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고 가는 유행의 바람 - 박사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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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4 00:00
제가 사는 곳은 시골의 면 소재지도 아니고 리 단위 자연 마을입니다. 바로 옆에 교회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밟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길 건너 교회에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번에는 옆에 교회 하나를 건너 그 옆 교회 목사님께서 지난 주간에 박사학위를 받고 4차선 국도에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통합교단 목사님들이 마을에 마을을 이은 교회들마다 박사학위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70년대에 가끔 보이던 것이
80년대에 들어 오면서 급증했고
90년대에 들어 와서는 전국을 뒤 덮었는데 그래도 시골 중심이었던가 봅니다.
여기 바닷가 어촌 마을에도 이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지방의 2류 일반 대학교만 졸업했습니다. 그 높고 어렵다는 대학원 과정의 신학교 공부는 제가 과정만 밟았지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학교에는 여러 과정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쉽고 빨리 끝 낼 수 있는 MA 과정을 밟았습니다.
일반 목회자가 밟는 신학과정은 고등성경학교 3 년, 신학대학 전공 4 년, 신학대학원 3 년, Th.M 2 년, 신학 박사 과정은 최소 5 년은 걸릴 것입니다. 빨라도 15 년, 보통 17 년을 신학만 공부하는 분들 틈에서 신학 견학 2 년짜리 목회자가 버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행스럽게 희소성의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두가 정규 신학 과정에 신학 박사 학위까지 받고 있는데 혼자만 받지 않는 정도고 일반 신학 과정조차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이런 사람이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남 다른 면이 되는 상황입니다. 신학을 하지 않고도 목회를 한다는 사실, 결과는 시작과 과정을 정당화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골이라 서로가 다른 교회 숟가락까지 다 알고 지내고 있는데 신학에 초보도 제대로 밟지 못한 사람이 그런대로 박사님들과 나란히 목회를 하고 있으니 이 사실이 하나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신학박사 학위가 교파의 분열에 핵심이 되던 시절, 이 나라 교계의 분열에는 어김 없이 신학박사 한 사람의 처신에 따라 정통성과 대세가 휘청거렸습니다. 말하자면 과거 냉전 시기에 핵무기 보유와 같은 정도의 의미를 지닌 것이 박사학위입니다. 그런데 박사학위의 수요가 이렇게 엄청나게 커지자 세월과 경제력과 교회의 성장에 따라 이제 공급이 넘쳐 이 시골 바닷가에, 심지어 교인 평균 연령 80 세라는 말이 나오거나 60 세가 넘었다는 말이 나오는 곳에도 이제 뒷늦게라도 박사학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유행입니다. 바람입니다. 유행의 바람이 휩쓸고 가면?
반드시 바람이 쓸고 간 뒤에는 남는 것이 있습니다. 묻혔던 것이 드러 납니다. 학위 없는 목회자가 세월이 나서 큰 소리 칠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가 과연 올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것으로 본 상황이 바로 눈 앞에 닥쳤습니다. 원래 프래카드를 걸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가겠지만 만일 평소 프래카드를 좀 걸어 봤더라면,
'박사학위 받지 않은 목사 000!'
이 광고가 확실하게 효력 있는 때가 이 곳까지 왔습니다. 이미 좀 혜택을 보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