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아동에 이어 장년반 노령에 주력할 시기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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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주교 아동에 이어 장년반 노령에 주력할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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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
주택가 한 골목 시작하는 곳에서 골목 저 안을 쳐다 보면 아이들이 수십 명이 바글바글 놀고 있었습니다. 반사의 신앙에 상관 없이 그냥 나가서 걷어 오면 반사 1 명에 수십 명 학생이 출석을 했습니다. 1960년부터 시작 된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부흥사가 1980년대 말까지 수십 년 이어 지며 역사적 기록을 세울 때 아주 흔하디 흔한 현상이었습니다.

당시 백 목사님은 그런 반사들에게 그 기회가 언제까지라도 갈 줄 알면 참으로 큰 착각이라고 외쳤고 본디 복음이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 한 명을 구원하려고 10 년을 기도하며 그 집을 넘 보다가 얼마나 매를 맞고 혼이 나며 애가 터지면서 세웠다는 점을 누누히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 기회를 딱 잘라 버리면 그런 모습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모든 교훈과 지도는 전부 예언이 되었습니다. 한 골목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를 다 훑어도 아이가 1 명도 보이지 않는 시기입니다.

그래도 과거 그 때 분위기에 휩싸여 오늘도 무조건 뛰어만 가는 공회 반사들을 보며 열심은 좋고 인내는 좋으나 하나님의 현실 인도가 우리를 다른 단계로 끌어 가시는 면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변화 된 현실을 쫓는다면서 변화 된 하나님의 인도를 쫓지 않고 하나님을 바꾸고 진리를 바꾸며 교회의 신앙 노선을 바꾸어 속화 되고 타락의 길로 가는 교회들도 안스럽습니다.




최근에 우리에게는 급격하게 과거 우리 공회에 주신 주일학교 부흥의 시기와 같은 현상 하나가 있습니다. 교회에 따라 이미 깊숙히 진행 된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언어와 생활과 사고방식이 다른 이주민의 국내 정착이 급격히 늘고 있고 또 하나는 그들보다 더 극단적인 경우인 노령 층입니다. 이주민들은 우리에게 선교의 생활화와 일반화를 의미한다면 요양 대상이 되는 노령 층은 우리 전부에게 과거 주일학교 부흥 때의 사명과 같은 차원으로 다가 옵니다.

과거 주일학교 부흥 시기의 아동들은 부모가 있으나 손이 미치지 못하여 방치 되고 있었고, 그들에게 오 갈 곳이 없어 그들에게 손을 뻗는 교회나 반사가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손 쉽게 따라 왔습니다. 단지 수고만 하면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이들이었는데 다만 그들은 교회로서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재정 지출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데려다 놓아도 교인답지를 않아서 모든 교회들이 아동 방면은 교회가 가질 부속 시설로서 이름만 유지했고 교회를 잘 다니는 가정의 자녀 위주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성탄절 성경학교 등의 행사 때만 교회가 일시 움직였습니다. 그 움직임을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의 존재감을 덧 칠하려고 들러리 행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이 노선은 그들을 위해 마치 장년반을 상대하듯 전력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우리의 충성이 성경에 옳고 바름을 보여 주셨고 결국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사까지 우리를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지금 주변에서 도와 주어야 움직일 수 있는 요양의 대상이 되는 노령 층은 과거 수십 년 전의 주일학교와 비교할 때 그 폭발적으로 늘어 나는 수가 같고 그 전도의 용이함이 같으며 전도를 한다 해도 교회가 투자한 대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과거 아동들에 대한 면보다 훨씬 절망적입니다. 주교생은 자라서 교인이 될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나 이 노인 층은 원죄 때문에 100 %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으니 반드시 초상을 치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과거 아동들은 버려 둔다 해도 세월 속에 언젠가 믿을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나 노령 층은 자녀들까지 외면하며 그 상태에서는 살았으나 신앙을 가질 수 없는 의식 수준이 될 수 있고 급기야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애를 먹여도 깨끗하나 이 분들은 그 반대입니다.

교회가 복음 운동을 버려 두고 사회 복지 차원에서 사회 구제 활동을 하는 경우는 이들이 사업의 대상입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월급을 지출하며 남 모르는 수입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이들을 복음 운동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십자가의 대속을 떠나서는 불가능합니다. 석 달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주일학교 아동들처럼 반사 하나가 수십 명을 데려다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잘해야 2 명을 모실 수 있고 대부분은 1 명에 1 명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머리 수에서 하나지만 그들의 살아 온 세월을 본다면 90 세 노인 1 명은 10 세 아동 9 명의 생을 가진 분입니다. 이런 의미라면 우리에게 과거 주교 아동을 통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서 2000년대 주변의 10여 년 또는 20여 년을 휴식기와 함께 앞 날 인도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모세의 미디안 40 년처럼 주신 것이고 이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요양 대상 노인들을 쳐다 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 백 목사님과 공회가 당시 모든 교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주변 아동들에게 복음의 눈을 돌렸듯이 오늘 우리에게는 그들의 부모가 의지할 수 없는 노인이 되어 우리에게 그들의 자녀를 맡겼듯이 이제 그들 자신을 우리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맡기나 그 속에는 마25:37이하에서 보듯이 주님이 직접 맡기고 계십니다. 주님이 맡기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입고 직접 오시는 시기입니다.

총공회의 전형적인 고질병인 '그대로를 위한 그대로'에 머물면 늘 1960년대의 주일학교 분위기로 골목골목 아이들을 쓸어 담고 다녀야 합니다. 당시 그런 활동에 최고 기록을 가진 분이 지금은 필리핀에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 분에게는 그런 은혜를 주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 일반 교회와 교인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거두어 가셨음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대신에 그 때보다 더 고난도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사회 복지 차원이 아니고, 이웃을 육체로 사랑하는 유행에 편승해서가 아니며, 교회가 교회의 존재감 선전을 위해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과거 순수하게 아동들을 위해 움직인 바로 그 활동을 쏟을 때가 되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조기 은퇴를 해야 할 정도의 반사들이 장년반에 1 대 1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요즘 계속 모시고 나오다가 오늘 숫자로 8 명에 이르게 되었고 이 기회에 이 시기의 우리 복음 환경과 사명을 한 번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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