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단어 요약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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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2 00:00
1. 우선 /초기화면/활용자료/메모사전/에 올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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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표현의 정의를 내릴 때
내용:
많은 것을 연구하는 가운데
'이것을 정의로 삼아야 변동이 없겠다.' 해서 간추리고 간추려서
정의를 삼게 됩니다.
경건을 예로 든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대로 사는 것' 이렇게 정의를 할 때
그 속에 경건이 다 들어 있습니다.
잘못 정의를 내리면 나중에 불교에도 경건이 있고 유교에도
경건이 있다고 됩니다.
정의를 내릴 때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대로 하면 되어지고
탈선을 막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연구하는 가운데 정의를 내리게 됩니다.
(84년 8월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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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목사님의 '요약'면에 특별함
어느 누구든 한 두 가지 남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도둑이라 해도 그들의 부지런함과 눈치만큼은 배울 바가 있고
강도라 해도 치밀함과 대담함은 배울 바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을 연구하면서 얻게 되는 수입은 바로 이런 장점들이므로
모든 사람을 다 연구할 수는 없다 해도
우리 주변 인물 중 연구하여 참고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현재 이 홈은 백목사님 신앙생애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살펴볼수록 역사 몇 손가락 꼽을 인물이라 하는 것이 절감됩니다.
그 정도이니 많은 장점이 있고 탄복할 사안이 많은데
오늘은
이번 06년 8월집회에서 재독할 1984년 8월 집회 설교들 중
교인들이 꼭 새겨두었으면 하는 내용들을 따로 분류하다가
그 분의 단어 정의, 즉 '요약력'에 대하여 깊이 느낀 바가 있어 글을 적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정말 더 말을 잘하는 사람은 표현 하나로 수많은 말을 요약해서 담아버립니다.
물론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 교인들을 위해
그분은 교회사 최대 분량으로 기록될 설교 자료를 전하고 있으나
그 설교록의 방대한 내용은 항상 단 몇 줄, 때로는 단어 하나로 요약이 되도록 부채살처럼 전개되고 모아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마음 먹고 흉내를 내려 해도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한 주간에 한 개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인데, 입이 열리면 언제라도 폭포수처럼 말씀들을 쏟아내면서도 그 내용은 이제 설명한 것처럼 그런 차원의 내용으로 전개 되고 있으니 감탄할 일입니다.
3.단어에 대한 정의
성경의 단어들!
우리가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여
어떤 목회자라도 설교를 하면서 자기가 읽은 성경 본문의 단어들을 함부로 해석합니다.
그가 금방 입에서 쉽게 내놓은 그 단어의 뜻이
교인들에게 수많은 설교 분량을 다 함축시켜 전달하는 특별한 해석인지
아니면 나중에 다른 설교나 다른 성구와 엉켜붙어 싸워야 하는 억해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 단정을 척척해 버리는 경우를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 같이
시대 제일의 신앙인들이 오랜 세월 표현할 수 없는 기도와 명상과 연구와 노력 끝에
회개가 무엇이며 중생이 무엇이라고 우리 신앙세계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하나씩 정의했으니 지금도 그들이 수고한 것을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사적 최대 최고의 결실을 가마득히 초월하는 백목사님의 정의 설명들은 시대의 진행에 따라 당연히 앞서 가야 하는 깨달음이면서도 그 분량과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요약하고 있어 정말 신학적 연구 대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4.그러나
피카소 그림 붓이 척척 가는 대로 세계적 명작이 된다 해서
그 옆집 주정뱅이가 자기도 척척 붓 가는 대로 그려서 피카소 그림과 비슷하다며 계속 자랑을 하게 되면 주변 초등학교 미술교사로서는 참 난감합니다.
불신자 예술에도 경지가 있어 그 경지에서 일갈하는 것과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범인의 솜씨도 다른데
하물며 신앙세계의 앞선 성자가 자기 평생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분 뜻을 따라 일제치하 공산공점령치하 갖은 고초 다 겪으며 오직 말씀 하나에 자신을 깨끗하게 세워 장차 주님이 이 세대를 향해 필요한 말씀을 전할 때 자기의 깨끗해 진 신앙인격으로 그 심부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성화된 차원이 있는데
앉은 자리에서 열두 번도 더 변덕하고
내친 김에 못할 말이 없는 우리 일반 목회자의 입으로
기독교의 정의와 성경의 명문 단어의 뜻이라며 하루에 몇 개씩 때로는 몇십 개라도 척척 글로 적고 외부에 보라며 늘어놓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일반 목회자 전부입니다.
물론 틀려가며 자라가고 고쳐가며 바른 길로 가는 것이지만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 하나를 새로 정의하기 위해 몇날을 몇달을 때로는 몇년을 고민하여 새로 적고 다시 적어 자기로서는 이제 더 이상이 없고 앞으로 개정이 없겠다 할 때에 비로소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기 위해 조금 내놓아 보는 것이 이 노선 목회자들의 조심이며 양심일 듯 합니다.
교회마다 홈페이지를 개설하되 넓은 공회일수록 그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심스런 목회자들은 교회홈의 장점을 보고 운영하되 최대한 조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나, 어떤 곳에서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시절을 몇 배, 아니 몇십 배 능가할 분량과 사안을 척척 발표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공회 내 여러 종류 홈들을 방문할 때마다 심장이 멎고 양손이 떨리는 느낌을 받지만
오늘 세상의 출판기술과 인터넷의 활용도는
초보 자가용 운전자에게 제트비행기 조종석을 맡긴 듯 하다고 생각되어
이 홈의 발언들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