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총공회, 총공회를 또 소집해 본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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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참다운 총공회, 총공회를 또 소집해 본다.

목회 0 1
총공회의 출발을 이해하는 분을 뵌 적은 없다. 그래도 이진헌 목사님 한 분만은 대화가 되었다. 그러나 70세에 가까와 지니 서로가 멀어 졌다. 공간도 그렇지만 총공회를 두고 인식한 것도 자꾸 멀어 졌다. 지금은 다시 합할 수 없을 만큼 되었다. 나는 그 분께 이 노선의 가치를 그 분에게 처음 배웠다. 그리고 나서 전성수 목사님께 배웠다. 이진헌 목사님이 잡아 준 방향으로 첫 발을 딛고 이후 초기의 몇 걸음을 전 목사님이 잡아 준 이후, 그리고 오늘까지 평생을 그 분들 없이도 그 첫 방향에서 이탈하지 않고 걸어 가는 중이다. 그 분들이 늘 내 앞에서 먼저 가며 본이 되고 끌어 주실 줄 알았다. 한 분은 너무 일찍 가셔서 아쉽고 한 분은 중간에 자신이 이끌어 주신 길과 다른 길에 서 계신다. 전국의 도로망을 보면 서로 다른 번호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나는 그 분이 잡아 준 그 첫 말씀만 붙들고 있다. 만사 내가 부족하지만 한번 잡을 때 신중하게 잡고, 한번 잡고 나면 나는 내 손으로 바꿔 본 적은 없다.




총공회란
교계의 흔한 단체적인 조직, 교단들과는 구성 방향과 성격과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 단체는 단체지만 그 단체를 구성하는 내용이 형식 외식 제도에 있지 않고 내용에 있다. 외형은 내용을 담는 최소한에 그친다. 이 절묘한 배분이나 분담이나 조절이 공회의 역사에 잘 나와 있다. 교계의 교회와 교단이 애굽 시절처럼 뇌리에 박힌 이들은 평생 총공회 일선에 있어도 털고 나면 본색이 드러난다. 양가죽을 뒤집어 썼다 해도 벗고 나면 이리가 되고, 검은 재로 뒤덮여도 털고 나면 흰개는 흰색이 드러 난다. 총공회 총공회 총공회를 이렇게 노래를 부르나 마치 고신이 고려파 고신을 노래 부르면서 합동의 길을 가고, 합동은 통합의 길을 가고, 통합 교단은 종교 통합을 통해 적기독으로 달려 가는 것과 같아 보인다.




총공회가 무엇인지를 두고
서부교회의 2층을 대표하는 서영호 목사님과 그 분보다 공회성이나 실력이 훨씬 나아 보이는 창천교회 김영채 목사님은 교계 교단의 조직 이론을 근거로 삼고 이 곳을 향해 난도질을 하고 있다. 작두에 볏짚이 뭉뚱뭉뚱 잘려 나가는 모습처럼 이 곳을 단두대에 올려 놓고 매달 처형을 하고 있다. 제명, 또 제명, 또또 제명제명인데 그 회의록마다, 그 이유와 발언마다 불신 판사가 편을 들어 주어야 하니 변호사가 적어 주는 대로 적었는지? 그렇다면 세상이 머리 되고 그 쪽 공회는 꼬리가 된 셈이다. 아니면 자기들이 총공회관을 적어 주고 변호사가 각색을 했는지. 참 안타깝게도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다 해당이 된다.



총공회란,
어디 있다 해도 백영희 신앙 노선의 이해가 같아야 총공회가 된다. 그 지식이 같고 그 경험과 자료가 같고, 그 중심과 열심이 같을 때 그 총합을 총공회라 한다. 총공회의 첫 명칭은 독립교회였다. 우리는 싫어 했으나 외부에서 역사적 독립교회와 같아 보인다고 밖에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치 백파처럼. 우리는 하나님파인데 그들은 백파라 했다. 그러면 고신 고려파는 한파인가? 이렇게 돌아 올 말을 고려하면 함부로 그런 말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을 처음 붙여서 고려파와 고신과 오늘 교계에 우리 이름으로 박아 놓은 분은 정작 조기에 총공회로 전향하고 들어 오신 배수윤 목사님이다. 해방 후 대구 교계에 무척이나 유명했던 분이다.



주님만을 따라 가는 한 사람, 그 사람 옆에 한 몸이 되어 함께 하면 교회라 한다. 그런 교회는 위가 없고 옆도 없이 주님만 모시고 말씀으로 사는 데 주력한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교회들에게 한번씩 모여서 함께 해야 할 과제를 내주신다. 가장 대표적으로 안수 문제다. 참 불편하지만 기독교라는 전체와 대적할 수가 없어서 교회로서 벗어 버리고 싶은데도 최소한 걸치는 이름이 안수다. 목사나 장로라는 명칭이다. 그 옷을 지어 입자니 양복점에 가서 돈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 모인 후 '공의회'라고 이름을 붙였다. 공회는 최소한을 좋아 하기 때문에 뒤에는 공의회를 공회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공회가 교계에서 숨어 있지 못하게 하나님이 높은 산만당에 올려 버렸다. 그래서 교계의 흔한 교단들의 이름처럼 우리도 그들과 이색되지 않게 이름이 필요하여 비로소 '총공회'라고 했다. 공의회는 우리의 모임이나 보통 명사이기도 했다. 공회도 그렇다. 총공회부터는 이제 호적에 올릴 이름이 된 것이다.



이 총공회 이름을 접하자 말자 이 것을 교계의 진열대에 전시를 하면 나도 이런 교단에 속한 인물이고 교회라고 과시를 할 만큼 되었다. 이후 물품의 포장에 정신이 없었다. 포장은 이웃과 사회 생활 때문에 걸치는 최소한의 옷과 같았다. 내용이 강아지인지 사자인지 사람인지가 문제였는데 총공회 이름을 가지게 되자 교계의 일원이 되었다고 교계를 배끼자는 운동이 얼마나 거세게 일어 났고 이는 탈퇴라는 현상이 되었다. 총공회의 이름조차 그 과정조차 모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 당시 아주 어린 사람인데도 너무 쉽고 간단하여 이렇게 당시를 마치 다 지켜 본 사람처럼 글을 적고 있다. 이 글보다 모르는 이들은 이 글을 통해 알지 못했던 총공회를 배우면 복이다. 이 글 정도나 그 이상 되는 분들은 이 글을 읽는 순간에 '그렇지. 맞지. 나는 먼저 알고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


총공회는 백영희 신앙 노선에 대한 자료가 같고, 이해가 같고, 말과 행동이 같다면 이미 총공회 회원들이고 그들의 총합이 총공회다. 이 것이 참 총공회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서부교회 2층과 창천교회는 오로지 대구 지방 법원의 재판부가 판결문에 적을 내용만이 그들 총공회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며 목숨을 걸고 있다. 이런 재판은 원고인 부공2가 이겨도 졌고 져도 진 재판이다. 부공3 이 곳은 이겨도 이겼고 져도 이미 이겨 놓은 상황이다. 예수님이 예수님인 이상 죽어도 살고 살아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 예수님을 죽여 놓았으니 그들은 죽여서 끝을 낸 것이 아니라 처형한 죄만 뒤집어 썼고 주님은 죽음에게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이 것이 기독교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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