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환 목사님 장례 - 이 노선 최대 비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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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00:00
8월 19일 어제 남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총공회 비판에 가장 오래 가장 격렬하게 앞장 선 인물입니다.
해방 후 주남선목사님이 부목으로 초빙하여 거창읍교회 교육전도사로 부임하였는데
전쟁 후 주목사님 사후 거창읍교회 담임이 되고 거창지방의 제1 서열에 오르게 되자
장로교의 제도상 당회장 및 시찰회장의 자격을 기반으로 백목사님을 치게 됩니다.
그 분은 원래 학구적인 분이며 장로교의 일반 정치 제도에 열심인 분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목사 안수를 일찍 받게 됩니다.
후에 고신의 총회장을 역임하며 고신의 모든 정치 분쟁 한 가운데서 평생을 지내게 됩니다.
백목사님은 신학보다 교인을 기르는 목회에만 전념하여 목사직을 받지 않게 됩니다.
설교와 목회 또 환란을 통과하는 신앙면에서 남목사님이 백목사님에게 비교가 되지 않으나
장로교는 당회장과 시찰장의 직책이 신앙과 목회 현장에 상관 없이 전권을 행사합니다.
같은 고신 교단에 있을 때에도
남목사님은 백목사님의 신앙에 틀린 점 15가지를 나열하며 장문의 편지로 비판했는데
그 편지 내용은 개인 비판이기 이전에 이 노선에 대한 비판의 내용으로 아직도 전해집니다.
1988년에 출간한 책에서도 고신 지도부가 전부 백목사님을 적극 지지하는 상태에서
극히 위험한 인물이라고 스스로 극렬 반대했다고 적고 있는 정도입니다.
공회 노선에서 그 이름을 기억하며 과거를 살피려면 피해 사례는 이루 말도 할 수 없으나
남목사님은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에 백목사님의 목회 끝을 보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것으로 그 분의 평생은 공연히 진리 걸음을 훼방한 것에 그칠 뿐이었는데
왜 그렇게 심하게 이 노선을 반대하고 나섰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선을 강하고 정확하게 만드려고 하나님께서 쓰신 불구덕이었습니다.
오래 생존하였으므로
고신에서는 한명동목사님과 남영환목사님이 교단의 대원로로 오래동안 존재했습니다.
몇 년 전 한목사님이 가셨고 이제 남목사님도 가셨습니다.
이 노선을 비판하며 활동했던 그 모든 순간에는 확신과 단정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분들이 본 이 노선은 그 분들이 본 것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성한다고 한 것이 전부 반대를 하고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진행 되고 있는 오늘 우리 공회의 역사를 두고 살펴 볼 아주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오늘 각 공회의 중심에 서서 그 동안 또 현재도 지도적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
오늘의 단정과 활동이 과연 훗날 그리고 넓은 면에서 볼 때 어떨지!
열심이 문제가 아니고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과연 이 활동의 방향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살필 일입니다.
이 노선의 찬송을 행정을 경제를 구조를 지도체제를 바꾸려 한 부공2나 대구공회
그리고 이 모든 일에 가장 첫 기치를 든 서울공회 그리고 무조건 맞선 부공1의 핵심들께,
이 순간 자신의 지난 날과 오늘의 판단과 행동이 과연 옳았는지를 살필 때입니다.
이미 20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이므로 모든 것은 환하게 결론이 났습니다.
서목사님을 모실 때에 서목사님이 이 노선 중심이며 백목사님을 가장 잘 이어리라 한 분들.
대구공회가 이 노선을 바로 개혁하여 바꿀 것을 바로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 운동들.
그리고 오로지 인천을 통해 내려오는 대구의 지시만이 생사 걸고 지킬 이 노선이라는 분들.
남목사님의 생애를 연구해보거나 최소한 간단히 살필 기회를 갖기 바라는 아쉬움을,
남목사님 장례 소식을 들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