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감사, 같은 자세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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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0 23


'주님사랑'님이 지방교회의 한지방 한교회주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지방교회의 공식입장이면 그 누구도 지방교회의 지방교회론을 이단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거의 모든 교파들의 교회론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교파의 교회론이든 정확히 일치하는 곳은 없습니다. 대동소이입니다. 그 대동소이 중에 지방교회의 '한지방 한교회주의'도 당연히 들어간다고 보입니다. 또 모든 교회들의 공통 깨달음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더이상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남들이 달리 말한다면 그것은 차원이 달라질 문제라고 봅니다. 지방교회의 다른 교인들이 우리 주변에 살면서 '주님사랑'님과 다르게 언행한 것이 있다면 지방교회의 진의를 모르는 교인들의 실수라고 생각하면 될 것같습니다. 어느 교회나 제대로 잘 알고 믿는 사람은 적고 잘 모르고 배우며 자라가는 교인은 많은 법인데 잘 모르고 말한 사람의 말로 그 교회를 정죄한다면 예수님도 대통령후보로 나선 분으로 매도되어도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를 바로 붙여 설명드려서 죄송한데...
전국의 지방교회 교인들이 모두가 '주님사랑'님처럼 이렇게 글을 적고 이렇게 말씀을 확고하게 다 해왔을 것이면 사실 이 문제 때문에 그렇게 분란이 오래동안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주님사랑'님처럼 정확히 알고 정확히 증거하는 분들은 적을 것이고 다른 교회 교인들과 대화 과정에서 오해소지는 있었다고 보입니다. 지방교회 전체 회원을 정확무오하게 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에는 반대로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지방교회 자료에서 목회자를 두지 않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일반교회 목사들의 횡포 고압적인 자세가 구약 제사장이나 천주교 신부제도의 폐단이라고 비판할 만큼 된것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의 원래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는 지방교인에게서 지방교회 이야기를 듣고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것이나, 지방교회가 일반교회의 원래 본질을 잘못 알고 탈선한 이들의 주장이나 그들의 행동을 가지고 일반교회 전부를 비판하게 된다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교회 측에서 목사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일반 교파 거의 전부가 만인제사장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의 잘못은 교회의 목사제도의 잘못이 아니라 탈선한 목사 노릇을 하는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잘못이라는 점입니다. 지방교회에 어떤 잘못이나 이탈 교인이 있다 해도 그들은 지방교회를 잘못 알았다며 내부적으로 선을 긋는 것과 같은 원칙을 일반교회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교회의 목사제도가 목사를 교인 중 한 사람으로 보고 목사가 한 몸에 각지체의 맡은 일이 다른 것처럼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반교회가 지방교회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고 다른 점이 있다면 과제로 두고 지켜보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지방교회 역시 일반교회의 목사제도를 일방적으로 정죄하지 않는 것이 마7:12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공회는 지방교회와 비교하면 일반 교회들과 훨씬 가깝게 접하며 삽니다. 그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반 교회의 목사 제도의 문제점을 지방교회보다 더 잘알지 않을까요? 저희가 일반교회 목사제도를 비판하고 나서려면 입에 다 담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핵심 몇 가지 기본 문제 외에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 제도를 만든 취지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고 지방교회식으로 비판하고 나설 일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 교인 1인의 언행에 일반 교계가 전부 들고 나선다면 너무 우스운 꼴이듯이, 지방교회가 스스로의 존립이유와 기반을 설명할 때 일반교회의 문제점 중에서 과도하게 대응하는 점들이 많다고 느낍니다. 바로 그 차이가 공회와 지방교회의 교회론 차이라고 느낍니다.

일제시기에 한국교회가 모두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교회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교회는 제가 알기로 백 목사님 목회하던 교회 하나뿐입니다. 해방이 되자 재건파라는 곳은 신사참배를 한 번이라도 했던 예배당은 불을 지르든 부셔버리든 아니면 그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고신교단은 예배당 자체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지은 교인과 목회자의 회개문제만 대상으로 삼아야지 건물 자체를 두고 싸우지는 말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재건교회와 고신교단은 둘이 아니고 모든 면에서 하나였습니다. 둘이 나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 예배당 논쟁만 두고 말한다면 고신 입장입니다. 총공회의 모든 입장은 항상 이런 원칙입니다. 싸울 대상을 삼았을 때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양보가 없으나 싸우기 전에 싸울 대상인지를 철저하게 따지고 살피자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진리를 위해 싸울 사람은 싸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고행주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가 싸울 대상으로 삼은 일반교회의 잘못에 대해 공회가 대처한 것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트니스 리라는 분에서부터 지방교회는 본격적으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세월이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입니다.



상기 '주님사랑'님의 글을 읽다가 '예수님의 인성' 말씀한 것이 있어 백 목사님의 설교 자료 하나를 소개합니다. 1980년 3월 29일의 설교 내용 일부입니다. 1960년에 있었던 일인데 평생에 자주 인용하신 경험담입니다.


...제가 여수에 가 가지고서 애양원교회 집회할 때에 그 때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는 그것을 말을 했더니마는 당회에서 그만 나서 가지고 장로들이 나서 가지고 이거는 이럴 수가 없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니 이거 무슨 소리냐? 이래 가지고서 시비가 나 가지고서 아주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 때 장로들은 그것을 판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담임) 목사는 서(현식)목사인데 서목사도 판정을 못해요. 이런데 그때에 여 집사들이 문둥이 여집사들이 와 나서 가지고서 아 예수님의 인성은 동정녀 마리아의 피와 살을 타고 났는데 피조물이지 그 뭐이냐고 우리는 지금 몰랐는데 들으니까 피조물이 분명하다 이렇게 시비를 해 가지고서 장로 하나는 참석을 안하고 있다가 마지막 날은 자기가 자복을 하고서 와가지고 참석을 했습니다.
참석을 했지마는 고것을 한명동 목사님(고신 창설 한상동 목사님 동생, 고신의 전체 총무)이 그때 저를 지금 아주 정죄하고 대적해서 한창 대적하고 있는 판입니다. 담임목사 서목사라로 하는 그 목사님이 믿음이 없어요. 손양원 목사님이 후계자로 세웠는데 믿음없는 사람을 세웠어. 그런 면에 보면 사람에 대한 무식이라. 지난 뒤에 보니 무식 같애요. 그분을 세웠는데 그분이 알랑거리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한명동 목사님에게 와 가지고서 이렇게 높이 들리게 돼서 나를 팔았다 그거요.

'그분이 와 가지고 집회를 하는데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까 고려신학교에서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그 불가침, 불가침의 그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인성을 뭐 피조물이니 뭣이니 이 따위 소리 한다고. 고려신학교에서 크게 발칵 야단이 났는데 그것이 널리 퍼져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야단이 났는데 가만히 재고해서 보니까 그것을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 아니고 그러면 창조주라 해야 되겠느냐? 피조물이라 해야 되겠느냐? 이것을 조금 생각해보니까 그들도 확실히 판정이 나서 그만 아 이걸 주장하면 우리 수치다 해가지고 다시 주장을 안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이 한 한 달포나 갔습니다. 한 달포 그 안에서 우글우글 끓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 그러나 피조물이지마는 말하자면 피조물이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니 뭐 창조주니 그렇게 구별할 게 뭐 있느냐? 이래 가지고서 범벅거려서 그만 피조물이지마는 그렇게 할 게 뭐 있느냐? 그 말하는 것은 너무 당돌하다.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말했지마는 예수님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인데 예수의 마음이라는 것은 예수가 이래 가지고 모든 피조물 위에 올라간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 마음 품고 그 생활하면 올라갈 수 있는데 예수님의 신성이 올라갔으면 올라갈 게 뭐 있으며 예수님이신데 올라가고 내리갈 게 뭐 있습니까?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인데 피조물로서는 그래 가지고서 올라 갔기 때문에 우리도 피조물인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 인성의 공로를 힘입어서 그 마음을 품고 그 생활하며는 예수님의 피조물인 예수님의 인성이 올라간 그 위치에 피조물인 우리들도 올라갈 수가 있다 그말이요.

그래서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신성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뭐 그 보좌에 새로 어데 앉을 게 뭐 있습니까? 그 대해서 인성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 도리를 똑똑히 들어 인성을 피조물이라 하는 것을 드러내야 우리 구원이 확실하지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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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저희는 전 세계에서 약 5천 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구약 다니엘서와 스가랴서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참석한 성도들은 일주일 동안 하루 오후와 밤 두번 집회가 있고, 오전 내내 전날 것을 복습하고 그날 것을 예습합니다. 총공회처럼 저희도 휴일만 있으면 모여서 말씀을 듣고 추구합니다(일년 두 차례 여름 겨울 일주일씩 성경말씀 추구집회, 구정연휴, 현충일 연휴 , 노동절 연휴(미국기준), 추석 (추수감사절) 집회, 그외에 인도하는 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두 번 더 모임). 주의 회복의 초기부터 세상 명절 때 세간의 조류와 분별되어 말씀과 기도와 한 몸 안의 섞임을 추구해 왔습니다. 조금 바쁜 일정 중에 잠시 짬을 내어 답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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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에 쓰신 내용 중에서 쟁점이 될만한 부분만 살리고, 그 밑에 해명의 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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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방교회 내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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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또는 질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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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95글을 읽으며 '주님사랑'님께서는 지방교회나 일반교파나 대동소이라고 설명을 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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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3332번의 '형제'님은 지방교회 안에서 오래 계셨던 분입니다. 지금도 지방교회의 운영체계를 긍정적으로 보시고요. 여기서도 지방교회의 장점을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다만 위트니스 리 한분에 막혀 있다는 것만 반대합니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운영 방법론에만 이견이 계신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야 서로 자기에게 은혜되는 주관적 체험이기 때문에 '형제'님의 체험이나 반론이 틀렸다 할 수는 없겠지요? 제 눈에는 3332번의 '형제'님이 과거 출석하던 주거지 주변의 지방교회나 '형제'님이 지금 몇 가정 따로 모이는 교회나 꼭같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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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1) ‘지방교회나 일반 교파나 대동소이하다’ 라는 말씀은 우리가 거듭알 때 얻은 생명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 생명의 목적은 믿는 사람들 안에서 그 생명 만으로 충만되는 것입니다. 이와 다른 타락의 산물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끝났고, 또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 안의 씻는 물로 씻겨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구속받은 저희들 안에서 영과 혼과 몸까지 충만됨으로 한 새사람과 한 몸을 이루는 것만을 자나 깨나 소망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다른 단체들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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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트니스리나 워치만니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인 새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갔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의 타는 불을 늘 마음에 품고 산 주 안에 신실한 형제님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이 본 것들을 함께 보고, 그분들이 살았던 그 세계를 함께 공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속에서 (워치만니나) 위트니스리가 걸림돌이 되었다면, 아마도 본 것이 다르거나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저희와 같은 길을 가기를 소원하지만, 각자가 자기가 본 그 길을 갈뿐입니다. 본 만큼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몸입니다. 몸 자체는 서로 서로를 향하여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몸 안에는 질서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에 수 많은 가정 모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 안에 두 교회, 세 교회..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님이 가정에서 몇분과 모이더라도 여전히 자신들을 <그 지방 안에 있는 교회의 일원> 으로 여기는지, 아닌지가 그 모임의 성격을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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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또는 질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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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것은 3332번 '형제'님이 과거 XX시 CC구 DD동에서 지방교회를 다니셨는데 지금은 DD동에 있는 '형제'님 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 가정이 예배를 드린다면 XX시 CC구 DD동의 지방교회는 2개가 되었다고 보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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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 2) 우선 한 지역에 두 개 세 개…의 지방 교회들이 있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신약의 서신서들을 서로 자기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지방에는 늘 하나의 교회만 있었습니다(행14:23, 딛1:5). 그러나 여전히 그들 모두가 한 몸의 일부 임으로 그 지방만이 아니라 그 지방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서신도 다른 지방에 있는 교회들과도 돌려 읽었고(골4:16), 특정 지방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서신도 다른 몸 안의 지체들(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도 함께 수신인으로 삼기도 했습니다(고전1:2). 이것이 몸이요, 교회입니다. 따라서 한 지방에 여러 모임이 있을 경우 어느 모임이 더 정당한가 하는 것은 어떤 태도와 동기로 그렇게 모이는가에 따라 평가될 일입니다. 만일 분열의 영 안에서 모였다면, 그 지방 안에 있는 교회가 분열된 것일 뿐, 한 개의 교회가 두 개 또는 세 개의 교회가 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여전히 한 지방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태도와 영만 있다면 실제적인 모임은 둘, 셋이 아니라 천개가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수 많은 가정 집에서 모여 떡을 떼고 말씀을 나누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교회간증을 유지했던 초기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행8:1)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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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또는 질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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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만수라는 분이 지방교회 내부인이 아니어서 그분의 말씀은 모두 무시를 한다쳐도 저로서는 그분이 언급했던 '중국의 집교회운동' '스테판 강' '왕중생' 'LA이주후의 변형' '위트니스 리 체제로 가는 것에 대해 워치만 니 교훈이 변질'이라는 이러한 주장들은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수가 있고 이런 주장들은 지방교회에서 나온분들이나 현재 지방교회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며 워치만 니의 원래 입장을 유지하자는 입장을 가진 분들이 제기하는데 지방교회측에서 이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글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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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3) 저희는 진리에 대한 왜곡은 반드시 바로 잡거나 해명합니다. 그러나 ‘사실관계’에 대한 왜곡은 경중을 보아가며 다룹니다. 위 열거하신 항목들은 거의 대부분 (매우 죄송하지만)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수준 정도의 말’로 평가합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간의 이간질은 음부로부터 올라온 말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특히 지방 입장을 워치만니는 유연하게 주장했는데, 위트니스리가 강하게 주장하고 고집하여 변질되었다는 말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시킨 것입니다. 오히려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보고 말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실천하려고 함으로 위에서 언급된 이름과 일부 이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점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구, 사역의 재고)(한국복음서원) 제 5장 ‘사도들이 세운 교회들’, 제6장 ‘합일과 분열의 근거’ (143-225쪽)만 읽어 보아도 금방 알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저 하기 좋은 말을 임의로 지어내어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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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공회 내부에도 백영희 목사님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실행하려는 분들과 현실에 맞게 수정하려는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주의 회복 안에도 이런 차이가 일부 있었지만, 결국 몸 안에 고운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 이외에 다른 것들은 다 이물질들이요, 몸 안의 본성을 변질시킬 수 있는 누룩일 뿐입니다. 점과 주름과 흠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시려는 주님의 표준을 사람이 임의로 낮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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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또는 질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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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지방교회는 세계의 모든교단의 분열을 다 비판을 해놓고 내부에서 분열이 나올 때는 타교단보다 설명할 수있는 입지가 훨씬 없을듯합니다. 설명과정에서 지방교회의 발전과정을 곳곳에서 설명을 하셨는데 1950년의 지방교회가 자신들의 그시대 기준으로 타교파들을 정죄하고 그리고 1950년대의 지방교회가 1980년대가 되면서 변화된 기준으로 가지고 1980년대 타교파들을 정죄할 때는 1950년대의 지방교회 자신들도 비판을 해보셨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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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4) 저희는 스스로를 높은 곳에 두지 않고, 성경의 표준 앞에 저희를 포함한 모두를 가져 갑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가지신 기준에 부합한가 아닌가 만을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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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른 지방교회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말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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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또는 질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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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사랑'님께서 제 글을 설명해 주시면서 다른 교회들도 긍정한다는 말씀이 유독 많았습니다. 성경해석도 한쪽만 절대로 주장하지 않으시고 반대편의 해석 가능성도 곳곳에서 열어두셨습니다. 이렇게 타교회의 존재나 타교회의 성경해석이 다를수 있다고 인정을 하신다면 그동안 지방교회가 왜 따로 모이고 교류는 없고 타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 지방교회 외의 교회들은 다 잘못되었으니 지방교회로 다니라고 그토록 매어달리는지 지방교회를 다니는 분들의 인식이나 언행이 타교단은 거의 무조건 비판하고 자신들의 교회는 교인들이 모이면 모두 은혜만 되고 다 형제가 되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만 변호했는지 다른 분들에게서는 '주님사랑'님과 같은 그런 설명이나 그런 자세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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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1) 아마도 거의 대부분 인터넷 안에서 떠 돌아다니는 2차 자료들을 접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주의 회복을 어떤 형태로든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쓴 것들이라 어찌하건 ‘사실전달’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이는 주의회복을 비판하는 책을 내면서 9쪽이나 떨어진 별개의 내용을 서로 짜집기하여 펴내기도 하고, ‘..있다’라고 한 내용을 ‘…없다’ 라고 왜곡시켰다가 저희 측의 항의를 받고 정정 광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진리 문제에 대한 이견은 두 부류로 다룹니다. 우리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진리들에 대한 이견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나 타협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예수님을 창조주이자 피조물이시라고 했다고 이단이라는 소릴 듣습니다. 예수님이 참 인간이신데도 피조물이 아니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따라서 그런 비판은 들어도 개의치 않고 우리의 신앙을 고수합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우리 것만 옳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총공회측 표현대로 ‘연구과제’로 남겨 놓고, 그로 인하여 분열되어 주님의 몸을 헤치는 일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울러 총공회 측에도 그 안에서 누리시는 특별한 은혜와 분깃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희 또한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나되는 입장 위에 서 있을 때, 누리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있기에 아마도 일부 성도들의 언행에서 지적하신 그런 태도가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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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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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과 질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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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의 성경해석도 저는 지방교회의 근거만이 성경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원어나 신학 자체를 부인해버리는 정도라면 몰라도 지방교회는 원어논쟁도 하시고 신학도 공부로서는 다하고 계시는데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만 성경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도 신학의 분파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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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1) 성경은 많이 읽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영적 양식입니다. 그런데 물질 세계는 물질 세계로 통하고, 영적인 세계는 사람의 머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지, 성경 많이 읽어서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성경도 하나의 책임으로 그 안에 주제도 있을 것이고 중점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성경의 주제를 하나님의 경륜(딤전1:4)으로 보고 그 관점에서 풉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생명으로 ‘분배’하시고 더 많이 분배해 주셔서(요10:10하), 사람이 맏아들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온전한 ‘표현’이 되는 것(계3:12)을 말합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구원이요, 몸이요,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것은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기는 자 이마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새겼다고 말합니다(계3:12). 물론 그렇더라도 그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모든 구절 구절들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이 중심만 붙들고 있으면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핵심진리에 대한 이견은 목숨을 걸고 다툽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성경진리에 대한 해석은 서로 간에 ‘여지’를 남기고 그 대신 하나됨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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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과 질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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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전체를 다 연구하며 하나씩 맞추어봐야 할 터인데 지방 교회의 한 지방교회론은 헛점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 어쨌든 지방 공회의 주장은 그출발부터 타교회를 인정하게 되면 지방교회는 왜 따로 출발해야했던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요? 타교회를 인정하지 않을때가 사실 지방교회는 지방교회다웠다고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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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1) ‘(1) 성경을 볼 때 한 지방 안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었다. (2) 그 하나의 교회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을 포함한다. (3) 그 각각의 지방 교회들은 행정은 독립이지만, 한 몸의 일부임으로 한 머리와 한 생명과 한 교제를 가진다.’ 이것이 소위 ‘한지방교회론’입니다. 이 교회는 ‘타 교회’가 없고, 거듭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 주님의 ‘내 교회’ 뿐입니다. 거듭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교회임으로 교회로 인정하는 것이요, 지방적인 교회를 말함은 그것이 저희가 성경에서 발견한 가장 성경에 근접한 교회론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보다 더 성경적인 교회론이 있다면 귀를 열고 듣고 배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비밀이 교회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교회가 교회로 다가오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교회는 여전히 풀수 없는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본 자도 주님의 긍휼이요, 보지 못한 자도 같은 한 몸 안의 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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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적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할 말만 간략하게 쓰다보니, 저 역시 저의 투박함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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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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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만수님이 지방교회 안에 계셨던 분이 아니라면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해도 직접자료가 될 수 없으니 그분의 글을 참고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저는 그분의 주장은 일단 다접겠습니다. 3395글을 읽으며 '주님사랑'님께서는 지방교회나 일반교파나 대동소이라고 설명을 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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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방교회 내의 분열
: : 그렇지만 3332번의 '형제'님은 지방교회 안에서 오래 계셨던 분입니다. 지금도 지방교회의 운영체계를 긍정적으로 보시고요. 여기서도 지방교회의 장점을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다만 위트니스 리 한분에 막혀 있다는 것만 반대합니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운영 방법론에만 이견이 계신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야 서로 자기에게 은혜되는 주관적 체험이기 때문에 '형제'님의 체험이나 반론이 틀렸다 할 수는 없겠지요? 제 눈에는 3332번의 '형제'님이 과거 출석하던 주거지 주변의 지방교회나 '형제'님이 지금 몇 가정 따로 모이는 교회나 꼭같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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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한 것은 3332번 '형제'님이 과거 XX시 CC구 DD동에서 지방교회를 다니셨는데 지금은 DD동에 있는 '형제'님 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 가정이 예배를 드린다면 XX시 CC구 DD동의 지방교회는 2개가 되었다고 보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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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만수라는 분이 지방교회 내부인이 아니어서 그분의 말씀은 모두 무시를 한다쳐도 저로서는 그분이 언급했던 '중국의 집교회운동' '스테판 강' '왕중생' 'LA이주후의 변형' '위트니스 리 체제로 가는 것에 대해 워치만 니 교훈이 변질'이라는 이러한 주장들은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수가 있고 이런 주장들은 지방교회에서 나온분들이나 현재 지방교회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며 워치만 니의 원래 입장을 유지하자는 입장을 가진 분들이 제기하는데 지방교회측에서 이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글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지방교회 내에서조차 분열이 있다는 사실이며 그런 사실을 가지고 지방교회 내부에서는 '한지방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주님사랑'님께서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A라 하고 같은 지방교회 내에서도 '주님사랑'님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B라고 한다면 한지방 안에서 지방교회가 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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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지방교회는 출발한지가 얼마되지 않으니까 이제 몇 부류로만 나뉜듯한데 장로교나 감리교인들 수백년 역사를 통해 그들의 초창기부터 오늘처럼 많이 나누어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두 초창기에는 자기 교파의 정신을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주장해도 될만큼 내부 단결도 되고 또 자기주장과 실제 운영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가 흘러가면서 오늘처럼 되었다고 봅니다. 형제교회의 주장을 아무리 많이 들어봐도 본질적인 문제는 누가 성경을 근거로 들지를 못해서 말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증인까지도 그렇습니다. 지방교회내에서 두파로 나뉘고 세파로 나뉠 때 서로가 자기들만 지방교회고 나머지는 이해를 하지못해서 나간것이며 정말 지방교회를 안다면 나갈수 없다는 말씀은 서로다 할수가 있을 터인데 타교단의 난립은 질타하고 지방교회 내부를 두고는 지방교회가 내부의 분열이나 갈등의 역사를 다 드러내놓고도 스스로 자기 논리를 설명할수가 있을까요? 타교단도 분열은 안된다는 것은 모두 목을 놓아 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지방교회는 세계의 모든교단의 분열을 다비판을 해놓고 내부에서 분열이 나올 때는 타교단보다 설명할 수있는 입지가 훨씬 없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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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명과정에서 지방교회의 발전과정을 곳곳에서 설명을 하셨는데 1950년의 지방교회가 자신들의 그시대 기준으로 타교파들을 정죄하고 그리고 1950년대의 지방교회가 1980년대가 되면서 변화된 기준으로 가지고 1980년대 타교파들을 정죄할 때는 1950년대의 지방교회 자신들도 비판을 해보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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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다른 지방교회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말씀들이 많았는데
: : '주님사랑'님께서 제 글을 설명해 주시면서 다른 교회들도 긍정한다는 말씀이 유독 많았습니다. 성경해석도 한쪽만 절대로 주장하지 않으시고 반대편의 해석 가능성도 곳곳에서 열어두셨습니다. 이렇게 타교회의 존재나 타교회의 성경해석이 다를수 있다고 인정을 하신다면 그동안 지방교회가 왜 따로 모이고 교류는 없고 타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 지방교회 외의 교회들은 다 잘못되었으니 지방교회로 다니라고 그토록 매어달리는지 지방교회를 다니는 분들의 인식이나 언행이 타교단은 거의 무조건 비판하고 자신들의 교회는 교인들이 모이면 모두 은혜만 되고 다 형제가 되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만 변호했는지 다른 분들에게서는 '주님사랑'님과 같은 그런 설명이나 그런 자세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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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어느교회든지 자기들의 길을 절대성 있는 무슨 하나의 진리라고 강하게 치고 나오는 곳들은 초기에 모두가 하나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내면의 스펙트럼이 표출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지방교회도 그렇게 본다면 예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너무 외쳤기 때문에 만일 공산주의 세계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이 불평등은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 아무리 보잘것이 없다해도 공산주의의 출발 근본이념인 이상 공산주의는 그사상을 접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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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성경해석
: : 지방교회의 성경해석도 저는 지방교회의 근거만이 성경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좀 준비한 것이 있어서 지방교회만 존재했다는 주장보다 그반대 주장의 근거가 될수 있는 성구가 훨씬 많다고 입증을 하고 싶었는데 서점에서 잠깐 읽어본 일반교회들의 책에도 자파논리들은 너무 많아서 굳이 저까지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방교회의 주장에는 성구를 구체적으로 인용하면서 지방교회 입장을 성경에 근거가 확실하다고 자꾸 그러시지만 '주님사랑'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대로 어떤 때는 문자로 어떤 때는 비유로 해석을 한다고 하셨는데 단 한곳이라도 문자해석이든 알레고리해석이든 다른 원칙을 적용했다면 이후로는 타교파나 타교회 교인들의 성경해석을 두고 대화할 때는 무조건 내가 읽은 성구만 자꾸 거론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총공회는 신학을 통해 목회자를 만들거나 신학을 통해 원어를 공부하고 인용하는 그런 신학개념이 없습니다. 지방교회는 원어에 조예가 깊다는 인상을 많이 느낍니다. 저희처럼 원어나 신학 자체를 부인해버리는 정도라면 몰라도 지방교회는 원어논쟁도 하시고 신학도 공부로서는 다하고 계시는데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만 성경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도 신학의 분파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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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에 장로교가 어디있고 침례교가 어디있고 교파교회가 어디있느냐 성구를 대봐라 이런 식으로 지방교인들이 말씀들을 합니다. 지방교회가 어디있는지 설명해봐라 하면 성구는 없고 해석만 나옵니다. 지방교회가 해석으로 설명을 하려면 타교회도 설명을 통해 왜 침례교회가 옳은지 왜 장로교회가 옳고 감리교회가 옳은지 설명하는 말을 들어주셔야 할 것이고 성구를 어디라도 갖다대면 상대방 의견을 부정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대목에서는 성경 전체를 다 연구하며 하나씩 맞추어봐야 할터인데 지방교회의 한지방교회론은 헛점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한번 정리를 해보려다가 애당초 할 필요도 없다고 느낄만큼 성구가 많아서 포기를 했습니다. 지방교인들과 대하면서 성경의 한곳만 보고 있다는 느낌을 너무 크게 받습니다. 성경을 하루에 몇장씩 읽는다는 그런 말씀도 계셨는데 총공회 초등학생들도 그런 정도로 성경을 읽는것은 허다합니다. 무식해도 일반교인들이 1년 5독이 기준인데 하루 10장에서 20장을 읽어야 합니다. 일반교인들이 1년에 10독이상 읽는 것이 공회는 흔합니다. 목회자들이 100독을 읽어야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인용할 때는 백목사님부터 참으로 조심합니다. 갖다 대는 것은 쉬운데 성경 전부를 다 읽고 한곳에도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구과제'로 둔다는 말씀들을 공회에서는 많이 합니다. 어쨌든 지방공회의 주장은 그출발부터 타교회를 인정하게 되면 지방교회는 왜 따로 출발해야했던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요? 타교회를 인정하지 않을때가 사실 지방교회는 지방교회다웠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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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이 투박한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여기는 세상공부를 하지 않고 노동이나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사는 교인들이 많아서 말이 곱지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사랑'님께서는 너무 자상하게 너그럽게 설명을 하셔서 존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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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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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만수님의 지적에 대한 간략한 추가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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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추가해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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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만수'님과 '등대로'님의 글을 비교하면 '박만수'님의 비판은 크게 3가지며 분설하면 12가지 정도였고 '등대로'님께서 해명하신 부분은 5) 6) 8) 10) 등의 4가지라고 보입니다. 주로 역사나 현황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입장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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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만수 님께서 제기하신 내용을 제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았습니다.
: : : 1. 지방교회 역사
: : : 1)중국의 집교회 운동, 지도층의 사도성 문제, 분파적 독선주의로 이단시비
: : : 2)니토생, 이상수, 스테픈 캉, LA 이주후 변형, 비전의복구 비판, 왕중생 문제로 한국교회 갈등
: : : 3)모라비아 교회의 역사는 종교개혁 이전이나, 지방교회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회복을 정체성”
: : :
: : :  해명: 우선 박만수님은 주의 회복(타칭 지방교회) 안에서 한번도 신앙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단지 라이프 스터디를 조금 읽었고, 킹제임스만이 무오류의 성경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위치에서 자기 소견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하는 것이 또 다른 분쟁을 가져올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보다 라고 지나칠 뿐입니다.
: : :
: : : 참고로 주의 회복 안의 성도들이 이 땅에서 관심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경륜 이고(딤전1:4),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입니다(고후5:10). 전자는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며, 후자는 우리가 살았던 행적의 성적표입니다. 지난 소위 지방 교회들의 역사는 길게는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행8:1)로부터이나 워치만 니로부터는 약 90여년을 지나왔습니다. 현재 총공회가 그런 작업을 해 오고 계시듯이 주의 회복도 이미 진작부터 초기부터 자체 내에서 발생했던 기록들을 있는 그대로 다 상세하게 기록하여 책으로 펴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역사들을 통해 주님 앞에서 배워야 할 계시와 교훈들을 후대에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많은 내용들을 여기서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참으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도합 약 천 여쪽 되는 <역사와 계시>(상,하)(한국복음서원)라는 책자들을 참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이 중국어이고 한국어로는 번역이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영어 번역이 아직 안 되었습니다. 현재 영문 책자만 인터넷을 통한 읽기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일단 이 부분은 아쉽지만 이런 정도로 해명을 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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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추가 해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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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지방교회 장점
: : : 4)천주교의 성직계급 거부, 형제 기초의 유기적 교회 형태, 내적 체험 중시의 경건주의”
: : :
: : :  해명: 있는 그대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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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추가해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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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지방교회 문제
: : : 5)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사도성 인정으로 두 분의 무오류성이 시험대에 올랐고
: : : 6)ASV이 원어에 가장 가깝다 하였으나 실제 회복역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기초했고
: : : 7)성경해석에서 카톨릭의 알레고리해석을 일관하여 경건주의를 넘어 신비주의 늪에 빠짐
: : : 8)양태론 삼일론, 신인합일, 부분휴거, 사후 제3의 훈련소, 말씀먹기, 주의 이름 부르기, 신언
: : : 9)한지방교회론을 두고 '세상 지방자치행정의 단편'을 교회의 절대 교리로 주장
: : : 10)한지방교회론을 두고 워치만 니와 다르고 중국과 대만의 워치만 니 추종자들이 비판
: : : 11)자신들만 참교회고 다른 모든 교회는 지방 입장에 서 있지 않으니 바빌론 포로상태라는 독선
: : : 12)성경보다 더 지나치게 나간 지방입장론 교리를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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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7번, 해명) 알레고리, 신비주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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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형제회 배경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 말은 이 분들의 성경해석의 1차적 원칙은 글자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문자주의입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이 말이 안 될 때(예를 들어,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2차적으로 영적인 해석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두 단계가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성경해석의 골격입니다. 그외에 특정 성경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관련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해석을 시도하나(회복역 성경 각주들과 관주들이 그 증거), 어떤 이들은 이것을 문자주의라고 비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정반대로 이것을 알레고리라고 비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판하도록 자유를 줄 뿐입니다. 또한 생명의 체험과 같은 주관적인 방면들이나 계시로 알수 있는 성경의 깊은 부분들을 본인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이고 또한 인간이성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이 ‘신비주의’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또한 그렇게 말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모든 비판에 다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 : : 저희에게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계시되고 체험되고 그분의 말씀의 실재를 얻는 것만이 참으로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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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9번, 해명) 지방 단위의 지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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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성경교사들을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루터교).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절대시하는 교리를 교회 구분의 기준으로 삼습니다(침례교, 장로교, 성결교). 또 어떤 이들은 거주지역을 교회와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만일 앞의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뒤의 것도 그렇게 할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공정할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것들 중 과연 어떤 것이 성경에 그 근거와 사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나 특정 지역 교회가 되는 것에있어서 성경 어디에도 특정 성경교사나 특정 진리로 나눈 사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집 교회의 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 교회들은 도시지역(city) 단위입니다. 서신서의 수신인들이 그러하고 계1:10, 행8:1, 13:1의 사례가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사례가 아예 없는 실행보다 성경에 다수의 사례가 있는 실행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많은 분들의 오해처럼 배타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거주지역 단위 내의 모든 거듭난 사람들을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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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한 ‘지방범위’로 교회를 나누는 원칙은 영원히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새예루살렘으로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교회시대라는 과도기적인 시기에만 적용됩니다. 계란껍질은 힌자와 노른자가 병아리로 부화될 때까지만 필요하고 그후엔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분열과 거역이라는 옛사람의 본성을 폭로하고 제한하는 역할을 일부 담당하는 것입니다. 주의 회복 안에서도 지방교회는 절차요 과정일 뿐 새예루살렘만이 영원하다고 가르칩니다.
: : :
: : :  11번, 해명) 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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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방교회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온 것입니다.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를 귀히 여기는 사람들만 지방교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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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2번, 지방입장과 성경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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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역시 지방입장에 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지역교회를 나누는 기준으로서 지방범위보다 더 성경적인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박만수님은 기존의 분열의 기준들에 더하여 참된 성경이라는 이슈를 가지고 참된 믿는 이들은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경이냐 아니냐, 침례냐 세례냐, 장로제도냐 감독제도냐 회중제도냐, 등등 은 한 몸을 나누는 ‘절대기준’이 결코 아닙니다. 1. 거듭 났는가, 2. 거듭난 후 어디에 거주하는가? 이 두 가지만이 교회에 관하여 우리가 물을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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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간략하게 보충하여 보았습니다.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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