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회의 방법론 - AI 전쟁을 보며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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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신앙과 교회의 방법론 - AI 전쟁을 보며

목회 0 6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잡아 갔고 그 나라를 간단히 끝장 냈다. 이 번에는 이란을 손도 대지 않고 초토화를 시키고 있다.
우주를 채운 인공위성이 지상을 손바닥처럼 내려다 보고, 모든 기술이 인간 원하는 정도로 준비 되었고, 이 모든 상황에서 최종 결정을 하라고 AI가 사람의 책상 위에 결재서를 올렸다. 사인과 동시에 저절로 돌아 간다.



기업도 이미 앞에 나선 곳은 그렇게 하고 있다. 예전처럼 희안한 소식이 몇 년이나 몇십 년이 걸려서 오지 않는다. 바로 닥쳤다.
교회의 운영, 설교의 내용, 신학서에 담은 원어와 해석과 교리와 논리까지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다. 인간이 끼어 들 틈은 거의 없다. 공회의 삼분론은 바로 이런 시기를 60년대에 파악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준비해 왔다.



사람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가. 성경에는 그런 본문이 없다. 그러나 성경을 차분히 읽어 봤다면 사람의 구성이 나온다.
성경을 처음 읽어 보던 신약의 초기, 초대교회는 마음과 몸으로만 읽었다. 성경의 본문에 그렇게 적혀 있다. 몸이 있고 마음이 있다. 몸은 육체 육신 등으로 원어의 단어는 다르지만 파악은 어렵지 않다. 마음도 그러했다.



교회는 100년, 1000년씩 거듭했고 어느 날 사람이 몸과 마음뿐이라면 성경의 말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궁금했다.
다시 읽고 다시 읽어 보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진 부분이 있고, 죄를 지어 죽었지만 사람의 마음과 몸은 종교도 만들고 과학도 만들고 있으니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믿을 때 중생이 되는 요소를 찾아 봤다.



공회를 출발 시킨 백영희는 초등학교 5년 중퇴생이다. 한글은 알고 한자도 서당에서 배워 한글의 기초를 가진 인물이다.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어 보니 명확해 졌다. 이 것이 1950년대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영, 마음, 몸'이며 영은 중생을 해도 마음은 죽는 날까지 죄를 지으니 이 마음과 몸을 말씀으로 고치는 것이 믿는 사람의 과제로 봤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며 확인이 되고 나니 그가 읽은 성경의 전체 말씀을 하나로 요약을 하게 되었다. 신앙의 건설이었다.
안 믿는 사람은 복음을 받고 중생을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들은 죽는 날까지 각자 자기 신앙의 건설을 하게 되며 각자가 다 다르다. 이상할 것도 없고 복잡할 것도 없다. 백영희가 읽고, 우리가 읽는 성경이 그렇다.



이렇게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은 영이 아니라 물질이었다. 영물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마음을 영물인 줄 알았다.
초기여서 그랬던 것이다. 교회는 자라 간다. 교리도 자라 간다. 성경은 그대로지만 성경을 읽는 지혜와 눈은 더 나아 질 수 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이 동물의 마음과 몸처럼 물질이며 물질에는 물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신 세상에게 맡긴 물질은 물리의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AI다.
AI와 로봇 기술이 1초에 태양을 백 번 왕복을 해도 그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들 때 주신 물질과 그 안에 들어 있는 물리에 맞기 때문에 구현되는 것이다. 신앙이란 물질과 물리가 아니라 신령한 영과 진리의 세계이다.



AI가 신앙의 세계보다 나아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도 그 것은 물질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했다. 영은 아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했다. 어린 아이 하나, 돌아 가실 노령의 교인 하나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이는 영의 영역이고 영의 세계다. 이 영의 세계를 옆에서 심부름하거나 표출 되는 것이 마음과 몸이다.



이렇게 요약을 해본다면 AI와 로봇의 발전이 그 어느 지경에 이르던 공회가 알고 추구하는 신앙과는 상관이 없다.
신학교를 나온 이들은 사람을 이분설로 배운다. 그렇게 시험을 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과 심리와 정신과 계산을 뛰어 넘는 기계를 앞에 놓고 고민해야 한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해체될 듯하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수천 년 전처럼 100여 년 전처럼 그리고 오늘처럼 우리가 내일도 훗날도 이 신앙을 고수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리 된다고 생각하고 공회는 60년대부터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이 새로운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고 그대로 가면 된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이 궁금하다. 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 청년들에게는 당면한 과제일 듯하다. 지금 직원들은 별 혼란이 없을 듯하다. 파악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 성령의 인도로 현실을 걸어 온 실상이 과거로 올라갈수록 많다. 어떤 인간의 어떤 요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 온. 그래서 옛날에 한 말을 오늘도 그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이 노선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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