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1991년의 서부교회 후임 선정 관련?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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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1989-1991년의 서부교회 후임 선정 관련?

추천.h3 0 1


출처: /총공회/문답/18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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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꼭 알고 싶습니다.


백목사님 사망후 서부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이재순목사님이 결정되었습니다.
① 당시 이재순목사님이 서부교회 담임목사님으로 가장 적임자였었는지....
왜 이재순목사님으로 결정되었는지.....
② 이재순목사님 외에 물망으로 거론된 목사님은 없었는지.....
③ 비디오예배는 담임목사님인 이재순목사님의 뜻이었는지 아니면 서부교회교인들이 원하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서부교회 일부 지도급 인사들의 강력한 요구였는지

그리고 이재순목사님은 2년후 신임투표에서 부결되어 서영호목사님이 서부교회로 오셨습니다.
④ 이재순목사님이 신임투표에서 부결된 가장큰 원인은?
⑤ 서영호목사님의 청빙은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⑥ 서영호목사님이 신임투표에서 부결된 가장큰 원인은? (혹 비디오 예배를 반대하여서?)
⑦ 만약 서영호목사님이 신임투표결과를 받아 들여 이동하셨다면 그다음 서부교회의 적임목회자는 과연 어떤 분이셨을지.....

가상이지만 서영호목사님이 신임투표결과를 받아 들여 이동을 하였다면 차후 청빙된 목사님과 함께 하는 서부교회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부교회와 남정교회의 분열처럼 또 한차례의 분열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답변) 1989-1991년의 서부교회 후임 선정 관련 소사


1.이재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

①'가장 적임자였었는지'

백목사님 사후 후임 결정 과정에 가장 고려했던 사항은, 서부교회의 존속은 백목사님의 교훈 연속성에 있다는 점입니다. 1989년 당시 파악하고 있던 공회 내 교역자 중에서는 교훈 연속성을 감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결론은 아주 쉽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일단 '재독'이라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재독에 적당한 목회자가 적임자였습니다.

우선 재독으로 교회를 유지하면서, 서부교회 전 교인이 재독 대신 말씀의 연속성을 가지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난다면 서부교회 정식 후임이 정해지는 것이고 또한 재독은 보조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누가 볼 때에라도 재독의 은혜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면, 서부교회 강단은 재독으로 계속하고 후임은 행정을 맡을 수 있는 분이 계속 맡게 됩니다.

후임에 대한 입장이 이러했기 때문에 후임 결정은 아주 쉽고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백목사님 생전 행정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분, 재독을 금하고 자기 설교를 강행하지 않을 분입니다. 후임 대상은 이재순목사님과 이진헌목사님 두 분이었습니다. 이진헌목사님은 설교에 능한 분이므로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재독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이 단점이었고 그대신 서부교회 지도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목사님 생전 행정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면이 장점이었습니다. 반면 이재순목사님은 평소 설교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설교가 약한 분이어서 재독 유지에는 장점이지만 평생 사업에만 종사하여 다급한 일이 생길 때 신앙노선보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면이 단점이었습니다.

이진헌목사님의 재독 불안과 이재순목사님의 신앙노선 불안을 두고 많이 염려를 했지만 이 두 분 외에는 대안이 전혀 없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최종 순간까지 수 년간 계속된 공회 내부 갈등에서 백목사님 신앙노선을 끝까지 견지했던 분은 이 두 분이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택해도 최선은 있을 수 없고 또 미래를 경영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당시 상황에서 서부교회 지도부를 구성하고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책임자들은 앞날은 하나님 앞에 맡기고 그다음으로는 서부교인들 각자 자신의 '듣는 귀'에 맡기고, 우선 결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은 위에서 설명드린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원리에 따라 이재순목사님으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1989.9.1.금요일 예배 후 5층 회의 결론이었습니다. 이 두 분외에는 아예 거론조차 된 적이 없었습니다. 백목사님 마지막까지 목사님을 모셨던 서부교회 지도부는 목사님을 모시고 많은 사안들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만사에 의견이 완벽하게 하나되고 있었습니다.


②'재독예배와 이재순목사님'

처음에 서부교회 부임했던 이재순목사님은 서부교회 지도부의 입장을 그대로 지켜 따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까지 공회 사안은 이재순목사님이 앞장을 서고 이진헌목사님이 지원을 했고, 서부교회 내부 사안은 서부교회 지도부가 전담을 했는데 양쪽이 함께 의논해야 할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수없이 목사님을 모시고 일을 해보았기 때문에 서부교회 지도부의 입장이면 백목사님의 뜻인 줄 알고 적극 협조했던 분이기 때문에 전혀 이견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목사님이 부임하고 재독예배가 이어지자, 후일 남정교회로 나갈 분들의 최고 책임자 되는 분이 이목사님을 압박하고 나서게 됩니다. 반대측은 원래 백목사님 사후 몇일이 지나게 되면 후임이 설교를 할 것이고, 후임이 설교를 하게 되면 서부교회는 모든 문제가 다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처럼 말씀의 은혜가 교인을 붙들지 못하면 결국 행정을 변형하여 교회 조직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교회사의 공식이므로 자연스럽게 목사님 생전의 신앙노선을 대폭 변경할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그 계산은 목사님 사망 전 10년 전에 한번 전체 구도가 제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목사님께서 제안만 받고 거부를 했었는데, 이제 갑작스런 사망 사건이 발생되었기 때문에 서부교회는 행정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부교회 행정 변화를 추구하던 분들은 이재순목사님이라는 인물이 후임으로 확정되자 자신들이 기다리던 시점은 더 빨리 당겨질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목사님이 설교를 하지 않고 재독으로 이어가자 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급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게 됩니다. 그대로 좀더 이어지면 극단적인 일부 교인 외에는 목사님 생전 행정노선이 유지되면서 재독으로 말씀의 은혜를 새기는 체제가 자리를 잡게 되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남정교회로 나가게 될 교인들의 핵심 지도부는 서둘러 재독을 차단하고 나서야 했습니다. 이것이 재독 반대의 시발입니다. 이것이 백목사님 생전과 사후에 아무 문제없이 재독이 시행되고 은혜를 받고 있던 서부교회에 어느날 갑자기 우상죄라는 기상천외한 논리가 제기된 이유입니다. 지금도 재독을 반대하는 분들에게 답변자가 제일 먼저 내놓는 반박은 왜 백목사님 생전에는 재독을 했고 또 사후에도 재독을 잘 하다가, 어느 한 사람이 죄라고 하니까 그때부터 신들린 듯 재독문제를 들고 나오느냐는 것입니다. 죄가 되기 때문에 벌떼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부교회를 일반 교회처럼 변형시키자는 것이 그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 남정교회의 모습입니다. 그 어떤 설명으로도 오늘 남정교회나 서정교회의 모습은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발전이 아니고 변형입니다. 실은 이곳은 변질이라고 하고 싶으나 이번 건에서는 논외이므로 이 정도로 그치겠습니다.

서부교회 체제를 목사님 생전 신앙노선에서 이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던 수정노선이 교권을 잡아 교회를 변화시키고 싶어 그 반격할 명분을 찾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반대측의 반발이 비록 소수지만 너무 강하였기 때문에 이목사님은 중간 입장으로 슬쩍 빠지고 그대신 재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도부가 반대 교인들을 직접 설득하여 해결을 해주면 자신은 지도부의 뒤를 따라가겠다는 입장으로 입장을 번복하게 됩니다.

당시 지도부는 힘대로는 그렇게 하겠지만 반대측의 성향이 이목사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한 발 빠진다고 두고 보지 않을 것임을 알려드렸습니다. 그후 10월 17일 임시공회 때 재독반대측의 실체를 보고서 그 순간 돌아서서 그다음부터는 서부교회 지도부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인정하고 그다음 해 1990년 대구공회와 분열 때까지 이목사님은 지도부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됩니다.

따라서, 이재순목사님의 재독에 대한 입장은 처음 부임했을 때는 따로 의논이나 조율이 필요없이 재독을 해야한다는 지도부의 입장에 적극 서 있었고, 그다음 재독 반대측의 반발 때문에 1개월 정도 발을 뺐다가 10월 17일 공회 때부터 이듬해 대구공회 결별 때까지는 원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남정교회가 나가자 이재순목사님은 자신의 설교로 재독 은혜를 대신하겠다고 하여 서부교회 당시 지도부는 그 대처를 두고 2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갑작스런 백목사님 사망 이후, 그 생전 최후 직원들인 지도부가 인간으로 할 도리는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주신 힘과 범위가 없기 때문에 서부교회를 이후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는 말 한 마디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는 측이 있었고, 한 쪽은 서부교회를 힘 다해서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어떤 교역자와 어떤 관계 변화가 있든지 교회 포기는 안된다는 측입니다. 답변자는 전자의 입장을 대표했고 이 입장을 따르는 지도부는 이후 서부교회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③'1990년 11월의 이재순목사님 신임 부결의 원인'

서부교회를 움직이는 실제 지도부에 의하여 초빙되었고 또 노선 싸움을 통해 서부교회를 보수측으로 지킨 것도 그 지도부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부는 당시에 마음만 먹으면 교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조직과 인원과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부와 다른 것도 아닌 재독문제로 갈등을 가지게 되면, 이목사님은 서부교회 신임투표에서 부결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만일 지도부가 마음 먹고 부표 운동을 벌였으면 20% 지지도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부가 신임투표에 이목사님을 초빙 때와 같이 지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70% 정도의 지지에 그쳐 불신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그 70%는 이목사님 지지의 70%가 아니고, 서부교회 20년 간 시행된 시무투표가 늘 백목사님을 상대로 투표를 했고 따라서 항상 서부교회 시무투표는 찬성이 정답이라고 인식되다시피한 그 탄력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도부는 신임투표에서 지지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조직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음으로 자연스럽게 불신임이 되도록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그 중 일부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분들에게 불신임 운동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서부교회 지도부의 조직적 반대라고 하는데 이는 서부교회 현황을 전혀 모르는 분들의 오산일 뿐입니다.


④'서목사님의 청빙'

서목사님은 현재 서부교회 부임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비록 이곳과 성향은 전혀 반대되는 분이지만, 그 현재 목회하는 교회의 목회에 지장이 될 구체적인 내막은 이곳에서 먼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실을 알고 질문하는 분이 계시면 아는 대로 다 말씀을 드리겠으나 이번 질문 정도라면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이목사님 후임을 결정할 때의 서부교회 지도부는 백목사님 사후 지도부와 그 성격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지도부는, 서부교회가 결정해서 선출한 지도부가 아니고 갑작스런 목사님 사망을 맞아 서부교회의 외견 조직이 전혀 없는 상태이므로 만일 일반 교회와 같은 조직체를 만드려면 마치 건국초기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또 그런 조직과 법체계는 공회 노선이 아니라 일반 교계의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 생전의 교회 운영 최고 지도부는 자연스럽게 목사님 생존 최후까지 목사님을 각 분야에서 제일 가깝게 모시던 직원들로 구성된 것이고, 또 그 직원들의 의견은 서부교회 권사님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모든 구역장 반사 교인에 이르기까지 다 일언지하에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도부는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급박한 환경을 전혀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목사님 장례는 반대측인 수정노선 지도부들도 입이 닳도록 감탄을 했었고 또 후임 목사님 청빙도 단 하룻밤에 결정 통고 확정시킨 것이지만 어느 권사님이나 장로님들도 전적 순종했고 또 모든 교인들도 전혀 이의제기가 없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바로 그 지도부는 서부교회라는 독특한 환경에서는 정당했고 권위를 가졌으며 백목사님 생전처럼 서부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최고 지도부임에 손색이 없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후임을 한번 세우고 교회의 앞날 방향을 목사님 사후에 한번 잡는 것까지는 그 지도부가 할 수 있지만 만일 목사님 사후의 급작스런 사건이 전부 조용해지고 교회가 후임 이목사님을 모시고 일단 조용해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서부교회 전 교인의 자연스런 의사로 운영되는 것이 개교회자유주의입니다. 즉, 목사님 사망 직후에는 그 직전까지 서부교회 모든 일을 결정하는 지도부가 앞에 말한 분들이었지만, 이목사님이 부임하고 1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부교회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구성되는 지도부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후임을 모신 서부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정권이 바로 새 지도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일반 교회는 지도부 구성을 법으로 규정하고 제도로 유지시키지만 서부교회는 그런 법과 제도를 거부합니다. 실제 그 교회를 운영하고 결정하는 '실력'이 자연스럽게 지도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목사님 생전에는 목사님 한 분이었고, 목사님 사후에는 목사님 생전 최종 직원들이었고, 이제 후임 체제에서는 후임체제에서 형성된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변화된 지도부는 앞서 말한 지도부 직원들과 권사님들 그리고 장로님들이었습니다.

만일 교권에 조금이라도 목적이 있었다면, 서부교회는 아예 오늘같은 상황이 발생되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님 사후 지도부가 가졌던 전권은 백목사님 생전과 같았기 때문에 반대측을 인간적으로 배제시키고 위협요인을 제거하려 했다면 거대조직을 지도부의 인간적 계산으로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10년과 그 이후 현재까지 서부교회에서 일어나는 교권확보투쟁처럼 인간적 수단과 방법을 마음먹고 동원했더라면 서부교회의 특수한 내부 구성과 그 조직 운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지도부로서는 마음먹은대로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당시 지도부의 신앙과 순수함은 정말 깨끗했다고 할 수 있고 그 이후 지도부는 완전히 정치집단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목사님 후임 청빙 문제가 발생하자, 서부교회의 평상시 지도부인 직원 권사 장로 전체 회의가 당시 서부교회 매사를 결정하는 지도부가 되어 후임 문제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목사님 불신임 된 그 주일 저녁에 모여 이진헌목사님으로 확정을 했습니다. 이유는 비록 지도부의 구성에 변화는 생겼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목사님 생전 노선과 원칙이 고려될 때였기 때문입니다. 회의 중 서목사님을 후임으로 추천한 분이 한 분 있었으나 대단히 공박을 많이 당해서 자진 철회했습니다. 서부교회가 목사님 생전 노선에서 이어지려면 이진헌목사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때까지 만일 공회 목회자 중에서 서부교회 후임을 모신다면 이재순 이진헌목사님 두 분 정도외에는 전혀 신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임이 끝난 후 권사님 한분이 당시 합의를 어기고 자기가 생각해둔 분을 모시기 위해 구역 조직을 가동하여 서부교회는 그때까지 함께 나가는 신앙노선에서는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원칙과 생전의 교훈을 기준으로 의논과 합의로 운영하던 틀이 깨어집니다. 당시 이 회의가 열리기 전 답변자는 이 회의 실무 진행자들에게 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결론이 나면, 그 자리에서 반드시 확인서를 받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쉽게 또 확고하게 이전 청빙 때처럼 백목사님 생전 노선 유지 원칙이 통과되고 이어서 후임 확정이 되니까, 확인서를 받는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분위기였다며 그 자리를 그냥 종결해버렸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 하루저녁은 장차 서부교회가 통제불능의 투쟁으로 끝까지 가게 될 염려와 불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다음날 첫 연락은 염려한 최악의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답변자는 서부교회의 이 노선 유지 가능성을 포기하게 됩니다.

일단 자기 이권을 위해 신앙의 건전한 운영을 세상식으로 한번 깨는 일이 일어나자 그때부터는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 청빙 후보와 절차를 위한 회의, 어느 회의가 법적 권한을 가지느냐, 투표권은 누가 가지느냐...... 수도 없는 세상 투표와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모든 가능한 일들이 시작됩니다. 이후로는 해방 정국의 혼동이나 10.26 사태 이후 한국정국을 생각해보시면 알 것입니다. 들러리 관제 데모, 투표 조작, 대의원 확보전......

결국 서목사님이 결정됩니다. 이 결정을 두고 반대측에서는 말들이 많지만, 이미 한번 서부교회의 은혜로운 과거 신앙노선적 운영 방식이 깨어진 이상 세상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서목사님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정당하게 서부교회 담임이 되셨다고 이곳은 확정짓고 있습니다. 당시 결정을 두고 이곳이 평소 서목사님과 반대성향이 제일 강했기 때문에 서목사님 당선이 취소되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서목사님이 담임한 서부교회는 이곳과 신앙노선을 달리하기 시작한 곳이고 공회는 개교회자유주의이기 때문에 이후 서부교회에 대하여는 전혀 상관해본 적이 없습니다. 신앙노선으로는 서목사님과 반대지만, 엄연히 그분은 서부교회 담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 때문에 이후 서목사님의 시무투표 불신임이 있을 때, 서목사님의 불신임은 유효하고 서목사님은 서부교회를 떠나야 옳다는 것이 또한 이곳 시각입니다. 그러나 서부교회는 이곳이 의견을 표시하는 이상으로는 아무 상관할 수 없는 타 개교회이므로 상관치 않고 있습니다.


⑤서목사님 불신임의 원인

재독을 물론 반대한 것도 불신임의 원인이지만, 서목사님은 부임 직후부터 재독 찬성측의 지도부를 무참하게 강단에서 몰아세웠다는 것이 그 반대측의 판단입니다. 물론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서부교회 내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거론하고 욕하는 이상이었습니다.

즉, 후임이 부임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반대측을 특정한 다음, 강단에서 2년간 하는 일이 설교라는 형식의 매로 뚜드린 것이니 이는 교훈이 아니고 토벌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은 이곳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즉 양측의 전쟁에 있어 서목사님측의 무차별 공격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 반대측이므로, 반대측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힘으로 불신임을 시킨 것입니다.

남북의 전쟁처럼, 서목사님과 재독측의 전쟁이 있었고 2년간 강단에서 마음껏 공격할 수 있는 서부교회와 공회의 게임법칙에 따라 담임목회자는 2년간 자신의 권리를 전부 행사하여 무기를 생산했고 공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그 반대측은 2년에 딱 한번 돌아오는 반격의 기회, 즉 25%의 불신임이면 적을 사살할 수 있는 공회와 서부교회 게임법칙에 의하여 정당하게 그 권리를 행사했고 마침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회와 서부교회 신앙노선 자체를 거부하면서 서목사님측은 이동을 거부하게 되자, 그후 오늘까지 모든 투쟁이 계속된 것입니다. 이 투쟁은 이제 서부교회가 목사님 신앙노선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 노선을 이탈하느냐의 전쟁이 그 내면에 깔리게 되었고 외부적으로는 담임목사측과 그 반대측의 교권싸움으로 나타납니다.


⑥'서목사님 후임으로 적임자를 거론한다면'

서목사님이 불신임을 받아들이고 서부교회를 떠났다고 해도 이미 서목사님 재임 2년간 서부교회를 다시는 하나로 합할 수 없도록 그 교인을 둘로 나누어놓은 과거가 있습니다. 서목사님 재임 2년간 서목사님은 그 지지측에게 비록 서목사님이 서부교회를 떠나도 반대측 교인과는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게 됩니다. 기존질서 속에서 소수파로서 정권을 잡는 사람들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자기 고유의 입지를 마련하려면 기존질서를 양분시켜 그중 한몫을 챙기는 것은 세상 정치학개론의 기초적인 상식입니다.

이목사님은 시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그런 현상은 없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서목사님 재임 2년을 거치면서 이제 서목사님이 사임을 했다 해도 서부교회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라도 두 교회로 나뉘어야 합니다. 만일 한 교회로 유지하자는 안이 나오면 이는 우선 감상적으로 좋아보여도 그 후유증은 더 큽니다. 차라리 이미 리브가 뱃속의 야곱과 에서처럼 이미 두 존재가 발생되었으면 그렇게 출생될 때를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측이 조용하게 나뉠 방법을 연구했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를 이곳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서목사님이 가셨거나 아니면 현재처럼 이 상태가 지속되거나 서부교회를 두 개로 보고 각각 그 후임을 논합니다.

서부교회가 둘로 나뉜다면, 서목사님 측에서는 비록 반대측 때문에 불신임이 되었다 해도 이동한 목사님을 다시 모시는 것이 최적임이 될 것이고, 그 반대측으로 말하면 재독을 가장 성실하게 하고 행정에 관하여는 현 교인들의 행정체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전폭으로 지원할 분이라야 할 것입니다.

서목사님이 교회를 갈라놓고 또 결국 불신임을 당해 떠나야 하는데 그 후임 청빙에 다시 한번 자신이 초빙되는 일을 끝까지 피한다면 서목사님 외에 다른 분이 거론될 것입니다. 그런 경우까지 상정한다면, 서목사님 측으로는 부산공회(2)에서 찾아야 할 것이므로 김진태목사님이 가능할 것이고, 반대측의 경우는 현재 공회 소속이 없는 정도이므로 예상할 수가 없겠습니다. 만일 서부교회가 나뉘지 않고 현재로도 통합 목회자를 찾는다면, 류정현목사님이 가장 좋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진태목사님을 추천하는 이유는, 서부교회 정통 교인 출신이기 때문에 서부교회의 특별한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그분은 재독예배는 혹 반대할지라도 그분의 설교는 앰프와 녹음을 담당하던 시절부터 백목사님 설교에 정통한 면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복음에 대한 중심도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담임목회자로서의 단단함도 있으면 동시에 서부교회 권사님들이나 기타 고려해야 할 분들과 자기 주장을 내세워 마찰하는 일은 피할 정도입니다. 이 정도라면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과도기 목회자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분열된 양측을 다 통합하여 한 목회자가 추천된다면, 류정현목사님이 아마 유일한 대안일 것입니다. 그 구역과 신앙내력이 김권사님에 있기 때문에 서목사님측 교인들도 거의 대부분 그분을 좋아하고 인정했던 분입니다. 또한 반대측에게도 목회자 중에서 재독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고 미국체제 약 10여년 동안에도 산기도를 빠지지 않았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양측 교인이 어느 정도 협의가 되어 교회의 큰 방향을 잡아 합의를 한다면, 현재까지로는 류목사님은 유일한 대안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현 서부교회 양측은 말할 것도 없고 남정교회로 나갈 분들까지도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입니다. 그분은 원래 남정교회로 나가는 교인 중 최 핵심부가 가장 아끼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야 할 날자를 받아놓은 백목사님도 죽는 순간까지 연구하고 혹 서부교회 앞날에 좋은 길이 있을지 하나님께 문의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답변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가셨고, 또 사망 직후 백목사님 대신 결정권을 쥐고 있던 당시 지도부도 교권이 아니라 서부교회의 신앙노선과 복음운동의 순수한 면을 두고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결정 이상으로는 달리 길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보면 류목사님처럼 좋은 대안이 국내에 있었다면 너무 좋은 면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데 그분이 당시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던 환경은 하나님께서 서부교회를 이렇게 되도록 하려고 다른 방법을 막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서부교회 분열에 대한 연구는 과거 공부입니다. 문제는 현재 우리 갈 길입니다.

①이곳은 서부교회와 공회 분열을 두고 가지는 현실관

아무리 아쉬워도, 하나님 결정이 그렇다면, 현실은 하나님의 결정이므로 우리는 우리 현실로 받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좀더 노력했으면 더 좋은 현실이 오지 않았겠는가 하는 면은 자기 회개를 위해 돌아볼 문제입니다. 그 면을 두고는 물론 못난 사람이라 단정은 하지 못하나 후회없는 결정과 대처를 했었고 그래도 되지 않은 일이므로 하나님의 전적 역사가 이 방향이라고 깨닫고 있으며 서부교회를 두고는 미안한 것이나 아쉬운 면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②새로운 '총공회관'과 '서부교회관'의 형성

오히려 서부교회라는 부산시 동대신 381번지 울타리 밖에서 누구든 목사님 생전 신앙노선대로 나가려고 힘쓰면 그곳이 오늘의 서부교회가 될 것이므로 자기 나갈 길만 보고 갈 일입니다. 현재 이곳은 1999년 이후 홈을 운영하고 3년을 지나면서 이 'pkist.net'이라는 홈이 바로 목사님 사후 총공회이며 동시에 서부교회가 될 수 있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가 교훈의 연속성을 가졌으면 했던 소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든 얼마든지 백목사님 생전 교훈을 마음껏 접할 수 있습니다.

이 교훈을 접하다가 이 교훈 이상의 교훈을 전할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백목사님 후계가 될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되려고 취임식을 해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과 이곳을 방문하지 않으나 공회 노선에 있는 분들은 전부 목사님 생전의 교훈을 집회 등을 통해 직접 알고 있으므로 그들 전부가 자기 마음에 느끼게 되면 그 느낌의 총합이 자연스럽게 후계자를 지목할 것입니다. 현 목회자 중에서는 없을지라도 자라나는 청소년 중에는 있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홈에는 총공회 신앙노선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부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홈은 출석의 강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발언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있고 그 주장이 그 신앙노선에 옳으면 이곳부터 따를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공회적 사안으로 오가고 모여지고 도출되는 것이 바로 장소적 총공회를 초월한 실질적 총공회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대구공회나 부산공회(2)는 스스로 자신들 그룹만으로 울타리를 치고 개별 단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분들까지 포함하고 소개하고 꼭같은 자격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의 공회는 홈에서 '총공회'라고 했으나 실은 개별공회가 되는 것이고 이곳은 이곳만을 '총공회'라 부른 적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이곳은 총공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백목사님 목회에는 100분의 1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오늘 공회 교인들이 마주치는 오늘 발생되는 문제들을 백영희교훈세계에서 해답을 얻지 못하면 이곳에서 안내를 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백목사님의 목회까지 스며 있다고 봐야 합니다.


③이 홈의 소원

현재로는 다른 홈들이 스스로 개별성을 취하여 폐쇄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개교회 자유주의라는 만물 자유, 진정한 자유의 세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홈들은 이 교훈은 좋아해도 세상 다른 것을 너무 많이 섞어버려 이 교훈에 대한 진심이 의심받을 지경입니다. 또 홈 이외에 실제 교회들의 모임인 공회와 교회 현장의 상황은 진정한 '총공회'와 '서부교회'가 재현될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갈수록 점점 그 가능성조차도 소멸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이 홈만이 진정한 목사님 사후 '총공회'이며 '서부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홈의 진정한 소원은 이 홈이 총공회와 서부교회 정통성과 전통을 이어 단독으로 영광스런 목사님 후계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 외에 과거 총공회와 서부교회 노선에 있었던 모든 분들이 여러 형태의 홈을 운영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공회 현장과 교회 현장을 진정한 '총공회'와 '서부교회'를 만들어 이곳과 그 모든 곳이 다 함께 모여진 '대 총공회'와 '대 서부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곳은 이곳 스스로 이곳 역량을 평가할 때, 과거 총공회와 서부교회를 복원할 힘의 100분의 1, 또는 50분의 1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00에 100을 다 복원하기 위해 노선을 양보하거나 흥정을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백영희신앙노선이며 그 노선상의 총공회와 서부교회는 어떤 모습이라야 하는지를 먼저 연구하고 토론한 다음, 이해가 되고 동감이 된다면 그때는 그 합의된 결론이 바로 총공회 복원 분량이며 서부교회 재건 분량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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