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신앙노선과 연구하는 자세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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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연구실] 신앙노선과 연구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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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공회 신앙노선의 정립 조정기

1989-1999년의 10년 세월은 백영희목사님에게 배우던 교역자와 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이 걸어갈 신앙노선을 확정하게 되는 과도기였다고 보겠습니다. 이 기간을 짧은 눈으로 비판하자면 사분오열 또는 이합집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여회 분리와 재결합 등을 통해 현재 5개 공회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도 장구성을 가진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나 10년 세월을 의미 있게 보는 것은 이 기간 중에 총공회의 신앙노선은 뚜렷하게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혹 앞으로 변동이 있다면 지나간 과도기에 파악된 본질과 큰 노선의 흐름 안에서 오고 갈 현실 적응 문제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요약하면, 과거 신앙노선에 엄격한 보수노선(부산공회1. 부산공회3), 뿌리만 총공회일 뿐 일반 교계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자유노선(서울공회), 총공회 과거 신앙노선과 일반 교계의 흐름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중립노선(부산공회2, 대구공회)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치 교회사 교과서를 닮으려고 일부러 애를 쓴 것처럼 되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부터 이런 3가지 부류의 신앙성격은 쉽게 파악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원래의 신앙양심과 신앙체질에 따라 바로 3가지 공회로 나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하는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과거 교회사를 단순 반복하는 일에도 기어코 우리의 몸으로 일일이 때워가며 현장학습을 해야 했습니다.


2.큰 수업료를 냈으나 아직도 불에 데인 본능만 체득했지 원인을 분석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의견 다른 소리만 나도 교회 충돌의 마지막 모습이 연상되어 황급히 막느라고 정신도 없습니다. 이제는 불에 데이면 그 고통이 어떤 지를 체득한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 직후에는 교회문제는 끝까지 의논하는 것으로 끝내야 하지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되는 법이라고 간곡히 붙들고 사정을 해도 통하지 않았던 분들입니다. 당시는 교회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조처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다고 용감했고 사명감에 불이 탔었습니다. 이제는 그때의 일을 무지로 후회로 철없는 만용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라도 알았다면 참으로 큰 다행입니다. 과거 10여년 수업료가 비록 천문학적 숫자였지만 이제라도 교회 문제란 힘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본능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당분간은 과거와 같이 천문학적 손실을 생각지 않고 밀어 붙이는 일을 훨씬 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리 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사람의 입맛은 더 분화가 되는 것인데 공회 내의 투쟁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음은 바로 이런 현장감이 체득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총공회 분열의 초기였던 1989년 당시와 오늘이 본질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 있어 걱정을 떨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당시의 혼란과 오늘의 조용함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한다면 오늘의 고요함은 더 큰 혼란과 충돌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잠복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 솟구친 화산은 곧 휴면기에 들어가지만 이 휴면기가 더 큰 용출을 위해 내부 에너지를 축척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아는 사람은 분출된 화산을 보고 그 주변을 과거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고 분출된 화산의 내면을 분석한 뒤 과거보다 더 급박하고 위험한 곳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잊고자 노력하는 분들, 또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이들을 이곳에서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잊으면 되는 일회성인가, 잊으면 더 큰 화가 닥칠 첨병이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3.신앙노선을 두고는 '연구하는 자세'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충돌의 직접 원인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진 두 손이지만 운동의 방향이 다릅니다. 한 사람이 가진 두 눈이지만 거울 앞에서 본다면 꼭같은 눈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몸보다 더 복잡하고 기묘한 마음의 세계가 다 같아야 된다고 주장할 리가 있겠습니까? 같은 공회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믿은 세월에 따라, 현재 처한 형편에 따라, 자신의 인간적 취향과 체질에 따라, 심지어 은혜받은 성경의 성구에 따라 각각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르니, 다른 그대로 두라는 말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몹쓸 자유주의 신학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다르니, 다른 상대방을 힘으로 점령하고 통치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극히 위험스런 광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르니, 다른 깨달음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며 그에게 주신 그의 현실인 줄 알고 그다음 그가 가진 잘못된 깨달음을 내가 어떤 노력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겠으며 또한 나에게 있을 단점을 그가 지도해 준다면 어떤 방법이라야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신앙노선도 있습니다. 이것을 개교회주의에 근거한 공회신앙이라고 합니다. 진리 전원일치제라는 공회의 회의법이 바로 이 깨달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끝없이 연구하고 연구하여 그 이상이 없는 최고 유일의 것을 찾을 때까지 구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백목사님의 교훈은 바로 이 면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10여년 총공회가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하며 수업했던 '충돌과 그 결과'라는 과목에서 체득한 것이 '견딜 수 없는 아픔'이라는 느낌뿐이라고 한다면, 너무도 아쉽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본능은 짐승의 마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하는 자세, 옳은 것을 두고 따져보는 과정, 서로의 생각을 어떻게 보며 어떤 면이 있는지를 깊이 통찰하지 않고 지나온 총공회의 10여년 갈등사는 한국교회사와 세계교회사를 일부러 닮으려는 듯 찍혀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날의 진행은 희망없는 교권타락사 일변도로 가게 됩니다.


4.연구하는 자세를 되찾는다면, 과거 충돌은 공연한 것이었고 앞날의 충돌도 발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1989.10.27. 백목사님 사후 첫 총공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전 총공회 교인 교역자의 관심은 백목사님 없는 총공회 앞날에 대한 중대한 결정들이 있을 회의에 집중되었습니다. 대부분 교역자 장로 등 공회원들의 두렵고 떨림도 그 어느 때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재독을 금지해야 한다는 제안자의 글을 사회자는 읽어보지도 않고 '정죄'해야 한다고 몰아갔고 단 한번의 회의로 그 자리에서 손을 들고 다수결로 정죄시켜 버렸습니다. 회의 직후 만났던 두 분의 목사님들은 '그날 회의가 정죄였습니까?' 반문하고 있었습니다. 6년이 지난 뒤, 당시 제안했던 분은 '나는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중단시켜 달라고 한 것 뿐이라. 왜 재독이 죄인가? 얼마나 좋은 것인데!' 현재도 재독이 당시 결정과 같이 죄라라고 주장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주 많습니다. 당시 결정은 정죄였는가 문제점이 있으니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는가 자체도 모르고 그냥 손들었던 공회원이 절대 다수였습니다.

죄라고 한다면, 신중히 연구해보고 그후에 결정하자는 발언들은 완전히 무시되어졌습니다. 동조도 얻지를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문제점이 있다는 정도라면 그 자리에서 결정부터 해놓고 볼 일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5.그러나 그날의 결정에 배경이 된 것은 실은 다른 교단의 장난이었습니다.

재독 문제를 시급히 정죄하지 않으면 한국교단들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다고 발의했던 분과 그날의 사회자들은 알고보니 백목사님 없는 총공회를 접수하려고 했던 외부 교단장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고수에게 당한 하수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교단의 교단장도 지금 자기 설교를 녹화나 전송된 설교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단에도 이래도 되는가 안되는가 라는 문제로 토론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우습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더욱 우스운 것은 그 교단은 늘 이단이라고 한국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교단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진리가 문제이지 여론이 문제냐고 합니다.


6.이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험담과 비판이 아닙니다. 연구자세를 갖자는 것입니다.

당시에 누가 연구 자세를 가졌는지 누가 맹목적 충돌만 했는지를 가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하는 목적이 만일 오늘 우리 신앙걸음이 또 다시 그때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상대방이 무어라고 생각하며 어떤 말을 했는지도 파악지 않고 나무라기만 합니다. 꾸중을 하면 입을 닫고 회개만 하라고까지 합니다. 연구자세가 없는 공회, 살펴보는 과정이 없는 교회, 구별하는 노력이 없는 교인, 그들의 갈 길은 역사에 수없이 반복된 교회싸움의 원인자들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오히려 교회는 조용해야 한다고 먼저 말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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