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읽으시고 답변을 다셔야 합니다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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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00:00
외부인 님이 쓰신 글이 어떤 의도로 쓰셨는지 잘 이해를 하시고 그에 맞는 답글을 쓰셔야지
그냥 자기 생각대로 이해하고 답변을 쓰시면 안되죠.
천천히 몇번을 읽으시더라도 상대방 글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셨으면 좋겠네요.
>> 부공3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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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글을 오래동안 읽어왔습니다. 여기 운영자의 뜻은 몇만개의 글을 통해 적나라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곳을 들어오는 사람들은 같은 뜻에 소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실력은 차이가 있고 달려온 거리는 차이가 있어도 속은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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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ilee 답변자는 '외부인'님처럼 하나님의 지도를 직접 받는 분입니다. yilee께서 백영희 목회연구회를 간판에 붙인 이유는 '외부인'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엘리사가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을 직접 섬김을 배우려 한 것과 같은 동기입니다. '외부인'님의 엘리사 옹호 발언도 비판적으로 받는 사람들이 반박하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인도를 직접 받지 않고 엘리야라는 파이프를 통해 받은 것은 인본이라 하면 뭐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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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를 이용하는 분들은 전부 자기 속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매번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았다고 자부를 해도 돌아보면 실수가 많고 잘못된 적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고 살았던 분들을 통해 참고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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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교인이 자기 속에 하나님께만 붙들려 살면 교회가 왜 필요할까요? '외부인'도 교회를 운영하고 계신데 왜 교인들에게 파이프를 직접 가지라는 말을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교회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속으로는 하나님과 당연히 연결하려 하는데 주변 도움이 필요하게끔 하나님께서 교회 제도를 주셨기 때문에 내게 부족한 것은 저 사람에게 신세 지고 저 사람은 내게 신세 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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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희 김현봉이 같을까요? 손양원과 제가 같을까요? 저와 반사생활을 함께 하는 분이 같을까요? 파이프가 새는 사람, 옆에서 꾸중물이 들어오는 사람, 파이프가 링거 정도 되는 사람, 별별 종류가 많으니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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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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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봉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저는 이분들의 가르침 전체를 연구한 사람은 아니지만 (연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중매쟁이의 도움을 받아 주님께 연결되면 그만이지요) 굳이 비교해 본다면 (이목사님 글이 한쪽으로 치우쳤다 싶어 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이분들은 공히 둘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중매쟁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물을 파서 생수를 공급 하든 수도를 연결하여 공급을 하든 공급하는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당대를 살면서 당대의 필요를 따라 주님의 일꾼들로서 생수이신 주님을 사람들에게 공급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현봉은 우물파서 덜 세련된 방식으로 공급을 했고, 백영희는 수도 파이프를 연결하여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공급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생수를 흘러 보냈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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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파이프를 사용했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은사의 문제이며 전달 방식의 문제입니다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아는한 은사의 문제이며 기능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저도 그분들의 글을 통해 나름 확인하는 것은 그분들을 통해 나온 생수가 같다는 것이며,,,,, - 이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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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목사님은 은사의 문제를 마치 사람의 문제 (누가더 깊이 깨달았느냐과 같은)인 것 처럼, 백영희라는 사람 김현봉이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쓰셨는데 이것은 자칫 일반 교인로 하여금 은사의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시선을 옮겨 백영희라는 사람을 추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더나아가 백영희 설교록을 절대시 하는 엄청난 일이 발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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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이목사님은 백영희 설교록을 근거로 일일이 부류 작업을 하여 그 각각의 파이프에 번호를 적는 것과 같이 (국어 사전 편찬하듯이) 사전화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이것은 성령의 무한한 영감에로의 접근을 오히려 막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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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글에서 이목사님은 평가하기를 김현봉 목사님보다 백영희 목사님이 깊고 체계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식의 말은 지방교회에서 위트니스리가 말히갈 바울이 쓴 글은 다른 사도들의 글보다 더 깊고 심오하고,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복음(위트니스리가 루터의 말을 인용) 과 같고 구약에 들어가야 할 글이 신약에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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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진정으로 깨달아야할 것은 하나님의 사도들의 통해 기록한 말씀은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통해 기록했으나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설교가 높고 깊고 낮고가 없습니다 그저 대언자로서 성령의 말씀하심을 따라 말하기 때문에 때로는 한번에 들어서 깨달을 수 없는 깊은 말을 전달할 수도 있고 (심지어 설교자도 설교하는 가운데 성령께로서 자신이 처음 듣는 말을 배우며 동시에 깨달아 가며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누구나 알기쉬운 평범한 설교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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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 양들의 수준과 형편을 따라 사역자들을 세워 이런 공급도할 수 있고 저런 공급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누구 설교는 더 깊고 높고 낮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자를 통해 교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 어떤 진리를 밝혀 줄 수도 있으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사역자가 잘나서 그런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붙들고 쓰는 문제이며 사역자가 높고 깊고 심오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가 깊은 깨달음을 갖는 것은 사역자가 깊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깊은 깨달음을 주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사역자들을 상대할 때 이사람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모세가 뭐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 능력이 나타나던 것이 아니라 그저 광야에서 방황하는 노인을 하나님께서 그저 붙들고 쓰시니까 대단한 모세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실 엘리사도 영감을 받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엘리사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열심히 엘리야를 좇아다니며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섬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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