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속에 숨은 덪, 지식 속에 없어 지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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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4 00:00
1. 전문 분야
전통적으로 일반인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정을 거치는 전문가로는 의료 법조 교수 세계를 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일반인의 두뇌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지식을 담고 기억하고 자유롭게 활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나 건축도 앞 서 말한 분야 못지 않게 어렵고, 사회의 발달로 금융 세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분야 역시 앞의 모든 분야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말하자면 잘 나가는 자격증이나 직장은 일반인으로서는 기초적인 이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관련 지식의 분량이 많고 복잡합니다.
2. 과거 시절
예전에도 비슷하기는 했으나 좀 눈치가 있으면 어깨 너머로 의술을 배운 다음 돌팔이라는 억울한 말을 들으면서도 실제로는 정규 과정을 거친 사람을 능가하는 이들이 많았고, 변호사 자격증이 없어 브로커라는 이름을 듣지만 확실하게 실력이 나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건축도 눈치 있는 사람이 노가다 십장 소리를 들어도 건축사보다 나은 사람이 즐비했습니다. 전산이야 그 역사도 일천한데 전산 방면을 처음 개척한 이들이 누구에게 배우거나 자격증을 가져서 그 분야가 발전 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번뜩이는 두뇌 회전이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금융 세재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자격증이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일견 좋아 보이나 길 거리에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눈치로 배우고 타고 난 성실 근면과 살아 가면서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이 어우러 지면 단숨에 그 분야에서 앞 설 수 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법의 종류가 1만 개가 넘는 시대가 되어 한 분야를 전문한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가 근접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그 변호사는 다른 분야에서 무식한 사람이 되는 정도입니다. 법률 체계가 간단했던 시기는 시험 합격하면 실무만 익히면 될 정도였고 지식에서 딸릴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3. 발전 발달
한도 없는 법서를 상대하는 교인과 넘치는 의료 정보를 수월하게 활용하는 젊은이들을 상대하며, 불과 얼마 전에는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서툴었는데 단숨에 전문인에 쑥 다가 선 모습을 봤습니다.
'짦은 몇 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기에 저처럼 전문가다운 모습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읽어야 했고 머리에 담아야 했으며 담은 것이 입에서 술술 나오도록 활용하는 과정에 얼마나 남 모르는 노력이 있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머리에 담아야 할 정보의 대충 총량은 짐작할 정도가 되는 입장이어서 전문가의 초입 과정의 그들 상황을 느껴 보려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귀신 이 놈이 이 것을 노리고 세상을 이렇게 발달 시켜 놓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달' '발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으니 사람으로서는 그 것을 반대할 리는 없습니다. 발달 발전을 위해 '공부' '노력'을 하라 하는데 그 것을 반대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각 분야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과거와 다른 성과가 눈에 나타 나게 되니까 모두들 환호하게 되고 이후로는 오로지 발달이나 발전이라는 이름이 모든 전문가들에게 지상 과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귀신이 바쁘게 몰아 쳤는지 모두가 그 발전과 발달이 과연 발전이 맞는지 발달이 맞는지조차 생각할 틈도 없이 달려 왔습니다.
4. 잃어 버린 자신
발달을 한 것은 맞는데 그 발달 속에서 우리는 자기를 잃어 버렸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이맇어 버렸고 가족은 가족을 잃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교회를 잃어 버렸고 잊어 버렸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신앙의 본질, 신앙의 내용, 삶의 목적... 이런 근본을 다 잊어 버리고 옆에서 우르르 달려 가니까 휩쓸려 달리게 되고, 달리다 보니 달리고, 달리다 보니 왜 달리는지 그 자체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의사나 법률가가 일정 수준의 전공 지식에 정통할 정도가 되면 성경을 다 외우고 신학서를 다 외우며 신앙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입에서 주기도문처럼 나올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 갑니다. 그 많은 것을 배워서 어디에 쓸 것인가? 분명히 그 것은 세 끼 식사 외에는 해결해 주는 것이 별로 없고 세 끼 식사란 그 직업이 아니라도 흔하디 흔합니다. 얻어 먹고 살아도 세 끼 식사는 구조적으로 해결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 시대에서 조금 발달한 상태로 머문다 해도 자기 시대를 살아 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적어도 6천 년 세월 중에서 5,900 년 정도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자기 때가 갑자기 다가 오고 마음이 급해 지니까 남은 잠깐의 시기에 온 세상을 다 거머 쥐기 위해 최종 비법을 내 놓았습니다. 각 방면에서 배워야 할 바를 한도 없이 만들어 두고 그 무저갱을 향해 모든 인간을 다 뛰어 들어 가게 만들었습니다. 말세 귀신의 최고의 방법은 각 지식의 전문 분야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5. 신학과 신앙
성경 한 권이면, 신앙에는 부족이 없습니다. 신학서에 그렇게 나와 있고 이 노선 우리가 믿고 온 경험도 그렇습니다. 역사의 사례도 허다 합니다. 귀신이 세상을 그렇게 복잡한 무저갱 지식 천지를 만들어 둔 다음 그 여세를 몰아 신앙의 세계도 신학의 이름으로 무저갱 지식의 뚜껑을 열게 했습니다.
신앙에 필요 없는 지식의 세계를 한도 없이 만들어 두었습니다. 목회에 필요 없는 지식, 기도에 필요 없는 신학, 신앙에 백해무익한 이론들을 만들어 놓고 마치 세상이 전문 분야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게 된 것같이 신학도 그럴 것이라고 보여 주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왜 목회자 되려는 사람이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한다고 세월을 보내는지, 참으로 탄식입니다. 왜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이 신학 7 년을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녀 본 사람이면 아닌 줄 알게 될 것이니, 필요 없는 것은 단호히 정리하자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자기가 했으니 그 세계에 대한 애착이 있고 그 과정을 강조할수록 희소성이 올라 가고 자기 과시나 유익이 있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을 한 과거를 한탄하여 후배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후배들에게는 그 구덩에 더 깊게 빠지도록 삽을 들고 있는 것이 오늘까지 교계입니다. 너무 과한 표현일까요?
6. 신학의 절제
많으면 좋다는 것은 일방적 지식입니다. 많아서 좋을 때는 많아야 합니다. 조절이 필요할 때는 당연히 조절해야 합니다. 돈도 그렇고 세상 지식도 그렇습니다. 신학도 그렇습니다. 물론 신앙이야 많을수록 좋습니다.
신학을 한 번 구경한 다음, 그 신학의 해악과 문제점과 조절이 필요함을 파악하고, 단번에 후배를 향해 '신학은 구경용'이라고 하신 분! 역사에 그런 용기 있는 분들이 더러 계실 것인데 우리 주변에서 첫 손을 꼽으라면 김현봉 백영희 이런 인물들입니다. 신학계가 처음에는 무식한 줄 알고 몇 마디 했다가 혼이 나고 세월 속에 그 분들과 이해 관계가 직접 마주 치지 않게 되자 지금은 성자들로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은 신학의 위험을 알고 신학을 초월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총신대 성경학자 박희천 교수님이 '만일 백영희 목사님이 원어를 알았더라면 칼빈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격찬한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칼빈이 만일 원어를 몰랐더라면 백 목사님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칼빈은 태어 난 곳 프랑스며 활동한 곳은 스위스 제네바입니다. 2 개 언어가 생활 언어였다고 생각 됩니다. 칼빈은 역사가 알 듯이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에 당대 최고의 권위자였습니다. 5 개 국어를 머리 속에 다 넣고 자유자재하는 이 분이 1,500여 년의 지난 날 교회사 전체 기록에도 정통했으니 그 머리가 얼마나 복잡했을까? 칼빈은 천주교보다 천주교를 더 잘 알았습니다. 자유자재로 천주교의 깊은 곳을 찍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다 정죄했습니다. 그리기 위해 초대교회 시기를 역시 섭렵했습니다. 그 하신 일만 가지고 말한다면 그런 출중한 학문 경력이 그를 개신교 5백 년 사의 최고 공로자를 만들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그런 자신의 사명 때문에 또 그 사명 때문에 필요한 신학 지식 때문에 자기 자신만이 하나님 앞에 서서 대화하며 깊숙한 신인 동행의 길에 들어 서는 기회는 너무 많이 놓쳐 버렸습니다.
그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오늘 우리로서야 그런 어른의 발 밑에도 엎드리지 못하겠으나 그는 오늘 우리와 비교 당할 수준이 아니니 그는 역사 몇 손가락을 꼽을 성자입니다. 그런 성자는 우리와 비교 될 것이 아니라 그런 성자들과 비교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자들이 흔치 않으니 결국 칼빈은 신학자 칼빈과 신앙가 칼빈을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 목사님이 칼빈처럼 원어에 정통했다면 칼빈의 신앙에 미쳤을까?
칼빈이 원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백 목사님보다 신앙의 경지가 더 높지 않았을까?
기독교사에 수고한 공로로 말한다면 칼빈의 밑 둥치 수준이고 백 목사님은 꼭대기 있는 가지 수준이지만 그들의 내부 신앙 차원을 두고 비교한다면 칼빈은 자신의 신학 지식 때문에 자신의 신앙에 손해를 너무 많이 봤다고 생각 됩니다. 그 분의 혜택을 한 없이 보고 사는 저로서 감히 비판하듯 접근 되어 죄송하면서, 이론적으로 생각하며 오늘의 우리 자세를 돌아 봤습니다.
제가 박윤선 목사님을 남 다르게 보는 이유는 일반 교계와 다른 시각 때문입니다. 그 정도 신학 과정을 거치면 자기 속에 가진 신령한 면은 삶아 놓은 벼처럼 생명성을 잃어 버리는 법인데도 그는 늘 생명성이 속에 움틀거렸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이 노선은 박윤선 목사님이 신학을 하지 아니했더라면, 또는 신학의 초보만 하고 말았더라면 한국 교회는 더 큰 인물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아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