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

발언/주제연구      

교회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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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정치를 세상 사람과 똑 같이 좌우를 가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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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정치를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좌우로 나누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성경은 천국을 가르치나 세상을 자연계시로 활용하고 있고 심지어 세상 언어도 활용합니다. 세상을 주셨고 세상은 우리가 잘 압니다. 천국은 모르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상을 가지고 천국을 가르칩니다. 세상과 천국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분의 창조며 운영이기 때문에 세상이 세상임을 생각하고 세상을 잘 살피다 보면 세상을 가지고 보여 주는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세상의 죄와 악에게 물들거나 사로 잡히지 않기 위해 세상을 멀리 하고 세상과 싸우지 세상 자체를 피하거나 벗어 나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고전5:10에서 막았으며 그렇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한 길을 주셨는데 한 쪽은 우로 치우치고 한 쪽은 좌로 치우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로 치우치면 좌로, 좌로 치우치면 우로 갖다 놓는 것이 신앙입니다. 정확한 한 길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바로 가르치기 위해 어떤 면이 삐뚤어 졌는지 어떤 부분에서 잘못 되었는지 살피고 지도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교인들이 사는 곳은 세상입니다. 그 세상이 교인들을 끊임 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세상 풍조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교인들에게 성경 공부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교인들의 인생관 결혼관 경제관 사회관을 바로 만드는 것도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간여하지 않고 초월하는 정교 분리의 원칙을 말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 가서 그들과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을 금한다는 것을 말하지, 세상을 쳐다 보지 않고 세상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야 하며 세상에서 일어 나는 일과 현상을 어떻게 인식하며 평가하며 비판하며 가르치며 어떤 자세로 준비하는 것을 금하는 격세주의 피세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세상에서 만듭니다. 세상에서 일어 나는 모든 일을 말씀으로 알고 상대하는 과정에서 신앙은 만들어 집니다. 세상과 신앙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신앙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주셨고 세상 돌아 가는 모든 것은 우리 신앙을 가르치며 기르며 연단하기 위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을 떠나서는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 현실 문제이며 또한 구원이라 함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진 말씀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목회란 교인을 상대하는 것이며, 교인을 상대한다는 말은 교인이 처한 가정과 사회의 현실을 떼 내고 순수 이론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교인의 가족 구성과 가족 갈등과 가족과 일어 나는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어느 부분이 잘못 되었고 어떻게 상대해야 하며 어느 부분은 지나치며 어느 부분은 양보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전부 지도할 때 양을 치는 것입니다.

눅12:13 이하 말씀에서 형제의 유업 분쟁을 두고 주님은 무관하다 하심은 '예수'는 구원이니 '예수'는 구원이 목적이며 중심이며 전부인데, 동생이 재산을 목적으로 삼고 재산만이 자기의 전부와 중심으로 삼고 그 재산 탈취를 위해 예수를 하나의 세상 점령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 성구를 가지고 교회가 왕정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고, 민주정의 장단점을 교인들에게 지도할 것이 없고, 공산정의 장단점과 위험점과 철없음을 알려 주지 않고 언급하지 않고 그런 문제에 휩쓸려 심지어 신앙인의 기본을 포기하고 신앙 자체의 손해가 그런 문제로 인해 대거 발생하는데도 알 것도 없고 발언도 필요가 없고 지도할 것도 없으며 개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고 교회와 목사로서는 남의 일로 보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양을 치라 하심은 관리를 말합니다. 그 어린 양을 종교 교리로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조가 기본적으로 인식과 사상과 인격을 오도할 때는 그런 부분에 대해 교도할 수 있습니다.

힘과 사명을 주시면 이방 나라의 왕도 세우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 구약이며, 막15:5에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자기 변호를 하지 않을 때도 계셨으나 요18:36에서는 최소한의 발언을 하여 판사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법정 진술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디도서 1장 12절에서 이방 나라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인용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레데인들이 1천 명이면 그 1천 명에 단 1 명도 예외 없이 거짓말만 항상하고 그 곳에는 게으름장이들만 있겠습니까? 일반적인 상황으로 생각하며 그 일반적인 상황이 복음이 들어 가기 전에 원래 그 곳의 성향이 그렇고 그런 말을 바울이 들은 것인데 그 말을 듣고 알고 그 말을 가지고 그레데인들을 겪어 봤을 때 실제로 세상의 그런 말이 맞기 때문에 그 말을 인용까지 했습니다.

좌파와 우파의 장단점에 대해 이 곳에서 그 실제 여부를 따질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 곳에서 따지지 않아도 우파는 우파 스스로 잘하는 일이라면서 세상에 자랑한 글이 많고 또 실제 조처가 많아서 그런 것을 보면 쉽게 실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좌파도 그렇습니다. 좌파가 스스로 잘한다면서 말하고 행동한 것이 주변에는 많습니다. 세상의 좌우를 두고 교회가 그레데인들에 대한 들은 말을 가지고 그레데인들의 성향이 실제 그런지 파악한 다음 그레데인들의 그런 성향이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은 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그레데인들에 대한 세상 평가를 거론하며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의 지방색에 따라 지방 성향을 거론하는 말들은 많습니다. 교회가 그 말을 들어 보고 그 말이 괜한 말이 아니고 실제 그런 성향을 파악한다면, 그리고 지방색에 따라 신앙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면 당연히 그 지방색도 교회가 신앙 지도를 위해 강하게 지적하고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선입견이라고 반발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좌파는 교회에 대한 위협이라는 다수 주류 교회의 주장을 똑 같이 받아들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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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교회에 대한 자세는 교회로서는 좌파가 교회를 못 잡아 먹어서 미쳐 날뛴다는 표현을 해야 할 지경입니다. 좌파가 오늘까지 말하고 행동으로 보인 결과가 그렇습니다. 이 곳에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사실 관계를 따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목사들이 돈을 떼 먹는다는 말과 그 것을 보면서 우파는 돈 떼 먹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좌파는 그래서 교회는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광분을 하고 있습니다. 소련과 중국과 북한의 초기 모습입니다. 제가 주변 생활 속에서 늘 대하고 수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일입니다. 언론이나 여러 자료를 가지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교회 관련 기사를 좌파 언론에서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굳이 설명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관련 자료를 모아 드릴 수는 있지만 직접 좀 시간을 들여서 찾아 보면 어려울 것 같지 않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나라 좌파는 매사에 평양을 옹호하고 북한의 주장을 최대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순수 좌파는 유럽 좌파처럼 우익의 독재든 좌익의 독재든 꼭 같은 차원에서 비판을 하나 현재 이 나라 좌파는 친북이거나 종복입니다. 위에서 내려 보냈거나 위를 다니며 배웠거나 위 쪽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지라도 거의 모든 좌파 중심과 지도부의 발언과 행동은 일관입니다. 어느 한 좌파 성향의 시민 1 명을 두고 분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좌파는 미군은 물러 가야 하고, 북쪽의 핵개발은 잘하는 일이며, 그들의 이런 일에 주류 교회가 버티고 있다며 교회와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이런 일에 교회 내에서 호응하며 적극 찬성하고 교회 안에서 교회를 없애는 운동은 한신대 기장측 자유주의 신학 노선의 교회와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전부 동원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성경을 부인하고 천국은 관심이 없고 이들은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조차 무조건 반대합니다. 이들은 한결 같이 북쪽을 쳐다 봅니다.

분명한 것은 38 이북에는 1945년 전까지 한국교회의 3분의 2 교세와 신앙이 있었는데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쓸어 버렸습니다. 한국의 좌파가 그런 북한과 어울리며 같은 주장이나 비슷한 주장을 한다는 것은 좌파가 자랑스럽게 내 놓고 하는 말이며 이미 다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1950년의 전쟁 시기에는 낙동강 이남 일부만 제외하고 이 나라의 모든 교회를 다 유린했습니다. 초토화를 시켜 버린 현장을 직접 목도한 분들이 한국교회 지도층입니다. 한국 교회가 좌파가 득세를 하면 그 다음 어떤 일이 일어 나는지를 두고는 서적 속의 일이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분들의 어제 일이며 언제라도 같은 일이 바로 일어 날 수 있는 일입니다. 지적하신 분은 순수한 몇 가지 소원을 좋게 보는 듯합니다. 그런 분들께 이 많은 말을 해서 설명을 해야 할까요? 세상이 다 알고 좌파가 스스로 그렇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세상 문제만 가지고도 볼 때 하루 3 끼 밥 먹는 일을 좀 편하게 해 달라는 그 요구를 하는 좌파의 순수한 입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이야 우파의 주장 역시 재벌 한 명이 행복하도록 수십 만 노동자들은 다 죽으라고 그렇게야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는 일의 결과를 볼 때 그렇게 비판을 받을 정도가 되어서 우파를 비판하듯이, 좌파 역시 같은 논리로 전체를 보며 그들의 언행을 비판 받는 것입니다. 이 나라 좌파들이 전교조 운동을 하든 전공노를 하든 무슨 좌파를 하든 소박하게 먹고 살고 좀 괜찮게 살도록 해 보자는 말은 앞 세운 말뿐이고 왜 그들 자신은 그렇지 않고 왜 그들은 누가 보고 세계가 보더라도 평양의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는지요? 교회는 평양에게 초토화가 된 경험이 있고 현재도 북한 교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좌파를 교회가 만일 우호적이거나 그런 좌파의 몇 마디 말하는 작은 행복이니 나눔이니 하는 표현보다 그들의 과거와 향방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세상 사람보다 눈이 밝아야 하는 교회로서는 당연한 것이고 이 노선에서는 더욱 그럴 것 아닙니까? 오늘도 과거와 같은 환란이 생긴다면 연극이라 할지라도 반대하고 맞설 곳은 이 노선뿐입니다. 다른 곳은 실제 상황이 생기면 다 굽히고 들어 갈 곳이기 때문에 찬성도 반대도 실제로는 찬반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이 홈은 교회를 다 없애 버리고 좌파식 사회주의식 앞잡이 노릇하는 평양 만수대교회같은 교회로 만들려는 세력에 가깝고 동조하고 항상 패거리가 되어 함께 다니는 좌파들에게 우호적이 되고 싶어도 신앙 본능적으로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극단적으로 경계하고 항상 눈을 부릅뜨고 쳐다 볼 수밖에 없는데, 신앙과 세상의 경험에서 본다면 이런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지나치게 반대하고 조심해도 훗날 보면 과한 것은 적고 모자람이 많았습니다. 준비의 신앙이 신앙이라는 점에서 좌파에 대해서는 늘 교회, 특히 이 노선을 뿌리 뽑고 나설 이들이 지금 눈 앞에서는 주변의 세력을 모으기 위해 순진 무고한 인민들을 서서히 끌어 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 단계로서는 듣기에 좋은 말밖에 없는데 그런 말을 듣는 교회가 그런 말을 그 말 그대로 듣는다면 그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정말 순수하게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 해도 적어도 이 나라의 오늘 형편에서는 이 나라 불신자라 해도 이 나라의 어떤 소외 계층의 교인이라 해도 좌파 논리와 자기 논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자기가 뜻하지 않은 쪽으로 자기의 언행을 몰아 가서 악용할까 하여 자기 논리와 주장과 소망을 조심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이 좀 자제하고 소외 계층이 좀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성경입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소외 계층 스스로 입에서 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기본 욕구는 누구에게나 다 있는 법인데 이런 물방울들을 모아서 수공에 사용하는 전략가들의 의도가 문제입니다. 나는 순수했는데 나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악용하는지 몰랐다는 말은 면책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민입니다. 이 나라에 소외계층이 있습니까? 시골의 강아지들이 옛날 부자들보다 더 잘 먹고 사는 세상입니다. 생계수급자라는 이 사회 제일 극단적인 가정들의 내막을 저만큼 혹시 아실지요?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할까? 현장을 모르시는 듯합니다. 더 이상의 혜택은 정말 크나 큰 독약이 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선 이후 이 나라의 소외 계층은 끝 없는 인간 무저갱의 경쟁에서 뒤 떨어 졌다는 불만이지 돌아 봐야 할 소외는 아닙니다. 더 큰 재벌을 작은 재벌이 욕하고, 이 나라 좌파의 중심인 민노총 노조원들의 평균 수입은 제가 볼 때 재벌급들입니다. 의사 변호사가 부럽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소외계층을 대변하며 나타 난 활동은 그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홈의 좌파 비판은 주로 그들입니다.

전체적인 활동과 역사와 향방을 볼 때 친북 종북이라는 그들의 사상과 노력은 이 나라 수백 만 명의 불신자 목숨을 통째로 죽여 없애고 현재 북한의 극단적 기아나 불행을 만들고 있으니 세상 기준에서도 좌파의 순수한 이상을 실현하려면 불신자라도 하루 3 끼 밥타령을 하다가 6.25 전쟁과 전후 북한의 상황을 볼 때 철없는 주장이라 하여 좌파를 비판해야 옳지 않을까요? 차별 없이 좀 편하게 살고 서로 사이 좋게 살자는 좌파의 표방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좌파의 이런 입장이 불신 역사에서 이루어 진 때가 있었습니까? 아주 일시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나 그로 인해 더 큰 모순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운동으로도 세상은 해결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좌파의 순수한 염원조차 이 노선은 그 배경과 내용과 본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입니다. 현재 좌파가 북한 쪽이라 하면 정신도 없이 지지하고 있는데 그 나라에 빈부 격차와 그 나라의 현 상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과거는 오도를 했다 하나 지금은 몇만 명이 탈출한 상태고 이제는 그들 스스로 그 처참함을 부인하지 않고 손을 내 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떠나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좀 편하게 먹고 살자는 소원을 하는 좌파의 그 소원은 두 말 할 것 없이 적극 찬성하나 그 소원을 앞에 내세우고 활동하고 발언하는 이들의 배후와 향방과 실제 그들 내부를 보면, 최소한 북한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상은 그들의 소원은 좀 미루어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일본이나 미국 정도라면 세계적인 지배 재벌들이 다 망하든 좌파가 잡든 누가 잡든 적어도 외국이 그 나라를 점령하러 오겠다고 쳐 들어 올 정도는 아니니 그 사회의 여러 의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겠으나 이 나라의 오늘만을 두고 말한다면 북 쪽의 위협이 없어 질 때까지는 최소한 대북 위협 조건부로 이 나라 좌파의 순수한 주장은 절제 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이 나라에 북 쪽의 위협 때문에 모든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좌파 논리는 보조 역할 정도에 머물지 않으면 한꺼번에 더 큰 불행이 생기는 것이 세상 논리이므로 세상 자연 계시를 아는 입장에서 그들에게 훈수를 하는 정도입니다.

전교조가 출발할 때 제대로 된 참 교육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회원 확보도 많이 했고 돈 없는 가정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20 년을 지냈습니다. 이제 열매가 너무 환하게 드러 났습니다. 그들은 교사의 기득권과 북한 지지 세력으로만 살아 왔습니다. 전교조 여부를 떠나 순수한 교사는 순수하게 했고, 전교조로 인해 달라 진 것은 교사의 이권 확보와 친북이나 종복 활동에 큰 계기를 마련해서 이 나라 전체의 좌파 운동에 중추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창립 초기는 말만 했기 때문에 참 교육을 하겠다 하는데 우파가 탄압했다는 논리로만 맞섰고 늘 그들은 말에서는 이겼습니다. 그래서 합법화가 되었고 세력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전교조는 죽으나 사나 북한 편을 들고 교회 욕만 하고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 권리만 확보하고 아이들과 학부형은 그들의 즐기고 먹고 살고 그들 자유와 만족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 있습니까?

사실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분은 유럽의 원래 순수한 좌파 논리를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뜻 같고, 저는 죽으나 사나 북한을 편들어 남한의 현재 수준조차 파탄에 이르게 할 국내 종북 친북 좌파를 염려하는 것이 주 대화 같습니다. 그런데 국내는 친북 종북 좌파가 좌파의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순수 좌파는 결국 그들의 내부에 활용이나 되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한 부분만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전체의 향방과 전체의 나가는 결과를 말한 것입니다. 지적하신 분처럼 몇몇 순수한 분들의 순수가 분명히 잘못 나가고 있는 좌파의 지도 세력과 그들의 오늘까지의 활동과 예견 되는 내일 때문에 큰 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 우파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시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 명백한 근거를 두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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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신앙의 교훈이나 세상 살아 가는 데도 번져 나가게 되어 있는 말씀들입니다.
막4: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농사의 자연계시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 원리를 말씀하면서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이런 성구들과 반대 되는 성구도 적겠습니까? 성경은 그 어떤 주장과 논리라 해도 그 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성구는 다 있습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세상, 그 세상을 다 알 수 있고 이길 수 있도록 기록했고 또 여러 면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본 인식입니다. 공산주의자도 성경을 많이 인용했고 자본주의자도 성경을 많이 인용했으나 그들은 각자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뽑았고 우리는 성경을 앞 세워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배우는 입장입니다. 서로 실수도 하고 헛점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자세와 향방이 문제입니다. 이 홈이 좌파를 반대한 것처럼 생각했다면 큰 오해입니다. 이 홈보다 더 좌파적 조처를 한 좌파를 보셨습니까? 어떤 종류의 비판도 다 보장하고 있고, 어떤 기득권도 행사해 보지 않았는데 기득권을 행사하지 않는 좌파를 보셨습니까?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우파만 기득권을 주장하는가? 좌파의 지도부 안에 들어 가면 더합니다. 좌파만 굶는가? 우파와 좌파의 총량을 비교하면 우파가 부자지만 한 사람씩 한 사회씩 한 시기씩 쪼개어 정밀하게 비교하면 좌파가 전체적으로 배불리 먹고 우파가 기아에 허덕인 경우도 많으니, 사자의 사망 제일 원인은 굶어 죽는 것이라 합니다. 너무 한 표현에 자극을 받고 계신다 보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많이 가진 자는 그들이 스스로 좋아서 약한 자를 살피는 것이 성경이지 강제로 빼앗아 나누는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지금 약자들이 떼거리로 모여 입법을 하고 재벌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도 재벌은 돈 문제로 강자지만 머리 숫자에서는 경제 약자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강자 자리에 앉아서 지금 재벌에 대해 반격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약육강식입니다. 돈 벌이에 약자인 약자들이 투표법에서는 강자니 약자들도 자기들이 강자가 되면 돈 강자 이상이지 이하일 리도 없습니다. 이 것이 세상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힘을 가지면 그 힘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인데, 다만 교회는 성경의 원리를 가지고 큰 자, 강한 자에게는 순복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강한 자들이 옳다고 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 가는 자연 이치의 한 면을 두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 형제와 재산을 나누게 해 달라는 청원을 물리치신 예수님의 말씀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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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의 이해관계에 직접 당사자가 되지 않을 뿐이지 형제의 재산 문제를 두고 누가 욕심을 부려 문제를 제공했는지, 전체 상황에서 누가 양보를 해야 하는지, 그 어떤 세상의 그 어떤 문제든지 교회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님의 재산을 빼앗아 오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내 세웠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 천국이 아니라 단지 세상 살이를 위해서 우파의 부패에 실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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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신앙 문제를 두고, 세상을 살며 우파의 부패에 실망하고 좌파의 작은 행복을 함께 나누어 보자는 그 이념에 기대를 거는 것을 두고 반대하는 사람이야 있겠습니까만, 그런 이념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 것이 철 없는 생각이고 역사를 모르고 인간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니 꿈을 깨라는 것이 교회의 바른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부자에게 부자 된 재산을 하나님께서 맡긴 이유는 주변에 그 돈으로 살필 사람이 있어 맡겼다고 가르칩니다. 항상 가르칩니다. 그 어느 누구의 어떤 장점도 주변의 그 장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맡겼다는 것이 성경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무슨 말을 또 더 더해서 오해를 사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려면 출근 길에 양복을 입고 가는 것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로 늘 교회는 시끄럽습니다. 항상 오해할 사람들을 생각해서 단어 하나를 사용할 때마다 모든 말을 다해야 할까요? 지금 이 글의 시작이 된 글을 두고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가 될 만해서 그냥 있지 않을까요? 이 홈에는 운영 초기부터 조금이라도 잘못 된 표현이 나오면 바로 반론들이 나왔고 대단히 섬뜩할 만한 표현들도 많았습니다. 항상 어느 한 글의 한 모퉁이만 보고 그렇게 된 것인데 한 가지를 말할 때마다 관련 모든 이야기를 다하게 된다면 보통 몇 시간이 필요한데 글로 그 것을 표현하자면 너무 심하지 않을까요? 어떤 것은 듣는 사람이 상대방의 전체 의도와 내용과 과거를 살펴 봐야 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좌파의 이념에 기대를 걸어 보는 교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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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이념에 기대를 걸어 보는 교우들이 있다면 북한 중국 소련을 연구하면 금방 해결 되지 않을까요? 시골분들은 집의 땅에 농사 짓는 것과 마을 공동 회관에 일하는 것을 비교하면서 아예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뜁니다. 이 노선은 교회 운영도 철저하게 실력급 실적급 노력급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좌파의 이념에 기대를 거는 것은 좋으나 그 댓가는 이미 역사에서 봤으니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부자들에게 많이 가진 것을 자진해서 내 놓지 않으면 언젠가 동학혁명처럼 또는 역사에 수 많은 부자들이 억눌린 민심에 칼 맞고 죽은 것을 생각해서 좋을 때 알아서 내 놓는 것이 좋겠다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 빠르지 않을지요? 경주 최 부자 이야기는 이 노선에서 아주 자주 사용 됩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자가 오래오래 편하게 먹고 살려면 주변을 살펴야 한다고 이렇게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요? 이 홈은 거의 모든 글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파나 부자나 심지어 기독교 주류들이 이 홈의 글에 대해서는 방문하기를 꺼릴 정도일 것입니다. 목사들에게 자진해서 2 년에 한 번씩 투표를 받고 4 분의 1의 반대만 가지고도 속에 들어 있는 불만을 읽고 자진해서 사표를 내라고 가르치는 곳입니다.

좌파의 이념은 잠꼬대입니다. 잠꼬대와 현실을 착각하면 병원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입니다. 엄연히 세상은 힘의 대결입니다. 힘을 비축하고, 그 힘을 사용하기에 앞 서 주변을 잘 다독이는 것이 힘을 힘 답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위험이 닥쳐도 비축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국가며, 회사며, 가정이며, 가족을 지키는 가장이며, 자기 몸 하나를 지키는 생존의 전략이며 지혜며 기본입니다.

이 홈과 이 노선은 평소 관련 글이 너무 길고 말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도록 많은 말로 설명을 해 왔습니다. 좀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거의 모든 면에서 균형 있게 옳고 바른 길을 골고루 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표현에서 그 누루라도 '제대로 다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이 홈은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목회자의 설교도 한 없이 길어 져야 하고 늘 반복해야 합니다.




: 목사님의 이런 말씀에 심한 거부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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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홈이 개별 설교나 문답을 통해서는 수 없이 우파의 잘못이나 개선점을 반복했는데 그런 것은 열 번을 들어도 들은 듯 만 듯 하다가 좌파 비판이 나오면 너무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속에 우파적 요소가 많아서 우파 칭찬은 많게 느껴지지 않고 좌파 칭찬은 많게 느껴졌다면 제 사고방식을 고쳐야 하고, 지적하신 분께서도 속에 좌파적 요소가 많아서 좌파 비판이 나오면 벌컥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 홈의 내용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제 3자 몇 분에게 부탁을 해서 이 홈의 전체 흐름이 처음 방문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 살펴 봐야 하겠습니다.

데려 온 자식은 열 번 잘해 주고도 한 번 이상한 듯 보이면 평생에 잊지 못할 악감정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주변의 사람들도 사람이어서 아무리 잘해 주려 해도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오해를 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잘해 주면 나중에 나를 동정하느냐고 기분 나쁘게 보는 사람도 봤습니다. 장애자들도 그렇습니다. 이 노선은 장애자 약자 소외자 패배자들에게 자기 속에 단점을 고쳐 이 땅 위에 그 어떤 가해가 와도 가해가 가해 되지 않아야만 해결이 되고 그 외에 가진 자들이 위로하고 살펴서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최종과 절정을 늘 가르쳤습니다. 물론 가진 자들에게는 왜 필요 없는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는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 하나도 계속 반복을 하지 않으면 또 지적이 시작 되어 끝 없는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하실 말씀을 다 해 놓고도 위대한 스승들에 못 미치므로 내색할 수 없다는 말씀은 모순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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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의 내부에서 표현하는 정도를 다 듣지 못해서 오해하신 듯합니다. 여기서 표현한 정도는 그야 말로 외교부 대변인의 선문답 정도였습니다. 이 홈은 6.25 종전 직후 이 나라 안에서 유엔군 철수를 반대하는 교회를 향해 반대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전쟁 직후의 이 나라 분위기에서 그 말을 하는 것은 오늘 평양에서 김일성을 욕하는 행동과 같았습니다. 유신 시작의 첫 해에 유신 정권에 맞섰고 새마을운동에 목회자나 교회의 참여를 거부한 것도 그렇습니다. 해방 후 좌우 대결 구도에서 적접 지역으로 선포 된 덕유산 유역에서 남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전면 거부한 것처럼 보인 국기배례 반대도 오늘 좌파에서 보면 그들도 하지 못했던 투쟁처럼 보였습니다. 한겨레신문 기자가 대형 기획보도를 한 정도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노선은 우파에 극단적으로 반대파였습니다. 바로 그 논리에 의해 좌파의 철 없는 일이나 잠꼬대나 불장난이나 민족 파괴로 나가는 일이나 한국교회 말살 운동에 대해 단호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 세상 정치의 좌우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초월이며 우리 공회의 노선이라고 알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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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선 목사님이 해방 후에 국회의원 제의를 받을 때 그런 것을 거절한 것을 두고 세상을 초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 목사님은 6.25 직전에 북한 공산 정권과 남한의 좌파를 대마귀 운동이라고 비판했고 백 목사님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은 전쟁 전에 죽을 만큼 맞고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고 주 목사님도 그러했습니다. 교회를 없애자는 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할 일입니다.
우파는 교회의 신앙 자유를 간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복음 사업에 도움을 주겠다고 세제 혜택과 국고 지원을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돕는 우파의 자세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이 없어 그렇게 하는 것이고 교회는 세상 도움을 받고 세상이 도와 준 댓가로 관리 감독을 하겠다 하는 것을 목숨 걸고 안 된다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대한민국 이 나라에도 나쁜 인간이고, 교회에 대해서는 싹쓸이를 한 마귀 대장이니 우리는 이 나라 국방을 위해 기도하고 신앙적으로는 평양에 의해 언제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하라 하는 이런 말은 교회가 세상을 간여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 세상의 고와 낙이 다 유익하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평소의 말씀과 크게 어긋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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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평안을 위해, 어린 신앙을 위해, 우리 교회가 위치한 이 세상의 국방과 평안을 비는 것은 교회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 자세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문안이며 인사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빌고 소원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어려움이 온다면? 그 어려움도 우리에게는 선물입니다. 평소와 같은 표현입니다.
발 하나가 없어도 우리는 복이고 있으면 있는 발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지만 평소 우리의 기도는 '건강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이 발 하나를 떼 가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다 마찬 가지입니다.





한 마리 양쯤은 잃어 버려도 상관이 없다는 방침을 가졌을까 해서 염려 하심은 고마운 사전 주의 조처지만 그 정도가 걱정 된다면 이 홈은 방문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한 마리 양을 숫자로 본 정도라면 일반 홈들처럼 회원 관리도 하고 글의 제한도 곳곳에 하고 또 배너 광고도 좀 올리고 그러했을 것이며, 그리고 이 홈에 제공 되고 있는 수 많은 극단적인 문답들은 애당초부터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힘이 없어 더 이상 붙들어 드리지 못해서 안타깝게 지켜 볼 수밖에 없으면 한 마리 양이 떠나는 것을 지켜 보기만 하겠지만 힘이 있는데도 재벌들의 영업 손익과 경제 투자의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제가 지금까지 이 글을 적은 것도 헛일이며 후회할 일입니다.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알려 한다면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분들은 제게 또 해 봐, 또 해 봐 하는 식으로 반복을 시키는 경우를 생활 속에서는 많이 겪습니다. 단언코 그 어느 목회자보다 더 많이 투자하고 기울이고 있는 힘껏 하고도 더 급한 일 때문에 못하게 되거나 더 이상 해 봐야 할 도리가 없어서 그 한계점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또 더 해 봐 하고 말하면서 한 마리 양쯤이야 네 속에 관심이 있겠느냐고 한다면 이런 표현을 하는 분은 좀 돌아 보셔야 할 것 같다고 드릴 말씀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피해를 많이 당해서 무엇을 보든지 피해의식으로 주변을 상대하면서 '나에게 피해의식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런 자세를 가진 분을 해결해 드리는 인간적 방법은 없습니다. 기도할 뿐입니다. 그래도 또 만나서 알아 들을 만큼까지는 또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알고 있는데도 한 사람의 이해에 문제가 생기면 그 한 사람을 위해 끝 없이 반복을 해야 하는가? 그 한 사람쯤이 문제가 아니라 그 한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시간 사용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글이 너무 길어서 다듬지를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고, 어쨌든 전체를 읽어 주시고 심정을 살펴 주시고, 표현 하나하나를 가지고 다시 재론하신다면 제 주변에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보다 실제 더 딱하고 더 심각하고 더 처참한 분들을 위해 제가 제한 된 시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끝 없이 설명할 수는 없음을 양해해 주시고, 신앙 세계에는 별별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으니 이 홈의 운영자는 현재로는 저런 사고방식이구나 하고 좀 지켜 봐 주시기를 원합니다. 서로 세월이 좀 지나고 나면 확인이 되는 부분이 대부분일 것이고 오늘의 말보다 내일의 결과를 가지고 살피는 것이 나을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총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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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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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정치를 세상 사람과 똑 같이 좌우를 가르시고 좌파는 교회에 대한 위협이라는 다수 주류 교회의 주장을 똑 같이 받아들이시고 우파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시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 명백한 근거를 두신 것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와 재산을 나누게 해 달라는 청원을 물리치신 예수님의 말씀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해석이 필요합니다.
: 천국이 아니라 단지 세상 살이를 위해서 우파의 부패에 실망하고 좌파의 이념에 기대를 걸어 보는 교우들은 목사님의 이런 말씀에 심한 거부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런 교우들은 배려하실 필요가 없는지요? 하실 말씀을 다 해 놓고도 위대한 스승들에 못 미치므로 내색할 수 없다는 말씀은 모순이며 위선적입니다.
: 세상 정치의 좌우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초월이며 우리 공회의 노선이라고 알아 왔습니다. 세상의 고와 낙이 다 유익하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평소의 말씀과 크게 어긋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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