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원어, 셀라를 중심으로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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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08:34
시편을 읽으면 '셀라'라는 원어가 많이 나온다.
우리 성경은 번역을 했다. 번역이 가능한 것은 번역을 했지만 아예 우리 말에 없는 부분은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적어 버렸다. '셀라'도 그런 경우다. 원래 원어 발음 그대로 적었으니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면 된다. 뜻은 무엇일까? 알 것 없이 그냥 읽으면 된다. 번역을 했기 때문에 대략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말씀이 수도 없이 많은데 번역하는 분들이 번역조차 하지 못하여 그냥 둔 부분부터 알려는 것은 순서상 고려할 일이다.
성경을 거의 다 모르는 사람이 '셀라' 하나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시작한다면?
당연히 원어 사전을 들출 것이다. 사전이면 다 맞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을 듯하다. 사전도 사전 나름이다. 또 그 사전이 성경을 기록하던 2천년 전에서 3천 5백년 전의 당시 뜻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타고 난 은혜가 있어 이 부분을 전담한 분들에게 맡겨 놓고, 그 분들이 모두 일치한다 해도 성경 전체로 다시 검토해 봐야 하지만 그 분들끼리도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는 너무 많다. 바로 이 순간 공회는 처음부터 무식하니, 성경 66권 중에 가장 잘 알고 쉬운 부분을 가지고 하나씩 실제 살아 보면서 자꾸 읽다 보면 하나씩 알아 가게 된다. 그 알아 가는 순서로 본다면 '셀라'라는 단어는 볼 것도 없이 아주 제일 마지막이 될 듯하다.
최근 시편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셀라라는 단어가 나왔다. 모르니 그냥 넘어 간다. 그냥 넘어 갈 수가 있는가?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 개역 한글 성경이며 그 성경의 시편에 셀라가 무슨 뜻인지 적지도 않고 그대로 보이니 그냥 그대로 읽으면 된다. 그대로 읽은 그 자체가 그냥 넘어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편의 본문이 셀라 라는 단어 때문에 잠깐 막히게 된다. 무슨 단어인지 잘 모르니 쉬게 된다. 안다 해도 이 단어가 들어 앞뒤의 내용을 끊어 놓는다. 그 것이 '셀라'라는 단어다.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따지기 전에 그 단어 때문에 잠깐 멈춘 그 환경 그 궁금 그 것이 셀라를 알아 가는 입문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 사람이 그리 될 리가 없고 우리가 오늘처럼 이럴 리는 없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 찾아 보면 아이를 낳은 여성, 생물학에서는 개체의 자기 복제, 사회학에서는 가정과 사회에 희생 등으로 대충 가르친다. 그러나 품 안에 아이는 사방에서 들리는 엄마 소리를 언어나 생물이나 사회학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상황과 겹쳐 버린다. 이 품, 이 아늑함, 이 따뜻함, 이 만족의 출발이며 배경이며 전부가 엄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 가면서 엄마라는 단어는 범위와 내용이 많아 지며 세분화 되며 차원을 달리 한다. 셀라 단어를 대할 때 또는 성경에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나 대목이 나오면 이렇게 하나씩 풀어 가다 보면 쉬운 것부터 가르쳐 주신다.
시편은 평소 그냥 읽고 내려 갔다. '셀라' 단어가 갑자기 크게 와 닿았다. 지난 날 접하던 셀라와 다른 마음이었다. 왜 그럴까? 최근 시편을 1편에서 몇 달을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시편을 가장 많이 공부를 하다 보니 이 번에 만난 셀라는 지난 날과 달랐다. 공회는 원어와 신학과 신앙의 세계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이렇게 하나씩 해결해 나왔다. 참으로 무식하고 답답한데 참으로 지혜롭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첩경인 듯하다.
우리 성경은 번역을 했다. 번역이 가능한 것은 번역을 했지만 아예 우리 말에 없는 부분은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적어 버렸다. '셀라'도 그런 경우다. 원래 원어 발음 그대로 적었으니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면 된다. 뜻은 무엇일까? 알 것 없이 그냥 읽으면 된다. 번역을 했기 때문에 대략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말씀이 수도 없이 많은데 번역하는 분들이 번역조차 하지 못하여 그냥 둔 부분부터 알려는 것은 순서상 고려할 일이다.
성경을 거의 다 모르는 사람이 '셀라' 하나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시작한다면?
당연히 원어 사전을 들출 것이다. 사전이면 다 맞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을 듯하다. 사전도 사전 나름이다. 또 그 사전이 성경을 기록하던 2천년 전에서 3천 5백년 전의 당시 뜻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타고 난 은혜가 있어 이 부분을 전담한 분들에게 맡겨 놓고, 그 분들이 모두 일치한다 해도 성경 전체로 다시 검토해 봐야 하지만 그 분들끼리도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는 너무 많다. 바로 이 순간 공회는 처음부터 무식하니, 성경 66권 중에 가장 잘 알고 쉬운 부분을 가지고 하나씩 실제 살아 보면서 자꾸 읽다 보면 하나씩 알아 가게 된다. 그 알아 가는 순서로 본다면 '셀라'라는 단어는 볼 것도 없이 아주 제일 마지막이 될 듯하다.
최근 시편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셀라라는 단어가 나왔다. 모르니 그냥 넘어 간다. 그냥 넘어 갈 수가 있는가?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 개역 한글 성경이며 그 성경의 시편에 셀라가 무슨 뜻인지 적지도 않고 그대로 보이니 그냥 그대로 읽으면 된다. 그대로 읽은 그 자체가 그냥 넘어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편의 본문이 셀라 라는 단어 때문에 잠깐 막히게 된다. 무슨 단어인지 잘 모르니 쉬게 된다. 안다 해도 이 단어가 들어 앞뒤의 내용을 끊어 놓는다. 그 것이 '셀라'라는 단어다.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따지기 전에 그 단어 때문에 잠깐 멈춘 그 환경 그 궁금 그 것이 셀라를 알아 가는 입문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 사람이 그리 될 리가 없고 우리가 오늘처럼 이럴 리는 없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 찾아 보면 아이를 낳은 여성, 생물학에서는 개체의 자기 복제, 사회학에서는 가정과 사회에 희생 등으로 대충 가르친다. 그러나 품 안에 아이는 사방에서 들리는 엄마 소리를 언어나 생물이나 사회학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상황과 겹쳐 버린다. 이 품, 이 아늑함, 이 따뜻함, 이 만족의 출발이며 배경이며 전부가 엄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 가면서 엄마라는 단어는 범위와 내용이 많아 지며 세분화 되며 차원을 달리 한다. 셀라 단어를 대할 때 또는 성경에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나 대목이 나오면 이렇게 하나씩 풀어 가다 보면 쉬운 것부터 가르쳐 주신다.
시편은 평소 그냥 읽고 내려 갔다. '셀라' 단어가 갑자기 크게 와 닿았다. 지난 날 접하던 셀라와 다른 마음이었다. 왜 그럴까? 최근 시편을 1편에서 몇 달을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시편을 가장 많이 공부를 하다 보니 이 번에 만난 셀라는 지난 날과 달랐다. 공회는 원어와 신학과 신앙의 세계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이렇게 하나씩 해결해 나왔다. 참으로 무식하고 답답한데 참으로 지혜롭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첩경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