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인 관찰

발언/주제연구      

전반적인 관찰

yilee 0 13


세계 잡족이 다 섞인 곳이 미국입니다. 그 주류는 청교도 영국인들입니다. 미국을 흑인 대통령의 잡족의 나라라고 단정해도 맞고, 21세기에도 미국을 청교도의 나라라고 단정해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 면 중에 한 면을 강조한 글을 읽으면서 틀렸다고 말해도 됩니다.

미국의 주류가 청교도이며 그 역사의 초기와 미국의 밑바탕에 흐르는 방향과 그들의 역사를 알면서, 한 편으로는 세계 잡족의 가마솥임을 아는 사람이 '미국은 청교도!'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맞는 말이고 '미국은 잡족!'이라고 말해도 그 말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반대로 말하는 두 말이 다 맞다고 하는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이들이 미국의 양면을 알면서 그 중에 한 가지로만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양면을 다 아는 사람이 양면 중에 한 면만 표현한 것은 '강조'에 그치는 것입니다. 그의 표현과 강조한 면을 가지고 보면 그 말한 사람의 관심 사항과 희망과 취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장로교며, 장로교는 칼빈 또는 칼빈주의다! 한국 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정통 보수 장로교회들의 언행입니다. 최근에도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 원어민 교인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참으로 이상하다며 말하는 내용입니다. 현재 한국 교계의 주류는 좌파 쪽에서 그렇게 애통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보수 노선입니다. 그 보수 노선의 중심에는 국내 최대 교파인 합동과 그 합동 계열의 교단들이 있습니다. 고려파와 고려파 계열 교단들도 숫자는 적어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현재 지도하는 지도부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칼빈주의와 칼빈에 대한 지나침입니다. 물론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건재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국내 신학교들이 지난 10여 년 세월을 통해 대학교나 대학원으로 다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과거와 달리 그 어떤 출중한 신학자도 그 자리들 사이에 빈틈을 비집고 들어 갈 여지가 없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최근 유럽에 유학한 소장파나 주류 주변을 서성거리는 분들, 이런 분들을 중심으로 '위 글'이 소개하신 내용들이 폭 넓게 자리를 잡고 나옵니다.

'위 글'에서 소개하신 내용이 사실을 전반적으로 객관적으로 바르게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장로교의 주류의 역사적 중심적 사고방식은 칼빈에 대해 절대성입니다. '위 글'에서 소개한 설명은 내용 자체로는 분명히 전체를 보셨고 옳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는 분들의 흐름은 2 가지로 파악이 됩니다.

위 글을 소개한 분처럼 교권에 초월하고 사실적이며 진실하며 바른 목적을 가지고 교계의 치우침을 우려하며 양심껏 칼빈주의나 칼빈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칼빈과 칼빈주의를 강조하는 선배가 신학교와 교단과 심지어 교계까지 석권한 상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이를 타계하고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하나의 공격 수단으로 그런 표현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가슴 아픈 일이나 사람의 마음 속에 숨겨 놓은 본능적 동기는 다 떨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국 참전을 진정 고마워하되 21세기가 되었는데도 미국이 좀 지나치다 하여 조심스럽게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 정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이 당선을 위해 미국의 건국에서 그 역사 전부와 참전 당시를 무조건 비판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를 찍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나 이런 흐름이 있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으며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홈은 교계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조금 늦은 편입니다. 원래 신앙도 좀 보수적이고 또 외부 소식은 최소화에 그치는 정도입니다. 비록 교계의 변화가 감지 된다 해도 그 주류 밑바탕을 대상으로 상대방의 본질을 파악하는 성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주류를 형성하는 합동이나 고신 교파의 핵심 지도부의 언행을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절대적이었고, 최근에 오면서 느슨해 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러나 작년의 김의환 목사님 장례식 때, 모처럼 보수 교계와 신학계 중진들이며 현 교권 지도부를 구성하는 이들의 설교 기도 등의 다양한 내용을 직접 접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직은 이 홈의 칼빈주의에 대한 표현 흐름을 바꿀 때가 아니며, 그런 지도부 밑에서 배우는 이들이 그 교단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알게 모르게 몸에 베이겠다고 짐작했습니다.

대화의 본질과 주변을 정리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며 여기 제 설명은 먼저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하나, 이 곳을 이용하는 분들 중에 양면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아는 한 면만을 가지고 전부라고 생각할 분들 때문에 잠깐 말씀 드렸습니다.

이 홈이 원래 주변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 하는 곳인데, 그 진심이 왜곡 현상을 심화 시켜 자타에게 큰 골치덩이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고자 기독교 신문 하나를 고정 구독하고 있습니다.












>> 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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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시는 분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 후배가 얼마나 칼빈주의에 정통하신 권위자이기에 그 후배의 말을 인용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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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문답방 글을 보면 기독교 신앙이 '칼빈'을 강조하다 '칼빈'에 갇혀지게 되는
: 잘못을 범했다는 글들이 많이 있으니 참고하시고
: 백목사님조차 '칼빈'에 갇힌 교계를 책망하신 것이 설교록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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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의 주석과 기독교강요가 종교개혁과 그 후에 기독교를 바로 세우는데 많은 일을 했고
: 후대의 사람들이 '칼빈' 자체를 받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카톨릭의 잘못된 사상에서
: 성경대로 믿을 수 있게 '칼빈'에게 도움을 받고 '칼빈'과 같은 입장에 선다는 것 때문에
: 카톨릭쪽의 사람들로 하여금 '칼빈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말은
: 칭찬이 아닌 조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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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칼빈주의자'라는 말이 '칼빈'과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그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칼빈주의자들은 그 말을 매우 거북하게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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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과 동시대에 무명의 많은 신학자 목회자들에게서 칼빈과 비슷한 사상과 문건들이 존재했었습니다. 칼빈 혼자만의 독특한 깨달음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칼빈도 초대교회 이후 어거스틴까지의 수많은 교부들의 글을 정리한 수준이었습니다.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신학이 옳음을 증명코자 수많은 교부들이 자신의 뜻과 같음을 일일히 찾아 보여주고 증명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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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를 잘 모르는 분들은
: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 '칼빈'만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개혁파'안에서는 칼빈주의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고 멀리합니다.
:
:
: '칼빈주의'라는 말이 생긴것은 '칼빈'이 조금 유명했을 뿐입니다.
: '칼빈'은 16-17세기 유럽의 다양한 나라와 도시에서 일어났던 '개혁신학'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일일히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조금만 신경써서 공부해 보시면 칼빈 이전에 이미 칼빈보다 뛰어난 이들이 있었고 신학사상에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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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칼빈주의자' 자신들은 '칼빈주의자'라고 불려지기도 싫어했고 그러한 사람이 되기도 싫어했습니다. '칼빈주의'가 아닌 '개혁주의', '개혁파'라고 불려지길 원했습니다.
:
: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신학과 모든 깨달음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부터 알고
: 한 사람에게 얽매이거나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에게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은 '칼빈'이 다 담지 못한 하나님을 다른 분에게 배움으로써 후대에 더 '성경적'인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외부에서 개혁파에 속한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즉 개혁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본래 그 사상이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없습니다. 그 태생이 교황이라는 인물로 인한 폐해를 경험한 것이기에 본능적으로 인물을 드러내는 일을 싫어합니다.
:
: 물론 사람마다 조금 천한 개혁파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빈만 옳다', '가장 칼빈이 위대하다', '칼빈이면 충분하다' 등등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안안에서는 이런 사람을 어리게 보거나 천하게 생각해서 거리를 둡니다. 어린 아이가 손에 든 막대사탕을 제일 귀하게 보는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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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씩 이곳 홈페이지를 보면
: 개혁주의를 편협한'칼빈주의'로 잘못이해하고 오해할 수 있게 적은 글들을 보게 됩니다. 일반 장로교가 '칼빈'을 따르는 것을 보니 공회가 '백영희'를 높이고 '백영희주의'라고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는 격의 논리를 펴는 것을 봅니다. 잘못입니다.
: '칼빈주의'라는 말을 멀리하고 천하게 생각하며
: '개혁주의'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십시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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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건은 백목사님과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어느정도의 가치로 두느냐에 있는것이 아니라
: '백영희'를 어떤 사람으로 볼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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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툴리안, 어거스틴, 루터, 칼빈, 백영희, ..............
: 백영희 이전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주장을 보충, 증보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유명과 무명의 차이일 뿐입니다.
: 소위 '개혁주의' 혹은 '개혁파'라고 불려지는 사람들, 또 그렇게 불려지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도 않고 한 사람만으로 만족하지도 않습니다.
: 아마도 외부에서 글을 쓰신 분은 그 외부적 성향으로 지적을 하신 것 같습니다.
: 공회는 공회적 성향으로 말씀하신것입니다.
:
:
: 백목사님 전기를 쓰냐 안쓰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 위대한 신앙인들의 전기를 통해 우리는 벌써 많은 유익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 쓰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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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가지 우리 공회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은,
: 터툴리안, 어거스틴, 루터, 칼빈, ...... , 주기철, 손양원등등의 많은 신앙인이
: 전기를 통해 소개되었을 때 그것이 반대 되지 않았고 '우상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왜 '백영희' 전기는 그렇게 인식되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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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보수 장로교는 '칼빈'에게만 배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 공회는 '백영희'에게만 배우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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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보수 장로교는 '칼빈주의'라는 말을 싫어하고 실천하며 '개혁파'로 고쳐나갑니다.
: 공회는 연구소 홈페이지 이름조차 'THE PAIKIA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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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 주석을 가지고 매년 두번씩 집회를 하고
: 칼빈 주석이면 충분하고 더 나은 깨달음을 본적도 없다고 말하며
: 칼빈 주석외에는 대충 간략하게만 보고 눈도장만 찍으라고 하는 중에
: 칼빈 전기를 만든다고 한다면.
: 그 작업을 두고 우리 모두 칼빈을 우상화한다, 지나치다 라는 말을 꺼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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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은 '칼빈주의'라는 말을 싫어했습니다.
: '타장로교'는 '칼빈주의'라는 말 대신에 '개혁주의'로 불려지길 원합니다.
: '공회'는 '칼빈'의 신학이 아닌 칼빈'주의'를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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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인 개념의 차이가 있어서 서로의 발언에 평행선을 달릴것 같아
: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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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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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희목사님이 우리시대의 `칼빈`이라면...
: : 백영희목사님의 설교록이 우리시대의 `기독교강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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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보다 더욱 더 백목사님을 높이고, 설교록을 더 열심히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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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아는 후배가 총공회신앙노선을 `칼빈주의의 완성`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 : 장로교에서 `칼빈주의의 완성`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 가치가 너무 높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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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건은 백목사님과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어느정도의 가치로 두느냐에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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