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회 시설, 설비 - 앰프 음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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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00:00
1. 시골 사람을 대할 때의 지혜 하나
백 목사님은 시골 사람을 거적을 덮어 놓은 바위로 설명하셨습니다. 허수록하게 무지하게 또는 볼 품 없이 보인다 해서 발로 툭 찼다가는 그 속의 바위 때문에 크게 다친다는 뜻이었습니다. 처음 시골에서 목회하면서 이 말씀 때문에 답변자 눈에 손가락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듯이 보이는 교회를 5 년간 조심하며 말 한 마디를 먼저 하지 않고 기다리며 그 거적떼기 속을 먼저 알고 싶었습니다. 10 번의 시무투표를 무사히 통과한 것은 목사님의 그런 가르 침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33 세의 첫 목회지, 서부교회와 공회 안에서 제일 강경파라는 이름 때문에 한 해 넘기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스승의 가르 침 한 마디를 오늘까지 늘 뼈 저리게 느낍니다.
지금 돌이 켜 보면 5 년이 아니라 10 년을 그렇게 했어야 더 좋을 뻔했다는 느낌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씀은 모르는 교인이 없으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나의 진리가 되는 과정에서 스승의 지도는 그 말씀을 경우에 맞게 바로 적용하게 했고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2. 최대한 엎드리는 경우
- 최소화 노선
백 목사님의 신앙 성향 중 하나는, 기술과 편의와 경제 면에는 최소화를 추구하고 하나님 앞에 정성과 노력과 희생은 최대화의 원칙이 있습니다. 개척 교회라 해도 음향에 대해서는 예배당 건축에 버금 갈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투자를 하는데 서부교회는 일찍부터 주변 교회에 비해서 모든 면으로 앞 섰고 1970년대부터는 국내 최대 교회 중의 하나였으니 아무리 교인들이 서민층이라 해도 음향 하나를 해결 못할 경제는 아니었습니다. 백 목사님 목회의 가장 큰 특징이 말씀이 중심이며 전부라 할 정도이니 스피커 소리는 교회가 가장 노력을 기울일 면입니다. 그런데도 기술과 편의와 경제의 최소화 원칙 때문에 설교 소리에 지장이 있어 설교자와 전체 교인이 불편했고 지금 위 글 질문자께서 이 노선에서 더 중요하게 살필 문제가 무수할 터인데도 과거 그 시절을 생각할 때 '소리' 문제를 떠 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목사님 목회의 특별한 점 중의 하나입니다.
- 예배당 건축
우선 서부교회는 경제가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1970년 예배당을 신규 건축할 때 외벽에 페이트나 타일 등의 미관 처리도 하지 않고 세멘 물로 마감을 했습니다. 그 정도니 건물 내부의 편의나 장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본당 안에는 난방은 물론이고 여름의 냉방을 위해 선풍기 하나도 없었습니다. 겨울 극한 추위에도 촛불 하나 몸을 데울 것이 없어 모두가 떨며 예배를 드렸고 여름에 선풍기는 물론 옆 사람과 어깨를 마주 대고 앉아야 했으므로 부채조차 부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불편과 악 조건은 말씀의 뜨거운 은혜와 성령의 샘 솟는 인도가 대신했으므로 교인들은 예배당에 냉난방이 없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건축 당시 국내 최대 예배당 공간을 확보한 정도니 그 경제 편의 기술적 최소화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최대치로 노력한 것은 정성 노력 희생이었습니다. 건축을 두고 한 가지 더한다면 안전이었습니다. 단언코, 서부교회 예배당은 당대 건축물 중에 전국 최강의 안전성을 자랑합니다. 건축을 두고 정성과 노력과 희생은 건물을 튼튼하게 짓는 쪽에 다 기울어 졌습니다.
- 음향 문제
목사님의 당신의 자기 생활은 더 철저했고 전체 교인의 신앙 지도가 철저했고 교회 운영의 전반이 다 그러했고 대규모로 예배당을 건축하면서도 견고성 문제 외에는 만사를 최소화 했기 때문에 음향 문제는 당연히 최소화의 원칙에 의해 설교자의 소리가 들리면 되는 것을 기준으로 했지 음향의 질은 철저히 배제 시켰습니다.
* 예배당 구조와 경제
음향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기나 기술에 앞 서 예배당의 건축 과정에서 구조 문제가 제일 앞 서 나가며 비용도 많이 듭니다. 예배당 실내를 돔 형으로 지으면 마이크가 없어도 음향 문제가 해결 될 정도입니다. 천주교 성당이나 국립예술극장이나 고대 로마의 건축은 그 모양의 아름다움과 함께 음향을 고려해서 건물의 구조를 설계합니다. 바로 이런 면이 강조 되거나 가미 되는 순간 건축비는 부르는 것이 값이라 할 만큼 폭등합니다.
백 목사님께 예배당이란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을 정도면 예배 장소로서 필요 충분 조건을 만족 시켰다는 노선입니다. 경제 최소화의 원칙상 직 사각형 건물이면 비용의 최소화는 가능한데 문제는 음향에서는 최악의 조건이 됩니다. 돔 형이나 계단식 좌석 등이 되면 건축 비용이 폭등하는데 그런 돈은 복음 운동의 일선에 직접 사용 되게 하는 것이 목사님 경제 원칙이므로 꿈도 꾸지 못했고 한 편으로 예배당은 음향 때문이 아니라 미관에서 세상이 볼 때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면 신앙 내면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예배당인 줄 잘 모를 정도로 평범한 건물 모습을 갖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음향 문제를 두고는 이래 보나 저래 보나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예배당 실내와 경제
비록 예배당의 공간 구조 자체가 음향에 불리하고 장애가 많다 해도 현대 음향 기기는 이를 보완할 방법이 많습니다. 서부교회는 목사님이 설교의 음성 전달만 관심이 있고 찬양대도 음악적 수준을 강조하지 않았고 기도 때에도 분위기 연출을 하지 않으므로 건축물의 구조가 음향에 불리하다 해도 방음 벽을 잘하면 다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커튼 하나 없이 강단 뒤에 휘장 하나 없고 위 쪽에는 덴죠라고 하는 천정 처리조차 하지 않고 건축물의 골조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 내고 있었으니 음향 문제를 두고는 좋은 장치를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음향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도록 악화를 시켰습니다. 주어 진 구조에서 음향을 개선하려면 실내를 둘러 싸고 있는 벽과 천정 전부를 흡음 처리를 해야 합니다. 장식과 함께 흡음 기능을 가진 재질로 마감을 하게 되면 이상적이나 서부교회는 건물의 외벽을 콘크리트에 세멘트 물을 칠하고 끝낸 정도니 실내 인테리어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연장선에서 예배당 실내도 외벽과 같은 경제 원칙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 예배당 이용의 특수성
제대로 된 교회 특히 초대형 교회라면 대예배는 본당에서 드리나 그 외 밤예배나 새벽예배는 교회의 별도 프로그램처럼 되어 별관이나 교육관 등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는데 서부교회는 매 주 7 회의 새벽예배에서 밤 예배 2 회와 주일 오전 오후 예배까지 모든 예배를 본당에서만 드리게 됩니다. 일반 교회와는 그 예배 참석수의 편차가 비교 되지 않을 만큼 우수했으나 음향 면에서 보면 이 부분 때문에 일반 교인들이 짜증 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 기준으로 주일 오전 예배가 4,500 명 출석하면 오후가 4,200 명, 밤 예배가 3,800 명, 새벽은 1,000 명 정도 출석을 합니다. 비록 방음은 황량한 예배당이지만 사람이 많이 앉으면 사람의 몸이 음을 일부 흡수하기 때문에 마이크 소리는 허공에 돌 듯 하는 울리는 소리를 갖기는 하지만 그래도 앰프 실의 노력으로 '겨우' 어느 정도 맞추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미세하게 겨우 맞추어 놓은 것이 앉는 사람들의 숫자에 변화가 있으면 음이 어지러워 집니다. 여기에다 주일 오전 예배는 10시에 시작하는데 그 앞에 8시 30분에서 9시 20분까지 주일학교 예배가 있고 이 예배 시간에는 학생들의 출석수에 따라 또 앰프를 조절하는데 9시 20분에 주일학교가 마친 뒤에 반사들이 학생들을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오면 수백 명의 반사들이 거의 5 - 10 분씩 지각을 하는 일이 생깁니다. 밤 예배는 저녁 7시니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 시간에 맞추어 들어 오려면 전쟁 정도를 치르게 되는데 정시 예배에 기다렸다가 바로 시작하는 교회와 달리 역동적으로 전력하는 서부교회로서는 앰프 기사가 그 모든 변화 여건에 맞추어 음향을 계속 조절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예배마다 다르고 예배 시간에도 예배 시작 전과 후의 착석 진행 과정이 계속 달라 지는데 건축물의 구조도 그 구조를 보완할 실내 방음 흡음 장치도 전무한 상태에서 앉는 교인들의 역동적인 변화까지 더해 지면서 서부교회 앰프실은 이런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 교인들의 눈총과 불평을 한 몸에 받으며 한 편으로는 목사님을 상대해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주어 진 여건 안에서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며 사방으로 알아 보고 노력하여 해결하라는 말만 듣게 됩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기술자 입장으로 본다면 될 수 없는 조건에서 그 정도라도 된 것이 장하다 할 정도입니다.
- 상황의 추가 악화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할 말이 많은데 음향 기준에서 상황을 더 악화 시킨 것은 교회의 계속 되는 건축이었습니다. 일제 시절의 다다미 2층 가옥을 털어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것이 1970년에 3층 콘크리트로 건축을 하게 되는데 1970년의 첫 신축 예배당은 현재 서부교회 강단이 앞 쪽 본당뿐이었고 앰프도 그 수준에 맞추어 놓았는데 주일학교의 폭증과 이로 인한 장년반의 가파른 증가로 본당의 북쪽인 남반 쪽에 ㄱ자로 별관을 달아 내어 본당의 예배 공간을 넓혔습니다. 예전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데 그렇게 환경이 바뀌어도 백 목사님께 앰프 교체 등의 기계 구입이나 새 제품 교체 등을 허락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지간하면 있는 것을 잘 고쳐 쓰고 돈이 들지 않는 다른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정상급 음향 기술자들을 초빙해서 자문을 받아 본 적도 있으나 한결같이 근원적인 문제는 건물 내부 공간의 구조를 지적하고 그 다음으로 현실적 개선책은 벽과 천장을 전면 방음 처리하라는 것인데 목사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배당 안에 못을 하나 박을 일이 있어도 목사님은 극단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금하는 정도로 건물을 아끼며 조심하는 분입니다.
- 김진태 목사님의 개선책
교회 음향을 맡고 있던 김진태 집사님이 백방으로 물어 봐도 모두 구조적 문제와 방음 시설만 지적하며 백 목사님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 수도 없다며 반대를 하자 스피커의 위치만 변경 시켜 비록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외부 전문가의 지적이 방음인데 스피커는 예배당 실내의 허공을 향해 있습니다. 이 스피커를 예배당의 의자 밑으로 넣고 작은 용량의 스피커를 많이 설치하자는 것입니다.
다행히 서부교회 의자는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 져서 왠 만한 어른 두 명이 맞 잡아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일반 교회 의자 정도라면 의자가 움직이면서 스피커나 그 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서부교회는 별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로 인해 서부교회 실내 앰프는 향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80년대의 초반과 후반의 음질에 확실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 백 목사님의 인재 양성 방법의 문제
목사님은 남들이 전혀 가능성이 없다 해도 오랜 세월 기다려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가는 분입니다. 목회자도 대부분 그렇게 만들었고 교회 내 구역장과 반사들도 그렇습니다. 앰프를 맡은 분도 이런 초대형 교회의 음향을 책임 질 기술이나 배경이나 경력을 가진 분이 아닌데, 일단 전자 제품을 취급한 분이므로 불러서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직책을 맡아 일을 하면서 실력도 늘고 배우고 나중에는 교회 중책 때문에 자신의 신앙도 자라게 되는 식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합니다.
가정으로 말하면 부모가 자녀에게나 베풀 수 있는 사랑입니다. 좋은 환경을 찾아 가서 누리는 것보다 내가 바로 됨으로 환경이 복 되게 바뀌도록 하는 것이 신앙이며 목사님은 이 면에 철저했고, 현재 볼 때는 실력이 없다 해도 앞으로 배우고 고쳐서 실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구원 운동이며 사람을 살리고 기르는 하나님의 역사이므로 백 목사님의 모든 인재 양성의 원칙도 그러했으며, 이 앰프 기술 면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이런 표현과 이런 설명은 듣기에 좋게 들릴지 몰라도 한 사람이 배워 가고 알아 가며 나아 져 가는 그 과정에 많은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돈만 투자하면 방음도 기계도 기술자도 확보하고 단번에 해결할 일을 가지고 목사님 자신부터 예배 때마다 설교 자체에 영향을 받아 가면서 때로는 설교가 중단 되어 가면서 교회의 돈을 최소화로 아끼고, 기술과 편의도 최소화로 줄이되, 우리의 정성과 노력을 최대화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김진태 목사님을 통해 예배당 음향에 맥을 잡았고 후임 박 집사님이 백 목사님 노년에 가서는 서부교회의 음향을 제대로 관리하여 오늘까지 별 탈 없이 맡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앰프 기사 한 사람을 잡고 기술과 사람을 만들듯이 공회 모든 목회자도 애초에는 별로 쓸 모 없는 인물이 대부분이거나 세상적으로는 쓸 모가 있다 해도 공회 목회자로서는 몹 쓸 인물들이었는데 목사님은 평생을 통해 그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물론 백 목사님 기준과 그 교훈 기준에서는 너나 나나 목회자나 일반 직원이나 기술자나 사람 같은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들의 과거와 오늘을 비교한다면 주변에서 놀랄 만큼 여러 면에서 인재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3.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
간단히 설명하려면 한 문단이면 될 일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논문을 적듯이 한 교회의 역사를 적어 내려 가듯이 전력을 다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백 목사님이 없는 오늘 우리의 자세 우리의 방향을 돌아 보아 오늘에 유익 될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 경제 충성
보통 교회 내에서 의논이 있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공금을 사용할 때와 자기 혼자의 개인 돈을 사용할 때에 그 조심과 투철한 노력이 달라 지는 것을 봅니다. 자기 집 물건이면 고쳐 쓰고 재활용해서 쓰면서 돈을 아낄 사람이 교회 돈은 공금이라 하여 인심을 크게 쓰고 통이 크게 처리하는 일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점은 거의 다 목사님들에게 해당이 됩니다. 또 교인 중에서도 은연 중 이런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교회의 예배를 십 수 년 동안 어지럽게 하던 중대한 문제를 두고도 그 분은 예배나 말씀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교회의 돈 한 푼에 대하여 끝 장을 보는 조심과 두려움과 경건을 가졌으니, 이런 구체적 이유가 있어서 이 홈은 백영희 신앙을 꼭 좀 뒤져 봐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목사님들이 교인들께 새 차가 나오면 바꾸자 하고 편의 시설을 척척 교체하는 데 앞 장 서는 것이 흔합니다. 그런데 그 돈을 그 목사님이 자기 집에서 가져 오거나 자기가 땀 흘려 번 돈이면 그렇게 할까? 그렇게 했다면 부도가 났든지 늘 경제 곤란에 허덕이다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어 못 쓸 인물일 것입니다. 교회의 중직자들도 제 돈이 아니라고 목사님이나 장로님들께 또는 교인들을 위해 쉽사리 통이 큰 경비를 지출하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아껴야 하겠는가? 예배에 목숨을 거는 목사님이 예배에 지장을 받으면서도 돈을 아꼈으니 그 분은 교회 경제를 아끼기를 목숨 걸고 아꼈다 하고 싶습니다. 앰프 외에도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 인재 양성
우리는 남이 잘 길러 놓았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스스로 역경을 헤치고 잘 자랐든지 이미 인재가 된 사람을 뽑아다가 사용하기를 좋아 합니다. 백 목사님은 이미 그렇게 인재가 된 사람은 그가 스스로 자립의 자주 신앙가이므로 그 사람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하지 굳이 이 쪽으로 끌어 오려 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인재를 만든 분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의 자녀이므로 남의 집 자녀를 데려 오려 하지 않고 그 가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인재는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이미 주셨는데 다만 현재 실력은 없을 것이므로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누가 그런 인재일까 하고 찾고 주어 진 인물 중에서 비교적 낫다 싶은 사람을 붙들고 맨 바닥에서 하나씩 가르 쳐 인재를 만들어 가는 분입니다. 공회도 이런 노선을 가졌기 때문에 타 교단 교회를 통째로 공회로 가져 오는 일은 극단적으로 조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교인을 길러 반사를 만들고 반사를 길러 목회자로 만들고 그리고 개척 시켜 나중에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공회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공회의 견실한 교회들을 타 교파에 뺏긴 일은 많아도 타 교단의 길러 놓은 교회를 뺏아 오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남이 길러 놓은 남의 집 외동 아들을 훔쳐 오는 유아 납치법 식의 오늘 교회 부흥과 목회자들의 인재관이 들어서 교계를 이렇게 혼탁 시키고 있습니다. 여러 면으로 돌아 볼 일입니다. 바른 진리를 찾고 옳은 노선을 찾아서 들어 오는 사람은 그 사람의 복이며 그 사람이 결정할 일이지만 이 노선 안에 있는 우리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주 앞에 그 말씀으로 길러 가는 면이 우리 할 일이며, 누가 그냥 줘도 마다해야 할 일을, 공작 납치 유괴를 해서 데려 온다는 비판을 받을 일을 한다는 것은 이 노선이 아닌데, 이 것이 말로는 쉬워도 실제 목회 현장에서 이대로 바로 살아 보려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