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서부교회 이재순의 저항과 번복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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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5 21:38
1990년 11월에 서부교회는 이재순 목사님의 찬반을 두고
서부교회 4층 중간반은 불신임으로 보내려 했고 김효순을 중심으로 했던 훗날 부공2는 총력 지지를 하고 있었다.
투표 결과 약간의 차이로 불신임이 되자
이재순 목사님은 1986년 자료를 제시하며 '목회에 잘 참고하겠다'라며 버텼다. 대구공회 측이 나갈 때 온갖 수모를 겪어 봐서 이제는 교회 분쟁에 전문가로서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4층 중간반에서는 연구부에 자료 요청을 해왔다. 이재순 목사님을 절대 옹위한다며 지금 부공2의 목회자들은 아주 펄펄 뛰며 몸으로 막고 나설 정도였다. 이 글을 읽으면 해당 본인들은 기억이 새로울 듯했다.
연구부에서 이재순 목사님 사택에 전화를 드렸다. 이재순 목사님을 실제로 모시고 있던 분에게 1988년 자료를 제시했다. 그러자 또 다른 자료가 있다고 했다. 그 자료가 바로 대구공회 쪽에서 목사님 생전에 집요하게 버티다가 무너진 자료인데 사택에서 잘 말씀 드리고 조용히 가시면 앞으로 총공회적으로 할 일이 계시지 않을까.. 그대로 계시다 보면 훗날도 없을 듯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사택에서 직접 모시는 분과 연구 부장은 서로 믿고 대화할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권찰회 때 사직하고 인천으로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연구부장은 김해공항에서 목사님이 탑승 수속을 마치고 들어 가고 마중 나온 분들이 다 돌아 가고 난 뒤 목사님과 따로 만났다. 서부교회를 김효순 측에게 넘겨 주고 파탄나게 하지 말고 그래도 지켜 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 목사님은 자기가 사직한 이상 서부교회는 파탄이 나는 방향으로 밀쳐 냈다. 그렇다면 연구부가 더 이상 노력할 일은 없다. 교권을 도모하려 했다면 모두가 당시 비판한 대로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이 곳의 평생 활동을 통해 이 곳의 진심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곳은 서부교회의 교권이 아니라 서부교회를 만든 원인을 연구하고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것이 남기고 가신 서부교회 건물 대신에 그 서부교회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겨자씨로 보기 때문이다.
교권을 잡으면 모두가 순식간에 입장이 달라 진다.
교권을 잃으면 갑자기 다른 소리를 한다.
내가 겪은 평생에 이 노선의 인물들은 다 그러했다.
이 곳은 아예 연구소니 처음부터 교권과는 상관이 없다. 노곡동처럼 백도영, 부공1과 2와 대구공회 전체가 힘을 합해 연구소가 운영해 달라고 전원일치로 맡겨 오면 그 때는 맡아 주기도 한다.
서부교회 4층 중간반은 불신임으로 보내려 했고 김효순을 중심으로 했던 훗날 부공2는 총력 지지를 하고 있었다.
투표 결과 약간의 차이로 불신임이 되자
이재순 목사님은 1986년 자료를 제시하며 '목회에 잘 참고하겠다'라며 버텼다. 대구공회 측이 나갈 때 온갖 수모를 겪어 봐서 이제는 교회 분쟁에 전문가로서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4층 중간반에서는 연구부에 자료 요청을 해왔다. 이재순 목사님을 절대 옹위한다며 지금 부공2의 목회자들은 아주 펄펄 뛰며 몸으로 막고 나설 정도였다. 이 글을 읽으면 해당 본인들은 기억이 새로울 듯했다.
연구부에서 이재순 목사님 사택에 전화를 드렸다. 이재순 목사님을 실제로 모시고 있던 분에게 1988년 자료를 제시했다. 그러자 또 다른 자료가 있다고 했다. 그 자료가 바로 대구공회 쪽에서 목사님 생전에 집요하게 버티다가 무너진 자료인데 사택에서 잘 말씀 드리고 조용히 가시면 앞으로 총공회적으로 할 일이 계시지 않을까.. 그대로 계시다 보면 훗날도 없을 듯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사택에서 직접 모시는 분과 연구 부장은 서로 믿고 대화할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권찰회 때 사직하고 인천으로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연구부장은 김해공항에서 목사님이 탑승 수속을 마치고 들어 가고 마중 나온 분들이 다 돌아 가고 난 뒤 목사님과 따로 만났다. 서부교회를 김효순 측에게 넘겨 주고 파탄나게 하지 말고 그래도 지켜 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 목사님은 자기가 사직한 이상 서부교회는 파탄이 나는 방향으로 밀쳐 냈다. 그렇다면 연구부가 더 이상 노력할 일은 없다. 교권을 도모하려 했다면 모두가 당시 비판한 대로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이 곳의 평생 활동을 통해 이 곳의 진심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곳은 서부교회의 교권이 아니라 서부교회를 만든 원인을 연구하고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것이 남기고 가신 서부교회 건물 대신에 그 서부교회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겨자씨로 보기 때문이다.
교권을 잡으면 모두가 순식간에 입장이 달라 진다.
교권을 잃으면 갑자기 다른 소리를 한다.
내가 겪은 평생에 이 노선의 인물들은 다 그러했다.
이 곳은 아예 연구소니 처음부터 교권과는 상관이 없다. 노곡동처럼 백도영, 부공1과 2와 대구공회 전체가 힘을 합해 연구소가 운영해 달라고 전원일치로 맡겨 오면 그 때는 맡아 주기도 한다.

고신이 해방 후 개혁을 할 때 선교 초기부터 내려 온 한국교회의 첫 신앙 재현을 노력했습니다.
백영희의 평생은 칼빈처럼 고신처럼 외형에 담아 주신 신령한 신앙의 실체를 전하려 했습니다.
모두 다 아는 것이고 말도 하지만, 막상 손에 담임 목사직이 들어 오면 누구라도 바뀔 듯합니다.
이 곳인들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기 위해 또는 그럴 수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기 위해
이 곳은 공회 역사 전부를 통해 그 어떤 자료도 아는 대로 전부 공개를 미리 하고 제공을 하여서
입장을 바꿀 사람은 내가 A라고 주장한 것은 맞다. 그런데 이제는 B로 전향을 하겠다고 만들어
A라고 주장한 사람이 원래 내가 B라고 주장했지 않느냐 지금도 B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만은 막고자 합니다. 전향한 사람은 양심을 건졌기 때문에 둘째 아들처럼 돌아올 수 있고
전향 사실조차 감추는 사람은 돌아 올 다리를 스스로 끊고 나가는 분들인데 그 것을 막고자 하며
이 곳을 운영한 핵심 절반조차 바뀐 적이 없다고 지금도 주장을 하니 이 것이 공회의 슬픔입니다.
성경사와 교회사와 한국교회사와 공회사도 그렇다 보니 이 글을 적는 자신을 잡아 놓고 싶습니다.
이는 (이른바) 교단의 장자교회로서 총 공회적인 (견해 따라 초미의) 공통관심사가 아닐 수 없음이라 (한편) 여겨보게 되는 것입니다.
차제에 ‘서부교회를 만든 원인’에 그 초점(중점)된 깊은 연구의 내용을 소상히 듣고 명확히 인식하고 싶으며, (이 홈이나 다른 사이트에) 이미 이 관련된 (구체적인) 게재가 있다면 소개를 바라겠습니다.
‘서부교회를 만든 원인’
1. 기존 자료
이 곳의 초기화면/자료/출간목록 35번 '총공회 신앙노선 소개(내부용)'과 33번 '주교목회연구 1권'를 우선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백 목사님의 신앙의 기본 성격, 이어지는 목회 자세와 과정, 형성된 공회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을 듯합니다.
2. 서부교회의 본질
한 목회자가 하나님께 붙들려 말씀 하나를 바르게 전하고 자기가 그렇게 살려고 실제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서부교회와 같이 된다는 것이 백영희의 서부교회입니다. 서부교회가 서부교회인 것은 백영희의 그런 신앙 실체였기 때문이고 백영희가 만들어 놓은 결과가 세계적이었지만 백영희뿐 아니라 백영희의 그 자세 그 충성을 빼 버리니 오늘처럼 공동 묘지가 되었습니다. 백영희의 그 자세 그 신앙 그 실행으로 교회를 운영해 본다면 비록 작지만 서부교회는 오늘도 가능하고 과거에 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영희라는 인물을 1900년대에 내놓으시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더 강하게 더 특별하게 역사한 것은 사실이고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는 그 정도의 의미가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그 이전도 그 이후도 그런 신앙으로 목회를 하면 작은 서부교회, 또는 타 지역의 서부교회는 오늘도 곳곳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살려고 했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또 목회자가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자기부터 살아 보려고 노력했다는 말도 수없이 듣습니다. 현재 서부교회 담임으로 계신 분 역시 부임 전에도 부임 초기에도 아마 지금도 말씀은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 담임은 고신이나 합동 교단이나 미국의 보수 장로교단의 기준으로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3. 백영희 말씀 세계
백 목사님의 설교는 주변에 부탁하면 책으로 데이타로 차고 넘칩니다. 그 중에 '소선집 30개'를 통해 말씀의 깊이와 성경을 대하는 자세와 신앙의 기본을 살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1989년이 마지막 해인데 그 연도의 주일 오전 오후 설교를 들어 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집회나 토요일 새벽이나 교역자회 설교 중에 신사참배, 6.25, 마을의 박해, 고신 교단의 정치적 박해 등을 거쳐 온 경험담을 참고해 보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 초기에 소개한 '총공회 노선소개(내부용)을 살펴 보시면 아마 백영희의 말씀 연구와 실행과 교회 운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누구든 이렇게 노력해 보시면 자기로서는 작은 서부교회를 만들어 볼 수도 있고 느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것이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서는 신앙의 노선에 충실하기 위하여 이렇게 할 수 있고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직접 필요하여 쓰시려고 한다면 과거 서부교회의 그 굉장한 명성의 일부나 전부나 그 이상도 하실 수 있고 그 것은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하시니 우리가 알 수는 없다고 느끼실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