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신 지위와 처소의 경계선

발언/주제연구      

하나님 주신 지위와 처소의 경계선

사회 0 6


(과제 마무리)

이 글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앞에서 여러 가지로 살펴 주신 글들 중에 하나로 읽기 바랍니다. 다만 제가 연경회를 인도하고 있으므로 현재 솔로몬의 시므이 처리 대목에서 인도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면이라고 생각하셨으면.




(과제 흐름)

다윗은

평생 사울이 불법 부당하게 죽이려 해도 사울이 은혜의 기관이면서 하나님이 세운 왕이었으므로 피하기만 했지 칼을 들고 맞서지 않았습니다. 이 것이 바로 다윗의 장점 중 하나이니 다윗의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타락이 하나님 중심을 지켜야 할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돌아 서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고 악령도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가 타락한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 한 분을 모신 자기의 자리를 지켰고, 하나님이 세운 사울을 상대할 때도 하나님 때문에 자기가 지킬 자기 지위를 바로 잡았던 인물입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죽음과 이후 사울 집을 하나님이 버리심을 알 수 있었고 또 다윗을 세우심과 다윗의 평생을 통해 하나님이 세운 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집안이었다는 인간 감정에 붙들려 자기가 있어야 할 자기 위치를 떠나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넌 곳에 시므이가 있었는데 시므이의 문제는 자기 위에 세운 하나님의 은혜의 기관인 다윗에 대하여 자기가 지켜야 할 자기 예루살렘의 경계선을 넘었습니다. 유1:6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이 천사의 타락, 악령의 시작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경계를 시킨 것은

다윗은 요압이든 그 누구든 다 자기 관할에 두고 복음에 유익하게 사용하든지 눌러만 놓고 있든지 전체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 사자 곰 이리 등 맹수를 가리지 않고 제어한 실력자입니다. 왕이 되어서는 안팎의 적들을 그렇게 눌렀습니다. 특히 요압이나 시므이는 다윗에게는 다윗의 자녀이며 교인이며 양떼이므로 살리는 방향과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고 특히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는 주로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그들을 매나 채찍이나 발람의 나귀로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그들을 더욱 아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윗을 잇기는 했으나 계통만 구원의 계통이지 실력은 유약하기 때문에 다윗처럼 요압이나 시므이 같은 인물을 자기가 부모나 목자 입장에서 길러 가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유 없이 칼을 들면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부족한 왕이 됩니다.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살 곳을 정해 준 것은

한 편으로는 복음을 반대하는 고라 같은 구제불능의 반항의 악성과 악습을 회개할 기회를 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므이가 회개를 거부하고 회개할 기회조차 버린다면 솔로몬이 칼을 들어 죽이는 대신 시므이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회개하면 한 사람을 건지는 것이고 회개하지 못하면 솔로몬이 원수로 상대하여 싸워서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한 그가 스스로 죽을 길을 가서 하나님 나라의 반대 세력이 스스로 소멸 되는 방법을 내 놓은 것입니다.

시므이의 문제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이니,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위와 살아야 할 처소를 바로 지키도록 살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므로 예루살렘이 그들 지역입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니 신앙의 절정이며 중심지입니다. 그 곳 안에서 살아야만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고 그 것이 어떤 면으로 봐도 시므이의 복입니다. 만일 돌이켜 사람 되는 바른 길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또 자기 위치를 떠날 터이니 그 위치를 기드론으로 그어 두었습니다.

그 경계선은 오늘 우리가 각자 자기 신앙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술잔을 최종 선으로 그어 두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주일 성수로 선을 그어 두시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 경제 생활로 선을 그어 두시는데 시므이에게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살게 하고 기드론으로 넘어 가지 말라 한 것입니다. 자연양심으로 보나 민족과 가족의 양심으로 보나 신앙양심으로 보나 또한 만왕의 왕 다윗을 저주한 죄를 지은 자기를 솔로몬이 예루살렘으로 정해 준 배려를 봐도 어떤 면에서도 그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선을 넘은 사람은 그 선을 또 넘게 됩니다. 처음 선을 넘을 때 악령이 악성을 충동질해서 그러했는데 두 번째는 목숨을 걸고 넘지 말아야 하는데도 이 번에는 악령과 악성뿐이 아니라 지난 번에 시므이를 붙들고 경계를 넘어 간 적이 있어서 생겨진 시므이 속에 악습까지 나서서 시므이를 넘어 가게 했습니다.



3 년이 지나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작심 3일은 우리 마음의 흔들림을 말합니다. 제법 의지가 강해도 석 달 넘기기 어렵습니다. 3 년이라는 시기는 모든 믿는 우리 전부에게 참으로 심각하게 돌아 보고 따져 보며 경계해야 할 숫자적 한계입니다. 백 목사님 평생에 목회자들을 향해 결국 3 년을 넘기지 못해서... 라는 장 탄식 긴 탄식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이 노선에서 조심할 것)

위 글의 다른 분들의 깨달음은 제가 그 면까지 살필 시간이 없었고 이 번 성경 공부는 앞 뒤의 흐름이 있어서 지난 주일 강의를 할 때 이 면을 생각해 둔 것이어서 적었습니다. 이 글과 다른 면으로 적었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무한하기 때문에 제가 좀 큰 것을 설명할 수는 있다 해도 그 것이 전부이거나 유일은 아님을 아시고, 말씀 연구에 매사 이렇게 진력하시면 좋겠습니다.

모두 너무 깊게 좋게 잘 깨닫고 계셔서 한 가지 두려운 것은 이렇게 깨달음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면 수 년 전에 잃어 버린 어느 선교부 목사님처럼 어느 날 자기가 생각한 것과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다 옳다고 쉽게 단정하는 데까지 이를까 하는 염려입니다. 이 노선처럼 깊은 세계에서는 자칫 그리 되는 분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성경이 가라 하는 데 가지 않아도 죄고 성경이 서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더 가거나 옆으로 가도 죄가 됩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도 사후에도 서부교회와 이 노선에서는 적지 않은 작고 큰 삐뚤어 진 스승들과 위험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도 그렇습니다.







>> 행정실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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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교회 연경회 과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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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9 연경과제 - 시므이 처리 ◎ 2011/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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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경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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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상 2장에서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예루살렘 안에만 살게 하고 이를 어기면 죽을 것이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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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 시므이가 다윗을 욕했던 때와 비교하실 것
: * 제출 : 별도 말씀이 없으면 연경 과제 제출은 금요일 저녁까지며 tlgus151@naver.com 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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