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최 목사님의 빈 자리가 재건교회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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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해방 후, 최 목사님의 빈 자리가 재건교회다.

연구 0 6
어느 교단이든
해방 후의 교회 역사를 적을 때는 한국 교회의 주류인 장로교 총회를 적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총회가 신사참배 때 실패를 했으나 고신이 출옥 성도를 중심으로 교회 재건에 나선 이야기를 적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고려파, 고신의 신앙 재건을 제대로 아주 강하게 아주 극대치로 밀고 나간 곳이 재건파라고 적는다.

재건파에 대해서는 차마 이단이라 소리는 하지 못해도 모두가 도를 넘었다고 적는다. 사실 그런 면이 있다.
최 목사님의 지도는 일제 시기였고 신사참배와 맞서는 것이 사명이었다. 그리고 추수는 많았다.
최 목사님이 해방 직전 5월에 순교로 가셨고 그 남은 제자들이 해방을 맞게 되자 이들에게는 지도자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 중에 가장 투쟁적이었던 최덕지 집사님이 선두에 나섰다.
여성이 지도자가 되다 보니 더욱 강경하게 만사를 개척해 나갔다.
열심은 고려파도 감탄할 만큼 앞섰다. 원래부터 그랬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했던 이들과는 눈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강경하게, 더욱 강경하게, 그리고 할 수 있는 최대치로 강하게 나갔다. 우선은 강하면 좋아 보인다.

그러나 그 강함이 강할 것에 강하지 않고 강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강하게 나가게 되자
재건교회라는 이 보배가 해방 후에 방향이 조금 이상해 졌다. 초기에 조금 이상해 질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마찬 가지다.
그러나 진리로 살피는 면이 조금 적고 열심만 넘치다 보니 결국 재건교회는 세월 속에 확연히 자기 모순이 나오기 시작했다.


재건교회의 아쉬움.. 바로 최상림 목사님의 빈 그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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