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그 끝을 미리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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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4 00:00

사진은 매월 순회를 갈 때마다 지나 가는 길에서 꼭 보고 가는 들입니다. 사진을 유심히 보면 들판 가운데 뺑 둘러 절개지로 차단 된 위에 묘지 하나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분쟁을 말리는 편이고 소송은 적극적으로 만류합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철저히 대응하여 재판을 통해서라도 권리를 확보하도록 안내합니다. 예전에는 교인을 대신하여 법정에 대신 선 적도 자주 있었습니다.
이 노선은 싸워서 안 될 싸움은 처음부터 피합니다.
이 노선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은 영생 차원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최근 한종희 목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 분은 말 끝마다 백 목사님은 일관 되게 투쟁적인 분으로 그리고 박윤선 이인재 목사님 그리고 자신은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는 분들로 묘사합니다. 박윤선은 진리 투쟁에 양보한 것을 제가 알지 못하고, 이인재 목사님은 그의 전기가 '투사 이인재'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 백 목사님을 우회 비판하다가 나오는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한 목사님 본인의 경우도 2009년 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노선 비판 일변도로만 평생을 살았고 또 스스로 밝히듯이 50 년을 넘게 바르트 비판을 위해 살아 왔는데 어떻게 이런 말씀이 나오는지 배경은 알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에 대한 우회 비판이지 성경을 사랑과 용서와 화평으로 읽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그런 뜻은 아닐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나 그 분이 인용한 사랑의 사도들이나 모두들 스스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 할 때는 해서 안 될 싸움이라고 판단했을 때 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싸울 싸움을 피했다면 이는 사랑이 아니라 신앙의 포기며 십자가의 원수며 넓은 문을 열고 넓은 길을 가는 거짓 목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인재 박윤선 목사님의 경우도 가끔은 싸우지 않아도 될 싸움을 했다고 느껴 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 목사님은 그 분들의 제자급이니 비교 대상이 될 수 는 없을 것이고 또 실제로도 싸우지 말아야 할 싸움만 하고 계신다고 느껴 집니다. 싸울 싸움을 싸우지 않는 이들은 좀 뒤에 싸우지 않아도 될 엄청 난 싸움에 휘말려야 합니다. 싸울 싸움을 싸우는 이들은 작은 십자가 하나를 짐으로 장차 큰 싸움을 미리 초월합니다.
한 목사님은 '백 목사님에게는 양보라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다시피 없어요.'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싸울 싸움에만 집중하는 이 노선을 그토록 모르셨나 하는 탄식을 가졌습니다. 공회는 싸울 싸움에는 한 치의 양보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싸우지 말아야 할 것은 천하를 다 준다 해도 스스로 먼저 내 던집니다.
사진의 묘소 주인과 인근 토지 주인 사이의 분쟁은 전국적으로 흔합니다. 묘소 몇 평 때문에 대단위 개발 현장의 공사가 중단 되거나 막대하게 차질이 빚습니다. 저는 한 쪽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주장하고 지킬 땅이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몇 평의 땅을 그 주인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고 개발 일정대로만 하려는 이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훗날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저 사진을 되돌아 보면 과연 그 당시에 싸울 싸움이었는가, 그 방법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이런 문제로 지난 날을 평가하게 됩니다. 우리는 후회할 일은 해서 안 됩니다.
백 목사님 사후 공회의 싸움과 현재도 계속 되는 서부교회의 모습은 이 사진과 같습니다. 지금 양 측은 모두 과거를 다시 되 돌려 처음으로 간다면 지난 날의 투쟁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그 모든 행동들을 통해 그렇게 드러 나고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간 토요일마다 꼭 오른 쪽 창 밖으로 이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 모습을 통해 공회와 우리의 매 현실 모습을 한 번 자세히 생각합니다.
이 노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싸움에 능합니다. 그 첫째가 싸우지 않을 싸움을 피할 줄 압니다. 꼭 해야 할 신앙의 싸움이라면, 그 싸움은 질 수가 없는 싸움입니다. 성도는 승리뿐입니다. 십자가의 길에는 지는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