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이곳의 시각에서 특별히 살펴본, 박윤선과 박형룡의 몇 가지 의미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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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연구실] 이곳의 시각에서 특별히 살펴본, 박윤선과 박형룡의 몇 가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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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윤선과 박형룡

박윤선목사님은 한국 교계 제일 대표적인 성경학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주해한 '박윤선주석'은 교파와 교단에 상관없이 전해져 있습니다. 초기 신학자이지만 아직까지 그를 잇거나 대체할 만한 신학자는 없다는 것이 그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박형룡목사님에 비하여는 제자급에 지나지 않으나 두 분이 없는 오늘 시대는 두 분이 각각 한국보수교계의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방면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는 의미에서 같이 놓고 평가하는 정도입니다.

한국교계가 항상 그리워하는 평양신학교에서 박형룡목사님은 이미 강의의 중심에 있었고 박윤선목사님은 이제 막 출발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해방 후 고려파가 부산에서 신학교를 시작할 때도 박형룡목사님을 교장으로 모셨고 그를 중심으로 시작했으며 이후 박목사님이 한국의 중심인 서울이라는 곳으로 진출하겠다고 고신을 떠나자 그 비워 둔 자리를 대신했던 분이 박윤선목사님입니다.

박형룡목사님이 해방 후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맡았다가 곧 서울로 올라가서 총회신학교를 맡고 이어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 때 통합측의 주역이 됩니다. 통합측 신학교가 오늘 장로교신학교입니다. 고신 합동 통합 등 3개 보수교단 전체를 통해 그의 이름은 각 신학교의 설립자이며 그 초창기 역사 자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은 박형룡목사님의 뒤를 따라 역시 고신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진출하게 됩니다만 그 마지막은 합동측 내에 머물게 되고 박형룡목사님은 통합측에 머물게 되어 오늘 한국교계로 본다면 박윤선목사님은 보수쪽을 끝까지 고수한 것이 되고 박형룡목사님은 수정노선에 서게 됩니다.

특히 박윤선목사님은 자신이 거쳤던 고신, 합동, 합동개혁 등 교단들은 한국 보수 교단들을 대표하는 자부심을 가졌고 또 실제 그렇게 인정할 만한 면들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교단들을 거칠 때마다 그는 비록 신학교 교수나 신학교 교장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신학적 이론과 의견 제시는 곧 소속 교단들의 결정이나 진로에 지표가 되었습니다.


2.세계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한 인물

현재 한국교회 제일 중심에서 활동하는 원로 중진 인물들이 거의 그들의 제자 또는 후학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오늘까지도 한국교계의 보수 정통노선의 지도자로 엄연히 현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성경을 부인하는 진보 자유노선은 교계라고 칠 것도 없을 것이고, 한국교계의 정통 보수 노선만을 두고 말한다면 박형룡의 조직신학과 박윤선의 성경 신학은 아직까지 한국교계의 공식 입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두 분에게 관련된 내용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이 두 분의 신학은 사실 그들의 독창적 신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방 전후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신약시대 마지막이라고 해야 할 정통 보수의 신앙노선을 전수 받아 이를 한국교회에 전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평생은 세계 신학을 한국에 소개한 노력이었습니다.

따라서 두 분의 생애와 신학서적들은 한국교계 오늘의 신학모습이며 동시에 세계 신학계로부터 이어 내려온 마지막 보수 정통 신학의 한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경신학은 박윤선이고 조직신학은 박형룡입니다. 박형룡은 순수히 이론에만 갇혀 살았다고 할 수 있으나 박윤선은 강의와 함께 그가 걸어간 노선에서 교회의 실제 모습도 그의 신앙노선이 반영되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분입니다.


3.공회 신앙노선과의 특별한 인연

①보수 신앙노선의 대표적인 두 분과 백영희 신앙노선

이곳은 이곳 신앙에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면 아무리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신학계의 상식이 되더라도 전혀 소개치 않고 있습니다. 두 분의 이름이 아무리 한국교계에서 드높다고 해도 이곳의 신앙노선에 관련이 없으면 '무의미'로 상대할 것이나, 박형룡의 이름은 주로 조직신학 서적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으며 박윤선의 의미는 서적뿐만 아니라 백영희신앙노선과 오랫동안 직접 접촉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히 살필 의미가 있습니다. '공회 신앙노선'의 시각에서는 박윤선의 이름이 한국교계 전체에 미친 영향을 하나로 생각하고 또 다른 하나는 공회의 신앙 노선이 출발할 때 필요했던 당시의 환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은 교회 운영의 소소한 문제부터 교회를 보는 그 기본 시각까지 일반 교계와는 분명히 다른 면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 해석과 교리 체계에 있어서까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점은, 보수 정통 교계라는 점에서는 같은 종류로 분류할 수 있지만 동일 계통 안에서 다시 세분한다면 아주 다른 개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이 둘의 사이를 서로 다른 두 종류로 볼 정도이며 실제로 그렇게 보일만큼 여러 입장을 확연하게 달리하고 있습니다.

②세계 보수 정통 신학계의 한국 지부장으로서의 박윤선과 박형룡

한국교계의 신앙수준과 성격을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미국 신학계가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기를 성실하게 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영어가 얼마나 능통한가 라는 것이 신학수준과 권위에 첫째 요소가 됩니다. 다음으로는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몇 권의 서적과 몇 가지 이론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배치하여 국내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그것을 읽을 때 이해가 쉽고 또 활용에 유익하게 하였는가가 그 둘째 요소가 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박형룡과 함께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요소를 겸비하였던 첫 학자이며 마지막 학자라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조직신학은 박형룡 이상의 인물이 아직까지 없고, 이런 점에서 성경신학은 박윤선 이상의 인물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인물이 나올 상황도 아니며 그런 인물이 배출될 기본요소들이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두 분을 그런 위치에 올려지도록 만든 환경은 오늘에는 다시 재현할 수 없는 환경이었으니 '오직 신앙으로만' 걸어가야 했던 절박했고 순수했던 마지막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오늘에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미국 본토 신학자나 목회자들을 개인적으로 마음껏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신학에 필요한 여러 어학들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으며, 또한 한학을 통달하는 등 여러 기타 필요한 재능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들이 해외 유학을 하던 당시는 미국 등 해외 교회가 세계 선교에 총력을 기울이던 때였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박해가 심했고 그 박해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일어나는 신앙의 좋은 싹이 있었으며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서 본국으로 유학 오는 이들이 없던 때였습니다. 이런 때에 아주 핵심 보수 신앙노선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추천을 받고 그런 극단적 보수신앙을 가진 유망한 신학생으로 단 한 명 추천을 받아 유학을 오는 정도였기 때문에 선교지의 소식을 듣는 본국 교단과 신학교에서 그들을 맞아 들이고 과정을 통과하는 데에는 그 후 세대에서는 생각도 못할 지원과 애착이 함께 하였습니다.

공산당들이 잘 써먹는 나쁜 말로 비판을 하자면, 선교 유망지 신흥 기독교국이 될 한국의 앞날을 기대한 미국과 유럽의 보수교계가 가장 실력있고 촉망받는 인재 한 명을 뽑아 와서 마음껏 세뇌교육을 시켜, 그를 통해 이후 한국교계가 자기들의 보수 신앙노선에 굳게 세우고 자신들의 해외 거점을 확보하여 장차 세계 기독교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야심에서 길러놓은 야심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그들을 교육시킨 미국과 유럽의 보수교계의 신앙노선을 실망시키지 않고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한국 내에서 그들의 신앙노선을 확고하게 뿌리 박게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이들이 한국 교계의 신학에서 원조적인 대우와 명예와 권위를 누리는 모습을 본 후배들이 구름떼와 같이 그들이 밟은 미국과 유럽의 신학코스를 밟으며 그들과 같은 영광을 기대하였고 이로 인해 그들을 교육시킨 교단과 신학교를 비롯 심지어 그들과 비슷한 곳에까지 한국 교계의 장래 지도자와 신학자들이 몰려들며 그 특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두 명의 박 박사에게 미국과 유럽 교계가 전력을 다해 투자한 당시 자본금을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현재까지 그들은 수 천배 수 만배를 수입으로 올리고 있으며 갈수록 그 도는 더 심해지고 있는 바, 이는 한국 투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입니다. 어쨌든 한국 교회의 특이한 점, 세계 기독교사의 기록은 무수합니다만 이 면에서도 그러합니다.

③세계 교회사의 수없는 기록을 세운 한국 교회가, 신학 학위 관련 유학에서 세운 기록들

박형룡 박윤선목사님이 초기 미국과 유럽에서 신학을 배워 국내 교회의 불같이 일어나던 신앙들을 지도하여 빛을 발하게 되는 한편 한국교계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분열을 겪으며 신학교의 숫자가 100개인지 200개인지 심지어 300개인지 통계로 잡을 수가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송용조목사님이 사직동교회에서 탈퇴하고 불과 몇 백 m 거리 위에서 양의문 교회를 세우면서 '서울성경학교'를 만드는데 이것이 현재 고려파의 서울 분파인 서울고려개혁측의 신학교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신학교 숫자를 짐작할 수 있는 한 단면입니다.

교단이 나뉠 때마다 교단 직영 신학교를 세워야 하고 신학교의 중심은 미국에서 신학 학위를 가지고 온 교수를 필수로 생각하게 됩니다. 전부 박형룡 박윤선목사님을 두고 해방 후 교계가 벌였던 쟁탈전을 보고 따라하게 된 것이고, 또 두 분은 자신들의 학위란 신학교와 교단을 언제든지 장악하거나 신설할 수 있는 절대의 무기로 사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평소 문제가 없는 교단에서도 장차 분열 등을 상정하여 미리 챙겨야 할 필수품으로 해외 학위를 생각하게 되었고 1970년대 교계의 교세 팽창에 맞추어 가능한 모든 인재들을 해외로 보내어 학위를 취득하게 하는 뜨거운 경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경쟁은 급기야 1980년에 이르면서 미국 대사관 비자 발급의 원칙으로까지 표출됩니다. 한국에서 관광 또는 미국 내 교회 시찰단 등의 이름으로 비행기가 뜨게 되면 15-25시간 후에 도착하는 미국 공항에서는 항공기 내에서 막 안수를 받고 공항을 내리는 목사님들이 생겨지고 이들이 목사 직책으로 미국에서 선교와 신학과정을 동시에 밟게 되고 이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미국산 목사와 신학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됩니다. 그 유형을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는 미국 대사관의 비자 발급 업무에서 '신학교'나 '교회' 흔적이 나타나는 모든 유학생에게 비자발급을 중단하는 조처로 나타납니다.

최근 동향은 듣지 못하고 있으나 근 20여년 계속된 현상으로 미국으로 향하던 신학 관련 유학은 거의 호주 남아공 영국 독일 네델란드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됩니다. 1970년대까지는 거의 미국 유학을 기본으로 하던 패턴이 1980년대 이후로는 유럽 학위로 나타나게 되는 원인입니다. 물론 미국내 시민권 영주권 등을 가진 가족들을 통해 이민 방문 형식으로 미국 진입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식 유학으로 나가는 계통은 이런 방향을 가지게 됩니다.

현재, 국내의 해외 학위 취득을 그 전공으로 분류한다면 비교할 것도 없이 '신학박사'가 단연 제 1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답변자가 거주하는 곳은 면 소재지도 아니고 리 단위에 지나지 않으나 미국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님들이 2분입니다. 한국 교회의 현 모습을 신학 과정과 결부 지어 표현한다면 현재 한국교계의 신학박사는 세계 신학계를 통째로 접수하고 떠맡고 나갈 인적 자원과 교회의 지원력과 그럴 수 있는 분위기 등 모든 여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박사라는 학위를 평생 박살내며 교회를 지도했다는 백영희신앙노선에만 해도 생전에 박사 학위가 3명이며, 사후에 취득한 박사 숫자가 답변자 개인이 알고 있는 것만 벌써 6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학박사를 숭상하여 교계의 지존으로 모시는 수백개 신학교와 교단들의 경우는 어떤 정도인지 상상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4.결과적으로 한국교회의 신학 과열은 이제 세계 신학을 주도할 입장에 있습니다.

①우선 오늘 신학계를 주도할 나라는 한국밖에 없도록 현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국신학의 저력은 이 나라를 가르친 선생의 입장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학문의 깊이나 기풍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학계가 미국 학계를 따라간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입니다만, 이제 이곳에서 논하는 것은 보수 신학의 범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가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 내려왔으며 이를 요약 정리하여 그 시대 교회를 살리는 것이 신학이라고 단정하는 곳입니다.

만일 철학 경제학 법학 의학 사학 등과 같은 일반 세상 학문과 같이 세상 학교의 기준과 잣대로 신학을 취급한다면 한국의 신학은 미국 신학교를 받아쓰기해야 할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일 것입니다. 하바드대학교의 신학과정 프린스톤대학교나 템플대학교의 신학과를 쫓아가려면 수 백년이 지나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늘 강조하는 신앙에 엄격한 기준으로 말한다면, 이미 미국의 신학은 이 세대를 감당할 능력을 잊어버린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보수 신학을 해야 할 의미도 각오도 감각도 다 잊어버렸다고 할 정도입니다. 적어도 미국내 신학의 주류에서는 거의 탈락해 있고 숨만 겨우 붙어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신학은 아직도 그 외형 표시로 말하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고, 또 실질적으로도 아직까지는 절반 이상의 힘을 가지고 버티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교회는 보수 신학이 보수 교회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칼빈주의를 한번 휘두르면 상대방은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그 무덤에는 전부 이교도 또는 사이비라는 묘비가 붙고 거기 관련 있는 사람들은 연좌제에 묶여 평생을 눈치보고 살아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성경을 부인하는 자유진영이 아니라면 백영희신앙노선처럼 칼빈주의라는 말을 쉽게 무시하는 곳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해외 어느 곳에서도 생각도 못할 분위기입니다.

사이비 학자든 진짜 학위든, 유럽 학위든 미국 학위든, 실력이라도 있든 실력까지도 없든 이 나라 교계는 신학학위로 뒤덮였고 신학의 권위가 먹히고 있는 곳인데 다행이 이곳이 보수 정통의 교계가 이 말세 마지막으로 다수를 점하고 또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고 한다면, 세계 신학은 바로 이곳에서 견지되고 유지되며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미국교회를 자유주의 신앙에게 전부 내어주고 지금 몇몇 남은 보수 교회조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미국의 신학은 이미 세계를 주도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를 세계 교회에 가장 성공한 교회로 그러면서도 보수신학에 철저한 교회로 유지하고 지키고 있는 한국교회야말로 세계 신학의 책임자로 나설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 성경원어와 신학고전어 등에 능통한 학자들과 철학 고고학 사학 등에 조예 깊은 1급 기술자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이런 점에서는 국내 신학계란 아주 천하기 짝이 없으나,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세상 학문의 기준에서 보지 않고 순수 신앙 세계 내에서 여러 가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원어의 부족은 해외 원어 기술자들이 이미 출판하고 연구해 놓은 기존 서적과 자료를 통해 그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데에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기타 학설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이후로는 과연 이 보수 신학을 지키기 위해 학자들 스스로 투쟁하고 절박하게 노력해야 할 내적 요인이 중요한 것인데 이 면으로 말한다면 단연 한국 교회와 신학계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들을 선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지금 살펴보고 있는 두 분의 박박사님들의 의미는 이런 점에서 보통이 아닙니다.

박윤선 박형룡목사님 두 분이 해방 전후 해외 유학을 거칠 때만 해도 잠재적 성공 가능성을 두고 미국과 유럽 보수 교계 신학교에서는 투기성 투자를 해 보았었는데 이후 그들의 투자는 그들이 상상도 못할 결과로 한국교회에 나타났고 한국교회의 성공은 역으로 미국 유럽 등 선교국까지를 포함하여 세계 교회에 영향을 미치며 오히려 세계 교회를 주도하게 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세계 신학계는 비록 그 경력과 실력은 일천하지만 그래도 죽을 날을 바라보는 늙은 사자가 아직 철이 제대로 들지 않고 경험은 적어도 이제 막 포효하며 활동을 개시한 젊은 후배에게 자기 자리를 곱게 물려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 내에 그 위치와 형편을 가지고 있는 백영희신앙노선은 참으로 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며 미소를 짓게 됩니다. 실력이 없어 세계로 향할 수도 없고 또 실력이 있다해도 시간이 없어 나들이도 못할 형편인데, 생각도 못할 세계 신학을 한국 내로 끌어다 놓고 바로 주변에서 세계 신학을 다 접할 수 있게 한 현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대신 세계로 나가서 세계 모든 소식과 정보와 자료와 학설과 방향을 바로 우리 주변에 진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경쟁하는 한국교계를 보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부 허가를 받은 정식 대학교만 가지고 그 숫자를 헤아리더라도 한국교회는 수십개의 신학용 대학교 또는 신학을 위한 대학교나 대학원 대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이화여대 숭실대 서울여대 안양대 한동대 고신대 총신대 강남대 등등 일반 종합대학교도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고 그보다는 아예 대학 앞에 신학을 붙여 놓은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대신신학대학원대학교' 등을 다 손꼽아 헤아리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큰 교단들은 대학교를 작은 교단들은 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되 한 교단이 여러 개 대학교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이름들도 수시로 변하여 이제는 그 이름을 고의로 잊을 것도 없이 저절로 혼돈하며 잊어버렸다고 적당히 핑계를 댈 정도가 되었습니다.

신학과 관련있는 이런 신학대학들은 한결같이 내부적으로 경쟁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세계에 있는 최근 동향과 좀더 나은 학설을 소개하느냐? 수도 없는 학설이 나오다 보면 그 틈새에서 새 학설이 발견되기도 하고 또는 여러 학설을 한곳에 모아 새 학설처럼 나오기도 하며 가속도가 붙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개천에서 용도 나오고, 아니면 미꾸라지가 직접 용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분위기에서 아직은 한국교회에 보수 정통 칼빈주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개혁신앙 등이 그 기치를 높이 세우고 있습니다.

③이곳과 신앙노선을 함께 하는 분들이라면, 세계신학을 창밖에 진열해 두고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세계신학이 궁금하여 무지개 잡으러 동산을 몇 개씩 넘어갔다 허기져서 돌아오는 아이들처럼, 이곳과 신앙노선을 함께 하는 분들 중에도 혹 그런 갈급을 느끼는 분들이 있음을 가끔 안타깝게 접하게 됩니다.

서영호 송용조목사님이 박사학위를 미국에서 취득하고 양성원으로 돌아와 강의를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부터 백목사님 마지막까지, 총공회 양성원 학생들의 끊임없는 질문은 '세계 신학에 백목사님과 같은 삼분설이나 중생교리 등이 있습니까? 정말로 없습니까?' 이런 류의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겹쳐 물어보기도 하고 학기마다 또 물어보고 학생이 바뀌고도 또 물어보며 해외 박사님들의 입을 쳐다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초조하게 그 발표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세계 신학의 제자들이지 이 복음의 세계 신학 점령군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자신들이 발표했을 때 공회 내에 던져지는 파장과 그로 인해 자기들에게 돌아올 문책과 신앙인으로 최소한의 양심을 놓고 절묘한 답변을 하고 넘어가곤 했습니다. 지금 그분들은 다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라는 일반 세계신학 선상의 신학교에서 동역 동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양성원 안에서 답변했던 답변의 정확한 해설은 그후 약 20여년이 흐르며 열매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 한 박사님의 답변은 늘 '백목사님은 성경중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세계 신학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것 아니냐!' 또 한 분 박사님의 답변은 '세계 신학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내놓는 말이 아니다. 세계 신학을 전부 섭렵하고 통과한 다음 그 다음 하나의 새로운 학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등이었습니다. 아니라는 말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그렇다는 답변도 분명히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살던 나라가 다르고 살던 시대가 달라서 모든 것을 반대로 알고 반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갔다가 왔다고 미국을 더 아는 것도 아니며 미국에 가지 않았다고 미국을 덜 아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신앙 초보에서 넘었어야 할 신앙노선에 있는 교역자들이 그런 우문을 하고 그런 우답을 돌려들으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으니 그들 어깨에다 공회의 신앙노선을 맡겨놓고 무작정 따르는 그 교인들의 불쌍함은 더욱 애절하기까지 하여 이 면을 두고 1980년대 설교는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교훈을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이곳은 성경 하나를 놓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보는 신앙노선을 외치고 있습니다. 성경 외에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살면서 자기 주변에 접촉되는 모든 공기를 통해 나머지 보충해야 할 상식과 지식은 하나님께서 적절히 배치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에 놀랄 것 없고 해외 학위에 움츠려 들 것이 없는 신앙길을 걸어가되 이 걸음을 먼저 걸어간 분이 백목사님이고 이런 점에서 백영희신앙노선은 충분히 연구하고 살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형룡이라는 두 이름이 한국교계를, 현재까지 이어 나온 세계 보수 정통 신학의 관점에서는 바로 잡아 살렸지만, 오늘 이곳의 신앙입장에서 본다면 이곳이 걸어가는 신앙노선에 필요한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귀한 걸음을 이곳보다 앞서 걸어가야 할 분들이 이미 넘어야 할 두 박사님 수준의 신학 고개를 넘지 못하고 그 중턱에서 숨을 돌리거나 아니면 뒤돌아보며 과거를 즐기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이 노선에서 자라고 이 노선의 중심을 지나온 분들이 그 방향을 돌이켜 과거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 그렇게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두 박박사님들의 후배의 후배의 후배들에게 찾아가 공회 내에서 듣지 못했던 '신 모던이즘'이라는 단어를 귀에 익히고 입에 바르느라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그렇게 익힌 단어로 자기 목회 여정에 더러 사용할 자세를 가지고 있으니 이것이 그렇게 안타깝습니다. 그런 것들을 앞서 수십년씩 배운 분들이 그 속에서는 은혜나 생명이 없어 갈급하다가 백목사님의 설교와 신앙노선에서 이 시대의 해결을 찾았다고들 감사하고 난리들인데! 물론 대구공회가 간판들을 떼다가 지금은 다시 붙이기 시작하듯, 언제가 신학과 신앙노선에서도 그럴 때가 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만 한번 이리로 한번 저리로 움직인 분들에게는 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심판이 자기 양심에게서 자기 자신을 향해 평생 외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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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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