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감천 태극교 행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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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00:00


1번 사진
병풍처럼 사방이 둘러 싸인 감천 마을을 특수 촬영하여 담은 것입니다.
2번 사진
90년대의 주거 정비로 좋아진 모습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전성기인 80년대까지는 같은 자리에 하꼬방 밀집 지역이었습니다. 집 앞으로 지나는 골목에 2 명이 함께 가지 못하고, 집과 집 사이는 어린 아이 하나 비집고 들어 가거나 그 것도 불가능할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집이든 골목에서 문을 열면 바로 한 가족이 잠을 자고 있는 안방이었고, 한 골목의 50 미터만 아이들을 부르면 수십 명이 교회를 간다고 따라 나오던 곳입니다.
감천은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흥 과정에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서부교회에서 걸어서 가던 곳이며, 6.25 피난 시기에 형성 된 대규모 저소득 밀집지며, 태극교의 본부인데 이 곳에서 수 많은 주일학생들을 전도했고, 이들이 자라서 중간반으로 또 지금은 곳곳에 이 노선 중심 교인이 되거나 당시 활동했던 반사 선생님들이 공회의 중심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태극교는
근면하고 성실하며 만사에 아끼고 철저하게 사는 분들이어서 그 시작은 모두 극단적으로 어려웠으나, 그 곳에서 배우고 익힌 생활력을 가진 분들이 태극교에서 나온 경우는 예외 없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지금도 그 속에서 별 천지 세계에 빠져 사는 이들은 그 많은 세월 속에 여전히 근근 살아가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남북이 한 민족이나 두 체제를 통해 두 모습이 된 것처럼 태극교 사람들이 그 곳에 익힌 생활 습관 때문에 탈퇴 여부에 따라 두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했던 지역 중 하나인 감천을 잊은 지 20여 년이 다 되어 가는데 7월 23일 경 그들의 연례 행사날이 있어 그 곳을 지나가는 분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태극교의 중심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외지에서 단체로 감천동 태극도 본부에 집결한 관광버스가 십 수 대라고 합니다.
골수 신앙인들
미국의 아미쉬 교도들처럼 수백 년 세월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들 식으로 믿는 강단 있는 노선, 이제는 흔적밖에 남지 않았으나 수십 년 세월을 버티고 나온 재건교회 등 한 길을 고수한 교파들에 대한 관심은 평소에 많습니다만, 이단인 박태선의 전도관과 미신인 태극교라 해도 그 속에 인간 심리나 성향이 궁금해서 좀 주목하는 편입니다. 옳고 바른 신앙의 길이란 그런 인간의 요소나 흐름에 의탁해서 되는 것은 아니나, 비교하며 회개하며 은혜를 구하는 데는 유익할 때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