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거창읍교회, 주남선 - [사진]
"
0
2010.09.19 00:00
1. 거창읍교회
사진은 거창교회 앞 뜰입니다.
원래 거창읍교회였는데 지금은 거창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09년 주남선 목사님은 몇 사람과 함께 개척을 했습니다. 특이하게, 아무도 전도하지 않는데 몇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직분을 갈라 맡고 예배를 드리다가 뒤에 선교사들이 알고 교회를 지도했습니다. 모인이들은 예배를 드리다가 담배를 피워 가며 그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교회 주변 마을에서 태어 나서 자라고 교회를 세우고 집사가 되고 나중에 조사님이 되고 이 교회에서 목사님이 되어 신사참배를 이기고 해방 후에 다시 목회를 계속하시다 6.25 전쟁 때 자유롭게 전하고 다니다가 수복 후 돌아 가십니다. 경남 지역이 원래 믿는 사람이 적은데 거창 지역은 그 중에서도 적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 벌써 6백 명이 넘는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한 곳에서 나고 자라고 믿고 평신도 집사로 그리고 그 곳에서 목사로 성공한다는 것을 평생 제자들을 기르고 가르 칠 때 강조하는 사안입니다. 남의 동네, 모르는 곳에서는 천사가 될 수 있으나 자기의 평소 자기의 과거를 아는 아는 이들에게는 설교와 목회는 가장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를 초월하려면 실제 말씀대로 사는 실행과 그 실행을 보며 하나님께서 실제 동행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백 목사님도 개명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성공했고 그의 평생 그의 가장 충실한 제자들이 그가 떠났던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나옵니다. 주남선 백영희... 이런 면에서 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나고 목회한 분들이나 이 점에서 거의 모든 일반 성자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2. 거창읍교회와 시냇물
1950년 6월 25일에 기습 남침한 북한군은 7월 말에 이르러 거창에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밀리면 대구의 낙동강까지 바로 직행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거창의 시내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이 쪽은 남 쪽이며 미군이 건너 편을 응시하고 있었고 반대편 중앙에 있는 교회는 북 쪽이며 인민군들이 강둑 너머 포진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치하던 다음 날 새벽 주남선 목사님의 거창읍교회는 새벽예배 시간을 위해 종을 쳤고, 그 종 소리를 공격 신호로 삼은 북한군은 총 공격을 퍼 부었고 미군은 허무하게 무너 졌습니다. 이 강둑은 신앙 초기 백영희 집사님이 대표 기도를 부탁 받고 기도를 인도했으나 '예수님 이름'을 빼고 기도를 마쳤고 그 날 밤 새도록 이 강둑에 홀로 나와 예배 참석 모든 분들의 기도를 헛 되게 만든 죄를 자복하고 평생 기억하게 되는 인연도 있습니다. 거창은 고신의 선교지부가 있었고 그 곳을 주 목사님의 장남이 인수하여 거창고교를 시작하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3. 주남선 기념관
거창교회 옆에는 본당 건물 규모나 되는 '주남선 기념관'이 있습니다. 유품은 10 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사진 몇 장이 걸려 있습니다. 주 목사님은 주님 동행에 지사충성으로 평생을 그냥 걸어 가셨습니다. 훗날에 그 이름이 남을 것을 준비했거나 그럴 소지를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념관에는 유품과 기타 기념품이 거의 없습니다. 그 분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측은 방문인들에게 머쓱해 하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노선은 그 분을 알아 보는 것입니다. 백 목사님 역시 마찬 가지였습니다. 바로 이 점을 과도히 해석하여 흔적과 기념은 그 어떤 경우라도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성경은 '기념'을 제대로 알고 바로 사용하면 신앙이 신앙으로 바로 세워 지는데 유익하므로 신약 교회는 표 없이 소리 없이 자기 신앙에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주 목사님은 유언과 함께 백 목사님께 평생 사용하던 성경을 맡기셨고 백 목사님은 평생 잘 보관하시다가 고신의 기념관 건립에 필요하다고 요청을 하자 바로 기증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