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기와 최상림, 두 신앙의 흐름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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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08:22
일찍 복음을 받고, 남 다른 은혜를 받아, 그 주변에 끼친 영향이 지극했던 분들이다.
박영기,
고신에서는 이제 아는 인물이 거의 없다. 공회에서는 늘 예를 들기 때문에 잘 아는 인물이다.
두 분이 다 말씀의 영향력이 굉장했다. 전국적 지명도는 박영기 조사님이 확실히 앞섰다. 해방 직후 성결교회의 이성봉 목사님이 유명했으나 성결교회의 그런 부흥식 설교였다. 장로교는 말씀으로 하나씩 짚어 가며 진리를 가르친다. 이 면으로는 박영기 조사님이 제일 앞섰다. 그에게 배운 이들이 일제 말기 진주에 있는 경남성경학교에 오면 누가 봐도 신앙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였다. 또 최상림 목사님이 가르친 청년들도 확연하게 돋보였다.
일제 말기의 어려울 때, 미신의 나라에서 처음 복을 받아 주변에서 목회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던 청년들이 성경학교로 모였다. 모두가 열심이었고 훌륭했다. 그러나 박영기 최상림 두 분에게 배운 이들은 그 차원이 달랐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법이다. 제자들, 그 교회 교인들, 그 교회의 신앙이란 광고와 선전과 전해 지는 말로 판단하는 것보다 그냥 느낌으로 와 닿는 것이 있다. 배어 나오는 향이라는 것이 있다. 금단지 안에 ㄸ을 담으면 눈에는 금이나 냄새는 그 내면을 안다. 허무한 요강 단지에 향을 넣어 두면 왠지 향을 맡게 된다. 겉도 좋고 속도 좋으면 좋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속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겉도 속도 함께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공평의 하나님이 하나만 가지게 한다.
박영기,
그런데 해방 후 그는 전성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사경회를 이끌었지만 그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는 갈수록 비어 갔다. 그리고 본인은 스러져 갔다. 왜 그랬을까? 초기의 깨달음을 그는 계속 노트에 적어 놓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 그 정리한 노트를 들고 전국을 순회하며 그 중에 어느 것이라도 하나를 들고 설교하면 은혜는 넘쳤다. 그런데 그 분을 두 번, 세 번을 다시 모셔 보면 더 이상 모시지는 않게 된다. 그 분이 전하는 것은 넘치는 물통에서 퍼내기 때문에 바닥이 보였다.
최상림,
그는 말씀 하나를 씨종자로 삼고 자기를 개간하여 심고 길렀다. 세월이 걸렸고 힘이 들었으나 결실이 있었다. 교인을 가르칠 때도 말씀 하나로 차분하게 깨닫게 만들며 공을 들였다. 그러다 보니 늦었다. 그런데 점점 자라고 있었다. 자기를 계속 개간을 하다 보니 자기 속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이 나오고, 또 더 나은 것이 나오면서 갈수록 더 새로운 깨달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목회하던 교회의 교인도 그에게 배우는 이들도 반복 번복이 없이 새롭게 자꾸 자라고 있었다.
백영희는
선배들의 이런 흐름을 초기에 파악을 했다. 그리고 최상림에게 옥토에 심긴 씨를 배웠다. 하나를 잘 붙들고 실행을 하면서 자라 가라고. 단단한 자기 주관을 깨고 부수고 갈아 엎고, 숨은 돌들을 가려 내고, 가시채를 뿌리채 뽑아 내며 한 말씀으로 실행을 해보면 그 말씀이 자기의 지식을 바꾸고 지식을 먹어 버리고, 습관도 욕심도 사상도 성향까지 결국에는 자기 전부가 말씀이 차지를 해버려야 한다고.. 공회는 그렇게 배워 그렇게 지금도 나아 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렇게 하는 공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공회도 있을 듯하다. 교회도 교인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있기는 할까. 이 곳은 지식적으로 이런 면을 잘 안다. 그런데 그렇게 해 왔을까? 애매하다. 누가 그렇지 않다면 아니라고 소리를 내면 좋겠다. 그러면 돌아 보고, 그 말이 맞으면 그는 스승이고 이 곳은 제자가 된다. 스승이든 제자든 이름은 중요치 않다 나를 개간하는 것이 나의 성공이다. 구원 받은 성도의 신앙 건설이다. 이 것은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다.
박영기,
고신에서는 이제 아는 인물이 거의 없다. 공회에서는 늘 예를 들기 때문에 잘 아는 인물이다.
두 분이 다 말씀의 영향력이 굉장했다. 전국적 지명도는 박영기 조사님이 확실히 앞섰다. 해방 직후 성결교회의 이성봉 목사님이 유명했으나 성결교회의 그런 부흥식 설교였다. 장로교는 말씀으로 하나씩 짚어 가며 진리를 가르친다. 이 면으로는 박영기 조사님이 제일 앞섰다. 그에게 배운 이들이 일제 말기 진주에 있는 경남성경학교에 오면 누가 봐도 신앙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였다. 또 최상림 목사님이 가르친 청년들도 확연하게 돋보였다.
일제 말기의 어려울 때, 미신의 나라에서 처음 복을 받아 주변에서 목회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던 청년들이 성경학교로 모였다. 모두가 열심이었고 훌륭했다. 그러나 박영기 최상림 두 분에게 배운 이들은 그 차원이 달랐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법이다. 제자들, 그 교회 교인들, 그 교회의 신앙이란 광고와 선전과 전해 지는 말로 판단하는 것보다 그냥 느낌으로 와 닿는 것이 있다. 배어 나오는 향이라는 것이 있다. 금단지 안에 ㄸ을 담으면 눈에는 금이나 냄새는 그 내면을 안다. 허무한 요강 단지에 향을 넣어 두면 왠지 향을 맡게 된다. 겉도 좋고 속도 좋으면 좋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속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겉도 속도 함께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공평의 하나님이 하나만 가지게 한다.
박영기,
그런데 해방 후 그는 전성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사경회를 이끌었지만 그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는 갈수록 비어 갔다. 그리고 본인은 스러져 갔다. 왜 그랬을까? 초기의 깨달음을 그는 계속 노트에 적어 놓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 그 정리한 노트를 들고 전국을 순회하며 그 중에 어느 것이라도 하나를 들고 설교하면 은혜는 넘쳤다. 그런데 그 분을 두 번, 세 번을 다시 모셔 보면 더 이상 모시지는 않게 된다. 그 분이 전하는 것은 넘치는 물통에서 퍼내기 때문에 바닥이 보였다.
최상림,
그는 말씀 하나를 씨종자로 삼고 자기를 개간하여 심고 길렀다. 세월이 걸렸고 힘이 들었으나 결실이 있었다. 교인을 가르칠 때도 말씀 하나로 차분하게 깨닫게 만들며 공을 들였다. 그러다 보니 늦었다. 그런데 점점 자라고 있었다. 자기를 계속 개간을 하다 보니 자기 속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이 나오고, 또 더 나은 것이 나오면서 갈수록 더 새로운 깨달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목회하던 교회의 교인도 그에게 배우는 이들도 반복 번복이 없이 새롭게 자꾸 자라고 있었다.
백영희는
선배들의 이런 흐름을 초기에 파악을 했다. 그리고 최상림에게 옥토에 심긴 씨를 배웠다. 하나를 잘 붙들고 실행을 하면서 자라 가라고. 단단한 자기 주관을 깨고 부수고 갈아 엎고, 숨은 돌들을 가려 내고, 가시채를 뿌리채 뽑아 내며 한 말씀으로 실행을 해보면 그 말씀이 자기의 지식을 바꾸고 지식을 먹어 버리고, 습관도 욕심도 사상도 성향까지 결국에는 자기 전부가 말씀이 차지를 해버려야 한다고.. 공회는 그렇게 배워 그렇게 지금도 나아 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렇게 하는 공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공회도 있을 듯하다. 교회도 교인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있기는 할까. 이 곳은 지식적으로 이런 면을 잘 안다. 그런데 그렇게 해 왔을까? 애매하다. 누가 그렇지 않다면 아니라고 소리를 내면 좋겠다. 그러면 돌아 보고, 그 말이 맞으면 그는 스승이고 이 곳은 제자가 된다. 스승이든 제자든 이름은 중요치 않다 나를 개간하는 것이 나의 성공이다. 구원 받은 성도의 신앙 건설이다. 이 것은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