명과 본성에서 죽은 한 알의 밀알과 똑같다 는 말을 들을 때 우린 아멘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총공회측 성도님들만이 이 말을 참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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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제 한 알의 밀알을 통해 산출된 이 많은 밀알들이 할일은 무엇인가? 각자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말씀을 대함으로 영양분을 빨아들여 각자의 밀알들이 자신들의 등치를 제 각각 부풀려 가는 것인가? 이것은 밀알들이 한 단계 더 전진하여 갈려지고 빻아져서 한 떡이 되는 이상을 볼 때 저절로 의문이 풀릴 수 있습니다(고전10:17). 이 한 떡은 많은 밀알들에게서 나온 것되, 성만찬 상 위에 놓여진 것은 많은 밀알들이 아니라 한 떡입니다. 각 개인이되, 각기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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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겔서의 네 생물(사람, 소, 사자, 독수리)이 사면으로 향하여 있고 각기 떨어진 것이 아님으로 독수리가 앞을 보고 나아갈 때, 다른 셋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옆걸음과 뒷걸음으로 그 독수리를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 운명입니다. 이 떡은 그런 한 떡입니다. 한국 사람 떡이 다르고, 미국 사람 떡이 다르고, 워치만 니 떡이 다르고, 백영희 떡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매주 나누는 성만찬의 떡이 어느 범위까지를 포함하는가가 그가 몸을 본 정도를 가늠케 합니다. 우주가운데 몸은 하나입니다(엡4:4). 우리가 성만찬시 상 위에 놓인 한 떡을 볼 때, 그 떡은 이 유일한 한 몸을 의미하고 그것을 대표해야 합니다. 성만찬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가도 교회론입니다. 저희들은 매주 성만찬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저희들의 주일을 지키는 주된 목적은 성만찬에 참여하고, 또 모두가 신언함으로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다른 지체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직접 말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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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맏형님, 많은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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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구주시요, 우리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맏 형님이십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우리의 맏형님이시라는 고백을 불경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말이 성경에 있기에 적극 반대는 않지만 뭔가 어색해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고백을 달콤하게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2장 11-12절은 매우 심오합니다. 즉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분에게서 났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신성만 있으신 독생자 즉 제 2격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와의 관계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여기에 구원론과 교회론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근거이듯이, ‘모두 한분에게서 났으므로’가 서로가 형제라고 불릴 수 있는 근거입니다. 형이 동생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그는 또한 교사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 관계는 교사가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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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것은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맏형처럼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롬8:29). 즉 우리가 맏 형님의 형상을 본받아 그분과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이 주님이 지금하고 계신 일이고 사도 바울을 포함한 주의 종들이 하는 일입니다(갈4:19). 물론 그분의 경배받는 신격에는 결코 참여할 수 없으며 그것은 그분의 고유영역입니다. 주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는데, 같은 피조물들끼리인 지체들끼리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대가족의 일원임을 일깨워 줍니다. 가족 중에 어떤 형은 힘도 세고 말도 잘하고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려 동생들을 잘 돌봅니다.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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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역자와 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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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 니가 하루는 교회 인도자들을 모아 놓고 교회 행정을 돌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의 간섭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 방 안에 있던 봉사자들은 다 알았습니다. 워치만 니는 어머님의 회심이후 급격한 변화를 보고 주님께 이끌렸습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가 사역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에게도 행정에 관여할 분깃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공과를 함께 통과한 이후 주의 회복 안에는 사역자의 친인척 문제에 대해서 선명한 선이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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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죽음을 그 이후의 부활영역입니다. 그러한 교회 또는 각 지역 교회들의 행정과 관리는 머리의 지시를 받는 대리권위 즉 복수의 장로들의 손에 맡겨진 것입니다. 또한 위트니스 리 사후 현재 주의 회복의 인도는 철저하게 영적 분량이 검증된 일단의 '형제들'의 어깨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들이 머리 앞에서 기도하며 서로 교통(교제)하며 한 마음 한 뜻 가운데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이든 사역이든 친인척 특히 여자가 행정에 관여하는 경우는 일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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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의 경우에도 사역자의 가족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보상은 장래에 있을 것입니다. 주의 회복 안에서 현재 위트니스 리의 미망인 자매님이 생존해 계시지만 그분이 사역이나 교회 행정에 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영적 사례들을 지켜보았고 영적 공과를 통과한 그 분량과 분깃은 수 많은 자매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고 또 한 자매로서 다른 자매들을 온전케 하는데 그 고유한 분깃을 잘 발휘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 행정에 있어서는 사역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갖는 지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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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매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 안의 한 지체로서 누린 그리스도를 말할 수는 있지만, 교회 행정에 관여하는 일이 일체 없는 기준으로는 총공회측의 다음 언급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공회분들은 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또 성경에 맞게 실행하시는 것으로 알기에, 경솔한 판단을 자제합니다. 아울러 교회론과 관련된 것이기에 아래처럼 말씀하시는 배경을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문의를 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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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번 선거를 통해 하나님께서 4층 사모님이 서부교회를 또는 서성교회 사모님이 총공회를 과거처럼 지도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을 보이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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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것 그리고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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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 길을 가다가 교회를 보았습니다(행9:4). 즉 몸과 머리가 하나로 연결된 새사람을 본 것입니다(엡2:15). 그후 그는 자기가 본 ‘하늘의 이상’(heavenly vision)을 거스리지 않기를 힘썼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건 몸을 세우는데 이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하고, 몸을 손상시키거나 더럽히는 것은 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쓴 14(13) 서신의 압축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같은 성경을 보아도 사실은 바울이 본 것을 보지는 못합니다. 단지 힌 종이 위의 검은 글씨를 읽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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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아시는 주 예수님과 그들의 대화는 늘 동문서답일 때가 많습니다 (요8:55, 57).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감추인 비밀을 말로 전했을 뿐 아니라 또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와 계시의 영이 몸을 보고 몸을 알게 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워치만 니는 어느 날 자신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동역자들에게 자기가 몸을 본 것을 말해 보라고 요청한 후 이리 저리 말을 하면 그후에 당신은 몸을 보지 못했다고 말해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같이 요청한 후 같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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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후 워치만 니가 왜 누구는 몸을 보지 못했다고 말헀는지, 또 몸을 본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공감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몸을 본 사람은 결코 개인주의 또는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몸을 보아도 그렇습니다(고전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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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만니-그리스도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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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워치만 니가 쓴 <그리스도의 몸>(한국복음서원, 2006)이라는 책(134쪽)의 목차 만을 이곳에 소개드리고 잠정적으로 교회론의 개괄적인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무명2님의 질문에 답변 하는 식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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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비밀/그리스도의 몸/ 믿는 이와 지체의 분별/몸의 공급/몸의 보호와 제한과 사역/ 몸의 권위/몸의 기름 부음/ 몸의 규율/몸의 원칙/몸의 풍성/몸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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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명2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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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형제님께서 우려하신 사항은 두가지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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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언 시간에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가르침을 반복하는 것은 우려하신 것 처럼 폐단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러한 면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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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총공회라 해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를 맹목적으로 설교시간에 반복한다며 이는 성령의 현재적 말씀이 아니라고 여기 포도가지님을 비롯하여 많은 다른 분들이 반대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저희 교회에서는 재독이 죄라며 교회를 떠나신 분들도 계십니다. 오해와 조심없음에서 비롯된 결정들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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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목사님의 설교는 그분이 돌아가신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할 수 있으며,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경우는 그리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모순되기에 저희 공회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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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에도, 저는 백목사님의 설교를 총공회 목회 현장에서 아직은 계속되어야 하며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변절이요 수정주의이며 변질, 타락이라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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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라서,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설교를 신언 시간에 계속하여 반복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지방교회 지도부나 핵심측에서는 그렇게 주장할수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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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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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이라는 학문에는, 집합, 방정식, 미분, 적분 등등 각각의 발전 분야와 단계가 있었습니다. 시대 시대 마다, 천재들이 나와 각 분야를 개척하고 집대성하여 발표하여 주었습니다. 어떤때는 같은 시기 안에서도 몇 개의 분야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경우도 있었으며, 또 어떤 때는 몇 백년동안 정체된 듯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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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어떤 사람이 현재의 수학은 죽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심지어 수학자가 눈에 도통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수학의 생명은 창의성인데, 더 이상 미분, 적분 과 같은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말은 일면 맞지만, 일면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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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수선생님, 수학선생님, 수학 교수님 등등 이런 분들이 학생들에게 수학을 열심히 가르치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기도 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데 편하도록 연구하여 공백 부분을 채우기도하며, 또 배운 그 학생들은 수학을 배워 일상에 적용도 하고 각기 다른 학문 분야에 적용하여 물리학, 전자공학, 논리학, 심지어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수학 자체에서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이 안되었기에 진정한 수학자가 없고 고목나무와 같다는 주장이 맞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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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수학 세계는 여러 분야에서 또 수학 자체 안에서도 더욱 구비하고 더욱 응용되고, 더욱 적용되어 가는 면으로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에 이 시대에 수학자가 없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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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가 피타고라스나 데카르트나 가우스와 같은 수학자가 되어야만 할수도 있지만, 그들과 같은 수학자가 나올수 있게끔 이름 없는 그들의 초등학교 산수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또, 그들이 소개한 그 수학 원리를 경제학에 적용하여 미시경제학을 개척한 사람이 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그 수학 원리를 전자공학에 적용하여 에어컨을 만든 사람이 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 : 그러나, 결국 그들이 기초로한 수학 원리의 연장선 상에 있지 이와 배치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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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가 배운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은 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교리나 교훈이 과연 우리 대에서 나올수나 있을까 할 정도로 뛰어나고 높고 깊고 여러면으로 구비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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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면에서는 발전을 못하고 새로운 움싹이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총공회가 죽었다는 표현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백목사님의 교훈을 폐하여야 할까요? 아니면, 그가 한발 내딛어 열어준 새로운 진리의 세계를 탐험하고 연구하고 구비하고 여러면으로 누려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요? 마치 미적분이 처음 발표된 이후 당시의 수학자들이 그 미적분의 원리를 수백년 동안 여러면으로 구비시킨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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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다가 더욱, 힘써 가르치고 이 교훈이 또 하나의 백영희 목사님이 될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나를 포함하여)들을 향하여 나아갈수 있도록 해야 되는게 저희들의 임무일 수 있습니다.
: : 그렇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현재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도록 또 순종할 수 있도록 나와 교인을 진리로 양육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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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냐하면, 수학에서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공식과 증명과 원리를 가르치는 것 자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현실에서 여러 문제들을 통하여 풀어 나가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지, 선생님의 몫은 아닙니다.
: : 공회 목사님이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을 아직은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수학원리를 가르치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공식을 가지고 각자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 출제자이신 성령님과 문제를 풀어야될 학생 즉 교인들 각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목사님이 새로운 교훈과 교리가 없다하여 수학원리가 아닌 소설을 가르친다면 그는 국어 선생님이지 수학 선생님은 아니시듯이, 그가 백목사님의 교훈을 설교시간에 반복하여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는 공회 목회자가 아니요 그냥 일반 교계의 목회자로 나가시는 것이 양심적이라 봅니다. 수학 선생님이 소설을 가르쳐 놓고선 또는 포도가지님 처럼 수학시간 자체를 폐하여 놓고선 또는 학교를 뛰쳐나가 옆의 음악학교에 입학시켜 놓고선 학생들에게 수학 시험장인 현실에 나가서 다양한 2차방정식 문제를 풀어 합격하라고 하면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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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지방교회 지도부에서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가르침을 신언 시간에 반복하는 제도를 유지하시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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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다만, 주님 주신 상황과 입장에 따라 유연하고 지혜롭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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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제님께서 우려하신 그 폐단은 지방교회 일부에서 유연하게 적용할수도 있는 제도를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엄격히 지키시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까지 강하게 고집할 제도는 아니었는데, 원래의 교훈에서 변질되는 많은 사례를 보고 겪으면서 유연성과 원래 취지을 잃었다고 봅니다. 공회에서는 백목사님의 교훈을 변질됨 없이 그대로 전하면서도 유연하고 지혜롭게 적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지방교회에서도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교훈을 더 나은 교훈이 나오기까지 변질됨 없이 그대로 후대와 형제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유연함을 유지하는 방편을 제도적으로 갖추셨으면 해서 그 방법(정상적인 예배, 새벽예배, 5월 8월 집회, 재독, 실시간, 권찰회, 구역장 제도, 반사제도, 교역자신임투표, 진리전원일치 제도, 성경헌법제도 등등)을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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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론, 저희 총공회 안에서도, 본인 교회의 교인 구성원들의 귀는 트이지 않았는데도 재독만 고집하시는 목사님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는 신앙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무례하고 과격하며 무식한 행동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그 설교에 귀가 트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그러시면 안되는 것은 불신 세상에서도 상식입니다. 이런면에서는 총공회의 제도도 완벽하다고 볼순 없으며 그러한 폐단이 커진다면 원 취지와 본질적인 교훈을 해치지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제도를 개선할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지방교회의 폐단을 없애는 데는 현재 공회의 제도가 유용하게 참고가 되실수도 있다고 보기에 소개를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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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원래 저는 'help1님의 정리본'에 형제님이 우려하신 그 부분에 대한 것 까지 포함하여 공회의 지방교회 교회론에 대한 입장과 아쉬움과 소개와 대안과 기대가 포함되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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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선 급한대로 이 정도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실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시간이 없어 여기서 마치고 나머지 부분은 정리본에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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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다음 글이 이어지기 까지 지방교회 분들의 지적과 보완의 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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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의 이전 글에 대하여, 주님사랑 님의 해명 여지 의사가 있으셨습니다. 이번에 적은 이 글에 덧 붙여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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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가지 말씀을 적어주신다면, 다음에 제가 드릴 글에 서로를 잘 몰라 실수할수도 있는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서로에게 많은 유익한 대화가 될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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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히, 고린도전서 12장에 한 지체 안에 여러 직분이 있음과 그 정당성을 강조하신 성경이 있음에도 이를 어떻게 읽고 적용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 : 또, 주님사랑님이 알려주신 주석 사이트는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산만합니다. 오래전에 워치만 리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서를 사서 일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도 여러면에서 내용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진의와 생명을 파악하는데는 충분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주석 책이나 사이트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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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글이 올라오기 전이라도 지적하실 부분이나 저의 오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주님사람 님을 비롯하여 형제님 그리고 LA님 그외에도 많은 지방교회 핵심 내부 교인 분들께서 미리 글을 적어 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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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혹시나 해서,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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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라도 형제님께서 더 나은 성경이 있는데도 위트니스 리 교훈이 꼭 필요하냐는 주장으로 까지 나가실까봐 덧 붙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을 주기도 했지만, 설교의 정당성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성경이 직접적인 복음이 되겠지만, 특정인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감이 임하는 형제도 있습니다. 현재 지방교회 지도부에 계신 많은 분들은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저나 형제님이 백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접하는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를 경험하고 계신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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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신자나 지방교회 일부 분들이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고서 지도부와 같이 아직 진리와 영감을 경험하지 못하신다면, 그것이 반드시 제도상의 문제만은 아닐 것으로도 추측되어 집니다. 이에 대한 이해도 부탁드립니다. 제도말고 어떤 다른 점이 원인일지 혹 생각 나신다면 상술하여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은 중에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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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목록
- 공회 교회론 정리 발표시 부탁
- 확인 감사, 같은 자세 부탁
- 교회론 관련 확인 부탁 -백목사님 자료로
- 요7:39의 그영(the Spirit) 관련 참고자료
- 부탁하신 백목사님의 언급
- 개인교회를 지지하는 성구 1-1
-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의사진행 발언)
- 총공회 교회론 소개글- 감사드립니다.
- 에클레시아(교회)의 하나인 면과 증거(표현)하는면
- 이와 관련하여 확인된 공회 내부의 언급
- 신언의 목적과 효용 등 몇가지 문의드립니다.
- 박만수님 글의 출처 부탁
- 몇가지 더 부탁드립니다.
-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2)
- 주의 회복의 교회론 2차 보완- 문답식(2-1)
- 주의 회복의 교회론 1차 보완- 일반
- 다음 글이 이어지기 까지 지방교회 분들의 지적과 보완의 글을 기대합니다
-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 부탁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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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님과 주님사랑과 무명2님께 드리는 글
- 아침부흥책자와 워치만 니 인용, 부탁
- 대동소이라는 말씀-추가 해명
- 지방교회 내부에서 제안하는 자료 - (지방교회 내부 입장)
- 대동소이라는 말씀
- 해명에서 빠진 내용 -추가 해명
- 해명에서 빠진 내용 (제-관)
- 지방교회가 뼈 아프게 들어 봐야 할 권면 - 해명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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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 역사와 한 교회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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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사랑님께 한 번더 말씀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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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절차 (343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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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위치와 성만찬 횟수-주의 회복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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