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과 기도
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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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 12:37
교계가 찬양대를 성가대로 옮겨 가던 시점, 천주교는 1천년이 넘는 성가대의 경력으로 교계를 우습게 봤다.
교계가 성가대를 통해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되던 시점에 기도를 주문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천주교 식이다.
대표 기도하는 분들이 예배 때 사용할 기도를 미리 적어 온다.
그러면 내용이 알차다. 준비하는 과정에 이미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 기도를 배우고 시작할 때는 참 좋다.
그런데 기도 시간에 기도를 미리 적지 않고 기도할 자기를 하나님 앞에 미리 세워 조심하면 정성이 된다.
그 대신 듣는 분들은 기도문을 읽는 기도에 비하여 눈을 감은 기도에 흠과 점이 많아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눈을 감고 기도하기 위해 자기를 돌아 본 사람은 기도문은 별로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괜찮다.
적어 오는 사람은 적는 수고를 하는 대신에 읽으면 되니까 조심이 덜하고 강단에 쉽게 설 수가 있다.
사람 보기에는 준비한 기도문이 낫다. 천주교가 기도문을 적고 읽고 외우다가 고정을 했다. 최상의 기도문이다. 그런데 그 기도는 녹음기가 더 잘 할 듯하다. 기독교의 기도는 불교의 염불이 아니고 천주교나 미신의 주문이 아니다. 부족한 대로 기도하되 부족하니 더욱 자신을 돌아 본다. 못난 사람의 떨리는 기도가 잘난 사람의 훌륭한 문장의 기도보다 하나님은 더 좋아 하실 듯하다. 공회도 거의 주문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도 이 곳만은 모두가 부족한데 아직까지는 읽는 분은 없다. 그런 분은 아직까지 기도에 세우지는 않는다.
교계가 성가대를 통해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되던 시점에 기도를 주문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천주교 식이다.
대표 기도하는 분들이 예배 때 사용할 기도를 미리 적어 온다.
그러면 내용이 알차다. 준비하는 과정에 이미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 기도를 배우고 시작할 때는 참 좋다.
그런데 기도 시간에 기도를 미리 적지 않고 기도할 자기를 하나님 앞에 미리 세워 조심하면 정성이 된다.
그 대신 듣는 분들은 기도문을 읽는 기도에 비하여 눈을 감은 기도에 흠과 점이 많아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눈을 감고 기도하기 위해 자기를 돌아 본 사람은 기도문은 별로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괜찮다.
적어 오는 사람은 적는 수고를 하는 대신에 읽으면 되니까 조심이 덜하고 강단에 쉽게 설 수가 있다.
사람 보기에는 준비한 기도문이 낫다. 천주교가 기도문을 적고 읽고 외우다가 고정을 했다. 최상의 기도문이다. 그런데 그 기도는 녹음기가 더 잘 할 듯하다. 기독교의 기도는 불교의 염불이 아니고 천주교나 미신의 주문이 아니다. 부족한 대로 기도하되 부족하니 더욱 자신을 돌아 본다. 못난 사람의 떨리는 기도가 잘난 사람의 훌륭한 문장의 기도보다 하나님은 더 좋아 하실 듯하다. 공회도 거의 주문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도 이 곳만은 모두가 부족한데 아직까지는 읽는 분은 없다. 그런 분은 아직까지 기도에 세우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