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가 후계를 세우지 않은 이유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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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백영희가 후계를 세우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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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직을 세우면서 한 사람의 노력이 많을수록, 그 조직이 강할수록,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열심을 더했을수록, 그 한 사람이 노력뿐 아니라 권위가 클수록 그 조직은 그 한 사람의 사후가 되면 더 급속히 더 산산히 흩어 집니다. 세상도 그렇고 교회 조직도 그렇습니다.

백영희 신앙노선의 서부교회와 총공회는 역사에 흔하지 않을 정도로 상기 설명 내용을 고루 갖추었습니다. 대단한 조직력, 생존력, 경쟁력을 다 갖추었는데 백영희라는 인물의 중요성은 외부에서 볼 때 이단이라는 소리가 쉽게 나올 만큼 지대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 세상 공부를 하려면 법학과 사학을 하도록 강조했습니다. 그 분은 원칙론에 남 달랐고 그 분은 역사성에 남 다른 분입니다. 그 분 스스로 구한 말과 일제 시대와 해방 후와 좌우 대결의 시기와 6.25와 이후 급변하는 사회를 몸소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기를 걸쳐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을 대하는 처세에서도 그 분의 혜안은 특별합니다.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님의 사후를 정확하게 짚어 내는 등 수 많은 일화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간 후의 서부교회와 총공회 앞 날이 정작 문제였습니다. 당연히 사후를 두고 1970년대부터 많은 조처와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 분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러했습니다.
다윗의 사후 솔로몬을 위해 해야 할 다윗의 조처도 아시는 분이고 제자들을 그 문제를 두고도 가르 친 분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가르 친 분의 자신 사후의 조처는 무엇이었든가? 후계자를 세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후계자가 지명 되지 않을 때의 모든 문제를 미리 다 말씀하시면서도 마지막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한 주간쯤 뒤에 다음 글을 이어 보겠습니다. 읽는 분들은 각자 의견을 이 곳에 주셔도 좋고 아니면 내심 가지셔도 좋습니다. 함께 연구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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