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문제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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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2 00:00
공회는 가정교회로 출발하고 때가 되어 지역 교회로 자라 가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그대로 왔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란 원래부터 사용하던 자연스런 표현인데, 교권 중심의 교회에서는 이제 논의가 본격화 되는가 봅니다. 말씀에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성경을 갖다 붙이다가 나온 논리입니다. 참고 글을 올립니다. 고신에서 몇 년 전에 뜨겁게 나왔습니다.
공회의 오늘 현실에서는 고신처럼 그런 인식에서가 아니라 이 노선의 존립 형태의 당연하고 자연스런 상황으로 활성화 될 시기이므로 일단 교계의 의견을 모아 봤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찬반을 넘어 서야 할 것 같습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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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논란(고신 코람데오닷컴)Catholicsim
2007/04/26 13:41
http://blog.naver.com/greatimpact/100036806495
'가정교회' 논의를 시작하면서
곽창대 /서울중앙교회 목사
목회자나 성도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바라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일 것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란 한 단면으로 성도들이 교회생활을 즐거워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모일 때마다 행복한 성도, 행복한 장로, 행복한 목사임을 서로 고백하고 확인한다면 교회는 정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되려면 바른 진리가 선포되어지는 가운데 거룩성과 사회성과 공동체성이 바르게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필자가 갖고 있는 건강한 교회관이다. 이 모두는 다 중요하겠지만 그 중에서 한국교회나 지금 우리교회에서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은 공동체성의 구현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건강한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대로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은 불변이다. 불신자 구원과 구원 받은 성도들을 성숙한 제자로 양육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이요 최우선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교회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아닐까. 가족 공동체에도 대가족과 소가족으로 구성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교회에도 큰 가정과 작은 가정이 있다. 개 교회에 적용하면 전체 교인이 다 한 가족이지만 대가족 전체가 긴밀하게 교제를 나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그래서 소그룹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 소그룹을 작은 가정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 작은 가정인 소그룹 안에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족 공동체를 경험하고 또 그러한 건강한 소그룹들이 늘어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건강한 공동체가 되어갈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급선무는 가정의 회복이다. 깨어지고 있는 숱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정 단위로 모이는 소그룹이 중요하다. 이 소그룹에 친구나 이웃을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의 맛을 느끼게 해야 한다. 소그룹이야말로 관계전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믿음도 가장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소그룹 안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과 섬김을 행하고 경험함으로써 저절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익힐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그룹이야말로 신앙성숙의 가장 효과적인 환경이 되는 것이다.
소그룹으로 모이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가정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신약성경을 보면 초대교회는 한 도시나 지역에 지역교회가 있고 그 지역교회 안에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가정교회들은 독자적으로 주중에 한 번 이상은 모였다. 모여서는 자연스럽게 교제하고 예배 드리고 식사도 했다. 거기서 신앙적인 상담과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불신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들을 데리고 와 뜨겁게 사랑으로 맞이하여 마침내 한 가족이 되게 했다. 다시 말해서 가정교회는 신자와 불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였다. 그러다가 숫자가 많아지면 다른 넓은 장소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분가를 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부흥의 산실이 가정교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초대교회 시절의 가정교회는 예배와 교제, 교육과 섬김, 그리고 전도 등 교회로서의 모든 역할을 다했다. 가정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기 자리에서 예배만 조용히 보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께 어울려 예배했고 진정한 사랑으로 교제했다. 너무 보고 싶어서 모였다. 결속력도 대단했다. 한 번 이 가정교회에 발을 디디면 결국 한 가족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가정교회의 저력이요 생명력이다. 그래서 격심한 박해 속에서도 견딜 수가 있었다. 중국의 교회가 공산당의 박해 속에서도 부흥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무수한 가정교회의 결속력과 생명력 때문이 아닌가.
지난 12월말 필자가 섬기는 서울중앙교회의 교역자들이 3일간 금식수련회를 하면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정교회들에 대하여 집중하여 연구했다. 거기서 각자가 경험한 것과 더불어 공부하고 확신하게 된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형편에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의 비전을 이루려면 그 형태가 가정교회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아주 중대한 일이므로 우선 당회가 이 문제에 대해 차분히 연구하고 검토하도록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이 중대한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독서토론,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지도자들과의 면담, 가정교회 목회자 세미나 및 평신도 세미나 참석 등 장로와 교역자들이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준비할 것이다.
가정교회는 네 가지 기초원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1) 가정교회의 목표는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이다(마 28:19-20).
2) 가정교회가 채택하는 제자훈련(양육)의 방식은 보고 배우는 것이다(막 3:13-19).
3) 가정교회가 행하는 사역은 역할 분담이다(엡 4:11-12). 목사는 성도를 일꾼으로 구비시키는 것이며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하며 교회를 세운다. 그러므로 목양은 성도의 몫이며 목사는 성도들이 잘 목양하도록 돕는 자(코치)이다.
4) 가정교회의 기본적인 삶의 양태는 섬김이다. 가정교회의 지도자는 앞서 섬기는 자이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섬기는 현장이 가정교회이다. 섬김을 통해서 가정교회는 부흥할 것이다.
홍성철
[2007-02-09]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
우리는 가정 교회가 (household church) 성경적인가를 논쟁하기 먼저 예수님은 어떻게 가정 교회를 통해 사역했는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위해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에 먼저 그가 가르칠만한 가정을 먼저 찾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정은 그 나머지 도시와 농촌의 복음화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이 복음화 전략을 위한 초석으로서 가정 교회는 사용되었고 활용되었다. 그 증거로서 이런 패턴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이용하였고 바울 사도 역시 가정 교회를 이용하여 그 도시에 가정 교회를 늘려갔고 점차 가정 교회를 확장하였다. 따라서 도시를 복음화하고 전도하기 위한 중심 센터로서 가정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교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 가정 교회는 어떤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한 베이스 (Base)가 되었다. 예수님을 추종하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가정에서 모여 사역을 하였다. 이런 가정 교회의 패턴은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에도 복음 전도를 위한 전략적 조직으로 자리를 매기고 있다.
예수님 사역에서 가정 교회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Roger W. Gehring, House Church and Mission: The Importance of Household Structures inEarly Christianity (Peabody, MA: Hendrickson, 2004), p. 91.
예수님이 가정 교회를 사역의 모판으로 이용한 것은 이 가정 교회를 통해 종말론적인 하나님 백성들을 함께 모으기 위한 의도가 계셨음을 알아야 한다. Roger W. Gehring, House Church and Mission: The Importance of Household Structures in Early Christianity (Peabody, MA: Hendrickson, 2004), p. 47
이 가정 교회는 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니면 순회 전도했던 순회 전도에 이용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이용하였다. Richard Horsley, Sociology and the Jesus Movement (New York: Continuum, 1994). 예수님은 그의 사역에 있어서 가버나움이나 베다니에서 가정 교회를 바탕으로 사역의 베이스를 만들었다.
가정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사역의 베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의 선교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도시 마다 가정 교회를 두고 그것을 베이스로 사역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가정 교회를 바탕으로 그의 사역을 에베소, 골로새, 고린도로 그 사역을 확대하였다. 따라서 가정 교회는 복음서를 포함하여 초대 교회 신자들을 더 강력한 공동체로 만들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정 교회와 하우스 교회는 초대 교회에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Floyd Filson ‘The Significance of the Early House Churche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58 [1939], pp. 105–12.
사도 바울은 특별히 가정 교회 리더를 특별히 양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정 교회에서 자연적으로 리더는 양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서로간의 나눔과 가르침을 통해 리더쉽과 가르치는 양육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Roger W. Gehring, House Church and Mission: The Importance of Household Structures in Early Christianity (Peabody, MA: Hendrickson, 2004), pp. 201f, 210, 227,
역설적으로 초대 교회의 가정 교회에서는 여성 리더가 많이 등장한다.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서 (엡 5: 22-6:9) 교회는 가정 교회이다. p. 230).
가정교회는 유대인의 회당과 로마 사회의 길드 조직과 같은 사회 조직의 영향 아래 교회가 발전하게 하는 영향력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로 출발했다는 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 속에서 그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가정교회, 쟁점과 과제
이성구 박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변화와 갈등
존재하는 것은 늘 문제를 만난다. 개인이나 가정,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도 늘 크고 작은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어쩌면 아무 문제가 없는 때가 오히려 심각한 상황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인지도 모른다.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 문제가 있다면 일찍 노출되는 것이 좋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조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루라도 빨리 문제점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흔히 병은 자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야 서로 알고 있는 치료법을 나누고, 이름난 의사나 병원에 대한 정보를 더 빨리 얻을 수 있다.
‘가정교회’ 운동이 자칫 파문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고신교회 안에서는 당분간 피해갈 수 없는 과제가 될 것 같다. 부산노회는 ㅊ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내부 갈등이 사건화 되어 노회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노회의 중재로 문제가 조용히 해결될 것을 기대했지만 갈등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자칫 개교회 문제가 노회를 거쳐 총회로 확대될 위험이 있고, 그러다간 교회의 본질, 성격, 조직 등과 관련하여 성경적 신학적인 토론이 필요한 일이 감정적,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될 우려가 없지 않다.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성급하게 사건을 처리하려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필요 이상의 갈등과 긴장, 혹은 분란을 일으킬 수 있음을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본질과 성격에 관하여 의문이 생겨난다면 마땅히 총회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개혁장로교단(CRC)이 여성안수 문제를 두고 20년 이상 토론을 거쳤던 것처럼, 교회가 무슨 일을 섣불리 시행하려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새로운 시도를 저지하려해서는 곤란하다. 교회와 같이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확실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터무니없이 억지를 부릴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정당한 절차와 심도 있는 검토와 토론을 거쳐 보다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사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현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일방적인 비방이나, 근거 없는 왜곡은 금물이다.
교회에 논쟁이 발생하면 저마다 ‘진리’, ‘말씀’, ‘개혁주의 신학’ 등등의 가장 정통 보수적인 원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상대방을 ‘비 진리’, ‘탈 성경’, ‘반 개혁주의자’로 매도하기 일쑤다. 그래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판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도전적인 이론과 현장 앞에 선 사람들의 고민에 동참하려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막 논란이 시작되는 ‘가정교회’. 정보의 부족, 소통의 부재, 상호 이해 부족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기 전에, 10여 년 전부터 한국교회에 소개되고 도입되기 시작한 ‘가정교회’ 운동의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필자에게 주어진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정교회의 이론을 습득하고, 현장을 바르게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가정교회에 대한 이론을 분석하거나, 사역 현장을 속속들이 들여다 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관계로, 우선 필자의 눈에 비치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문제점을 일단 제기하고자 한다. 가정교회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게 되면 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진단이 이루어질 것이다.
가정교회,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정교회’ 운동은 자주 미국 휴스턴 서울침례교회의 최영기 목사와 연결된다. 그러나 가정교회 운동은 70년대에 랄프 네이버가 주창한 셀교회로 부터 추적해 보아야 한다. 2005년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랄프 네이버는 70년대 조용기목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스스로 고백한 바 있는데(http://kr.blog.yahoo.com/ lodemtrees/2291), 그는 능력 있고 성경적인 교회의 모델을 찾아 결국 셀교회를 그 대답으로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셀교회 운동을 한걸음 더 신약성경적으로 발전시킨 운동이 가정교회라는 것이 가정교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볼프강 짐존, 가정교회, 2004). 교회는 본래 대그룹모임과 소그룹 모임으로 이원화 되어 있었고, 그러한 두 날개를 통하여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였는데,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과 380년 테오도시우스 주교와 그라티안 주교의 친기독교적 명령에 의해 가정중심 교회가 화려한 성당중심의 교회로 변질되면서 핍박받던 초대교회 시대에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가정교회는 소멸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프로그램 중심으로 지나치게 화려해져 오히려 역동성을 잃어버린 오늘의 교회를 이전의 초대교회의 모습인 가정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가정교회 운동이 주창하고 있는 특징들에 관하여서는 앞으로 여러 논자들이 소개할 것으로 여겨지므로 필자는 여기서 가정교회운동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가정교회의 완전한 독립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가정교회 권위자인 짐존이나 풀러신학교 교수인 뱅크스(Robert Banks, 교회, 또 하나의 가족, 1999)는 셀교회와 가정교회의 차이를 셀교회가 각 셀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본부개념의 조직을 중시하는 데 반하여 가정교회는 자율적 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셀교회는 여전히 피라미드 구조와 프로그램 중심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반면, 가정교회야 말로 단층구조로 되어 있는 가장 신약적인 교회라는 입장이다. 교회를 부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할 때 각 가정에서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 역시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잘못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초대교회가 가정에서 모인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행2:46; 고전16:19; 몬1:20 등) 언뜻 보아 딱히 가정교회를 거부할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가정교회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정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성급함
가정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발생하는 이유들이 여럿 발견된다. 우선 가정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지나치게 성급한 변화를 요구하는 점이다. 95년 방한한 적이 있는 랄프 네이버는 전통적인 교회를 셀교회로 바꾸는 데는 적어도 25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지나치게 성급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열린 예배의 도입을 그 예로 들면서 미국교회에서도 성급한 변화를 시도하여 실패한 경우가 적지 않음에 유의할 것을 촉구 하였다. 실제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흐름을 소개받게 되면 즉시 개 교회에 도입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필요이상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쉽게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교회는 진리추구와 상관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일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워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가능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도록 목회자는 시행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과 방향을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획일화
가정교회는 그룹 인도자를 목자와 목녀, 예비목자, 대행목자 등으로 부르고, 소그룹을 목장이라고 한다. 물론 기존 교회들도 감리교가 시작한 구역모임을 다락방, 사랑방, 순, 셀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가정교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체 교회의 틀을 가정교회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가정교회의 대표격인 휴스턴 서울침례교회가 시행하고자 하는 가정교회 네트워크 등록양식에 따르면 가정교회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동일한 용어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 지역의 가정교회에서 생활하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동질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자칫 가정교회라는 틀이 우선시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한 때 한국교회에 광풍을 안겨주었던 다락방 운동 역시 ‘앞으로 모든 교회는 다락방이 될 것이다’는 식의 획일화의 위험에 빠져들어 결국 이단시되고, 다른 교회들로부터 배척을 받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구조적 변화를 겪어왔다. 가정에서 모이기 시작하던 교회는 점차 감독교회로 고착되었다. 교황 제도, 계층적 성직제도가 확립되어 갔다. 1053년에 이르러 동서방교회로 나누어지긴 했지만 감독교회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교회는 차츰 전통을 성경의 권위에 버금가는 것으로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교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신학적으로 비성경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할 뿐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교권의 폐해를 경험한 교회는 교회 정치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철저한 감독교회에 정면으로 반발하여 아예 개교회가 독립적이며 완전하다는 입장을 가진 회중교회 운동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나친 독립성이 가져다 줄 위험성에 대비하고, 예루살렘 공회로 대표되는 교회의 회의를 무시하지 않으며, 이미 초대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로의 회’를 고려한, 감독교회와 회중교회의 중간쯤에 자리한 장로교회 제도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가정교회 운동은 교회 정치적으로는 회중교회의 흐름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이미 수백 년에 걸쳐 확립된 역사를 가진 장로교회의 반발을 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오랜 전통 속에 익혀온 교회의 용어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일어나게 되는 괴리감도 적지 않은 장애거리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전통적 교회와의 단절
개혁주의 교회는 전통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이루어 온 전통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권위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교회가 역사적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가정교회는 개체의 독립성을 강조함으로써 주일 낮 예배는 가정교회 연합예배로 칭하여 진다.
지역교회의 단일성보다는 가정교회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거기에 주력하다 보면, 전통적인 모임이 불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령 일부 가정교회는 남전도회, 여전도회 등 기존의 기구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가정교회 활동에 집중하게 되면 성도들이 시간적으로 다른 모임에 여유를 가지기 힘들어 자연히 가정교회 이외의 조직은 무게를 가질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
이러한 조직의 단절은 개 교회에 내부 문제로 그치지 않고 노회나 총회단위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 다른 교회나 노회단위의 기관들과도 교제할 대응기구가 사라지면서 가정교회 중심의 교회는 결국 철저하게 개별단위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교회나 교제단위와의 연결방안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교회는 보편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말이다. 가정교회가 침례교회와 같이 개교회의 독립성과 완전성을 바탕으로 하는 회중교회에 적합한 개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직분과 사역의 괴리 발생
전통적인 교회가 가정교회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부딪힐 수 있는 어려움 중에서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역시 교회의 기존 직분과 직분에 따른 역할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일 것이다. 장로교회에서 장로, 혹은 장로들의 회인 당회의 역할은 지대하다. 대의정치 제도를 채택하는 장로교회는 장로의 회에서 예배와 관련된 영적인 일들과 기본적인 재산에 관한 일을 관리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가정교회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면 자칫 장로의 직분과 역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가정교회는 교회의 주된 활동이 개별 가정교회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목원이 목자를 선택하여 그룹을 이루게 되면서 교회의 모든 활동은 그야말로 개개 성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장로나 당회의 역할은 수렴된 의견을 종합하는 기능을 할 뿐 대부분의 일들이 자연스럽게 가정교회 목자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연 장로나 당회가 굳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지 회의를 느낄 수 있다.
가정교회에서 전통적인 직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목자 목녀 목원등의 호칭을 사용하게 되면 전통적인 장로 집사 권사의 호칭이 의미를 잃게 된다. 많은 경우 아예 한국교회 안에서 특별하게 발달한 직분명을 이름 대신 부르기보다는 아예 서로 형제자매로 호칭하도록 하여 그야말로 한 가족 됨을 느끼게 만드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다보면 그렇잖아도 권위의식에 젖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온 전통적인 교회의 직분은 점점 더 권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만약 기존의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가 사정상 가정교회의 사역에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현재 가진 직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흐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 그 괴리감은 심각해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사역에 헌신적인 사람들이 직분을 받게 되어 정상화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직분과 역할의 괴리로 인하여 심각한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정교회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파악하고 몇 개의 목장을 아우르는 ‘초원’과 같은 조직적 보완을 하고 있지만, 가정교회의 본래 의도는 철저하게 자발적이고 독립된 소그룹중심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전통적 직분 개념이 의미를 잃을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가정교회의 과제
위와 같이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가정교회에 대한 단편적인 분석은 결국 ‘가정교회의 독립성과 완전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분명히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와 성전에서 모이는 교회로 이루어졌다. 가정교회와 가정교회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지역교회를 두 축으로 초대교회가 움직여갔던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여기서 각 지역 교회는 대그룹과 소그룹의 두 가지 형태를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리를 세울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각 교파나 교단을 불문하고 바로 이러한 두 그룹의 조화를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소그룹인 가정교회가 과연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처럼 독립적이어야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초대 고린도교회 내에 이미 가정교회 간의 분파적 갈등이 발생하여 바울이 화해를 위해 애를 썼던 것을 볼 때(고전1:10-17) 가정교회를 엮어낼 교회의 존재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교회 운동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두 그룹 가운데 지나치게 소그룹, 즉 가정교회 중심으로 교회를 움직여가려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교회를 ‘독립적이고 완전한 교회’로 간주하게 될 때, 그래서 심방 교제 섬김 훈련 등 대부분의 일들을 가정교회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 때, 대그룹으로 모일 때에 필요한 장로나 당회의 역할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으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당회원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정교회를 위하여 헌신할 수 없는 경우,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맛보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개연성은 목회자가 조금만 유의하면 실재화 할 가능성은 적다.
아직 가정교회가 신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구체적인 문제를 야기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자연스러운 접촉의 장소로서의 가정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여 전도의 실제적인 장으로 삼아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다만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현재의 교회가 분열을 겪게 된다면 즉각 멈추어야 할 것이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결코 성령의 사역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그룹으로서의 교회가 겪는 교제, 섬김, 봉사의 소수 독점, 혹은 다수의 방치를 방지하고 전도의 역동성을 강화시키는 방안으로써 각광받고 있는 가정교회가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 때문에, 지나치게 가정교회의 완전성이나 독립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유의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2007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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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코닷
[2007-02-28]
홍성철님
가정교회에 대해서 연구하신 것이나 자료가 있다면 제 메일로 보내 주시면 기사화 해 드리겟습니다. choug2@hanmail.net 감사합니다
홍성철
[2007-02-27]
장로 정치와 가정 교회
한국 교회는 당회나 제직회와 같은 교회 정치구조를 갖고 있어서 이런 가정 교회가 제도가 기존의 장로 정치와 서열과 조직을 파괴하고 위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이슈는
1. 개혁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상으로 돌아간 것이 개혁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인 가정 교회를 소그룹 교회로 삼고 대그룹 교회는 주일 날 모이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참고로 초대 교회가 가정 교회로 모였던 이유는 그 당시 로마 제국이 길드 조직과 같은 상업 조직도 한 달에 한 번만 모이게 하는 로마 법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정 교회는 교회로서 로마 비밀 경찰과 관리들의 눈을 피하여 가정에서 모였기 때문에 그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2. 가정 교회를 도입하는 교회는 초기에 과도기적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 교회 시스템은 장로교 시스템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장로는 감독으로서 그 가정교회를 감독하는 장로의 본래 기능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3. 점차로 가정 교회가 초대 교회 본질로 돌아가려면 장로들과 집사들은 섬기고 훈련받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훈련 받은 가정 교회 리더가 점진적으로 장로가 되는 섬기는 제자도의 본질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는 감독 기능을 하고 가정 교회 리더는 안수 집사가 되는 방식으로 점차로 교회는 훈련 받고 훈련되는 소 그룹 교회가 될 때 대 그룹 교회는 보다 더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4. 장로교 정치상 장로는 다스리는 직책으로 인삭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사고를 가진 장로들은 가 정교회를 감독하는 직책으로 가정 교회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5. 그러나 교회에서는 다스리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요, 섬기는 제자도의 사고의 전환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보다 건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가정교회 만족도 높다
기성교회보다 리더십 등 4개 분야서 좋은 평가
천헌옥 /편집장 choug2@lycos.co.kr
먼저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가정교회의 성경적 배경'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 김낙춘 목사가 기독교유적답사를 떠나 3월 중순에야 귀국하기에 그의 글은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주자로 예정된 누구든 글이 도착하는대로 글을 올려 독자들의 가정교회에 대한 유익을 함께 나누는 일에 코닷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선 가정교회에 대한 아주 유익한 조사결과가 있어 소개한다.
기독교 관련 미국 여론 조사 기관, 바나그룹(The Barna Group)은 기존교회 교인들과 미국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가정교회(house church) 교인들이 교회생활에서 경험하는 △리더십 △교우들의 신앙 △공동체/교우들과 맺고 있는 관계 △영적 깊이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 이들 네 가지 영역 모두에서 가정교회를 실시하고 있는 교인들이 기존교회 교인들보다 더 많이 '전적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리더십에 대해
가정교회 교인들은 2/3(68%)가, 기존교회 교인들은 절반 정도만(49%) '전적으로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자신과 같은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신앙(faith commitment)에 대해
가정교회 교인들은 66%가, 기존교회 교인들은 40%만 '전적으로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가정교회 교인들은 공동체나 교우들에 대한 결속도(community and personal connectedness)에 대해
가정교회 교인들은 61.41%로 기존교회 교인들보다 더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적 깊이에 대해
가정교회 교인들은 59% 기존교회 교인들은 만족도에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46%).
바나그룹은 이 조사를 지난해 8월부터 10월 사이에, 18세 이상 미국 성인 2008명을 무작위로 뽑아 실시했다(95% 신뢰수준에 2.2% 표본오차).
가정교회의 정체에 대해
바나그룹은 이 조사에서 '가정교회'를 "교회 건물이 아닌 가정이나 다른 장소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는 신앙인들의 그룹"이며 "자신들을 전형적인(기존)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이며 자치적이고 자신들을 그 자체로 완전한 교회로 여기는 그룹"으로 한정했다.
바나그룹은 이번 조사에서 가정교회 교인의 절반 이상(54%)이 그 모임에 참여한 지가 석 달이 채 안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미국에서 가정교회가 최근에 아주 급속히 성장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정교회 참여자 네 명 가운데 세 명(75%)이 채 1년이 안됐고, 3년 이상 된 교인은 20%에 지나지 않았다.
바나그룹은 가정교회 참여 교인들을 두 유형으로 분류,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교인들과 더욱 깊이 있고 더욱 긴밀한 관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나이 든 세대(대체로 베이비붐 세대)와 신앙과 영성에는 관심이 있지만 전통적인 형식의 교회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들이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가정교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바나그룹은 아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교회건물이 아니라 가정집에서 예배하는 교회나 "종교적 전문가" 곧 성직자가 아니라 "그룹 멤버"가 지도하는 교회가 생소한 것이지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정이 신앙과 경험을 나누는 주된 장소라는 생각을 낯설지 않게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조사 결과 미국인들은 가정교회에 대해서 신학적으로도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기독교인이지만 가정교회 교인은 아니라고 밝힌 피조사자 가운데, 10명의 6명꼴로(57%) 가정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적인 공동체에 속하라는 성경적 명령을 충족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9%는 가정교회를 성경적이지 않다고 응답
기존교회에 출석하는 성인 5명 가운데 1명 정도만(19%) 가정교회를 성경적이지 않은 것으로 응답하였다.
이번 연구를 지휘한 조지 바나는 가정교회 운동이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신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가정교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열려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신앙 공동체에 참여하는 타인들에게 실제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조지 바나는 "그러나 가정교회 성장의 주된 저해 요인은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자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경험을 업그레이드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성교회 참석자들과 비교했을 때, 가정교회 참석자들은 신앙이 나를 변화시켰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교회 교인들과 비교했을 때 영적인 활력이 떨어지는 기성교회 교인들의 상태를 이렇게 보충 설명했다.
"기성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일이 무엇이건 그것에 얼굴을 비치고 또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성장에 대한 책임을 교회의 맡겨버린다. 기성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사역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도, 영적인 책임감도 없다."
'가정교회의 실제적 체험과 그 유익'
조득정 장로 /다니엘교회
1. 목장모임과 구역모임은 무엇이 달랐었나?
필자는 서울영동교회와 그 교회가 분립 개척한 일원동교회에서 20여 년간 장로로 시무하며 2003년 일원동교회가 가정교회를 시작 할 때까지 거의 15년 이상 구역장으로 봉사했다.
따라서 가정교회제도 도입을 유사한 모임의 명칭변경 정도로 인식하고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근거를 가지고 반대하기 위해서 일단 교회 방침에 따르기로 하고 가정교회의 목자로 자원하여 시작해 보았다.
구역모임에서는 필자가 설교하며 가르는 것이 모임의 전부였으나 목장모임에서는 말씀을 중심으로 삶의 체험이나 간증을 서로 나누고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섬기는 사역이었다는 것이 달랐다.
2. 목장모임도 일종의 예배였는가?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고 헌금도 드리고 말씀도 나누다 보니 어떤 의미에서는 예배라고 볼 수 있겠으나 주일예배에서의 헌신과 말씀선포보다는 서로간의 깊은 사귐과 인격적 교제 사역에 더욱 비중을 두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그야말로 Cell-Church로서의 작은 교회의, 작고 편안한 열린 예배라고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이제 더 이상 부정적이거나 반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가정교회 운동가로 변하였음을 고백한다.
3. 모임의 리더는 어떤 사람이 적합했던가?
신앙적 연륜이나 교회내의 직분보다는 참석자의 발이라도 씻길 수 있는 섬김의 자세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본다. 고전 9:19 말씀처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는 자세만 있다면 적합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필자가 섬기던 목장의 인원이 늘어나면서 분가를 할 때마다 그러한 기준에서 신임목자 임명을 당회에 추천하곤 했다.
4. 모임에는 등록교인들만 참석했는가?
참석자들의 구성을 보면
(1)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한 리더 급도 있었고
(2)신앙이 점진적으로 자라고 있는 분들도 있었고
(3)초신자 혹은 불신자들도 참석했다.
특별히 가정교회의 주인공은 이들 초신자나 불신자들이기 때문에 항상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진행토록 하였다. 때로는 담배 피우는 사람도 오고 술 냄새가 약간씩 풍기는 분들도 오곤 했으나 모두가 그들을 반갑게 섬겼다. 놀라운 사실은 몇 개월 후에는 그들 초신 자들이 모두 교회에 등록도 하고 세례도 받은 사실이다.
5. 모임에서의 유의사항은 어떤 것들 있었는가?
(1) 모든 참석자들에게 1인 1직분을 부여하였다.
리더는 =목자,
리더의 부재 시 그 임무를 대행 할 수 있는 =대행 목자,
교회의 각종 공지사항을 재확인 해주는 =총무,
함께 부를 찬양을 준비하고 인도하는 =찬양인도자,
헌금관리(1/2=교회 선교비, 1/2=목장 자체 운영비)하는 =회계,
기도제목을 취합하며 인도하는 =기도담당자,
성경적 내용의 나눔을 인도하는 =교사,
모임 내 각종 행사나 친교를 담당하는 =친교담당자 등 여러 직분을 형편에 맞게 부여하면 그 차체로써 너무 좋아하였다.
(2) 모든 참가자들로 하여금 입을 열어 참여의식을 갖도록 하였다.
처음 참석하여 쑥스러워 할 경우를 대비하여 자기소개 및 초등학교 시절의 가장 즐거웠을 때와 자장 힘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여 첫날부터 발언을 유도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긴 시간 발언 시에는 상처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가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특별히 유의 할 것은 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은 절대로 외부 유출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진솔한 이야기들을 할 수 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하는 분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이다.
(3) 말하는 분의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충고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세상 살이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같이 괴로워하고 위로하며 협력하였다. 욥의 세 친구 같은 태도는 금물이었습니다.
(4) 찬양은 시간이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많이 부르면 부를수록 좋다. 찬양을 부르는 동안 잡념이 사라지며 일체감을 갖게 되곤 했다.
(5) 식사는 가능한 한 같이 하는 것이 좋다. 정규순서 이전에 초대교회 처럼 떡을 같이 떼는 것이 교제의 시간으로 아주 유익했다. 목자의 집에서 얼마동안 준비하다보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원자가 나타나고 더 나아가 반찬 한 가지씩 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메뉴의 숫자는 철저히 통제했다.
6. 모이는 요일은 언제가 좋았으며 장소가 먼 것이 문제가 되었던가?
진지한 교제와 나눔이 계속되다보면 밤이 깊어 질 수도 있어서 역시 금요일 저녁이 제일 적합했다. 일원동교회에서는 첫 목자를 당회에서 선정 후에 교회 앞에 공고하여 모든 교인이 제3지망까지 본인이 지원하여 편성된 구성된 관계로 장소가 멀고 가까운 것은 별 문제가 안됐다. 필자의 집이 서울 외곽 용인시라도 멀리 서울에서 6명이나 참석했었다.
7. 모임의 숫자는 어느 정도가 적당했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7-8명이 가장 좋았다. 그 이유는
(1) 전원 발언하며 나눔을 하기 적당했으며(시간상으로도)
(2) 식탁 준비와 설거지에도 부담이 안가고
(3) 기도제목을 심도 있게 나누게 되며
(4) 참석을 독려하기도 적당한 숫자이며
(5) 12-3명이 넘으면 여유가 있어서 나태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8. 가정교회 때문에 교회의 기본조직(당회, 자치기관 등)에 문제가 생겼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혹자들 간에 목장이 활성화되면 당회의 역할이 축소 내지 소멸하리라고 걱정하시는데 오히려 장로들이 솔선하여 목장을 인도하다보면 교회 안에서의 장로들의 직무가 더욱 뚜렷해진다고 본다.
우리교단 헌법의 장로직무(교회 정치 제6장 47조)를 충실히 수행하기에는 목장(가정교회) 리더가 그야말로 적격이다. 그리고 월 1회씩의 남 여 전도회도 교인간의 횡적 교제로 인하여 전체교회가 탄탄해 졌다.
9. 목장모임의 효과와 수확은 무엇이었던가?
부인만 교회 출석하던 가정의 남편들이 교회가 아닌 개인의 저녁초대를 받고 왔다가 편안하고 부담 없고 궁금한 것도 알게 되고 차차 기독교에 대하여도 다소 긍정적이 되어 결국 등록하고 세례까지 받은 경우가 매우 많았다는 점입니다. 즉 불신 가족들의 전도에 매우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초신자들은 간단한 교리들을 가정교회에서 쉽게 깨우쳤다.
10. 인원이 늘어나면 어떻게 분가하였었나?
12명 넘어가면 분가를 위한 기도를 약 한달 정도 했다. 그리고 신임 목자후보를 목장 내에서 투표를 실시하여 다 득표자 2명을 당회에 보고하며 당회에서 임명된 신임목자와 기존목자에 대하여 전체 목원들이 비밀투표로 목자 선택을 자원하여 그 내용을 열람 없이 밀봉한 후 당회 에 재차 제출하면 당회에서 적절히 조정하여 분가 완료, 교회 앞에 공고 했다.
가정교회, 정말 회중교회로 가는 것인가?(2)
김종선 /초장동교회 담임목사
글을 맺으면서 이 지면을 통해 두세 가지 간절한 바람을 밝히고 싶다. 우선 가정교회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소그룹교회 운동들이 신뢰할만한 검증을 받을 기회를 속히 가졌으면 한다. 지금 가정교회 운동이 어떤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필자가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유의 소그룹 교회 운동은 어떤 반대나 비판이 있다고 금방 식어버리지는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향후 21세기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소그룹교회 운동을 수용해야하는 추세일거라는 걸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피해가야 하는지 가려낼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교회가 나갈 방향을 제대로 잡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이며 공정한, 신뢰할만한 검증이 속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꼭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두 번째 바람은 어떤 사안을 놓고 입장을 말할 때 가능하면 사실에 근거했으면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하지 않고 막연한 선입견이나 들리는 풍문만으로 판단해버리면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고, 특히 그것이 개 교회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큰 풍랑을 겪어야 하고 또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교회를 설명하는 책이나, 세미나(컨퍼런스), 실제로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그 실제를 파악할 수 있다. 꼭 그렇게 해서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비판도 하고 해석도 하고 견해도 밝혀주면 좋겠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가정교회운동을 받아들인 교회들 중에 많은 교회들에서 실제로 영혼구원이 전보다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대부분 행복해 하고 즐겁게 섬기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가 건강해 졌다는 간증들도 듣는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이런 흐름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성령께서 21세기 교회를 이런 모습으로 이끌어가려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 역사하심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럴 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혹 우리의 섣부른 판단이나 단정이 성령의 그런 역사를 가로막거나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럴 여지는 없는지, 좀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그리고 겸손히 성령의 이끄심을 따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분은 그 분의 영을 통해 이 교회를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심을 확실히 믿는다.
2007년 04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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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김낙춘
[2007-04-19]
"지식 없는 열심은 악하다"(잠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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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긴 글을 올려주어서 감사하다.
이 내용을 읽어보면 가정교회의 실체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연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사보고서의 내용 중 앞 부분에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이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는데 대해 우려한다."고 했는데
만약 가정교회가 이것을 의도한다면
나는 가정교회를 시작하려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교회에서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한 교회의 한번의 어떤 사례를 가지고
마치 모든 가정교회 제도를 도입한 모든 교회들이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고 주장한다면
노회 조사위원회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앞으로 누가 가정교회의 문제점을 조사하려면
제발 가정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고 조사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나
한국교회 가운데 가정교회란 용어를 쓴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참고로 조사보고서의 앞 부분만 옮긴다.
(조사보고서 앞 부분의 내용)
5. 신학적 기본 입장
우리는 회중교회에 대한 교의신학자 유해무 박사의 발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려신학대학원 제60주년 기념 신학포럼 지상강좌 6 기독교보 제587호 P3)
장로교정치는 교황(감독정치)와 회중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취한다. 장로교정치는 중앙집권적인 교황제나 감독제와는 달리 지역교회의 완전한 권리를 인정한다.
장로교는 노회와 총회를 인정하지 않는 회중정치 제도를 거부한다. 놀랍게도 회중정치가 장로교회 안에 상당히 깊이 들어와 있다. “목장교회”라는 목회방식은 회중정치를 표방하는 침례교회에서 발생하였다. 목자가 당히의 고유업무인 “교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총찰”을 맡게 되니 당회는 유명무실해 질 위험이 크다. 도 이른바 “민주적인 정관”은 중앙집권적 경향을 거부하고 교인의 주권을 앞세우면서 당회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우리 개혁파 선배들은 장로교 정치제도가 가장 성경적임을 확신하였다. 고신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해야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에 우리 조사위원회는 가정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는데 대해 우려한다.
백병주
[2007-04-19]
부산노회에서 결정된 가정교회에 대한 보고서 전문입니다.
가정교회 시행에 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
1. 진정인과 피진정인
진정인 : 윤강석 장로
소속 : 대한예수교 장로회 초장동교회 시무장로
피진정인 : 김종선 목사
소속 : 대한예수교 장로회 초장동교회 담임
2. 조사위원회 구성
부산노회 제98차 제1회 임시노회(일시:2007.1.12<금>/장소:다대교회당)에서 가정 교회 문제로 야기된 동 사안에 대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다. 동 위원회가 조직을 구성하니 아래와 같다.
위원장 : 백성호 목사
서기 : 조정용 목사
위원 : 김양광 목사, 박영주 목사, 김우곤 장로, 박희석 장로, 김영수 장로
연구위원 : 권경호 목사
3. 조사위원회 회집
동 조사위원회는 제8차에 걸쳐 아래와 같이 회집하다.
제1차(2007.1.12) 회의는 위원회의 조직 및 조사범위, 조사방법, 연구방향 등을 결의하였으며 관련 신학적 제반 사항을 자문받기 위해 권경호 목사를 연구위원으로 위촉하기로 결의하다.
제2차 동년 1.15 가정 교회 관련 면담 조사계획서 작성 완료
제3차 동년 1.25 초장동교회 당회원 면담 조사
제4차 동년 2.5 초장동교회 불참 당회원(황규제)면담 조사
제5차 동년 2.16 초장동교회 담임 김종선목사 면담 조사
제6차 동년 2.27 제4영도교회 담임 이순흠목사 면담 조사
제7차 동년 3.26 감천중앙교회 담임 김인수 목사 면담 조사
제8차 동년 4.6 가정 교회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다. 이상과 같이 제 8차에 걸쳐 회집하여 면담 조사하였으며 권면하다.
4. 조사내용
1. 본 노회가 가정교회 문제에 대해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게 된 동기는 전년도 2006년 가을 정기노회에서 결의 된 바 있는, 가정교회문제는 우리 교단의 헌법과 교리표준, 교회정치, 예배지침에 따라 행하기로 하며 당회와 시찰회가 지도하기로 가결하였으나, 이 결의가 일선 교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아니하는 곳도 있었다. 서부시찰 초장동교회는 가정교회를 시행해 오던 중 수차에 걸쳐 담임목사에게 시정 및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 건의가 받아 들여 지지 아니함으로 인해 시무장로인 윤강석 장로가 본 건-가정교회문제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상황 발생 흐름도]
초장동교회는 2005년부터 가정교회를 시행함 → 2006년 정기 노회에서 교단 헌법과 정치를 준수할 것을 결의함 → 윤강석 장로는 담임교역자에게 수차례 시정을 요구함 → 미반영됨 → 김양광 노회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함(가정교회 중단 지도요청서) → 노회장은 거중 조정하여 수습하려고 노력함 → 2006년 12월 6일(수) 삼일교회에서 노회장과 원로 목사, 임원 등 16명이 연석회의를 열고 김종선 목사에게 권면함 → 김종선 목사는 노회의 공식 결의와 지도가 있으면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 → 이에 따라 노회 임원회의 결정으로 임시노회 안건으로 상정함 → 이에 따라 가정교회 조사위원회가 구성됨.
2. 본 건 가정교회 문제를 야기한 초장동교회는 2007년 2월3일 당회의 결의로 가정교회를 중단하기로 가결하였으며, 대체용어를 빠른 시일 안에 결정하기로 하다.(당회록 참조)
3.동 조사위원회는 <가정교회 문제 연구보고서>를 조사위원회의 명의로 2007년 봄 정기노회에 보고하기로 결의하다.
4. 동 조사위원회는 종합적인 의견을 노회에 보고함으로서 이 건을 종결하기로 가결하다.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동안 가정교회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교회(초장동교회, 제4영도교회)의 담임 목사는 본회 앞에 사과하고, 개체교회에서는 <앞으로 가정교회 사역은 중단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할 것을 권고하기로 가결하다.
5. 신학적 기본 입장
우리는 회중교회에 대한 교의신학자 유해무 박사의 발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려신학대학원 제60주년 기념 신학포럼 지상강좌 6 기독교보 제587호 P3)
장로교정치는 교황(감독정치)와 회중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취한다. 장로교정치는 중앙집권적인 교황제나 감독제와는 달리 지역교회의 완전한 권리를 인정한다.
장로교는 노회와 총회를 인정하지 않는 회중정치 제도를 거부한다. 놀랍게도 회중정치가 장로교회 안에 상당히 깊이 들어와 있다. “목장교회”라는 목회방식은 회중정치를 표방하는 침례교회에서 발생하였다. 목자가 당히의 고유업무인 “교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총찰”을 맡게 되니 당회는 유명무실해 질 위험이 크다. 도 이른바 “민주적인 정관”은 중앙집권적 경향을 거부하고 교인의 주권을 앞세우면서 당회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우리 개혁파 선배들은 장로교 정치제도가 가장 성경적임을 확신하였다. 고신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해야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에 우리 조사위원회는 가정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는데 대해 우려한다.
2007. 4. 6
대한예수교 장로회 부산노회
가정교회에 대한 조사위원회
위원장 : 백성호 목사 서 기 : 조정용 목사 연구위원 : 권경호 목사
위원: 김양광목사 박영주목사 김우곤 장로 박희석장로 김영수 장로
가정교회 문제 조사 연구 보고서
1. 사건의 발단과 경위
“가정교회”문제는 요즈음 부산노회의 몇 교회에서도 실시하던 중 교회의 장로들 중 몇 사람이 여기에 잘못된 점을 들어 시정을 요구하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특별히 초장동 교회에서는 2005년부터 “가정교회”제도를 실시하던 중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휴스톤 침예교회의 최영기 목사를 강사로 행한 부흥회 등에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해 교회 윤강석 장로가 당회장인 김종선 목사에게 그 잘못을 적시하고 수차례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회장에게 진정을 하게 되었고 김양광 노회장은 이를 공식화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자체적으로 수습하려고 증경노회장을 비롯한 노회 원로들과 임원 연석회의에서 김종선 목사에게 권면하였으나 김종선 목사는 노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의하고 지도하며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므로 노회는 임원회의 결의로 이 안건을 제98차 제1회 임시노회(2007.1.12 다대교회당)에 상정하였다. 노회는 “가정교회는 즉시 중단하도록 하기로 하다”라고 결의한 후 “가정교회”의 오류를 지적하여 밝히고 개체교회를 지도하기 위하여 가정교회 문제 조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