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는 성화만, 공회는 기능의 세분화까지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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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개혁교는 성화만, 공회는 기능의 세분화까지

연구 0 7
구원의 순서를 크게 살펴 보면
칼빈의 개혁주의 교리는 불신자로 살다가 중생이 되면 이후 성화가 되고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 영화로운 사람이 되어.
백영희의 교리는 개혁주의 교리를 총론으로 본다. 그 것은 당연히 맞고 옳다. 다만 구원의 순서에 치중하다가 목록만 만들었다고 본다.
책을 보면서 목록만 보고 책을 다 봤다고 넘어 가면 바빠서 그렇거나 그 분야를 처음 접하기 때문에 내용에 앞서 전체를 파악한 것이다.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면 책의 제목을 보고, 목차를 통해 전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나서 이제 제대로 앉아 한 목차씩 자세히 읽게 된다.
한 페이지씩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줄씩을 읽는다.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앞으로 넘겨 비교하며 그 단어의 의미 때문에 고민을 한다.



칼빈이 1536년에 기독교 강요 첫 출간을 통해 대략을 말했다. 그 칼빈 스스로 죽는 날까지 계속 목차의 세부를 채웠다.
칼빈이 이후 4백여 년을 그 제자들이 칼빈이 적은 내용이 전부라 생각하고 칼빈이 멈춘 곳에서는 멈춰야 한다는 교리를 덧붙여 놓았다.
백영희는 무식하다. 그런데 진실하다. 그래서 4백년을 두고 남들이 뭐라 했든 칼빈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었다.
칼빈 구원론 순서에 '성화'라는 곳에 머물며 그 단계가 목차 한 줄로 넘어 갈 정도인가? 교리서에 몇 페이지로 설명하고 끝낼 분량인가?
성경을 자꾸 읽고 아는 대로 실행을 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따지고 살피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화 내면을 깊게 자세히 알게 되었다.



중생 된 사람은 중생 이후에 자기 몸과 마음을 말씀으로 매순간 하나씩 고쳐 가고 배워 가고 자라 가게 되는 것이라고.
한 몸에 수많은 기관과 헤아릴 수 없는 기능이 따로 있다. 신앙에 관련 된 면을 헤아려 보면 끝이 없다. 그 하나씩을 세세히 비교를 했다.
연보 면은 훌륭하나 기도가 미개한 사람, 기도의 성자나 경제를 실패한 장로님, 목회에 탁월하는 교리가 어두운 사람도 성화 안에 있다.
기도 하나로 다시 나눠 보면 열심 기도는 있고 교리 기도가 없는 사람. 기도만 하면 자기 주관으로 요구하지 그 뜻을 무시하는 분도 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면을 놓치는 사람도 있고 정작 가족에 대한 기도를 빼는 사람도 있다. 나누다 보니 인체보다 더 나눌 항목이 많았다.



순교 한 면으로는 시대의 최고 신앙이었으나, 그의 교리는 이단에 가까운 이들도 있다. 이들의 순교는 순교가 맞는가?
소신의 사람이지 순교가 아닐 수도 있고 소신과 순교가 애매하게 섞인 경우도 있다. 칼빈이 말한 성화, 그 성화 내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겉으로 보면 건물 하나지만 구조 설계도가 따로 있고, 배관 설계도가 따로 있고, 전자 통신 전기 배치도가 다르며 소방 설계도 있다.
심지어 벽돌이 수만 수십만 개가 들어 가는 일반 작은 빌딩 하나의 벽돌 중 한 개만 잘못 되어도 미관이나 안전이나 편의에 치명적이다.
칼빈의 교리를 잠깐 소개 받고 백영희는 우선 감사했다. 서론이자 총론이 동일했다. 그러나 성화를 접할 수가 없었다. 혼자 독학을 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성화' 구원을 발표했다. '건설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기능'이라 했다.
성화는 학생의 한 해 공부의 총점 정도다. 건설 구원이란 그 총점을 향해 나아간 모든 과정을 말한다. 기능이란 그 한 순간의 내면이다.
한 사람의 신앙은, 그 사람의 그 동안 믿어 온 신앙 분량의 총합이다. 그 총합을 들여다 보면 과목이 다르고 형성 과정이 각각 다 다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소수 분해를 하면, 정밀 분석을 하면 비로소 모든 것이 환히 나온다. 그리고 총합과 과정을 함께 알면 온전해진다.




(다음 글로 이어진다)

교회든, 교인이든, 속에 있는 실제 '총공회적인' 생각과 행동과 심정이란 비록 수치화 분류화를 하지는 못하지만, 그 총합이 총공회다.
교계가 볼 때도 부공3이 또렷하게 총공회다. 그래서 교계의 권위 있는 인물들과 운동과 연락이 이 곳으로 향한다. 이는 외부적 공회다.
교계가 봤든 못 봤든, 각 공회가 주장을 하든 말든, 어느 공회에 있든 그 속에 어느 인물 어느 교회 속에 진정한 공회적인 것을 다 모으면?
그 것이 시공을 초월하고 보이는 단체로서 총공회에 막히지 않는 진정한 총공회다. 백영희 생전은 일단 그 분 앞에 모여야 총공회였다.
그 분 사후에는 정말 백영희 신앙적인 것이 총공회이며, 총공회적 요소를 합산하면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다. 너무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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