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를 정죄하고 그 사용을 금하는 합동측 교단의 발표문을 보며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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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2 00:00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을 받지 목사가 복을 준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주하는데 목사가 복을 빌면 그 목사도 함께 저주받게 되는 것이라'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 종노릇을 해야 종이지 목사가 제 멋대로하면 하나님 종이 아니라'
'따라서 옳으면 하나님의 종, 틀리면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이지 목사라고 항상 하나님 종은 아니라'
예를 들면, 백목사님의 '성직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런 점에서 총공회 교회는 우리 목사들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논리를 늘 지고 살게 됩니다. 전 교인들이 집회 때마다 자기 목회자들과 함께 백목사님 밑에 앉아 함께 듣고 나온 노선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옳은 것을 가르치고 앞장서면 우리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모십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틀린 것을 가르치고 틀린 일에 앞서가면 우리는 목사님이 싫어서가 아니고 목사님의 교훈과 노선이 죽는 길이기 때문에 반대하게 됩니다. 이것이 공회의 교역자에 대한 근본 신앙성향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목회자에 대한 시각이 백목사님의 교훈이 옳고 일반 교계의 것은 우상화이므로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밑에 있던 목회자들이 어느날부터 슬슬 일반 교계식 목회자관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스스로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총공회 신앙노선의 옳은 것을 버리고 일반 교계의 대세를 늦게서야 따라가게 되었는데, 총공회 교회들이 그 대세를 따라 목회자를 하늘같이 높여야 한다는 이론을 사용할 때가 되어서는 정작 그것을 앞서 사용하던 교계가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입장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교계의 중고품을 몰래 들여와서 보배단지로 품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교계의 폐기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 최대 교단인 합동측 총회가 느닷없이 '중보기도'는 반 성경적이니 사용을 금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모르는 분들이니 중보라는 의미가 어떤 면에서 사용되어야 하고 어떤 면에서 금해져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신학의 빈약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교계의 발표에 대하여 총공회 신앙노선에 있는 교회들이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휘떡휘떡 뒤집어지는 가련한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알지 못하는 교계의 유행어를 성급히 도입하여 일반 교인들에게 유행을 따라 잡는 목회자로 그 모습을 부각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유행은 유행이니 유행은 생명이 없는 것이라 문제입니다.
'중보기도'라는 용어가 공회 소속 교회들에게 나타난 것은 최근입니다. 일반 교계는 훨씬 이전에 이 용어를 개발하여 대단히 큰 덕을 보았습니다. 유행처럼 번졌고 급기야 이전부터 사용하던 교회 내의 모든 기도는 그 이름을 '중보기도'로 대체 사용되었습니다. 이 용어의 위험성도 문제점도 전혀 고려치 않고 오직 교인대중들에게 와닿는 유행어 인기용어 개발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계가 개발하여 유행시키는 위험물들을 총공회는 늘 뒷늦게 수입하여 사용하게 되지만 그것을 먼저 수입한 교회들은 그래도 총공회 내에서는 아주 최첨단을 자랑하는 교회들이 됩니다. 총공회의 좋은 교훈에다 일반 교계의 선진화된 방법론을 접목시킨 것이라는 주장으로 포장하게 되는 경우인데, 그럴 때마다 그것을 먼저 개발 보급시킨 교계는 마치 자기들은 원래부터 알았다는 식으로 정죄를 해버립니다. 뒷꼭지에 사격하는 꼴입니다.
'중보'라는 의미가 성경 교리적으로 어떤 뜻을 담고 있으며 어떤 범위를 넘어서면 안되는지에 관하여는 총공회 교리 세계를 능가할 교계가 없습니다. 사실 생각못할 정도로 깊게 들어가 있는 총공회 교리에서는 기본구원적으로는 '중보'기도를 사용하게 되면 이단이 되지만, 건설구원적으로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이 더 잘 믿도록 내가 희생하는 면을 말할 때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교회 중에서 이런 교계 유행어를 수입해다 사용하는 분들은 그것을 먼저 사용하던 교계가 그 사용을 막거나 정죄하면 지레 겁을 먹고 막힌다는 것입니다. 백목사님과 총공회 신앙노선이 말하는 것은 일단 반발부터 하고 보지만 교계가 철없이 무식하게 이 말 저 말을 하는 데에는 급제동이 그렇게 잘 작동되며 먹힌다는 것이 한탄입니다. 그 교계에는 많은 숫자라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도 필요하면 십자가에 못박을 여론과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주눅이 들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 되지 않을 세월과 회개의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이 한가지로 예를 드는 것은, 많은 사례를 통해 바로 아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비록 혼자 가더라도 가야 할 길을 가고 믿어야 할 바를 믿겠다는 곳입니다.
